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1화
“나갈까?”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진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특히나 카메라 감독님들이 잔뜩 뿔이 나 계셨다.
“어처구니가 없네. 이것들.”
“나가야지. 이런 데서 먹었다가는 맛난 밥도 코로 들어가겠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다른 가게로 이동할까요?”
“그러자.”
다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일어났다. 테이블에 놓인 셀프캠을 들어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기는 쪼금 아닌 것 같아서… 근처에 다른 식당으로 이동하려고 합니다. 그럼 이따 만나요~”
“빠빠~”
막내가 손을 흔들면서 끼어들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씩 웃고는 카메라를 종료하고 배낭을 챙겨 들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진 막내가 말했다.
“더 맛있는 데로 가요. 형. 엄청 맛있는 데로.”
“그래. 진짜 맛나고 친절한 데로 가자.”
제작진과 우리가 우르르 식당을 빠져나가는 동안 주방 쪽에 서 있던 점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손님이 그냥 나가는 데도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
니네가 가면 뭐 어쩔 건데 하는 느낌으로.
그러고는 주방장과 함께 뭐라고 하며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는데, 잘 안 들렸지만 유쾌한 내용은 아닐 게 분명했다.
“No camera!”
딸랑, 하고 문을 나서는 우리의 뒤편으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식당들이 즐비한 거리에 다시 나온 제작진과 우리가 눈을 마주치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렸다.
“우리 셀프캠 찍히긴 한 거죠?”
“응. 작은 카메라는 된다고 그랬으니까. 한번 확인해 보자.”
셀프캠 앞에 우리가 모였다.
피디님이 들고 있는 셀프캠 화면으로 방금 전 겪었던 장면들이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다시 봐도 황당하다.
오디오 감독님이 혀를 찼다.
“카메라 앞에서 저러는 건 처음 보네.”
“그나마 친절해지는 것 같긴 한데. 외국에 나와 보면 딱히 현지인들이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것 같더라고요.”
“나 원 참.”
유쾌하지 않은 경험에 다들 황당한 웃음만 흘렸다.
종종 있는 일이긴 했다.
나나 동생들이야 해외 나가서 이런 경험이 없긴 한데. 우리 스탭들이나 촬영 인원들이 불쾌한 일을 당하는 건 많이 봤다.
“어째 여기는 유럽보다 더 심한 것 같네.”
“그러게요.”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도 이런 일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독 이쪽이 더 빈도가 심하긴 하다.
체류 기간이 길어서 그런가.
아니면 시드니 같은 대도시에서 벗어나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까 우리 보고 중국인들 어쩌고 그러던데요.”
중현이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살짝 침체되어 있는 제작진과 동생들에게 손뼉을 치며 다독였다.
“자자! 촬영 이어 가야죠! 파이팅!”
“파이팅…!”
“얼른 다음 식당을 찾아봅시다!”
카메라를 들고는 주변에 맛있다는 다른 식당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맨 처음 들어갔던 식당들과 뭔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 분위기에 들어가지도 않거나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소요하고 있을 때였다.
「이봐요!」
다른 거리 쪽으로 이동하려던 우리의 뒤편에 고함이 들려왔다.
「어이! 이봐요!」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뚱뚱한 체격의 인도인 아저씨가 앞치마를 두른 채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헤엑, 헤엑하며 숨을 쉬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태국 음식 좋아해요?」
「네?」
「태국 음식 좋아하냐구요. 음식점 찾으러 여기저기 다니는 것 같기에 아까부터 보고 있었거든요.」
눈을 초롱초롱 뜨고 있는 분을 바라본 우리가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는 이내 씩 웃었다.
「가게가 어디 있는데요?」
*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주인아저씨는 인도인이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도에서 온 이민자라나.
「어쩌다 태국 음식을 하시게 된 거예요? 태국 음식을 좋아하세요?」
「딱히 그런 건 아니구요. 처음에 오픈했던 카레집이 망해서.」
「아앗…….」
자기를 싱(Singh)이라 소개한 사장님이 웃었다.
「여기 사람들한테는 다 거기서 거기여서요. 저를 태국 사람으로 알고 있는 손님도 있고.」
그러고는 우리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팟타이를 비롯해서 로컬라이징된 태국 음식들이 즐비한 메뉴판을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살짝 골목으로 들어와야 나오는 가게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지만, 여기에 배어 있는 냄새는 진짜였다.
중현이가 행복한 얼굴로 메뉴판을 넘겼다.
「추천 메뉴 있나요?」
「똠얌꿍은 일단 무조건 시키는 걸 추천하고요. 국수로는 팟타이랑 치킨 바질 누들을 추천하고….」
「어디 보자. 저희가 20명 가까이 되니까. 30인분도 되나요?」
「되죠! 다 됩니다!」
음식을 풍족하게 시키자 사장님과 사장님 부인, 따님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나온 음식들도 맛있었다.
국수를 포크로 돌돌 말던 비주가 우와 하며 눈을 빛냈다.
“맛있다…!”
“허어…….”
“원래 만화에서도 보면 골목에 있는 허름한 맛집 그런 데 나오잖아요. 우리가 그런 데 왔나 봐여.”
천국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허기졌던 배가 풍족해지면서 제작진과 우리의 표정이 포근해지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물을 따라 주던 사장님이 물었다.
「한국에서 온 가수 분들이라고 하셨나요?」
「네. 맞아요.」
「그… 그러면 이따가 사진 한 장만…….」
「당연히 가능하죠.」
막내가 한국에서 우리가 ‘very famous’하다며 말하자 싱 사장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딸이 핸드폰으로 뉴블랙을 검색하기 전까지는.
「……!」
멀찍이서 핸드폰을 바라보던 사장님의 건포도 같은 눈동자가 거봉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방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시더니.
5분도 되지 않아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튀김을 산더미처럼 들고 오셨다.
「이… 이게 뭔가요?」
「서비스 새우튀김입니다. 고객님.」
「어엇.」
「저희 가게는 손님을 왕처럼 대접합니다.」
새우튀김을 어떻게 튀기신 건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영롱한 빛깔이 나는 새우튀김은 처음이다.
아삭.
한 입 베어 먹을 때.
“오오옷! 오옷!”
요리왕 비룡의 BGM과 함께 눈앞의 삼라만상이 스쳐 가는 맛이었다.
리혁이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나 기름진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진짜…….”
“비주야. 이거 레시피 집에서 할 수 있니?”
“음. 코코넛 가루가 좀 들어간 것 같은데 배합을 어떻게 하신 건지는 모르겠어요.”
막내가 멍하니 물었다.
“뭐가 들어가서 이렇게 맛있을까여?”
“사장님의 야심?”
그 후로도 막 이것저것 서비스로 얹어 주셔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핸드폰을 보고 있던 딸에게 무슨 코치를 받았는지 사장님이 다가오셔서 카메라를 향해 K하트를 날렸다.
“사랑해요. 한국. 사랑해요. 뉴블랙.”
“흐하하하!”
껄껄 웃던 싱 사장님이 벽에 걸려 있던 기타도 가져왔다.
「여기 사인을 좀 해 주세요. 사진이랑 같이 걸어 놓게.」
「네.」
「그리고… 혹시 나중에 이 가게가 망하게 되면 이거 팔아도 되나요?」
「파, 파셔야죠. 그런 경우면.」
우리 사인이 돈이 될지나 모르겠네.
「방송 나가고 나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식사 맛있게 했습니다. 번창하세요.」
사장님과 푸근한 악수를 나누고는 가게를 나섰다.
다시금 화창한 하늘.
유쾌하지 않았던 기분이 포근한 햇살과 맛있는 음식으로 몽글몽글하게 변해 왔다.
“그럼 이제 이동하나요?”
피디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수플레 여러분! 저희는 이제 캥거루 보러 캥거루 아일랜드로 갑니다!”
“고고고~!”
즐겁게 웃으며 오늘의 새로운 일정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한 가지 먼저 확인하고.
“피디님. 아까 맨 처음 식당 편집하실 건가요?”
“아니. 절대.”
“저희도 동의합니다.”
뒤끝은 조금 부리기로 했다.
* * *
캥거루 아일랜드.
배를 타고 이동한 곳은 캥거루가 아주 흘러넘친다는 섬이었다. 어찌나 많은지 캥거루 고기로 바베큐를 해 먹는다나.
“…그런 것까진 알고 싶지 않아요.”
속이 메슥거린다는 표정으로 말하던 리혁이가 테이블 근처에 수북한 고기를 바라보았다.
“이거 캥거루 고기는 아니죠?”
“아니야.”
“진짜죠? 나 예전에 라스베가스에서 방울뱀을 닭고기라고 속아서 먹은 적 있단 말이에요.”
“…리혁아. 우리도 그런 것까진 알고 싶지 않아.”
으이이 하면서 첫날 숙소에서 만났던 비단뱀 친구가 뀨 하고 다시 떠올랐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열심히 바베큐를 세팅했다.
이곳은 캥거루 아일랜드.
오후 관광을 끝내고 해질 무렵 풀을 뜯어먹으러 나온 캥거루를 구경한 뒤였다.
처음에는 캥거루다! 하면서 우리끼리 대박! 그랬는데, 캥거루의 수가 미친 듯이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시큰둥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눈앞에서 Ctrl+C와 Ctrl+V를 난타하는 느낌이었다.
-와. 캥거루네.
-와아.
-우.와.
아무리 감탄스러운 생명체라도 수백 마리 이상 보면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하루였다.
어쨌거나.
“다 됐다.”
바베큐 세팅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서자 피디님이 말했다.
“네. 여러분의 소원이었던 야외 바베큐를 저희 제작진이 준비했습니다!”
“세팅은 저희가 했는데….”
“재료는 저희가 준비했으니까요. 싫으시다면 지금이라도 건강 식단인 캥거루 고기로….”
“아, 아뇨! 저희는 불만 없습니다!”
피디님이 웃으며 리혁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리혁 씨.”
“네.”
“여기 별이 아주 예쁘다고 하네요. 남반구의 밤하늘을 보고 싶다는 게 리혁 씨의 소원이었죠?”
“허어어……!”
은하수와 밤하늘이란 키워드에 리혁이가 꺄르륵 웃었다.
“우주 너무 좋아요…….”
“나?”
“그대 말고 찐 우주요. 찐 우주!”
“아악! 아니면 아닌 거지! 왜 날 때려?”
진짜 우주 앞에 어디다 갖다 붙이냐는 면박에 억울해졌다.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피디님도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네, 그리고 오늘 막내 지호 씨의 소원도 성취할 건데요. 지호 씨가 이번 리얼리티에서 가장 하고 싶다고 한 것이 있었습니다.”
“?”
“영상을 보시죠.”
제작진이 틀어 준 영상 속에서 사전 미팅 중인 막내가 나온다.
막내의 입이 열리며 ‘효…’ 하는 키워드가 나왔다.
“효도?”
“드디어 효도인가?”
“효도라니…….”
“투자를 했으니 이제 수확할 때가 됐죠.”
운을 띄우며 좋아하는 형들 앞에서 과거의 막내가 웃었다.
-횽들이랑 술 마시고 싶어요!
짜잔!
망했습니다. 동생 농사.
화면 속에서 막내가 발그레해진 뺨으로 웃었다.
-이제 오피셜 어른이 됐으니까 형들이랑 맥주 한 캔 하고 싶습니다! 중현이 형이 넌 못 마신다~ 이러면서 놀렸거든요. 리혁이 형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저 볼 때마다 홀짝이고.
-우주는 못 마시잖아?
-에이~ 우주 형은 뭐~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내가 막내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야. 왕지호. 너 거기에 나 없다고 말 막 한다?”
“방송이잖아여. 방송~”
막내가 어깨를 부딪치며 치대오는 모습에 웃었다.
리혁이가 호주의 음주 가능 연령을 검색하고, 막내가 술! 술! 하면서 방방 뛰고 있을 때.
제작진이 아이스박스를 가져와서 열어 보였다.
“그런 의미로 저희 여행일기 제작진이 준비한 무알콜 와인과 호주의 맥주들입니다!”
“와아아아아!”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각종 음료들. 모두 마음에 드시나요?”
“네!”
“자. 이제부터 여러분은 미션으로 재료들을 쟁취하셔야 합니다.”
“네?”
역시나 순순히 줄 마음이 없었던 거였다.
촬영하는 내내 게임에 굶주려 있었던 작가님들이 좀비처럼 일어났다.
“게임 한 판 하자…….”
“재미있고 신이 나는 게임.”
“우리랑 재미있는 게임 하나 해 볼까? 이히히히…….”
여행하는 내내 게임에 눈을 희번덕거리는 작가님들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든 게임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뒀다.
어차피 우리에게 재료를 주려고 만든 게임이라서 난이도가 낮기도 했고.
“자, 퀴즈입니다. 다 같이 동시에 대답해 주셔야 돼요. 리혁 씨가 절대로 안 먹는 음식 한 가지는?”
“음식점 카운터에 놓인 껍질 까진 박하사탕!”
“정답입니다!”
“그거 대장균이 많단 말이에요…….”
그런 우리의 반응과 별개로 제작진은 어떻게 맞혔지, 하는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곤 했다.
물론 모두가 정답을 맞힌 건 아니었다.
“리더인 우주 씨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넘버 2는 누구일까요?”
“저요!”
“저요.”
“이건 난데.”
“난 아닌데. 저는 알아여. 저를 보는 우주 형의 눈빛을…….”
정답은 비주였다.
리혁이와 중현이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는 동안 비주가 아름다운 발레로 기쁨을 표현했다.
퀴즈가 끝난 후에도 둘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고기는 형이 구워요.”
“여행지 정보 혼자 알아 봐요. 아니다. 넘버 투랑 둘이 알아보면 되겠네.”
“옹졸하다. 옹졸해. 이 형들.”
그런 동생들의 말에 제작진 사이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다들 내 마음속에서는 1번이야.”
“그런 되도 않는 거짓부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달래려고 하지 마요.”
말은 그러면서도 이내 새초롬하게 웃은 리혁이가 자리에 앉았다.
중현이가 고기 집게를 들고 소금을 찹찹 뿌리는 동안, 막내가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엄청 귀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와…….”
꼴깍 하며 침을 삼킨 막내가 맥주 캔을 내려놓았다.
“왜 그래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어른으로 가는 관문이니까.”
“술이 무슨 어른의 관문이야.”
습하습하 하면서 심호흡을 하던 막내가 조심스럽게 캔 뚜껑을 깠다. 그러고는 꿀꺽 하며 맥주캔을 들었다.
우리도 저마다 음료 캔이나 병을 들어 건배해 주었다.
“우리 막내, 어른이 된 거 축하한다!”
“축하해!”
헤실헤실 웃던 지호가 긴장한 얼굴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더니.
“으엡, 퉤!”
“흐하하하하!”
“아. 뭐야. 진짜 맛없어!”
오만상을 쓰는 막내의 모습에 우리가 물개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중현이가 웃으며 물었다.
“무슨 맛을 상상했는데?”
“막 달콤한 꿀맛 생각했는데… 고소하고 달콤한 맛. 이걸 왜 치킨이랑 같이 먹는다는 거예요?”
“같이 먹으면 맛있으니까.”
“전 모르겠어요. 으이이. 억울해. 내가 이걸 마시려고 이 긴 세월을 기다렸다니…….”
한 모금 마셔 보고는 바로 콜라로 갈아타는 막내의 모습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옛날에 떡볶이 먹던 모습이 겹쳐져서 그런지, 눈앞에서 성숙한 얼굴로 맥주 캔을 바라보는 막내의 모습이 순간 낯설었다.
시간이 진짜 흐르긴 흘렀구나.
어느덧 4년 차가 됐다는 것이 뜬금없이 피부로 느껴졌다.
“술맛 별거 없지?”
“넹. 근데 형은 맛 어떻게 알아요?”
“기절하기 전에 혀끝으로 느껴지거든.”
“아.”
어쨌거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제작진이 준비해 준 바베큐도 먹고, 음료수도 배 터지게 마시고. 그런 식으로 바베큐 파티가 막판에 이르렀을 때였다.
-♩♪♬♪
서정적인 BGM이 제작진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아 또…….”
“캠프파이어 시간이에요?”
“또 그런다. 또.”
눈물을 쏟으라고 준비한 BGM에 우리가 와글와글 떠들자 피디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베큐 파티 하면 또 눈물을 뺄 수 없죠.”
“…….”
“그런 의미로 준비했습니다. 멤버들에게 평소 전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너의 마음을 말해 줘!”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는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딴 곳을 바라볼 때.
각자 한마디씩 해 주면 좋겠다는 말에 다들 머뭇거렸다.
해도 졌고, 풀벌레 소리도 들려오고, 날씨는 좋고, 아름다운 음악은 계속 들려오고.
딱 분위기가 무르익기는 했는데 뭔가 부끄럽다.
그때 비주가 손을 들었다.
“저요. 저… 이번 여행 리얼리티에서 공개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네. 비주 씨.”
바베큐 불빛에 비주의 얼굴이 노을빛으로 일렁였다. 갈색머리를 차분하게 넘긴 우리 둘째가 말했다.
“멤버들, 그중에서 특히 우주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나?”
“네.”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끼며 최근에 잘못했던 수십 개의 사건들을 점검할 때.
비주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 시트콤 촬영했을 때 있잖아요. 제가 <우리 가족은 외계인>에 카메오로 나갔을 때.”
“아. 그때? 너 사과별에서 온 외계인이었잖아.”
“네, 그때 연기하는데 형이랑 저랑 아예 모르는 사이였잖아요.”
그랬다.
나는 과일상을 운영하는 요원 김우주였고, 비주는 사과에 미친 사과광인 손님이었으니까.
비주가 바베큐 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좀 뭔가 서운한?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형이 또 너무 연기를 잘하니까. 정말 저랑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 거예요. 되게 그날 밤까지 싱숭생숭하고 그랬어요. 진짜로 그럴 수도 있었으니까.”
비주가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다섯이 이렇게 못 모였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우주 형이 수능날 이후로 오게 된 것도. 저를 포함해 다른 멤버들도 모인 것도. 우연이 조금만 다른 쪽으로 작용했다면 다들 못 모일 수도 있었잖아요.”
DNS 미디어가 공룡 기획이었다면 바로 갔을 거라는 막내의 말, 과거 윤기원과 같은 기획사 연습생이었다는 리혁이의 말이 떠올랐다.
야구 선수가 될 뻔했다는 중현이 이야기도 그렇고.
비주가 가정 사정 때문에 중도 포기할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떠오르고.
나 또한 과거 TJ 한영준 이사가 이적을 추천해 줬던 다른 기획사 명단들과 수능날 사건이 눈앞으로 스쳐 갔다.
조용해진 우리에게 비주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쩜 우린 못 모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조금 울적하기도 해요. 정말 우리 다섯이 모인 게 완벽하니까.”
“…….”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다섯이 모이게 된 그런… 우연의 일치, 이런 행운에 감사하기도 해요. 이렇게 우리 다섯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뉴블랙이 되기도 힘들었을 거고.”
우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말을 덧붙이고 싶긴 한데, 부끄부끄해서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때 비주가 손을 꼬물거렸다.
“그런 의미로 이번에 제가 만든 자작곡…을 하나 공개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곡한 건데. 제목은 ‘경우의 수’예요.”
비주의 말에 제작진이 음원을 틀 준비를 할 때.
어색하고 부끄러운 얼굴로 맥주를 홀짝이는 동생들을 바라본 내가 비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잠겨 나왔다.
“비주야.”
“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내 촉촉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비주에게 내가 물었다.
“이번 곡도 완성본인 거지?”
“…….”
“아니. 그 미리 알아야 반응을 좀…….”
“…….”
꼼지락거리던 굼벵이들로부터 흉악한 시선이 날아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