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73화
뉴블랙 TV에 올라온 독특한 썸네일에 수플레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Come Dance With Korea : BUSAN]
‘한국에 와서 춤을 추세요~’라는 영어가 적힌 썸네일에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은 뉴블랙이 있었다.
‘부산이네?’
영상을 누르자 부산시를 배경으로 도깨비 안무 영상이 펼쳐졌다.
해운대 주변 버스 정류장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깨비들이 옷자락을 흩날리며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자갈치 시장에 가서 상인이 던져 주는 떡을 받아먹으며 꺄르륵 웃기도 하고, 팝콘통과 콜라를 챙겨 든 채 해동용궁사의 승천하는 용을 구경하며 자기들끼리 웃고.
도시에서 유쾌하게 노는 도깨비들의 장면 사이사이로 야경과 바다 경치가 돋보였다.
‘우와, 관광공사랑 콜라보한다는 게 이거였구나…….’
동백섬에서 가비 가비 돗가비 하는 후렴을 부르던 뉴블랙 멤버들이 웨이브를 타며 즐겁게 웃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시장에서 산 갖가지 의상을 걸친 도깨비들이 꽃무늬 안경을 쓰고 우아하게 떠났다.
‘애들 얼굴 뭔 일이야.’
선글라스를 슥 내리고 한쪽 눈을 찡긋하던 빨간 머리 도깨비의 미모에 감탄할 때였다.
삑! 삑!
호루라기를 부는 경찰들이 달려오면서, 하루 종일 사고를 쳤던 도깨비들이 으아아! 하고 달아나면서 영상이 끝났다.
하늘 위로 포커스가 옮겨 가고.
가는 피라루쿠체로 [Come Dance With Korea]라는 캠페인 문구가 떠올랐다.
부산시와 관광공사의 콜라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뉴블랙: 이래도 평창에 안 불러??
-외국인들 보라고 만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한국인들이 가득하다
-윗님.. 걱정 마세요. 제가 수플레로서 아는데 곧 있으면 영어 쓰는애들이 미친 듯이 올 거예요..
-OH MY GOD
-봤죠..? 온다니까요
-노래가 진짜 대박인 듯. 한복을 입어도 어울리고 수트를 입어도 어울리고 그냥 다 어울린다
-이거 시리즈인가요? 더 보고 싶다
-관광공사랑 콜라보 첫 번째 영상이래요ㅋㅋ
-영상 진짜 잘 찍었다. 내가 외국인이면 부산 와보고 오고 싶을 거 같음
한국의 유명 도시들을 배경으로 한 안무 영상이 계속 올라올 거란 말에 수플레들이 행복해했다.
‘의상 더 보고 싶다.’
한복을 트렌디하게 리폼한 의상들과 뉴블랙의 미모가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거기에 어떤 의상이나 안무가 들어가도 찰떡같은 음원도 한몫하고 있었다.
[도깨비 안무 (몽키 매직 ver.)]
[틴스피릿 Demonic에 뉴블랙 도깨비 끼얹기]
[디지몬 오프닝 도깨비 버전]
특유의 리듬감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때문인지 어느 영상에 입혀도 자연스러운 것이 정말 도깨비스러웠다.
몽키 매직과 안무가 어울린다는 건 조금 슬프긴 했지만…….
“흠흠.”
다시 한번 부산시 콜라보 홍보영상을 살펴보며 웃고 있을 때.
“음?”
또 다른 영상이 하나 더 올라왔다.
[Come Dance With Korea : Temples]
영상을 클릭하자 뉴블랙이 유명 사찰들에서 찍은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어?’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물들인 흰빛의 한국무용 의상을 입은 멤버들이 운동화를 신고 둠칫둠칫 춤을 추고 있다.
뒤에서 환히 빛나는 탑.
그 탑의 정체는 바로….
‘뭐야. 석가탑이 왜 나와요.’
국보 제21호 불국사 3층 석탑이었다.
저 앞에서 춤을 춰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 때.
불국사 계단을 유쾌하게 내려오던 멤버들이 뿅! 하고 점프하더니.
곧바로 빗질을 하고 있는 어느 사찰의 스님 앞에 등장해서는 다른 의상으로 안무를 이어 갔다.
한글과 영어로 [순천 송광사]라는 자막이 뜬다.
-무심한 듯 바라보시는 스님들이 킬포ㅋㅋㅋㅋㅋㅋㅋ
-요란하다 요란해
-스님들 입장에선 살아 있는 번뇌 그 자체
-그것보다 마구니에 가깝지 않을까요 뉴블랙이니까
-마구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헐 우리나라에 예쁜 사찰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노래를 잘 살리면서도 사찰들의 고즈넉한 멋을 잘 잡아낸 뮤비의 영상미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관광공사가 SNS에 공지를 올렸다.
앞으로 2주일 동안 도시별 뮤비와 시장, 궁궐 같은 테마별 뮤비가 올라올 것이라는 예고였다.
압도적인 떡밥 양에 팬들도 혀를 내둘렀다.
-소처럼 일했구나 울 애들..
-소도 저렇겐 못 일하지 않을까ㅋㅋㅋㅋ
-직접 못 봐서 아쉽다뿐이지 음방보다 더 좋은 거 같음. 뮤비 때깔도 진짜 예쁘고
-외국 애들도 난리난거 같더라
-근데 콜라보 영상 끝날때 막 부산시 관광공사 그런 거 협찬 나올때 뭔가 뿌듯하다ㅋㅋㅋ
-ㅇㅈ
-마자ㅋㅋㅋ 내가 더 덕순덕순하고 그래
수플레들의 기분이 웅장해졌다.
보통 이런 유명 사찰이나 명승지에서 뮤비를 찍는 것은 허락받기가 굉장히 어려울 터였다.
관광공사와의 콜라보 영상이라고 해도 당사자 측에서 ‘누가 찍는데요?’ 하고 물어보고 허락할지 말지 고민할 테니까.
그런 곳에서 뉴블랙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뭔가 국가대표 아이돌 같다.
‘옛날 시조새 분들이 1세대 아이돌 덕질했던 게 이런 느낌이었던 건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이 사람들이라고 어디 가서 말하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몰론, 밖에 나가서 뉴블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번에 뉴블랙 앨범 나온 거 대박이더라. 노래들 존나 좋던데.”
“도깨비?”
“개비 개비 돗개비~”
“흐하하! 아 개못춰!”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팔을 꿀렁꿀렁이며 안무를 흉내 냈다.
그 속에서 수플레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왜 이렇게 다 잘 아는 건데.’
내가 팬이라면서 아는 척을 하고 싶어도 ‘지금 모르는 사람이 있나?’ 하는 반응이 돌아올 분위기였다.
“맞다. 너 팬이라고 했지?”
“어? 어.”
“팬들은 이런 거 영상 찍고 그러면 좋아해? 노래 좋대?”
머글 친구들로부터 안무 영상 그런 거 찍으면 팬들이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수플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좋아하지…….’
일반인들이 우린 좋은데 너희는 어떠냐고 묻는 모습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대중적인 곡을 내기 위해 프로모션에 공을 많이 기울인 것 같던데.
일상에서도 그 흐름이 느껴졌다.
음원 차트는 말할 것도 없고.
카페나 쇼핑몰에 방문할 때마다 이번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과 수록곡이 흘러나왔다.
[우리 이번에 노래 되게 잘되긴 했나봥..]
(빠르게 달리는 어느 노인의 자전거에 매달린 오디오가 ‘가비 가비 오도까비~’ 하는 유쾌한 노래를 틀고 있는 영상)
안양천 걷다가 이런 할아버지 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나도.. 읍내 갔는데 전파상 아저씨가 도깨비 틀고 있었음
-어르신들한테도 꽤 듣기 좋았나봄. 내 주변만 해도 이번에 뉴블랙 노래 이야기하시는 분들 꽤 봤어
-노래가 쉬워서 그런가
-가비 가비 돗가비가 ㄹㅇ 큰일했음
-살짝 심심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대중들한테 잘 먹혔나 봐
너무 상업적인 게 아니냐는 어느 비평가의 비난도 있었지만, 수플레들에겐 왠지 칭찬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잘 됐을 때 들리는 혹평은 언제나 타격이 없었다.
‘이 정도면… 대박이다!’
며칠간 음원 사이트의 리뷰창이나 미튜브 댓글들을 모니터링하던 수플레들의 눈이 얼마 안 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뉴블랙, 오늘 PBS ‘지금 내 고향은’ 생방송 고별 무대 한다
바로 뉴블랙의 예능 프로모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 * *
PBS 방송국.
오후 6시에 전국의 고향 소식을 다루는 ‘지금 내 고향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좁은 편집실에서 내레이션 멘트를 연습하고 있는 리포터 분들, 교양국 회의실에 있는 작가님들을 찾아 인사를 나눴다.
오늘 목요일은 우리가 지금 내 고향에 출연하는 마지막 회차이기 때문이었다.
활짝 웃으며 반겨 주는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준비한 선물들을 전달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이번에 노래 완전 대박 났던데요. 축하해요!”
“역시 잘 될 줄 알았어.”
“나중에 성공 비결 물으면 지금 내 고향 출연이라고 꼭 인터뷰 해요. 알았지?”
가볍게 농담을 던지는 작가님들과 리포터, MC분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진짜 덕분에 큰 도움이 됐어요.”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녹화분으로 출연했던 우리였다.
크로마키 배경 앞에서 ‘다음 주의 지역 축제 소식!’ 하면서 메인 꼭지에서 다루기는 애매한 소식들을 1분 정도 전달하는 그런 역할이었는데.
명곡단과 함께 우리가 중장년층과 노년층 시청자들에게 인지도를 널리 알리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 방송이었다.
그 때문에 길에서 마주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얘들아! 하고 외치는 거기도 하고.
“무슨 소리를. 우리도 큰 도움이 됐지.”
우리를 대기실로 안내하는 지금 내 고향 PD님의 얼굴에 싱글벙글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원래 우리 프로가 그렇게 관심 받고 그런 프로가 아닌데. 이번에는 후임자 구할 때도 반응이 뜨거웠다니까요. 여기저기서 하겠다고.”
“그래요?”
“네. 한 7팀 정도 연락이 왔나.”
우리가 하던 지금 내 고향의 소식 알리미를 맡기 위해 7팀이나 경쟁했다는 소식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디로 결정됐나요?”
“세레니티가 하기로 했어요.”
“오.”
작년에 노래상을 수상했고, 현재 걸그룹 원탑에 안착한 세레니티가 후임자를 맡는다는 모양이다.
그쪽에서도 잘 이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대기실 문을 열 때였다.
“우와아……!”
사방이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대기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장미, 백합 같은 알록달록한 꽃들이 가득한 대기실에서 메인 작가님이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흐어어, 이러면 저 울어요…….”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이려는 비주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4년 차라고 촛불이 4개 꽂힌 케이크를 보며 다 같이 생일 축하 곡을 개사해서 노래를 불렀다.
서글픈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지금 내 고향 스탭들.
-하차 슬퍼합니다~! 하차 슬퍼합니다~!
-사랑하는 뉴블랙! 하차 슬퍼합니다…! 와아아아아!
중간중간 몇몇이 빵 터져서 흑캭 하며 웃었다.
막내가 후우 하고 촛불을 불고 좋아하는 동안 중현이가 내게 빵칼을 넘겨주었다.
“어머.”
“저게 되네.”
완벽하게 16등분으로 케이크를 나눠서 접시에 덜어 주는 내 솜씨에 모두가 감탄했다.
막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와. 형은 전국 빵 자르기 협회 그런 거 있으면 협회장 해야 되겠어요.”
“토끼 모양으로 잘라 줄까?”
“네…!”
막내의 접시를 바라보던 비주가 사과 모양으로 잘라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짧은 케이크 파티가 끝나고 방송 준비를 위해 양쪽 스탭들 모두가 움직일 무렵.
감사 인사를 전하던 내 고향 PD님이 커다란 꾸러미를 하나 건네주었다.
“이거 받아요.”
“……?”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살피자 안에 손편지들이 가득하다.
리혁이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이게 뭐예요. 피디님?”
“뉴블랙이 내 고향에서 하차한다고 하니까 시청자 분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편지 이벤트를 기획했어요. 시청자 게시판에 편지를 남겨달라고 했는데…….”
피디님이 꾸러미를 양손으로 끙끙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만큼이나 왔네요.”
“흐어….”
“천천히 읽어 봐요. 우리가 인쇄한 것도 있고. 우체국 통해서 아예 편지를 부쳐 주신 분들도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피디님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서자마자 우리는 꾸러미 안의 내용물을 꺼내 보았다.
“리혁이에게. 오! 형 거 있다!”
“내 거야?”
멤버 전원에게 쓴 편지도 있고, 개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쓴 편지도 있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김덕순 여사 생각도 나면서 감성적인 기분에 젖어 들었다.
“리혁이에게.”
편지를 든 리혁이의 뒤에서 우리가 낭송했다.
“리혁아. 어쩜 너는 이름도 리혁이냐. 서리를 닮아 서리혁이냐. …시인이신가?”
“다들 내 뒤에서 사라져요.”
정면으로 이동해서 고개를 빼꼼 들이밀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결국 멀찍이 떨어져서 편지 읽는 리혁이를 구경하는데,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금세 눈가가 촉촉해진다.
중현이가 말했다.
“리혁이 울 거 같은데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내가 왜 울어요?”
벌써부터 눈가가 촉촉해지는 리혁이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나 마음이 여린 우리 넷째였다.
이어서 우리도 편지를 하나씩 개봉했다.
조심스럽게 봉했을 편지를 살살 뜯어서 고이 접힌 편지를 꺼내 읽었다.
“…….”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을 때마다 친손주처럼 보여서 좋았다. 방송 끝날 때 비타민 같았는데 이제 허전해서 어떡하냐. 마트에서 삼겹살 살 때 너희가 떠오르더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정이 내 마음으로 얽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 한 편지의 문구가 확 다가왔다.
-나는 너희가 참 좋다. 그저 좋다.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 그런가.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아서 고개를 젖히니 나머지 넷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리혁이를 놀렸던 우리도 눈가가 촉촉했다.
“크으응!”
막내가 코끼리처럼 휴지에 코를 풀어댔다. 얘는 벌써부터 대성통곡할 기세였다.
비주가 살짝 부으려는 조짐이 보이는 눈으로 말했다.
“우리 이따 볼까요. 형?”
“그래야겠어.”
주변에서 지켜보던 원석이 형이 웃으며 우리에게서 편지를 가져갔다.
그때 마지막으로 편지를 들고 있던 지호가 말했다.
“형들, 이거 봤어요?”
“뭔데?”
“이거 쓰신 분이 80대 할머님이신데. 이거 보내 주시려고 멀리 우체국까지 걸어서 가셨대요.”
“……아이고.”
“한글 배우신 뒤로 처음 편지 써 보시는 거래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를 보며 눈물을 참고 있을 때, 막내가 편지 마지막 장을 펼쳐 보았다.
“시도 쓰셨나 봐요.”
“시?”
서정적인 낱말이 가득한 시가 하나 있었다.
막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니다. 글씨 연습하시면서 필사하신 건가? 교과서에서 봤나 봐요. 되게 익숙하기도 하고.”
“…….”
하지만 막내와 달리 내용물을 읽고 있는 우리의 눈은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지호야.”
“넹?”
“……네가 시라고 한 이거 말이야.”
“넹.”
“우리 수록곡 가사인데?”
“!”
막내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스커레이드 앨범에 들어 있는 4번 트랙.”
“그, 그래여? 근데 전 부른 기억이 없는데.”
“비주랑 중현이가 듀엣으로 불렀으니까.”
눈물이 쏙 들어간 얼굴로 시와 형들을 번갈아 보던 막내가 하하하 웃더니 냅다 줄행랑을 쳤다.
“…….”
당시 밤을 새서 해당 곡을 작사작곡한 나와 리혁이가 뒷목을 주무르고, 노래를 부른 비주의 눈이 세모꼴이 된 가운데.
우리 스탭들이 흐느끼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우리 막내였다.
후- 하며 숨을 토하고는 중현이를 불렀다.
“중현아.”
“잡아 올까요?”
“아니.”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냥 내비둬.”
“오.”
“관심 안 주면 돌아오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열린 문틈으로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들어오는 막내의 모습에 우리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얼른 사과해.”
“죄송해여. 몰랐습니다….”
“여?”
“넹~”
막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제가 불리하니까여.”
“야!”
* * *
PBS1 채널.
생방송 <지금 내 고향은>의 꼭지 하나가 끝나고 다시금 스튜디오로 화면이 돌아온다.
-추운 겨울인데도 고사리 마을 주민들의 따스한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하네요.
-정말 제 마음까지 따뜻해지네요.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들이 멘트를 주고받고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주 아쉬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지역 소식 알리미 역할을 맡아 준 뉴블랙이 안타깝게도 내 고향을 떠나게 됐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내 고향’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하는 가운데, 뉴블랙 멤버들이 스튜디오로 나왔다.
색동저고리 색 의상을 입은 멤버들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소감을 전한다.
그 뒤로 그동안의 활약상이 스크린으로 흘러나왔다.
음머어어 하는 중현의 작년 모습에 자리에 앉은 리포터들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몸을 들썩였다.
내 고향 시청에 끼어든 수플레들도 감탄했다.
‘애들 다 용케 집중을 하네.’
하지만 이어지는 지금 내 고향의 병맛 영상이 견디기 어려웠던지 멘트를 하던 리더가 멈칫했다.
-저건 계속 흘러나오는 건가요?
-네.
-부끄럽네요.
-아닙니다. 얼마나 귀… 크흡, 여우신데요.
누가 봐도 웃는 MC의 반응에 티벳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뜨던 멤버들이 얼마 안 가 내 고향 스튜디오에 섰다.
-네, 지금 내 고향에서 사상 최초로 아이돌 신곡 공개를 하는 순간입니다!
-다 같이 외쳐 볼까요? 뉴블랙의~
-도깨비!
TV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무대.
기대감을 잔뜩 안고 지켜보는 팬들과 눈물을 글썽이는 애청자들의 앞에 도깨비의 무대가 펼쳐졌다.
그런데 안무 영상과는 다르게 중현의 손에 도깨비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왕봉이인가!’
왕봉이에 커스텀 도깨비 스킨을 씌운 듯했다.
1절 안무를 마치고 둠칫둠칫하며 2절 파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중현이 마이크와 왕봉이를 함께 들었다.
-2017년 정유년 새해입니다. 가시는 걸음마다 복이 가득하고, 하시는 일마다 대박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대박 나세요!
-자 그럼 금 나와라 뚝딱.
왕봉이를 살짝 흔들자 두목과 다른 졸개들이 품속의 가짜 금화를 허공으로 흩날렸다.
-금 나왔다!
방망이를 뚝딱할 때마다 금박이 하늘하늘 날아다니고.
풍악을 울리듯 멤버들이 두 손을 펼쳤다.
-아이고! 금이 나와 버렸다~!
-대박 나세요오오!
-황금 같은 새해 되세요!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갑자기 황금의 왕국 엘도라도가 된 스튜디오의 풍경에 출연자들도 일제히 입을 가리거나 고개를 푹 숙이기 시작했다.
방송 사고였지만 시청자들 모두 공감 가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건 인정.’
누구든 참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