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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88)화 (58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88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우주 씨도요.”

차량이 부아앙 하고 떠난 후.

캐리어와 짐을 들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드르르르르, 하면서 대문이 닫혔다.

“와…….”

이게 집이야. 궁궐이야.

높은 담장 아래로 나무가 심어져 있고 곳곳에 파릇파릇한 잔디가 깔려 있었다. 대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돌이 깔려 있고.

“……연못까지 있어?”

아무 물고기도 없긴 하지만 마치 황금 잉어가 살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아한 연못이었다.

마당이 이 정도니 집은 말할 필요도 없다.

2층 집은 저택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규모가 웅장했다. 마당 뒤편에 유리로 되어 있는 온실도 하나 보이고.

군산 최고의 부자가 사는 집 같은 분위기였다.

덜컹.

문이 열리고 비단 가운에 숄을 걸친 할머니가 걸어 나왔다.

“왔냐.”

“…….”

“너 온다고 그래 가지고 쪼까 꾸미고 있었는디. 어떠냐. 괜찮냐?”

“다른 사람 같아. 김덕순이 아니고 군산 최고 부자 김순덕 씨 같은 느낌.”

놀리는 거였는데 할머니가 깔깔 웃는 걸 보니 마음에 든 모양이다.

“한겨울에도 주둥이 둥둥 떠다니는 거 보니까 멀쩡하네. 얼른 들어와. 입 돌아가겄다.”

“할머니이이이이!”

“으휴. 으휴. 이놈의 거.”

할머니에게 도도도 달려가서 푹 안겼다. 따스한 기운과 함께 주름진 손이 내 등을 토닥이는 게 느껴졌다.

내 하나뿐인 가족.

잠시 할머니를 안고 있는 동안 그간의 걱정, 긴장 등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근데 할머니.”

“응.”

“머리 언제 감았어?”

“어제 감았다. 이 옘병아.”

“아약!”

등짝을 찰싹 맞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고양이 나비가 한심하단 얼굴로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나비야. 오구구구구!”

신발 벗고 들어가자마자 나비를 안아 들려고 했는데.

팡!

“아야!”

솜방망이 펀치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치즈 냥이가 퉤! 하는 듯한 느낌으로 도도도 뛰어가더니 소파 위에서 나를 경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쟨 또 왜 저래?”

“너 저번에 휑 가고 삐진 거지. 뭐. 고양이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더라.”

“그래?”

그냥 날 까먹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기억은 하는 것 같다.

“테레비에 맨날 나오는데 어떻게 얼굴을 까먹겄냐. 네가 테레비에 나오기만 하면 쟤가 멀뚱멀뚱 보고 있어.”

“허어어어!”

“큰 소리도 내지 말구.”

고양이들은 몸짓이 크거나 호들갑을 떨거나 갑자기 소리 지르거나 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나.

“지호랑 만나면 대박이겠는데.”

“나비 곁에 얼씬도 못하게 할 겨.”

할머니가 투덜투덜 하면서 내가 건네준 보따리들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내가 거실 바닥을 톡톡 두드리면서 나비 컴온 하고 있는 동안, 할머니가 말했다.

“에구구, 뭘 이렇게 또…….”

“비주네 어머님이 할머니한테 꼭 전해 드리라고 했어.”

“그려? 아유, 야무지게도 줬네.”

부담스럽다 어쩐다 하고 있지만 입가가 슬금슬금 올라가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나비. 할매한테 컴.”

색동저고리 옷을 입은 치즈 냥이가 할머니 품으로 쏙 안겨 들었다.

“말 알아듣네?”

“요물이여. 요물. 다 알아들어. 그냥 지 귀찮을 때만 발로 귀 비비면서 무시하는 거지.”

“지호랑 똑같네.”

품에 고양이를 안아 든 할머니와 함께 집안 투어를 했다.

가장 먼저 유리창 너머로 중정을 바라본 후에 1층과 2층 곳곳을 둘러보았다.

“집 좋네.”

“그려?”

“불백으로 재벌 됐어. 우리 할머니.”

2층에 있다는 내 방 투어까지 마친 후.

할머니와 오순도순 소파에 앉아서 조용한 휴식을 즐겼다. 햇살이 쏟아지는 바깥마당 풍경에 즐거운 웃음이 나왔다.

“근데 이사는 언제 했어?”

“한 몇 주 됐나.”

“짐 옮기고 푸는 건?”

“숙자가 도와주고 그랬지.”

“엄마아빠 물건은?”

“따로 옮겨 놨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좋네.”

“혹시 몰라 가지고 이전 집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아냐. 나도 새 집이 좋아.”

“그려?”

“그려.”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며 웃고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간만의 휴식이다.

몇 달 동안 달려온 다음에 멈춰 선 종착지는 정말이지 달콤했다.

아니. 종착지보다는 환승역에 가깝겠다. 잠시 다음 열차를 탈 때까지 숨을 고르는…….

할머니가 물었다.

“일은?”

“잘돼 가.”

“꾀죄죄한디…….”

“할 일이 많아서 그려. 이제 새 앨범도 들어가야 돼서.”

“또? 그 돗가비는?”

“그거는 스페셜이고 이건 정규. 백반집으로 치면 스파게티가 깜짝으로 나왔으니까, 이제 본 메뉴인 불백을 파는 거지.”

“흐으음.”

할머니가 고개를 까딱였지만 잘 이해한 것 같진 않다.

매번 차분하게 설명하긴 하는데 한국 가요 시스템은 할머니에게도 아직 낯선 듯했다.

“이번에 할머니랑 재미있게 놀러 댕기기도 하고. 잠깐 머리 식히면서 차기작 구상 좀 하려구.”

“그래서 저거 들고 왔냐?”

“아. 저건 연습용. 요새 전공자한테 레슨 받고 있거든.”

바이올린 케이스를 보던 할머니가 지독하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걸 연습해서 이제 김덕순 교향곡 그런 거 써볼 거야.”

“1악장은 옘병이냐.”

“우리 할머니 악장도 아네?”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던 것도 잠시.

나비를 내려놓은 할머니가 나를 토닥토닥 안아 주었다.

“무리하지 말고.”

“응.”

“할매는 언제나 네 편이여. 뭘 하든 간에.”

활동하는 내내 그리웠다.

“…….”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때.

근처에서 바라보던 나비가 폴짝 뛰어서 우리 둘 사이에 안착했다. 몽실몽실한 털 뭉치가 갸르릉거린다.

포옹을 풀었을 때도 나비는 여전히 내 무르팍에 앉아 있었다.

미튜브에서 본 대로 주먹을 쥐어서 손의 표면적을 줄인 채 고양이의 얼굴 근처로 가까이 가져다 댔다.

“……오.”

그러고는 서서히 손을 움직여서 등 부근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이내 눈을 감은 채 갸르르릉 하는 고양이를 보면서 할머니한테 생긋 웃었다.

“봤지?”

어렸을 때부터 동네 길고양이들이나 중국집 강아지들이 나만 보면 행복하게 웃으며 달려오곤 했다.

“나 동물들이랑 사이좋다니까. 원래 동물들도 잘생기고 예쁘고 그런 사람 좋아해.”

“하여간 저 가시나…….”

“그래서 나비가 우리 할머니를 좋아하는 거라니까. 예뻐서.”

“어이구.”

기가 찬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 할머니가 뺨과 입가를 씰룩이는 모습에 나도 기분 좋게 웃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진짜 예쁘다. 우리 할매.

*   *   *

며칠간 할머니와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같이 쇼핑도 하고. 마당에서 불 피워서 고기도 구워 먹고. 요즘에 연습하는 바이올린 자작곡도 들려주고.

-어유. 잘하네. 제목이 뭐여?

-‘연습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딱 지 같은 걸로 지었네.

-연습하기 싫은데 해야 되는 거니까…… 하는 마음을 담아 쓴 곡이야.

그렇게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시간을 보낸 후.

정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

“…….”

지이이잉 하고 열린 대문 너머로 야생 고양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우리 메인 보컬이 있었다.

검은 스웨터와 코트 위로 선글라스를 쓴.

청록색 비니 아래로 푸석푸석한 말포이색 금발이 바람에 흩날린다.

“…….”

“…….”

선글라스를 벗은 리혁이의 눈동자가 멍하다. 마치 ‘내가 지금 뭘 보고 있지’ 하는 듯한 눈빛.

대저택과 나를 번갈아 보던 리혁이가 물었다.

“밤바다 기억해요?”

“응…….”

“낡은 지붕, 오래된 마당 같은 소리 하면서 썼던 가사 속 집이 바로 여기예요……?”

“아니. 그건 이전 집이야.”

뭔가 오해를 단단히 하고 있는 눈빛이기에 빠르게 해명했다.

“여기는 할머니가 불백 팔아서 산 집.”

“아. 어쩐지.”

그제야 납득했다는 얼굴을 한 리혁이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콧물을 훌쩍이던 리혁이가 떨면서 들어왔다.

“집이 너무 으리으리해서 깜짝 놀랐어요.”

“나도 놀랐어.”

“음, 그렇…… 에취!”

“추워? 너 택시 타고 왔잖아.”

“이게 추운 데서 계속 있으면 또 모르는데, 갑자기 따뜻한 데 있다가 추운 데 나오면 더 춥고 그러잖아요.”

“그치.”

그렇게 대답하며 리혁이의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비행은?”

“괜찮았어요. 이번에 재미있게 시간 보내기도 했고.”

LA에 있는 본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빠르게 귀국한 리혁이었다.

어머님 사업이 바쁘다고.

“……미국에 있으니까 쉬는 느낌이 안 들 것 같더라고요. 이번 휴가는 휴식이 목적인데.”

“한국이 최고지. 예인이는?”

“잘 지내던데요. 저번 학기에 최우수 학생으로 뽑혔대요.”

동생이 명문대에 갈 것 같다며 자부심으로 으쓱으쓱하는 리혁이의 모습에 웃었다.

어쨌거나 조기 귀국을 했는데 숙소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멤버들과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나.

리혁이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정말 치열했다.

중현 [우리 집에 고기 쌓아두고 있음]

중현 [쌀도 많고 고기도 많아]

중현 [농사 체험할래?]

비주 [사과 농장 체험,]

지호 [ㅋㅋㅋㅋㅋㅋㅋ 다들 뭘 모르네]

지호 [제 노비하면 별장에서 묵게 해 드림]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있었더니 리혁이가 나를 선택했다.

“피하려고 조용히 있었는데…….”

“뭘 모르시네.”

리혁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내가 얼마나 분위기 메이커인데. 내가 있으면 집안이 행복 가득이에요. 청소도 대신 해 주고 노래도 잘 부르고.”

“아, 예.”

틴스피릿에게서 배웠던 표정을 그대로 시전하자 리혁이가 용처럼 불꽃을 뿜어댔다.

그렇게 마당에서 셀카를 몇 장 찍던 리혁이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근데요.”

“응.”

“나 진짜 들어가도 괜찮아요? 할머님이 싫어하시는 거 아냐?”

“전혀. 할머니가 좋아하던데.”

의향을 묻자마자 김덕순 여사가 바로 콜을 때렸다.

혹시 명절에 왔다며 미워하거나 그러면 어쩌냐며 안절부절못하는 메인 보컬을 차분하게 다독였다.

“미움 받으면 어때. 너 미움 받을 용기도 읽었잖아.”

“읽었는데 안 생기더라고요.”

“자자! 꾸물거리지 말고 들어갑시다!”

질질질 끌다시피 리혁이를 집안으로 들였다.

선물로 사 온 꽃다발을 품에 든 리혁이가 긴장 가득한 얼굴로 들어서자, 김덕순 여사가 새초롬하게 웃으며 반겼다.

“리혁이!”

“할머님. 안녕하세요오…….”

“왜 이렇게 쪼물딱거리고 늦게 들어와? 날씨도 얼어 뒤지게 추운디.”

어색하게 웃는 리혁이 곁에서 내가 말했다.

“할머니가 싫어할까 봐 못 들어오고 있었대.”

“걱정도 팔자네. 이리 와 봐.”

김덕순 여사가 다가가서 등을 팡팡 두들겨 주며 안아 주었다. 금세 눈시울을 붉힌 우리 메인 보컬이 말했다.

“할머님…….”

“그려. 리혁이.”

“저 포옹은 별로인데…….”

“우리 리혁이는 수영 안 해도 되겄네. 물에 들어가면 주둥이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동동 뜰 테니까.”

“……죄송합니다.”

할머니의 말빨에 반격도 못하는 메인 보컬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에 어서 오라며 내가 어깨를 두드리고, 리혁이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솜방망이가 걷는 듯한 소리가 총총 다가왔다.

뽀짝.

뽀오짝…….

뽀짝뽀짝.

“지금 무슨 소리…… 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리혁이가 발아래 솜뭉치를 보고 식겁했다.

“흐아아아아악!”

치즈냥이가 뛰어 다가온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리혁이었다.

리혁이가 덜덜 떨며 내 뒤로 숨었다.

“고, 고양이…….”

“고양이 처음 봐?”

“사진은 좋은데, 직접 보는 건 무섭단 말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나비는 낯가림이 없어서 반나절 정도면 금세 친해질 수 있어.”

내가 그치? 하고 고양이를 바라보았지만 우리집 치즈냥이는 빤한 눈으로 리혁이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초롱초롱.

내 뒤에 소라게 껍질처럼 찰싹 달라붙어 움직이는 리혁이를 나비의 동공이 주욱 따라가고 있었다.

꼬리를 스윽 세운 채 도도도 다가온다.

그러더니.

“흐악……!”

어깨를 움츠린 채 오들오들 떠는 리혁이의 다리에 나비가 가서 몸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으음……?”

리혁이가 눈만 살짝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어? 했다.

“어…….”

그러더니 이번엔 날 바라보았다.

“원래 이래요? 친해지는 데 반나절 걸렸다면서요?”

“…….”

리혁이의 눈빛에 알 수 없는 환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긴 건가? 내가 선우주를 이겼어?”

“…….”

“내가 이겼네?”

“…….”

“이 순간을 기록해야겠어요. 2017년 1월 29일…… 선우주에게 1승을 쟁취한 날.”

곧이어 얄밉게 깐죽거리기 시작하는 메인 보컬에게 눈을 흘겨 주고는 나비를 바라보았다.

초롱초롱.

마치 변신 로봇 고양이를 바라보는 아기 고양이처럼 눈동자가 땡그런 고양이의 모습에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기대며 말했다.

“정말 알 수가 없다.”

“뭐가?”

“고양이의 마음.”

“헛소리 할 거면 올라가서 베개에다 혀.”

“…….”

“에휴! 비켜 봐! 이거 리혁이 좋아하는 거 해 줘야 되니까. 너는 딴 데 가서 놀고 있어!”

정말 내 편이 없다. 내 편이.

*   *   *

자기가 끼어도 되냐고 말하면서 걱정하긴 했지만 사실 리혁이가 와서 좋은 건 나와 할머니였다.

7살 이후로 오랫동안 우리의 명절은 둘뿐이었으니까.

집에 사람이 한 명 더 추가된 것만으로도 온기가 흘러넘친다.

“어이구! 나비 춤도 추네!”

“귀여워…….”

물론 그 온기 속에서 내가 배제되었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노래 잘하는 고양이와 주름진 고양이의 관심을 받은 치즈냥이가 행복 100퍼센트로 날뛰고 있었다.

그동안 내 핸드폰에 딩동! 하고 답변 알림이 떴다.

[고양이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잘해 주나요]

누가 봐도 얄미운 친구인데 저희 집 고양이가 너무 좋아하네요

이게 가능한가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답변] 태양신의 답변입니다

문제없어 보입니다.

문제라면 작성자님의 심란한 마음이겠죠. 그런 의미로 템플 스테이를 추천 드립니다.

에라이.

나 빼고 즐거워하는 고양이들 틈바귀로 가서 쏙 끼어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멀어질 뿐이었다.

리혁이의 뺨에 발그레한 홍조가 떠올랐다.

“너무 귀엽다. 나 고양이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나비가 귀엽긴 하지.”

“나 사진 좀 찍어 줄 수 있어요?”

고양이의 등에 손을 올리고 꺄르륵 하는 메인 보컬이 사진 속에서 팔불출 같은 모습으로 찍혔다.

얘가 이렇게까지 맑게 웃는 건 처음 본다.

“희대의 악당들도 동물한테는 잘해 주고 그런다더니…….”

“뭐요?”

“웃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 하나둘 셋!”

어쨌거나 리혁이가 와 줘서 나는 물론이고 김덕순 여사도 흥이 났다.

두 명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세 명이 할 수 있는 놀거리가 엄청 많았으니까. 나도 즐거웠다.

명절 때마다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소원이 이뤄졌다.

“근데 이제 그거 할 시간 아니에요?”

“아. 봐야지.”

고양이님이 어화둥둥을 받고 있는 동안 가족끼리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떡을 콕 찍어서 하나씩 먹고, 나비는 리혁이가 든 츄르를 핥아먹고 있는 동안 마침내 TV에 로고가 떴다.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

우리가 도깨비 프로모션으로 찍었던 깜짝 대결 코너가 나올 시간이었다.

[두둥! 둥! 둥둥!]

터미네이터의 BGM과 함께 주세한 설 특집의 예고가 흘러나왔다.

설 특집 미션을 위해 정말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는 멤버들. 중간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벌판도 나왔다.

“멀리까지 가셨네.”

“그러게요. 어쩐지 그 금화 낭비할 때 알아봤어요.”

우리와 대결을 하면서 핫하하! 금화 탕진! 하며 먹거리를 사 먹었던 출연진이 금화 소비를 만회하기 위해 먼 곳까지 간 듯했다.

그러다가 예고 중간에 잠깐 실루엣도 나왔다.

[금화를 훔치기 위해 등장한 강적들까지!]

그런 자막과 함께 ‘아이고’, ‘와아?’, ‘아으으!’ 하는 출연진의 반응들이 흘러나왔다.

우리 얼굴에 (?)하는 검은 동그라미가 가려져 있긴 했지만 누가 봐도 우리였다.

실시간 반응이 벌써부터 복작복작하다.

-뉴블랙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벌써부터 재미있다ㅋㅋㅋㅋㅋㅋ

-두근두근

-오늘 주세한이랑 사람이 간다까지 쫙 보고 나면 완벽

-이젠 실루엣만 봐도 웃김ㅋㅋㅋ

-여러분은 지금 2016년 올해 최고의 예능인 7위에 랭크된 이들을 보고 계십니다

뭔가 검증된 예능인…… 같은 분위기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즐거워하니 됐다.

주세한의 방송이 쭉쭉 이어지다가 중후반부쯤 이르렀을 때.

미션 중간 정산을 위해 TBC 사옥 앞에 모여 있는 멤버들 앞으로 네 도깨비가 덩실덩실 등장한다.

“넌 어디 있냐?”

“나 저기.”

“……그럴 거 같았어.”

출연진 사이에서 일찍이 춤을 추고 있던 도깨비 가면이 인사를 하면서 환호성이 흘러나오던 그 순간.

[!!]

내가 바지를 벗으면서 출연진이 경악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으악! 하며 여희연이 자기 눈을 찌르고, 양옥분 쌤이 허공을 바라보는 가운데 내 바지 안에서 의상이 나온다.

“…….”

“…….”

리혁이와 김덕순 여사, 나비 셋이 동시에 고개가 슥 돌아갔다.

날 바라보며 쯧쯧 하는 느낌.

“그…… 편집이 저런 거야.”

“에휴. 이젠 테레비에서 바지나 벗고 댕기고…….”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게 들리잖아. 할머니.”

가비가비 돗가비 하는 무대가 끝난 후.

주세한 출연진과 우리가 맞대결을 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첫 게임으로 몸으로 말해요?가 나오고.

우리 제시어 [여우를 초대해서 비죽한 호리병을 내미는 두루미]가 나오면서 할머니가 분개했다.

“옘병하고 있네. 방송국 놈들. 저걸 사람이 맞추라고 냈냐. 저걸 맞추면 예능 할애비겠…….”

화면 속 중현이가 외쳤다.

[여우를 초대해서 비죽한 호리병을 내미는 두루미!]

[통과입니다!]

김덕순 여사가 눈을 깜빡이더니 눈을 비볐다.

이어서 적혈구를 묘사하는 내 모습에 할머니가 정자세로 앉아서 감상하는 가운데.

리혁이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봤어요?”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의 댓글이 폭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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