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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7)화 (56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67화

52장. 도깨비

허공에서 떨어지는 금박을 보며 웃고는 다른 가수들에게도 새해 인사를 건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많이 받아요!”

틴스피릿과 TNT 멤버들과도 가볍게 포옹하고. 벅찬 표정을 짓고 있는 원더 차일드와도 인사를 나눴다.

분명히 1분 차이일 뿐인데.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설렘 가득한 기분이 무대와 객석을 휘감고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수플레들에게도 손을 흔들며 웃었다.

“새해라니.”

“이제 우리 4년차 아이돌이에요~”

막내의 말에 우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름 신인 연차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3년차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아이에서 어른이 된 것 같아 좋았다.

한편 새해 기분은 금세 잦아들었다.

“이제 막 새해가 돼서 그런가. 아직 실감이 잘 안 나네.”

리혁이가 웃었다.

“걱정 마요, 아저씨. 내일 다 같이 새해맞이 대청소 하면 실감이 확 날 테니까.”

“…….”

“이번에는 갑자기 곡을 쓴다, 영감이 떠올랐다 하는 식으로 열외 없어요. 알죠?”

누가 얘 좀 데려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장소원 선배와의 콜라보 무대 때문에 리혁이가 불려 갔다.

“선배님이 영원히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

“그럼 장소원 선배님은 무슨 죄예요. 형.”

중현이의 말에 짧게 웃다가 퍼뜩 정신을 되찾았다.

죄라는 키워드에 떠오른 게 있었다.

방금 전의 3행시에서 유죄라니요, 라는 멘트로 날 당혹시킨 주범.

“야.”

“……괜히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 줄 알아? 갑자기 유죄? 하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데.”

비주와 지호가 키득거렸다.

“하여튼…….”

“새해잖아요. 형. 저의 미소를 보고 기분 풀어요.”

바보처럼 푸근하게 웃는 중현이의 모습에 뭐라고 더 말도 못하고 그만 웃어 버렸다.

다들 위기 모면하는 요령만 엄청 늘었다.

그때 비주가 우리를 톡톡 치며 턱짓했다.

“리혁이 무대 시작해요.”

샤방샤방한 BGM 속에서 나온 장소원 선배와 리혁이가 듀엣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로큰롤 곡이었다.

시원하게 고음을 내지르는 두 보컬의 모습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우와…….”

매번 느끼는 바지만 우리 메인 보컬은 못 부르는 노래가 없다.

“사랑해요! 서리혁!”

“으휴빛깔! 서리혁!”

서늘한 조명 아래서 표정을 착 깔고 있던 리혁이가 우리의 환호에 뺨을 살짝 씰룩이며 웃었다.

음역대가 내 마음처럼 넓은 메인 보컬이 저음으로 후반부를 부르면서 환호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뚫고 나오는 성량과 함성이 공개홀 천장을 뚫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

“진짜 잘해요. 리혁이 형.”

막내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나였으면 목에서 피 났을 거 같은데. 저 형은 저렇게 불러도 엄청 멀쩡하다니까요.”

남들은 고통스럽게 불렀을 노래를 가볍게 부른 리혁이가 사뿐한 걸음으로 가수석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장소원 선배의 솔로 무대가 이어졌다.

머리를 슥슥 털며 자리에 앉는 리혁이에게 막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요. 형.”

“…….”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눈매를 좁히던 리혁이가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얘 언제부터 요 하기 시작한 거예요?”

“……!”

그제야 우리도 계속해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중현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너 이제 요야?”

“요예요.”

“진짜 계속 요?”

“요.”

“요…….”

우리가 침울한 표정으로 있자, 막내가 형들의 등을 토닥여 주며 속삭였다.

“여.”

“여!”

다시금 반색하면서 환히 웃자. 방금이 마지막이었다는 듯 막내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요.”

“요…….”

비주가 눈치를 슬쩍 살폈다.

“여~?”

“요.”

“요…….”

확실한 의사 표시에 우리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려고 애 썼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다 키운 자식이 집을 떠나는 기분이 이런 걸까.

“그럼 우리가 여를 쓸까여?”

“그래여.”

“형들은 막내의 그 말투가 그리워여.”

여~ 하며 웃는 우리 모습에 막내가 진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새해 첫날부터 열심히 살려고 그랬는…….”

“데여?”

“데요! 요! 요!”

요! 요! 하면서 우리 등을 찰싹 찰싹 때리는 지호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TBC 연말가요제의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TNT의 무대가 끝나고 엔딩에 섰는데, 새해가 되고 나면 바로 퇴근했던 과거와 달리 늦게까지 방송국에 남아 있으니 기분이 희한했다.

그렇게 맞이한 2017년 새해.

“아이고오…….”

다 같이 하루 정도를 거의 꼬박 앓아누웠다.

거의 기절하듯이 자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면서 모자란 잠을 채웠다.

일본 투어 이후로 하루에 1~2시간 자며 연말 무대를 준비했기에 팔팔하던 체력도 동이 났기 때문이었다.

중현이도 피곤한 얼굴로 잠을 청할 정도였으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째 자면 잘수록 피곤한 것 같네요.”

리혁이가 참새처럼 작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왜 잤는데 피로가 안 풀리지.”

“저두요.”

“얘가 요를 써서 그런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막내가 의자 밑으로 몸을 미끄러뜨리더니 발끝으로 리혁이의 다리를 공격했다.

현란하게 발끝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막내들을 보며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오늘 회의할 안건들을 하나씩 체크하면서 초코 드링크를 마시고 있을 때.

달칵.

회의실 문이 열리고 우리 TF 팀원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새해 첫날 잘 보내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너도 많이 받아~”

홍서영 과장님, A&R팀장님, 나상윤 PD님 등등. 우리 팀원들이 다들 반가운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상석에 앉은 내 옆으로 석환 형이 다가와 앉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냐?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갑자기 오래 자서 그런가 봐. 걱정하지 마. 며칠 지나면 금세 좋아져.”

“맞아요.”

막내가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었다.

“원래 새해 지나면 좀 그러잖아요. 우리.”

“?”

TF팀 직원들이 잘못 들었나 하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서로를 바라보던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요?”

“방금 요……?”

“요라고 했어?”

막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저 왕지호는 이제 성인이 된 기념으로 말투 끝을 고치기로 결정했…….”

“여?”

“했어요. 요. 요.”

강조하듯이 눈을 부릅뜨고 요, 요 하자, 직원들이 요… 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써도 되는데.”

“안 돼요.”

비주가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안 쓸 거야…?”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요. 전 이제 어른이에요. 저 이제 술도 마시고 취할 수 있는 나이예요!”

“세상에. 취할 수도 있구나.”

홍서영 과장님의 말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와. 지호가 이제 술도 마실 수 있어?”

“운전면허도 따겠네? 어휴, 대단해라.”

“다 컸다! 우리 지호 다 컸어!”

합심해서 놀려 대는 사람들의 반응에 막내가 소리 없이 쉭쉭 콧김만 내뿜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콧김 소리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사람들의 눈빛에 애정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지호가 더 어릴 적부터 지켜본 사람들이라 그런지 귀여워하는 시선들이었다.

“뭐….”

막내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형들이 애타게 써 달라고 부탁하거나 그러면 제가 생각은 좀 해 볼게요.”

“우리가 뭐 하러.”

“우리한테 너의 여가 그 정도로 소중하다고 생각해?”

형들의 냉정한 반응에 막내가 입을 꾹 다물고 투덜대는 동안 다 같이 깔깔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그렇게 새해맞이 잡담을 나누고는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오늘 이렇게 우리가 모인 이유가 스페셜 앨범의 프로모션 때문이잖아요?”

스페셜 앨범의 뮤직 비디오, 후반 작업들은 이제 모두 끝난 상태였다.

앨범 발매일도 1월 16일 월요일로 잡혔고.

“아시다시피 이번에는 스페셜 앨범이기 때문에 음방 무대도 없고, 팬사인회나 이벤트도 없잖아요. 그래서 프로모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규 앨범과 다르게 이번에는 음반과 음원만 출시할 계획이었다.

“작년 초에 저희가 스페셜 앨범 프로모션으로 소극장 투어를 돌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독특한 프로모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지하게 경청하는 TF팀에게 이번 앨범의 주목해야 할 포인트를 짚어 주었다.

“이건 저희끼리 나눈 이야기인데요. 현재 저희 이미지가 양분되어 있는 상태잖아요.”

“예능과 가수로?”

“네.”

예능 쪽에서는 신기하고 웃긴 애들이 되어 있고, 가요 쪽에서는 무대 잘하는 애들로 되어 있다.

“둘 사이에 이미지 간극이 있잖아요. 예능으로 우리를 접한 대중들은 우리 무대를 잘 모르니까.”

국민 아이돌이라고 불러 주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일반 대중들은 우리를 예능적인 이미지로 더 알고 있는 편이었다.

“저희가 얼마 전에 깨달은 건데…….”

“뭘?”

“저희의 이런 예능적인 이미지는… 쉽게 바꾸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

TF팀 직원들이 멍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석환 형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 우주야.”

“네?”

“이미지 바꾸기 어렵다는 걸 지금에 와서야 깨달은 거니? 3년 만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동생들이 변명하듯이 우물쭈물 말했다.

“몇 번 정도 멋진 거 하고 그러면 바뀔 줄 알았는데…….”

“안 바뀌더라구요.”

“분명히 멋지게 하고 왔는데, 댓글창 보고 오면 사람들이 다 ‘ㅋㅋㅋ’ 하고 있고…….”

내가 다시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런 의미로 준비한 앨범이에요. 그동안 나뉘어 있던 예능적인 이미지와 가수의 이미지를 통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홍 과장님이 펜을 빙글 돌렸다.

“가수에 더 방점을 두고 싶단 말이지? 대중들에게 예능 잘하는 ‘가수’라고 어필하고 싶다고.”

“맞아요.”

“예능 말고 노래로 어필을 해야 된다는 거네.”

이번 스페셜 2집 앨범은 우리가 방향성을 잡기 위해 준비한 앨범이다.

이제 4년차.

일반적인 아이돌 활동 수명의 절반쯤에 다다르기도 했고, 미래를 위해 방향을 잘 잡아야 할 때였다.

그간은 음악적으로는 완벽하게 아이돌스러운 것을 하고, 예능적으로는 예능인들처럼 활동하면서 딱 경계선을 그었는데. 계속해서 이런 이미지가 따로 놀면 좋지는 않을 것 같았다.

쉽게 말하자면.

2세대 아이돌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트윙클?’ 그러면 ‘아! Twinkle!’ 하듯이 유명한 대표곡이 딱 나와야 되는데.

지금 우리는 ‘뉴블랙?’ 하면 ‘염소?’, ‘단추?’, ‘테이블 바퀴벌레?’, ‘우주선?’ 하는 예능적인 이미지가 먼저 나오고 있었으니까.

실제 노래가 거두고 있는 성과와 별개로 대중들에게 우리 노래의 이미지가 약했다.

“그래서 노래도 그런 쪽으로 준비했어요.”

그간의 음악이 팬들을 리스너로 삼았는데 대중들이 오? 하고 좋게 들어 주었다면, 이번 타이틀은 대중들에게 좀 더 친화적인 곡이었다.

“으으음…….”

턱을 쓰다듬던 우리 TF 팀장님이 안경을 고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번에 대중적인 노선으로 한 번 방향을 잡아 보고 싶다는 거네?”

“네.”

“지금 가지고 있는 예능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가수의 면모를 어필해야 한다면…….”

상대가 결론을 내렸다.

“예능 쪽에서 무대를 하는 걸 추진하면 되겠네.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잠깐 노래를 부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능할까?”

“한 번 조율해 봐야지.”

그걸 시작으로 TF 팀원들도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낸 아이디어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합쳐지면서 점점 프로젝트의 홍보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안무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회의도 끝에 다다랐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했어.”

순조롭게 끝난 회의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도깨비의 실제 성적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계획만 보면 완벽했다.

그런 느낌을 받으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음?”

A&R 팀장님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어색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저, 우주야.”

“네?”

“해외 음반 판매 담당하는 레코드사 알지? 우리랑 얼마 전에 계약한 월드 뮤직.”

“알죠.”

하… 하며 말하는 모습에 동생들이 내 뒤로 모여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A&R팀장님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서 도깨비라는 제목이 낯설고 그러니까. 이름을 자연스럽게 바꾸자고 연락이 왔어.”

“나쁘진 않죠. 그런데 무슨 제목…….”

…으로 내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멈췄다.

화면에 떠오른 영어 글자를 본 순간 숨이 턱 막혔기 때문이었다.

[Goblin]

고블린.

한복을 흩날리던 머릿속 도깨비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보물을 움켜쥐고 있는 황금고블린으로 바뀌었다.

“……고블린?”

몇 달 동안 작업했던 곡의 영문명으로 고블린이 어떠냐는 제안에 뒷목이 뻣뻣해졌다.

졸개들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저쪽 담당자분 메일 알려 주세요.”

“우주야, 일단 진정해.”

“아니, 지금 제 곡이 고블린이 되게 생겼는데……!”

“지, 진정하고.”

황당하긴 했지만 이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고블린을 도깨비라고 번역한 적이 있는 만큼, 잘 모르는 외국 사람들로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일본 쪽에 오니라고 나가는 건 아니잖아요?”

“음? 그러려고 한다는데?”

“……!”

“우, 우주야. 진정해!”

*   *   *

월드 뮤직에서 제안한 Goblin은 다행스럽게도 무산됐다.

대신 원문을 음차해서 그대로 옮긴 ‘Dokkaebi’라는 제목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후우…….”

그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다 너그러웠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왜 이런 사소한 거에 화가 잘 날까.”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그래요.”

리혁이가 픽 웃으며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지고 그런 거 있잖아요. 예전에는 10만큼 보이니까 7만 돼도 성에 찼는데, 이제는 20쯤은 돼야 성이 차는 거니까.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죠.”

“내 편 들어 주는 거야?”

“……마음대로 해석해요. 해석은 자유니까.”

새초롬하게 민속 문화 논문으로 시선을 돌리는 리혁이를 보고는 기지개를 켰다.

-월드 뮤직 쪽에서 그러더라고. 도깨비 발음이 너무 어렵다고. 도깨비나 고블린이나 오니나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발음이 어렵다고 곡 제목이 마음대로 바뀔 뻔할 줄은 몰랐다.

리혁이가 ‘도스토예프스키도 미국인들이 발음 잘만 한다. 유명해지면 상관없다’ 하는 논리를 보태 주기도 했고.

우리 쪽이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전하면서 다행히 도깨비로 일단락이 났다.

“촬영 준비 완료됐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이번에 뉴블랙 World 컨텐츠의 촬영 일정이 잡혔다.

‘도깨비’라는 곡을 발매하기 전에 일반 대중들과 해외 구독자들에게 도깨비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어이구, 안녕하세요.”

한때 역사 탐험대의 스튜디오였던, 지금은 뉴블랙 TV 스튜디오인 촬영장에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도깨비 설화를 연구하는 정문석 교수님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학생들에게 조별 과제를 잘 주실 것 같은 푸근한 외모와 지적인 눈동자가 인상적인 분이었다.

스탭이 달아준 마이크를 어색하게 매만지던 교수님이 물었다.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도깨비에 대해 설명을 해 주면 되는 거죠?”

“네!”

해외 버전의 곡명이 고블린이 될 뻔했다는 사연을 말해 주자, 교수님의 눈이 번뜩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특히나 ‘오니’라는 키워드를 언급하자, 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광기가 느껴졌다.

오프닝부터 분개한 교수님을 모시고 촬영을 시작했다.

먼저 귀중한 손님에게 헌사하는 우리의 대취타가 펼쳐졌다.

-명금일하~ 대취타 하랍신다~

-예~이!

내가 태평소를 불자, 교수님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쾅! 콰르르르륵! 탕탕탕! 으르렁! 쾅!

동생들의 화려한 연주가 이어지자, 교수님이 먼 곳을 바라보며 생수병을 들이켰다.

“네! 오늘은 뉴블랙 TV 월드의 ‘한국 문화 소개’ 코너입니다! 안녕하세요!”

“예에… 안녕하세요.”

카메라 어느 쪽을 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교수님에게 눈으로 신호를 주며 이끌었다.

“저쪽이요.”

“아, 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는 한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정문석 교수라고 합니다.”

이어서 국립민속박물관 등과 관련된 교수님의 이력을 중현이가 촤르르륵 랩으로 읊어 주었다.

정 교수님이 혀를 내두르며 학구적인 호기심을 드러냈다.

“굉장히 빠르네요. 숨은 언제 쉬시는 건가요?”

“안 쉬는 게 비결입니다.”

“그렇군요…….”

벙 찐 얼굴로 답하는 교수님이었다.

곧바로 한국 민속 문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곡 타이틀곡이 도깨비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이번에 이야기를 듣고서 옳다구나! 하고 박수를 쳤어요.”

“왜요~?”

눈을 깜빡이는 막내의 물음에 교수님이 답했다.

“도깨비라는 설화 속 존재가 정말 뉴블랙의 이미지와 궁합이 좋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저희랑요?”

“일반적인 도깨비라고 하면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뿔 달린 요괴를 상상하기 쉬운데 진짜 도깨비는 좀 다르거든요.”

교수님이 설화 속 도깨비의 특징에 대해 언급하려고 할 때,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종이에 시선이 갔다.

“오, 이미 조사를 열심히 하셨네요. 누구 건가요?”

“네! 제가 했습니당!”

“음?”

교수님이 안경을 들고 종이를 뒤적였다.

“이상하네. 이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장인데… 지호 씨가 조사했다고 했죠?”

“네!”

“실례지만 어느 문헌을 참고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막내가 자신감 넘치게 손을 들고 외쳤다.

“개미위키에서 긁었습니다!”

교수님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면서 촬영장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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