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4화
55장. Coin
인천공항.
뉴블랙이 입국하는 장면을 찍으려고 대기하던 기자들이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뭐지?’
평소에는 이쯤 되면 입국 수속이 다 끝나고 손을 흔들며 등장할 차례인데.
어째 뉴블랙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기자가 카메라 세팅을 조정하며 동료들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안 나오지? 평소에는 이 시간쯤 되면 나오잖아. 혹시 다른 비행기를 탔나?”
“이 비행기가 맞을걸. 얘네 팬들 모인 거 봐봐.”
“그건 또 그렇긴 한데.”
인천공항 1층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수백 명의 인파를 보면 비행기가 이 시간인 건 확실하다.
다만 주변의 대포 카메라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닥이는 걸 보니 사진 기자들만 이상함을 눈치챈 게 아닌 듯했다.
확실히 늦다.
무언가 안에서 일이 있는 건가 싶을 만큼.
사진 기자들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부장. 이거 시간 확실해요? 안 나오는데?”
“지금 1시간째 기다리는데 안 나오고 있다니까. 아. 언제까지 기다려요. 나 이따 명동에 시사회도 있는데.”
“……네? 세관이요?”
통화를 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독특한 소식이 흘러들었다.
-뉴블랙이 세관에서 뭐가 걸렸나 봐. 오래 걸린대.
눈을 깜빡이는 사진 기자들의 머릿속으로 장면이 그려졌다.
보통이라면 반입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건이라든가, 논란이 있을 만한 약품류가 상상되기 마련인데.
그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은 다음과 같았다.
-어? 왜 제 핸드폰 케이스에 감자 씨가 있죠?
목화씨를 붓통에 숨겨 온 문익점처럼 핸드폰 케이스에 호주 감자 씨앗이 담긴 중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끔뻑이고 있을 때.
-야야야! 대박이다! 그거 사진 꼭 찍어!
갑자기 윗선에서 새로운 소식을 전해 왔다.
-꼭! 꼭 찍어야 돼!
“예?”
-금화! 금화래! 금…….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비명에 사진 기자들이 다급하게 카메라를 들었다.
경호업체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걸어 나오고 있는 뉴블랙.
그런데…….
“음?”
평소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우후후후후후후.”
“흐흐흐.”
“후후후후후후!”
가방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는 우주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졸개들.
경호원, 매니저, 멤버들로 이어지는 3중 보호막에 둘러싸인 우주의 모습에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몸이 아픈가?’
아프다거나 해서 안색이 안 좋아 숨겨 주는 건가 싶었는데.
삼중 보호막에 둘러싸인 우주의 얼굴은 보물선을 인양한 해적선장처럼 뿌듯해 보였다.
“우후후후후후!”
캥거루 모양 선글라스 너머로 그 즐거움이 보인다.
‘왜 저러지.’
‘호주에서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했나.’
‘누가 보면 카지노 한탕 하고 온 줄 알겠네.’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그로부터 30분 후.
세관에서 있었던 사건은 금세 연예부 기자들을 통해 퍼져 나갔다.
-세관 직원들 깜짝 놀라게 한 ‘우주’의 물건, “19세기 금화 가져왔어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글렌 데이비스에게 받은 선물.. “19세기 금화, 아버지와 그분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
-“스케줄도 가져오더니.. 이젠 금화야?” 보물탐사하고 온 국민 아이돌
네티즌들의 머릿속이 일시정지했다.
‘뭐, 뭐를 가져왔다고?’
온라인과 마찬가지로 오프라인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점심 먹고 회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런 대화가 오갔다.
“어머.”
“왜요?”
“뉴블랙 있잖아요. 이번에 호주 가서 금화 받아 왔대요.”
“문화재청 홍보 대사 그런 걸로 다녀왔대요? 거기 정부한테 문화재라도 받은 건가.”
“아뇨. 19세기 금화를 선물 받아 왔대요.”
“……네?”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다른 부서 직원들도 저마다 핸드폰을 켜고 뉴스를 확인했다.
‘진짜네?’
호주에 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호주 뉴스에 나왔다고 한국 TV에 이야기가 나오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금화는 대체 어쩌다가 받아 온 걸까.
기사 전문에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레몬 엔터 홍보팀은 “과거 글렌 데이비스 씨가 친분이 있던 故 선명주 씨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물건”이며 “아들인 우주에게 대신 전해 주며 약속을 지킨 것”이라 배경 설명을 전했다.]
보도 자료를 내보냈는지 기사마다 비슷비슷한 설명들이 써 있었다.
그런 배경 설명을 보던 사람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보여 준 일차적인 관심은 다음과 같았다.
-저거 얼마일까.
“얼마일까요? 이거?”
발 빠르게 언론들이 소식을 전해 왔다.
-뉴블랙이 받아 온 19세기 금화의 현재 가치는 얼마? 얼마 전 웨더비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낙찰돼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로또 됐네.’
너무 스케일이 크다 보니 부럽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다.
놀랍고 신비스러울 뿐.
워낙에 온갖 신기한 짓을 하고 다니는 아이돌이긴 하지만 해외 나가서 금화까지 선물을 받아 올 줄은 몰랐다.
이 소식에 아이돌 팬들도 웃음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날짜 안 말해 줬음 만우절인 줄 알았음ㅋㅋㅋㅋㅋㅋㅋ
-늦덕들한테 ox 퀴즈하면 백퍼 틀릴 거 같음. 우주는 호주에서 19세기 금화를 선물로 받아왔다 ox?
-ㅋㅋㅋㅋ ㅋ 당연 X.. 예? o라고요?
-아 금화를 무슨수로 가져와ㅋㅋㅋㅋㅋㅋㅋ ..예?
-연예계의 사건사고 중에서 긍정적인 사건사고 쪽을 담당하는 아이돌
-내가 해외 토픽 담당자면 ㅈㄴ 행복할 거 같음. 대충 이야기 올릴 거 없으면 뉴블랙 소식 정기적으로 검색하면 됨
-CNN: 뜨끔
-근데 ㄹㅇ임ㅋㅋㅋㅋ cnn 보면 뉴블랙 자주 나옴
그리고 그 속에서 수플레들은 오늘도 덕질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리얼리티 떡밥이 금화야..?
-ㅋㅋㅋㅋㅋㅋㅋㅋ
-19세기 금화를 왜 가져왔는지 궁금하시다면 여행일기 2 꼭 봐주세요ㅋㅋㅋ
-대박이다 진짜
-우리 애는 금화를 가져와
-근데 저 글렌 데이비스씨? 저분도 대단한 거 같다ㅜㅜ 약속했다고 건네준거잖아
-ㅇㅇ 지금 쉬고 있는 기타리스트면 벌이도 좀 부족하실수도 있을 텐디
-우주 아버님이 진짜 인덕 많으셨던거 같음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할 만큼 넉넉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듯한 노인.
우주가 됐다고 말을 하는데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글렌 데이비스의 모습이 그려졌다.
훈훈한 광경을 떠올리던 수플레들이 계속해서 헛소리를 하는 안티들을 잡초처럼 밟아 주고 있을 때.
-뉴블랙의 호주 여행 리얼리티 “여행일기 시즌 2”, 다음 주 수요일 첫 방송
다음 주 수요일부터 여행일기의 시즌 2가 미튜브 뉴블랙 TV에 업로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매일 10분 분량으로.
정규 앨범 전까지 팬들의 적적함을 달래 줄 컨텐츠였다.
‘어머. 벌써 예고편도 올라왔네?’
뉴블랙 TV에도 [Ready for another trip? (여행일기 시즌 2)] 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꺄아아아아악!]
[귀신 보셨어요? 귀신? 그거 귀신같은데.]
[갈매기 군, 처신 잘해.]
갈매기를 붙잡고 의기양양해하거나 귀신을 발견했다며 비명을 지르는 멤버들의 모습.
“어우! 귀 아파!”
화면에 아련하게 삽입된 오디오 감독의 해탈한 표정과 함께.
저절로 볼륨을 줄이게 되는 시즌 1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빠르게 흘러갔다.
[뉴블랙의 여행일기가 시즌 2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힐링 여행!]
그런 자막 위로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감동적인 BGM과 함께 노을을 보며 웃거나 사진을 찍는 우아한 장면들이 나오기를 10초.
[…만 기대하신 건 아니겠죠?]
곧바로 우당탕탕 하는 BGM이 흘러나왔다.
배낭 다섯 개를 꺼내온 리혁이 제작진에게 정체불명의 단어들을 외치고 있었다.
[핵폭발!]
[지진!]
[화산 분화!]
그리고 이어지는 고급 빌라의 수영장 장면.
발코니 위에 서 있는 멤버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저거 뭐야. 뱀이야?]
[히이이익!]
곧바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 사랑에 빠진 펠리컨 무리가 리혁을 쫓아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뮤직 페스티벌에 진출한 뉴블랙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승자는 보글보글 스폰지밥의 뉴블랙!]
[와아아아아!]
그걸 시작으로 버스킹을 하는 장면부터 백상아리까지.
‘응? 백상아리?’
백상아리가 눈앞을 솨아악 스쳐 가는 장면까지 흘러나오면서 수플레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눈을 깜빡였다.
‘이건 봐야 한다.’
처음에는 금화 때문에 궁금해서 영상을 눌러본 건데.
예능 예고편을 본 순간 이건 반드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ㄷㄷㄷㄷㄷ
-썸네일 보소ㅋㅋㅋㅋㅋ 백상어+캥거루+핵폭발+국뽕
-핵폭발이 리얼리티에서 왜 나오는 걸까
-맨날 드립치려고 뉴티비 댓글창에 놀러 오는데 이건 꼭 봐야겠다
-00:48 이거 뱀 아님???
-너네 여행가서 뭘 하고 온 거야 대체ㅋㅋㅋ
-02:17 여기서 음악하는 거 진짜 기대됨ㅠㅠㅜ 진짜 고음 짧게 치고 들어오는데 진짜 심멎
-02:18 우주 목소리 듣고 놀란 가슴 백상아리로 더 놀랐다 ㅅㅂ
-후 오늘도 귀엽고 와글와글했다
여행 리얼리티에 대한 기대감이 폭발하면서 예고편의 댓글창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한편.
리얼리티와 함께 또 다른 소식도 들려왔다.
타이틀곡 제목 정도만 공개되어 있던 정규 앨범의 2집이 본격적으로 준비 중이란 소식이었다.
-뉴블랙 정규 2집 타이틀 ‘Coin’으로 곧 컴백, “왕의 귀환”
소식을 잘 접하지 못하고 있던 일반인들에게는 관심이 확 가는 소식이었다.
-제목이 코인??
-금화 때문에 코인 된 건가
-이건 합리적인 의심임ㅋㅋㅋㅋㅋㅋㅋㅋ
-금화=코인
-뭐야?? 코인이 그 코인인거??? 나 잘 모르는데 설명좀
-그건 아닌 것 같긴 한데 타이밍이 쥰내 절묘함ㅋㅋㅋ
-저기 홍보팀 일 잘하네
처음에는 곳곳에서 아니라고 했던 수플레들도 조용히 머글들의 관심을 즐기기로 했다.
“뉴블랙 이번에 곡 제목이 코인인가 그거라며? 동전이 영어로 코인이라더라. 금화 받아 와서 그런가.”
“응응. 그런가 봐.”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동조하는 수플레들이었다.
‘거짓부렁이면 어때. 홍보면 장땡이지.’
호주에서 선물로 금화를 받아 들고 온 뉴블랙.
그 때문에 리얼리티의 홍보 영상 조회수도 엄청 높고, 타이틀곡에 대해 관심도 확 집중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저기 금화와 Coin 이야기를 하던 수플레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생기는 의문 하나.
‘진짜 금화 때문에 Coin이 된 건 아니겠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긴가민가하는 수플레들이었다.
* * *
금화 덕분에 우리의 Coin에 대한 마케팅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와.”
막내가 말했다.
“이게 바로 입소문 마케팅인가 봐요. 우리가 다음 타이틀곡에서 금화 플렉스를 할 거라고 그러네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임금님이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그져. 발 없는 말이 레알 천 리를 가고 있어요.”
소문이 퍼져 나가는 속도가 정말 경이로웠다.
덕분에 우리의 다음 타이틀곡 Coin에 대해서 별다른 보도 자료를 낼 필요도 없이 홍보가 됐다.
후회막심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불꽃놀이 때는 불꽃놀이 열 걸.”
“그러니까요. 마스커레이드에서는 가면무도회 열고 그랬으면…….”
“어?”
“어?”
대박각이 아니었을까.
데뷔 초부터 ‘불꽃놀이 컨셉에 맞춰 찐 불꽃놀이 하는 아이돌’ 같은 키워드로 돌아다니고 그랬을 텐데.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자본이 없었잖아요.”
“아. 맞다.”
“대표님도 한동안 컵라면 드시고 그랬지….”
아련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한국에 복귀한 이후 친한 사람들에게 하나둘 선물을 줬다. 이웃집 소년들에게 캥거루 기념품도 주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호주에서 챙겨 온 각종 과자 등을 건네주었다.
우리 연습생들에게도 몰래 먹을 간식거리들을 쥐어 주고.
“우와…….”
프로듀싱 팀에게는 내가 호주의 전설적인 밴드 기타리스트로부터 받아 온 일렉 기타를 보여 줬다.
작업실 벽면에 붙은 친필 사인 기타.
나상윤 피디님이 몽롱한 얼굴로 기타의 냄새를 킁킁거렸다.
“대박인데…?”
“멋지죠?”
“이게 진짜 글렌 데이비스한테 받아 온 거야?”
“네.”
“와…….”
락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밴드인 만큼 기타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초롱초롱하다.
“어때요. 이 작업실에 좀 더 오고 싶어지죠?”
“아니.”
작곡가들의 단호한 대답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준비를 또 따로 했죠.”
“……?”
“데이비스 선생님에게 받은 친필 사인이에요. 여기 각자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는데.”
“……!”
‘To Sang-Yoon Na’ 같은 메시지가 적힌 사인지에 프로듀서들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그, 그…….”
“네. 친필 사인이에요.”
“우주야!”
“에이, 우리끼리 뭘 그렇게…….”
동생들에게 작업실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
곧이어 사인지를 품에 안겨들고 훌쩍이는 프로듀서들과 Coin의 밑작업을 함께 하고.
본격적인 정규 앨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앨범명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고, 리혁이가 말해 준 단어에서 유래한 거였다.
-‘Hello World!’ 어때요? 프로그래밍 시작할 때 예시로 쓰이는 그런 문장 같은 건데.
전자오락을 주제로 한 만큼 뭔가 1010101 하는 컴퓨터 느낌이 좋았다.
동시에 문장 자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WOrLD가 된 이유도 별거 없었다. 졸면서 타자를 치던 막내가 만든 단어인데 은근 모양이 좋아서 결정된 거였다.
“근데요. 형.”
비주가 물었다.
“나중에 왜 알파벳이 저런 거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될까요?”
“적당히 얼버무려. 의미는 수플레들이 만들어 줄 거야.”
곡 하나가 나올 때마다 정말 온갖 멋있는 해석을 붙여 주는 수플레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처럼 노래나 앨범 작업을 할 때는 철저하게 계산을 한다기보다는 감이나 느낌, 분위기를 따라가는 식이었다.
마케팅처럼 철저한 계산이 필요한 곳은 전문가인 우리 팀 실무자들이 담당해 주고.
“여기는 이번에 앨범 재킷 만들 디자이너들 리스트야. 이 중에서 적당한 사람을 골라 주면 돼.”
“팝 아트 느낌이 좀 났으면 좋겠는데. 그 알록달록한 색감 말이야.”
“팝 아트면 저쪽, 저 4번이 전문일 거야.”
오전에 곡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TF팀과 매일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이어 갔다.
“참.”
우리 TF팀장님이 말했다.
“키즈 초이스 어워드 쪽에서도 연락이 왔어.”
“키즈?”
“저번에 너희 부른다고 했던 미국 시상식 말이야. 거기서 비공식적으로 참석 요청을 보냈어.”
“비공식적으로?”
“이제 공식적으로는 다음 달 초에 기사를 내는 건데, 그 전에 미리 와 달라고 연락을 한 거지.”
“아…….”
중현이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상 타나 보네요.”
“그러게…?”
Favorite Global Music Star 부문이라고 했던가.
사실상 수상이 확실시 된 모양인데, 거기 가서 뭘 해야 될지 벌써부터 막막한 느낌이었다.
“…공연도 해야 돼?”
“공연은 없어. 이게 음악이 주가 되는 시상식이 아니라서.”
말 그대로 미국의 어린이들이 TV, 영화, 음악 등에 순위를 매기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시상식이라나.
미국 어린이들이 우리에게 환호하는 그림을 상상하다가 잘 안 돼서 포기했다.
그날 되면 알겠지.
그렇게 일일 회의를 마무리하고 동생들과 회의실을 나설 때였다.
불현듯 용건이 떠올랐다.
“맞다.”
“응?”
“나 이번에 타이틀곡 작곡 때문에 산 물건들 있잖아.”
“아아… 그거?”
눈을 예리하게 빛내는 석환 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거.”
“그건 왜?”
“그게 곧 배송이 된대. 그래서 공간을 좀 준비해야 될 것 같아.”
“지하의 빈 연습실 하나를 맡아 놓을게. 꽤 공간이 필요하니까.”
진지하게 끄덕하는 매니저에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자오락 컨셉의 타이틀곡을 위해 구매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아.
하나는 아니고 여러 개?
* * *
며칠 후.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은 아니야~”
“셋이면 셋이지 넷이겠느냐~”
룰루랄라 무한 반복되는 노래를 부르던 4인조 걸그룹.
해외 공연을 끝내고 돌아온 스칼렛의 멤버들이 연습을 하기 위해 레몬 엔터에 도착했다.
양손에 간식거리가 담긴 편의점 봉투를 가득 챙겨든 멤버들이 평소처럼 지하로 내려갈 때였다.
“음?”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지.”
“왜?”
“언니. 회사 사람들이 다 여기 모여 있는데?”
“그래?”
막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던 아라가 눈매를 좁혔다.
회사 지하 복도에 바글바글한 사람들.
마치 고깃집에서 웨이팅을 하듯이 서 있는 모습에 4인조가 본능적으로 줄을 섰다.
톡톡.
메인 댄서인 리나가 홍보팀 직원의 팔등을 두드리며 물었다.
“대리님.”
“응?”
“여기 뭐 하는 줄이에요?”
“아 여기? 여기 오락실이야.”
“네?”
고개를 갸웃하는 리나에게 직원이 멀찍이 연습실 안을 가리켰다.
뾰롱! 뿅! 뿅!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와아아-! 하는 함성들도 아련하게 들려왔다.
“…….”
“…….”
눈을 깜빡이는 스칼렛 멤버들에게 직원들이 말했다.
“우주가 오락실 사운드가 필요하다고 이번에 기계들을 구매했거든. 전자오락이 이번 타이틀 배경이야.”
“그래서 우리도 동참해 주고 있어.”
“…….”
스칼렛 멤버들이 멀찍이 연습실, 아니 오락실 안을 바라보았다.
직원들이 즐겁게 놀고.
헤드폰을 낀 우주와 졸개들이 안테나를 들고 돌아다니며 오락실 소리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뭐지.’
스칼렛 멤버들이 화사하게 웃었다.
해외 투어를 마치고 오랜만에 돌아온 회사는 어딘가 좀 이상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