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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5)화 (59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5화

54장. 청춘들의 여행입니다, 아마도?

막내의 졸업식은 무사히 끝났다.

뭐.

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다.

누나들한테 붙들려서 눈가가 촉촉해진 누구라든가. 껄껄 웃으며 울 아들이 그럴 수 있지 하다가 같이 붙들려서 눈물을 쏙 뺀 누군가도 있고.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몹시도 즐거운 졸업식이었다.

“즐거워요? 제가 당하는 게?”

눈을 부라리는 막내에게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꿀잼.”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던데.”

“조금 재미있긴 했어….”

팝콘이랑 콜라가 없어서 아쉬웠다는 말에 막내가 눈을 부릅떴지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저는 저를 거기다 버려 둔 형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아니, 막냇동생이 그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

“네가 우리 동생인 건 맞는데 누님들은 혈연이잖아.”

“피는 물보다 진하지.”

“…….”

덧붙이는 중현이에게 잘했다며 하이파이브를 하자 막내의 눈빛이 더욱 새초롬해졌다.

비주가 단무지를 콕 집어서 막내의 입에 물려 주는 동안 내가 물었다.

“깐풍기 시켜 줄까?”

“네!”

“다른 거는? 우리 오늘 배 터지게 먹어야지~”

“전가복도 시켜 줘요.”

“전가복이 뭐지. 잠깐만.”

해산물과 버섯이 들어간 요리라고 적힌 메뉴판 설명을 보고는 곧바로 메뉴들을 추가했다.

이미 테이블 위에는 접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막내의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잔뜩 시켰는데, 접시 개수가 일정량을 넘어서자 주방장님이 직접 찾아와서 메뉴 추천도 해 주시고 주문을 받으셨다.

“크으.”

막내가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아직도 제가 졸업을 한다는 게 안 믿겨요. 중학교 때만 해도 아, 이거 언제 졸업하지 그랬거든요? 근데 시간도 진짜 빠르게 가고. 형들이랑 이렇게 오래 만났나 싶기도 하고.”

좋아서 막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막내의 모습에 우리도 미소를 지었다.

“졸업 축하한다.”

“이제 진짜 어른인 거 인정?”

“인정.”

“그런 의미로 오늘 여기서 한 모금……?”

막내가 말을 마치고 슥 눈치를 살폈다.

비주가 물었다.

“한 모금? 무슨 한 모금?”

“에이. 알면서 그런다~ 제가 한 모금이라고 할 만한 게 뭐가 있겠어요?”

“음…….”

“한 방울로도 우주 형을 보내 버릴 수 있는 그 액체를 말하는 거예요.”

“아. 술.”

비주가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절대 안 돼.”

“…왜요? 저 이제 성인이라서 마셔도 되는데. 사실 성인이니까 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지호야. 내일이 무슨 날이야?”

“내일이요? 내일… 아.”

막내가 추욱 처졌다.

“내일 리얼리티 촬영 들어가는구나.”

“스케줄 기억도 잘하고. 진짜 성인 다 됐네~”

리혁이의 비웃는 말투에 지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제가 잘못한 거니까 인정~”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어? 대박인데?”

“뭐가.”

“저 방금 되게 어른 같지 않았어요? 스스로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어른….”

“어른이 되기 전에 입에 묻은 짜장 소스부터 닦으렴.”

“치…….”

“치- 가 뭐야. 어른답게 말해야지.”

“아이고…….”

나이 지긋한 분이 낼 법한 감탄사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졸업을 했어도 막내는 여전히 우리 막내다.

말로는 표현을 안 하고 있지만 잘 큰 우리 다섯째의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리혁이가 포크로 짜장면을 휘감으며 말했다.

“그런데 다들 짐은 쌌어요? 내일부터 여행이잖아요.”

“난 미리 준비해 놨어.”

비주가 선뜻 대답을 하는 반면 나머지 셋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하느라고 깜빡하고 있었네.”

“저두.”

“여행은 몸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옷에서 냄새 나도 팬분들은 못 맡을 거니까.”

“우린 맡아여…….”

“그래. 그건 아니다. 중현아.”

셋이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리혁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에는 짐 꼭 잘 챙겨요. 양말 없다고 매일 양말 빌려 가는 사람 되지 말고.”

“힝…….”

“내가 무슨 약국도 아닌데 돈 주면서 타이레놀, 소화제 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으면 하고.”

“5만 원 받아갔으면서.”

“그리고 중현이 형은 후…….”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잔소리를 하고 있는 메인 보컬의 곁에서 비주가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우리가 고개를 조아렸다.

“잘못했습니다. 아주 꼼꼼하게 짐을 쌀게요….”

그래도 내일 여행 시작이니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

중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 거실과 주방에 미니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지잉- 하고 돌아가는 동작 감지 카메라.

숙소 전날 특유의 ‘우리 내일 여행 떠난다!’ 하면서 꺄르륵 웃는 모습을 촬영하는 건가 싶었는데.

“왜 벌써 오신 건가요?”

매니저 형들과 함께 숙소로 들어온 제작진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PD님이 대본을 읽었다.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 호주편! 대망의 여행 시작일이 되었습니다.”

“네?”

“여행 시작일이요. 우주 씨.”

“아니, 여행 시작일은 내일이잖아요?”

분명히 졸업식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여행을 시작하게 될 거라고 말을 들었는데 피디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눈을 깜빡이는 우리에게 피디님이 다시 말했다.

“내일 오전부터 시드니 여행이 시작됩니다.”

“네. 그런데…?”

“여행이 내일 오전부터 시작되려면 오늘 밤에는 비행기를 타야 내일 오전부터 시작할 수 있잖아요?”

“어?”

“인천에서 시드니까지 직항노선이 10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거든요. 그러려면…….”

“오늘 밤에 출발해야… 아.”

맞네.

네 명이서 오오 하며 감탄하는 광경에 옆에 있던 리혁이가 황당하단 얼굴로 물었다.

“몰랐어요?”

“응.”

“이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게 아니고 달력에…….”

벽에 걸린 틴스피릿 월별 달력이 눈에 띄었다.

2월 10일에 동그라미 쳐진 지호 졸업식 옆으로 2월 11일, 여행일기 시작! 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얀 이를 반짝이는 미소년들이 우릴 비웃는 것만 같다.

“……나 바보인가.”

이래 놓고서 리얼리티에서 동생들이랑 뭐 해야지, 제작진 분들 뭐 챙겨드리지, 뭘로 웃겨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네.

피디님이 말했다.

“여러분이 모르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 이렇게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름하야 짐 싸는 뉴블랙.”

“따단!”

본능적으로 예능 추임새를 넣은 우리 모습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의미로 지금부터 1시간 30분가량의 준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짐을 싸 주세요.”

“네!”

“짐을 최대한 간소하게 싸 주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청춘 여행 컨셉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움직여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행히 청소요정과 가사요정의 도움에 힘입어 짐을 금방 쌀 수 있었다.

툭.

“옷만 챙겨요. 나머지는 내가 미리 준비해 뒀으니까.”

중현이와 지호, 내가 싸고 있던 캐리어에 비닐에 담긴 여러 여행용품들이 착착 올려졌다.

“리혁아!”

“아. 껴안지 마요!”

“사랑한다! 우리 동생!”

“사랑해여!”

어화둥둥 우리 넷째였다.

그렇게 리혁이가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조달해 주고 있을 때.

카메라 감독님이 감탄했다.

“리혁이는 어디서 그걸 가져오는 거야?”

“재난가방이 있거든요. 거기서 미리 빼 왔어요.”

“재난가방?”

“네.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메고 도망칠 용도로 준비한 가방들이 있거든요. 거기서 뺐어요.”

리혁이가 자기 옷장에 있는 5개의 가방을 이야기해 주자 감독님들이 흥미를 보였다.

이윽고 남자 제작진들이 리혁이의 재난가방 앞으로 웅성웅성 모였다.

“그거 돌아가?”

“네.”

“한 번 봐봐.”

“이게 자체 발전으로 돌아가거든요.”

지이잉- 하며 리혁이가 램프 손잡이를 돌리자 램프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비라면 눈에 불을 켜는 기술직들이 어이구! 어유! 하면서 리혁이의 가방에 든 물품들을 황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뭘 해도 될 애들이 아니었구나. 너희. 뭘 해도 살아남았을 애들이었어.”

“생존형 아이돌이네. 너희가 진짜 서바이벌 아이돌이구나.”

“이야. 이거 오지 촬영 들어갈 때 쓸 만하겠는데.”

그런 이야기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며 짐을 싸는 동안.

피디님과 작가님들이 제안한 즉석 코너 촬영이 시작됐다.

*   *   *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 - 1화 :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숙소 거실.

뉴블랙의 메인 보컬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서 있다.

-네! 멤버들이 짐을 싸고 있는 막간을 이용해서 여러분에게 재난 가방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작진들의 환호에 리혁이 가방 속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비상식량이랑 물이고요. 그리고 응급 약품, 플래시가 있어야 해요. 핸드폰 보조 배터리도 있어야 하고 우비도 있어야 합니다. 이게 재난 상황별로 다른데.

차분하게 좀비 아포칼립스, EMP로 인한 정전 상황, 화산 분화 같은 사태를 언급하며 재난 가방 싸는 법을 알려 주는 메인 보컬.

리혁이 상기된 얼굴로 가이거 계수기를 들었다.

-이건 방사선 계측기인데요. 정산 받고 나서 제일 먼저 산 물건이에요. 별로 써먹을 곳이 없긴 했지만…….

방사선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하면서 흥분하는 메인 보컬.

그 아래로 기다란 자막이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본 방송은 아이돌 힐링 여행 리얼리티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라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사전 인터뷰 장면.

리혁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이번 여행은 제가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요?

-제가 이 그룹의 유일한 정상인이라서요.

그 인터뷰 위로 재난 가방을 설명하는 리혁의 얼굴과 목소리가 흐릿하게 메아리처럼 나왔다.

-방사선 계측기!

-폭파되면….

-호주에 독거미가 있다더라고요. 블랙위도우라는 거미인데 여기 물리면…….

다시 한번 아이돌 힐링 리얼리티라는 자막이 지나간 후.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과 전략을 언급하는 리혁의 곁에 네 멤버들이 멍하니 앉아 있다.

리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나머지가 축 늘어진 고양이들처럼 말했다.

-여행…….

-여행 가기 싫어졌어.

-저 이제 무서워서 못 갈 거 같아요.

-저희 지금 출발해야 되나요…?

촉촉한 눈망울을 한 채 서로에게 몸을 기댄 멤버들의 모습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4인조에게 리혁이 태블릿을 톡톡 두드리고는 내밀었다.

치익- 하고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기름에 튀김 요리가 만들어지는 영상.

4인조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간다.

-호주야! 기다려라!

-저희 언제 출발해요?

곧바로 활기차게 변한 멤버들이 와글와글하면서 화면 밑으로 희망적인 자막이 깔려 나왔다.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   *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우리의 비행기는 태평양을 쭉쭉 내려가서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10시간 30분간의 비행.

비행기에서 한참 동안 잠을 자고 나니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한적하구만.”

콘서트 투어처럼 미리 공개된 공식 스케줄이라면 공항이 팬들로 북적였을 텐데.

비공개 스케줄로 입국하니 공항이 한산했다.

여행객들이 엄청 돌아다니긴 하는데 솔직히 이 정도면 우리 기준으로는 한산함의 극치였다. 최소한 여기저기서 떠밀릴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우와…….”

공항 유리창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

남반구의 하늘이 그렇게 예쁘다고 그러던데. 호주의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막내가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여기도 아침이라니까 신기하네요.”

“한국이랑 시차가 두 시간밖에 안 날걸.”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비행기로 10시간을 왔는데 시차가 2시간밖에 안 나요?”

“시간대는 그 지구본 기준으로 세로로 정해지는 거거든.”

“아 요렇게요?”

처음 알게 된 시차의 원리에 좋아하는 스무 살짜리를 토닥여 주면서 공항을 나섰다.

중현이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근데 확실히 외국 오니까 이건 좋네요.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 같아요.”

“그러게.”

“피디님이 골라 주신 이유가 있었네.”

공항에서 카메라를 대동하고 다니는 우리 모습에 외국인들이 쟤네 누구지? 하고 갸웃거릴 뿐.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봤다.

“Hey! Blue Moon!”

대학생으로 보이는 영국인이 손을 흔들며 우리와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지나갔다.

“…….”

“…….”

“…….”

서로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블루문이 너무 흥해 버렸어…….”

“에잉.”

“아무도 못 알아보는 데 한 번 가 보고 싶었는데.”

온갖 사람들이 가득한 공항이라서 그런 거 같다.

그렇게 우리가 얇은 가을옷차림으로 공항에서 나갔을 때.

“안 춥네.”

“남반구는 올 때마다 신기하다니까요. 날씨가 정반대야.”

한국에서만 해도 온몸에 코트를 칭칭 둘러야 하는데 따스한 여름 날씨가 우릴 반기고 있었다.

오늘 최고기온은 26도, 최저기온 19도라나.

비행기 타기 전까지만 해도 평균 영하 9도의 날씨에 있었다 보니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햇볕은 왜 이렇게 세?”

제작진 분들이 그늘진 곳에 모여 있는 이유가 다 있었다. 실시간으로 자외선 살균되는 기분.

김밥천국의 물컵이 이런 기분일까.

촬영 들어가기 전에 선크림을 진하게 바르고는 시드니 공항 앞에 모여 섰다.

“네!”

피디님이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아시다시피 이번 리얼리티는 청춘 여행이라는 컨셉이고요. 그에 걸맞게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분이 주체적으로 계획을 짜고, 또 여행지에서의 상황에 대처하셔야 합니다.”

“네!”

“그런 의미로 여러분의 카드와 현금은 사용할 수 없고요. 제작진이 지급한 예산으로만 활동을 하셔야 합니다.”

신규 매니저 종완 씨와 민수 씨, 지운 씨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우리의 지갑을 수거해 갔다.

이어서 1인당 하나씩 받은 하얀 봉투를 중현이에게 모아서 건넸다.

“금고지기 임명.”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기사를 서임하듯이 탁, 탁, 어깨를 두드려 주자 중현이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흐뭇해했다.

피디님이 물었다.

“중현 씨에게 돈을 다 모아서 바친… 아니, 바쳤대. 드린 이유가 있나요?”

“피디님.”

막내가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백악관?”

“그, 그것도 맞긴 한데 땡입니다! 바로 중현이 형의 품입니다.”

잘 부수고 다닐 뿐.

절대 소매치기 당하거나 한 번 들어가면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우리 말에 피디님이 감탄했다.

비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주 형도 못 훔쳐 가요!”

“맞습니다. 저도 못 훔쳐요.”

프랑스에 있었을 때도 소매치기를 역으로 털 뻔했다는 우리 이야기에 피디님이 흥미로워하셨다.

금고지기가 눈가에 브이를 하고 푸근하게 웃을 때.

피디님이 설명을 이었다.

“다시 당부 드립니다. 예산을 철저하게 관리하셔야 해요. 중간중간 게임이나 퀴즈를 통해 추가 예산이 지급될 수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예산을 최대한 활용하셔야 됩니다.”

“그럼 저희가 돈을 벌어 오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뭐 알아서 하셔도 무방하죠.”

피디님이 말했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의 규칙을 다 숙지하셨죠?”

“네!”

“그럼 오늘 여행을 시작할 텐데요. 아직 날씨에 적응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배낭여행은 내일 시작할 거고요. 오늘은 패키지처럼 가이드의 안내 하에 시드니 투어를 할 예정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자! 그럼 가이드를 소개하겠습니다!”

제작진의 뒤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검은 머리카락에 콧수염을 살짝 기른 30대 호주인이었는데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유창한 한국어가 미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재트 밀러입니다.”

“와아아아아!”

“2년 전부터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역할로 많이 등장하는 배우였다. 예능 패널로도 호주인 재트라고 많이 나오고.

재트가 우리에게 꾸벅 인사했다.

“뉴블랙 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서 진심으로 영광이에요. 항상 팬의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 네. 그런데 말씀 편하게 하셔도…….”

“예능계의 대선배님들께 그럴 수가 없죠.”

“그래도 나이가…….”

“나이가 중한가요. 성공하면 선배님입니다.”

하얀 이를 반짝반짝 드러내며 웃는 미남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 패치가 지나치게 잘된 분이었다.

“그럼 시드니에서 거주하시는 건가요?”

“네. 잠시 친구들 만나러 와 있었는데 여행일기 제작진 분들이 마침 섭외를 해 주셔서…….”

그런 말을 하던 재트가 오프닝 촬영이 끝나자 내게 손을 들어 속삭였다.

“사실 뻥입니다. 뉴블랙 가이드 하고 싶어서 한국에서부터 미리 날아와 있었어요.”

“그,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저 한 번 예능으로 키워 주십쇼!”

“……!”

과장스럽게 인사하며 야심을 불태우는 외국 배우에게 우리가 손을 맞잡고 흐뭇하게 웃었다.

“저희만 믿어요.”

“!”

“분량 만들어 드릴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격한 호주 배우와 찐한 선후배 사이의 정을 느끼며 본격적인 시드니 일일 투어를 시작했다.

첫 방문한 곳은 차로 20분 정도 걸려서 방문한 시드니 천문대 공원이었다.

갈색 벽돌로 지어진 천문대.

“여기는 과거 요새였던 곳이 천문대로 바뀐 케이스인데요. 저녁에 방문하면 실제로 천문 관측을 할 수도 있어요.”

“오오오.”

“처, 천문관측!”

“그런데 천문관측보다는 뷰가 너무 예뻐서… 이 사진 찍는 명당으로 더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언덕 위에서 도시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시드니의 마천루들과 하버 브리지의 철골 구조물이 한눈에 들여다보인다고 할까.

따사로운 햇살 아래 잔디밭에선 촬영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홀로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들도 있고.

벤치에서도 커플들이 꽁냥거리고 잔디밭에서는 웨딩 촬영이 이뤄지는 듯했다.

“좋구만…….”

우리도 선글라스를 벗고 사진을 촬영하려고 할 때였다.

멀찍이 웨딩촬영을 하는 곳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뉴… 뉴블래애액!」

새된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어?”

“어어?”

웨딩 촬영을 하는 사람들 틈바귀에서 꽃다발을 든 신부가 우리를 향해 전력 질주해 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귀기 어린 미소가 상대의 붉은 입술에서 빛났다.

「나 수플레에에에!」

그렇게 광기에 찬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는 신부의 모습에 우리는 환히 웃으며.

“으아아아아악!”

“뭐야. 무서워요!”

“우린 왜 팬들도 이런 건데!”

너 나 할 것 없이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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