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1)화 (59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1화

꿀 같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이 끝났다.

-악마! 당신은 악마야!

-우와아…… 타이틀곡 좋다…… 우와아아. 우와.

-형. 저 이제 자러 가도 돼요? 아부지가 저보고 얼른 자래요. 키가 더 커야 된다고.

-이럴 거면 연휴의 의미가 없는 거잖아여…….

다음 날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동생들과 함께 화상채팅을 하면서 ‘Coin’의 초안을 만들어서 그런지 굉장히 뿌듯했다.

“알찬 연휴였다.”

“미안한데 연휴의 휴가 무슨 휴인지는 알죠? 쉴 휴(休)라고요.”

“다른 뜻으로는 따뜻하게 할 휴(休)라는 것도 있지. 형 덕분에 이번 연휴가 정말 따뜻하지 않았니. 리혁아?”

“…….”

말싸움에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꿍얼거리는 리혁이었다.

투덜대는 메인 보컬에게서 캐리어를 받아 들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아침 햇살이 거실에 가득하다.

“이제 가는 겨?”

“응.”

“뭐 했다고 벌써 가냐.”

뚱한 표정의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푹 안아 주었다. 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나비 머리도 슥슥 문지르고.

빳빳한 혓바닥이 내 손등을 핥았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 김덕순 여사가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혁이도 잘 가고.”

“네…….”

“다음에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놀러 오려면 놀러 오고.”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게 뭐 있어.”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던 할머니에게 리혁이가 쭈뼛쭈뼛 다가가서 할머니를 안아 주었다.

“어이구.”

뒤에서 바라보는데 정수리에서 김이 풀풀 솟아오르는 것 같다. 귀는 벌써부터 폭발 직전이고.

플라밍고처럼 얼굴이 변한 리혁이가 행복하게 웃었다.

“감사했습니다. 할머님. 저 또 올게요.”

“그려.”

“할머니. 우리 갈게!”

고양이 앞발을 붙잡고 흔드는 할머니에게 우리도 손을 흔들면서 집을 나섰다.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대문 바깥이었다.

1월 말의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골목.

“다시 돌아가는구나.”

“그럴 시간이 됐죠.”

그 말을 하던 리혁이가 물었다.

“그런데 가기 전에 들를 데 있다면서요.”

“응.”

“어딘데요?”

“엄마 아빠 볼 수 있는 곳이야.”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에 들리고자 한 장소는 바로 군산에 있는 선명주 기념관이었다.

*   *   *

선명주 기념관.

아빠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인데, 군산에 올 때마다 매년 한 번씩 들르던 곳이었다.

물론, 할머니한테는 신경 쓸까 봐 이야기를 안 하는 편이었다.

“넷째야.”

“왜요.”

“한 번 확인해 보자. 얼굴.”

“가렸어요.”

“후드?”

“썼죠.”

야구모자에 후드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써서 눈만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초롱초롱.

눈 자체가 워낙 예쁘게 생겨서 그런지 리혁이의 눈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너 눈은 못 가리냐.”

“그건 내가 할 말인데요. 나만 티 나는 줄 알아요?”

“……쓰자.”

“쓰죠.”

선글라스까지 써서 신원을 숨겼다.

핑크빛이 감도는 현재 내 머리카락과 금발인 리혁이 머리카락도 꼭꼭 숨기고.

암행을 나온 임금님의 기분으로 선명주 기념관 부근 거리에 진입했다.

“흐흐흐흐흐. 아무도 날 못 알아본다, 크큭…….”

“수상하게 웃지 말아요.”

“너도 학처럼 걷지 마. 징검다리 건너는 학처럼 걸으니까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내 걸음걸이가 뭐 어때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골목길에 진입하자 벽화들이 보인다.

기념관으로 가는 거리 곳곳의 돌담에 아빠가 피아노를 치고 있거나 웃고 있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근처에서 포즈를 취하는 가족을 찍어 주는 사람들, 돌아다니는 커플들이 몇 있긴 했지만 명절 연휴가 끝난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카페도 되게 많네요.”

“응. 여기도 많이 변하긴 했어. 옛날에는 진짜 별거 없었는데.”

데이트 코스로 한창 떠올라서 그런지 인스타에 나올 법한 맛집이나 감성 카페가 곳곳에 즐비하다.

관람 끝나고 리혁이한테 조각 케이크나 하나 사 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군산 선명주 기념관을 향해 걸어갔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공원처럼 널찍한 잔디밭.

“이쪽으로 가면 돼.”

잔디밭에 난 도로를 쭉 따라가면 아빠 이름이 새겨진 3미터짜리 기념비가 하나 있고.

거기서 더 들어가면 3층짜리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2천 원입니다.”

“여기요.”

접수대에서 입장권을 사는데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양새가 우리 둘을 보고 긴가민가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알리면 무료로 볼 수 있긴 한데 그러고 싶진 않다.

티켓을 사 들고 리혁이에게로 걸어갔다.

“뭐 해?”

“안내 책자들 챙겨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가면 안내 책자들을 모아두는 코너가 있는데 그걸 하나씩 다 빼서 품에 안아 들고 있는 넷째였다.

설렌 얼굴로 파일철까지 꺼내서 거기에 책자를 끼워두더니 또 책자를 꺼냈다.

“왜 두 개씩 챙겨?”

“이건 보관용이고요. 이건 읽을 용도요.”

책자를 하나씩 펼치더니 선글라스를 벗고 안경으로 바꿔 썼다. 책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집중한 눈빛이었다.

나도 선글라스를 벗고 리혁이를 이끌었다.

“가자.”

“1층은 뭐예요?”

“1층은 아마 전시회 같은 거 할 걸. 마지막에 내려오면서 보여 줄게.”

“미술 전시회……!”

원래는 1층에 기념품 샵이랑 휴게실 같은 공간들이 있었는데. 시에서 대관 수익 벌겠다고 휴게실을 전시회 공간으로 바꿨던가 그랬다.

“봄가을 되면 여기 밖에 야외에서 피아노 리사이틀도 하고 그래. 반딧불이 같은 조명 띄워 두는데 되게 분위기 있어.”

“우와…….”

“할머니랑 어렸을 때 와서 많이 봤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첫 진입하자마자 나오는 공간.

[Push]라고 되어 있는 버튼을 누르자, 벽에 걸린 스크린에서 치이익- 하면서 피아노 앞에 앉은 아빠의 영상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선명주입니다.

약간 옛스러운 90년대 말투.

화면 속에서 고전적인 분위기의 미남이 미소를 짓고 있다.

-저를 보러 와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혹시 재즈 좋아하십니까?

이어지는 문구는 나도 같이 암송할 수 있었다.

-좋아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음악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은 없죠. 하지만 음악은 듣는 사람 모두를 사랑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으로 연주를 하곤 하죠.

곧이어 손가락이 피아노 위를 유려하게 움직이면서 재즈 스윙이 흘러나왔다.

안내 문구를 읽던 리혁이가 혀를 내둘렀다.

“저게 영상 찍으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하신 거라고요?”

“응.”

“……진짜 부전자전이었네요.”

“그치?”

씩 웃으면서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묘하다.

매년 올 때마다 나는 아빠의 나이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데 화면 속 아빠는 여전히 그대로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그대로 있지 않을까.

관람객을 환영하는 재즈곡을 시작으로 2층에 있는 아빠 관련 이력을 리혁이와 함께 둘러보았다.

“난 여기 올 때마다 기분이 좋더라고.”

부모님의 향취, 그것도 좋은 것들만 남아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추억의 공간 같은 느낌이다.

아름다운 색깔을 보여 주는 재즈곡들도 들려오고.

중간중간 [고인의 유품을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같은 문구 나올 때를 빼면 다 좋았다.

“우와…….”

한 코너에 멈춰 선 리혁이가 감탄했다.

“어머님 되게 우아하시다. 왕비 같아요.”

“그치? 울 엄마가 그래.”

‘선명주-이명은 러브 스토리’ 하면서 엄마 아빠가 서로를 안은 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중간에 갓난아기인 날 안아 들고 있는 두 분의 사진도 있고.

그런데…….

“얼레?”

뭐가 더 추가되어 있다.

-아들 선우주는 현재 인기 K팝 아이돌 ‘뉴블랙’의 멤버로 활동 중이며,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라는 부끄러운 문구에 리혁이와 내가 키득거렸다.

“뭐야, 세계적인 인기…… 오글거려.”

“글로벌 슈퍼스타였네요. 우리.”

“진짜 민망하다. 이거 수정 안 되나?”

“가서 말해요.”

그것도 이상해서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어서 3층까지 쭉 관람을 마쳤다.

좋아하는 영화를 돌려보는 것처럼 나에게는 사진이나 문구 하나하나 다 익숙했지만, 리혁이에게는 특별한 구경이었던 모양이다.

음악에 대한 아빠의 코멘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카네기 홀 등에서 연주회를 열거나 외국 대통령, 총리 같은 사람들 앞에서 훈장이나 메달을 건 채 찍은 사진들을 지그시 쳐다보기도 하고.

리혁이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관람하면서 느낀 건데…… 형들이나 왕지호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가.”

“네. 나중에 기회 되면 다 같이 오고 싶어요.”

“그래……? 그러지. 뭐.”

얘네한테는 재미없는 공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예상한 것보다 재미있게 본 모양이다.

사실 나도 관람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때 리혁이가 말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휴식기에 쓰셨다는 곡들 있잖아요. 93년도 전후로 해서 쓰셨다는 곡들.”

“나 태어났을 때쯤이지.”

음악가 선명주에게는 몇 가지 시기가 있는데. 그중에서 ‘휴식기’로 불리는 때가 있었다.

내가 태어났던 93년도 즈음에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아빠가 휴식을 선언한 시기.

그 때문인지 92년도에서 94년도 즈음에 어마어마한 양의 곡들을 썼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사실에 가까운 소문이었다.

-명은이가 자고 있으면 느이 아빠가 너 안아 들고 악보에 뭐 끼작끼작 대고 있더라. 네가 아아아앙 하면서 깨면 기저귀 갈고 분유 맥이고. 그러고 나면 뭐를 또 막 끼적끼적하고 있어.

우리 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으니까.

수백 곡을 썼다더라 하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고, 실제로 그중에 몇 곡을 공개하기도 했지만.

그 어마어마하다는 미공개 곡들의 실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소문일 뿐, 있었으면 진즉에 나왔을 거다’ 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부풀려진 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건…… 어디로 갔을까요?”

“나도 모르겠네.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일전에 프랑스에 합동 콘서트 차 방문했을 때 만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폴 로랑이 떠오른다.

아빠가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했다는 그 피아니스트가 파리의 재즈 바에서 그런 말을 했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긴 합니다만 혹시 ‘Snowy Day’라는 곡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99년도 즈음에 아들을 위한 곡을 썼다며 그에게 멜로디를 들려줬다던데 엄청 좋았다고.

-그날 내게 들려줬거든요. 아들에게 줄 곡인데 어떠냐고 물어봤죠. 혹시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아마 그 곡도 행방불명된 곡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으으으음…….”

1층 카페.

마스크 아래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하면서 고심하는 리혁이에게 내가 웃으며 물었다.

“네가 찾아 주게?”

“안 될 건 없잖아요. 누구나 추리를 할 수는 있는 거니까.”

“찾아 주면 나야 좋지.”

아빠 사후에 정말 세계 곳곳에서 숨은 악보 찾겠다고 난리였다던데. 아마 찾으려면 그때 찾지 않았을까.

나도 빨대로 코코아를 홀짝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면서 으으음 하는 리혁이에게 내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가자.”

“어디요?”

“어디긴 어디야. 애들 만나러 가야지.”

“아.”

“보물찾기는 나중으로 미뤄 둡시다. 형제님.”

여전히 으으음 하는 리혁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느긋한 걸음으로 기념관을 나섰다.

여전히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석조 건물을 보면서 손을 짧게 흔들었다.

잘 지내요. 아빠 엄마.

다음에는 다른 동생들도 데리고 올게요.

*   *   *

“뭉치면 약하며 흩어지면 강하다!”

“오합지졸! 졸개단 등장!”

“흐하하하!”

명절 연휴가 끝난 동생들과 우리들은 흥겨운 가족 상봉을 했다.

각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저 이번에 너무 재미있었어요. 겨울잠 자는 뱀도 하나 발견해서 제가 굴도 더 보완해 줬어요. 어설프게 파 놨더라고요.”

“으악! 뱀 얘기 하지 마요!”

“사진도 보여 줄까. 귀요미 뱀인데.”

“으아아악!”

막내들이 으아아아 도망쳤다.

흐뭇하게 웃는 중현이에게 물었다.

“진짜 사진 있어?”

“아뇨.”

“뱀은 진짜야?”

“애매해요. 제가 꿈에서 찍은 사진이라.”

그 말을 하면서 중현이가 흐뭇한 얼굴로 동생들이 먹지 못하고 남긴 과자들을 뺏어 먹었다.

상대를 낚은 다음에 먹잇감을 스틸하는 곰 같다.

곰은 똑똑하다.

“형.”

비주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저는 이번에 강원도로 가족여행 짧게 다녀왔어요.”

“재미있었어?”

“네. 근데 좀 힘들었어요. 마스크 쓰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다 비주다! 이러면서 달려드는 거예요.”

“눈까지 가려야 되더라. 은근히 눈 보고 다 알아보더라고.”

“스키장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봤는데 오히려 마스크보다 선글라스가 효과가 더 좋다.

연예인이라는 것까지는 알아보지만 일단 눈이 안 보이면 사람들이 더 긴가민가하는 것 같다.

“이거 볼래요?”

비주가 자기가 보드 타는 영상을 보여 줬는데, 역시 우리 메인 댄서답게 운동 신경이 진짜 좋았다.

“근데 보드 내려오고 나서 어디로 가는 거야?”

“가족들 있는 방향을 헷갈렸어요…….”

“헷갈리면 네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로 가. 그럼 맞더라.”

“다음엔 그래야겠어요.”

그렇게 밀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막내도 우리한테 미주알고주알 명절 연휴의 사건들을 일러바쳤다.

“다 좋았는데 제가 누나들 때문에 진짜 속상했어요.”

“왜?”

“둘째 누나랑 셋째 누나가 남친 생겼다고 저랑 잘 안 놀아 줘여. 누나아아! 하고 가서 놀자고 하면 톡하느라 정신도 없고.”

“첫째 누님은?”

“……무서워요. 맨날 잔소리하구.”

내가 첫째 누나 분의 엄해 보이는 표정을 따라 해 보이자 지호가 으아악 하면서 기겁했다.

그동안 리혁이가 군산에서 나와 보낸 시간들을 으스대듯이 말해 주었다.

고양이가 얼마나 자기를 좋아하는지, 할머니가 자기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기념관은 어땠는지.

“기념관?”

예상외로 다들 기념관에 흥미를 보였다.

“뭐야. 왜 리혁이 형만 데리고 갔어요? 치사하다.”

“너도 그럼 다음에 가던가.”

“다음에 꼭 같이 가요. 저 군산 짬뽕이랑 빵 먹어야 되니까.”

“나도 갈래.”

재미없을 수도 있다고 미리 말을 해 주는데도 다들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각자 푹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본격적으로 달려봅시다.”

숨 가쁘게 바쁜 일상으로 복귀했다.

*   *   *

2월 1일.

연휴가 끝나고 첫 스케줄로 찾은 곳은 바로 미국 뉴욕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구름 떼처럼 모인 수플레들 때문에 경찰이 출동해서 지켜볼 만큼 난리가 난 브로드웨이 거리.

방송국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인파에 우리는 <앨런 데일 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쇼 호스트인 앨런 데일이 직접 와서 축하 인사말도 전했다.

「Hot 100에 들어갔다며? 축하해!」

「고마워요.」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도깨비가 버블링 언더 11위에 이어서 Hot 100에 진입했기 때문이었다.

99위.

순위로 따지자면 111위에서 99위가 된 셈이었다.

“무슨 순위도 도깨비 같네…….”

“다음에는 88위 아닐까요. 더 올라간다면.”

중현이의 말에 비주가 물었다.

“근데 왜 올라간 걸까요. 보통 첫 주가 최대치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솔직히 우리가 왜 핫 100에 들어간 건지도 모르겠어요.”

좋기는 한데 당혹스럽기도 하다.

통장에 어마어마한 거액의 돈이 입금됐는데 누가 보낸 돈인지 모르겠어서 미묘한 그런 느낌.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인기 토크쇼 <앨런 데일 쇼>에 와 있다.

토크쇼가 끝나고 마지막에 나오는 음악 무대. 거기서 도깨비의 무대를 선보이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토크쇼에 나와서 노래를 하고 갈 정도의 성적은 아니긴 한데.

호스트인 앨런 데일의 의지가 강력해 보였다.

-너네에게 투자해서 잭팟을 터뜨릴 거야! 흐하하하!

조기 투자를 해서 나중에 크게 뽕을 뽑겠다는 모양이었다. 자기네 쇼에 제일 먼저 나온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 사람의 투자가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이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기실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람들을 다독였다.

TV 출연이 잦아서 익숙하게 악기를 점검하는 가야금 연주자 홍아랑을 제외하고는 국악 연주자 대부분이 떨고 있었다.

“녹화 방송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긴장되면 관객들을 다 감자라고 생각하세요.”

“미국 감자다. 미국 감자다…….”

“감자들이 박수를 치고, 감자들이 환호를 하는 거예요.”

감자, 감자, 감자 하면서 세뇌를 시키니 다들 긴장이 좀 풀린 듯했다.

해금 연주자 분이 물었다.

“혹시 되게 낯선 음악 듣는다고 반응 별로고 그런 거 아냐?”

“그럴 리 없어요. 여기 수플레들이 잠입해 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예상한 대로 관객 중에 잠입한 수플레들이 와아아악 하고 응원을 해 주면서 다른 관객들도 휘말려들었다.

뒤에선 국악이 연주되고 앞에선 우리가 춤을 추고.

‘미국에 온 도깨비’라는 컨셉으로 청바지에 색감이 예쁜 재킷 등을 걸치고 선보인 무대는 제법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토크쇼 촬영이 이루어지는 브로드웨이 극장의 1층과 2층이 물결치듯이 움직였다.

잠입한 수플레들의 열렬한 환호에 우리도 손을 흔들면서 화답했다.

‘최면 걸어 줘서 고마워요.’

‘역시 우리 팬들이다.’

그렇게 도깨비 프로모션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다시 귀국할 때.

인천행 비행기에 오른 우리는 뜬금없는 소식을 들었다.

“너희 어워드에 노미니 됐다던데?”

“어워드?”

바로 우리가 다음 달에 미국에 열리는 시상식에 <글로벌 스타> 부문으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 유명 시상식에서 우리를?”

“맞아.”

“대박…….”

그것도 꽤 유명한 시상식이라고 석환 형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 꽤 중요한 시상식이야.”

“그래……?”

“미국 쪽 에이전시한테 한 번 물어봤는데. 그 부문에서 너희가 꽤 유력한 후보라고 하더라고.”

“오오오! 어딘데?”

“키즈 초이스 어워드라는 곳이야.”

“키즈…… 초이스?”

어린이의 선택?

<선택 2017> 같은 선거 개표 방송 표어가 떠오르는 가운데 우리가 매니저에게 농담했다.

“뭐야. 키즈 초이스면 어린이 시상식이라도 돼요?”

“응. 어린이 시상식이야.”

“……?”

“어린이 시상식이 맞다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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