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7화
키즈 초이스 참석을 앞두고 영어 멘트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형.”
“응?”
“기사 봤어요?”
“무슨 기사…?”
비주가 손을 꼬물거리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내 친구들에 관한 일이라 그런지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비주에게 웃으며 말했다.
“봤어.”
“어차피 형도 보게 될 것 같아서요. 기왕이면 빨리 알려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고마워.”
신경 써 주는 동생에게 눈을 찡긋 하며 웃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내 핸드폰에도 비주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기사가 떠 있었다.
음.
솔직히 말해서 뭔가 묘한 기분이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데 뭔가 현실감 없이 다가오는 소식이라고 할까.
불현듯이 7년 전 기억이 난다.
-형! 우리 그룹명 정해졌대. 이거 봐봐.
-TNT? 폭탄이야?
-The Next GeneraTion 이거라던데?
-아닐걸. The Next Trend 라고 그러던데. 태준쓰가 제2의 트렌드를 만들어 보겠다고 뭐 어쩌구 그런다더라.
-태현아. 너 내가 말조심 좀 하라고… 아니. 회장님 이름을 그렇게 부르면…….
한때 내가 데뷔조에 참여했던 그룹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 같이 연습생이었던 형이나 동생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잠시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드는 느낌.
물론 예기치 못한 소식은 아니었다.
태현이나 한빈이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분위기를 전해 들었으니까.
‘회사에서도 이미 방향을 잡았어. 그룹은 유지하되 각자 개인 활동 위주로 가고, 어차피 지금은 트릭스터 키우느라 바쁘거든.’
신인 보이그룹 트릭스터를 띄우는 데 회사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 있다나.
나머지 TNT 멤버들은 각자 개별 솔로 활동을 하는 식으로 갈 거라고 했다. 당장 구선웅만 해도 내년도에 군대를 가야 하니까.
태현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계륵 같은 거지. 그룹 성적은 예전만큼 안 나오는데, 개인으로 돌리면 돈이 잘 벌리니까.’
데뷔 초부터 TJ 엔터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개인팬을 경쟁시키는 분위기를 은근하게 조장했다고 그러던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패착이 됐다는 모양이었다.
뭐.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것 같은데, 이제 외부인인 입장에서는 단편적인 정보만 알 뿐이었다.
-TNT 석지훈, 장한별 재계약 불발.. “TNT가 끝난 것은 아냐”
재계약 불발의 대상은 지훈이와 한별이었다.
지훈이는 아마 연기 때문에 배우들을 키우는 다른 기획사로 간 걸로 안다. 배우 업계 1위 기획사였던가.
‘회사에서 영 시큰둥해. 내가 아이돌일 때나 시장성이 있지, 너만 한 배우는 차고 넘친다 이거지.’
배우 활동을 지원해 주겠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막상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가 안 나오니 미적지근하다나.
한별이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삶이 피곤했던지 고민 끝에 재계약을 안 하는 걸로 정했다고 들었다.
‘미국 가서 좀 쉴 거야. 부모님이랑 시간도 보내고.’
시카고에 살고 있는 부모님 댁에 가서 당분간 시간을 보낼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체는 아니긴 하다.
그룹을 유지한다고 밝혔으니까.
하지만 ‘짜잔, 저희가 완전체 앨범을 냈습니다~’ 하고 1, 2년에 한 번 스페셜 앨범 정도만 나올 분위기라 사실상 해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 이제 활동은 어떻게 하는 거래요?”
막내의 물음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다. 아마 태현이는 솔로로 전향할 거고, 나머지도 각자 자기 길로 가는 거지. 뭐.”
“뭔가 느낌이 이상해요.”
“나도.”
중현이도 뺨을 긁적였다.
막 데뷔했을 때, 우리가 눈도 못 마주칠 만큼 높은 위치에 있었던 탑 그룹이라 그런 것 같다.
썸씽 때 마주친 이후로 불과 3년밖에 안 지났는데.
“다들 잘 되기만을 바라야지.”
한때 같은 그룹이 될 뻔했던 동료들의 미래에 행운을 빌었다.
“…….”
그러고는 눈앞에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휴게실 소파에 드러누워서 영어 멘트를 암기하는 척하며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막내.
오탈자 점검을 하면서 영작문을 하는 리혁이.
멘트 한 번에 과자 한 주먹하고 있는 중현이와 성실하게 멘트를 암기하고 있는 비주까지.
얘네랑 흩어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으음.”
원래 지나온 길에 미련을 안 두는 성격이긴 했다.
지나간 사람들은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챙기자는 주의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는 뭐라고 할까.
햇수로 4년 정도밖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할머니 이후로 이런 유대감을 느껴 본 건 처음이라 이상하다. 어딜 가든 같이 데려가야 할 것 같고, 좋은 거 보면 알려 주고 싶고.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형.”
성실하게 멘트를 암기하고 있던 비주가 펜을 끼적이며 말했다.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해요.”
“무슨 상상?”
“10년 뒤에 우리가 뉴블랙 타운을 만들어서, 같은 단지 안에 있는 집 다섯 채에 각자 살고 있는 거예요.”
50년 뒤에는 뉴실버 타운으로 바꿀 거라는 비주의 원대한 계획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 우리 그렇게 살자.”
“근데 그러면 저는 평생 막내로 살아야 돼요?”
막내의 물음에 우리가 동시에 답했다.
“응.”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지호는 평생 우리 막내지.”
“싫으면 형이라고 불러 줄 수도 있는데.”
울상을 하던 막내가 내 마지막 말에 평생 막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TNT 소식을 접하면서 얘네도 흠칫하긴 했던 모양이다.
원래 끝이란 게 그렇다.
평생 그 끝이라는 게 안 다가올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가오게 되는 것이 바로 끝이다.
평상시에는 엔딩이 안 찾아올 것처럼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내게도 언젠가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할까.
끝이 다가온다는 것은 내 손으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오래오래 같이 있어야지, 우리.”
끝을 오랫동안 유예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스친 것 같다.
내 말에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는 무덤에서 하는 거예요.”
“…….”
“아닌가?”
비주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디너쇼 정도로 타협하자.”
“디너쇼 좋네요.”
잡담을 나누면서 다시금 영어 대본을 바라보다가, 옆에 놓인 노래 가사지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여기는 특별할까 했는데.
지금까지 많은 노래를 쓰고 부르면서 멤버들, 팬들과 무언가 끈 같은 걸로 함께 묶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사지로 시선을 돌렸다.
올해 봄에 열리는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선정한 비주의 곡 ‘경우의 수.’
그 가사지에 후렴구를 추가했다.
Forever ever ever
Ever-after
영원히.
아주 오래 영원히.
* * *
3월 둘째 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만큼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Coin을 비롯해 수록곡 작업 대다수가 원만하게 끝났고.
“이사님?”
“…….”
“이사님. 눈을 떠 보세요. 괜찮으세요?”
“……끄르륵.”
“다행이다. 안 움직이셔서 깜짝 놀랐어요.”
“끄륵.”
이제 남은 것은 연습이었다.
국내 최고 안무가인 한아윤 안무가님에게서 받아 온 안무로 매일매일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이제 여기서 뮤비를 찍고, 컨셉 포토까지 찍으면 컴백 준비 완료.
“우주 형.”
“…….”
“우주 형. 정신 차려요. 제 말 들려요?”
“끄으…….”
“다행이다. 살아 있네요. 형.”
“끄으으으…….”
우리 메인 댄서와 함께 즐거운 연습을 하면서 거울 치료(?)를 하기도 했다. 이사님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고.
어찌나 연습이 즐거운지 연습하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치 헬스 트레이너가 옆에서 좀만 더! 좀만! 하고 있는데 눈앞의 시야가 하얗게 변하면서 헛구역질이 나오는 그런 기분.
그래서 그런 걸까.
“와! 해외 나간다! 해외!”
“우와아아아…!”
중간에 해외로 나가는 스케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할 때도 밀려오는 인파들이 반가울 정도였다.
“자! 자! 공간 만들어 주세요!”
인천공항 출국장 3층.
취재진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그 뒤로 구경하는 사람들과 팬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우리 로드 매니저들이 긴장한 얼굴로 보안업체 직원들과 주변을 주시하는 가운데 마이크들이 주어졌다.
출국 전에 하는 간이 인터뷰였다.
“네, 연예IN의 오소희 기자입니다. 뉴블랙 분들이 이번에 미국 어워드에 첫 공식 초청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아직 좀 얼떨떨하네요.”
오 기자님에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린이들의 투표로 상을 주는 시상식이라고 하던데… 저희가 어쩌다가 초청을 받은 것인지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좋습니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초청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어서 기자들이 햇님반 어린이들처럼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었다.
삐딱한 표정의 기자들은 거르고.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할 때, 중현이가 눈빛으로 신호를 전해 왔다.
‘저 기자 분 예감이 좋아요.’
‘오케이.’
바로 거르고 다른 기자 분을 골랐다.
이상한 기사를 쓰는 사람들의 얼굴은 다 기억하고 있어서 질문자를 고르는 일은 쉬웠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저희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공항에 있는 시민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었고요. 아마 저희가 뉴블랙 TV에 올리는 어린이 컨텐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표정이 안 좋은 기자들도 지목했다.
질문을 안 시켜 주면 안 시켜 줬다고 더 삐딱선을 타는 게 언론이었다.
“이번에 미국의 메이저한 시상식에 첫 초청을 받은 셈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해석) 문화 사대주의로 기가 막히게 엮어서 좀 까 보겠다.
내가 웃으면서 다른 말하기를 시전하려고 할 때였다.
시민들이 진짜배기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우우우!”
해석) 꺼져라.
그 뒤로는 이상한 질문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중에 국민 아이돌이 되어서 뭐가 좋았냐고 주변에서 물어보면 언론이 친절해지더라 라고 답해야지.
막내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당~!”
“얘들아, 잘 다녀와!”
“네!”
모르는 사람들과 찐한 우정의 눈빛을 교환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환송을 받아서 그런지 비행기 탑승한 후에도 기분이 좋다.
“그래도 인터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이거 꽤 큰 행사였구나.”
“크죠.”
내 옆에 앉은 리혁이가 목베개를 비롯해 좌석 세팅을 해 주면서 말했다.
“내가 미국에 살았을 때도 가끔 소식 듣고 그런 시상식이에요. 뭐, 오스카나 그래미 정도는 아니지만 은근 메이저하거든요. 취재진이 인터뷰하러 나올 만하긴 해요.”
키즈 초이스 어워드.
미국에는 이런 초이스 어워드가 3개가 있다고 들었다. 피플스 초이스, 틴 초이스, 키즈 초이스.
이번에 우리를 초청한 곳이 바로 어린이들이 투표하는 키즈 초이스.
상 자체로만 보면 그렇게 어마어마하거나 의미 있는 시상식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들한테는 중요하거든.’
그 진짜 의미는 바로 기업들에게 있다고 했다.
틴 초이스나 키즈 초이스에서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 기업들에게 중요하다나. 매년 이런 초이스 어워드들을 하는 시즌이 되면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본다고 들었다.
얘네가 초등학생한테 인기가 있다? 그러면 초등학생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나 마케팅에 적합하겠구나 이런 식으로.
내게 담요를 덮어 주던 중현이가 말했다.
“저는 그거 꼭 맞아보고 싶어요. 형.”
“슬라임?”
“네.”
지난번에도 석환 형으로부터 설명을 한 번 듣긴 했는데, 여기에는 독특한 문화가 하나 있다.
수상 소감을 하거나 멘트를 하고 있는 연예인에게 푸확! 하고 초록색 액체를 끼얹는 것.
‘List of slimed celebrity’라는 명단이 따로 있을 만큼 이 행사의 대목이라고 들었다. 미국 애기들이 이런 슬라임 맞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너무 좋아한다고 그러던데.
안타깝게도 아무에게나 뿌려 주는 건 아니었다.
“중현아. 너의 예감이 어떠니?”
“좋아요.”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맞겠구나.’
‘이거 맞겠네.’
미리 로션이라도 좀 바르고 그래야 되나.
* * *
LA 게일런 센터(Galen Center).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이 소유하고, 대학 농구팀의 홈구장으로 쓰이는 이곳은 지금 시상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좌석에는 맨디 스파이스 등 유명인들의 이름표가 붙고, 음향 장비와 조명을 점검하는 이들이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The New Black]
다른 유명인들의 자리 옆으로 5인조의 흑백 사진이 인쇄된 이름표가 붙었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동료를 불렀다.
“데이빗!”
“왜?”
“이거 인원수 좀 봐볼래. 여기 뉴블랙이라는 사람들 말이야. 다섯 명 맞지?”
“명단에는 그렇던데.”
“사진에서 4명밖에 안 보여서.”
동료도 와서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두 미국인의 눈에 4인조 가운데 끼어 있는 이가 보였다.
푸근하고 잘생긴 얼굴이 멤버들 가운데 쏘옥 숨어 있다.
“여기 있었네.”
“5인조 맞구나. 왜 숨어 있지?”
“낸들 아냐.”
그 말을 하던 동료가 물었다.
“그런데 뉴블랙이 누구야?”
“그러게.”
“주변에 물어봐도 다들 누군지 잘 모른대. 근데 자리는 제일 좋은 데 있고.”
“윗대가리들이 뭐 알아서 했겠지.”
자리 배치 때문에 더욱더 의문이 증폭됐다.
맨디 스파이스야 10대들로부터 인스타 최고 팔로워를 자랑하고 있는 인물이고. 꽃미남 5인조 밴드로 얼마 전에 데뷔한 오션 파이브도 어린이들한테 인기 폭발이다.
헤일리 블루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왜 이 사람들 사이에 ‘뉴블랙’이라는 처음 듣는 가수가 끼어 있는 걸까.
‘누구지?’
미국인들의 시선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한국으로 치면 이견우, 틴스피릿, 그리고 세르히오 곤살레스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뉴블랙이 누구야?”
“뉴블랙이 누구인데 저렇게 자리 배치를 하지?”
“뉴블랙?”
토크쇼 등에 두 번 출연하면서 공식적인 데뷔를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다들 잘 모르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사진을 보면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Blue Moon 등의 뮤직 비디오를 기억하거나 저번 토크쇼의 소란을 기억하는 이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는 ‘뉴블랙이 뭔데요’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까지 궁금해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모여 있는 사람들 뭔데.’
‘어린이 제국이라도 세우려는 건가.’
‘애기들이 무슨 스톰 트루퍼처럼 모여 있네.’
스타워즈에 나오는 병졸들처럼 뉴블랙 로고가 그려진 검은 티셔츠를 입은 꼬마들이 한가득이다.
게일런 센터 주변을 메우고 있는 수백여 명의 어린이들과 수천여 명의 어른이들.
뭔가 자신들의 가수를 보고 기 죽지 말라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한 것 같은데…….
“Damn.”
직원 중 하나가 인파를 보고 말했다.
“쟤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상을 탔으면 좋겠네.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직원들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뉴블랙이 누구야?’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웬 거대한 인파가 ‘뉴블랙!’ 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이들이 저마다 ‘누구인지 알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자기만 모르고 있는 깜짝 카메라 같은 느낌.
“네! 이곳은 게일런 센터! 지금 여러분은 키즈 초이스 역사상 최대 인파를 보고 계십니다!”
“다들 뉴블랙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요.”
어린이 리포터들이 카메라 앞에서 상황을 중계했다.
팬들의 흥분한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는 한편, 그 인파 속에서 숨어 있는 9살 루시가 눈을 빛냈다.
‘어떡해. 어떡해.’
소녀의 눈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진짜 뉴블랙이야. 나 어쩌면 좋아.’
뉴블랙에게 건네줄 꽃과 편지를 준비해서 품에 꼬옥 안았다. 그러고는 아빠엄마 손도 한 번 꼭 잡고.
주변의 다른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숨을 가쁘게 쉬었다.
내심 머리카락을 슥슥 귓가로 넘기기도 하고. 예쁘게 입은 원피스를 정돈하고 발을 쫑긋쫑긋할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멀찍이서부터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리무진 한 대가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오는데 다들 환호하는 것을 보니 뉴블랙인 모양이었다.
‘어떡해!’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터질 것만 같다.
뉴블랙을 실물로 본다는 생각에 얼굴이 후끈해지면서 홍조가 돌았다.
그리고.
탁.
리무진의 문이 열리는 그 순간.
‘아.’
눈물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야.’
길쭉한 다리와 함께 멋진 수트를 차려입은 5인조가 하나둘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다.
현장에서 환호성이 폭발했다.
중계 카메라를 든 이들이 움찔할 정도.
“와아아아아아아!”
조금은 어색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뉴블랙의 모습이 뿌옇게 보인다.
잘생겼다.
너무 잘생겼다.
실물로 보니까 이백 배, 아니 이천 배로 더 잘생겼다. 막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레드 카펫을 걸으면서 줄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 주거나 사진을 찍어 주는 뉴블랙 멤버들.
“아빠! 아빠! 아빠!”
“응.”
다시 아빠한테서 건네받은 편지와 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혼란스럽게 여기저기 밀쳐지고 그러는 행사장.
누군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어른들 틈바귀에 끼어 있던 루시가 넘어졌다.
‘어?’
그리고 떨어진 꽃을 누군가의 운동화가…….
‘안 돼!’
즈려밟아 버렸다.
‘…….’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거무죽죽한 자국이 묻은 꽃을 보면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하고, 인생이 서럽고.
하루아침에 온 세상이 무너진 기분을 느낄 때였다.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괜찮니?”
“……어?”
“넘어진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 보니 세상에서 제일 곱상한 미남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애인 비주였다!
순식간에 눈물도 멈추고 멍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볼 때.
“안녕.”
다정하게 웃던 비주가 바닥에 떨어진 꽃을 탁탁 털었다. 그러더니 수트 가슴 포켓에 꽂았다.
곧바로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꽃, 내가 받아가도 될까?”
“……네!”
온 세상의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었다.
쓰러질 것 같았지만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미소년을 바라보았다.
다른 세상 사람 같던 미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꿀꺽.
“여긴 어디니?”
“…….”
“나 대체 어디로 온 거지…….”
9살 소녀가 인생 최초로 만난 최애는 현재 레드카펫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