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3화
캥거루 아일랜드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후.
나머지 이틀 동안 청춘들의 배낭여행을 했다.
“아. 다리 아프다.”
“리혁이 형 다리 아파요? 그럼 택시 잡을까요?”
“기왕이면 비싼 택시로 잡아.”
“넹.”
3보 이상은 택시로 이동하면서 즐겁게 바깥 풍경을 즐기기도 하고.
“스테이크 레스토랑이랑 랍스터 레스토랑이 있는 데 어디 갈까요?”
“둘 다 먹자.”
메뉴가 고민될 때는 둘 다 먹기도 하고.
남호주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브리즈번까지 호화로운 여정을 즐기면서 청춘을 체험했다.
“얘들아.”
피디님이 진지하게 말했다.
“청춘 여행은 그런 게 아니야.”
“아닌가요?”
“청춘 여행이라는 건 말이야. 그러니까… 아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지 모르겠네.”
“청춘 여행이라는 게 따로 있을까요. 청춘이 하면 청춘 여행이죠.”
중현이의 말에 우리가 맞다며 박수를 쳤다.
리혁이도 말했다.
“저희가 여행비를 벌었는데 그걸 안 쓰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맞아.”
“저번에 거기 마을 어디였져? 거기 노래 대회 우승했을 때도, 전날 밤새 스폰지밥 아카펠라 연습했잖아요.”
“중현이가 뚱이 목소리 내느라 고생했지.”
고되게 벌었던 만큼 풍족하게 쓰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우리의 논리에 제작진이 탄복했다.
그 속에서 피디님이 화사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아예 화폐가 없는 곳으로 가야 되나…….”
“아냐.”
카메라 감독님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얘네는 조개 목걸이로 물물교환 하는 데 가서도 살아남을걸. 조개껍질로 탑을 쌓을 거야.”
“그건 또 그러네요.”
시무룩한 얼굴로 준비한 게임의 반도 못했다며 슬퍼하는 작가진과 피디님의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이내 피디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예정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네. 시즌 1에서는 갈매기를 잡고 귀신이랑 만나더니… 시즌 2에서는 버스킹을 하고 돈을 벌어 오고.”
“그게 저희의 매력 포인트 아니겠어요?”
“그치.”
막내의 애교 섞인 눈빛에 다들 웃었다.
곧바로 조연출 분이 손뼉을 쳤다.
“자! 엔딩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네!”
이제 이번 여행이 어땠는지 엔딩 멘트를 찍을 시간이었다.
다녀왔던 여행지를 언급하면서 호주 여행에서 좋았던 점들을 말하고. 제작진에게 고마움도 전하고. 이 리얼리티를 보게 될 수플레들에게도 안부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었다.
“네. 저희는 이 방송이 끝날 때쯤 되면 정규 앨범 2집으로 돌아오게 될 텐데요. 저희의 신규 타이틀곡 Coin! 많은 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엔딩 촬영이 끝났다.
물론 모든 촬영의 끝은 아니었다.
“피디님. 그러면 저희 서울에 가서 더 찍는 거죠?”
“응. 1차 편집 끝나고 나서.”
이번에 찍은 여행 리얼리티를 시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촬영분을 보면서 리액션도 하고 그런 식으로.
요즘 예능 트렌드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벗어나 관찰 예능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반영했다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시작한 HBS의 예능 중 하나가 이런 컨셉으로 대박을 치기도 했고.
“정말 4박 5일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너희가 고생 많았지. 식…….”
식사도 불편했고, 하는 상투적인 말을 하려고 했던 피디님과 우리가 먼 곳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너무 잘 먹었지.’
‘호화 여행 리얼리티…….’
피디님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고생 많았어. 어제 주사도 너무 귀여웠고.”
“그거 진짜 편집 안 되나요?”
“절대 안 되지.”
안 될 것 같긴 했다.
예능 관계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바로 이렇게 솔직한 표정이나 진심이 나오는 장면들이니까.
“아무튼 시즌 3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또 봤으면 좋겠다.”
“저희도요.”
너무 감사했다며 호주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샀던 선물들을 건네주자 작가님과 감독님들이 좋아했다.
4박 5일 동안 고막을 단련시켰던 오디오 감독님이 헤드폰을 벗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그럼 내일 출발하는 거니?”
“네.”
“어이구. 일정이 많구만.”
원래 4박 5일로 끝나는 호주 여행 리얼리티였고, 촬영도 예정대로 끝나긴 했지만 우리에겐 추가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저번 버스킹 관련해서 호주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로 했고.
또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도 있었다.
“흐흐흐흐흐…….”
“이상하게 웃지 좀 마요. 창피하게.”
“으흐흐흐흐!”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와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으흐흐흐흐!”
“…….”
“으흐흐흐흠…….”
“…….”
나와 눈이 마주친 신규 매니저들이 멈칫했다.
민수 씨와 종완 씨, 지운 씨가 침을 삼키며 긴장하는 동안, 원석이 형이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송에서 보던 그대로지?”
“네.”
“이게 우리 애들이야.”
묘한 자부심으로 빛나는 우리 도원석 씨의 표정에 다른 스탭들과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다음 날.
오전 일찍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를 끝낸 우리에게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
“…….”
프로펠러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면서 거대한 굉음을 내뿜고 있는 물체.
바로 헬리콥터였다.
“…….”
“…….”
인생이 참 다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는 유명 뮤지션이 보내 준 전용기를 타더니 이번에는 어느 기타리스트 겸 사업가가 보내 준 헬리콥터를 탔다.
“으어히이이이-!”
올라타서 벨트를 매자마자 두둥실 떠오르는 헬기의 감각에 리혁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비주도 눈을 질끈 감은 채 등을 기대고 있고.
나도 소음 방지를 위해 낀 헤드셋을 낀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기를 몇십 분.
「도착했습니다!」
헬기 조종사의 외침이 헤드셋으로 들려왔다.
“오?”
“벌써?”
프로펠러가 느려지면서 먹먹한 귓가로 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도착했어요. 우리?”
“이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하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는 거리를 몇십 분 만에 왔다.
얼떨떨하고 신기하다.
왜 외국의 유명 스타나 기업가들이 헬리콥터로 출근한다는 것인지 바로 납득이 간다고 할까.
“형.”
막내가 내게 착 붙어서 속삭였다.
“이것도 장바구니에 넣어 줘요.”
“확인.”
“전용기 다음에는 전용 헬리콥터 가는 거예요.”
OK 하면서 막내와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그러고는 양떼가 뛰어 놀고 있는 목장과 그 뒤편의 아담한 저택을 바라보았다.
글렌 데이비스 씨가 소유한 별장 중에 하나라고 했다.
「어서 오게!」
목장 운영자와 함께 보더콜리와 놀아주고 있던 글렌 데이비스 씨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저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법학교의 교장 선생님처럼 하얗고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고.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다시 뵙네요.」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내밀며 말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가난한 뮤지션을 초대해서 한 끼 대접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껄껄껄.」
「…저번엔 의사소통에 오해가 좀 있었어요.」
「오해할 만했지.」
노인이 눈을 찡긋하며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별장 안의 식당에는 이미 바베큐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향긋한 고기 냄새에 중현이가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데이비스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친구는 여행 중에 고기를 못 먹었나?」
「악어의 눈물 같은 거예요. 데이비스 씨.」
소화 잘 시키기 위해 미리 분비하는 거라고 하자 그분이 납득했다.
한국에도 악어가 살고 있느냐는 잡담과 함께 곧바로 바베큐 파티가 펼쳐졌다. 데이비스 씨가 맥주 캔을 내밀었다.
「한 잔들 하겠나?」
「아뇨. 저희가 얼마 전에 금주 선언을 했어요.」
「거참 안 됐구만. 알콜 이슈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글렌 데이비스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음하면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곤 하지. 술집에서 패싸움을 해서 눈이 밤탱이가 된다거나. 멀쩡한 자동차를 홀라당 태워 먹는다든가. 언젠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텍사스 사막에 버려진 적도 있다니까. 하하하하!」
「그, 그렇군요.」
「자네들도 아주 말썽꾸러기인가 봐? 하하하.」
일평생을 화끈하게 살아오신 락 밴드 전설의 말에 우리가 웃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거대한 사고를 쳤구나! 하는데 게다가 대고 ‘술 마시고 애정이 폭발했어요’라고 할 순 없었다.
바베큐 파티를 하는 동안 즐거운 담소가 오갔다.
특별하게 할 이야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날 있었던 즉석 공연의 뒤풀이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 관광객이 나를 알아봤나 했는데, 글쎄 이 친구가 나한테 공연을 같이 하자는 거야.」
「공원에서 유독 선생님 기타 소리가 잘 들렸거든요.」
「신기하기도 하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던데.」
간만에 재미있는 연주를 했다며 즐겁게 웃는 상대였다.
지루한 것을 절대 못 참는 성격이시라나. 1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못 견딘다고 했다.
그렇게 괄괄하면서도 유쾌한 성격의 데이비스 씨가 주로 말을 하고 우리가 받아치는 식이었다.
「그래서 내 비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네들이 요즘에 온라인상에서 떠오르는 스타라며.」
「저희가요?」
「그렇다던데? 아주 유능한 비서니 그 친구 말이 맞을 거야.」
오늘인가 어제인가 빌보드 Hot 100에서 저번 주에 88위였던 도깨비가 99위로 내려갔다고 그러던데.
아마 그것보다는 뉴블랙 TV의 구독자 숫자 등을 말하는 듯했다.
미국 시장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던 데이비스 씨가 선배 뮤지션으로서 조언을 해 주었다.
「영어 곡은 준비하고 있나?」
「아뇨. 아직.」
「큰 시장에서 놀고 싶으면 영어 곡 하나쯤은 준비해 놔. 우리가 그것 때문에 엄청 고생했으니까.」
처음 데블 그릴스 활동을 했을 때는 독일인 보컬과 함께 하면서 독일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미소를 지었다.
「개망했지.」
「푸흡-!」
「독일어가 멋있어서 독일어로 불렀는데, 미국 놈들이 안 들어 주니까 돈이 안 벌리더라고.」
조규환 이사님으로부터 일전에 들은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긴 했다.
해외에서 관심이 오는 것을 보던 조 이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까.
-만약 해외 인기가 심상치 않다면 미리 그런 쪽으로 생각은 하고 있어야 해.
주로 남미 쪽의 라틴팝 가수들이 취하는 전략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영어 싱글 하나 내서 잭팟을 터뜨리고, 그다음에 세계적인 가수 이미지로 어필해서 활동하는.
내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것도 그쪽에서 인기가 있어야 가능한 거기도 하고.」
좋은 조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시기상조 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미 너무 잘 되고 있어서요.」
「하기사. 내 비서가 그러는데 아시아는 자네들이 장악했다고 그러더만. 그것도 몹시 좋지. 내 이야기는 그냥 조언으로 듣게나.」
글렌 데이비스가 눈을 찡긋했다.
「원래 늙은이가 되면 괜히 오지랖이 넓어지는 법이거든. 젊은이들만 보면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지. 특히나 후배 뮤지션을 보면 가끔 잘못 택할 수 있는 길들에 대해 알려 주고 싶고.」
정말 좋은 분이었다.
푸근하게 우리를 바라보며 웃던 기타리스트가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다들 약은 안 하지?」
「콜록-!」
다들 마시고 있던 음료를 뱉을 뻔했다.
절대 그런 쪽에 눈도 안 돌린다고 하자 그제야 따스한 미소가 날아왔다.
「대마초도 안 되네.」
「한국은 대마초도 불법이에요.」
「그거 다행이군. 원래 가벼운 약이 더 무서워. 대마초로 시작해서 코카인, 헤로인으로 슬슬 넘어가서 망가지는 거거든.」
「아…….」
장수 밴드의 비결이 약을 안 하는 거였다는 말에 우리의 동공이 갈 곳을 잃었다.
70-80년대에 약 하던 친구들 모두 지금 밤하늘의 별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허공을 바라보았다.
‘외국 가수들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거지.’
‘적응이 안 된다. 적응이 안 돼….’
온실 속 파채처럼 살아온 우리에겐 무법천지 같은 이야기라 적응이 안 됐다.
그런 우리 반응을 보며 키득대던 데이비스 씨가 말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나도 선물을 준비했는데.」
「선물이요?」
「내 기타.」
친필 사인이 새겨진 일렉 기타를 가져오더니 선물로 주셨다.
「이걸요……?」
내가 기타를 받아 들고 물었다.
「이걸 저한테 주신다고요?」
「부담 갖진 말고. 내 창고에 사인한 기타가 100대쯤은 있으니까. 자네한테 한 대를 줬으니 또 한 대에다 사인을 할 거야.」
「영광이에요…….」
귀한 물건이었다.
이거 작업실에 걸어 다 두면 프로듀싱 팀 직원들도 엄청 좋아할 거 같다. 작업 분위기 조성에도 좋고.
-다들 졸리죠? 졸면 안 돼요. 지금 기타리스트의 전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데이비스 씨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어요.
멋진 멘트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줄줄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데이비스 씨와 기타 인증샷을 찍었다. 나도 내 우쿨렐레에 사인을 해서 건네드리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만남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였다.
「참.」
데이비스 씨가 화제를 돌렸다.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거실 쪽으로 다가가 벽난로 위에 놓여 있던 물건을 하나 가져왔다.
낡은 보석함 같은 물건.
「이걸 깜빡했군.」
「네?」
「자네가 명주 선의 아들이라며?」
동생들과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 아버지랑 아는 사이셨나요?」
「친구까지는 아니고. 친구의 친구 같은 느낌이었지.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우리 아빠가 진짜 인맥이 넓기는 했구나.
저번에 프랑스 갔을 때는 피아니스트가 아는 척을 하더니 호주에서는 기타리스트가 아는 척을 해 왔다.
다음에는 어쩌면 플루트 연주자가 삘릴리 하고 등장할지도.
「그런데 지금 주시는 물건은…?」
「아. 예전에 베니스에서 열린 파티였나. 90 몇 년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거기서 명주와 자네 어머니를 만났지.」
「아…….」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Myung-joo라는 어감이 뭔가 이상하면서 신기하다.
동생들과 내가 집중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때 당시에 한창 보물찾기에 빠져 있었거든. 숲속에 숨겨진 보물이라든가 침몰한 해적선이라든가.」
「해적선……!」
「물론 대부분은 허탕이었지만 말이야.」
중현이와 지호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때 당시에는 숲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마침 자네 부친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지. 만약에 보물을 숨긴다면 어디에다 숨겨야 가장 안전할 것인가 하는.」
리혁이의 눈이 가늘어지는 동안 내가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신 건가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네.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기도 하고. 금세 보물찾기 이야기로 넘어왔지. 어쨌거나.」
그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자네 부모님이 보물을 찾느라 끙끙대고 있던 나에게 실마리를 줬지. 내게 지도를 잠시 보여 달라고 하더군.」
엄마와 아빠가 머리를 맞대고 뭐라고 속닥속닥 하더니 지도의 한 지점을 표시해 줬다는 모양이었다.
워낙 생생하게 썰을 푸셔서 그런지 나도 모르는 추억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이탈리아 도시의 화려한 파티장.
재즈 음악이 흐르고.
샹들리에 아래에서 드레스와 수트를 입은 엄마 아빠가 머리를 맞대고 추리를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 간다.
「기가 막힌 추리였지. 그래서 자네 부모님에게 약속을 했다네. 발견하면 소정의 보상을 해 주기로.」
「발견하셨나요?」
「오차가 있긴 했지만 그들이 추리한 것과 그대로였지.」
데이비스 씨가 작은 보석함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자네의 부모님을 위한 선물일세.」
「…….」
「어찌 보면 자네 부모님이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도 있겠구만.」
낡고 해진 보석함이 손 안에 들어온다.
철렁.
철렁.
안에 담긴 무언가가 스르릉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성의 무언가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였다.
내가 물었다.
「혹시 안에 뭐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글쎄.」
수염을 긁적이던 노인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그보다는 직접 열어 보는 게 좋겠군.」
「……?」
동생들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보석함에 모였다. 내가 바라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열어 볼게.”
끼이이익.
보석함이 녹슨 소리를 내며 열리는 그 순간.
“어?”
“어?”
동생들과 내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 * *
그로부터 20시간 후.
인천국제공항.
“…….”
“…….”
인천공항 세관의 직원들 앞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담당 직원이 서류를 읽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리얼리티 촬영을 끝내고 귀국하신 거라고요?”
“네!”
“제작진은 먼저 귀국을 했고요?”
“네.”
뉴블랙이 호주에 리얼리티 찍으러 갔다는 사실이야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니 일상적인 확인 절차였다.
세관 직원들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미리 고지를 받긴 했는데 직접 보니 당황스럽다.
“그… 그러니까 이걸 선물로 받으셨다고요.”
“네.”
멤버들이 싱글벙글 웃는 가운데 메인 보컬이 냉철한 표정으로 말했다.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들었어요. 문화재 반출 같은 관련 법규에도 전혀 문제가 없고.”
“네. 저희도 그렇게 듣긴 했습니다만…….”
담당 직원이 눈앞에 놓여 있는 물건을 보고 재차 물었다.
“이걸 선물로 받으셨다고요?”
“네.”
“그러니까 물품 설명을 보면… 19세기 물건이고요. 그… 우주 씨 아버님에게 원래 줬어야 할 물건이라고.”
“네. 맞아요.”
서류 작업은 완벽했다.
그럼에도 직원이 이렇게 꼼꼼히 확인하는 것은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짝.
반짝반짝.
반짝.
“…….”
상자 속에서 호주산 금화가 안녕하세요… 하며 수줍게 반짝이고 있었다.
19세기의 금화.
자그마한 보석함에 담겼지만 가치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안 간다.
푸근하게 웃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에 세관 직원이 물었다.
“저,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뉴스에서 나왔는데 다음 타이틀곡이 그 뭐였죠. 코….”
“코인이요?”
“네. Coin이라고 하던데… 실례지만 혹시 이것 때문에 제목이 코인인 건가요?”
“아뇨. 절대 아니에요.”
손사래를 치는 뉴블랙 멤버들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세관 직원들.
“아니에요!”
“…….”
“그거 진짜 아닌데!”
“…….”
그렇게 소문은 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고.
얼마 안 가 뉴블랙의 다음 타이틀곡 Coin에 대한 온갖 와전된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