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98화
“아이고.”
“…….”
“아이고, 속 쓰려.”
“…….”
“속 쓰려 죽겠다. 내가 어떻게 그런 분을 몰라볼 수가 있지?”
파인애플이 들어간 하와이안 햄버거를 우물거리는 나에게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그걸 알아본 게 더 신기한데요. 80년대에 마지막 활동했던 밴드라면서요.”
“이미 기차는 떠났어요. 형.”
중현이가 내게 자기 몫의 감자튀김을 조금 주며 위로하듯 말했다.
“놓친 사람은 놓친 거예요. 저번에 송광사에서 주지스님이 그러셨잖아요. 만날 사람은 또 만난다고.”
“그래. 인연이면 또 만나겠지.”
그런 말을 하고는 식탁에 설치된 미니 캠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글렌 데이비스 선생님. 이걸 보고 계시다면 한국에 있는 선우주에게 연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3박 4일 코스로 맛있는 음식 사 드리고, 또 연주도 같이 하고…….”
“형. 계란 노른자 흘러내려요.”
“으아아아.”
햄버거 속 계란 노른자가 터졌는지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 얼른 베어 물었다.
맞은편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던 재트 씨가 키득거리고는 티슈를 뽑아서 양손으로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옥체에 계란 노른자가 떨어지는 모습은 볼 수 없죠.”
후후후 웃던 재트 씨가 물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떠신가요? 마음에 드세요?”
“네. 진짜 맛있어요.”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노천 음식점.
테이블 위의 촛불이 아늑하게 빛나는 가운데, 소금기 가득한 해풍이 코를 적신다.
이곳은 시드니 항구 근처에 있는 유명 햄버거 가게였다.
원래 호주에서 굉장히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에 갈까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이유들로 인해 목적지를 틀었다. 식당에 드레스 코드가 있다는데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제작진 분들도 식사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런 데서 먹어 버리면 다들 못 먹으니까.
“고급 레스토랑 가도 되는데.”
근처 테이블에 앉은 피디님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야 뭐 대충 때우면 되니까.”
“에이~”
막내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원래 사람이 밥심으로 사는 거예요. 맛난 거 같이 먹어야 함께 으쌰으쌰 하지. 저희만 맛난 거 먹으면 저희도 불편해서 못 먹어요.”
“우리야 고맙지.”
“고마우면 용돈 추가 어떠신가요!”
“그럼 게임 한 판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작가님이 벌칙용 공주 옷과 요술봉을 들어 보이면서 민심이 흉흉해졌다.
곧바로 떠들썩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미니캠 등으로만 촬영을 하기로 하면서 카메라 감독님들도 편하게 포크를 들었다.
“좋네.”
이국적인 야경이 보이는 부두 근처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들과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있을까.
“형.”
“응?”
고개를 돌리니 비주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요?”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다.
버스킹을 하면서 얻은 영감을 타이틀곡 ‘Coin’에 어떻게 적용할지, 할머니는 군산에서 잘 있는지,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동생들 컨디션이 괜찮은지. 리얼리티에서 뭘 해야 팬분들이 좋아할지.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맘때 여행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
“저도요.”
비주가 씩 웃으며 흩날리는 머리칼을 정돈했다.
“이제 한국 돌아가면 매일 밤새고 그럴 텐데. 미리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런 느낌인 거 같아요.”
“맞아. 제대로 힐링하네.”
비주와 콜라 잔으로 건배하며 웃었다.
시드니 야경 구경을 제외하면 스케줄이 없었기에 오늘 일일 여행이 끝나 가는 분위기였다.
내일부터는 이제 우리가 계획을 짜는 단독 여행.
“저희 그러면 숙소 들어가서 계획 잡는 건가요?”
“응.”
“이번에는 뭐… 이상한 거 없죠? 저번에 했던 귀신 나오는 담력 체험이라든가.”
“딱히 없어.”
그때 이상한 사람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오디오 감독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두가 그때 그 제주도 귀신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재트 씨가 흥미로워하는 동안.
작가님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담력체험 같은 컨텐츠는 없어. 호주는 외국이잖아. 그때는 익숙한 제주도니까 사람들에게 뭔가 독특한 걸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거고…….”
“주변만 봐도 동물들 돌아다니고 그러잖아.”
“여기 뭐 많지.”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후후후후 웃는데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뭐 또 준비되어 있나요?”
“그건 이따가 촬영 때 확인하자.”
“제발 이상한 건 없다고 말씀해 주세요.”
“없어. 그런 거 없어.”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우리에게 제작진이 안심하라는 듯 웃었지만 왠지 모르게 음흉해 보인다.
“걱정하지 마. 다 검증된 것만 하는 거지. 외국에서 함부로 위험한 짓을 하고 그러겠니?”
“그…렇죠?”
“그래. 걱정하지 마.”
힐링 리얼리티 여행일기 아니냐며 자부하는 제작진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윽고 식사를 마치고는 마무리로 시드니 야경을 감상했다.
2월이 호주 여행 성수기라고 그러던데, 그 때문인지 정말 곳곳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가족사진 찍어드릴까요?”
“어, 그래. 고마워. 우주야.”
“네.”
“…어? 뭐야. 우주?”
놀라서 입을 벙긋거리거나 웃음을 터뜨리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기억하세요. 저희 뉴블랙은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우후후후후.”
야경 명소를 돌아다니며 저녁 일찍 시드니 관광을 마무리했다.
“선배님. 여기 제 전화번호입니다.”
“아.”
“언제든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하고 있어도 불러 주시면 바로 서울로 달려갈게요. 저 꼭 뉴 라인이 되고 싶습니다.”
“뉴 라인이요?”
재트 씨가 손을 들어 속삭였다.
“예능최강 뉴블랙 라인입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데요?”
“네. 그래서 제가 1호가 되려고요.”
한국에서 반드시 뜨겠다는 야심으로 눈에 불을 켜는 재트 씨와 작별 인사를 하며 악수했다.
“그럼 옥체 보중하십시오.”
“잘 가요! 재트 씨!”
“예…….”
총총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호주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도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렇게 일일 가이드와도 이별을 한 후.
우리는 제작진이 불러 준 차량을 타고 시드니 외곽으로 이동했다. 점점 나무들이 울창해지는 그런 장소.
리혁이가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시드니 맞죠?”
“네. 맞습니다.”
“……진짜 납량특집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죠? 호주는 여름이니까 납량특집입니다, 이런 거 아니죠?”
“오, 멘트 좋은… 아. 이게 아니지. 아무튼 아닙니다.”
조수석에 앉은 피디님이 으스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의 숙소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숙소가 약간 외진 데 있네요.”
“네. 보안이 철저하고 안전한 곳이라서 그렇습니다. 장소만 이렇지 경찰이나 구급차를 부르면 10분 안에 오는 곳이에요.”
“오오오.”
“숙소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어떤 사람도 이 보안을 뚫을 수 없다고…….”
굉장히 안전한 곳인 모양이었다.
숙소 규모에 대한 말을 들어 보니 어지간한 가격이 아닌 것 같던데. 우리가 제작진의 예산에 대해 걱정할 때였다.
“비용은 여러분의 대표님이 결제해 주셨습니다.”
“허어……!”
피디님이 건네준 태블릿을 받아 들자 영상이 하나 흘러나왔다.
-안녕.
화면 속에서 이마를 반짝이는 박규호 대표님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아이고. 이게 밝기가… 잠시만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슥슥 닦아 밝기를 조절하신 대표님이 웃으며 다시금 손을 흔들었다.
-그래. 여행들은 잘하고 있니?
“네!”
-왠지 모르게 우렁찬 대답이 들리는 듯한 기분이구나. 여행은 잘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희야 어딜 가든 잡ㅊ… 잘 적응하는 아이들이니까.
방금 잡초라고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
-배낭여행을 한다고 들었는데, 나도 머리가 있을 적에 여행을 많이 다녀봐서 안다. 굉장히 힘들거든. 머리도 빠지고…….
“대표님…….”
-샴푸는 좋은 거 가져갔니? 외국은 물에 석회가 많다던데. 모발에 도움이 되는 샴푸도 내가 보내 두었단다.
“허어, 우리 대표님 너무 스윗해여.”
잠시 한방 샴푸에 대해 말을 하던 대표님이 본론으로 들어왔다.
-어쨌거나 숙소에 있을 때만큼은 편하게 시간 보내라는 의미에서 준비를 해 두었단다.
과거 사생 사건 때문에 우리가 유독 숙소 문제에 예민한 것을 알고 해 주신 배려였다.
박규호 대표님이 따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랑한다. 얘들아.
숙소가 마음에 들 거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대표님에게 우리도 꾸벅 인사했다.
제작진에게 태블릿을 돌려줄 때였다.
“어……?”
울창한 나무들이 슥 사라지더니 저택이 즐비한 동네가 튀어나왔다.
“우와아아!”
그중에서 우리가 향한 곳은 2층짜리 고급 숙소였다.
높은 담벼락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안에는 어렴풋이 수영장의 파란빛까지 일렁이고 있다.
“네!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 드디어 여러분이 앞으로 묵게 될 숙소를 공개합니다!”
피디님이 짜잔하는 소개에 우리가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대박.”
“여기 우리 한국 숙소보다 더 좋아 보여요.”
“대표님, 사랑합니다.”
멀찍이 북쪽 하늘을 향해 손하트를 보내고는 숙소에 입장했다.
“따라라라라~”
여행 리얼리티의 국룰인 러브하우스 BGM을 재생하며 숙소로 입장했다.
아일랜드 테이블까지 구비된 주방, 거실을 비롯해서 제작진 모두가 묵어도 될 만큼 큰 숙소였다.
저마다 2층에 뛰어올라가 가방을 던지며 내 방! 하며 찜을 하며 웃었다.
“너무 좋다.”
리혁이가 눈물을 주룩 흘릴 기세로 말했다.
“1인 1방이라니. 진짜 너무 좋은데요.”
“난 그래도 2인 1방이 좋은데…….”
비주가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2층 테라스로 나간 중현이가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아름다운 숲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솔 내음과 비슷한 공기를 마시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어?”
막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우리 수영장 쪽을 가리켰다.
“저기 뭐 밧줄 같은 거 들어가 있는데요.”
“그러네.”
밝게 빛나는 수영장에 밧줄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갈색으로 이뤄진 밧줄이었다.
근데 꼭 생긴 게…….
“뱀 같네.”
“그러게요.”
“와. 진짜 같다.”
우리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면서 카메라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저희 이런 거 가지고 안 놀라요.”
“응?”
“에이. 감독님. 모른 척하지 마세요. 저희 놀래키려고 저기 뱀 모형 띄워 두셨잖아요.”
“뱀 모형?”
“네.”
카메라 감독님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수영장을 바라보더니 우뚝 굳었다.
“…….”
“왜 그러세요?”
“야… 저거 움직이는데?”
“네?!”
우리가 테라스로 나가서 보자 파란 수영장 위에서 비단뱀이 물결치듯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마치 야생천국 호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듯이.
“끼야아아아악!”
중현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비명을 지르며 테라스 안쪽으로 숨어들어갔다.
이 숙소 주인이라는 사람의 말은 맞았다.
그 어떤 사람도 보안을 뚫고 들어 올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안전이 방비되어 있다는 말.
하지만…….
‘그럼 동물은 아닌 거냐고!’
‘으아아아아!’
애석하게도 동물에게까지 적용되는 건 아닌 듯했다.
* * *
리얼리티 여행의 첫날은 소동으로 끝을 맺었다.
무슨 야생동물 서비스인가 하는 기관 사람들이 나와 비단뱀을 포획하고 떠났다.
별일 아니라는 분위기였다.
「독도 없고 아주 온순한 녀석입니다! 하하하!」
독은 없어 보였다.
당연하다.
저기에 독까지 있다? 호주 사람들은 매일 밤잠을 설쳤을 거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드문드문 있죠. 저번에 마트 매대에서 한 번 방울뱀이 나와서 잡으러 간 적도 있고. 시드니야 대도시라 일이 많지 않지만 근처 동네에는 파충류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런 말을 하던 야생동물 서비스 직원이 씩 웃으며 윙크를 했다.
“Welcome to Australia.”
그렇게 한 차례 소란이 지난 후에 제작진과 우리 모두 초췌한 안색으로 추욱 늘어졌다.
“…….”
“…….”
“이것이 호주…….”
중현이만 턱을 매만지며 감탄할 뿐.
“그.”
내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저희 모두 촬영 분량을 건진 거니까요. 그것도 많은 분량이요.”
“그, 그렇지!”
“와하하하하!”
“하하하!”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웠다.
중현이만 시무룩한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사진으로 봐.”
“안 그래도 찍어 두긴 했어요. 볼래요?”
“좋은 건 혼자 봐야지. 너 혼자 봐.”
“그럼 리혁아.”
“으아아아아악!”
리혁이가 분노한 고양이처럼 중현이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응징하더니 벌건 손으로 울상이 됐다.
그동안 다시금 리얼리티 방송으로 복귀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청춘 여행이 시작될 텐데요. 이제 여러분이 여행 계획을 직접 짜셔야 합니다.”
“네!”
“여기는 저희가 준비한 정보예요.”
제작진으로부터 추천 여행지, 각종 먹거리 정보 등이 가득 담긴 자료집을 넘겨받았다.
리혁이도 캐리어에서 두툼한 바인더를 꺼냈다.
“어?”
작가진이 물었다.
“준비하셨나요?”
“네.”
작가님들이 준비한 것만큼 깔끔하게 정리된 여행 정보에 모두가 감탄했다.
역시 종말의 남자라며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다들 얼른 모여요. 빠르게 여행 계획 짜야 일찍 잘 수 있으니까.”
“네!”
“내일은 블루 마운틴 공원부터 갈 거예요.”
리혁이와 비주가 중심이 되어 계획을 짜고 나머지가 오오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계획이 빠르게 정해졌다.
“아.”
피디님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해야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네?”
“3일 차 여행은 여러분끼리 짝을 지어서 짝꿍 여행을 하게 될 건데요. 거기에 쓸 여행계획도 세워 주셔야 합니다.”
짝꿍과 함께 할 여행 계획을 짜 달라는 이야기에 우리 모두 계획을 짰다.
틈틈이 서로의 종이에 적힌 계획표를 보며 할 말을 잃기도 하고.
“…….”
“…….”
“사과 체험… 호주까지 와서 사과를 먹어야겠니. 비주야?”
“형은 꽃동산 가잖아요.”
계획표에 적혀진 터무니없는 일정표나 요상한 스케줄.
다들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혁이와 짝꿍이 되길 기도하면서.
“그럼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촬영을 끝내고 저마다 미니캠 등을 챙긴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지호와 중현이가 우아아아 하면서 2층을 우다다 뛰어다니는 동안 양치하기 위해 칫솔을 챙겼다.
아니. 칫솔을 챙기려고 할 때였다.
툭.
“음……?”
리혁이가 한국에서 챙겨 준 양치 가방이었다.
자기가 준비한 나머지 멤버용 재난 가방에서 꺼낸 거라고 했는데. 안쪽에 보니 뭔가 비닐에 쌓인 물건이 하나 있다.
작은 쪽지.
“이게 뭐야?”
‘To. 우주 형에게’ 라고 적혀 있는 쪽지.
정갈한 피라루쿠체를 보아하니 리혁이가 쓴 듯했다.
“리혁아!”
“왜요! 나 바빠!”
“바쁘면 됐고.”
“뭔데요?”
멀찍이 리혁이 방에서 한숨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해 봐요. 나 궁금하면 일 못해.”
“여기 네가 준 필수품 가방 말이야. 여기에 To 우주 형이라고 된 쪽지 있는데 이거 네가 쓴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리혁이가 거의 하늘을 날다시피 내게 달려들었다.
“으아악! 뭐야!”
“얼른 쪽지 내놔요!”
“왜 인상 쓰고 그래. 형 마음에 스크래치 난다.”
“아! 얼른 이리 내요!”
다급하게 쪽지를 뺏어 간 리혁이가 거의 초인적인 속도로 다른 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쪽지 수거하는 전문 업자인 줄.
“무슨 편지인데 그래?”
“비밀이에요.”
“재난 가방에 들어 있는 거라서 더 궁금하단 말이야. 얼른 말해 봐.”
“절대 안 돼요.”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다른 형들한테 말하지 마요. 특히 왕지호한테는.”
“알았어.”
“꼭이에요.”
“나만 믿어.”
“김덕순 여사님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요.”
“그, 그건…….”
약속을 해 주자 리혁이가 그제야 안심한 듯 웃었다.
“근데 진짜 무슨 내용인지 안 알려 줄 거야?”
“때 되면 알려 줄게요.”
그냥 열어 볼 걸 그랬나.
하지만 뭔가 허락도 없이 열람할 만한 게 아닌 느낌이라 나름대로 나쁘진 않았다.
그저 궁금할 뿐.
“뭐.”
나중에 보면 되지.
양치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오늘 찍은 사진들을 확인할 때였다.
밉상 [아니 작곡가님ㅋㅋㅋ]
밉상 [호주 가서 버스킹은 왜 하신 건지..?]
태현이가 보낸 톡에 달린 링크를 확인한 내가 눈을 깜빡거렸다.
“얼레?”
* * *
같은 시각.
한국에서 웹서핑을 즐기고 있던 수플레들이 벌러덩 드러누운 채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떡밥을 받아먹고 있을 때였다.
‘애들 여행 리얼리티 찍으러 갔나 보네.’
호주에서 뉴블랙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도깨비 무대 했다는 뉴블랙
-오늘도 쏟아진 기이한 뉴블랙 목격담.twt
-뉴블랙 관련 루머 검증 방법: 이게 실화?(진실) 그럴 수 있지(거짓)
호주에만 교민이 10만 명이 사는 도시라 그런지 정말 여기저기서 뉴블랙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오호 하며 좋아했다.
‘이번에 또 뭘 하고 오려나.’
저번 여행 리얼리티에서는 타이틀곡 낙화를 만들어 오고, 갈매기를 붙잡기도 했던 최애 아니던가.
과연 호주에서는 무엇을 하고 올지 기대되었다.
“음……?”
미튜브를 뒤적거리던 수플레들의 앞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영어로 된 영상인데 조회수가 높다.
추천 영상에 뜬 썸네일에 있는 것은…….
‘우주랑 중현이?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시드니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어느 공원.
우주와 중현이 악기를 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썸네일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