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6화
수플레들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뉴블랙 TV에 접속했다.
‘스페셜 앨범 떡밥이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스페셜 앨범 떡밥이었다.
올해 초에 나왔던 ‘겨울잠’처럼 또다시 겨울 노래를 내는 거 아니냐 하는 예측도 있고.
다음 스페셜 앨범명을 두고 이런저런 추측이 오갈 만큼 팬들의 최고 관심사였다.
“뉴블랙 새 앨범 예고 떴대요!”
수플레들뿐 아니라 연예계 기획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제발, 우리랑 시기 겹치지 말아라. 제발…….”
“이번에 장르 안 겹쳤으면 좋겠는데.”
“나는 얘네가 무슨 장르 새로 한다고 하면 겁이 나더라. 사장님이 똑같은 거 만들어 오라고 하니까.”
음반을 낼 때마다 음원차트를 요동치게 만드는 뉴블랙이었다.
어지간한 가수가 아니라면 같은 시기에 앨범을 냈다가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할까.
가요 기획사들이 최근에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뉴블랙과 발매 시기가 겹치지 않는 것이었다.
‘얘네는 누가 와도 못 이겨.’
음원 부문에 있어서는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는 뉴블랙이었다.
그랬기에 최대한 비슷한 시기를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혹은 후발주자로 비슷한 곡을 만들어 따라 하거나.
‘이번에는 또 뭘 하는 거지?’
각 기획사 A&R팀과 작곡가들이 뉴블랙 TV에 접속했다.
‘~기이(奇異)~’ 라는 독특한 제목의 영상을 클릭하자, 곧바로 어두운 하늘 위로 환한 달이 흘러나왔다.
“초가집?”
흉가에 가까울 만큼 방치된 초가집이 배경으로 나왔다.
우물에는 부서진 두레박이 놓여 있고, 부엌에는 집기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고, 아궁이도 텅 비어 있다.
찢어진 창호지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고.
누가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초가집이 달 아래로 고즈넉하게 비춰질 때였다.
-으으음.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듯, 등에 짐을 멘 선비가 초가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보오. 계시오? 내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데…….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싸늘한 바람을 느끼던 선비가 조심스럽게 창호지 문을 열고 안을 살피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다.
-분명히 불빛을 보았는데. 내 헛것을 보았나.
낯선 흉가에 머무는 것이 고민되는 표정을 지을 때, 멀리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어쩔 수 없이 방에 들어가 짐을 푼 선비가 얼마 안 가 잠에 빠져들었다.
바로 그때.
-꺄르르르륵. 꺄르르.
어린아이들이 키득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초가집 바깥 풍경이 풀샷으로 잡혔다.
푸른빛의 도깨비불이 바람을 타고 하나둘 날아온다.
도깨비불이 우물을 지나가자 두레박이 원 상태로 고쳐지고, 부엌을 지나가자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며 맛난 요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활기를 되찾아 가는 집 속에서…….
-김 서방이 왔다.
-김 서방이 왔어?
-어디?
-여기.
-누구?
-김 서방이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들이 속삭이면서 화들짝 놀란 선비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을 지을 때.
후우.
누군가 입바람으로 선비가 피워 낸 호롱불을 꺼뜨린다.
-누, 누구시오!
바로 그 순간.
덜덜 떠는 이의 뒤편에서 불이 슬쩍 밝아 오르면서 다섯 명의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졌다.
-글쎄.
나긋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누구일까?
바로 화면이 암전되고, 어두운 화면 위로 어딘가 장난스럽고 짓궂은 멜로디가 짧게 울려 퍼졌다.
「도깨비」
Coming Soon 하는 자막이 두둥 하고.
곧이어 자동재생으로 도깨비 뿔 고깔을 쓴 김중현이 디제잉을 하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아니…….”
여러 장소에서 보고 있던 작곡가들, 각 회사의 A&R팀이나 홍보팀 등이 똑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노래인데?”
몰입감 넘치는 영상이 끝나고 멜로디가 하나 흘러나왔지만 도무지 노래의 장르가 짐작 가지 않았다.
컨셉도 마찬가지였다.
‘타이틀곡 이름이 도깨비…?’
청량한 소년 컨셉이라든가, 사이버 펑크 컨셉이나 레트로 컨셉 등등. 영상만 봐서는 도무지 예측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건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우리 무슨 장르야??
-ㅋㅋㅋㅋㅋㅋ멜로디 들었는데 하나도 짐작 안감
-사실 이런 건 까 봐야 알아. 원래 티저만 듣고서는 예측 하나도 안됨
-근데 뭔가 좋을 거 같아.. 인트로? 같은 멜로디만 들었는데 벌써부터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도깨비면 국악풍인가? 낙화가 그나마 유사하지 않을까 싶은데
-근데 왜 제목이 도깨비인걸까
-실루엣만으로도 눈이 호강한다 진짜ㅋㅋㅋ 본업이 최고시다
-마지막에 우주 목소리 맞지? 그거 계속 반복해서 듣는중
나지막하게 ‘글쎄, 누구일까?’ 하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위압적인 목소리를 반복 재생하는 수플레들이었다.
그러곤 댓글창을 살폈다.
‘외국 애들은 혼란스러운가 보네.’
별다른 해설 없이 선비가 나오고 마지막에는 붓글씨로 ‘도깨비’ 하고 끝나다 보니 뭔지 모르는 듯했다.
-본토의 수플레들이여. 우리 외플레들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도깨비라고 한국의 신령스러운 존재가 있는데, 인간을 대상으로 장난치기 좋아하고 그런 존재야
저 갓을 쓴 사람은 누구인데 밤에 혼자 돌아다니냐. 저 사람이 본다는 Past 시험은 SAT 같은 거냐. 김 씨라서 김 서방이라 부르는 거냐.
그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수플레들이었다.
‘애들이 모를 수도 있지.’
동시에 은근히 흐뭇하기도 했다.
이번에 미국과 일본 등 해외 활동에서 반응이 좋기도 했고. 심지어 Blue Moon은 빌보드 1위를 했다.
그 때문에 은근한 불안했던 팬들이었다.
‘갑자기 미국 진출하는 건 아니겠지?’
해외 시장 진출하겠다며 타깃을 해외 팬으로 바꾸거나 하면 조금 서운할 것 같았는데.
그 걱정이 기우라도 된다는 듯 ‘도깨비’라는 신규 타이틀이 기다리고 있었다.
‘좋다…….’
흐뭇한 얼굴로 댓글창을 둘러보고 있을 때.
좋아요가 마구 달리고 있는 댓글 하나가 보였다.
-또 일본 문화 훔쳐 갔네. 한국의 도깨비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오니에게서 유래된 거 아닌가?
수플레들의 뒷목이 뻣뻣해졌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심지어 일본인도 아니고 캐나다인이다.
‘이 새끼가.’
댓글 몽둥이를 든 수플레들이 와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수플레 왕국의 하루였다.
* * *
예고편 반응이 제법 좋다.
-뉴블랙, 신규 앨범 ‘도깨비’.. 예고편 100만 뷰 돌파
-뉴블랙 ‘도깨비’ 티저 공개에 호기심 폭발.. ‘대체 어떤 곡?’
-뉴블랙, 1월 중순 스페셜 앨범 공개 “음원 강자의 귀환”
순식간에 100만 뷰를 돌파한 것부터 시작해서 다 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댓글이 달렸다.
이번에 Blue Moon으로 해외 팬 유입이 더 있었던 건지 영어 댓글도 엄청 많고.
전체적으로 조회수 상승 폭이 또 달라졌다.
“다른 뮤비도 곧 1억 뷰 찍겠는데요?”
“진짜?”
얼마 전에 낙화도 Nine에 이어서 1억 뷰를 찍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른 뮤비 조회수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장사 잘 되네.”
“가게가 활활 불타는 느낌이에여…요.”
“요?”
“YO~”
요즘에 말투 고쳐 간다고 애를 쓰는 막내를 다 같이 놀려 주고는 대기실을 나섰다.
12월 31일.
오늘은 2016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복도는 따스하고 훈훈했다.
“후우…….”
제자리에 멈춰 서서 히터 바람을 음미했다.
“다들 느껴지니? 이 공기? 이 습도…….”
“완벽해요. 정말.”
비주가 눈가를 콕콕 찍으며 말했다.
“저 감격해서 눈물 났나 봐요. 형.”
“곧 댄서 분들이랑 춤춰서 그런 거 아니니?”
“악어의 눈물이에요. 저 형.”
나와 리혁이의 말에 비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곧바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화제를 원상복귀 시켰다.
“좋구나…….”
전면 유리로 된 복도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음미했다.
식물들처럼 광합성을 하는 우리 모습에 지나가던 방송국 스탭들이 웃었다.
웃겨 보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리허설 장소로 이동하면서 말했다.
“첫 실내 무대라니.”
“우리 진짜 성공했나 봐요.”
오늘은 12월 31일이자 TBC에서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TBC 연말가요제’를 방송하는 날이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첫 실내 무대이기도 했다.
14년과 15년 연속으로 상암동 야외무대에서 달달달 떨었던 과거는 이제 안녕이었다.
LB [작년에 우리 실내 됐다고 자랑해서 미안해]
LB [선넘었네 우리]
핸드폰이 쉴 새 없이 반짝였다.
한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조 [ㅋ치는 것도 힘드네]
렉스 [이게 사람 무대 할 수있는 날씨냐]
기원 [엄마 보고 싶다]
남극의 펭귄들처럼 롱패딩을 입은 스트릿 보이즈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인증 사진을 보냈다.
영동대로 특설 무대라나.
작년에는 자기네가 실내 무대라고 자랑하더니 몹시 쌤통이었다.
우리가 스웨터를 벗어 반팔 입은 사진을 찍어 보내자 부들부들하는 반응들이 돌아왔다.
흐캬캭 웃으며 데뷔 동기들을 실컷 놀렸다.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돼.”
“우리처럼~”
착하게 살아서 이렇게 복이 굴러들어 오는 게 아닐까.
곧이어 일산 TBC 방송국의 공개홀 입구가 다가오면서 우리는 벽에 붙은 큐시트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엔딩 합동 무대 위에 붙어 있는 세 글자.
[29] 뉴블랙 - 낙화, Empire, 불꽃놀이
PBS 가요제전과 마찬가지로 TBC 연말가요제의 엔딩 역시 우리의 몫이었다.
* * *
밤 8시 55분.
TJ 엔터의 신인 보이그룹 트릭스터가 오프닝 무대를 하면서 TBC 연말가요제의 막이 올랐다.
“행님.”
가수석 옆자리에 앉은 연후가 내게 속삭였다.
“90년대랑 00년대 커버 파티는 대체 언제 끝날까요.”
“우리 시대에는 안 끝날 것 같은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90년대와 00년대 커버 특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3년 정도 지켜보다 보니 흐름이 보인다.
‘음악은 기억입니다. 그러니까 90년대 추억 노래 콜?’, ‘음악으로 우리 하나 되죠. 우리 00년대 노래로 하나 되기?’ 같은 식으로 매년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복고풍 의상을 입은 걸스온탑이 05년도의 Hot Girl을 불렀다.
이어서 나온 원더 차일드가 검은 수트를 입고 내가 제일 섹시해 같은 커버곡을 부르며 몸을 꿀렁꿀렁했다.
“저 노래를 다시 들을 줄이야.”
중학생 때부터 월말 평가 시험곡이었던 것들이라 다 안무가 익숙하다.
박수를 치거나 안무를 따라 하며 웃었다.
예전 노래라고 하긴 했지만 막상 나오니까 좋다. 가수석에서 둠칫둠칫하는 90년대 초반생들과 미소를 교환했다.
“근데 듣다 보니까 이번에 우리 노래랑 좀 비슷한 거 같아요.”
막내가 나한테 속삭였다.
“이거 도깨비랑 비슷한 거 같은데.”
“조금 그런 느낌이 있지.”
일부러 의도한 바기도 했다.
이번 도깨비 타이틀은 요즘 사운드로 노래를 만들긴 했지만 복고적인 느낌도 들어 있으니까.
예전에 사람들이 따라 부르던 후크송들처럼.
-곧 레트로의 시대가 올 거야.
헤일리와 Blue Moon을 쓰면서 의견이 일치한 것이기도 했다. 그게 이번에 도깨비를 쓰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그런 생각을 하며 무대를 감상하는 동안.
“형, 지금 김비주 나와요.”
트로트 가수 백상교 선생님의 무대가 끝나고,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VC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즐거운 연습 시간이에요~!
올해 좋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댄스 경연 프로그램 의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비주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반짝이고 있다.
-다 같이 합동 무대라니… 저 너무 설레요!
보통이면 예의상으로 하는 멘트일 텐데. 우리 애의 얼굴에는 진심 가득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곧이어 무대 컨셉을 정하고 연습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반짝반짝.
다들 초췌해져 가는 가운데 홀로 빛을 내는 이가 돋보였다.
처음에는 CG인 줄 알았다.
“많이 행복했구나. 비주야.”
“네. 맞아요.”
“그래. 행복했으면 됐어.”
어차피 갈리는 건 우리가 아니니까.
연습 영상에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사람들을 향해 안쓰러운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무대는 사전녹화로 한 건가?”
“네. 어제 새벽에 찍었어요.”
아무래도 여러 그룹에서 인원을 차출해야 하는 무대다 보니 사전 녹화로 미리 진행한 듯했다.
녹화 무대가 스크린으로 흘러나온다.
골목길로 보이는 세트에서 징이 박힌 재킷과 부츠를 걸친 비주가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오.”
불량스러운 표정이 몹시 자연스럽다.
“저건 또 어떻게 배웠대.”
“틴스피릿이 가르쳐 줬어요.”
“잘 가르쳐 줬네…….”
스트릿 패션을 걸치고 어깨를 불량하게 털면서 움직이는 비주를 카메라가 쭈욱 따라가고.
골목 한복판에서는 양측으로 나뉜 댄서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곧이어 유혈사태가 펼쳐질 것 같은 긴박한 위기감이 감도는 가운데.
누군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양측 모두가 댄스 배틀을 펼치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
댄서들이 어디서 모티브를 얻었는지 알 것 같다.
세계 최고의 팝스타가 찍었던 뮤직 비디오에서 춤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실제 대립하는 두 갱단을 데리고 그 앞에서 춤을 추며 찍었다는 일화까지 있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때 막내가 말했다.
“저는 이거 그거 같은데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나오는 장면.”
“그래?”
“거기서 저런 식으로 싸워요.”
어떤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비주에게 어떤 게 맞냐고 묻자 상냥한 미소가 돌아왔다.
둘 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비주가 눈짓했다.
옆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 춤을 바라보고 있는 여섯 명의 뒤로 스벌… 스벌… 하는 그림자가 일렁였다.
“아하.”
OK 하며 웃고는 무대를 마저 감상했다.
에이플비의 리더 하루가 브레이크 댄스 동작을 마치고 들어가고, 비주가 나와서 프리스타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헐렁한 옷차림 사이로 얄쌍한 팔다리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더니, 마지막에 허리를 튕기고 몸을 일으키면서 손을 쭉 뻗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수플레들의 우렁찬 응원 속에서 우리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곧바로 펼쳐지는 화면 속 군무가 너무 좋았다.
‘우리만 아니면 되는 거야.’
‘바로 그거예여.’
‘고생한 댄서 분들, 저희가 Joy를 보냅니다.’
뼈가 맷돌처럼 갈리는 듯한 멋진 군무.
그 속에 담긴 메인 댄서들의 땀과 눈물을 감상하며 동생들과 감동의 박수를 쳤다.
* * *
어느덧 11시 55분.
2017년 1월 1일까지 5분을 남겨 두고 모든 출연진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후배님, 여기 서시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TNT, 틴스피릿, 세레니티와 함께 맨 앞줄에 서서 관객석에 앉아 있는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호가 ‘5분 남았어요!’ 하듯 손가락 5개를 펼쳐 들었다.
다 같이 보고 있는 스크린에는 상암 스튜디오와 영동대로 현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는 영동대로입니다! 하하하하!
다들 오들오들 떨고 있다.
스트릿 보이즈가 펭귄 불량배들처럼 이를 닥닥닥닥닥 하고 있다. 화면 속 모든 가수가 입김을 뿜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네! 올 한 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우리 스트릿 보이즈! 새해 포부와 함께 정유년 3행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일단 우리 코… 코코콘크리트 사랑하고요. (어우 추워! 엇츠츠츠!) 저희 스트릿 보이즈가 정말 스트릿에서 무대를 하게 됐네요.
추위에 넋이 나갔는지 혼이 나간 얼굴로 횡설수설하던 한조와 멤버들이 정유년 3행시에 돌입했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준비한 이벤트인 듯했다.
“우리도 뭐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냥 나오는 대로 하자.”
옆에 선 틴스피릿이 자기들끼리 ‘정신 차려… 유치원생이야?’ 하는 말을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곳 일산 현장에서 세레니티에게 마이크가 가더니, 곧이어 틴스피릿에게로 정유년 3행시가 넘어갔다.
“정말 사랑해요!”
“유 알 마이 프레셔스!”
“년말년시 행복하세요! 소울~!”
삼행시의 정석을 보여 준 틴스피릿이 상큼하게 웃자, 곧바로 우리에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국민 아이돌이잖아요. 우리 뉴블랙의 새해 덕담! 한마디 들어 볼까요?
MC가 덕담을 부탁했다.
“네, 2016년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 정유년에는 모쪼록 행복 가득한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3행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준비할 시간도 없고 해서 떠오르는 대로 하기로 했다.
음, 하고 고민하던 지호가 환히 웃으며 운을 뗐다.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도입부에 끄덕이고 있을 때 중현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유죄라니요.”
객석과 무대에서 동시에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분위기 예능에 MC가 껄껄 웃고, 주변에 있는 가수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막 질러놓고 화기애애하게 웃는 지호와 중현이를 바라보고는 마이크를 쥐었다.
“연…….”
잠시 막막해하는 내 얼굴에 다들 웃기 시작했다.
연으로 뭘 해야 되지.
고민하다가 옆집 미소년들의 발랄한 미소를 벤치마킹하며 웃었다.
“연초부터 수플레들의 마음을 훔친 게 죄인가요~?”
윙크를 하며 미소를 짓자 수플레들이 천둥 같은 환호성으로 반겨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넘어갔다.
후끈거리는 뺨에 손을 올리자 한 모 씨가 배를 잡고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이어서 TNT에게 마이크가 넘어가는 가운데, 중현이와 지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희는 이따 두고 보자.”
“저희는 형을 믿고 있었어요.”
“저도요.”
근데 지호는 언제 나보다 더 커졌지.
어깨에 팔을 두르는데 높이 감각이 조금 달라서 낯선 느낌을 받을 때, 비주도 까치발을 쏙 하고 몸을 들어 올려 끼었다.
리혁이도 게걸음으로 슥슥슥 걸어와 펭귄 무리에 들어왔다.
-네!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10! 9……!
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할머니 건강, 우리 건강, 대표님 머리, 성공… 하나씩 빠르게 되뇌고는 눈을 떴다.
화면 속 제야의 종이 두우우웅 하고 둔중한 음이 울려 퍼졌다.
-네! 2017년 정유년이 밝았습니다!
파아앙 하고 떨어지는 금박 속에서 새해 첫날을 맞이한 나와 동생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아낀다.”
“저도요.”
부디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