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79화
새벽 3시 30분.
숙소 거실에 모인 9인조 아이돌이 옷을 차려입은 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LB가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검정단의 두목과 졸개를 가리켰다.
“님들이 우리 매니저……?”
“네.”
우주가 품에서 무언가를 슥 꺼내자 네 졸개들이 전달해 주기 시작했다.
새로 뽑았는지 아주 빳빳한 명함이었다.
[DKB 컴퍼니 주선우 실장]
명함을 바라본 스보 멤버들이 고개를 들어 우주선을 바라보았다.
“우주선 같은데?”
“아닙니다.”
상대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이제 우주선이 아니에요.”
“아니야……?”
“네. 저는 오늘부로 여러분을 전담하게 될 DKB 컴퍼니의 주선우 실장이라고 합니다!”
“와아아아아아!”
똘마니들이 열심히 박수를 쳤지만, 스보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농담하는 건가.’
아니면 지금 잠이 덜 깨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스보 멤버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음악 방송을 뛰러 가는 날.
연예계에서 가장 절친한 동기들이 새벽잠을 깨우더니 자기들이 3일 동안 매니저를 할 거라고 한다.
“사람이 간다?”
“네~ 맞습니다!”
그 말을 증명하듯 TBC <사람이 간다> 로고가 붙은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 서 있었다.
기원이 한조에게 속삭였다.
“한조 형? 저 감독님들 정말 사간에서 오신 분들 맞아?”
“응. 맞는 거 같다.”
특공대 특집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그리고 뉴블랙 뒤편에 서 있는 스케줄 관리 송 팀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서 LB가 다시 손을 들었다.
“주 실장님.”
“네. 나무 씨.”
“정말로 님들이 우리를 전담한다고요? 3일 동안…… 다른 매니저들의 도움 없이?”
“맞습니다.”
멤버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 났다.’
히힛 도깨비처럼 웃는 동기들에게는 신중함, 진중함, 철저함 같은 단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본업을 할 때야 누구보다 프로답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본업이고.
“님들이 우리를…….”
“왜 그러시죠?”
리혁이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못 미더우신가요?”
“네.”
망설임 없는 대답들이 이어졌다.
“예. 아주 그렇습니다.”
“솔직히 너희도 우리가 매니저 한다고 하면 못 믿을 거잖아? 우리한테 스케줄 맡길 수 있어?”
“저저 봐. 리혁이 동공 흔들리네.”
“그게 우리 심정이라니까.”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솔직한 대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스보 멤버들이 히힛 웃는 동기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반갑긴 한데.’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가장 지쳐 있던 타이밍이었다.
예능 출연 때문에 찾아온 뉴블랙 멤버들이 미치게 반갑다.
바다의 나룻배 위에서 표류하다가 갈매기를 만난 듯한 기분.
하지만 그 갈매기가 ‘이제부터 내가 노를 저을게’ 하며 노를 퐁당 빠뜨리는 순간, 하하 웃으며 좋아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차라리 갈매기가 낫지…….’
으아아 하던 LB가 탈색으로 푸석푸석한 짚단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거 실화야?”
“진짜라니까. 나무야. 형이 몇 번을 말하니~?”
순간 표독스러운 표정이 나온 우주선을 본 LB가 멈칫했다.
“방금 화내신 거예요?”
“아뇨. 그럴 리가요.”
화냈다! 벌써부터 화냈다! 하면서 몰아가는 동기들에게 주선우 실장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무튼 믿어 보세요. 우리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유능하니까.”
“네…….”
“자! 그러면 다들 음악 방송 준비하러 가야죠. 안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 같은데. 얼른 샵에 갑시다!”
“네…….”
“갑시다! 가는 거예요!”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스트릿 보이즈의 등을 떠미는 뉴블랙이었다.
* * *
「사람이 간다 ‘뉴블랙TV 콜라보’ 특집 1화 中」
세레니티와 사간 출연진의 어색한 상견례가 끝나고, 화면은 다시 스트릿 보이즈-뉴블랙으로 넘어온다.
무려 차량 3대로 나뉘어 이동하는 대인원.
조수석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뉴블랙 멤버들을 스보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어지는 인터뷰 컷.
제작진 : 많이 불안하셨나 봐요.
LB : 시작부터 불길했죠.
그 말에 한조가 부연 설명을 하듯 손을 내저었다.
한조 : 이게 무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무대에서라면 정말 제 목숨을 맡겨도 될 만큼 듬직한 친구들인데…….
뭉 : 저희가 3년 동안 봐서 정말 잘 알아요.
한조 : 저희 깨울 때도 보셨죠?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공감이 갈 만한 대사들이었다.
좌충우돌 사고뭉치처럼 켈켈 하고 다니는 뉴블랙의 평소 일화들이 증언으로 나온 후.
헤어샵으로 화면이 넘어왔다.
-어?
뉴블랙을 마주한 헤어 디자이너들이 입을 떡하니 벌리더니 끼요옷 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뉴블랙!
-뭐야. 원장님! 원장님! 뉴블랙 이제 우리 샵이에요?
-아니…… 나, 나는 모르는 이야기인데.
어리둥절해하는 헤어샵 직원들에게 우주가 명함을 정중히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일일 매니저를 맡게 된 주선우 실장이라고 합니다.
주선우란 말에 다들 빵 터진다.
-아. 이거 그거구나. 뉴블랙 TV에서 부캐 특집 하는 거예요?
-아뇨. <사람이 간다>예요.
-우와! 또 예능 볼 거 생겼다!
대박이라고 연호하는 직원들과 뉴블랙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등 잠시 소란이 일었다.
평소보다 일찍 왔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붕어눈인 스보 멤버들이 연신 나오려는 하품을 참으며 머리를 다듬고 있을 때.
-자. 우리 매니저들 집합.
치프 매니저 주선우가 로드 매니저들을 집합시켜서 이 자리에서 할 것들을 하나씩 지시했다.
곧바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졸개들.
중현과 지호가 멤버들이 먹을 아침밥을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오고, 리혁이 취향대로 분류했다.
-오. 감사합니다.
샌드위치가 취향별로 손에 착착 들어오는 광경에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얼떨떨해하다가 좋아한다.
그러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를 보며 감탄했다.
-진짜 실장님 같아요. 단장님.
-옷 제대로 입으니까 사람이 달라지네. 누가 골라 줬어요?
검은 슬랙스에 푸른 스웨터, 회색빛 롱코트를 우아하게 걸친 주선우 실장이 훗 하고 웃으며 디카페인 커피를 홀짝였다.
-푸륩! 앗 뜨거.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웃고 있을 때.
-……정말요?
머리를 다듬고 있는 디자이너들 근처에서는 비주가 단아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방싯방싯 웃는 뉴블랙의 메인 댄서와 있으면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주와 이야기를 나눈다며 너무 좋아하던, 짭플레를 자청한 디자이너들의 웃음소리는 얼마 안 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 혹시…… 궁금해서 여쭤 보는 건데요.
화사하게 웃는 비주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언제 끝나나요?
-고, 곧…….
-아. 그렇구나.
분명히 눈치를 주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말 궁금해서 묻는 듯한 얼굴로 방긋 웃는 비주.
해바라기가 둥실둥실 움직이며 줄기를 흔드는 듯한 광경인데…….
뭔가 부담스럽다.
헤어 디자이너들의 손이 빨라지면서, 화면 위로 인터뷰 목소리가 깔리기 시작했다.
-약간 비주 매니저님이 계셔서 평소보다 더 빨리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뭔가 ‘시간 엄수!’ 하는 무언의 압박……?
-이번에 매니저로 오셔서 그런 건지 저희가 생각했던 느낌이랑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표정들도 많이 진지하시고.
회상 장면으로 뉴블랙 멤버들이 전날 회의에서 미리 순서를 정하자며 아침 식사와 헤어 순서를 도표로 정리하는 것이 나오고.
방긋방긋 무해하게 웃는 비주까지 합쳐지면서 스트릿 보이즈의 헤어샵 일정이 광속으로 끝을 맺었다.
-이게 이 시간에 끝나네?
-우리 헤어샵에서 지체되지 않은 거 처음인데……? 뭐야.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하기는요.
리혁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말했다.
-밥 늦게 먹는 사람부터 먼저 머리 다듬도록 배치했어요. 이렇게만 해도 시간이 확 줄어드니까.
-오호.
-음식도 액체나 밥류 말고 빵이나 샌드위치로 골랐고요. 자잘하게 시간을 아껴 둬야 나중에 널널해요.
처음의 불신과 다르게 서서히 믿음이 간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
스케줄 체질 개선 프로젝트의 오프닝 같은 분위기였다.
-핫하하!
주선우 실장이 코트를 흩날리며 반짝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갈까요?
곧바로 [등촌동]이라는 자막과 함께 화면이 HBS 공개홀로 넘어갔다.
* * *
등촌동 HBS 공개홀.
지하 주차장에서 스타일리스트 분들과 캐리어 가방을 밀고 올라가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진짜 오랜만에 오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가 콧속으로 향긋하게 들어온다.
언제 마지막으로 왔더라.
옆에서 걷던 한조가 말했다.
“너희는 15년도 이후로 처음 오는 거 아니야?”
“그러네.”
15년도에 3분 카레 분량을 주며 뉴블랙은 꿇어라! 한 이후로 사이가 나빠져서 HBS 음악 방송은 나오지 않은 터였다.
이번에 도깨비 활동 때도 HBS 쪽 방송은 안 나오기도 했고.
당분간은 아마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방송국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스보 멤버들의 뒤에서 마스크를 쓴 채 같이 꾸벅 인사를 했다.
두터운 마스크를 썼으니 아무도 우리를 알아볼 수가…….
“뉴블랙이다!”
“부, 불…… 아 불백이래. 블랙이 왜 여기 있어?”
“뉴블랙 맞죠? 머리색이 뉴블랙이네!”
눈을 동그랗게 뜬 HBS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여기저기서 소란이 벌어졌다.
방송국과 사이가 안 좋은 우리가 등장해서 많이들 놀란 분위기였다.
“이상하네.”
돌아가는 분위기가 뭔가 이상해서 작가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작가님.”
“네.”
“저희가 사간 촬영으로 온다는 거, 다들 알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아. 촬영 협조는 됐어요. <사람이 간다> 촬영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흔쾌히 허락을 해서…….”
이제 ‘그런데’가 나올 타임이었다.
“근데 뉴블랙이 온다고까지는 언급을 못했거든요. 그때 당시만 해도 출연 확정이 안 된 상태라서.”
“아.”
“아마 저희 출연진이 오는 걸로 생각했을 거 같아요.”
그제야 납득이 갔다.
자기들 친구라며 엣헴 하는 스트릿 보이즈와 함께 HBS 스탭들에게 인사를 할 때였다.
복도 끝 화장실에서 나오는 누군가 보였다.
손에 양치컵을 들고 있는 피곤한 인상의 남자. 우리가 스보에게 속삭였다.
“10시 방향. 피디님.”
“피디님이야?”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성큼성큼 걸어가서 양치컵을 들고 있는 HBS 인기가수의 PD에게 인사했다.
작년과 재작년에 연말 프로그램을 맡았던 바로 그분이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어어, 그래요. 좋은 아…….”
눈이 딱 마주쳤다.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려던 상대의 얼굴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푸쉬식 하고 쭈그러들었다.
굉장히 껄끄럽고 당장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하는 듯한 분위기.
우리가 반짝반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아…… 어…… 뭐, 여기는 어쩐 일로?”
“오늘 녹화하는 <사람이 간다>에서 스트릿 보이즈의 일일 매니저를 맡게 됐어요.”
“그, 그렇구나.”
주변에 가득한 카메라를 곁눈질하는 PD에게 우리 막내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갔다.
“자! TV를 보고 계실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예?”
“TBC랑 HBS의 역사적인 콜라보가 이뤄지는 순간이잖아요!”
“…….”
이건 눈치 없는 막내니까 요청할 수 있는 거였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을 백만 수플레들을 향해 한마디 해 달라는 요청에 상대가 당황했다.
3초 동안 눈을 데굴데굴 굴린 PD님이 택한 선택지는 바로.
“어우, 내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 가지고! 반가웠습니다!”
줄행랑이었다.
빠르게 파파팟 도약하는 PD님의 뒷모습에 제작진이 고개를 갸웃하고 스보와 우리가 조용히 웃었다.
“가셨네.”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지호에게 우리가 다가가서 머리와 등을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왜 그래요?’
‘잘했다. 5호기.’
‘저 뭐 잘했어요?’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더니 곧바로 좋아하기 시작한다.
리혁이가 생수병 뚜껑에 빨대 구멍을 뚫는 용도로 쓰는 펀치 기계를 꺼내서 막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거 쓰게 해 줄게.”
“허어……! 이거 진짜로 제가 해도 돼요? 대박……!”
“원래 내가 하려던 건데 너 주는 거야.”
“고마워여…….”
아주 귀한 걸 양도받았다면서 막내가 눈을 촉촉이 빛냈다.
어린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조용히 웃고 있는데, 그걸 또 부러워하는 스트릿 보이즈가 보였다.
LB가 힝 하고 볼을 부풀렸다.
“나무도 펀치펀치 하고 싶은데.”
“적당히 해. 형.”
막내인 기원이 상냥하게 웃으며 LB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모습에 다들 박장대소했다.
곧바로 대기실로 들어가 드라이 리허설 준비를 하는 가운데.
관리감독 역할로 나온 팬매니저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뉴블랙 여러분!”
“네!”
“조금 이따가 집결 장소로 가서 사전녹화 인원 체크해야 되는데. 누가 같이 갈래요?”
“제가 갈게요. 지금은 제가 할 일이 없어서.”
“그래요. 중현 씨.”
손을 들고 나선 중현이에게 우리가 말했다.
“정체 들켜서 소란 일으키지 말고.”
“저만 믿어요. 형.”
중현이가 빵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를 썼다. 그 위에 짙은 선글라스도 하나 써 주고.
패딩 아래로 입은 후드티 모자까지 썼다.
“짜잔.”
정체불명의 타이어맨처럼 변한 중현이가 둠칫둠칫 팔을 들고 춤추는 광경에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 * *
-이번 역은 가양, 가양역입니다.
가양역에 내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르 이동했다.
모두 스트릿 보이즈의 사전 녹화를 보러 온 팬들이었다.
‘막방이다!’
이대로 사녹 추첨에서 떨어지는 건가 싶었는데. 그래도 막판에 당첨되어서 너무 좋다.
그대로 등촌동 HBS 공개홀 앞까지 걸어가자 이미 팬들이 많았다.
외국인들도 끼어 있는 혼잡한 풍경 속에서 ‘몇 번이세요?’ 하면서 자신의 줄을 찾아갔다.
“인원 체크 시작할게요!”
평소처럼 팬매니저가 이것저것 확인하며 인원체크를 하는데.
“저 사람은 뭐…… 예요?”
“그러게. 뭐지.”
팬매니저의 뒤편에서 정체불명의 호빵맨이 둥실둥실 걸어 다니고 있었다.
빵빵한 패딩을 입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훤칠한 느낌이 나는 인물이었다.
‘뭐지?’
처음에는 우리 애들이 팬들 놀래켜 주려고 분장이라도 하고 나온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스트릿 보이즈에서는 본 적 없는 실루엣이었다.
“저기 근데 카메라 맞는 거 같죠?”
“맞는 거 같은데요.”
팬들이 속닥거렸다.
팬매니저 태도가 평소보다 뭔가 정중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무언가 촬영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지?’
빵실빵실한 패딩 때문에 짐작이 안 간다.
그러는 동안 인원 체크가 진행됐다.
준비물을 깜빡하는 바람에 탈락하는 팬들을 모두가 자기 일처럼 안타깝게 바라보는 가운데.
“…….”
입장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한둘 나오면서 호빵맨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했다.
막 안타까워하고.
어떻게 뭔가 해 주고 싶어서 발을 살짝 동동 구르는 것도 그렇고.
‘진짜 누구지?’
입장 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손등에 촙촙 하고 찍어 주는데 손가락도 굉장히 길고 예뻤다.
하지만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기 가수를 보러 온 팬들에게는 주변의 다른 것들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으니까.
약간의 호기심도 인원체크가 끝나면서 뚝 끊겼다.
‘이제 어디서 기다리지?’
팬매니저의 공지가 끝나고 팬들이 웅성웅성할 때.
멀찍이 떠나던 신규 매니저가 후드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머리를 슥슥 긁적였다.
어디선가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
“……?”
그 바람을 타고 후드티 속에서 뻗어 나온 머리카락이 한 가닥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색.
물빛으로 염색한 파란색 머리카락이 하얀 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어?”
몇몇 팬들이 쪼그려 앉아서 그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분명히 본 적 있는 색이었다.
“이거 그거랑 똑같네요. 뉴블에 중현 머리색.”
“그러네요.”
오 하고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
“……!”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던 팬들이 눈을 번쩍 떴다.
어딘가 익숙한 시무룩한 어깨.
오뚝한 코.
손등에 스티커를 붙여 줄 때도 촙 하듯이 곰발바닥 도장을 찍어 주는 듯한 느낌.
“잠시만요.”
“왜들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여기저기서 질문이 날아오는 가운데 몇몇 사람들의 핸드폰에 도깨비 안무 영상이 재생됐다.
물빛 머리카락의 중현이 센터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꿀꺽.
셜록 홈즈처럼 단서를 추리하던 ‘나무가 그루터기가 될 때까지’라는 닉네임의 팬이 다른 영상을 하나 더 띄웠다.
[뉴블랙 TV - 경찰과 도둑 편]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도둑 중현.
겁에 질린 경찰관 리혁과 지호를 추격하는 중현의 콧대가 장면 속에서 선명하다.
방금 봤던 그 콧대였다.
“…….”
추리를 마친 콘크리트들이 견고한 얼굴로 말했다.
“맞는 거 같죠?”
“맞는 거 같은데요.”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지……?”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래도 금세 알아봤을 텐데. 팬매니저와 함께 있어서 확인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터였다.
‘누가 이런 걸 상상이나 했겠냐고…….’
곧이어 현장에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중현이 온 거 같대요, 중현이요? 하는 이야기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 콘크 지금 당황스러움]
사녹 왔는데 뉴블랙 중현(으로 추정)이 스티커 붙여줌
하지만 안타깝게도…….
-뭔 소리야
-뭐야ㅋㅋ
-드립 실패한 듯ㅋㅋㅋㅋㅋ
-재미없다
-뉴블랙 넣는다고 다 개연성 있고 그런 거 아닌디;
-그 스티커를 타돌이 왜 붙여 줘ㅋㅋㅋㅋㅋㅋ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된 댓글 현장.
‘아니……!’
‘진짠데.’
‘우리 진짜로 말한 건데.’
현장의 팬들이 답답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