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76화
나는 게임을 못하는 편이다.
-형은 진짜 못해여. 저도 못하는 편인데, 형은 진짜 개개개 못해여.
그 때문에 평소에 게임을 할 때마다 막내에게 잔소리를 듣곤 했다.
스트릿 보이즈와 하는 온라인 게임에 잠깐 끼었을 때도 온갖 욕을 먹고 그랬지.
-아니! 단장님 점멸을……!
-전멸이네. 전멸.
-우리 단장님은 절대 게임하지 마십쇼. 하도 욕 먹어서 오백 살까지 사실 테니까.
뿐만 아니라 수플레 위크 때 스타에서도 2년 연속으로 패배했던 게 바로 나 선우주였다.
“후후후후.”
하지만 지금은 우주선이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출연진에게 다시금 물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막내가 근처에서 주먹을 쥐고 응원했다.
‘잘하고 있어요!’
‘가라. 사기꾼!’
동생들의 응원에 힘입어 어깨에 힘을 주었다.
게임을 하면 무조건 필패.
게임을 하지 않고 저쪽에서 게임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 나도 게임 없이 금화를 획득할 수 있으니까.
“…….”
출연진이 팔짱을 끼고는 고민에 빠졌다.
주세한의 엄마 포지션인 나미리가 제작진에게 물었다.
“감독님! 이거 우리 도전했다가 지면 몇 개야?”
-6개입니다.
“6개씩이나? 지금 많이 줄었는데.”
나미리가 탄식하는 가운데 여희연이 흔들리는 멤버들을 다잡았다.
“다들 반대로 생각해 봐요. 이기면 6개라니까. 우리 지금까지 잃은 거 확 만회할 수 있어요.”
“희연아. 거기서 또 반대로 생각해 보자.”
오형석이 차분하게 웃었다.
“여기서 6개 더 잃으면 우리 나가리야…….”
“맞아. 그냥 3개 잃고 끝내자. 쟤 저렇게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거 안 보여? 못 이긴다. 우리.”
그런 이야기가 감돌면서 동생들과 내 안색이 밝아질 때였다.
혼자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배우 송진우가 더벅머리를 긁적이다가 내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내가 씩 웃으며 끄덕였다.
바로 그때.
“……?”
송진우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주세한 출연진들을 향해 뭐라고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원로배우 양옥분 선생님의 고개가 제일 먼저 돌아갔다.
나를 슥 바라보던 선생님이 뭐라고 속닥거리자, 다른 멤버들도 속닥속닥하기 시작했다.
“중현아.”
“네.”
“저기 지금 다들 뭐라고 얘기하는 거야?”
“잠시만요.”
중현이의 귀가 쫑긋쫑긋거렸다.
그러더니 멈칫했다.
“왜 그래?”
“수신이 어려워요. 형.”
“왜?”
“여희연 선배님이…….”
무리 속에 있는 여희연이 활활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무언가 웅얼거리고 있었다.
중현이가 그걸 받아 옮겼다.
“삼겹살. 해물파전. 치킨. 피자…….”
“…….”
“자꾸 음식 이름을 중얼거리셔서 다른 말이 안 들려요. 도청방지 문구가 너무 강해서.”
승부욕 하나는 정말 대단한 선배님이었다.
중현이에게 됐다고 미소를 지어 보일 때, 이마를 맞대고 회의하던 7인조 예능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재용 선생님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재영아!”
-네, 선생님.
“우리 다 도전하기로 했다!”
모든 팀이 다 도전하겠다는 이야기에 나와 동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비주가 급하게 물었다.
“왜요? 왜……?”
“선배님들! 논리적으로 생각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저 사람에게 도전 안 하면 금화 3개예요.”
“저라면 도전 안 해요~!”
리혁이와 지호까지 가세해서 외쳤지만 주세한 멤버들은 훈훈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 미소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동생들의 항변에 개그맨 오형석이 푸근하게 웃었다.
“맞지.”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우주 표정이 좀 그래서….”
“우리는 저 표정을 알고 있지!”
예능인들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왜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주선처럼 웃고 있을까?”
“……!”
“이상하잖아. 이길 거라고 생각했으면 오히려 게임은 못한다고 그러는 게 맞을 텐데. 그래서 방심을 유도해서 참가하게 한 다음에 금화를 촤악촤악 뺏어 가면 될 텐데.”
“그런데 왜 자꾸 도전을 할 거냐고 물어볼까~?”
귓가에 자동으로 명탐정 만화의 BGM이 환청처럼…….
환청이 아니네.
옆을 바라보자 막내가 핸드폰을 들고 ‘범인은 바로 너!’ 하고 있다.
리혁이가 막내의 패딩 등짝을 팡 때렸다.
제작진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말했다.
“아니, 그건 어… 억측이죠.”
“그럼 게임을 해 보면 되지 않을까?”
“…….”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주세한 멤버들이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동생들한테 연기했다면 그래도 꽤 먹혔을 텐데.
전국에서 눈치 싸움으로는 제일가는 사람들에겐 어림도 없었다.
-자, 그러면 게임기를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또래가 어릴 적에 가지고 놀았을 법한 휴대용 게임기가 손에 들어왔다.
A, B 버튼이 달린 게임기.
다들 딸깍딸깍 하며 버튼을 눌러보는 동안, 멍하니 웃는 내게 여희찬이 물었다.
“너 진짜 게임 못해?”
“네.”
“네가 못하는 것도 있구나.”
“그중에서 이걸 제일 못해요.”
그러고는 다시금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제 말과 행동이 다 심리전이었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지금 속고 있는 게 아닐까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게임기에 집중한 사람들끼리 ‘얘, 이거 A 누르면 되니’ 하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양옥분 쌤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우주 너 방금 무슨 말 했니?”
“아니에요. 쌤.”
“정신 좀 다잡아야겠다, 너. 애가 혼이 쏙 빠져 있네.”
전국에 게임 못한다고 소문이 나기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어서 그래요. 선생님.
내가 게임기를 보고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 쫄래쫄래 달려온 동생들이 힘을 북돋아 주었다.
“괜찮아요. 형.”
비주가 어깨를 토닥이며 상냥하게 웃었다.
“사람이 못하는 거 한두 개쯤은 있어야 인간미가 있대요. 형의 인간미를 보여 줄 기회예요.”
“맞아요. 이겨도 바보, 져도 바보라면 어찌 됐든 바보인 거예요. 형.”
“고오맙다, 중현아…….”
동생들의 응원을 받으며 게임기 전원을 켰다. 그러고는 버튼을 딸깍이며 이것저것 눌러 보았다.
-자, 준비되셨나요?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게임 종목을 공개하겠습니다.
모두에게 게임팩이 하나씩 지급됐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 게임입니다!
전자오락 비트의 익숙한 음악 소리.
화면 속에서 캐릭터가 뾰옹 뾰옹 점프하는 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좋네.
다음에는 게임 음악 같은 분위기로 타이틀곡을 하나 써볼까.
밝고 유쾌한 노래를 들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찌 됐든 옛날 게임이니까 그래도 요즘 게임들보단 승산이 있겠지?
* * *
상암동 TBC 사옥 앞.
“세상에.”
“이거 진짜야?”
“이야…….”
모든 출연진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심지어 카메라를 든 제작진 몇몇도 그쪽에 서 있었다.
푸슝. 쾅! 쾅!
게임기 속에서 점프하던 캐릭터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GAME OVER]하는 문구가 떠올랐다.
1스테이지 초반부였다.
“진짜 개못하네…….”
여희찬의 중얼거림에 게임기를 든 당사자가 도끼눈을 뜨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너무나 하찮은 째려봄에 다들 깔깔 웃을 뿐이었다.
“아, 너무 재미있다.”
“우주야. 또 해 봐. 얼른.”
군고구마 껍질을 슥슥 까는 주세한 멤버들과 힘을 내라며 응원을 하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
이미 마지막 게임은 끝난 지가 오래였다.
시작 30초 만에 우주가 ‘어? 어어어! 어어어! 안 돼!’ 하면서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이긴 거 맞아? 진짜 이긴 거야?
-왜 이겼지?
-내가 손주뻘을 게임으로… 이겼어……?
이긴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금화 6개를 받을 정도.
그랬기에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뉴블랙의 리더에게 추가적으로 부여된 미션이었다.
-우주 씨가 3분 동안 게임에서 버티면 뉴블랙 분들에게도 적당한 양의 금화를 제공하겠습니다.
이윽고 시작한 게임 중에서 5판 연속으로 30초 컷 당하는 선우주.
훌쩍 나오려는 콧물을 들이켠 뉴블랙의 리더가 뽀얀 얼굴을 빛내며 집중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모 때문인지 마치 천재 조각사가 심혈을 다해 깎은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붉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
졌을 때 살짝 눈초리가 처지며 높다란 콧대가 씰룩이는 것도 근사하게 느껴질 정도의 외모인데…….
“아이고.”
“워매…….”
그 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게임을 못했다.
승부욕이 강한 여희연은 도저히 못 보겠다며 가슴을 팡팡 치며 사이다를 병째로 들이켜는 중이었다.
꿀꺽.
군고구마를 먹던 송진우가 가슴을 탁탁 쳤다.
“어우, 사이다 어디 있어? 왜 이렇게 못 보겠지.”
“고구마 삼천 개 먹은 기분…….”
“얘 원래 이렇게 게임 못하니?”
졸개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완전 못해요.”
“옷 입는 거 포함해서 저희 형이 유일하게 못하는 두 가지예요.”
“그래도 사람은 착해요!”
그때 다시 한번 띠로리~ 하면서 게임 오버가 뜨는 모습에 출연진들이 탄식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중얼거렸다.
“이걸 못해?”
그 말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감독님! 하고 서운한 얼굴로 외치는 우주의 모습에 카메라 감독이 먼 곳을 바라보고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양옥분이 우주에게 종이컵을 내밀며 말했다.
“그만하고 이 뜨끈한 국물이나 한 모금 마셔.”
“저는 더 할 수 있어요……!”
비주가 우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집에 가야죠. 형.”
“한 판만… 한 판만 더 하고. 아니, 이게 게임기가 이상하다니까.”
“형이 못하는 거예요.”
“…….”
단호한 한마디에 눈가가 촉촉해진 뉴블랙 리더.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모두의 속을 타게 만든 게임이 끝나고 엔딩 대형으로 모여 섰다.
“녜…….”
무언가 말을 하려던 우주의 목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예능인들이 능글맞게 웃었다.
“우주야, 괜찮니?”
“당연히 괜찮죠. 저는 이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리더가 근엄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가수는 노래로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 게임 못할 수 있지.”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어딜 가려고 그래? 아직 엔딩 멘트도 다 안 했는데.”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는 리더를 다들 붙잡아 세웠다.
한참 동안 옥신각신하는 꽁트 끝에 MC를 맡은 오형석이 엔딩 멘트를 시작했다.
“네! 오늘 도깨비로 컴백한 뉴블랙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네!”
화기애애한 인사가 오가는 가운데, 송진우가 능글맞게 웃으며 우주를 불렀다.
“우주는 오늘 어땠니?”
“네.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멋지게 활약도 많이 한 것 같고, 정말 새해 초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가는 것 같네요~!”
그러더니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긴 한데…….”
“마지막 게임?”
“네.”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게임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시간 관계상 하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네요.”
“없던 일로 하려는 거야?”
“없던 일이라니요? 애초에 없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하는 우주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하나둘 소감과 앨범 홍보를 하며 인사를 마친 후, 뉴블랙 멤버들이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막내가 생긋 웃으며 출연진에게 물었다.
“가비 가비?”
“돗가비!”
“잘 가, 얘들아!”
“안녕히 계세요!”
무대용 연막장치에서 스모그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면서 도깨비들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사라져 갔다.
그 안에서 도깨비방망이들의 불빛이 색색으로 요동친다.
특히나 붉은 머리카락의 괴인이 휘두르는 도깨비방망이의 검무가 인상적이었다.
광선검이 붕붕 움직이듯이 현란하게 잔상을 남기는 불빛을 보며 주세한 멤버들이 박수를 쳤다.
“저런 것도 할 줄 아는데 어쩜 게임은 그렇게 못하지?”
-진짜 너무하세요!
안에서 들려 나오는 누군가의 슬픈 외침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중현의 나른한 다큐 내레이션이 들렸다.
-선우주는 오늘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조용히 못해?
-형! 안 되겠어요. 저랑 게임 연습해요.
-얘들아. 우리 밥 뭐 먹으러 갈까?
마지막까지 와글와글한 모습.
안개 속 도깨비불들이 붕붕 흔들리며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출연진이 웃었다.
* * *
주세한 팀과 촬영을 마친 다음 날.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여 우리는 인천항에 도착했다.
“하필이면 또 인천이네.”
차에서 내리면서 털이 푹신하게 달린 귀마개를 착용했다.
으으으 하고 몸을 떨던 리혁이가 물었다.
“하필이면 인천이라는 건 무슨 말이에요?”
“저번에 나랑 중현이 사나이가 간다 촬영했을 때, 인천공항에서 뭐 하는 줄 알고 갔잖아. 알고 보니 특공대였지만……. 에취!”
아침 무렵 바닷가라 그런지 춥다.
화물차와 지게차들이 복잡하게 이동하는 인천항을 바라보며 촬영 준비가 한창인 곳으로 다가갔다.
“어어! 뉴블랙!”
구릿빛 피부에 튼튼한 체격을 지닌 전직 특전사 출신이자… 지금은 방송국 PD인 도준기 피디.
상대가 세상 반가운 표정으로 뛰어왔다.
“오는 동안 춥지는 않았어요?”
“네, 방금 차에서 내려서…….”
“잘 왔어요. 내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 연예대상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가도 희한하게 우주 씨가 사라져 있어서.”
그건 착각이 아니었을 거예요. 피디님.
도준기 피디님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라도 내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니 다행이네요.”
“저, 피디님. 저희도 함께 하고 싶긴 한데…….”
“그래요? 함께 하고 싶어요?”
“네.”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함께 하고 싶긴 하지만 저희가 스케줄이 많아서요. 오늘 무대만 하고 가야 될 것 같아요.”
“맞습니당. 너무 아쉬워요!”
“으으음.”
먹잇감을 노리는 솔개처럼 우리 주변을 왱왱 맴돌았지만 도준기 피디님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곧바로 누군가 피디님! 하고 부를 때가 돼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휴우.”
도준기 피디님의 찐득한 기운이 아직도 주변에 맴도는 것 같아서 동생들과 팔다리를 털었다.
비주가 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저 끌려가는 줄 알았어요…….”
“괜찮아. 오늘은 무대만 하고 가는 거야.”
주세한에 이은 마지막 예능 무대 촬영.
오늘의 무대는 바로 TBC의 인기 예능 중 하나인 <사람이 간다>였다.
작년도까지 <사나이가 간다>라는 제목으로 군대나 소방, 경찰 등의 체험 예능을 했지만 올해부터는 <사람이 간다>로 바뀌었다.
출연진의 성별이나 연령도 다양하게 고르고.
극한 직업을 함께 체험해 보며 삶의 열기를 느끼는, 그런 기획 의도로 바뀌었다.
멤버 간 케미를 통해 재미를 만든다기보다는 독특한 이색 직업을 소개해 흥미를 끄는 프로.
물론 그중에서 인기 있는 멤버들도 있었다.
예컨대.
“병장니이이임!”
“은성아아아!”
탈색한 옥수수 머리카락을 허클베리 핀처럼 흩날리는 이 녀석처럼 말이다.
은성이의 눈이 반가움으로 반짝였다.
“왜 오신 거예요? 오늘 게스트예요?”
“무대 하러 왔어.”
“아. 무대.”
급격히 아쉬워하는 군 후임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자, 은성이가 헤에취 하며 재채기를 했다.
리혁이가 멀찍이 물러났다.
“에이, 게스트인 줄 알고 신났는데.”
“게스트 목록은 이미 나오지 않았어?”
“네, 깜짝 게스트라도 되는가 보다 했죠~”
눈웃음을 치며 웃는 군 후임에게 말했다.
“난 절대 여기 안 나올 거야.”
“피디님이 쉽게 포기 안 할 거 같던데요. 작년 초부터 뉴블랙과 꼭 한 번 함께 하고 싶다고 맨날 그래요.”
“으으…….”
“뭐. 언젠가 함께 할 날이 올….”
“은성아. 저기 누가 부른다.”
“아. 또 이따가 얘기해요!”
우리 등장했을 때 깜짝 놀라는 척이나 잘해 달라는 이야기에 은성이가 맡겨달라는 듯 엄지를 들었다.
“믿으세요! 저 예능인이에요!”
“너 가수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군 후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여, 뉴블랙!”
“안녕하세요!”
은성이를 시작으로 원조 사간 멤버들 몇몇과 인사를 나누고, 신규 멤버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따가 등장할 때 반가워해 달라는 부탁도 하고.
동생들과 무대 의상을 입고 몸을 푸는 동안 주변에 돌아다니는 스탭들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 무슨 특집하시는 거예요?”
“세계 일주하는 크루즈에서 3일 동안 일할 거예요.”
“그렇구나. 근데 크루즈가 안 보이는데요?”
“여기 말고 다른 데 있어요.”
“어이구, 거기까지 가는 것도 일이겠네요.”
“네~”
스탭 분이 생긋 웃으며 사라졌다.
제작진이나 출연진이나 양측 모두 업무량이 보통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성이와 사간 멤버들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의 말을 보내면서, 우리도 우리의 일을 했다.
-사간 설 특집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깜짝 무대입니다!
“누구야? 누구인데?”
“뭐야. 뉴블랙이야?”
예능인들이 깜짝 놀라는 리액션을 하는 동안 겨울 바닷가에서 가비 가비 돗가비를 선보였다.
그다음 잠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출연이요? 당연하죠.”
“그러면 이 자리에서 답을 해 주세요. 언젠가 사간에 나올 의향이 있는지.”
“당연히 있죠. 불러 주시면 오겠습니다!”
4년차 아이돌답게 공수표도 날려 주고.
힘내세요! 하는 멘트를 해 주고는 빠르게 차량으로 올라탔다.
바닷바람이 무대 의상 사이로 스며들기 때문이었다.
“으으, 추워.”
“옷부터 얼른 갈아입자.”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차량에서 나오는 따끈한 온풍을 느낄 때였다.
평소 때면 이쯤 돼서 매니저 형들이 핫팩을 손에 하나씩 쥐어 주곤 했는데.
오늘따라 말도 없고 조용하다.
“민기 형.”
운전석에 있는 민기 형을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대신에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채 운전대를 잡고 있는 누군가만이 보였다.
그런데…….
“…….”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이 다르다.
손톱 길이를 포함해 손도 다르고, 무엇보다 오전에 보았던 민기 형과는 다른 색의 점퍼였다.
‘형?’
‘가만히 있어.’
손으로는 핸드폰을 몰래 꺼내 석환 형에게 전화를 걸고 동생들에게 조용히 있으라는 눈짓을 했다.
“…….”
낯선 사람이 우리 차에 타 있었다.
아직 차는 출발하지 않았으니 여차하면 손에 든 패딩을 얼굴에 집어던지고는 애들을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여러분.”
고개를 홱 돌린 남자의 얼굴에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도 피디님?”
“네. 사람이 간다의 메인 PD 도준기, 바로 접니다.”
“…….”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가 풀리면서 눈을 깜빡였다.
“아니, 피디님이 왜 저희 차에…….”
“왜긴요.”
도준기 피디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바로 여러분이 이번 사람이 간다 특별편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