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7)화 (59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7화

데이비스 씨는 흔쾌히 합동공연을 승낙해 주었다.

「함께할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현자처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노인이 기타를 튕기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티셔츠 사이로 빠져나온 팔뚝의 근육을 보니 연주를 하루 이틀 하신 게 아니신 것 같다.

내가 물었다.

「혹시 가수신가요?」

「아니.」

「기타 연주하시는 소리가 어딘가 익숙해서요.」

「친구들과 오래전에 밴드 활동을 한 적이 있지. 아마 그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나 보구만.」

그래서 그런 건가.

데이비스 씨가 중절모 아래로 눈을 찡긋하며 물었다.

「그래서 젊은이. 무슨 노래를 함께 하고 싶다는 건가.」

「음…….」

호주에서 뭘 불러야 반응이 좋을까.

주변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선글라스를 쓴 채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

계절은 여름이고.

나름대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공원에서 부르면 딱 좋을 만한 분위기의 노래를 머릿속으로 검색했다.

「My Sunshine 어때요?」

호주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에일로가 2015년도에 내놓은 싱글로 빌보드에서 장기간 1위를 했던 곡이다.

자기가 어린 시절에 기르던 조랑말 선샤인에 대한 곡.

여름철 특유의 상쾌한 분위기가 슈팅스타처럼 톡톡 튀는 사운드로 드러나는 곡이었다.

색으로 따지자면 파란색과 분홍색이 통통 튀는 곡.

「My Sunshine으로 가능할까요, 선생님?」

「My Sunshine이라… 음…….」

내가 허밍을 해서 불러 주자 데이비스 씨가 아 하더니 곧바로 손을 튕겼다.

부드러운 현악기 소리가 분홍빛으로 물결쳤다.

「이건가?」

「네. 계속 그대로 반복하시면 될 거예요. 그러면 저는…….」

가방에서 우쿨렐레를 꺼내자 목을 축이던 데이비스 씨가 사레가 들렸다.

수염에 떨어진 위스키를 툭툭 털던 노인이 물었다.

「그걸 가방에 넣고 다니나?」

「네.」

「특이한 젊은이구만.」

이윽고 중현이마저 가방에서 캐스터네츠를 꺼내자 데이비스 씨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노인의 눈빛에 유쾌함이 감돌았다.

「자네들 이름이 뭐라고?」

「저는 우주, 이 친구는 중현이고요. 한국에서 뉴블랙이라는 음악 그룹으로 활동 중이에요.」

「뉴블랙.」

기억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노인이 기타 연주를 하고 내가 거기에 우쿨렐레로 화음을 더했다.

「오호?」

상대의 눈빛에 즐거움이 감돌았다.

중현이도 근엄하게 캐스터네츠를 딱딱 튕기면서 둠칫둠칫 몸을 흔들고, 리듬감 있는 전주가 시작됐다.

데이비스 씨가 웃으며 물었다.

「우쿨렐레를 아주 오래 배웠나 보구만. 한 10년 배웠나?」

「3년 정도 틈틈이 연습했어요.」

「…….」

기타 연주에서 살짝 짜증과 언짢음이 묻어 나오는 느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중현이와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가지.」

합도 맞출 겸 전주를 반복해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캐스터네츠를 튕기면서 손바닥으로 청바지 등을 퉁퉁 쳐서 리듬을 만드는 중현이.

기타로 아랫 멜로디를 연주하는 데이비스 씨.

우쿨렐레로 윗 멜로디를 연주하는 나까지, 3중주가 더해지면서 상쾌한 소리가 공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멜로디가 은은한 나무 향처럼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잔디밭에 앉아 있던 커플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이리로 와요.’

모자를 벗고는 싱긋 웃으며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커플들이 멍한 표정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중현이와 내가 웃으며 손짓했다.

하나둘 실시간 버스킹 현장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둠칫둠칫 곰돌이 춤을 추며 유쾌하게 웃던 중현이가 내게 눈빛으로 말을 전했다.

‘고객 모집 성공했습니다. 실장님.’

‘수고했어요. 고구마군.’

‘감자입니다.’

이어서 기타 연주를 하며 고개를 꾸벅이는 데이비스 씨를 보고는 모인 관중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호주 가수의 유명곡에 사람들이 고개를 까딱까딱할 때.

목청을 가다듬고 부드럽게 허밍을 하다가 바로 가사를 불렀다.

오늘 나는 내 조랑말을 묻었어

나의 선샤인 선샤인

가사가 더 전달이 잘 되도록 평소보다 톤을 조금 높이고.

우쿨렐레를 손가락으로 익살맞게 튕기자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흘러나왔고 우리도 웃었다.

처음에는 혹시 여행비를 조금 벌 수 있을까 해서 시작한 건데, 막상 노래를 부르니 내가 제일 기분이 좋다.

추억이 빛바랜 기억이 되기 전에

언덕에 올라갔지

노래를 마저 부르면서 박수를 유도하자 관객들 일부가 박수를 쳐 주면서 호응을 해 주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   *   *

같은 시각.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던 재트 밀러와 왕지호, 그들의 곁에 붙어 다니던 메인 피디에게 연락이 왔다.

“음……?”

우주 팀과 붙어 있던 조연출의 연락이었다.

“여보세요.”

-예! 피디님! 여기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어디서 음악 공연이라도 하는 건지 환호와 음악이 뒤섞여 상대의 말이 잘 안 들렸다.

조연출이 다시금 크게 외쳤다.

-여기 지금!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사람들 꽤 많이 모여 있거든요. 일단 찍고는 있는데 카메라 두 대는 더 필요할 것 같아요. 한 대로는 각도가 다 안 나오니까…….

“무슨 소리야? 야야. 잠깐만. 천천히 말해 봐.”

-지금 우주랑 중현이가 버스킹하고 있어요!

“……?”

수화기를 잠깐 뗀 피디에게 주변에 있던 메인 작가가 물었다.

“피디님,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

“아니, 우주가 지금 버스킹을 하고 있다는데.”

“네? 왜요?”

“그러니까요.”

메인 피디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우주 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모두 이동해 주세요.”

“……네?”

다른 제작진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소식을 전해 들은 왕지호도 눈을 깜빡이며 재트 밀러에게 물었다.

“방금 버스킹이라고 했죠?”

“네.”

“……뭐지.”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던 왕지호 일행은 곧바로 리혁, 비주와 합류했다.

“형들도 소식 들었어요?”

“무슨 소식?”

“못 들었어요?”

“응.”

비주가 답했다.

“감독님이 갑자기 이동해야 된다고 하셔서 지금 막 움직이는 중이었거든. 혹시 우리 무슨 안 좋은 일 생겼어?”

“아녀. 그런 건 아니구요.”

막내가 형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해 주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기타 소리와 아련한 환호 소리, 그리고 누군가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미성으로 영어 가사를 흥얼대는 소리.

“오……?”

리혁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길거리 공연하나 보네요. 그것 때문에 오라고 한 거구나.”

“그…….”

“목소리 누구지? 높은 음역대인데도 진짜 안정적이기가 쉽지 않은데. 진짜 잘 부른다.”

호평하던 리혁이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 정말 내 취…….”

취향이라는 말을 하려던 때였다.

시야가 탁 트이면서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미남의 모습이 들어왔다.

평소보다 더 높은 음역대로 불러서 그런지 맑은 목소리를 흘려보내며 우쿨렐레를 튕기는 미청년.

“…….”

서리혁이 눈을 감았다.

‘아오…….’

취향이라고 말했던 혓바닥을 일시 정지 시켜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분명했는데 저기서 부르는 게 선우주일 줄은 몰랐다.

“그랬구나.”

막내와 비주가 상쾌하게 웃으며 합창했다.

“리혁이의 목소리 취향은 선우주였구나.”

“조용히 해.”

“그랬구나.”

“아, 조용히 해요!”

순간 목청을 높여서 그런 걸까.

맨 뒷줄에 앉아서 노래를 감상하고 있던 호주의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쉬잇- 하고 손가락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소란을 눈치챘는지 기타 치는 노인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던 선우주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일제히 돌렸다.

「저의 친구들입니다. 박수 보내 주세요.」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 주었다.

「와아아아아!」

「정말 근사한 오후네요. 그렇죠?」

「네!」

관객들을 어떻게 조련을 한 걸까.

그들의 리더가 한마디 할 때마다 사람들이 홀린 듯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

‘얼굴 때문이네.’

‘얼굴…….’

개연성을 주는 얼굴에 그들이 잠시 뿌듯함을 느꼈다.

숨만 쉬어도 숨을 많이 쉰다며 까는 안티들도 차마 못 까는 게 우주선의 외모 아니던가.

부드럽게 한 곡을 마무리하던 우주에게 박수가 날아들 때.

「방금 전에도 말씀드리긴 했지만 저희는 이번에 한국에서 여행을 온 가수들이고요. 저기 있는 친구들이 저희 멤버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면서 재트 밀러와 뉴블랙의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갔다.

우주가 우쿨렐레를 튕기며 ‘뉴블랙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는 배경음악을 깔아 주며 말했다.

「그런 의미로 저희 노래도 한 번 들려 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좋으시면 박수로 답해 주세요.」

「와아아아아!」

「좋습니다. 그럼 밤바다… 라는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은데. 우리 미스터 피쉬, 한번 나와 볼까요?」

아마존의 민물고기 피라루쿠를 닮은 친구라는 설명에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일대 와이파이를 마비시킬 방법을 찾던 리혁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리혁이 형. 얼른 나가요.”

“무대 아닌 곳에서 부르는 건 좀 민망한데.”

“형이 언제 이런 소규모 버스킹을 또 해 보겠어여? 한국에서 버스킹하면 콘서트 되는데.”

“그…….”

낯선 외국이라는 환경까지 합쳐져서 리혁이 왠지 모르게 머뭇거릴 때였다.

짤랑!

“……?”

마성의 소리가 그의 귓가를 일깨웠다.

짤랑!

짜짜랄랑!

짤랑랑!

짤랑!

한 곡이 끝나서 그런지 호주 시민들이 지갑에서 동전 등을 꺼내서 노인의 모자에 넣기 시작했다.

뉴블랙 멤버들이 눈을 깜빡였다.

‘버스킹에서 저런 식으로 돈을 주나…?’

‘뭔데.’

‘우주 형이랑 무인도 떨어져 보고 싶다.’

우주가 두 팔을 벌리며 환히 웃었다.

「저희가 지금 무일푼 여행이거든요. 여러분이 보내 주시는 한 푼, 한 푼이 저희의 추억이 될 겁니다. Viva Australia!」

눈을 반짝이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할 때마다 후원이 줄을 이었다.

좋은 길로 빠져서 다행이지. 잘못된 길로 빠져 들어갔다면 20대 사이비 교주 선 모 씨로 뉴스에 등장했을 형이었다.

그 와중에 두둑한 달러가 쌓여 있다.

리혁의 얼굴에서 홍조가 싸악 빠져나가고 안색에 자본주의의 황금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메인 보컬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에 제작진과 출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 : 버스킹 에피소드」

메인 보컬과 리드 보컬이 자리를 잡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 주었다.

씩 웃는 가수들.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중절모를 쓴 노인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지나가고 우주와 리혁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분위기에서 부드러운 허밍이 흘러나온다.

그 아래로 깔리는 음악 방송 자막.

[우주&리혁 - 외국 바다 (호주 Ver.)]

곧바로 밤바다의 가사가 가는피라루쿠체와 맑은느아체를 섞어 가며 나오기 시작했다.

입을 살짝 내민 채 고개를 끄덕이는 호주 노인의 얼굴.

커플들이 서로에게 뭐라고 속삭이는 모습 등, 전체적으로 호의적인 리액션이 카메라에 담겨 나온다.

-…….

멍한 얼굴로 바라보는 메인 PD와 작가들의 모습도 나왔다.

우주와 리혁이 서로를 향해 다정하게 웃으며 노래를 주고받으면서 밤바다의 가사가 전개된다.

-우와. 더 좋아졌어요.

지호가 비주에게 말을 걸었다.

-뭔가 감성이 더 풍부해진 그런 느낌 같지 않아요? 옛날 밤바다 부를 때보다 더 깊은 느낌.

-응. 언제 들어도 좋다…….

-나도 뭐 부르고 싶다. 형 우리도 뭐 할까요?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과거 밤바다를 부르는 데뷔 시절 리혁, 우주의 모습과 현재 모습이 대비된다.

더 깊어지고 풍부한 목소리의 듀엣.

이전에는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면 지금은 강약조절을 하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이 별은 당신의 향기

저 별은 당신의 손길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올리던 우주가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어느 관객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 밤바다’로 이어지는 구절을 부르면서 메인 보컬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며 메인 보컬의 검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날리면서 노래에 마침표가 찍혔다.

-와아아아아아아!

호주 시민들이 손뼉을 쳐 주며 환호를 해 주고 있을 때.

우쿨렐레로 마지막 멜로디를 부드럽게 연주하던 우주가 꾸벅 인사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깔리는 자막.

[지금쯤 잊고 계실 것 같아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저희 <여행일기>는 여행 리얼리티입니다.. by 제작진 일동]

왠지 모르게 공연 예능처럼 변질된 분위기에 제작진의 당황한 얼굴이 카메라로 잡혔다.

-아니.

눈가에 검은 띠가 가려져 있는 ‘메인 피디 김 모 씨’라는 자막과 함께 음성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희 게임을 준비했거든요?

-엄청 준비했죠.

-근데 우주가 공연을 해 버리면서 다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거예요. 막 돈이 우수수수 쏟아지는데! 준비한 게임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밤새서 준비했는데!

음성 변조된 목소리들이 끼룩끼룩 울며 슬퍼하는 장면을 끝으로 다음 곡이 흘러나왔다.

*   *   *

즉흥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마지막으로는 최신 곡 도깨비를 부르며 춤을 췄는데, 익살맞은 춤이라 그런지 현지 반응도 제법 좋았다.

「사진이요? 당연히 찍을 수 있죠.」

끝나고 사진 같이 찍어도 되냐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동영상을 찍은 듯한 사람도 많아 보였는데 아마 이따가 미튜브 등에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짤랑!

“으흣… 꺄륵!”

짤라라랑!

짤랑!

“꺄르르륵!”

짤랑! 짤랑!

데이비스 씨의 모자에 쏟아지는 돈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이렇게까지 돈이 모이다니…….」

데이비스 씨도 하얀 이를 반짝이며 행복해했다. 돈을 주섬주섬 세던 노인이 우리에게 전부를 내밀었다.

「다 가지게.」

「네?」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을 했거든. 어차피 그 돈 가져가 봐야 나는 써먹을 데도 없고.」

「그, 그래도…….」

「가난한 뮤지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이지. 가져가게.」

우리가 약속대로 반씩 나누자고 하는데도 급구 사양하고 돈을 모두 건넨 데이비스 씨였다.

그가 모자를 탁탁 털어 머리에 얹고는 말했다.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 했네. 여행 잘 즐기게나.」

「아…….」

기타를 챙겨든 노인이 휘파람을 부르며 걸어가려는 모습에 내가 외쳤다.

「차비는 있으신가요?」

「걷는 게 취미라네.」

「저 아직 이름도 다 못 들었는데…….」

「글렌.」

노인이 기타를 메며 눈을 찡긋했다.

「글렌이라고 하네.」

느긋하면서도 빠르게 걸어가는 노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 어떡해. 이거 우리 다 가져도 돼요? 그럼 안 될 것 같은데…….”

“가난한 뮤지션 아닌데.”

비주와 중현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제작진이 우리를 부르면서 고개가 돌아갔다.

“공연은 재미있게 하셨나요?”

“네!”

“…축하드립니다. 돈이 생기셨네요.”

“네…. 어르신한테 다 받은 거긴 한데.”

기존 예산에 추가된 금액을 계산한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이 돈이면 호주 최고의 레스토랑에도 갈 수 있겠네요. 재트 씨. 그죠?”

“물론입니다. 선배님들.”

“재트 씨도 드시고 싶은 거 다 골라 보세요. 오늘 저희 뉴블랙이~ 쏩니다~!”

“그, 그러면…….”

자기도 못 가 본 호주 최고의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겠다는 소식에 우리가 환히 웃었다.

그동안 제작진이 슬퍼하기 시작했다.

작가님이 방망이를 흔들며 물었다.

“두더지. 두더지 안 잡아볼래? 두더지 잡기 준비했는데…….”

“딱지치기. 우리랑 딱지치기 하자. 딱지치기 너희랑 하려고 이주일 동안 연습했단 말이야.”

“게임 한 판 하자.”

가방에 잔뜩 들어 있는 게임과 벌칙 도구들을 흔드는 제작진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이동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아. 상쾌하다.”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의 이 느낌 너무 좋아여…….”

“우리 다음에는 버스킹 어디서 할까요? 아니다. 악기라도 어디서 조금 구해 볼까요. 형?”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동안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글렌 데이비스.

검색창에 이름을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어……?”

리혁이가 나한테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분 아니에요?”

“어?”

글렌 데이비스라고 검색하니 바로 프로필이 떴다.

지금은 아니고 과거의 사진.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활동했던 전설적인 호주의 락밴드 <데블 그릴스>의 기타리스트라고 되어 있었다.

“……어어?”

“왜 그래요? 유명하신 분이에요?”

“엄청…?”

그래서 기타 연주가 익숙한 거였다.

당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락 밴드.

냉전이 끝나고 모스크바에서도 엄청난 인원을 동원한 마지막 콘서트로 유명하기도 하고.

“아니…….”

엄청난 정체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이고오오오!”

“왜 그래요? 또?”

“아니이이! 아까 왜 내 명함을 안 줬지? 아니 연락처라도 받아놨어야 하는데!”

“…….”

“아이고오오오! 황금을 놓쳤네!”

내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모습에 동생들도 같이 탄식을 하는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던 리혁이가 우뚝 손을 멈췄다.

“왜 그래?”

“아. 혹시 SNS 하시면 연락이라도 닿을까 싶어서 검색을 해 봤는데…….”

“응.”

“재산이 3500억 정도 되신다는데요. 광산도 하나 가지고 계시고, 호주에서 스포츠 구단도 하나 소유 중이시라고.”

“…….”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할아버지의 말이 맴돌았다.

‘가난한 뮤지션… 가난한 뮤지션… 가난한 뮤지션…….’

마, 맞는 말인가…?

*   *   *

같은 시각.

햇살이 화창한 도로변에 고급 승용차가 멈춰 섰다.

“껄껄껄.”

방금 전의 공연에서 느꼈던 흥분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손끝에도 묘한 열감이 감돌았다.

뒷자리에 올라탄 글렌 데이비스가 기타를 내려놓았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혹시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주 재미있는 공연을 했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는 뉴블랙이라는 친구들인데 노래를 잘하더라고.”

겸사겸사 돈도 벌고.

“가난한 뮤지션들에게 적선도 했지. 하하하.”

글렌 데이비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껄껄 웃었다.

“혹시 뉴블랙이라면 이 친구들입니까?”

“응?”

운전기사가 스마트폰으로 뉴블랙을 검색한 것을 보여 주자 미튜브 창이 떠 있었다.

뉴블랙 TV라는 채널.

“오호.”

그곳의 구독자 수를 보던 글렌 데이비스의 시선이 멈칫했다.

몇천만.

전 세계 미튜브 구독자 수 랭킹 10위 안에 들 만한 숫자에 노인의 눈빛이 멍해졌다.

‘돈이… 없다고……?’

이윽고 승용차 안에서 노인의 분개한 외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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