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50화
‘세계인은 음악으로 하나 된다’ 하는 컨셉의 VCR이 흘러나오면서 본격적인 어워드의 막이 올랐다.
홍콩 최고의 스타 배우가 오프닝 멘트를 하고.
여러 가지 코너가 이어질 때마다 영어 멘트가 흘러나왔다.
-2016 KMA의 가수를 소개합니다!
가수들의 이름이 흘러나올 때마다 팬들이 우와아아아 하는 소리가 아레나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전광판에 휙휙 지나가는 화보들.
-…스트릿 보이즈, 뉴블랙, 틴스피릿!
우리 파트에 이르러 관객들의 환호가 폭발했다.
가까이 와서 촬영하는 카메라에다 대고 손을 흔들며 웃으니, 환호가 두세 배로 더 커졌다.
하트를 만들었지만 카메라에 못 담긴 리혁이가 시무룩하게 손을 내렸다.
“괜찮아.”
“고마워요.”
“아무도 너한테 관심이 없거든.”
“…….”
스산하게 바라보는 이에게 깔깔 웃어 보이고는 다시금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오프닝에 귀여운 아이들이 폴짝폴짝 춤을 춘 공연이 끝나고, 신인 그룹들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오프닝 무대를 맡은 것은 TJ 엔터에서 데뷔한 신인 보이그룹 ‘트릭스터’였다.
아이돌 명가로 꼽히는 TJ 출신답게 준수한 성적으로 신인상을 휩쓸고 있는 그룹이었다.
비보잉에 가까운 댄스 브레이크에 비주가 입에 손을 올리고 환호했다.
“저기 가운데 친구가 그 친구지? 너랑 아이무브 같이 출연한.”
“서웅이요? 맞아요.”
트릭스터의 메인 댄서를 바라보는 비주의 눈에 호감이 가득했다.
우리 둘째가 사과 잘 먹는 사람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바로 춤 잘 추는 사람들이었다.
중현이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진짜 다들 잘하네요.”
1부 출연자들의 무대가 심상치 않았다.
트릭스터에 이어 에노티와 하이컬러도 빡센 칼군무로 시선을 사로잡고.
“오오…….”
뒤이어 나온 원더 차일드의 무대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해외에서도 방영이 됐는지 홍콩에서 울려 퍼지는 환호성이 심상치가 않았다.
인형 뽑기로 캐릭터를 뽑는 VCR과 함께 등장한 원더 차일드가 청량한 분위기의 데뷔곡으로 춤을 춘다.
“형, 근데 불꽃놀이랑 느낌이 좀 비슷한 거 같아요.”
“분위기는 비슷하네.”
요즘 들어 유행하고 있는 딥하우스 풍의 청량한 분위기였다.
KM 엔터 A&R팀답게 퀄리티가 좋은 음악이었는데, 솔직히 불꽃놀이와 분위기가 비슷하긴 했다.
내 곡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겠지만…….
“컨셉이 좀 비슷한데요.”
“그러게.”
내가 답하자 리혁이가 다시 속삭였다.
“내 느낌일 수도 있긴 한데, 은근히 비슷한 것들 많아 보였어요. Nine 느낌 나는 것도 있고.”
“저도 그랬어여.”
이번엔 오른쪽 귀에서 막내가 속삭였다.
리혁이가 내 왼쪽 귀에 속삭였다.
“야, 그치?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네, 저도 같은 생각이었다니까여.”
귀에다가 호오… 호오… 하며 입김을 불어넣는 동생들을 밀어냈다.
내 귀가 무슨 종이컵 전화기도 하고.
그동안 멀찍이서 ‘호오… 호오오……’ 하며 장갑에 입김을 불어넣는 한조와 눈을 마주쳤다.
“…….”
쟤는… 됐다.
내 주변에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건지, 아니면 이상한 사람들이 내게 끌어당겨지는 건지 모르겠다.
옆에서 지켜보던 중현이가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요.”
“…….”
무시하며 무대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땀에 젖은 원더 차일드의 멤버들이 조명 아래서 환히 웃고 있었는데, 다들 기쁘고 설레 보였다.
처음으로 큰 공연을 하게 될 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나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는 한편.
“으음…….”
동생들의 말에 공감하긴 했다.
묘하게 낙화처럼 한국풍을 풍기는 곡을 들고 온 가수들도 있고, Nine처럼 일렉트릭 비트가 인상적인 곡들도 많고.
너무 건방진 게 아닐까 싶어서 억누르던 생각이었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비슷한 곡들이 많긴 했다. 우리 곡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후후후후후후…….”
그게 흐뭇한지 내 곁에 모여서 의기양양하게 웃는 동생들이었다.
왜 자기네들이 더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로서도 기분 나쁜 일은 전혀 아니었다.
작곡가로서 뿌듯한 순간이었다.
비슷한 노래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건, 대중들에게 먹히는 곡을 우리가 제일 먼저 시도했다는 뜻이니까.
“무대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가수석으로 돌아오는 원더 차일드 멤버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다른 가수들의 무대에 집중했다.
청력을 돋우면서 물결치는 빛의 파장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머릿속에 있는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곡 ‘도깨비’의 악보에 선을 찍찍 긋고 조금씩 수정했다.
“무슨 생각해요. 형?”
“작곡.”
“……작곡이요?”
비주의 물음에 답하며 웃었다.
“무대 보면서 몇 가지 떠오른 것들이 있어서.”
몇몇 곡들이 우리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더 좋은 점도 있었다.
내가 쓴 곡들의 미흡한 부분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되나.
시험 문제를 풀 때, 내 풀이과정에서 미진했던 점에 다른 사람들이 답지를 달아 준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우리 곡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인식하니 그런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돌아가서 조금 더 수정해도 괜찮겠지?”
“프로듀서 분들이 형을 해치려고 들지도 몰라요…….”
“중현이가 지켜 줄 거야.”
낙관적인 전망을 하며 내 머릿속의 ‘도깨비’를 수정했다.
다른 작곡가들이 친절하게 달아준 주석을 참고하니 개선하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 * *
본격적으로 시상식이 진행되면서 우리도 몇 가지 상을 수상했다.
-베스트 아시안 스타상!
-축하드립니다! 뉴블랙!
베스트 아시안 스타상.
넥스트 뮤지션상, 월드와이드 페이보릿상 등등 시상식 참석 아이돌들에게 상을 나눠 주기 위해 존재하는 상 중 하나였다.
그래도 그중에서 나름 의미 있는 상이었다. 오로지 네티즌들의 투표로만 정하는 상이니까.
쉽게 말해 우리가 이번에 네티즌 인기투표에서 1위를 했다는 소리였다.
-정말 영광이에요. 감사합니다.
작년까지 TNT가 장기집권을 했던 상을 받고 있자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다.
“…….”
틴스피릿과 스트릿 보이즈,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 중에서 왠지 모르게 허전함이 살짝 느껴진다.
끝나고 연락 달라고 했으니 이따 통화해야지.
기다리고 있던 스탭 분에게 트로피를 넘기고는 이어지는 시상을 관람했다.
-올해의 베스트 OST상입니다.
리혁이가 부른 ‘시댁을 터뜨렸습니다’의 Walk Again이 후보군에 올라온 가운데 OST상은 장소원 선배가 수상했다.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스트릿 보이즈, 축하드립니다!
-베스트 인디 가수! 축하합니다! 홍샛별!
-베스트 댄스 남자 솔로, 한태현!
참석 안 해도 상을 주는구나.
역시 TJ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환호가 들려왔다.
Survivor로 남자 솔로 퍼포먼스상을 수상한 태현이의 소감이 미리 녹화한 VCR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Survivor란 곡을 써 주신 우리 우주선 작곡가님! 아마 지금 박수 치고 계실 텐데.
전광판에 박수 치고 있는 내 모습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 태현이가 씩 웃었다.
-좋은 곡 써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수를 치면서 꾸벅하는 내 모습이 전광판에 흘러나오면서 수플레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1부에 이어서 2부의 무대와 시상이 이어지는 동안.
-다음은 올해의 베스트 남자 그룹 상입니다.
베스트 남자 그룹상을 앞두고 소란이 벌어졌다.
‘스트릿 보이즈’, ‘뉴블랙’, ‘틴스피릿’ 하며 뮤직비디오와 이름이 주르륵 흘러나오고 시상자들이 발표해야 하는 순간.
-네, 수상자는…….
1초의 적막이 끝나고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스트릿 보이즈으으으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악!
-틴스피리이이잇!
각자의 그룹을 연호하면서 팬들이 함성을 터뜨리는 모습에 가수들도, 시상자들도 움찔했다.
근처에서 움찔하는 틴스피릿과 눈이 마주쳤다.
‘저희 팬들 존나 셈.’
‘우리 팬들도 세다.’
가운데 앉아 있던 스트릿 보이즈가 수줍게 끼어들었다.
‘우리도 강해…….’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10초 동안 시상자들이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그러곤 힘겹게 입을 뗐다.
-네, 2016년 KMA 올해의 베스트 남자 그룹상은……!
-크와아아아악!
-틴스피릿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틴스피릿이 받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KMA에서 스트릿 보이즈 한 스푼, 틴스피릿 한 스푼, 뉴블랙 한 스푼 하며 상을 나눠 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예측대로…….
-올해의 베스트 뮤직비디오 상!
-축하드립니다! 뉴블랙의 <낙화>!
올해의 베스트 뮤직비디오 상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감독님…….”
Nine에 이어서 낙화의 뮤비를 찍었던 감독님을 향해 하트를 보내며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작업했으면 좋겠습니다.”
“와아아아아-!”
감독님도 아마 뿌듯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흐뭇하게 웃으며 동생들과 손뼉을 쳤다.
‘한 번 도비는 영원한 도비.’
이미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온 감독님을 절대 다른 가수들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베스트 아시안 스타상, 베스트 뮤직비디오 상을 비롯해 트로피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느끼며 웃고 있을 때.
다른 부문으로 시상이 넘어갔다.
-다음은 전문 부문입니다.
각 분야에서 활약한 엔지니어나 작사가 등이 짧게 수상하는 코너였다.
새로 포섭해야 할 사람들이 카탈로그처럼 촤르르륵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라 이름을 하나씩 기억했다.
바로 그때.
-다음은 베스트 프로듀서 부문입니다.
-네, 우주선 씨. 축하드립니다!
갑작스럽게 내 이름을 호명하는 시상자의 말에 주변에서 다 같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축하해여, 우주선 작곡가님!”
“축하합니다~!”
여기저기서 키득대며 우주선을 연호하는 모습에 나도 웃었다.
곧바로 시상자들이 있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가자 수플레들이 우어어어 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주선! 우주선!
-로켓! 로켓!
로켓 누구야.
범인을 찾지 못해 아쉬운 느낌을 받으며 베스트 프로듀서상의 트로피를 받았다.
그러곤 객석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주선입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내 모습 때문인지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같은 시각.
K넷 뮤직 어워드를 TV로 보고 있던 수플레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축 우주선 작곡가 2관왕
-K넷 놈들 망고하는 거 보고 부러웠나 보다
-내레이션으로는 joo-sun woo 미쳤냐고ㅋㅋㅋㅋㅋㅋ
-주선씨 너무 잘했다ㅠㅠㅠㅠㅠㅠㅠ
-ㄹㅇ 우주선 아니면 누가 타냐
-근데 전문부문 상 타니까 좋다ㅋㅋㅋㅋㅋ 뭔가 뽕차
정말 업계인들이 인정할 만한 엔지니어, 작사가, 안무가 등이 끼어 있는 전문 부문 시상에 끼어 있는 우주선이 자연스럽다.
인기도 좋지만 빼어난 프로듀싱 실력으로 전문적인 상을 거머쥔 최애에 대한 자부심이 폭발했다.
게다가 다른 아이돌 팬들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흐뭇했다.
‘장하다, 우주선.’
다음에 이런 상을 받을 때는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들도 같이 섰으면 좋겠다는 말로 소감을 마무리한 후.
총 3부로 나눠진 시상식에서 2부 무대의 시간이 되었다.
홍콩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스트릿 보이즈가 2부의 엔딩을 장식하면서 시청자들도 감탄했다.
‘잘한다.’
해외 팬들에게서 인기를 끌었다는 말답게 화려한 군무로 무대를 누비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이것이 바로 mbti에서 e보다 i가 더 많은 그룹의 춤..
-돈가방 들고 경찰차 부숨(내향성)
-쟤네 저러고 나서 봉사활동 하러 가잖아ㅋㅋㅋ
-얘들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 레전드
-와 근데 K넷은 돈도 많이 버는데 카메라는 왜 항상 발카냐
-차라리 유료 프리미엄직캠 이런 거라도 만들어ㅠㅠㅠ 어후
카메라 발로 찍냐는 시청자들의 한탄 속에서 2부의 엔딩 무대가 끝나고.
마침내 3부가 시작하면서 팬들이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시상식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대상 시상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장 쟁쟁한 가수들의 무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애들 무대……!’
[채널 고정! 곧 뉴블랙의 무대가 시작합니다] 같은 자막이 거의 오프닝 때부터 떠올라 있던 터였다.
수플레들이 두근두근해하는 가운데.
‘시작한다!’
홍콩 아시아 아레나에서 직접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수플레들의 가슴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장소원의 솔로 무대가 끝나고 이제 뉴블랙의 무대가 나올 시간이었다.
타악-
공연장 전체 조명이 암전된 가운데 어둠 속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게 보인다.
“와아아아아아-!”
뉴블랙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돌출 무대 위로 올라오고, 댄서들도 우르르 무대 곳곳에 퍼졌다.
코난의 범인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듯한 광경.
돌출무대에 의상을 갖춰 입은 4인의 모습에 팬들이 갸우뚱했다.
‘지호는 어디 갔지?’
막내가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갔는지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조명이 밝아 오르면서 지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돌출 스테이지에 있는 멤버들과 다르게 중앙 스테이지에서 댄서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멤버였다.
“와아아아아악-!”
수려하게 빚어 낸 얼굴이 전광판에 클로즈업으로 잡혔다.
짙은 눈썹 아래로 보이는 눈동자가 정면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대 바닥에 체스판 조명이 들어왔다.
‘오…….’
TV 화면에 [Intro Perf.]하는 자막이 올라오는 가운데, 웅장하고 힘찬 음악 속에서 지호가 몸을 움직였다.
부드럽게 회전하면서 검은 상의 끝이 흩날리고.
손짓을 하거나 목을 들면서 움직이는 것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잠시.
‘체스판에서 움직이는 건가?’
지호가 체스판 위를 한 칸씩 움직이고 있었다.
모양새로 보아 체스에서 가장 하급 병졸인 폰(pawn)의 움직임을 춤으로 보여 주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나이트, 비숍 등을 맡은 댄서들이 위협적으로 움직인다.
‘오, 어우…….’
자신을 노리는 말들에 이리저리 피하고 있던 병졸이 행진곡 같은 음원 속에서 서서히 나아갔다.
고개 숙인 채 멈춰 있는 4인조가 있는 돌출 스테이지로.
그렇게 체스판의 끝에 다다른 지호가 몸을 탁 튕기자, 댄서들이 제복과 비슷한 무대 의상을 입혔다.
체스판 반대편에 다다른 폰이 킹을 제외한 다른 말로 승진할 수 있는 규칙을 반영한 퍼포먼스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음악이 잦아들고 여유롭게 걷던 서브보컬이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4인조의 곁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러곤 일렬로 모인 멤버들에게 합류하면서 음악이 시작됐다.
바로 Empire의 전주였다.
종을 울려라
멀리 퍼지도록
허공에 손을 뻗은 리드 보컬이 나지막하게 노래하면서 수플레들이 비명을 터뜨렸다.
망고 차트 어워드 때 했던 한국풍의 Empire와는 다르게 본래의 Empire 버전이었다.
어워드 버전으로 조금 편곡이 됐는지 템포도 조금 더 빠르고.
그 때문에 무대 공간을 널찍하게 사용하는 뉴블랙만의 퍼포먼스가 훨씬 더 돋보이고 있었다.
“잘해.”
“우리가 뭐 할 때 쟤네가 박수치면 기만 같다니까.”
“잘한다, 잘해…….”
오늘도 칼을 갈고 나온 듯, 전광판으로 보이는 열기 가득한 눈빛에 감탄하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고음을 내는 메인 보컬을 보던 한조가 혀를 내둘렀다.
‘뭐가 막 뿜어져 나오네.’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뉴블랙 멤버들에게서 열기로 된 아지랑이가 보이는 것 같다.
룰루랄라 하던 이들이 무대에만 올라가면 저렇게 변신했다.
다른 가수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우와아아…….”
대기실 복도에서 으하하하 폴짝 뛰어다니던 뉴블랙 멤버들을 보고 신심이 약해질 뻔했던 원더 차일드가 입을 벌렸다.
‘역시 뉴블랙 선배님들이다.’
‘우리 멘토링 할 때… 진짜 봐준 거였네.’
‘나도 고기를 많이 먹어야 되나.’
뉴블랙이 직접 무대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선배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뉴블랙의 무대를 보면서 시야가 더 넓어지는 듯했다.
KM 엔터에서 최고의 실력으로 올라왔는데, 세상에는 춤 잘 추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우와아…….”
뒤에 앉아 있던 스칼렛 멤버들이 저래서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 거라고 세레니티 멤버들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가수들 모두 공통적으로 팬들의 함성에 기겁했다.
‘K넷이 상을 막 준 이유가 있었구나…….’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중소 기획사 출신 그룹에게는 돈까스 집 깍두기만큼 적은 상이 주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오늘 K넷의 조치를 보고 놀랐는데. 이 정도 함성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소리 지를 때마다 어지간히 큰 소리에 면역인 가수들도 움찔했다.
귀에서 막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
가수들이 놀라는 동안, Empire의 무대가 끝나면서 수플레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뭔가 또 있다……!’
Empire가 끝나면서 다시금 무대 위에 체스판이 떠올랐다.
엄밀히 말하자면 체스판을 형상화한 조명.
그게 움직일 때마다 체스판이 기울었다가 흔들렸다가 하는 듯 보였다. 그 속에서 비틀거리는 듯한 춤을 추는 멤버들.
마침내 와르르- 하는 효과음과 함께 체스판이 무너지면서 댄서들도 무너졌다.
잿더미 속에서 먼지들이 흩날리는 듯한 VCR을 배경으로 색다른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낙화다!’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것을 컨셉으로 하는 Empire.
그에 대한 연속선상으로 꽃이 떨어진다는 컨셉 대신에 체스 말들의 추락을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곧이어 낙화를 재해석한 어워드 버전의 무대도 이어지면서 현장 팬들의 비명이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
지켜보던 가수들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소리로… 얻어맞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한국 갈래…….’
그 함성 소리에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던 틴스피릿이 존나존나 떨면서 몸을 풀고 있는 동안.
낙화의 마지막 댄스 브레이크에서 메인 댄서를 중심으로 모든 댄서들이 몰려와 꽃이 떨어지는 듯한 퍼포먼스에 합류했다.
그리고.
꽃이 필 때 돌아오리.
돌출 무대로 걸어 나온 리더가 독무를 추면서 마지막 소절을 부르며 낙화의 무대가 막을 내렸다.
보라색 조명 아래 무릎을 꿇은 리더가 허공을 응시하면서 조명이 암전되고.
팬들의 비명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뒤덮었다.
-이쓰뻘카메라!!!!!!
-(대충 심한말)
-내년에는 어워드 제작진으로 잠입해서 줌인이랑 줌아웃 버튼 스티커 반대로 붙여 놓을 거임
-방송국 특징: 안무 구도 중요한 단체샷에 얼빡하거나 항공샷
-이건 뭐 전지적 하느님 시점이냐?
-카감 꿇어
-레전드는 찍었는데ㅠㅠㅠㅠㅠㅠㅜㅜㅜ
-이번에 미국 보니까 카메라 되게 정적이던데.. 왜 우리는 카메라가 춤을 추고 있냐
인터넷에서는 레전드 무대에 대한 찬사와 발카메라에 대한 한탄이 오가고 있었다.
곧이어 다음 무대의 주인공인 틴스피릿 팬들도 합류했다.
그들이 욕 못하는 그들의 가수를 대신해 카메라 욕을 하는 가운데, 모든 무대가 끝을 맺으면서.
[곧이어 대상 시상이 시작됩니다!]
모두가 기다려 왔던 대상 시상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