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4화
왕지호는 아침부터 설렘 가득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졸업이다!’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볼 때도, 머리를 말릴 때도 눈앞에 ‘졸업’이란 글자가 둥실거렸다.
‘내가 졸업을 한다니!’
혼자서 주먹을 꼭 쥐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던 지호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뒹굴뒹굴거렸다.
주변의 모든 것이 설렜다.
아래층에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목소리까지도 달콤하게 들리고.
“갈게요!”
곧바로 빨간 넥타이를 바르게 정돈하고는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주방에서 앞치마 차림을 한 비주와 리혁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비주가 된장찌개 뚝배기를 옮기며 웃었다.
“지호 잘 잤어?”
“네!”
“든든하게 먹고 가라고 아침 좀 차렸어.”
“우와아아아…….”
소세지, 고기, 햄, 돈까스.
정말 딱 좋아하는 반찬으로만 차려진 식탁에 감동의 눈물이 핑 돌 뻔했다.
‘키즈 메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휘둘러 대는 그의 모습에 리혁이 혀를 찼다.
“야. 천천히 먹어. 체한다.”
“맛있는 걸 어떡해요. 우와. 뭐가 들어갔길래 이렇게 평소보다 더 맛있지?”
그 말에 비주가 미원과 다시다를 뒤로 숨겼는데, 다행스럽게도 왕지호는 밥에 정신이 팔려 있어 그걸 보지 못했다.
‘너무 좋아.’
밥도 맛있고.
이렇게 형들이 자기한테 모든 관심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오늘은 정말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형들은 그럼 이따 언제 오는 거예요?”
“졸업식 시작하기 좀 전에 들어가려고. 시간 맞춰서 갈 거야. 학교 측에서 그렇게 부탁하기도 했고.”
“학교에서요?”
“응. 우리가 미리 오면 학교 터진대.”
“…….”
상상이 갔다.
대포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밀려들어와 강당이 아수라장이 되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왕지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졸업식은 보는 거죠?”
“당연하지.”
“저 오늘 졸업생 대표로 상 받고 그러거든요. 리혁이 형이 받은 상보다 두 배로 더 큰 상 받아요.”
“아이구 좋겠네.”
리혁이 비죽한 웃음을 흘렸다.
“졸업이나 하고 와라. 급식아.”
“할 거예요. 졸업할 거라구요……. 아니 그리고 저 이제 어른인데 너무 애 취급하는 거 아니에요?”
“그치. 지호 어른이지.”
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상하게 물었다.
“바나나에 누텔라 발라 줄까?”
“네!”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형들을 보며 왕지호가 눈을 흘겼다.
그러고는 어미새 무리들처럼 계속 밥에다 반찬을 얹어 주는 형들의 모습에 슬며시 웃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왕지호가 신발을 신으러 갔다.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한 신발을 신고, 졸업식을 위해 밤색으로 단정하게 물들인 머리를 슥슥 넘기고는 말했다.
“저 먼저 가 있을게요! 늦지 마요!”
“이따 봐!”
오늘의 주인공답게 왕지호는 씩씩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원석이 형과 새로 온 매니저 민수 씨와 함께 샵에 가서 치장도 하고, 친구들이랑 열심히 톡도 주고받고.
학교 앞에서 빈 책가방을 메고 내리자마자 정말 소란이 벌어졌다.
“지호다!”
“지호!”
“히호호호호호!”
거의 먼지구름을 일으킬 만큼 거대하게 달려온 인파가 그를 둘러싸는 가운데 연예부 기자들의 플래시가 번쩍였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던 중학교 졸업식 때가 떠오르며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그려졌다.
“안녕하세요!”
주인공답게 후훗 웃어 주던 왕지호의 모습에 연예부 기자들도 활짝 웃으며 말을 걸었다.
“트리 소감은 어때요?”
“넹? 무슨 트리요?”
“헤일리 블루 씨가 보내 주신 졸업 축하 트리 말이에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헤일리가 트리를 보냈어요?”
“네!”
화환을 말하는 건가?
얼마 전 헤일리와 영상 통화로 대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 졸업해요! 헤일리!
-오. 축하.
-헤일리. 헤일리.
-뭐.
-한국에는 졸업 축하 선물로 화환을 보내 주고 그러거든요. 축하한다는 리본 달아서 그… 뭐지, 트리? 그런 걸 보내 줄 수 있어요?
-트리? 한국은 산이 많다더니, 나무가 존나게 많나 보네.
축하 화환을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렇게 말을 하긴 했다.
어쨌거나.
친구들에게 헤일리 블루한테 화환 받았다! 하고 자랑하기 위해 부탁했던 거였는데.
-어쨌거나 트리라는 거지? 알았어.
OK 하며 어깨를 으쓱인 헤일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왕지호가 멈칫했다.
‘잠깐만.’
왕지호가 멈칫했다.
‘그 트리가 아닌데.’
눈앞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기자들의 표정에 불현듯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시만요.”
연예부 기자들의 안내와 매니저 형들의 도움 (“비켜요! 으악!” “우와. 사람이 떠밀려 가.” “민수야, 너 경호학과라며!”) 에 힘입어 학교 안으로 진입했을 때.
‘졸업을 존나 축하한다’는 영어 전구들이 트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심지어 전기가 연결됐는지 트리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
주변에서 멀찍이 걸어가고 있는 학교 친구들이 풉 하고 고개를 숙이거나 입가를 가리며 그를 바라보는 모습들이 보였다.
“…….”
눈가를 지그시 감은 채 해탈한 표정으로 웃는 왕지호에게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 * *
“흐하하하하하!”
예술고등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속속들이 올라오는 사진 때문이었다.
-[포토] 세계적인 스타가 보낸 화환에 감동하는 뉴블랙 지호.. ‘너무 행복해요’
-[N포토] ‘졸업을 **하게 축하’.. 이 졸업식은 뉴블랙화(化)되었습니다
-뉴블랙 지호에게 축하 화환 보낸 헤일리 블루는 누구..?
헤일리가 보내 준 거대 축하 트리 앞에서 눈물겨운 얼굴로 웃는 막내를 보니 기분이 상쾌하다.
“나만 아니면 돼~!”
“흐하하하하!”
사진을 종류별로 저장하면서 키득대던 리혁이가 말했다.
“진짜 이건 본인이 저지른 업보예요.”
“인정.”
“정말 동네방네 졸업한다고 얘기하고 다녔잖아요. 여기다가 졸업한다고 그러고, 저기다가 졸업한다고 그러고.”
바다 건너 있는 헤일리한테도 저 곧 졸업해요! 하면서 여기저기 홍보를 하고 다닌 막내였다.
그 때문인지 예술고 운동장이 화환으로 가득하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찍어 올린 화환 사진들이 가득하다. 주세한이나 미스터 프로듀서 등에서 보내 준 화환도 있고.
“하현이도 화환 보냈다는데요.”
“그래?”
며칠 전에 다른 학교에서 졸업을 한 틴스피릿의 멤버도 축하 화환을 보냈다.
-수능 점수는 졌지만 졸업은 내가 이틀 빠름 vV
귀여운 폰트로 되어 있는 화환에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하현이도 진짜 바보야.”
아무도 하현이의 수능 점수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뉴블랙 지호 vs 틴스피릿 하현, ‘수능 점수로 대결했다?’.. “점수는 지호가 조금 더 높아”
덕분에 패배했다는 사실만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틴스피릿 단톡방에서 올해의 멍청이 시상식이 이뤄지고 있지 않을까.
“오, 이거 봤어요? 하현이 말고도 여기저기서 많이 보냈어요.”
“쌀도 있네.”
스보의 팬인 콘크리트들이 고마움의 의미로 기부한 쌀 1톤을 시작으로, 정말 다양한 방송 관계자들이 보낸 화환들로 가득했다.
“그때 생각나네요.”
중현이가 말했다.
“3년 전에 우리 지호 졸업식 갔잖아요.”
“그때랑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네, 진짜.”
걸스온탑 길채경을 취재하기 위해 온 몇몇 기자들을 보면서 우와아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최소 수백 명의 구경꾼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분위기였다.
첫 스케줄에 동행한 신규 매니저 분들이 후우우 하면서 긴장으로 몸을 떨고 있는 동안 핸드폰 갤러리를 켰다.
“어디 보자. 201… 2014.”
3년 전 이맘 때.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지호의 사진이 갤러리에 가득했다. 친구들 속에서 엣헴 하고 있는 뽀얀 존재…….
“얘 이때는 귀여웠구나.”
“이러니까 우리가 많이 봐줬지.”
“우와…….”
사진을 같이 들여다보던 비주도 감탄했다.
찹쌀떡같이 하얗고 젖살이 통통한 꼬맹이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과자를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그리고 지금은…….
“생긴 건 어른이긴 하네.”
포토 뉴스에서 날카로운 턱선을 자랑하면서 대학생 같은 느낌을 주는 미청년을 보며 뺨을 긁적였다.
너무 많이 커서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얘를 키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너희는 나보다 더 기분이 이상하긴 하겠다. 나 오기 전부터 지호를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 진짜 애기긴 했어요.”
비주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때 다들 진짜 웃겼는데. 지호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는데 저희가 막 ‘이건 정수기라고 해’ 하면서 정수기 알려 주고. 여긴 화장실이야, 그러고.”
“진짜 바보 같았어요. 우리.”
“나름 재미있었어. 그때도.”
중현이도 피식피식 웃으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TJ에서 그랬듯이 얘네도 연습생 때의 추억이 가득한 모양이다.
그러는 한편.
내가 맨 마지막에 합류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오늘 졸업식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중학교 졸업식에 이어서 막내가 인생의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는 걸 함께 지켜보는 느낌.
멤버들과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저, 실장… 아니 가수 분들.”
조수석에 앉아 있는 종완 씨가 정중하게 말했다.
“학교 도착했습니다.”
“네.”
그리고 차량이 학교 앞에 다다른 순간.
쿠르르르르릉!
거대한 인파가 해일처럼 몰려오는 광경에 매니저 분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운전하던 민기 형이 웃으며 말했다.
“종완이랑 지운이도 이제 적응해 둬. 이제부터 앞으로 보게 될 일상이니까.”
“……예!”
곧이어 내린 신규 매니저 분들이 현장을 정리…….
콰르르르릉!
“어이쿠.”
“떠밀려 가시네.”
“처음이면 그럴 수 있어요.”
종완 씨랑 지운 씨가 으허어어억! 하면서 먼저 떠밀려 가는 모습에 우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다 그런 거지.
* * *
“둘셋! 안녕하세요! 막내 없는 사블랙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리혁이 졸업식 때도 그랬지만, 정말 졸업식에 포토월이 설치된 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중현이가 기자들에게 받아 온 마이크를 들고는 간략한 소감을 전했다.
“자! 이제 이동할게요!”
강당까지 가는 길도 험난했다.
다행히 학교 측에서 가족이나 관계자들만 들어올 수 있도록 조치해 준 터라 2층에 섰을 때는 그나마 여유로웠다.
거기서 친구들을 만났다.
“Yo!”
선글라스를 쓴 LB가 턱끝으로 까딱하면서 손짓했다. 우글우글한 스트릿 보이즈가 자리를 비켜 주며 말했다.
“미리 뷰 좋은 데로 맡아 두고 있었다.”
“감사.”
“주 실장님. 여기 의자에 앉으시죠. 저희가 미리 덥혀 놓고 있었습니다.”
“누구 체온인가요?”
“저 이현조입니다. 실장님.”
“불쾌하네요. 다른 의자에 앉겠습니다.”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박수를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으이구 하는 한조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농담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가 자리를 잡으면서 1층과 2층에 소란이 벌어졌다.
1층에 있는 졸업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사악 꽂히고, 학부모나 가족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구경을 시작했다.
한두 명만 그러면 괜찮을 텐데.
“…….”
수백 명이 동시에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곧바로 자연스럽게 우리 막둥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왔다!’
‘왔어요?’
지호도 활짝 웃으며 손을 빙글빙글 흔들었다.
옆자리에는 스보의 막내인 기원과 걸스온탑의 길채경이 앉아 있었다.
앙숙답게 서로 쳐다보기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옆자리의 친구들과 각자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1층에 있는 막내에게 시선을 두면서 한조와 대화를 나눴다.
“예능은?”
“이번 주말에 촬영 들어가. 사전 미팅 끝냈다.”
“잘됐네.”
“너희 때문에 우리 회사 분위기 장난 아니라니까.”
한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능 추가로 더 잡았어.”
“그래?”
“맨날 어렵다, 어렵다 하더니 금방 스케줄들 잡아 오더라고. 너희 때문에 매니지 팀이 많이 깨졌거든.”
“아이고…….”
본의 아니게 희생자를 만든 것 같아 헛웃음을 짓고 있을 때, 한조와 스보 멤버들이 내게 어깨를 둘렀다.
“한 번 더 언제 찾아오실 계획 없습니까?”
“연봉 10억까지 가능합니다. 주 실장님.”
끈덕지게 함께 하자고 농담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농담도 참.”
“…….”
“농담이 아니야……?”
끄덕끄덕.
진지한 반응에 내가 리혁이를 불렀다.
“계산기야.”
“계산기라고 그만 불러요. 좀. 근데 왜요?”
“이 친구들이 나를 고용하고 싶다고 해서. 기회비용까지 계산해서 연봉 좀 산출해 보렴.”
“잠시만요.”
눈을 날카롭게 뜬 리혁이가 중얼중얼 하더니, 스트릿 보이즈에게 금액을 속삭여 주었다.
“……!”
“……!”
스보 멤버들이 웅성거렸다.
“얼마?”
“미쳤네. 중소기업 하나 사는 가격 아니야?”
“채용이 아니고 인수합병인데….”
“그러니까 지금 우리 1년 내내 해투 돌아야 고용 가능하다는 거야?”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스보 멤버들의 모습에 비주가 몹시 좋아하면서 내게 착 붙었다.
그동안 2층으로 입장한 지호네 가족 분들에게도 환히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아버님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일부러 막 친하다는 듯이 크게 웃으실 때. 주변 학부모와 가족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은 누군데 저렇게 친하게 인사를 해?”
“방송 보고 착각했나 보네. 뭐. 나만 해도 옆집 사람 같고 그러니까.”
“아빠도 인사해 봐.”
이윽고 지호네 아버님을 따라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아버님…….’
지호네 아버님이 아들과 똑 닮은 슬픈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셨다.
주변에다가 내가 왕지호 아빠고 뉴블랙이랑 아는 사람이라고 홍보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어머님이랑 지호 누나들이 옆구리를 팍팍팍팍 찌르면서 만류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동안 본격적으로 쇼케이스가…….
“아이, 쇼케이스래. 내 정신 좀 봐. 졸업식인…….”
졸업식인데, 라고 말하려던 그 순간.
무대로 올라온 신인 보이그룹 물티슈 멤버들이 축하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처럼
널 위해 촉촉해질게
Mo mo mo moisturizing
역주행으로 망고 100위 안에 들어왔다고 했던가.
모 모 모 모이스처라이징이 중독성 있게 귓가에 맴돈다.
물티슈의 리더인 곽이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졸업생인 듯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졸업식 MC를 맡은 곽정현이자 물티슈의 리더 곽이라고 합니다.
“티슈 곽!”
“티슈 곽!”
졸업생들이 박수를 치며 즐겁게 환호했다.
갑 티슈라며 리혁이가 부들부들하고 있을 때, 쇼케이스처럼 화려한 무대가 쭉쭉 이어졌다.
이어서 식이 진행되면서 우리 막내도 연단 위에 올랐다.
-보컬과 A반 왕지호, 길채경. B반 윤기원.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우리와 스보의 우렁찬 박수에 명단을 읽으려던 교장 선생님이 멈칫하며 명단 리스트를 헤맸다.
이어서 위 학생들은 품행이 단정하고.
“풉.”
타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어이구.”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으며.
“그건 그럴 수 있지.”
“이건 인정.”
말도 안 되는 표창 문구들을 받은 지호가 돌아서서 전교생들에게 브이하며 앙증맞게 웃자.
“우우우우우우우……!”
그야말로 전교생이 야유를 퍼부었다.
전교생과 친구라는 말이 진짜인지, 여기저기서 막내에게 외쳐 대고 있었다.
“여! 여!”
“여!”
“여!”
‘요’ 하며 눈을 부릅뜨던 막내가 내려가는 동안 엄하게 생긴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었다.
-학생들 조용히 해 주세요.
‘여!’ 하고 마지막으로 외치던 우리와 스보가 입을 다물고 무서운 선생님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막내에게 이어진 상장 파티도 끝나고.
졸업식이 무사히 파했을 때.
“형드으으으을……!”
“찌호야아아아!”
품에 7개의 상장을 안아 든 지호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막내가 시골 강아지처럼 웃었다.
“저 진짜 이제 어른이에요.”
“축하해. 정말로.”
“와. 저 지금도 안 믿겨요. 내가 어른이야. 어른…….”
믿기지 않는다는 듯 뺨에 손을 올리고 좋아하는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짜장면 고?”
“고 해야죠~ 근데 저 이제 반에 돌아가서 상장 받고 그래야 돼요.”
“다녀와.”
“네, 갈게요!”
우리가 뭐라고 붙잡으려고 할 때.
우르르 지나가면서 3초에 한 번 꼴로 ‘여! 왕지호! 축하!’ 하는 이들의 말에 대화가 끊겼다.
친구들을 따라가던 막내가 우리에게 씩 웃어 보였다.
“저 그럼 다녀올게요!”
“지호야!”
“걱정 마요! 혼자 가도 괜찮으니까!”
“아니……!”
이미 멀찍이 사라진 지호를 보던 우리가 침을 삼켰다.
그래서 부른 게 아닌데.
“…….”
“…….”
근처에서 눈에 불꽃을 이글이글거리고 있는 세 자매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리가 멀찍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 가족이랑은 얘기하고 가야지.”
옆에서 화르륵 불타오르는 가족들을 보며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몰라.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 * *
“특별상 왕지호.”
“우우우우우!”
졸업식에서 일일이 주지 못한 상장을 받아가면서 왕지호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에게 능글맞게 브이를 하자 다시 한번 야유가 쏟아졌다.
동시에 ‘한마디! 한마디!’ 하는 요청에 교탁 앞에 서서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뭐. 한마디 하라니까 내가…….”
“한마디 끝!”
“나가라!”
“나가라!”
깔깔거리며 웃는 반 친구들에게 우주선 같은 표정을 흉내 내며 검지로 지켜본다, 하듯이 자세를 취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돌아왔다.
담임쌤의 당부 인사와 함께 반에서의 행사가 끝났을 때도.
“왕지!”
“야! 왕! 일로 와!”
여기저기 불려 가서 친구들과 사진이나 영상을 찍던 지호가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캬. 어른스럽다…….’
앞으로 연예계 쪽으로 나아가려고 잠시 진로 상담을 요청하는 친구들과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계속해서 반을 찾아오는 다른 반 친구들에게도 웃으며 대하고.
전교생에게 인기가 많은 어른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뿌듯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어쩜 이름도 왕지호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뿌듯하게 웃던 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첫째 누나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녀브제영. 왕지호입니당~ 꺄핫!”
-녀브제영?
“……?”
-너 뭐 까먹은 거 없어?
“응. 필요한 거 다 챙겨 왔…….”
아.
아아.
“아.”
저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
‘마, 망했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왕지호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열었다.
“혀, 형들.”
-어?
“도와주세여. 저 이제 죽을지도 몰라여. 저 누나들한테 인사 안 하고 걍 무시하고 왔나 봐여.”
-어유. 요즘엔 귀신이 살아서 말도 하네.
“아. 혀엉!”
이제 스무 살.
아직 진짜 어른이 되기는 이른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