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87화
53장. 까치까치 설날은
웅성웅성.
테마파크의 호러 섹션에서 좀비를 맡은 연기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야?”
고참 좀비인 리처드가 다가서자 좀비 중 하나가 말했다.
“한국에서 온 TV들이 무슨 쇼를 선보이고 있어.”
“그래?”
입구에 난 창에 고개를 들이밀고 구경하는 좀비들을 보고 있자니, 그도 호기심이 일었다.
‘한국에서 온 TV들…….’
리처드가 멈칫했다.
“TV들?”
“응.”
“TV들이 쇼를 선보이고 있다고? 그게 뭔 소리야?”
지금 한국 유명 리얼리티 쇼에서 촬영이 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미스터 프로듀서라는 이름의 쇼.
이곳에서 좀비 연기에 대해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뭔 소리인데.’
TV들이 쇼를 선보이고 있다는, 주어가 이상한 문장.
리처드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동료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봐봐. 대장.”
리처드가 입구에 난 유리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
하얀 동그라미 안에 있는 6인조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고, 그들을 에워싼 TV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TV가…….
“TV가 춤을 추고 있어?”
둠칫둠칫하는 움직임까지 선보이는 이동식 TV였다.
절도 있게 무대 대형으로 지이잉- 지이잉- 하고 있고, 그때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정확히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렴구가 계속 메아리친다.
“Kabi Kabi Dokabi.”
“Oh! Dokabi.”
리듬에 맞춰 좀비들이 둠칫둠칫 어깨를 흔들었다. 화면 속에서 물결치는 도깨비춤을 따라 하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리처드는 멍하니 그 광경을 구경했다.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어서 이동하는 TV. 그 안에서 그래픽과 어우러진 미남들이 뭔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디스토피아 영화에 나오는 광경 같은데. 정부가 시민들을 알록달록한 영상으로 세뇌하는 느낌.”
“그런 느낌이긴 하네.”
“그나저나 TV 움직임 보소. TV계의 마이클 잭슨이네.”
문워크를 하듯이 샤라락 부드럽게 움직이는 TV 바퀴.
하나 사고 싶다고 하는 락밴드 좀비의 말에 의사 좀비가 검색을 해서 1만 달러에 상응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말해 주었다.
좀비들의 마음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을 때.
“근데…….”
리처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들인데.”
“그러게.”
데굴데굴 굴러가는 TV 속에서 알록달록한 머리색으로 웃는 미남들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으으으음…….”
턱을 매만지던 좀비들 중 이마에 도끼 꽂힌 좀비가 도끼를 긁적이며 외쳤다.
“아!”
“알았어?”
“그… 걔네랑 좀 닮은 거 같은데. 블루문에 나오는 애들 말이야. 헤일리 블루 옆에서 춤추는 애들.”
“아. 그런가?”
블루문이라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노래였다.
거기서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진지하게 노래 부르던 5인조.
“이름이 뭐더라…….”
Black이 들어가는 건 확실했다.
콜라보 그룹명이 블루 블랙이라고 되어 있었으니까.
그때 뚱보 좀비가 이의를 제기했다.
“머리색이 다르잖아. 전혀 말이 안 되는데.”
“머리야 염색하면 되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굶주린 좀비가 뚱뚱한 건 말이 되냐?”
“Hey!”
“말이 그렇다는 거지.”
주변에서 그런 말 말라며 눈치를 줄 때, 누군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은데. 분위기가 다르잖아.”
“그런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동양권에서 서양권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다고 하듯이,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의 얼굴 구별이 어려운 미국인들이었다.
이내 아닌 쪽으로 결론이 났다.
블루문에서 우아하게 웃던 밤의 귀족들과 저기서 개구쟁이처럼 에베벱 하는 장난꾸러기들이 같은 사람일 리 없었다.
“아니겠지.”
“맞아. 완전 다른데.”
“아닐 거야.”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을 하며 훈훈하게 웃는 좀비들이었다.
* * *
KG 전자 홍보팀이 프로그래밍한 TV 댄스에 힘입어, 원격 도깨비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오랜만에 만난 미스터 프로듀서 출연진과 재미있는 토크도 하고.
미프 측에서 준비한 코너를 짧게 함께 하면서 도깨비에 대해 홍보를 했다. 조금 뜬금없는 출연이라 어떻게 자연스럽게 포장할까 궁금했는데.
-많이 놀라셨죠?
신무록 피디님이 자연스럽게 넘겨주셨다.
-이제 여러분은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을 용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야! 저거 붙잡아!
한국인 좀비들에게 습격당하는 신무록 피디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미프의 원격 출연은 끝을 맺었다.
기지개를 쭉쭉 켜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축했다.
“끝났드아아아!”
“고생했어요!”
도깨비의 프로모션은 이제 끝이었다.
버블링 언더 11위 이후로 <앨런 데일 쇼>에서 뮤지컬 게스트로 한 번 나와 달라는 요청을 받긴 했는데, 아무리 빨라도 연휴가 지나고 난 후 스케줄이기에 마음이 여유로웠다.
일이 순조롭다.
-뉴블랙-관광공사 콜라보 영상, 2주 만에 전체 조회수 ‘1억 뷰’ 돌파
-도깨비 MV, 공개 9일 만에 5천만 뷰..“도깨비스럽네”
-각국 음원차트에 이름 올린 뉴블랙 ‘도깨비’, “해외에 먹힌 매력 포인트는?”
관광공사와 콜라보해서 지금도 매일 업로드되고 있는 안무 영상은 조회수가 쭉쭉 올라가는 중이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전국 사찰 편과 안동 편은 조회수가 어지간한 뮤비보다 더 많았다.
국내와 더불어 해외의 관심도 톡톡했다나.
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서 17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각국 음원/앨범 차트에 대한 소식이 쏟아져 들어왔다.
“노르웨이…?”
“우리 노르웨이 고등어 특집해서 되게 좋게 봐준 거 아닐까요.”
“우린 그런 특집을 한 적이 없어. 중현아.”
“아. 제 마음속으로 했나 봐요.”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를 비롯해서 남아공이나 남미의 음원차트에도 우리 이름이 올랐다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반응은 한결같았다.
“……왜?”
이유를 알아야 아, 하고 납득이 되는데. 대뜸 브라질에서 음원 차트에 올랐다고 하니 얼떨떨했다.
노래가 좋은 건지, 현지 팬들이 있어서 그런 건지.
회사도 우리도 분석이 안 돼서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미국이랑 유럽에서 투어 규모를 늘리기를 잘했네.”
“그러게여….”
처음에 회사에서 올해 월드 투어 규모를 이야기해 줬을 때만 해도 농담을 하나 싶었다.
생각 이상으로 해외 공연장 규모를 크게 잡아서.
K팝 콘을 제외하면 한 번도 콘서트가 없었던 북미.
거기서만 7회 공연으로 대략 10만 규모로 잡은 탓에 담당자 분에게 진지하게 문의를 했다.
-이 인원이 정말 다 오나요?
-저희가 굿즈나 앨범 판매량 등으로 보수적으로 예상치를 잡았는데… 충분히 가능합니다. 걱정 마세요.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내 손으로 앨범을 만들긴 하지만 그 앨범이 가져오는 성과가 내 손을 떠나서 두둥실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요즘 들어 그런 느낌이 잦았다.
“에이, 몰라. 수플레들이 어떻게 해 주겠지.”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 빼고는 우리가 할 일이 뭐가 있나.
기우제 지내듯이 대박 나게 해 주세요! 한다고 대박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저번에 되지 않았어요?”
“기우제?”
내 말에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신 같긴 한데, 우리가 기우제 지낸 다음에 비 내렸잖아요.”
“그, 그건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야.”
뉴블랙 TV에서 옛날 기우제를 재현하는 특집을 했었는데 진짜 비가 내린 적이 있긴 했다.
내리더라고. 진짜.
지역 농민 분들로부터 무수한 부침개와 막걸리 선물을 받은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합시다! 일!”
손뼉을 짝짝 치면서 동생들을 다독였다.
도깨비의 모든 프로모션을 끝내고 이제 설 연휴까지 하루만 남긴 날.
오늘의 스케줄은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27회 한국 가요대상 시상식이었다.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하는 이 어워드는 다른 신년 어워드들과 마찬가지로 작년도 성적을 종합해서 주는 시상식이다. 이번에 우리는 본상 수상을 비롯해 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대상 후보에 오른 그룹은…….
“아이고 행님덜!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오늘도 깨발랄했다.
조금 안 좋은 말을 섞어서 표현하면 시…발랄이라고 해야 되나.
“시발랄!”
“쓰발랄! 개좋은데요? 우리 구호로 해야겠다.”
당사자인 미소년들이 행복하게 웃으면서 꺄악 하는 모습에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비주가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물었다.
“근데 너네 무대 의상 안 추워?”
“뭐. 야외도 아니고. 이래야 좀 뇌쇄적인 맛이 살거든요. 뇌쇄… 뇌쇄 맞나? 헷갈리네.”
“행님들은 되게 보수적이에요. 보면.”
왠지 모르게 부끄부끄한 민소매 의상을 입은 틴스피릿을 보며 우리가 눈매를 좁혔다.
“미성년자는 그런 옷 입고 댕기는 거 아니다.”
“에이, 또 잔소리.”
“지호 봐. 얼마나…….”
너희에 비해 진중하냐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혼자서 대기실에 놓인 과자를 옴뇸뇸 하던 막내와 눈이 마주쳤다.
큰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하현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과자 도둑 같은디요.”
“현달이는 조용히 해.”
“아! 행님!”
내가 본명을 부르며 놀리자 기겁하는 하현이었다.
그렇게 요즘에 나오는 무선 이어폰, 안 오는 택배, 새로 오픈한 동네 맛집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참.”
연후가 턱 끝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거… 뭐지. 그거 했담서요. 스보 형들 매니저.”
“맞아.”
“존잼이었을 것 같은데. 저희랑 하지 그랬어요?”
“그게 우리가 고른 게 아니야.”
내가 그 말을 하며 웃을 때, 리혁이가 연후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의외로 재미없었을 것 같은데.”
“아직 리혁이가 뭘 모르네. 우리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게 방송에 못 나오니까 그렇지. 자, 우리가 완전 맛없는 음식을 너희한테 갖다 줬다고 쳐 봐.”
“가만… 둬야지. 방송이니까.”
2박 3일 동안 카메라 앞에서 입가를 파르르 떨어가며 미소 지었을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했는지 이내 틴스피릿이 납득했다.
“어우, 상상만 해도 현기증 나네.”
“근데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사냐? 팬들한테 자연스러운 모습을 언제 오픈하지?”
“오픈을 뭘 언제 해. 멍청아. 오픈하면 팬분들이 쓰레기라고 욕하면서 다 나갈걸.”
“그래도 바닥에 침 한 번 안 뱉고 살았는데….”
“맞아. 삼켰단 말이야.”
곧이어 나한테 어떻게 해야 이걸 자연스럽게 오픈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녀석들에게 답을 말해 주었다.
“50.”
“50초 동안 팬분들한테 디지게 맞으면 된다구요?”
“아니. 50세.”
“…….”
“50세쯤 돼서 오픈하면 돼.”
내가 그게 너희 운명이다 하면서 웃어대자, 울컥한 미소년들이 거칠게 항의하려고 했다.
우리 동생들이 나서서 말렸다.
“참아. 참아.”
“그냥 나잇값 못 하는 사람이야.”
마지막 말은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유롭게 넘겼다.
손을 파르르 떨면서 젤리를 집어먹었다.
그때, 혼자서 유유자적 핸드폰 셀카를 찍고 있던 휘연이 물었다.
“근데 매니저 잘 하셨어요?”
“응.”
“상상이 잘 안 가서. 그니까 행님들이 음악 방송에 가서, 아씨 자꾸 머릿속에 중현이 행님이 난입하네.”
우리가 매니저를 잘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이웃집 소년들의 말에 중현이가 말했다.
“아니야. 우리 엄청 잘하고 왔어. 그치?”
“맞아.”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잘 하고 왔는데….”
혹시 방송 내용이 스포가 될까 봐 이야기를 못할 뿐. 우리가 얼마나 크게 활약했는지 자랑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같았다.
“아. 예.”
‘너희가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 하는 건 알겠지만, 우리는 너희의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를 압축해서 표현한 한마디였다.
“한 번 들어 봐봐.”
“아. 예예.”
“아니. 들어 보라니까.”
우리가 다시 한번 업적을 자랑하려고 할 때였다.
달칵.
마침 문이 열리며 우리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 줄 당사자들이 등장했다. 비척비척 움직이는 9인조 힙합 그룹.
삽시간에 대기실이 비좁아지는 느낌을 받을 때.
소파 팔걸이나 벽에 털썩 달라붙은 9인조가 흐어어어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한조가 주변에 우리 측 스탭들이 있는지 확인하고는 말했다.
“너희 왔다 간 다음에 매니저 형들 일 처리가…….”
“일 처리가?”
“성에 차지 않아서 너무 괴롭다.”
“…….”
한조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일을 이상하게 하잖아. 너희가 가져온 그 일… 아무튼 그것도 처리를 이상하게 하려고 그러고.”
“실장님. 돌아오세요. 실장님…….”
“감자 매니저님이랑 비주 매니저님도 돌아오세요. 우리 밥이 맛없어졌어….”
“스케줄이 이상해.”
우리에게 달라붙어서 돌아와 친구들아! 하며 흐느적대는 스보의 모습에 틴스피릿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스보의 얼굴에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딱! 딱!
부싯돌을 치듯이 손가락을 튕기는 미소년들에게 우리가 물었다.
“왜 그래?”
“아. 뭐 혹시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건가 해서.”
“야!”
“아님 말고.”
요즘 따라 더욱더 스스럼없어진 이웃집 소년들에게 이번 설 특집을 꼭 보라고 항의했다.
* * *
26회 한국가요대상에서 우리는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가요대상, 대상 ‘뉴블랙’.. 뮤직비디오, 본상 포함해 3관왕
-‘대상’ 뉴블랙 “프로듀싱팀과 함께 100년 일하고파..” 프로듀싱팀 SNS로 화답 “괜찮다”
-[2017 뉴블랙 특집②] 새해에도 어김없이 ‘대상’, 청춘들의 비상(飛上)은 어디까지일까
‘낙화’로는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했고, ‘Empire’로 대상을 수상했다.
16년 새해 초에 나왔던 스페셜 앨범이었던 Blue Winter가 조명을 못 받은 게 아쉽긴 했지만 나름대로 좋은 결과였다.
그렇게 1월 말이 되었을 때.
“새해 복 많이 받고. 다들 푹 쉬고 오려무나.”
“네!”
박규호 대표님이 설 연휴를 맞이한 우리를 배웅하러 나왔다.
숙소 앞.
찬바람에 흩날리는 몇 가닥의 옆머리를 수줍게 매만지며 대표님이 말했다.
“내가 말한 것도 꼭 기억하고.”
“네. 기억할게요.”
이 정도 성공해서 돈이 벌리면 정말 주변에 온갖 날파리가 꼬인다면서, 연예인들이 명절에 당하기 쉬운 사기 유형 등을 가르쳐 주신 대표님이었다.
돈 문제 관련해서는 세무사를 연결해 주기도 하시고.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꼼꼼하게 챙겨 주신 대표님과 포옹을 했다.
“대표님도 설 명절 잘 보내세요.”
“그래. 어디 다치지 말고 돌아오고.”
“네!”
“사랑한다.”
우리가 손하트를 보내자 대표님이 껄껄 웃으면서 행복해하셨다.
곧바로 인사를 하고는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탔다.
집이 서울인 비주나 지호는 가족들이 마중을 나와 있고, 서울이 아닌 나머지 셋은 회사 차량에 올라탔다.
설 명절에 근무하는 배우팀 매니저 분들의 차량이었다.
“다들 그럼 나중에 봬요!”
“형도 잘 있다 와여!”
“여?”
“요! 요! 요! 에이! 얼른 가 버려요!”
키득거리는 지호네 가족들과 비주 가족들에게도 인사하고는 다시 한번 서로 손을 흔들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혁이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리혁아!”
“왜요.”
“미국에서 기념품 사 와라!”
지이이잉 하고 썬팅된 차창이 올라갔다.
매정하게 매연을 남기며 출발하는 리혁이 차를 보며 에이 하고 있을 때, 도도도 달려온 비주가 차창 너머에서 보따리를 내밀었다.
꽤 무겁다.
“어우. 이건 뭐야?”
“엄마가 이번에 좀 먹을거리 준비했다고 할머님한테 전해 드리래요.”
“어머님! 감사해요!”
늘 싱글벙글한 비주 어머님이 꺄르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연휴 끝나고 보자!”
“형도 잘 지내요!”
서로에게 손을 흔들고는 마침내 차량이 출발했다.
원래는 고속버스나 KTX를 타고 이동하려고 했는데, 혹시 모를 상황을 우려해서 이렇게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내비 찍은 대로 가면 될까요?”
“네.”
<우리 가족은 외계인>을 찍으면서 몇 번 정도 지원을 나와 준 분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조수석에서 간식거리 등을 까먹으면서 매니저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군산으로 향했다.
“설에도 일하시나 보네요.”
“네. 어차피 갈 데도 없어서… 이때 일하면 돈이 많이 나오니까. 여기서 꺾으면 되나요?”
“네.”
“어유. 길 찾기가 수월하네요. 전에 비주 씨랑 차 탔을 때는 실수로 고속도로 들어갈 뻔했거든요.”
매니저 분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연휴 시작날이라 그런지 차가 엄청 막히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빠르게 군산에 도착했다.
내비를 보면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매니저 분이 물었다.
“그런데 집은 아니신가 봐요?”
“네.”
멀찍이 ‘군산의 자랑, 선우주’ 하는 명절 플래카드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할머니가 여기서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집은 원래 다른 곳에 있어요.”
“아하.”
“여기서 좌측으로 가시면 될 거예요. 여기 동네가 조금 한적한 곳이라.”
셔터를 내린 가게들부터 시작해서 한적한 명절 풍경에 벌써부터 마음이 넉넉해진다.
곧이어 주택들이 주르륵 나오는 가운데.
김덕순 여사를 만날 생각을 하며 가슴에 양손을 올리고 콧김을 뿜을 때였다.
“오우.”
매니저 분의 감탄사와 함께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는 내비 알림이 들렸다.
“어디 박물관이라도 되나 봐요.”
“그러게요.”
높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안에 고급스러운 지붕 정도만 보이는데.
뭔가 느낌이 집이 아니고 박물관 같다.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빼꼼 내밀던 매니저 분이 물었다.
“여기가 약속 장소 맞아요?”
“잠시만요.”
할머니에게 ‘나 왔…’하고 문자를 보내려고 할 때였다.
덜컹.
육중한 철문이 슬라이딩 도어처럼 지이이잉 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침 햇살에 빛나는 하얀 저택.
차창을 내린 내가 눈을 비볐다.
“…….”
하얀 저택의 2층 테라스에 고급스러운 색동저고리를 입은 고양이와 진주귀걸이 귀부인이 한 명 있었다.
유바바인 줄.
매니저 분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도 입을 벌렸다.
“……할머니?”
바로 그때.
선글라스를 쓴 우리 김덕순 여사가 손에 든 리모컨을 뾱- 하고 누르자 저택 벽에 현수막이 촤르륵 펼쳐졌다.
[웰캄 투 김덕순 하우스]
진정한 부(富)를 보여 주겠다는 듯 우아한 포즈를 취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뭔데.
아니, 진짜 이거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