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2)화 (60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2화

“눈치 없어요?”

“흐으음.”

“진짜 꼭 이런 상황에서 완성본이냐 그런 걸 물어봐야 돼여? 에휴. 막내인 나보다 못해.”

동생들의 타박이 날아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미리 알아 둬야 리액션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 저번처럼 완성본인데 이거 완성하면 좋겠다고 하면 큰일 나니까.

“…….”

비주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지며 웃는데, 내 기준으로 비주의 표정 중에 제일 무서운 종류였다.

내가 웃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못 들은 걸로 해 줘…….”

“아니에요. 형. 궁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치?”

“지금 상황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요.”

“…….”

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동생이 곡을 썼다는데, 형이 되어서 잘했다고 칭찬부터 못해 줄망정 그런 거나 물어보구.”

“미안합니다.”

사과해! 사과해! 하는 동생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조용히 입 다물고 감상하겠다는 나의 말에 동생들이 꺄르륵 웃었다.

공기 중에 증발한 맥주 공기라도 쐬어서 그런 건가. 동생들의 표정이 예쁘고 귀엽게 느껴진다.

취한 게 분명했다.

“자. 그럼 재생하겠습니다.”

“네!”

제작진이 음원을 틀 준비를 하자 지호와 중현이가 머리를 맞대고 활짝 웃었다.

음악 방송 MC들을 흉내 내는 모양이었다.

“남반구의 여름밤! 아주 따끈따끈한 신곡을 들고 온 대형 신인입니다~! 뉴블랙의 대표적인 춤꾼이죠?”

“네. 김비주 씨의 신곡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경우의 수.’ 그럼 지금 바로 감상하실까요?”

“뮤직 고고고~!”

합이 척척 맞는 바보들의 모습에 작가님들이 물개 박수를 치며 만족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음악이 재생됐다.

츠츠츠츠, 드럼 스네어로 시작한 노래에 부드러운 팝 멜로디가 얹어지면서 도입부를 장식했다.

“오오…….”

분위기를 따지자면 달콤한 느낌이라고 할까.

동시에 차분하게 제 갈 길을 가는 멜로디였다. 에코가 들어가서 조금은 회상하는 듯한 분위기가 들기도 하고.

도입부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때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이란 말로

시작했던 우리 이야기

네 번의 여름과

네 번의 겨울을 지나

지금 여기에

비주 특유의 미성이 높게 울려 퍼졌다.

그러면서 연습생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로 만났던 이야기까지 노래의 가사가 이어졌다.

어색했던 첫 만남을 그리기도 하고.

함께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데뷔했던 때, 첫 콘서트를 했던 때에 대한 이야기가 은유적으로 흘러나오면서.

드럼으로 고조되던 메인 멜로디에 감동적인 후렴구가 얹어졌다.

함께 해

죽을 때까지

함께 해

무덤에 갈 때까지

그 순간 다 같이 웃음을 터뜨리며 자지라졌다.

무덤까지 함께 가자는 메인 댄서의 질척거리는 보이스에 우리 모두 흐느끼며 주저앉았다.

“흐하하하하!”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웃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함께 들어가yo 무덤’하는 비주의 노래에 진짜 정신없이 웃었다.

당사자가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적당한 가사가 안 떠올랐어요. 떠오르는 대로 부르다 보니까…….”

“그래. 그 부분 가사는 좀 바꾸긴 해야겠다.”

눈물을 슥 닦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도 웃어서 당긴 배를 문지르면서 촉촉한 눈으로 동생들과 서로 눈을 마주쳤다.

다들 웃어서 나온 눈물로 촉촉한 눈이 아니었다. 무언가 감동적인 걸 보고 촉촉해진 그런 눈망울이다.

“…….”

“…….”

나도 저 얼굴과 비슷하겠지.

눈물이 찔끔 나온 걸 중간에 웃음으로 덮었다고 생각했는데, 동생들 얼굴을 보니 어림도 없었던 것 같다.

동생들이 맥주를 홀짝였다.

“흠흠.”

“으흠흠.”

카메라 뒤편에 앉아 있는 제작진들이 울었대요~! 하면서 깔깔 웃고 있는 동안 우리가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

“몹시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경우의 수.”

“조금 감동.”

자체적으로 작게 박수를 치며 감동을 마무리했다.

비주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노래는 어땠어요. 다들?”

“너무 좋았어.”

놀랄 만큼 완성도도 높았다.

15년도 초였나.

그때부터 작곡 공부를 틈틈이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까지 발전했을 줄은 몰랐다.

“우리 둘째가 이렇게 곡을 잘 쓰는 줄은 몰랐네.”

“그런 건 아니고. 운 좋게 이번 노래가 잘 얻어 걸린 거 같아요. 원래 한 번씩 얻어걸린다고 프로듀서님들이 그러잖아요.”

“아니야. 이건 운의 영역이 아닌데.”

“그래요?”

노래의 여러 부분에서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응. 너무 잘 만들었어.”

“허어…….”

“작곡 실력이 엄청 늘었는데? 그런 의미로 중현이랑 나랑 Coin 밑작업하는 데 참여해야겠어.”

“하아…….”

된통 걸렸다는 표정으로 눈가를 덮는 비주의 모습에 다들 큰 웃음을 터뜨렸다.

맥주를 홀짝이며 벌건 얼굴을 숨기던 리혁이도 말을 보탰다.

“진심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형이 저희한테 뭘 말하고 싶은지도 알 것 같고…….”

“리혁이 형 얼굴 벌게진 거 봐요!”

“취한 거라고. 취한 거야.”

취한 홍조라고 주장하는 넷째와 막내가 에베벱 하고 투닥이는 동안, 중현이가 비주에게 주먹을 슥 내밀었다.

둘이 콩 하고 부딪치는 동안.

비주가 공개한 ‘경우의 수’라는 곡 때문인지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제작진들도 귀엽다는 듯이 웃고 있고. 우리는 우리대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비주야.”

“네?”

“이거 팬송처럼 들리기도 하더라.”

“아. 맞아요. 이게 만남을 다룬 건데 우리만 만난 게 아니고, 매니저 형들, 프로듀서 분들, 우리 여행일기 제작진 분들.”

제작진이 환호했다.

“그리고 수플레들까지… 모든 우연한 만남으로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모였다 하는 의미로 쓴 거라서요. 팬송이라는 말도 맞는 것 같아요. 모두를 위해 쓴 곡이니까.”

곱상하게 웃는 둘째를 바라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입술을 뗐다.

“그럼 이거 이번 앨범에 실어 볼까?”

“이걸요?”

“응. 솔직히 그대로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콘서트 엔딩곡으로 써도 좋을 것 같고.”

“아. 맞아.”

막내도 동의했다.

“진짜 딱 그 분위기긴 해요. 콘서트에서 이제 안뇨옹~ 하면서 손 흔들고 부르는 그런 노래.”

“그런 분위기긴 하네.”

“나도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 우리의 말에 비주가 생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다들 좋으면 나도 좋아.”

*   *   *

서로의 마음을 말해 주는 코너는 안타깝게도 비주가 공개한 ‘경우의 수’로 끝이 났다.

보통 누군가 멘트 1절을 부르면 나머지가 2절, 3절 하는 식으로 받아치는데.

비주가 공개한 노래가 4절까지 홀로 다 해 버리는 바람에 나머지가 멘트를 치기 좀 묘한 분위기였다.

릴레이 썰을 푸는데 한 명이 엔딩까지 해 버린 느낌.

“그런 의미로 저희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비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저는 다른 멤버들 멘트도 듣고 싶은데….”

“와아아아아아!”

“억울해. 와. 이거 진짜 억울하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힘이 빠진 비주의 모습에 우리가 비주를 둘러싸고 와아아아 해 주었다.

“저만 하고 끝나는 게 세상에 어디 있어요?”

“여기~”

맥주를 들이켜던 막내가 비주에게 치대며 말했다.

“형 멘트가 너무 감동이어서 그래여. 솔직히 여기서 뭐 우리가 더 추가할 것도 없는 것 같고.”

“맞아. 이런 건 1절, 2절만 해야지.”

“그래도 나는 듣고…….”

“와아아아아아!”

시무룩한 참새처럼 입을 비죽이는 둘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중현이가 비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 밤바다 보러 가자!”

“밤바다!”

그때 그 밤바다~ 하며 ‘밤바다’의 가사를 흥얼거리며 동생들과 함께 바베큐 파티장을 나섰다.

20분 정도 걸어가서 나온 바닷가.

쏴아아아아아아-

철썩-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들어 오는 캥거루 아일랜드의 바닷가였다.

“우와아아…….”

보름달 아래 모래사장이 별처럼 반짝이고.

그런 하늘 위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

몹시 감동적인 순간이었는지, 리혁이가 입가에 손을 올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진짜 아름다워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중현이가 멍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웃었다.

“별이 쏟아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마침 오늘 날씨도 별 구경하기에 딱 좋대요.”

호주에 온 이후로 계속 맑은 날씨긴 했지만, 여름이라 그런지 구름도 많이 끼어 있었는데.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밤하늘이었다.

“우와아아…….”

제작진들도 감탄하는 동안 우리는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폈다. 그러곤 그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정말로 별이 빛나는 밤.

카메라 조명까지 조금 어두워지면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눈에 잘 보였다.

“이런 거 보면 기분 진짜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비주가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저 별들 중 하나에는 사람이 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기 사는 외계인들은 반대로 우리를 보면서 저 별에도 사람이 살까, 그러고 있을 거고.”

“그러게.”

“외계인은 진짜 있을까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이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저 별들에는 사람이 살 수 없어요.”

“응?”

“별의 정의는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거든요. 저 정도 밝기면 최소 수천 도는 된다고 하는 건데. 어지간한 생명체는 저기서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져 버릴 걸요.”

“…….”

“굳이 사람이 산다면 저기 항성들 주변의 안 보이는 그런 행성들이겠죠. 즉, 저 별들에는 지적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거의 0퍼센트에 수렴해요.”

제작진은 물론이고 우리까지 분위기가 싸해지는 동안 리혁이가 주절주절 천문학 이야기를 이어 갔다.

“리혁이 형.”

막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형은 우리한테 잘해야 돼요.”

“왜?”

“우리라서 친구 해 주는 거니까.”

“…….”

남들이었으면 돈 받고 친구 해 준다는 이야기에 리혁이가 발끈했다.

“나 친구 많거든.”

“친구 누구요? 스보 기원이랑 나무 형은 빼고.”

“그…….”

“틴스 안 됨!”

“그, 그럼…….”

“차우현 선배님도 안 돼요.”

“…….”

리혁이 쪽에서 말이 사라지면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 투덜대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동안 내가 돗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슬슬 바람이 차가워지는 것 같은데. 이제 들어가자.”

“네!”

그런데 애들이 뭔가…….

“여어엉차…….”

“에구구.”

“으으음.”

일어나는데 상태가 묘하게 이상해 보인다.

중현이 정도만 벌떡 일어날 뿐, 나머지 애들이 어우 하면서 관자놀이를 붙잡았다.

비실비실한 사마귀처럼 비틀대는 리혁이에게 다가갔다.

“리혁아. 왜 그래?”

“어… 지진인가.”

“응?”

“땅이 막 흔들리는데.”

“무슨 소리야. 땅이 왜 흔들려?”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백사장에서 꺄하핫 달리던 지호가 우뚝 멈추고는 말했다.

“어?”

무언가 충격적인 진실을 깨달았다는 듯, 막내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넌 또 왜 그래?”

“지, 진짜로 땅이 흔들려요!”

“응?”

“이게 바로 지구가 돈다는 건가? 지구가 돌고 있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제작진들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비주에게 시선을 돌리자.

“우와. 땅이 흔들려.”

얘도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낄 때였다.

후우우우우.

바닷바람이 불어오더니 알콜 냄새 비슷한 것이 미세하게 풍겨 왔다.

“…….”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를 깨달았다.

아까 비주의 노래가 나오면서 괜히 민망한 기분에 음료를 홀짝였는데, 내가 콜라를 마시고 있을 때 얘네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 마신 양만 봐도 1인당 최소 몇 캔씩은 될 것 같다.

“꺄하하하하!”

비주와 지호, 리혁이가 지구가 돈다! 우와! 돌아여! 하며 손을 붙잡고 춤을 추고 있는 동안.

나는 중현이를 돌아보았다.

“중현아.”

“허허허.”

“중현아?”

“허허허허허허.”

장승처럼 우뚝 서서 껄껄 웃어 대는 중현이의 뺨이 발갛다.

“꺄하하하하하!”

“…….”

“으캬캬캭!”

“…….”

아. 망했네. 이거.

그런데…….

“어우. 왜 땅이 돌지.”

동생들의 숨결에서 흘러나온 알콜 냄새 때문일까.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땅이 돌기 시작했다.

주변이 빙글빙글 돌면서 난생처음 겪어 보는 낯선 감각이 나를 지배했다. 환한 달빛에 시선이 돌아갔다.

“어?”

보름달에서 토끼를 혹사시키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

“할머니……?”

그리고.

그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머리가 반쪽으로 쪼개지는 통증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거머리들이 작곡, 작곡 하면서 내 아이디어를 훔쳐 달아나서 거머리 컴퍼니를 차리는 장면이었다.

“허어…….”

화창한 햇살에 1차로 눈이 부시고.

타는 듯한 갈증에 주변에 널브러진 생수병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 나서야 이불이 깔린 오두막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여기까지 온 기억이 없다.

이불을 편 기억도 없고.

“…….”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면서 자던 동생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대체로 비슷한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달달 떠는 손으로 물병을 들이켜더니 어? 하면서 제정신을 차렸다.

“형.”

막내가 물었다.

“우리 왜 여기 있어요?”

“…….”

“뭐지? 분명히 바닷가에서 별 보고 그랬는데.”

리혁이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일단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기억을 다 말해 봐요.”

“지구가 돌았지.”

“지구가 돌기 전에는요?”

“별 보고…….”

“그럼 그 전에는?”

“술을 마셨지.”

“…….”

“…….”

동생들과 함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

비주가 울적한 얼굴로 말했다.

“나 왜 그랬지. 이거 너무 프로답지 않은데.”

“이거 진짜 반성해야 돼요.”

아무리 여행이라고 해도 방송 촬영인 건데. 술을 마시고 취해 버린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원망이 들었다.

중현이가 눈을 굴리며 물었다.

“우리 무슨 실수는 안 했겠죠.”

“그건 모르지.”

다 같이 어으으으으, 하면서 몸부림을 쳤다.

나는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다들 자기 주량을 몰라?”

“술을 평소에 많이 마셔 봤어야 주량을 알죠.”

“취해 본 적도 없고?”

“네.”

“맨날 나 보고 술 약하다, 약하다 그러더니 몇 캔 마시고 가 버렸네.”

“비주 형 노래 때문에 마시게 된 거라니까요…. 안 마시면 당장 얼굴이 불타오를 것 같은데.”

평소에 거의 술을 안 마시는 터라 다들 주량을 몰랐던 모양이다.

내가 동생들에게 말했다.

“일단 피디님부터 찾아뵙고, 혹시 문제 있거나 했으면 사과 드려야지. 우리가 실수한 부분이니까.”

“같이 가요. 형.”

“옷부터 입고 가자. 세수도 하고.”

우리가 옷을 챙겨 입고 오두막을 나설 때였다.

문이 열리자 그 앞에서 매니저들이 서 있었다. 원석이 형을 비롯해 민수 씨, 종완 씨, 지운 씨.

“일어나셨습니까?”

매니저들이 정중하게 숙취 해소제를 건네주었다.

“어제 과음하신 것 같아서.”

“아. 감사합니다.”

“괜찮으세요?”

“네.”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물었다.

“저희 혹시 뭐 실수는 안 했나요, 어제?”

“…….”

매니저들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뇨.”

“그런데 왜 표정이?”

“아닙니다.”

민수 씨가 내게 숙취 해소제 병을 다시 받아가며 말했다.

“뉴블랙의 매니저가 되어서 너무 영광입니다.”

“예?”

“저쪽 오두막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피디님께서 기다린다고 하시니까요.”

“아, 예.”

영문을 모른 채로 피디님이 있다는 오두막을 향해 다가갔다.

그동안 장비를 챙기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는 제작진들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어색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하자, 제작진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블랙이들 좋은 아침.”

“엇. 네.”

“오늘도 촬영 힘차게 가 보자.”

“…….”

막내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우리 어제 뭔가 거대한 실수를 한 거 아닐까요? 힘내라고 다독이시는 것 같은데.”

“아으으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의문이다.

계속해서 붙잡고 물었지만 다들 웃으며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두막 안에서 지도를 보고 있는 피디님과 작가님들이 보였다.

다들 우리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왜… 왜 웃으세요?”

“아니야.”

“아니… 진짜 어제 저희 무슨 일 있었나요?”

“비밀이야.”

“알려 주세요. 진짜 부탁이에요….”

“비밀.”

나중에 방송으로 확인하라는 피디님의 말에 우리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   *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2」

괴로워하며 제발 알려 달라는 뉴블랙의 장면이 물결치더니 과거 회상으로 장면이 넘어갔다.

보름달이 뜬 하늘 아래 옹기종기 앉아 있는 5인조.

눈이 살짝 풀린 채로 웃고 있다.

우주 : 사랑해.

중현 : 저도요. 모두 사랑해.

비주 : 사랑해요. 흐히히.

지호 : 저는 언제나 형들이 최고예여. 으히히힛.

그때, 리혁이 벌떡 일어서더니 보름달을 배경으로 섰다.

우주 : 뭐냐. 사랑한다.

중현: 뭔진 모르지만 사랑함.

리혁 : 다들 잘 들어요.

눈을 부릅뜬 리혁이 요상한 몸짓을 하더니 춉 하고 큰 하트를 그렸다.

그러더니 큐피트 하트까지 뿅 하며 말했다.

리혁 : 내가 많이 사랑해요.

멤버들 : 거짓말!

리혁 : 진짜라니까. 잠시만 있어 봐요. 내가 이 분위기에 이거 꼭 한 번 읽어 줘야겠어.

이번 리얼리티용으로 준비했다며 리혁이 비틀거리며 핸드폰 메모를 읽기 시작했다.

리혁 : 사랑하는 우리 멤버들.

멤버들 : 사랑하는 멤버들이래! 흐키킥!

리혁 : 내가 표현이 많이 서툰 건 알지만!

멤버들 : 알지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와글와글 대던 멤버들이 편지 낭송이 끝나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우주 : 진짜 너희가 내 세상이다. 하나하나가 진짜 아름다운 내 세상들이야.

비주 : 저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중현 : 오. 세상이 돌고 도는 돈 돈 울… 우리 돈까스 나중에 먹으러 갈까요?

리혁 : 남산 가요. 나 케이블카 안 타 봤어.

지호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나는 대한 사람이다아아아! 우와아아아!

리혁 : 저거 봐요. 왕지호 취했다~

횡설수설하면서 서로에게 사랑한다! 사랑해! 하면서 본심을 드러내는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더니.

우주 : 가자. 할머니 보러.

지호 : 할머님이여?

우주 : 응. 꿈속에서 보러 가야 돼.

지호 : 저도 노력하면 할머님을 볼 수 있을까여?

우주 : 쉽지 않지.

영상 바깥으로 알콜 냄새가 풍겨 오는 느낌.

꿈꾸러 가자! 하면서 멤버들이 일렬로 움직이는 개미들처럼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고는 이불까지 곱게 폈다.

그러더니 오두막 바깥으로 나와 제작진들과 매니저들에게 다가와 사랑한다며 감사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손을 붙잡으며 지난 여행일기의 시즌 1에서 고마웠던 것들을 말하는 멤버들과 같이 통곡하는 제작진의 모습.

그 아래로 자막이 아련하게 깔렸다.

[그날 뉴블랙은 총 492번의 ‘사랑’을 외쳤습니다..☆]

서리혁이 가장 삭제하고 싶어 하는 영상이자, 뉴블랙 멤버들이 금주 선언을 하게 된 계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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