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58화
태현이가 씩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나 한창 심심했는데 잘 됐다. 와서 좀 놀고 가.”
“다른 애들은?”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나만 왔지. 다들 스케줄 있는걸.”
오늘 PBS 음악 방송의 연말결산에서 타이틀곡 Mood를 부를 예정인 솔로 가수였다.
상대가 목덜미를 매만지며 말했다.
“뭐, 다들 엄청 바쁘기도 하고. 며칠 뒤에 HBS 가요대상 안무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어.”
현재 재계약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사정이 복잡하다는 이야기는 건너건너 듣긴 했는데, 당사자는 평온한 기색이었다.
태현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올해의 가수상 축하합니다. 형님.”
“아유, 감사합니다.”
“한참 통화로 이야기했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또 다른 거니까. 다들 정말 축하해요.”
태현이의 축하인사에 동생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틴스피릿이랑은 그래도 이웃이라 많이 친해졌는데, 태현이는 아무래도 연차 때문에 동생들이 내외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친구의 친구인데 직장 선배 같은 느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형네는 이번에 HBS 안 나오나?”
“응.”
HBS 가요대상과는 일이 틀어져서 출연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몇 주 전에도 전화해서 ‘너네가 미안하다고 해 주면 나도 미안하다고 해 줄게’ 하는 식으로 했다가 우리 팀장님이 극대노했다.
알 만하다는 듯 웃는 상대에게 내가 말했다.
“어차피 그 전날 크리스마스에 스케줄이 있어서.”
“스케줄?”
“미국 다녀와야 돼. 뉴욕에서 노스탤지어 OST 콘서트 하는데, 거기 제작자 분이 오라고 초청장을 보내서.”
“그 뮤지컬 영화?”
“응.”
“……스케일이 확 커지네.”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오픈한 뮤지컬 <노스탤지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꽤 됐다.
그 덕에 뉴욕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도 잡혔다나.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태현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인증샷 찍어서 SNS에 올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잠시, 얼마 안 가 태현이네 댄서들이 대기실로 돌아오면서 대화가 끊겼다.
단체로 커피를 든 이들이 오 하며 놀라는 가운데 비주가 그들의 연락처를 하나씩 수집했다.
“그럼.”
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내일 봅시다.”
“내일 봐. 회사 오면 전화하고.”
상대도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TJ 엔터 연습실에서 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방을 나서는데, 댄서들과 막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녀석이 보였다.
다른 멤버들이 없어서 그런가. 확실히 심심해 보이기는 했다.
* * *
크리스마스이브.
성탄절을 하루 앞둔 오늘은 가수들에게 있어서 대목이었다.
12월 초부터 발매한 캐럴 음원을 홍보하기도 하고, 라디오에 출연해서 캐럴을 부르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물씬 내고.
TV를 틀면 세상이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으하하하하하!”
나에게는 행복 가득한 날이기도 했다.
음원 차트에서 ‘뉴블랙 - Merry Christmas’라고 되어 있는 노래가 실시간 1위에 머물러 있었다.
작년에 우리가 발매한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역시 고생하며 쓴 보람이 있다.”
“1시간 만에 썼잖아요.”
“음악에 길고 짧은 게 어디 있어? 다 힘든 거지.”
룰루랄라 웃는 내 말에 리혁이가 고개를 슥슥 저었다.
참새처럼 하품한 리혁이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오는 동안, 차량 라디오에서 DJ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잘 생각해 보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드는 추억이 더 많죠. 정작 크리스마스는 평범하게 보내는데… 이브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더 설레는 마음으로.
감성적인 BGM 속에서 이어지는 오프닝 멘트에 리혁이와 나도 감성적인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가 달리는 도로는 진창이지만, 보도블록과 가게 등에는 어제 내린 눈이 남아 있어서 온 세상이 하얀빛이었다.
그때 DJ가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오프닝은 아주 설레는 캐럴로 함께 하겠습니다. 뉴블랙의 메리 크리스마스.
“아.”
확 깼다.
크리스마스 캐럴 만들겠다고 녹음하면서 고생하고, 다 싫어여! 하며 지호가 울면서 녹음실을 뛰쳐나가고.
비주가 그거 붙잡고 내가 미안하다고 그러고, 리혁이는 한숨 쉬고, 중현이는 자고.
“멘트까지는 딱 좋았는데, 우리 노래 들으니까 좀 깬다.”
“아이러니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못 듣는다는 게.”
피식 웃는 리혁이의 말에 내가 흥얼거렸다.
“아이러니~ 왜 이러니~”
“사람이 대화를 좀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요.”
“다 듣고 있어. 네가 하는 말은 다 귀로 들어가서 안 나와.”
내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도 그랬지. 나중에 관두고 말 거라면 차라리 지금 관두고…….”
“아아아! 그만해요! 내가 미안하다고!”
“흐하하하!”
13년도 겨울이었나.
엄청 날이 선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사자도 그때 기억이 났는지 얼굴이 홍시처럼 물들었다.
“……흑역사니까 언급 좀 그만해요. 내가 지금이야 스무 살이지 그때는 고1이었다니까요.”
“그랬지. 떡볶이 코트에 비니 쓰고, 눈도 이렇게 세모로…….”
조용히 하라는 눈빛에 먼 곳을 바라보자,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무튼 다들 엄청 날 서 있었단 말이에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요.”
“그랬지.”
“중현이 형만 해도 얼마나 예민했는데요.”
13년도 겨울에 처음 만난 중현이와 지금의 중현이는 인상이 확 다르긴 했다.
지금이야 행복 충만한 곰돌이 같은 인상인데, 그때는 슬픈 코끼리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나도 그렇고, 얘네도 그렇고.
3년 준비한 수능 못 쳐서 좌절하고, 연습생 생활에 찌들어서 꼬질꼬질한 헝겊 인형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어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에 와서 잘됐으니까 추억이긴 한데, 그때 진짜 생각하니까 소름이긴 하다.”
“괜히 얘기했나 봐요. 속이 울렁거려요.”
잠시 말없이 창가를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살살 흩날리는 눈발, 라디오에서 울리는 캐럴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내는 가운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원석이 형에게 물었다.
“형, 저희 언제 도착해요?”
“조금 있으면.”
다른 멤버들은 저마다 연말 합동 무대 준비를 하기 위해 회사나 다른 기획사 연습실로 향한 상태고.
리혁이와 나는 지금 TJ 엔터로 향하는 중이었다.
나는 태현이와 합동 무대 준비를, 리혁이는 장소원 선배와 합동 무대를 준비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올해 초에 옮기신 거 맞지?”
“네, 맞아요.”
화이 엔터와의 오랜 계약을 끝내고 올해 TJ 엔터로 이적한 장소원 선배였다.
그 결과는 몹시도 성공적이었다.
선배의 작사작곡 실력과 TJ 엔터의 국내 최대 A&R팀이 힘을 합쳐 발매한 앨범이 대박이 났으니까.
“선배도 잘되셔서 너무 좋다.”
“진짜, 우리 같이 화이 엔터에서 작업했던 거 생각하면…….”
화이 엔터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리혁이와 간만에 두런두런 지난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3년 전 크리스마스에는 뭐 했더라. 연말평가 연습하고 있었나?”
“맞아요.”
리혁이가 덧붙였다.
“재작년에는 DNS 미디어 가서 스보랑 TBC 합동 무대 연습했고요.”
“그럼 작년에는…….”
“음방 나가서 캐럴 부르지 않았어요?”
“소처럼 일했구나. 우리.”
그리고 올해는 연말 합동 무대 준비.
최근 3년 동안의 크리스마스 행적을 살펴보니 일복이 터져 있었다.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내년에도 크리스마스에 일했으면 좋겠다.”
“동감이에요.”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오랜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니 크리스마스에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즐겁다.
쉬면서 즐거웠던 적이 없으니까.
아니다.
어쩌면 멤버들이랑 같이 일을 하는 거라 즐거웠던 걸지도.
“너희 이제 곧 도착이야.”
“네~”
이런저런 짐을 챙기던 리혁이에게 내가 손편지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장소원 선배에게 줄 것들을 부랴부랴 챙기던 리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아, 뭐야.”
하얀 뺨에 홍조가 떠올랐다.
“나 줄려고 준비했어요?”
“다른 애들 앞에서 주면 되게 부끄러워하니까, 크리스마스 선물 미리 주는 거야.”
“나는 아직 준비 다 안 됐는데…….”
“먼저 받아.”
“으으음…….”
내가 건넨 손편지와 상자를 받는 이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리혁이의 눈매가 반달처럼 동그래진 걸 보며 웃었다.
그러곤 말했다.
“같이 데뷔해서 고맙다.”
“뭐… 나도.”
이제 오글거리는 말을 던졌으니 문을 열고 꽤애액 하면서 둘이 동시에 탈주할 타이밍이었다.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려고 할 때.
내가 운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요. 형.”
“응?”
“다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게….”
원석이 형이 정면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제설 작업 한다고 도로 통제 중이래. 돌아서 가라고.”
“…….”
띠링!
그 말에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합니다’ 하는 내레이션으로 도착 예정 시간을 변경했다.
-5분.
리혁이와 내가 동시에 스웨터를 들어 올려 거북이처럼 들어갔다.
내 인생에서 일곱 번째로 길었던 5분이었다.
* * *
“얼굴이 왜 그래? 더 늙었네.”
“넌 만나자마자 시비냐.”
“아니, 어제만 해도 파릇파릇했는데 갑자기 폭삭 삭아서 그렇지.”
“그럴 일이 있었어.”
고개를 갸우뚱하던 태현이가 내 얼굴을 보고는 다시 깔깔 웃었다.
TJ 엔터테인먼트 1층.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1층 커피숍도 사람이 하나도 없고, 굿즈 샵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로비를 지키는 보안요원을 빼면 아무도 없다.
“리혁 씨는?”
“먼저 올라갔어. 장소원 선배 만난다고.”
“방금 올라간 사람 맞지? 토마토가 괴성 지르면서 뛰어가는 거 같았는데.”
“…….”
헛기침을 하며 말을 삼켰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던 태현이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참, 온 김에 포카 또 뽑고 갈래?”
“포카?”
“TJ 방문 기념 포카.”
“아. 그거.”
떠올랐다.
저번에 TJ 엔터 방문기를 찍었을 때, 와서 포토카드를 뽑았는데 박태준 회장의 사진이 걸렸지.
그 기억을 정화하기 위해 기계에 다가갔다.
“회장님이 나올 확률이 몇 퍼라고 했지?”
“걸어가다 벼락 맞을 확률 정도.”
입장권 바코드를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랜덤 포토카드 추첨이 이루어졌다.
빰빠바바밤밤!
요란한 팡파레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오……!”
“희귀 카드!”
태현이와 내가 눈을 크게 뜰 때였다.
-와하하하!
-와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에 우리 둘의 눈이 짜게 식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둠칫둠칫 춤을 추는 박태준 회장의 모습에, 순간 이웃집 미소년들로부터 배운 험한 말이 나올 뻔했다.
“……야. 벼락 맞을 확률이라며.”
“좋은 쪽으로 생각해. 우리 영감님으로 액땜했다 치고.”
태현이가 깔깔 웃으며 인쇄된 포토 카드를 내밀었다.
황금빛 테두리에 박태준 회장님이 뾱 하며 윙크를 하고 있는 포토카드였다.
“이거 중고로 팔 수 있나?”
“팬들 말로는 포카 시세 백만 원 정도 할 거라던데.”
“그래?”
이걸 백만 원이나 주고 산단 말이야? 하고 고이 간직하려고 할 때, 태현이가 능글맞게 웃었다.
“그거 건네주면 뺨 맞아서 합의금으로 백만 원 정도 받을 거라고 하던데. 그래서 백만 원.”
“에이.”
뒷주머니에 대충 넣고는 힘차게 걸었다.
걷다가 슥 빠지길 기원하면서.
“저번에 보여 줬지? 여기가 내 연습실.”
“크네.”
야호~ 하면 메아리가 울릴 만큼 널찍한 공간이었다. 동생들과 강강술래를 해도 될 정도로 넓다.
기지개를 쭉쭉 켜면서 텅 빈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에 쌓여 있는 2017 TJ 다이어리가 눈에 띈다.
‘존경하는 TJ 가족 여러분’ 하는 인사말과 함께 올해 연간 목표, 월간 목표 등이 쓰인 다이어리였다.
다이어리를 촤라락 펼쳐 보던 내 어깨 쪽으로 머리가 쏙 내밀어졌다.
“줄까? 엄청 쌓여 있는데.”
“몇 개 가져갈래.”
4개만 챙기는 나에게 태현이가 물었다.
“형은?”
“…….”
“진짜 싫어하네.”
“내가 이걸 6년을 썼어.”
지금 와서야 그러려니 하지만 6년 동안 다이어리를 열심히 썼던 결과가 방출이었으니까.
되새겨 보면 그때 경험으로 이렇게 성장한 거지만…….
다시 쓰고 싶은 다이어리는 아니었다.
키득거리며 웃는 태현이에게 눈을 살짝 흘기고는 연습실 구석에 마련된 소파와 테이블로 향했다.
곧바로 내 노트북을 켜고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너희 회사 A&R팀에서 보내 준 음원은 잘 받았어.”
“어때?”
“괜찮았는데, 몇 가지를 조금 수정하려고.”
TJ A&R팀과 협의하면서 연말 무대 음원을 살짝 수정했다.
안무에는 지장이 없고,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알려 주자, 태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짐짓 거만하게 웃으며 물었다.
“근데 이거 내 의견은 안 묻고 진행해도 되는 건가? 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어쩔 거야?”
“저, 선배님.”
“네.”
“빌보드 1위 해 보셨는지…?”
태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치사하네.”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있으면 얘기해도 돼. 바로 이 자리에서 수정하면 되니까.”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요~”
“음악은 그럼 이대로 준비한다?”
“넵.”
어차피 우리 합동 무대 분량은 2분 정도라서 음악은 큰 부분이 아니었다.
이번에 PBS 측에서 ‘가요계 환상의 듀오 특집~’ 하면서 준비한 4팀 중에서 마지막의 짧은 무대였으니까.
음악에 대한 안내를 마치자 이번엔 태현이가 동영상을 하나 내밀었다.
“안무도 다시 확인합시다.”
“네가 짰다고 했나?”
“넵.”
내 역할을 맡은 안무가와 둘이서 파파팟 싸우듯이 흩어졌다가 모였다가 춤을 추는 영상에 혀를 내둘렀다.
“다시 봐도 안무가 살벌하네.”
“불만 있으신가요?”
“네. 몹시.”
당신의 존재가 불쾌합니다, 하는 시선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태현이가 빙글거리며 웃었다.
“혹시 후배님은 월말평가 춤 1위 해 보셨는지…?”
“노래 1등은 해 본 적 많죠.”
사이좋게 주고받고는 웃었다.
올해 PBS 가요제전에서 우리가 보여 줄 무대는 10년 전, 2006년에 나온 남자 솔로 가수의 곡이었다.
제목은 Very Very.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날 우러러 봐’ 하는 2000년대 초반 감성의 그루브한 댄스곡이었다. 이 곡이 선정된 이유는 아마 음방 담당 PD님의 젊은 시절이 그때 당시여서 그런 걸 거다.
연말 무대에서 90년대 곡 커버가 매번 나오는 건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자.”
자리에서 일어난 한 모 씨가 턱짓했다.
“그럼 연습하러 가 보실까요? 후배님?”
“갑시다~”
그나저나 다른 애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위해 몸을 풀고 있을 때, 마침 중현이가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허이고.”
스보의 랩 라인과 힙합 가수 킬러비 속에서 중현이가 행복한 고구마처럼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우리 중에서 분명 선이 가장 굵은 애가 저기 들어가 있으니 세상 온순한 초식 동물처럼 보였다.
토끼 왕자님 같은 느낌으로.
“왜 그래?”
“중현이가 괜찮을까 싶어서, 저 살벌한 사람들 속에…….”
“…….”
태현이가 조용히 다시 몸을 풀러 가는 가운데, 분위기 어떠냐고 묻는 내 질문에 중현이가 답했다.
중현 [좋아요]
중현 [제가 팀 리더 됐어요]
리더가 됐다는 말에 안심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잘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근데 왜 얘를 리더 시켰지?”
* * *
1시간 전.
DNS 미디어 사옥 연습실에 모인 이들이 통성명을 주고받았다.
“Yo, 반가워yo. 중현 씨. 나 킬러비야.”
“안녕하세yo. 선배님.”
“저희도 반가워Yo.”
Yo가 난무하는 분위기.
거대한 금목걸이를 걸친 반삭의 래퍼, Killer Bee에게 LB가 눈을 초롱초롱 떴다.
“선배님, 그거 진짜 금인가요?”
“아니. 짝퉁.”
“오.”
“진짜 금은 무거워서 못 차. 모가지 뎅강뎅강.”
오오, 스웩~ 하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 속에서 중현이 행복한 고구마처럼 웃었다.
‘힙합 분위기 좋아.’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팀을 이끌 팀장은 킬러비로 정해지고 있었다.
언더에서 시작해서 래퍼 경력도 가장 길고, 이 자리에서 나이도 제일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당사자인 래퍼가 까끌까끌한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차라리 제비 같은 걸로 뽑자. 나 책임지는 거 부담스러워.”
“저희도요!”
“너희도?”
“네.”
이열, 하며 서로를 바라보던 이들이 swag 하는 동안.
모임에서 늘상 예능인 역할을 담당하는 LB가 숟가락이 담긴 통을 들고 왔다.
“그러면 여기 끝에 밥풀 묻은 숟가락이 당첨된 사람이 팀장 하는 거예요!”
“오……!”
다들 웃으며 동의했다.
‘리혁이가 봤다면 엄청 뭐라고 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렉스와 LB, 유건을 비롯해 다 같이 숟가락을 하나씩 잡고 나만 아니어라 하는 동안 한조가 말했다.
“자, 그러면 뽑아요!”
래퍼들이 챙! 하고 숟가락을 빠르게 뽑을 때.
푸콱!
“……?”
모두가 눈을 깜빡이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푸콱?’
‘푸콱…?’
중현이 들고 있는 숟가락이 구부러져 있었다.
마치 초능력자가 구부린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세상에.’
‘저게 구부러지네.’
‘엄마.’
오, 하던 중현이 숟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조명 위치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한 줄기 서광이 중현을 든 엑스칼리버를 비추는 것만 같았다.
“…….”
밥풀이 묻은 숟가락을 들고 있는 LB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자 스보 멤버들이 그를 툭 쳤다.
LB가 경건한 얼굴로 밥풀이 묻은 숟가락을 바쳤다.
“형님, 숟가락 없으시죠.”
“어?”
“여기 있습니다.”
얼떨떨해하던 중현이 동글동글한 미소를 짓는 동안 래퍼들이 구부러진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구석기인들이 강력한 지도자를 바라보던 기분이 이랬을까.
‘대장이다.’
‘얘가 대장이네.’
그것이 바로 김중현이 스트릿 보이즈와의 래퍼 합동팀 ‘구석 키즈’의 리더가 된 사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