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0)화 (59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0화

‘이건 뭐야.’

문을 열어젖힌 서리혁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뭐…해요?”

“나비랑 놀고 있어.”

고양이가 피아노 건반을 똥땅땅 눌러 대는 것에 맞춰서 우주가 기타를 튕기고 있었다.

불협화음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연주.

기타를 내려놓은 우주가 씩 웃으며 물었다.

“소리 때문에 깼어?”

“아뇨. 뭐.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는데… 그냥 물 마시러 가다가 문이 열려 있길래.”

“소리 때문은 아니지?”

“네.”

우주가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며 다가오는 모습에 리혁이 웃으며 앉았다.

“방음 되게 잘 되어 있네요.”

“우리 김덕순 여사가 손자 온다고 작업실까지 만들어 준 거 있지.”

방음벽이 설치된 방이었다.

품에 들어온 털뭉치를 슥슥 쓰다듬으면서 리혁이 미소를 지었다. 뜨끈한 온기에 마음도 따스해지는 느낌.

“지금 1시 넘었는데 안 자요?”

“자야지. 근데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이것까지만 마저 좀 처리하고 나서 자든지 하려고.”

“일 중독이야. 진짜.”

주변에 널브러진 <할 일> 리스트를 들여다본 리혁이 혀를 찼다.

초등학생이 방학 시간표라면서 5분 쉬고 3시간 공부, 같은 식으로 써 놓은 계획표인데.

차이점이라면 이쪽은 무조건 실천한다는 거였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요?”

“아직 없어.”

상대가 씩 웃으며 말했다.

“같이 할 거 있으면 바로 말해 줄게. 그런데 아직 뼈대 부분 단계라서 이걸 내가 잡아야 되는 거니까.”

“뭐. 알았어요.”

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있는 리더는 배의 키를 쥔 선장 같은 존재였다.

목적지와 해야 할 일을 딱 정하고 나면 그때부터 멤버들이 최고의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 함께 동분서주하는.

그 전까지는 망원경과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결정권자의 몫이었다.

“타이틀곡 계획 짜는 거예요?”

“그치.”

우주가 기타를 띠요옹 튕기며 말했다.

“근데 이번에 뭘 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라구. 도깨비를 쓰면서 대중성 있는 방향으로 가 보기로 했잖아?”

“그죠. 음악적인 방향을 그쪽으로 틀기로 했죠.”

“그럼 다음 타이틀도 대중적인 방향으로 가야 되는데… 또 수플레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는 쓰고 싶단 말이야. 균형 맞추는 것도 고민이 되고, 노래 테마를 어떤 걸로 해야 될지도 고민 중이고.”

“음…….”

“멜로디부터 떠올리려고 하긴 하는데.”

도깨비의 프로모션도 성공적으로 마친 상황에서 현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다음 타이틀곡이었다.

리혁이 물었다.

“어떤 걸 원하는데요?”

“톡톡 튀고 발랄한 곡이었으면 좋겠어. Empire도 무거운 곡이고 도깨비도 무거운 곡이잖아.”

“무겁긴 하죠. 도깨비를 해학적으로 다루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음이 낮고.”

“가벼운 쪽으로 전환해야 될 것 같아. 마침 앨범 컬러도 검은색, 회색에서 벗어나 흰색이니까.”

이 부분은 회의할 때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이긴 했다.

-하얀색이니까 빛? 그런 게 어울리지 않을까요? 저번에 응원봉으로 트로피 프리즘 했던 것 같은 느낌은 어때요?

비주 형이 낸 의견이었다.

빛이 프리즘을 투과하면 새롭게 무지개색의 빛이 나오듯이, 이번 정규 2집을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색깔들을 꽃피우는.

-난 파스텔 톤이 좋아.

중현이 형 의견까지 더해져서 이후의 앨범들은 핑크나 파스텔 톤같이 더 다양한 색으로 나오도록.

지금까지의 앨범들이 진한 물감처럼 합쳐서 검은색이 된다면, 앞으로는 프리즘으로 나눠진 다채로운 빛깔로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번 정규 앨범이 그런 발랄한 색들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 그들이 세운 계획이었다.

“으음…….”

한참을 고민하던 리혁이 입을 열었다.

“불꽃놀이를 계승해 보는 건 어때요?”

“불꽃놀이?”

“우리 노래 중에서 그쪽이 제일 톤이 맞긴 하잖아요. 바람꽃도 있지만 그건 좀 아련한 느낌이고.”

“불꽃놀이가 제일 활기차긴 하지.”

우주가 고민을 하다가 물었다.

“계승하자는 건?”

“우리 모두 지난 3년 동안 실력이 엄청 더 발전했잖아요. 불꽃놀이 같은 곡을 다르게 변주해서 들려주는 거죠. 뭔가 더 발전하는 느낌도 들고, 새로운 시작 같기도 하잖아요?”

“오호…….”

기타를 매만지는 리더에게 그가 물었다.

“어때요. 괜찮아요?”

“좋네.”

이번 앨범의 주제는 갈등 이후의 화해와 평화.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과 화기애애함을 담은 불꽃놀이와 어울리지 않을까 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

뭐라고 말을 더 이어 가려던 서리혁이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꺾은 우주가 활을 든 손으로 우아한 각을 그리자 지잉-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왼손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오른손의 활이 현 위를 움직이더니.

“?”

짧은 멜로디 하나가 흘러나왔다.

맑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현악기 소리가 톡, 톡 끊기듯이 흘러나오면서 한두 번 정도 반복됐다.

가을 아침에 학교 가면서 가끔 상쾌한 느낌이 들 때의 그런 분위기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상대가 미소를 지었다.

“오.”

그다음 대사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이게 되네.”

“또 뭐가 되는데요…….”

“네가 해 준 불꽃놀이 이야기를 떠올렸거든.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 그런 느낌으로 한 번 만들어 봤어.”

“우리 타이틀 메인 테마요?”

“응.”

“…….”

“후렴 멜로디로 이거 하면 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뭐요? 지금 그러니까… 뭘? 만들었다고?’ 하는 말을 했겠지만, 졸개 No.1으로서는 익숙한 일이었다.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너랑 할머니랑 나비랑 다 같이 보낸 시간 떠올리면서 만들어 봤어. 어때? 근사하지?”

“…….”

“불꽃놀이 테마는 내가 어린 시절 생각하면서 쓴 거니까. 신규 타이틀은 최근의 시간을 주제로 하는 게 어울릴 것 같아서.”

이건 조금 감동이긴 했다.

문득 밤바다를 만들었던 그때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왕지호를 만나면 조금 자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네 덕분에 멜로디 하나 떠올렸다, 야.”

“뭘요.”

“이걸 이제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가 고민이긴 한데… 일단 바로 작업 착수할까?”

“네? 바로요?”

“응. 너 가서 자려면 자.”

혼자 노트북 앞에 쪼그려 앉더니 기타를 들고 뚕뚕 하는 리더의 모습에 리혁이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눈빛이었는데, 지금 시간이 새벽 2시다.

대표님이 쉬라고 준 명절 연휴에 과로하는 이를 보던 그가 말없이 나비를 슥슥 문질렀다.

갸르릉거리던 고양이도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

벌건 눈으로 노트북 마우스를 딸깍 하고, 기타를 띠링 하고 반복하는 누군가를 보며 서리혁이 고민했다.

말할까 말까.

그냥 내버려 두고 싶은데, 저러다가 명절 끝나기 전에 쓰러질 것 같다.

“저기, 그…….”

말을 걸었지만 답도 없었다.

음악에 미쳐 가지고 헤헷, 음악, 헤헷 하는 리더를 보며 리혁이 짜증스럽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응?”

“적당히 좀 하고 자요. 쓰러져.”

“이런 걸로 안 쓰러져. 군산 내려오기 전에 중현이 손 잡고 기도 충전했다니까.”

“비과학적인 소리 좀 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리혁이 고민 끝에 입술을 뗐다.

“계속 그러다가… 진짜 죽어요. 형.”

우뚝.

그 말에 마우스를 클릭하던 우주가 동작을 멈췄다.

‘아차.’

리혁이 멈칫했다.

형이라고 불러서 반응한 게 틀림없었다. 뭐라고 물어보면 혐이라고 했다고 둘러 대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우주가 큰일 났다는 얼굴로 말했다.

“리혁아.”

“네?”

“죽으면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되는 거 아냐?”

“그…죠?”

우주가 애절한 얼굴로 노트북을 부여잡았다.

“그럼 더 열심히 해야지.”

“…….”

“내 유고작으로 이런 허접스러운 걸 내보낼 수 없어. 죽어도 완성하고 죽어야…….”

“에라이! 이 미친 인간아!”

리혁이 발로 뻥 걷어차자 리더가 데굴데굴 구르는 낙법으로 회피하더니, 능글맞게 웃었다.

“피했지롱.”

“죽어라! 그냥 지금 죽어!”

“으아아악!”

*   *   *

다음 날 아침.

연휴 마지막 빨간 날을 맞이한 나는 옆구리에 파스를 붙인 채 에구구구 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뭘 나 때문이에요. 본인이 안 좋은 자세로 작업하다가 결린 거지.”

“아니야. 너한테 맞은 자리라니까.”

“내가 쳐 봐야 얼마나 아프다고. 나비랑 싸워도 내가 질 걸요.”

테이블 아래에 있는 나비가 맞다는 듯 냐아아아 했다. 치즈냥이의 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가 있다.

“어이구.”

할머니가 찌개를 끓이면서 한숨을 쉬었다.

“너네는 허구언날 싸우냐. 허구언날.”

“안 싸워.”

“싸운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 객관적으로 잘못한 거예요. 할머니.”

“내가 봤을 때는 거기서 거기여. 하나는 대가리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하나는 중학교 1학년이고.”

내가 물었다.

“내가 중학생인 거지?”

“좋을 대로 생각혀라.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

내가 당하는 모습에 리혁이가 맞은편에서 풉 하고 웃었다.

내가 으이씨 하는 얼굴로 째려보며 입을 내밀자, 리혁이가 어쩌라고요~ 하듯이 입을 비죽였다.

된장찌개를 탁 내려놓으며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소원 성취했다. 야.”

“왜?”

“동생 있으면 좋겠다고 맨날 노래를 부르더니, 진짜 하나가 생겨 버렸네.”

“난 이런 동생 둔 적 없어.”

“저도 이런 형 둔 적 없어요!”

할머니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웃었다.

“둘 다 좋은 말할 때 조용히 처먹어…….”

“네.”

“넵.”

할머니가 수저를 들 때까지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리혁이가 숟가락을 들고 물었다.

“할머님, 저는 뭐 할 건 없나요?”

“뭘 혀?”

“가만히 있기 심심해서요. 뭐라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가만있어 보자.”

얘 청소 잘한다며 내가 추켜세워 주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한테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너 그거 정리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 아빠 엄마 물건? 해야지.”

“리혁이가 그거 도와주면 되겄네.”

아빠 엄마 물건을 비롯해서 내가 어린 시절에 쓰던 물건들이 있는데, 아직 그대로 상자째 남아 있었다.

리혁이가 눈에 띄게 머뭇거렸다.

“그걸 내가 만져도 돼요?”

“그러게. 먼지 많아서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니. 그거 말고…….”

“전혀 상관없지.”

어차피 오래된 물건들이다. 의미가 큰 물건들은 할머니가 따로 보관 중이고.

나머지는 버릴 수가 없어서 그냥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다.

엄마 아빠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것까지 버렸다간 영영 흔적을 다 지워 버리는 것 같아서.

“가 볼래?”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서 바로 리혁이를 데리고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어색한 기분이 들었는지 리혁이가 화제를 돌렸다.

“참. 우리 이번에 예능 반응 좋다고 그러던데요.”

“아. 맞아. 나도 봤어.”

어제 방영한 <사람이 간다>의 반응이 좋았다.

시청률도 대폭 올랐고. 사람들이 잘 몰랐던 매니저 업계를 다뤄서 굉장히 신선하단 반응들이 많았다나.

특히 내가 스케줄을 따왔다고 알리던 장면의 반응이 좋았다.

지금 보고 있는 ‘어젯밤 최고의 1분’이라는 포털 뉴스 댓글창만 해도 그랬다.

-어제 보고 진짜 빵 터졌네요ㅋㅋㅋ 우리 우주는 스케줄을 따와

-진짜 뭘 했어도 됐을 아이들인 듯. 단지 종목이 아이돌이었을 뿐이네요.

-인맥으로 바로 스케줄 따오는 거 보고 와 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내 연예인에게도 주선우 실장을 달라

-10년 뒤 SW 엔터 상장 기대합니다

-우주야 이제 주식전문가 우선주만 남았다ㅠㅠ 상한가 가자

물론 모든 반응이 좋은 건 아니었다.

-‘사간’ 도준기 PD, “스케줄 가져온 것 절대 대본 아냐. 다음 주 방송분 보시면 알게 될 것”

조작이 아니냐는 의심들이 나왔다나.

아무래도 내가 스케줄을 따 왔다! 하면서 두둥!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어차피 불식될 소소한 논란이라 별걱정은 안 된다.

“근데 그거 말고 다른 것도 화제가 됐다던데…….”

“뭐, 뭐….”

“게임이요.”

“…….”

“게임 못한다고 전국에 소문 다 났던데요.”

사실이긴 했다.

어제 방송 나오자마자 한 모 씨한테 [너 내 매니저가 되라]하는 톡과 함께 겜알못 들켰냐며 한참 놀림 당하기도 했고.

이웃집 미소년들이 게임 가르쳐 주겠다며 놀리다가 지들끼리 또 시발 워를 일으키며 싸웠다.

“……내 주변엔 어쩌다 이런 사람들만 모여서.”

“그대가 이 또라이 은하계의 중심인 걸 어떡하겠어요. 은하계 중심의 거대 블랙홀 같은 존재라고 해야 되나.”

“바람꽃 제목 후보로 암흑물질 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꽃무늬 응원봉 시안 만든 사람은 어떻고요?”

리혁이와 서로 생긋 웃으며 눈빛으로 욕을 날렸다.

“자. 여기야.”

계단을 올라가자 가장 구석지면서 채광이 좋은 방이 나타났다.

2층이라기엔 애매한 2.5층이라고 해야 되나.

아늑한 다락같은 분위기였다. 나 홀로 집에 나오는 케빈 방이 딱 요런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우와….”

여기서 책 읽으면 딱이라고 좋아하던 메인 보컬이 이내 주변에 가득한 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그… 물건들이에요?”

“응.”

장갑을 끼고 거기에 또 비닐장갑까지 덧씌운 리혁이가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뜯으며 물건을 꺼냈다.

부욱부욱 하는 소리들과 함께 내용물들이 하나씩 나왔다.

“특이한… 물건은 없네요.”

“그냥 일상용품들이야. 상패나 트로피는 다 진열장에 있고, 이건 아빠가 쓰던 골무? 이런 것들?”

“실도 있네요. 재봉틀이랑.”

“할머니가 그러는데 아빠 손재주가 엄청 좋았대. 엄마는 이런 거에 꽝이었는데.”

내가 그래서 게임을 못하나? 하며 중얼거리자 리혁이가 웃었다.

이윽고 정리왕의 도움을 받아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다시 박스별로 분류하고 있을 때.

일이 다 끝났을 무렵 리혁이가 구석진 곳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이건 뭐예요?”

“아. 게임기일걸. 나 6살 때 썼던 거. 그 펭귄들 따다다다~ 하는 거랑 뿅뿅 전투기 쏘는 것들 있잖아.”

“갤러그요?”

“서커스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알지? 뾰옹 하고 화염의 고리 통과하는 거.”

“아뇨.”

“늙은이는 서럽다. 서러워…….”

리혁이가 게임기를 유심히 둘러보며 말했다.

“이거 아직도 작동해요?”

“모르겠는데.”

근처에 있는 오래된 TV에 케이블을 색깔별로 연결하고 전원을 켜 보았다.

바로 뜨는 화면.

“되네?”

“되네요?”

눈앞에서 도트 화면 속 전투기와 함께 [START]라는 버튼이 깜빡이고 있었다.

“오호.”

“한 번 해 볼래요? 나랑 내기?”

“야. 이건 내가 6살 때 많이 했는데 이기지.”

“그럼 한 번 해 봐요.”

“좋아.”

가볍게 한 판 하기로 했다.

*   *   *

3시간 후.

“이…….”

“후.”

“아니. 거기서 어떻게 그게 나오지? 보스 패턴이 너무 이상하다니까요.”

“쉽지 않네.”

3시간째 스테이지 1을 못 깬 우리 형제가 게임기 앞에서 벌건 눈을 하고 있었다.

매 도전마다 목숨 3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만요.”

리혁이가 종이를 꺼내더니 거기에 엄청 예쁜 동그라미들을 손수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보스 페이즈 1이에요.”

“응.”

“페이즈 2는 여기서 오른 방향으로 쏘고요. 그러니까 계산을 해 봤을 때 여기 있으면 돼요.”

“그래. 한 번 가 보자.”

굳은 결의로 페이즈 2까지 다시 갔을 때.

[GAME OVER]

눈을 깜빡였다.

“거기 있으면 산다며?”

“아니. 내 계산이 틀릴 리가 없는데……. 함수가 잘못됐나?”

“계산식을 한 번 다시 세워 봐.”

“으으음…….”

이후로도 1시간 넘게 실패한 우리는 결국 구세주들을 부르기로 했다.

-바보들.

-둘 다 바보네.

비주와 중현이가 사과와 수박을 우적거리면서 화면 속에서 옴뇸뇸하는 동안.

우리가 열심히 그린 작전 계획표와 도표를 살피던 막내가 바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형들.

“응?”

-그냥 거기서 왼쪽으로 쭉쭉 가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되잖아요.

“음… 어? 그러네?”

바로 해결책을 찾아낸 막내에게 대단하다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미튜브 치니까 바로 공략 뜨던데요.

“…….”

-고전 게임 공략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산더미처럼 나오는뎅.

리혁이와 내가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비주와 중현이가 화상 채팅에서 사과 수박을 옴뇸뇸 먹었다.

-똑똑한 바보들.

-바보다. 바보.

이번에는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있었다.

리혁이가 눈두덩을 문질렀다.

“어우. 현기증 나.”

“나도.”

4시간 가까이 TV 화면을 바라봐서 그런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게임 배경음악이 띤띤띤 들려온다.

몇 시간째 들었는데도 질리지 않고 무난하게 감겨 오는 듯한 전자오락 BGM.

저번에 주세한에서 게임기를 만졌을 때 느꼈던 것처럼, 옛날 전자오락 노래들은 정말 안 질리는 거 같다.

중현이가 우물우물하더니 수박씨를 투두두두 기관총처럼 쏘면서 말했다.

-근데 그거는 그냥 게임 오버예요? 동전 같은 거 안 넣고?

“응.”

-오락실 같은 데서 동전 있는 걸로 하면 바로 컨티뉴 하면 될 텐데.

“이건 가정용이라서.”

‘Insert Coin’ 같은 문구는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잠깐만.”

무언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몇 시간째 들어도 질리지 않으면서 중독성도 있는 전자오락 음악의 구조.

동생들을 비롯해서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 공유하는, 동전 가지고 친구들이랑 오락실에서 놀았던 기억들.

동전 몇 개만 있어도 다 같이 사이좋고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무언가 머릿속에 착착 정리가 됐다.

알록달록한 오락실의 독특한 색감들과 함께.

“얘들아.”

-큰일 났다. 저거 일 시키는 표정이에여!

-지지지지직.

“중현아. 입으로 잡음 내는 거 안 통한다.”

-네.

-형, 저 집안…….

“비주 집안일 안 밀린 거 다 알아. 난 네가 일 밀리는 걸 본 적이 없어.”

-…….

-비주 형도 바보예요. 나처럼 안 성실하게 살면 되는데.

화상 채팅 속에서 도주 각을 재는 펭귄들과 내 눈앞에서 달달 떨고 있는 불순분자에게 말했다.

“우리 다음 타이틀 어떻게 해야 될지 떠올랐어.”

-타이틀이요?

귀찮다고 아우성치던 녀석들이 타이틀이란 말에 대번에 눈빛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이내 진지하게 듣는 동생들에게 내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도깨비’에 이은 신곡.

정규 앨범 타이틀곡 ‘Coin’의 초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으음. 동전 한 닢은 안 되나요. 그게 더 멋진데.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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