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51)화 (55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51화

홍콩 아시아 월드 아레나.

다 같이 가수석에 앉아 옷을 펄럭펄럭하며 땀을 식혔다. 여전히 무대의 열기가 식지 않고 몸에 남아 있었다.

“으으…….”

격하게 춤을 춰서 그런지 목이 결린 모양이다. 뻐근한 목과 어깨를 주물주물하는 동안 동생들의 컨디션을 살폈다.

다들 개운하고 좋아 보인다.

중현이의 양쪽 어깨에 기대고 있는 비주와 지호를 보고는, 눈을 감은 메인 보컬에게 고개를 돌렸다.

“리혁아, 살아 있니?”

“…….”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보니 미약한 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멀쩡하네.

마치 배터리가 5%에 다다라 화면이 어두워지는 핸드폰처럼 잠시 탈진한 듯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과 함께 틴스피릿의 무대가 끝났다.

땀에 홀딱 젖은 휘연이 씩 웃으면서 조명이 암전되고, 틴스피릿 팬들이 휘두르는 영혼 파괴봉이 물결친다.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우와…….”

“우리도 너네 달봉이 볼 때 그래.”

속삭이는 한조의 말에 내가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달봉이는 귀여워.”

“…….”

“속삭이지 말고 장갑이나 마저 문지르쇼.”

저리 가라는 의사표현을 하자 한조가 장갑을 비비며 호오오오… 하기를 다시 시작했다.

맏형들끼리 잘들 논다는 양측 동생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동안 무대를 끝내고 돌아온 틴스피릿 멤버들에게 꾸벅 일어나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무대가 제법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목욕하고 나서 제티를 마신 듯한 표정으로 앉는 틴스피릿 멤버들을 보고는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은 올해의 글로벌 아티스트 시상이 있겠습니다.

웅장한 BGM이 흘러나오면서 VCR이 재생됐다.

곧바로 파란 머리카락의 싱어송라이터가 화면에 등장하면서 월드 아레나의 관객들이 환호를 터뜨렸다.

[Haley Blue]

헤일리의 대표곡들이 흘러나오면서, 이 가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 주는 내용이 이어졌다.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게 그거구나.’

‘그거네요.’

우리가 Empire로 컴백쇼를 했던 두 달 전.

K넷의 국장이라는 분이 와서 우리 보고 헤일리를 섭외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그 사정을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파투 난 줄 알았는데, 여차저차 성사된 것 같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올해의 글로벌 아티스트, 헤일리 블루를 소개합니다!

이제 VCR에서 헤일리가 나와 땡큐 KMA 하는 멘트를 할 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와아아아아아아아-!”

무대 뒤편에서 하얀 드레스를 걸친 헤일리 블루가 실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미국 최고의 팝스타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가수석에 있는 이들도 술렁였다.

“헤, 헤일리 브, 브 브……!”

동경하던 롤모델을 발견한 미소년들이 단체로 경련을 일으키고.

세레니티와 스칼렛이 우워어어어 하며 벌떡 일어났다. 스트릿 보이즈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싱어송라이터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의 등장에 같은 싱어송라이터인 장소원 선배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들 ‘저 사람이 여기 왜 나와?’ 하는 표정.

우리도 반갑다는 듯 웃으며 박수를 쳤지만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VCR로 하는 거 아니었어?’

‘뭐예여?’

큐시트에도 ‘[VCR] 헤일리 블루 소감’하고 붙어 있던 터였다.

그 말인즉, 원래는 VCR로 하게 될 거였는데 헤일리가 즉흥적으로 홍콩을 방문했다는 이야기였다.

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

어찌 된 일인지 절로 상상이 그려졌다.

기타 치며 뒹굴뒹굴하던 헤일리가 스케줄상에서 ‘내일이 홍콩 그 뭐시기구나’ 하다가 ‘홍콩!’ 하고 삘이 온 게 분명했다.

‘우육면이랑 에그 타르트 먹으러 왔구나……!’

‘딤섬 먹으러 왔네.’

경우가 어떤 것이든 간에 즉흥적이라는 건 분명했다.

우아하게 드레스를 걸친 헤일리가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와 마이크 앞에 섰다.

-안녕~

관중들을 슥 둘러본 헤일리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글로벌 아티스트라니, 이렇게 큰 상을 준 K넷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할게.

단아한 미소.

우리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많이 받았구나!’

‘얼마나 큰돈을 준 거지?’

그 뒤로 이번 2016 KMA의 모토인 ‘세계인은 음악으로 하나된다’ 하는 멘트를 주르륵 이어 갔다.

음악에 대해 진심 가득한 팝스타의 소감이 끝을 맺었다.

-끝으로, 음악은 존나게 위대한 거야. 그게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태평양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겠어?

생긋 웃던 헤일리가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퇴장하면서 다시금 웅장한 BGM이 흘러나왔다.

“우와…….”

“들었어? 영어로 존나래…….”

몽롱한 얼굴로 손뼉을 치는 미소년들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헤일리의 KMA 침공이 끝나고, 무대에는 한 차례 VCR이 또 나왔다.

2007년부터 시작해서 작년까지 대상 수상자들의 모습이 담긴 VCR이었다. 식스티 세컨즈가 편집되면서 TNT가 첫 수상을 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축하드립니다! TNT-!

2세대 원탑 걸그룹의 노래상 수상, 그 뒤의 TNT의 앨범상과 가수상 등등.

작년도 즈음에 이르러서는 우리도 나왔다.

-올해의 노래상.

-바람꽃! 정말 축하드립니다!

다섯 명이서 벌떡 일어나 꼭 끌어안은 작년도 KMA 영상이었다.

이게 벌써 1년이나 됐다니.

시간이 참 빨리 지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그때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번 몸으로 느꼈다.

그런 우리 앞에 VCR의 글귀가 반짝거렸다.

[과연 올해의 대상은?]

관객들의 환호성 속에서 <슬립>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이강진 씨가 걸어 나왔다.

주최 측이 준비한 멘트를 마친 그가 손짓했다.

-…제가 시상할 부문은 올해의 노래상입니다. 자, 이제 후보들을 한 번 만나 보시죠.

우리의 낙화, 틴스피릿의 Demonic 등의 뮤직비디오가 후보군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세레니티의 REALITY 뮤비가 나왔다.

청량한 사운드 속에서 하이틴 영화의 퀸카들처럼 차려입은 이들이 군무를 펼치고 있다.

“으아아아아아-!”

장내에 있는 관객들이 함성으로 응원해 주는 동안, 이강진 씨가 봉투를 가볍게 열었다.

-네, 2016 KMA 올해의 노래상.

잠시 봉투를 보던 배우가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축하드립니다, 세레니티.

웅장한 BGM과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당사자인 세레니티의 멤버들만 여전히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망부석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입가에 손을 올린 세레니티 멤버들이 허둥지둥 주변에 꾸벅 인사하면서 돌출 무대로 걸어 나갔다.

타이틀곡 리얼리티 속에서 걷던 세레니티 멤버들이 스탠딩 마이크 앞에 모였다.

-어…….

한 명이 울음이 터지면서 단체로 눈물이 터져 나온 듯했다.

-하나, 두울, 세엣… 안녕하세요. 세레니티입니다!

-네, 저희이이…….

눈물을 펑펑 쏟는 멤버들 속에서 꾹 참던 리더까지 울음이 터지면서 관객들이 응원하는 함성을 보내 주었다.

곧이어 눈물이 잔뜩 배어 있는 소감이 이어졌다.

-…너무 감사합니다!

팬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끝으로 세레니티의 노래상 수상이 끝을 맺었다.

곧바로 다른 배우가 등장하면서 상은 올해의 앨범상 분야로 넘어갔다.

망고 차트 어워드라는 선례가 있었던 노래상과 달리 앨범상은 굉장히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수상자가 누구인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틴스피릿!

“와아아아아아아아!”

올해 실물 앨범 판매량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틴스피릿의 정규 앨범이 KMA 앨범상을 수상했다.

-우리 소울들……!

해석) 팬들아. 팬들아.

-많이 부족한 저희를 아껴 줘서 감사합니다.

해석) 저랑 이 멍청한 새끼들을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솜사탕같이 웃는 틴스피릿을 보며 훈훈하게 웃었다.

앨범상 수상을 하고 돌아오는 이들에게 박수를 쳐 주고는 곧바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시상자로 나온 배우가 영어로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올해의 가수상’ 후보 소개로 넘어갔다.

-Teen Spirit.

-Serenity

-The New Black

마지막에 이르러서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침을 꼴깍 삼키는 가운데, 주변에 있는 가수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머무르기 시작했다.

-네, 2016 K넷 뮤직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수상자는…….

애태우듯이 뜸을 들이던 배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뉴블랙.

“꺄아아아아아아아!”

수플레들이 내는 익룡 소리에 긴장이 탁 풀렸다.

흐아, 하는 숨소리가 절로 턱 나온다.

동생들과 제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됐네요.”

중현이가 씩 웃으며 끄덕였다.

망고 차트 어워드에 이어 KMA에서도 ‘올해의 가수상’에 우리가 유력하다고 들어서 기대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축하한다는 듯 어깨를 툭 쳐주는 스트릿 보이즈에게 인사를 하고는 돌출무대로 걸어 나갔다.

망고에 이어서 KMA에서도 올해의 가수상이었다.

돌출 스테이지 양쪽으로 수플레들이 달봉이를 흔들고 있는데, 마치 빛으로 된 꽃길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감사합니다.”

트로피를 받아 들고는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수플레.

“우아아아아아아아!”

-여러분이 또 상을 줬어요.

이번 미국에 다녀오면서 또 한 번 느낀 바가 있었다.

수플레들이 모이거나 했던 덕분에 우리가 미국 토크쇼 같은 곳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았으니까.

우리가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춘다고 해도 팬들이 없었다면 좋은 대접은 못 받았을 거라 자신할 수 있다.

어느 곳이든 연예계는 차갑고 냉정한 곳이니까.

-이 추운 날에도 팬분들이 있어서 따스한 것 같아요. 작년에 노래상을 수상하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따스한 겨울이 됐다고 말씀드렸는데…… 올해 와서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고 있어요.

멤버들과 함께 웃으며 소감을 전했다.

-여러분 덕분에 저희는 언제나 봄날이에요.

-정말 감사해여어어어!

트로피를 들어 보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선배 가수가 대상이라도 상을 한 번 타고 나면 감흥이 덜해진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상은 언제 받아도 좋다.

*   *   *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유리 트로피.

내가 양손을 든 채로 번쩍 들어 올리자, 뒤에 숨어 있는 원석이 형이 왕봉이를 트로피 뒤에 갖다 댔다.

촤아아아악-!

영롱한 무지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곁에서 지켜보던 틴스피릿이 박수를 쳤다.

“와, 시발… 프리즘의 원리.”

“존나 과학이네.”

이웃집 사람들이 감탄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민기 형에게 눈짓했다.

“찍어요. 얼른!”

“찍는다!”

KMA 트로피로 무지개 빛을 보여 주는 대상 인증샷을 찍고는 동생들과 다시 한번 자축했다.

비주가 행복하게 웃으며 트로피를 안아 들었다.

“아, 너무 좋아요. 형. 진짜…….”

“저도 만질래여. 우리 트로피.”

정말이지 사랑스러워 보이는 ‘올해의 가수상’ 트로피였다.

그동안 다른 가수들이 철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워드가 끝나고 이제 다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곳곳에서 가방을 맨 가수들이 스탭들에게 인사하거나 K넷 카메라에다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이웃집 식구들을 바라보았다.

“혼자 가기 좀 그래서?”

“네, 영어가 안 되니까.”

글로벌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러 나온 팝스타를 직접 만나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곧장 친구들을 데리고 대기실로 향했다.

「들어와.」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대기실이었다.

엄청 화려하고 안에 과자가 가득해서, 헨젤과 그레텔의 집이라도 짓나 생각했던 바로 그 대기실.

“아…….”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소파에서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던 앙증맞은 꼬마 아이와 우리가 눈이 딱 마주쳤다.

「안뇽~!」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헤일리의 딸, 써머에게 우리도 인사를 하고는 옆에 앉아 있는 헤일리에게 인사했다.

「헤일리, 우리 왔어요.」

「어어…….」

「홍콩까진 어쩐 일이에요?」

「남편이 영화 로케이션 촬영을 갔어. 써머랑 놀아야 되는데 집에서 할 게 별로 없어서.」

딸이랑 쇼핑하러 홍콩에 왔다는 이야기였다.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딸내미와 같이 놀다 보니 일찌감치 방전되어 버린 모양이다.

「나도 이제 어워드 왔어!」

방실방실 웃는 써머의 모습에 웃음을 흘리고는 틴스피릿을 소개했다.

우리 뒤편에 올망졸망 눈만 빛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헤일리가 흥미를 보였다.

「이 귀엽게 생긴 친구들은 누구?」

「틴스피릿이에요.」

연후와 하현 등이 쭈뼛쭈뼛 나섰다.

“……저, 저, 존나게 팬입니다!”

“꼭 한 번 실물로 뵙고 싶었어요.”

살아 있는 존나의 화신을 목격한 미소년들이 경외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갸우뚱하는 이에게 리혁이가 통역해 주었다.

「말로만 듣던 헤일리 블루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는 당신의 팬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나의 팬이 있었군.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리혁이가 말을 전해 주었다.

“어머, 너희가 나의 팬이로구나. 너무 기분이 좋다.”

“허어어어……!”

서로 악수를 하는 광경에 비주가 속삭였다.

“저거 완전 사기 통역 아닌가요…….”

“괜찮아. 모두가 행복하잖아.”

천사의 통역으로 화기애애하게 웃던 이들이 금세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으로 뜻을 주고받았다.

헤일리가 미소년들을 토닥토닥 해 주며 웃었다.

「기특하군. 야채 골고루 먹어라.」

리혁이가 통역을 해 주었다.

“야채 골고루 먹고, 이웃에게 잘해 줘라.”

“네, 잘할게요!”

우리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헤일리와 다 함께 행복한 셀카를 찍고는 우리도 철수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마찬가지로 철수 중인 세레니티 멤버들과 마주쳤다.

“어흐흐흑…….”

“언니, 울지 마, 어흐흐흑……!”

노래상을 수상한 채 대성통곡하면서 걸어오는데, 붕어 떼가 된 모습이 마치 작년의 우리를 보는 듯했다.

“노래상 축하드려요.”

“어흐흑… 감사합니다.”

“언니, 그만 울어. 우리 그만 울자… 어흐흐흑!”

감정이 북받치는지 통곡하는 이들을 보며 웃을 때.

중현이가 트로피와 달봉이를 들었다.

“무지개 보실래요?”

“어? 우와…….”

눈물을 뚝 그친 세레니티 멤버들이 중현이가 만든 무지개를 보고는 우와와 하며 감탄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뜨는 무지개… 를 보여 준 건 아닐 테고.

정말 중현이다운 행동이었다.

주섬주섬 자기네 응원봉을 꺼내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대기실 현장을 빠져나왔다.

“근데 왜 보여 준 거야?”

“애기들 울 때 신기한 거 보여 주면 뚝 그치잖아요.”

“그런가. 그냥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면 되지 않아? 막 웃던데.”

“…….”

싸늘한 정적.

정말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생들의 모습에 내가 트로피와 달봉이를 들었다.

“역방향 무지개.”

“우와아아…….”

눈을 몽롱하게 빛내는 우리집 꼬맹이들을 보며 웃을 때였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보니, 원더 차일드의 멤버들이 구석에서 눈을 깜빡깜빡 하고 있었다.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무대 잘 봤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

“…….”

동생들과 헛기침을 하며 근엄하게 무지개를 바라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글러먹은 것 같았다.

*   *   *

다음 날.

레몬 엔터 사옥 프로듀싱팀 사무실에 모인 프로듀서들이 박수를 치며 대상 가수들을 반겼다.

“이야! 올해의 가수 입장하신다!”

“얘들아! 축하해!”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들어온 뉴블랙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면서 박수를 쳐 주는 프로듀서들이었다.

우주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해요. 진짜 여러분 덕분…….”

“어허!”

프로듀싱 팀장인 나상윤 피디가 호통을 쳤다.

“그게 무슨 소리냐! 온전히 너희 힘으로 탄 상인데.”

“맞아!”

“너희가 다 했어! 전부 다!”

뉴블랙 멤버들이 겸손을 떨기도 전에 미리 차단해 버리는 프로듀싱 팀이었다.

불가근불가원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뉴블랙과 그런 관계를 꿈꾸고 있는 도비들이었다.

“가수상 축하한다. 정말로. 진짜 올라왔네.”

“고마워요. 피디님.”

씩 웃던 우주와 졸개들에게 프로듀서들이 축하를 해 주고는 곧바로 작업실로 안내했다.

“참, 우주야.”

“피디님.”

서로 말이 얽힌 나상윤 피디가 우주를 바라보았다.

“먼저 말해도 돼.”

“아, 드릴 말씀이 하나 있어서요. 근데 급한 건 아니고… 피디님 먼저 말씀하셔도 돼요.”

“……?”

나 피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지?’

급한 건 아니라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우주의 표정이 초조해 보였다.

미안하고, 근데 또 말은 해야 되고, 진짜 미안하고.

왠지 모르게 그런 표정이 보여서 불길함을 느낄 때.

‘얘네는 뭘 또 준비하는 거지.’

리더의 뒤에서 트로피와 응원봉을 함께 준비하는 졸개들을 보던 나 피디가 말했다.

“나도 할 말이 있어서.”

“네, 먼저 하세요.”

“그… 도깨비 음원 말인데.”

“아, 네.”

음원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우주가 살짝 긴장한 것처럼 보인다.

나 피디가 말했다.

“오늘까지 완성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게 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그래요?”

갑자기 안색이 환해진다.

나 피디가 말을 이었다.

“마무리 작업을 하다 보니까 수정할 것들이 좀 보이더라고. 조금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도 있고.”

작곡가들끼리 회의한 부분을 A4 용지에 정리해서 건네주자 우주가 차분하게 살펴보았다.

나상윤 피디는 살짝 긴장했다.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나이만 어릴 뿐, 트렌드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작곡가였다.

선생님한테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으로 종이를 읽어 내리는 뉴블랙의 리더를 바라보고 있을 때.

부드러운 손가락이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피디님 말씀은 ‘도깨비’에 수정을 좀 더 하고 싶다는 거네요. 몇 가지 고쳤으면 하는 부분이 보여서.”

“그렇지.”

“그래서 기한 내에 힘들 거 같다는 거고요.”

“그렇지……?”

프로듀서들이 눈치를 슬쩍 보는 가운데, 뉴블랙의 총괄 프로듀서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붙잡았다.

“피디님.”

“어……?”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흐하하 웃는 이의 뒤로 졸개들이 응원봉과 트로피를 주섬주섬 다시 챙겨 넣었다.

“기한보다 당연히 더 완성도가 중요하죠~”

“그런데 우주야. 방금 하고 싶다는 말이…….”

“네?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아니…….”

얘 분명히 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동의를 구하는 데 성공해서 좋긴 한데, 왠지 모르게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프로듀싱팀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