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6화
수플레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중현이와 함께 춤을]
미튜브에 올라온 아주 짧은 영상 트레일러였다.
캐릭터 영상.
도트로 된 미니미 우주가 둠칫둠칫 옆으로 걸어오더니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삘릴리. 삘릴릴릴리.
코로 리코더를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옆에 있던 항아리 뚜껑이 펑 하고 하늘로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앙!
미니미 중현이 항아리에서 코브라처럼 나와 우주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또 뭐지?’
요즘 들어 어지간히 이상한 것에는 면역이 된 수플레들이었다.
그나마 놀랐던 게 최근의 금화 사건 정도.
하지만 이 영상을 보고 있자니 조금 당혹스러웠다. 도무지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이건가?’
영상 하단에 달린 링크를 클릭하자 어떤 홈페이지로 연결됐다.
따단!
팡파레와 함께 사이트 화면에 뉴블랙의 로고가 커다랗게 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구.
[뉴블랙 오락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섯 미니미가 으쓱으쓱하며 손을 흔들었다.
멤버들을 귀엽게 형상화한 미니미들을 보며 수플레들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오락실.
거기에 ‘뉴블랙’이라는 단어가 붙으니 심상치가 않다.
‘로그인부터 하라고 하네…….’
팬클럽 인증을 해 달라는 팝업창에 인증을 하고 나자, 닉네임 입력창이 눈앞에서 깜빡였다.
파앗!
[환영합니다.]
[닉네임을 입력해 주세요!]
‘신밧드의보험’을 닉네임으로 정하자, 파아아앗! 하는 빛이 뜨더니 미니미의 실루엣이 보였다.
반짝반짝!
SSR급 캐릭터를 뽑은 듯한 이펙트.
‘규호인가…!’
애석하게도 눈앞에 등장한 것은 최애들이었다.
[안녕!]
[이건 우리의 선물이야!]
미니미들이 손을 뻗으면서 코인이 슈우웅 날아왔다.
곧바로 우측 상단에 표시된 ‘무한대(∞)’ 코인.
깜빡이는 코인들을 바라보던 수플레가 화면 가운데로 시선을 옮겼다.
[1. 중현이와 함께 춤을]
[2. ???]
[3. ???]
왼쪽부터 다섯 개의 슬롯이 있었다.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맨 왼쪽 하나.
‘……뭐지?’
상단에 있는 [도움말] 아이콘을 클릭하자 자세한 설명이 나왔다.
‘앨범 프로모션이구나.’
다음 앨범을 홍보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매주 전자오락 컨셉의 게임을 하나씩 공개하는데, 총 5주치의 게임 모두를 클리어하면 소정의 보상이 있다나.
게임 하나를 클리어할 때마다 예쁜 실물 배지를 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5개 모두를 클리어하면 5개의 마스터 배지가 모이도록.
‘누굴 애로 알고 있나.’
고작 이런 배지 같은 걸로 유혹할 생각이었다면.
‘개똑똑하다. 레몬.’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벌써부터 배지 5개를 모아 인피니티 스톤처럼 끼고 다닐 생각에 가슴이 덕순덕순해진다.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굿즈.
벌써부터 동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호호호. 영애는 5개를 모두 모았군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우리 신밧드의 보험 영애는 몇 개를 모으셨나요? 오호호호!
-요즘 수플레 킹덤 사교계의 화두는 배지 아니겠어요? 호호.
물론 실제 모습은 그와 거리가 있긴 하겠지만… 아무튼 덕심이 불타오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정규 2집 쇼케이스의 추첨은 다섯 개의 게임 모두에 참여한 팬들을 대상으로 이뤄집니다.]
클리어를 하거나 점수가 높으면 추첨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은 없었지만, 저절로 의욕이 샘솟았다.
특히나 저번 도깨비 보물찾기에 참여하지 못한 수플레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쩌면 이번에 될 수도 있다는 희망.
저번에 팬들에게서 나온 원망을 피드백했던 것인지, 레몬 엔터에서 쇼케이스 참석자를 팬들로 제한한 듯했다.
수플레들끼리 추첨하는 것이면 그래도 희망을 걸어 볼 만했다.
‘자. 그럼 한 번 춤을 춰 보자. 중현아.’
[중현이와 함께 춤을]이란 게임을 누르자, 간단한 안내 문구가 나왔다.
쉽게 말해 리듬 게임이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화살표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위, 아래, 좌, 우의 화살표를 누르는 방식.
‘신밧드의 보험’이 손가락을 뚜둑 꺾었다.
“아아아……!”
아픈 손가락을 문지르면서 [Start]를 클릭했다.
[ Stage 1 : 불꽃놀이 ]
청량한 도입부와 함께 하늘에 떠 있는 5인조가 화살표를 아래로 쏙쏙 던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담당하는 화살표가 있었다.
예컨대 우주는 우측(→) 화살표를 던지고, 가운데서 중현이 춤을 추며 아래(↓) 화살표를 떨궜다.
‘쉽네.’
수플레가 키보드를 눌렀다.
좌우좌좌좌위위아래.
떨어지는 순서대로 화살표를 누르고 있을 때였다.
‘어?’
갑자기 중현이가 춤을 2배속으로 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패턴을 그리고 있던 화살표가 어그러졌다. 우주와 비주도 2배속으로 화살표를 표창처럼 던지더니.
‘아니. 리혁아!’
미니미 리혁이 속도 조절에 실패해서 어어어! 하다가 화살표 바구니를 우수수 쏟았다.
헷갈린 막내는 엉뚱한 화살표를 던지고.
화가 난 리혁이 춤을 추고 있는 중현의 멱살을 잡으면서 여기저기 화살표가 엉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으아아아!”
결국에 손가락이 엉키다가 스테이지 1에서 광탈했다.
검은 화면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팬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왜 이딴 데서까지 애들 현실 고증을 하는 건데…….’
덕분에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폭발해 버렸다.
처음에는 어쩌려고 클리어하면 배지를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건지, 배지 만들다가 레몬 엔터 예산이 동날 텐데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규호에게 큰 그림이 있던 거였다.
“후우우우우…….”
긴 숨을 토해 낸 수플레가 다시 한번 재도전을 하려고 리듬 게임을 클릭할 때였다.
“어?”
버버벅 하던 창이 꺼졌다.
재접속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먹통이었다.
머글들인가! 하면서 자동적으로 머글들을 원망할 준비를 하던 수플레가 멈칫했다.
‘맞다. 여기 팬들만 쓸 수 있지.’
닉네임 ‘신밧드의 보험’이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100페이지 실화냐…?”
뉴블랙 게임에 관해 벌써부터 글이 100페이지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지금 사이트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있는 주범들은 바로 전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는 수플레들이었다.
저마다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길이 꽉 막혀 있는 사이트.
“…….”
한 판 하고 끝나 버린 게임에 수플레가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 * *
뉴블랙의 아랫집에 살고 있는 미소년들에게는 취미가 하나 있었다.
팬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에 몰래 염탐을 가서는, 팬들이 걸쭉하게 욕을 할 때마다 허어어! 하면서 좋아하는.
만약 그들이 보았다면 몹시도 좋아했을 장면이 수플레 커뮤니티에 퍼져 있었다.
-시발
-아니 뭐 난이도가 이런 건데
-난이도 어려우니 무한대 코인 주자고 기획한 놈 누구야 나와
-하향을 하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해킹하는 게 더 빠를거 같은디???
-어나니머스 섭외하러 갑니다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
-(게임을 플레이했다는 일본 팬이 트위터에서 ‘시발’ 하는 한국어를 남긴 짤.jpg)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수플레들이 통곡했다.
‘배지 한 번 따기 힘드네.’
도깨비까지 총 8개의 타이틀곡으로 구성된 리듬 게임의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물론 난이도에 대한 불평일 뿐.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호평이었다.
-근데 좀 재미있긴 하다ㅋㅋㅋㅋㅋㅋ
-제작진의 의도: 재미있게 플레이하는 것 / 팬들 : 닥치고 배지 줘ㅠㅠㅠㅠ
-배지ㅠㅠㅠㅠㅠ
-빡치려다가도 중간에 피식해서 자존심 상함ㅋㅋㅋㅋ
-미니미들이 신의 한 수였다
-나는 그냥 재미있게 하고 있는데..ㅋㅋㅋㅋ 다들 게임에 진심인 한국인들ㅋㅋㅋㅋ
-아 근데 왜 평소보다 어렵지???
게다가 저번에 나왔던 뉴카데미보다는 훨씬 쉬웠다.
‘뉴카데미는 장난 아니었지.’
조금만 선택지를 잘못 고르면 흑염소로 변신하고, 감옥에 갇히는 극악의 선택지 게임이 아니었던가.
그것에 비하면 리듬 게임은 쉬운 편이었다.
변칙성이 있긴 했지만 계속해서 같은 패턴이 반복되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렵다고 느끼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은 수플레들이 평소처럼 게임 사이트나 다른 커뮤에 접속하고는 아차 했다.
뉴블랙 게임 공략을 검색하는데 뜨는 게 없다.
“어……?”
그제야 찾아오는 큰 깨달음.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느낌이었다.
‘없다! 머글들이 없어…!’
이번에는 기획사의 배려로 특별히 팬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컨텐츠.
아무나 참여할 수 있었던 뉴카데미 때와는 달리 수플레들끼리만 공략을 만들어야 했다.
팬들 모두가 막막한 기분을 느꼈다.
-머글의 소중함이 이런 거구나..
-머글이 없으면 이제 공략은 누가 만드나
-허전하다ㅠ
-어쩌면 일반인의 소중함을 깨달으라는 의미에서 준비한 게임이 아니었을까
-평소처럼 공략 검색하는데 나오는 게 없넹
-아니 세상에 뭔 아이돌 팬덤이 머글이 없다고 허전해하냐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게 나임 시발
-돌아와 줘 머글들아ㅠㅠㅠ
하지만 궁여지책이라는 말이 있듯이 평소에 머글들로부터 공략을 받아먹었던 수플레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게임의 꿀팁들이 하나씩 발굴됐다.
-이거 리혁이 파트에서 리혁이 미니미 토닥토닥 클릭해 주면 리혁이가 부끄러워서 화살표를 못 날림
-리혁이랑 지호 사이 공간 계속 클릭해 주면 자기들끼리 싸움붙음ㅇㅇ 개꿀
-낙화에서 우주 3페이즈에 대처하는 방법 찾았다..!
-비주가 같이 춤추기 시작할때는 뭐 해야돼??
-아 그건 그냥 개망한 거
-비주 춤추는 거 랜덤이라 걍 다음판 가야됨ㅠ
-저기,, 미안한데 다들 이거 게임이라고 말머리좀 붙여 줘ㅠㅠ 들어왔는데 중현이 미간 문지르라고해서 식겁했다
-(희희낙락한 얼굴로 피자를 배달하던 인물이 불타고 있는 방을 보고 놀라는 짤.gif)
그래도 수플레들의 집단지성이 합쳐지면서 게임을 클리어했다는 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공략법을 암기해서 집요하게 배지를 획득한 후발주자들까지.
곧이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갓겜
-트루 갓겜이다
-감동도 재미도 주는 갓게뮤ㅠㅠ
-야 너무 좋았다
-배지도 뭐 주면 받지 뭐ㅎㅎㅎ
내가 지면 망겜이고 내가 이기면 갓겜이었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플레이한 수플레들의 머릿속에 전자오락 BGM이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리듬 게임에 사용된 뉴블랙의 타이틀곡들이 전자오락처럼 변주되어 나와 그런 걸까.
다음 타이틀 컨셉이 확 와닿았다.
동시에 Coin이라는 타이틀이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상상이 가면서 기대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분명 대박이다.’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기대하고 있을 때.
‘음?’
1주 차 게임을 클리어한 수플레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해외 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처럼 해외 팬들 우는 걸 구경하기 위해 움직인 본진의 수플레들이 의아함을 느꼈다.
‘왜 울지?’
외국인 팬들이 게임이 어렵다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걸 일주일만에 어떻게 클리어하라는 거지?
-클리어 기간이 일주일이라는 게, Uh.. 한국에서는 일주일이란 시간 개념이 좀 다른건가
-아무도 나에게 난이도가 Korean이란 건 말해 주지 않았어
-친애하는 Lemon의 직원들이여. 당신네 나라가 디아블로를 6시간 만에 죽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Me: 게임이 어렵습니다. / Lemon : 그렇습니다. / Me: 게임이 어렵습니다!! / Lemon: 그렇습니다!!
-한국인 트친들이 내게 이 게임이 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망했음을 직감해 버렸다.
난이도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거 아니냐며 울부짖는 이들의 모습에 다들 훈훈하게 웃을 때였다.
‘어?’
무언가 이상한 점이 보였다.
분명히 팬클럽 가입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이벤트 사이트인데. 해외 팬들이 바글바글했다.
‘…대체 언제 가입한 거지?’
게다가 외국인 팬들 중에는 꼬꼬마들까지 끼어서 으이잉 하며 속상해하는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가입은 또 언제 했고?’
그리고.
‘왜… 왜 이렇게 많은 건데?’
바글바글한 인파를 본 본진의 수플레들이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수십만의 뒷걸음질이었다.
* * *
“허어어어어!”
“왜 그래?”
“이거 봐요. 벌써부터 클리어한 팬들이 이렇게 나오고 있어요.”
막내가 보여 준 핸드폰 화면에 랭킹이 표시되어 있었다. 1위부터 99위까지 전원 태극기로 표시되어 있는 점수표.
“뭐야. 만점…이 나오네?”
우리가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만점 절대 안 나온다며.”
“99만 분의 1이라고 했지. 안 나온다고는 안 했어요. 말은 똑바로 해야죠. 내가 언제…….”
리혁이를 제외한 우리 4인조가 핸드폰 녹음을 재생시켰다.
-만점 절대 나올 수가 없다니까요. 이거 만점 나오면 내가 손에다가 토끼 그린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잡아.”
“으아아아아! 매직으로 쓰지 마요. 이거 완전 몸에 안 좋은 거란 말이야!”
“약속은 지켜야지.”
그래서 자그마하게 앙증맞은 토끼를 하나 그려 줬다.
“…….”
처음에는 인상을 잔뜩 쓰더니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가 안 보는 척할 때 핸드폰으로 자기 손을 찍는 리혁이었다.
그동안 다시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다들 엄청 잘하네.”
“그러니까요.”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만 해도 우리 이거 누가 클리어 하냐고 막 그랬잖아요. 그래서 난이도 조정 실패한 거 아니냐고 했는데…….”
“우리가 수플레들을 너무 우습게 봤어.”
보란 듯이 강해져서 돌아온 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팬들 사이에서 돌아오는 반응을 보니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이벤트가 진행 중인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리 준비되었던 게임을 내보내는 그런 기획이었다.
나중에 팬 이벤트 등으로 쓰려고 제작해 둔 미니 게임들을 프로모션으로 공개하는 것.
마침 전자오락이라는 앨범 컨셉에 맞아 적절한 시너지를 내는 분위기였다.
“수월하구만.”
이벤트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고, 앨범 작업도 수월하다.
일의 사이즈가 커진 만큼 믿음직한 프로듀서를 하나 구해서 책임과 권한을 분산하라는 조규환 이사님의 조언은 참으로 옳았다.
“중현아.”
“네.”
“이사님 모닝콜 해 드릴 시간이야.”
“네, 형.”
중현이가 조심스럽게 작업실 소파에 널브러진 사람 형체를 향해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흐어억!”
꿈에서 악몽에 시달렸는지 코트를 덮은 채 자고 있던 이사님의 눈빛이 겁에 질려 있었다.
이내 현실인 것을 깨닫고 안도하시더니.
“안녕하세요! 이사님!”
“…….”
“이사님?”
“어으으…….”
우리를 보고 다시 안색이 안 좋게 변하셨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 봐요.”
“응.”
“혹시 저희가 나왔나요?”
“잘 알고 있구나….”
“이쯤 되면 눈치챌 때가 되긴 했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사님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규환 이사님의 티벳 여우 같은 얼굴이 피곤에 절어 있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체력이 옛날 같지가 않네. 예전에는 이 정도도 끄떡없었는데.”
“이사님 30대 아니셨나요….”
“곧 30대 후반이지.”
그렇게 정정하던 이사님이 내게 말했다.
“우주야. 사람이 30대에 접어들면 말이야.”
“네.”
“훅 가.”
“…….”
“마르지 않는 젊음의 샘물이 말라 가는 게 느껴지거든. 아마 너희도 언젠가 30대가 되면 알…….”
알 거라고 말을 하려던 이사님과 중현이의 푸근한 눈망울이 마주쳤다.
이사님이 시선을 외면했다.
“아닐 수도 있고.”
우리와 같이 웃음을 터뜨리던 이사님이 이윽고 진지한 눈으로 Coin 작업을 함께 했다.
아무래도 원조 유명 작곡가여서 그런 걸까.
나상윤 PD님을 비롯해서 정말 유능한 작곡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이사님은 정말 최고긴 했다.
워낙에 바쁘고 업무가 많으신 분이라 평소에 이런 세세한 작업까지 함께 할 기회가 없을 뿐.
“이사님.”
“응?”
“저희가 꼭 돈방석에 앉혀 드릴게요.”
“음? 이미 앉아 있는데.”
“그럼 두 겹으로요.”
굉장히 진지하게 말한 건데, 뭐가 웃겼는지 이사님이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이사님의 합류로 속도가 붙은 앨범 작업과 함께 2월이 빠르게 흘러갔다.
-뉴블랙, 2017 라온차트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음원 부문 최다 수상.. “월간 뉴블랙이냐”
-뉴블랙, 한국 대중음악상 수상..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음악인 동시 수상.. ‘보이그룹 최초’
-뉴블랙 우주, 올해의 노래 ‘낙화’ 소감..“정말 영광.. 오늘의 기쁨을 담아 곡 작업을 하겠다”
2월 말에 있던 어워드들에서도 여러 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한국 대중음악상에서도 상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깊은 상이었다.
문화체육부에서 후원하는 대중음악상은 오로지 작품성만을 심사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수상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편이다.
정말 마이너한 노래도 작품성에 따라 대상을 받기도 하고.
음악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하는 시상식에서 ‘낙화’가 수상했다는 것은 내게 큰 의미였다.
“그러니까 내가 빠져도 되지 않을까?”
“안 돼요. 이사님.”
“….”
상업 음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다는 건 창작자로서 정말 큰 행복이니까.
특히나 보이그룹 최초 수상.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2월을 앨범 작업과 시상식으로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어워드 참석 준비를 하고 있을 때.
“…….”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깥소식이 들려왔다.
-TNT 멤버 2인 재계약 불발.. 사실상 해체로 가나
바로 오랜 친구들에 대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