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2)화 (56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2화

댄싱 케인.

마술사들이 끈을 이용해서 허공에서 지팡이를 둥실, 두둥실 하고 움직이는 장치를 움직였다.

“우와아아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TNT 멤버들이 다가와서 물었다.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끈으로 막 움직이는 거야?”

“비슷해.”

가까이 다가온 동기들에게 내가 손을 움직여서 지팡이를 앞뒤로 춤추게 만들자, 와아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메인 보컬 신주영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너는 무슨 연말 무대가 아니고 연말 마술을 준비하냐.”

“제작진 분들이 신박한 거 준비해 오면 좋겠다고 하길래.”

“신박하긴 하네.”

태현이와 마침 무대 연출에 대해 회의를 하면서 ‘이건 어때?’ 하다고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내가 손에 지팡이를 착 감자, TNT 멤버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저 정도 돼야 올해의 가수 하는 거지.”

“쉽지 않다.”

“근데 넌 그거 어디서 배운 거야?”

내가 웃으며 답했다.

“독학했지. 미튜브 보고.”

“너도 참 별거 다 한다.”

“다른 것도 보여 줄까?”

짐짓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던 TNT 멤버들이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또… 뭐가 있는데?”

“동전 마술.”

“뭐, 보여 주고 싶으면 보여 줘도 되는데… 오오오오! 야! 봤어? 동전이 귀에서 나오네!”

금세 어린이들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는 7년차 대선배님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태현이를 챙겼다.

“나 연습하려고 온 거라서. 얘 좀 데려가도 되지?”

“반납 안 해도 돼. 가져가~”

TNT 멤버들이 키득거렸다.

눈을 가늘게 뜨며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내던 태현이를 챙기고는 TNT 멤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따 봅시다.”

“이따 봐.”

형 라인이 손을 흔드는 가운데, 동생 라인이 나와 태현이를 뒤따라 나왔다.

촵.

한별이와 지훈이, 한빈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우리의 등 뒤에 달라붙었다.

“너네는 왜?”

“연습 구경할래. 감독도 할 겸.”

석지훈의 말에 장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취. 대선배인 우리가 안무도 좀 봐 주고.”

“둘 다 춤 못 추잖아.”

황당한 말에 태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가한 공터가 없는지 회의장을 둘러보는 동안, 내게 어깨동무를 한 한별이에게 웃으며 물었다.

“잘 지냈어?”

“못 지낼 게 뭐가 있겠어. 잘 지냈지. 얼마 전에 미국으로 여행도 좀 다녀오고, 화보도 좀 찍고.”

“미국 어디 갔다 왔어?”

“시카고. 외할머니가 거기 계셔서 좀 쉬고 왔어.”

잘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묘하게 힘이 빠진 미소였다.

왠지 모르게 얘네랑 같이 회의장 구석으로 향하고 있는 게, 꼭 끝을 향해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공터로 움직였다.

“이쯤에서 연습할까?”

태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녀석들이 구석에 가서 카펫 바닥에 쪼그려 앉고는 품에서 간식거리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곧이어 시작된 연습이 진귀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했다.

“여러분은 지금 두 사람이 같은 레벨로 춤을 추는 역사적인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TJ 엔터 트레이너 쌤들이 이걸 봤어야 되는데.”

“캬. 둘 다 내가 키웠다.”

곳곳에서 난무하는 헛소리 덕분에 실전 같은 연습을 할 수 있었다.

06년도 당시 인기 솔로 가수였던 ‘아이번’의 곡 Very Very가 바닥에 놓인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모두가 홀린다~ 하는 가사에 맞춰 동작을 잘게 쪼갰다.

옆에선 태현이가 합을 맞추고 있다.

“이야. 선우주가 춤을 춘다.”

확실히, 상상도 못 할 일이긴 했다.

월말 평가에서 항상 춤 꼴찌와 1등이었어서 얘가 칭찬 받고 있을 때 구석에서 나머지 연습하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합동 무대를 하고 있다니.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우와아아아아!”

퍼포먼스를 감상하던 원조 졸개들이 박수를 치며 감상평을 말했다.

“제 점수는 0점입니다. 저의 심장을 영점 사격했네요.”

“정말 꼴 보기 싫을 만큼 잘했습니다.”

“형 표정이 조금 우주선 같긴 한데 잘했어.”

압도적인 호평에 미소를 짓고 있다가 마지막 한빈이의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우주선 같다는 게 무슨 말이야?”

“뭔가 내가 제일 잘 나간다~ 하는 표정인데, 형은 평소에 그런 표정 잘 안 짓잖아.”

“그치.”

“그래서 그런지 우주선이 swag 하는 느낌?”

무슨 말인지 약간 알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한 모 씨가 지훈이가 찍은 연습 영상을 확인하고는 빵 터졌다. 엄청 즐거워 보였다.

“아, 나 이럼 무대 집중 못 하는데.”

나도 핸드폰 셀카 모드를 켜고 무대에 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거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

“……안 닮았는데. 이게 우주선이라고?”

씨익 웃어 보이자 네 명이 동시에 흐하하핫 하면서 자기들끼리 붙잡고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도 웃음 장벽이 1cm 정도인데. 여기도 만만치가 않다.

잠시 고민했다.

“표정을 좀 바꿔야 되나. 무대에 지장 가면 안 되는데.”

“농담이야.”

지훈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왠지 그렇다는 거지. 나쁘지 않아. 무대에는 딱 맞네.”

“동선은 어때? 괜찮아 보여?”

“안무 나쁘지 않은데? 이거 한태 네가 짰냐?”

“어.”

“괜찮네. 노래는 못 들어 봤지만 둘 다 그 부분은 확실할 거고.”

전반적으로 호평이었다.

안무나 보컬에 있어서 굉장히 보는 눈이 까다로운 녀석들인 만큼, 시청자들 반응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몇 번 정도 가볍게 합을 맞추고 다시 댄싱 케인 연습을 할 때.

“그거 묘하게 무대랑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웬 마술이야? 이러고 신기했는데.”

“인정.”

한빈이의 말에 지훈이가 대꾸했다.

“근데 오늘 전반적으로 특이하긴 하더라. 무대 컨셉도 그렇고, 큐시트 보니까 구성도 좀 독특하던데.”

“오늘 연출이 그 사람이라서 그런 거 아냐?”

“누구?”

TNT 멤버들이 그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받을 때였다.

댄싱 케인을 연습하고 있던 내 앞으로 누군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무전기를 들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작가님 한 분.

“어?”

내게서 나온 소리에 그쪽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 우주 씨!”

“안녕하세요!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뒤에 앉아 있던 멤버들이 일어나 어색하게 인사하고는 내게 눈짓했다. 누구냐는 듯한 분위기였다.

“미스터 프로듀서 메인 작가님이셔.”

“아.”

TNT 멤버들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반갑다는 얼굴로 웃는 작가님에게 내가 근황을 물으려고 할 때.

“……?”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곳은 일산 킨텍스 전시장.

여의도에 있는 PBS 방송국에서 이분을 마주쳤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여긴 지금 여의도도 아니고. 연말 무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연장이었다.

“큐시트 상으로는 에이텐 분들 공연 없던데. 오늘 미프 촬영이라도 있나 봐요.”

“응?”

“아, 여기 계시길래…….”

살짝 말끝을 흐리자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 씨는 그거 몰랐어? 오늘 우리가 가요제전 담당인데.”

“아.”

“어우, 내 정신 좀 봐. 이거 전해 주고 와야 되는데. 이따 또 봐!”

작가님에게 웃으며 꾸벅 인사하고는 곧바로 근처 벽에 붙어 있는 큐시트를 향해 다가갔다.

‘PBS 가요제전’이라는 글귀 옆에 작은 글씨로 ‘연출: 신무록’이라고 미프의 PD 이름이 있었다.

곧이어 인터넷을 검색하자 기사가 촤르륵 떠 있다.

-‘시청률 부진’ PBS 가요제전, 신무록 PD 연출.. ‘부활하나?’

노잼이다, 너무 진지하다, 하는 평이 많았던 PBS 가요제전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예능 피디를 투입했다는 모양이었다.

꽤 많아 보이는 기사 숫자를 보면서 몸을 돌렸다.

“너네 이거 알고 있었어?”

“응.”

“나 왜 몰랐지?”

나의 7년 차 선배들이 웃으며 물었다.

“요새 몇 시간 잤어?”

“잠깐만.”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는 답했다.

“일곱 시간쯤 되려나.”

“일주일 동안?”

“응.”

“바깥 돌아가는 소식은 좀 알아?”

“…….”

별로 아는 게 없다.

연말 시즌의 빡빡함을 잘 알고 있는 선배 가수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동안 즐거웠어.”

“야.”

눈을 흘기자 넷이 배를 붙잡고 웃어 댔다.

그러고는 다시금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기사를 바라보았다.

“…….”

예능 피디가 연말 무대를 연출하는 건 처음 본다.

‘우주 씨.’

‘네.’

‘시청자들은 예상치 못한 걸 좋아해요.’

시무룩한 얼굴로 웃는 신무록 피디님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가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   *

“그래여?”

막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신무록 피디님이 가요제전 무대 연출한대여?”

“응.”

“어쩐지 이번에 막 VCR 많이 찍는다 했어여. 어? 뭐지? 싶었던 게 되게 많았는데.”

내가 전해 준 소식에 동생들도 신기해하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너네 몰랐어?”

매니저 형들은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가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일본 다녀와서 하루 종일 연습만 했거든요. 시간 부족해서.”

“하긴….”

1월에 발매 예정인 스페셜 앨범의 후반부 작업도 겹쳐서 이래저래 할 일이 한가득이었다.

괜스레 뺨을 긁적이는 나에게 비주가 사과를 콕 찍은 포크를 건넸다.

“사과가 노화에 좋대요. 형.”

“딱히 노화에 대한 생각은 안 하고 있었는데…….”

“…….”

모른 척하며 시선을 돌리는 비주의 모습에 슬픈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이제 며칠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실감이 난다.

“더 어려지고 싶다.”

“이미 어려 보여요. 동안인데 뭘 그래.”

“그치?”

반짝 웃는 나에게 리혁이도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미 동안이라는 말이 나오는 지점에서 어리지 않은 거죠.”

“…….”

막내와 리혁이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깔깔댔다.

연장자답게 여유로이 넘겼다.

“형, 핸드폰 울려요.”

“아니. 부들대는 거야.”

“단 거 먹을래요?”

중현이가 건네주는 과자를 받아 먹고는 메모를 적은 핸드폰을 살폈다.

아까 리허설 무대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취합한 거였다. 연습실과 무대의 공간 차이 때문에 벌어진 보완사항들.

“모여보자.”

낙화와 Empire, 불꽃놀이 무대를 하면서 보완할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지금 생각보다 무대가 큰 거 알지? 예상한 공간보다 넓이가 1.5배 정도 넓은데 음악 타이밍은 그대로야. 그럼 돌출까지 시간 맞추려면 원래보다 1.5배는 빨리 움직여야 돼.”

“네.”

“공연장 구조상 에코도 좀 있고. 그거 감안해서 노래 불러야 돼. 그리고.”

리혁이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아까 불꽃 터질 때 움찔하고 놀라던데. 신경 쓰이면 비주 뒤쪽으로 동선을 살짝 옮길래? 안 보이게.”

“괜찮아요. 타이밍 잡았으니까.”

“그래. 나머지는 아까 정리했고. 또 의견 있다 하는 사람?”

비주가 손을 들었다.

“다들 불꽃놀이 들어갈 때 힘이 좀 빠져 있는 거 알죠? 낙화랑 엠파이어 끝나고 살짝 흐느적대는 느낌 있었어요.”

“네…….”

“체력 때문에 힘 빠지는 거 이해할 수 있는데, 오프닝 안무 들어갈 때 힘 있게 춰야 돼요. 알았죠?”

비주가 불꽃놀이 도입부의 손동작을 리듬 있게 딱딱 끊어서 보여 주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 퍼포먼스 담당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것만 지켜 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이따 본 무대 하기 전에 한 차례 점검하긴 할 테지만, 이런 식으로 미리 숙지해 놔야 이미지 트레이닝하기 좋다.

무대 구조를 떠올리면서 머릿속으로 동선과 순서를 떠올릴 때.

“가수분들!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대기실 사이사이로 FD가 뛰어다니며 이제 나올 준비를 해 달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어워드처럼 무대 위에 별도 가수석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매니저 형들에게 다녀온다고 말을 하고 복도로 나서자, 여기저기서 나온 가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안녕하십니까! 트릭스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스칼렛, 세레니티, 블링크, NYX, 스트릿 보이즈, 에노티, 틴스피릿 등등.

여기저기 보이는 얼굴들과 인사하며 백스테이지로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아-!”

아련하게 울리는 환호성 등을 듣고 있을 때.

ㄱㄴㄷ로 이어지는 입장 순서에서 우리가 고구마 트리오 다음으로 서자, 인터컴을 낀 스탭이 수신호를 보내겠다고 말해 왔다.

우리를 보고 오 하는 고구마 트리오 멤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까 인사하러 갔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아이고, 그랬어요.”

“선배님들 ‘그대 참 못생겼어요’ 잘 듣고 있습니다.”

고구마 선배들이 흐뭇하게 웃고, 중현이가 저도 고구마입니다 하고 속삭일 때.

백스테이지에서 스탭들이 보고 있는 스크린으로 PBS 가요제전이 시작된 게 보였다.

그리고.

“음……?”

처음으로 나온 VCR에 모든 가수들이 눈을 깜빡였다.

*   *   *

같은 시각.

소파에 앉아 HBS 연예 대상이 나오는 TV를 보고 있던 틴스피릿의 학생 팬이 눈치를 슥 살폈다.

‘이제 곧 시작인데.’

심드렁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는 아빠가 리모컨을 쥐고 있는데, 별로 비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 잠깐 PBS 틀면 안 돼?”

“PBS?”

“가요제전 하는데.”

“그거 재미도 없던데. 모르는 애들만 잔뜩 나오고.”

틴스피릿의 어린 팬이 줄줄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고 말했다.

“뉴블랙, 그런 애들 나와.”

“그래?”

“그리고 틴스피릿도 있어.”

“누구?”

심드렁한 얼굴에 잠깐 호기심이 일었다가 다시금 뚱해진다. 별로 관심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

리모컨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그제야 손이 꾸물꾸물 움직여 7번으로 향했다.

PBS2 채널이라는 말과 함께 마침맞게 딴딴딴딴~ 하면서 ‘15세 이상 여기여기 붙어라’ 하고 있었다.

‘시작한다. 시작한다!’

온라인상으로 다른 팬들도 두구두구 하는 게 보였다.

-시작한다

-ㄷㄱㄷㄱ

-제발 발캠만 아니게 해 주세요

어두워졌던 화면이 밝아지면서 동화 같은 VCR이 나타났다.

“음……?”

부녀가 동시에 같은 소리를 냈다.

아담한 동화 같은 BGM과 함께 동화책 풍으로 그려진 왕성이 나타났다. 그 위에 걸린 깃발에 [ㅍㅂㅅ 왕국]이라고 적혀 있다.

성우의 단아한 내레이션이 들렸다.

[옛날 옛적에, 평화로운 음악 왕국이 있었습니다~]

미스터 프로듀서의 멤버들이 찬조 출연을 한 모양이었다. 음표 머리탈을 쓴 예능인들이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고 있다.

평화로운 음악 왕국을 보여 주는 것도 잠시.

우르르르릉-!

천둥번개가 쳤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가 닥쳤습니다.]

텔레토비의 햇님처럼 중현의 얼굴이 들어간 태양이 후우우우~ 하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 대고.

스트릿 보이즈의 LB가 구름 속에서 하하하하! 하면서 비를 내렸다.

틴스피릿의 연후가 우박을 맞으며 ‘히이잉 너무해!’ 하는 장면에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어?’

연후의 귀여운 발연기는 그렇다 치고.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옆에 있는 아빠가 흥미진진해하는 얼굴로 눈을 뜨는 가운데, 온라인에서도 벙 찐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이게 가요제전..??

-PBS 사장님, 신무록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야

-나 지금 연예대상 보는 중인데 왜 그래?? 뉴블랙 나와??

-뭔가 연예대상보다 더 재밌을 거 같은삘

-무록이의 배후에 뉴블이 있는 게 분명하다ㅋㅋㅋㅋ

-뭐야 나 지금 당황스러워;

최애들이 뀨우우~ 하고 나오는 장면들에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이게 뭔가 싶어서 당혹스러울 때.

쿠구구구궁!

저주에 휩싸인 왕국의 성 뒤편으로 먹구름과 번개가 일렁였다.

[전하~!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이더냐?]

[우, 우물이 메말랐습니다!]

미프 멤버들이 왕성에 있는 우물을 향해 다가가자, ‘시청률의 우물’이라고 적힌 팻말이 서 있었다.

[시청률의 우물이 메말라 버렸습니다!]

[또!]

대놓고 시청률이 낮다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매년 수위를 낮춰 가던 시청률의 우물이 이제는 거의 메말라 가는 수준이라는 위기였다.

이에 왕국 사람들은 단군 신화의 환웅을 부르듯이 하늘에 대고 기우제를 지내며 구원을 요청한다.

그리고.

[아니!]

하늘에서 시청률을 구원하기 위해 가수들이 우수수수 떨어지기 시작하는 연출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뭔데 이거

-옛날에 그 사극에서 사람들 우르르르 떨어지는 cg랑 비슷함

-아 재밌다

-오늘 레전드 짤 많이 나올거같음

그와 함께 화면에 자막이 떠올랐다.

[2016 PBS 가요제전]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CG 처리를 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가수들을 비췄다.

[고구마 트리오!]

병맛 노래로 유명한 고구마 트리오가 착륙하는 장면이 나오더니, 바로 뒤로 뉴블랙이 나타났다.

네 명이서 무언가를 들고 둠칫둠칫 걸어 나오는 멤버들.

가마처럼 짊어지고 나오던 이들이 내려 주자, 하늘에서 내려오듯 우주가 우아하게 웃으며 착지했다.

[뉴블랙!]

손을 흔들며 곧바로 무대 중앙에 모이는 멤버들.

그걸 벤치마킹했는지 뒤따라 가수들도 착지하거나 ‘어머’ 하며 피터팬처럼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가수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

아빠가 물었다.

“연말에 아이돌들 나오는 게 다 이러냐?”

“아니. 나도 처음 봐…….”

정말이지 난생처음 보는 연말 무대 오프닝.

그걸 시작으로 PBS 가요제전의 시청률이 쭉쭉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현장 컨트롤룸에서도 훈훈한 웃음이 감돌았다.

“시작 좋은데요.”

“좋아, 좋아.”

신무록 피디가 TV 속 뉴블랙을 보며 애틋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

올해 뉴블랙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은 신무록 피디였다.

물론.

당사자들이 듣는다면 기겁했을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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