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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6)화 (59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6화

어렸을 적에 엄마가 읽어 준 동화책 <신데렐라>를 들으며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엄마.

-응.

-왕자님은 그냥 신발이고 공주님은 구두 신었는데. 어떻게 공주님이 더 빨리 달릴 수가 있어?

-어? 그러네?

딱 12시가 되면 변신이 풀리는 신데렐라가 구두를 신고 도망치는데, 왕자가 그걸 못 쫓아가는 장면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이게 말이 되나? 의문을 품었는데.

-신데렐라가 아마 평소에 운동을 많이 했나 봐. 그래서 왕자님도 못 따라간 거 아닐까?

-근데 구두도 한 짝 흘리고 도망치는 거잖아.

잘 이해가 안 갔던 대목이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달리기 힘든 구두, 그것도 한 짝만 신고 있는 사람을 왜 못 쫓아가는 걸까.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그 동화책에서 왜 왕자가 신데렐라를 추격하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뉴블래애애애애액!”

“히이이이익!”

다섯 명 모두 웨딩드레스에 구두를 신은 신부에게 추격당해 꼬리를 잡혀 버렸다.

특히나 중현이는 충격이 가득한 듯했다.

“괜찮아?”

“…네?”

“충격이 좀 커 보여서.”

“아니, 일반인한테 이렇게 추격당해 본 건 처음이라…….”

중현이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쫓아 온 수플레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금발에 태닝을 해서 까무잡잡한 피부. 드레스 아래로 나온 발목 부근에 힘줄이 선명하게 돋아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정돈한 수플레가 카메라를 향해 활기차게 웃었다.

「앤 가너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지만 하시는 일이…?」

「호주에서 국가대표 육상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메달을 딴 적도 있어요.」

「다행이다…….」

「네?」

중현이가 휴 하며 납득했다.

이윽고 우리를 쫓아 온 앤 가너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비신랑이랑 웨딩 사진을 찍는 중이었는데, 마침 카메라를 매달고 있는 5인조가 선글라스를 딱 벗었다는 거다.

수플레가 주먹을 꼭 쥐었다.

「그 순간 알았죠.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기다렸던 운명이 여기 나타났다는 것을…!」

「자기야, 당신 운명은 나야….」

예비신랑이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환하게 웃던 앤 씨가 꽃다발을 붕붕 휘두르면서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뉴블랙 TV? 아니면 한국에서 찍는 코미디 프로그램?」

「여행 리얼리티 찍고 있어요.」

「허어어어! 여행 리얼리티!」

「그래서 양해를 미리 구하려고 하는데, 저희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뉴블랙이 나한테 부탁을 한다! 하는 듯이 눈을 초롱거리던 수플레가 자기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무덤까지 가져갈게요.」

「그, 그런 곳까지 가져가실 필요는 없고요. 며칠 정도만 비밀로 해 주시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디 있는지 밝혀졌다가는 곳곳에서 몰려든 수플레들로 인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니까.

최애와 만난 기쁨 때문인지 눈가의 눈물을 닦는 앤 가너 씨를 예비신랑이 살짝 안아 주었다.

앤 씨가 중얼거렸다.

「내 운명을 여기서 만나다니…….」

「자기야….」

즐겁게 웃는 분위기 속에서 예비부부에게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진도 찍어 주었다.

웨딩 사진에도 잠시 끼어들어 갔다.

「저희가 웨딩 사진…까지 끼어드나요?」

「이건 기념해야 되거든요. 그래야 나중에 몇십 년 뒤에 아들딸한테 내가 뉴블랙이랑 사진 찍었다고 말해 줄 수도 있고.」

「그러려면 저희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분명히 더 잘될 거예요!」

햇볕을 많이 쬐는 나라라서 그런가.

낙천적으로 활짝 웃는 수플레의 응원에 우리가 고맙다고 하고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꿀 먹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재트 밀러 씨를 바라보았다.

“재트 씨는 왜 아무 말도 없이 서 계셨어요?”

“그게…….”

재트 씨가 콧수염을 긁적이며 말했다.

“한국어를 하도 쓰다 보니까 영어가 좀 입에 안 달라붙어서. 단어가 순간 생각이 안 났습니다.”

“흐하하하하!”

“순간… 어, 호주인이다… 이래서.”

대학생 때부터 거의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아서 모국이 더 낯설다는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멋쩍게 웃던 재트 씨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스승을 바라보는 눈빛.

‘분량이 생겼습니까. 선배님?’

‘충분히요.’

카메라가 안 돌아갈 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야심가에게 우리가 엄지를 들어 훌륭함을 칭찬해 주었다.

“근데 햇살이 점점 강해지네요.”

리혁이가 눈매를 찌푸리고는 천문대 책자를 들어 눈가를 가렸다.

“원래 이런가요?”

“네. 호주 햇볕은 한국이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거든요. 여기가 세계에서 제일 피부병 발병률이 높아요.”

“모자를 좀 써야겠네요.”

각자 가방에서 야구 모자나 스냅백 등을 꺼내는 가운데 썬캡을 꺼내는 내게 눈총이 날아들었다.

“동생들아. 솔직히 멋보다는 실용성 아니니?”

“김중현. 저거 뺏어.”

“응.”

“아아아아아! 내 썬캡! 돌려내라! 이 악덕 동생들아!”

“에이, 지지. 저거 어디다 몰래 버려여.”

결국 중현이에게 빌린 새 모자를 살짝 줄여서 썼다.

일일 가이드인 재트 씨가 다음 목적지인 오페라 하우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을 때.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하던 우리가 피디님을 불렀다.

“저 피디님.”

“응?”

“지금 막 떠오른 건데요.”

“응.”

“호주 가면 사람들이 저희 못 알아볼 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공항에서도 한 명 만나고. 천문대 언덕에서도 한 번 만나고…….”

“그…….”

피디님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연의 일치일 거야.”

“그렇겠죠?”

“응.”

시작부터 우연의 일치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   *

오페라 하우스에 들르기 전에 우선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도착한 곳은 유명한 브런치 카페.

“안 그래도 여기 한 번 오고 싶었는데.”

리혁이가 살짝 설렌다는 얼굴로 웃었다.

“여기가 호주에서 브런치 맛있다고 유명한 곳이래요. 한국에도 지점이 있는 곳인데.”

“그래?”

“근데 가격이 좀 비쌀 텐데….”

“얼마나?”

마침맞게 직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팬케이크와 커피, 샐러드 같은 조합들이 있는 메뉴판의 가격들을 하나씩 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금고지기야.”

“네.”

“잠깐만 돈 좀 꺼내 보자.”

“네.”

봉투에 담긴 돈의 액수를 확인하고는 메뉴판에 적힌 가격들을 보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비주가 눈을 깜빡였다.

“비, 비싸요…….”

“이 돈이면 차라리 삼겹살을 먹겠는데. 브런치로 예산 다 나가게 생겼네.”

“원래 인생이 그런 맛이져. 탕진잼~”

브런치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못 먹을 정도까지는 아닌데,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쓸 돈이랑 저녁 식사까지 생각하면 미묘하다.

저녁 먹을 때 누군가 한 명 굶어야 될지도 모르는 느낌.

“리혁이는 적게 먹는 거 좋아하지?”

“몰아가지 마요. 나 오늘 많이 먹을 거니까.”

“으으음…….”

이걸 어쩌지 하고 있을 때, 막내가 제작진에게 물었다.

“애교 부리면 되나요?”

“아뇨.”

“그러면 저희가 뭘 하면 추가로 예산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도깨비 춤추기?”

나름대로 부끄럽지? 하며 준비한 미션이었지만 우리의 눈에 떠오른 것은 환희였다.

“가능.”

“물구나무서서 춤도 출 수 있어요.”

“쉽네요.”

“부끄러움보다는 돈이죠.”

제작진에게 여윳돈을 조금 받기로 약조를 받고는 브런치 메뉴를 시켰다.

리혁이가 계산기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 근데 여윳돈 받아도 애매한데.”

“왜?”

“저녁에 비싼 걸 못 사 먹거든요. 기왕이면 그래도 비싼 스테이크 그런 거 먹고 싶었는데…….”

“뭐. 안 되겠으면 맥도날드에서 감튀만 시켜 먹으면 되지.”

그것도 추억 아니겠냐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이윽고 점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브런치 메뉴를 가져다줬다. 아까 주문하면서 많이 달라고 웃으며 부탁했는데 그 덕분인지 팬케이크가 두툼했다.

계란 노른자가 올라간 팬케이크.

당연하게도 그 맛은…….

“홀리…….”

“신성한 맛이네요. 아 진짜 맛있다.”

“대박.”

온 보람이 있었다.

동생들 말로는 커피도 엄청 맛있다고 하는데, 카페인 취약자 입장에선 그저 향만 맡으며 좋아할 뿐이었다.

커피를 홀짝이던 막내가 물었다.

“근데 저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형.”

“응?”

“콜라나 코코아에도 카페인 들었는데 그건 마셔도 괜찮아요? 리혁이 형이 저번에 그러던데.”

“뭐, 그 정도는 괜찮던데. 커피 급으로 많이만 안 마시면 괜찮아.”

리혁이가 물었다.

“마시면 어떻게 되는데요?”

“음…….”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셨던 때를 떠올리며 답했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데…….”

“뛰는데?”

“일이 잘 돼.”

“네?”

“일이 너무 잘 돼.”

“…….”

“카페인이 머리에 돌면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더라고. 막히던 곡 작업도 단번에 해결이 되고. 영감이 막 샘솟고.”

“……근데 왜 안 마셔요?”

“하루 막 5잔씩 먹고 쓰러지고 그래서.”

히히히히 웃으면서 광기 어린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에 동생들이 눈을 깜빡였다.

“그건 평소에도 그러잖아요?”

“음. 그거의 10배? 아무래도 사람이 좀 흥분 상태에 들어가니까.”

“10배?”

“응.”

“……앞으로 커피 마실 생각 절대 하지 마요.”

“안 마셔. 야. 치사하게 잔을 치우냐.”

혹여 내가 손이라도 댈까 봐 두려웠는지 잔을 들어서 방비하는 동생들이었다.

투덜대면서 에잉 하고 있을 때.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기에 브런치 카페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창한 하늘과 낮게 떠다니는 흰 구름.

태양이 점점 하늘 꼭대기를 향해 달려가는 시각이라 그런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

“…….”

“…….”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우리를 창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2인조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 두 명.

우리를 보고 눈이 거의 왕방울 만하게 커진 이들에게 내가 손가락을 들어 쉬이이- 했다.

“뉴블랙……!”

자기들끼리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 2인조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는 피디님에게 물었다.

“피디님?”

“응…….”

“아무도 저희를 모를 거라면서요.”

“그.”

“?”

“너희가 눈에 띄게 생긴 걸 어떡해…….”

피디님의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아무래도 인구 500만의 도시라서 그런가.

-다들 여행 왔니?

-이번엔 무슨 특집이야. 캥거루 특집?

-저 장래희망에 뉴블랙 썼어요.

한국 여행객이나 교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드니를 돌아다니는 동안 수플레들을 꽤 많이 마주쳤다.

그래도 다들 비밀을 지켜 준 덕에 사람이 몰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정말 여기서 마주칠까? 싶은 곳에서 눈이 마주치고 그랬다.

지하철 역사에서 어? 하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중현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주에 우리 팬이 어떻게 이렇게 있죠. 우리가 뭔가 특별한 걸 한 것도 없는데. 여기 TV에 나오거나 그런 적도 없잖아요. 작년에도 콘서트만 작게 하고 갔고…….”

“그냥 우리 입장에서만 많아 보이는 걸 수도 있어요.”

리혁이가 책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500만 명 중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몇 명이 어? 하고 그러는 건데 우리 입장에선 엄청 많이 모인다!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설득력이 있네.”

“근데 우리가 너무 눈에 띄게 웃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막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팬분들한테 아까 어떻게 알아봤냐고 물어보니까 다들 대답이 비슷비슷했잖아요.”

팬들을 만났을 때 물어보곤 했다.

어떻게 우리인 줄 알았냐고.

도깨비 프로모션이 끝나고 나서 전부 갈색 아니면 검은색 머리로 돌아가서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팬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덕후는 알아보게 되어 있어요.

-그게 덕후니까…….

-덕심으로 보면 다 보여요.

전체적인 실루엣과 함께 특유의 하찮아 보이는 우리 웃음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시선을 끄는 듯했다.

“좀 진중하게 웃어 볼까?”

“후후후후후후…….”

“우후후후후후!”

오디오 감독님이 물을 마시다가 뿜었다.

“아닌가 보네.”

“이건 아닌 걸로.”

분무기처럼 흩뿌려진 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일들이 벌어지긴 했지만 호주에서의 첫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재트 씨의 훌륭한 안내에 힘입어 시드니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 지하철이 2층이 있어요!”

2층 지하철에 탑승해서 오페라 하우스까지 가 보기도 하고.

오렌지 껍질을 모티브 삼아 만들었다는 오페라 하우스의 역사를 들으며 그 앞에서 도깨비 춤도 추고.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노천카페에서 음료도 홀짝이면서 지나가는 유람선들 구경도 하고.

바짝 조여졌던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노곤노곤한 평화로움이 감돌았다.

늘상 긴장하던 삶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니 마음도 넉넉해지는 듯했다.

“문제는 돈인데…….”

여기저기서 기념품도 사고 음료도 홀짝이면서 돈이 빠른 속도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봉투를 바라보던 지호가 말했다.

“금 나와라 뚝딱! …안 나오네.”

“안 나오지.”

“중현이 형, 한 번 여기저기 봐 봐요. 근처에 떨어진 동전이나 그런 거 있으면 주우면 되잖아요.”

“보이면 주울게.”

흐으으음 하면서 다 같이 탄식했다.

“청춘 여행이란 게 쉽지가 않네.”

“그러게 내가 돈 좀 아끼라고 했잖아요. 몇 번이나 권고했는데 이 사람들이….”

유일하게 돈을 아낀 리혁이가 혀를 끌끌 찼다.

쓸데없는 기념품이나 옷을 샀던 사람들은 그저 눈을 피하며 맥도날드 위치를 검색할 뿐이었다.

“감튀 먹어야지.”

“감튀밖에 없네요.”

“그래도 호주 맥도날드에선 갈매기들이 못 뺏어먹게 껍데기를 빛 반사되는 재질로 준대요.”

“나쁜 갈매기 놈들. 그거 감자튀김 몇 개나 된다고.”

그런 이야기를 울적하게 나누며 저마다 손에 든 토템, 깃털 같은 기념품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이곳은 바다가 인접한 공원.

얄팍해진 봉투를 바라보고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왜 저 새가 우릴 보면서 웃는 것 같지.”

주변 쓰레기통 위에서 주둥이가 학처럼 길쭉한 새가 우리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재트 씨가 설명해 주었다.

“아이비스라는 새예요. 한국 말로는 따…….”

“따오기?”

“네. 쓰레기새라고도 불러요.”

세계 대도시 어디를 가든 다 비슷한 풍경들이긴 하지만, 시드니는 그중에서 독특한 면이 있었다.

어딜 가든 야생 동물이 보였다.

지금처럼 쓰레기통 위에서 뒤적뒤적하는 새도 있고, 길고양이들도 뭔가 이상하게 생겼다. 주머니 여우가 총총총 오더니 리혁이를 한 대 치고 떠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동물들이 ‘인간? 그래서 뭐 어쩔 건데?’ 하는 분위기였다.

“자!”

우리에게 추가 미션 시킬 생각으로 신이 난 피디님이 활기차게 외쳤다.

“일단 여기서는 개인별로 자유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40분 정도 시간을 드릴게요!”

“네!”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요!”

“네!”

지호에게 재트 씨가 붙고, 리혁이와 비주, 그리고 나와 중현이로 나누어 이동했다.

카메라를 든 중현이가 호주 동물들을 찍으며 좋아하고.

중간중간 나무들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 주거나 아이스크림 등을 사 먹으면서 노닥거렸다.

“오. 저기선 뭐 공연도 하나 봐요.”

“그러네?”

바다를 배경으로 광장처럼 널찍한 곳에 마술사가 모자에서 무언가를 꺼내면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었다.

길거리 공연의 성지 그런 곳인가.

널찍한 광장 곳곳에 포진한 이들이 집단적 독백을 하듯이 서로 자기 노래만 부르거나 마임 등을 했다.

빌보드 차트에 오른 명곡을 커버하는 사람도 있고, 알 수 없는 허밍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집시 차림의 남자가 낡은 모자를 앞에 내려놓은 채 기타를 튕기며 밥 딜런의 노래를 불렀다.

“오호…….”

주변에서 얽혀 들어오는 선율들이 눈으로 흐릿하게 보인다.

각각의 소리들이 내는 색깔들이 하늘 위의 구름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하게 섞여든다.

어떤 소리는 희미하게 녹색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핑크빛 연기를 길고 선명하게 남기기도 하고.

고개를 까딱이며 주변의 소리들을 한눈으로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있는 소리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구석진 곳.

기타를 치면서 흥얼대고 있는 뮤지션이 하나 보였다. 중절모자를 푹 눌러쓴 노인이었다.

“소리 진짜 예쁘다.”

“네?”

“아.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소리 중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때였다.

무언가 색다른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짤랑.

“…….”

짤랑.

“…….”

짤랑.

어디선가 금속성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에 중현이와 나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공연이 끝난 마술사의 모자에 호주 시민들이 동전이나 지폐 같은 걸 슬쩍 던져 주고, 마술사가 우아하게 인사하며 응답하고 있다.

“…….”

“…….”

중현이와 내가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중현아.”

“네, 형.”

“나만 지금 그 생각 하니?”

“아뇨. 형. 저도 지금 완전 똑같은 생각이에요.”

중현이와 주먹을 살짝 콩 하고 부딪치고는 곧바로 기타를 치고 있는 노인에게 걸음을 옮겼다.

기타를 둥가둥가 치던 노인이 인기척이 있거나 말거나 자기 연주를 계속했다.

그렇게 연주가 끝났을 때.

「응?」

세월이 담긴 주름진 눈이 우리를 올려다보더니….

「아이고 깜짝이야!」

화들짝 놀랐다.

「…….」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방금 전부터요. 어르신 연주를 듣고 너무 좋아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광장에서 딱 어르신 기타 소리만 들리더라고요.」

「보는 눈이 있는 친구들이로군.」

껄껄 웃던 노인이 흡족하게 턱수염을 매만지고 있을 때, 쪼그려 앉아서 노인과 눈을 마주쳤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데이비스.」

「저는 우주, 여기는 중현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서 여행을 하러 온 가수예요.」

「그래서 카메라가 있구만.」

「네.」

호의적인 분위기로 답을 해 주는 분에게 우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저희가 공연에 끼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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