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8)화 (60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08화

“와아아아아아아—!”

환호하는 수플레들에게 다가가 손을 맞잡거나 사인을 해 주면서 길을 헤쳐 나갔다.

환히 웃는 얼굴들이 눈앞을 스쳐 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주 선! 우주 선!」

「여기! 여기 사인……!」

「미쳤다. 진짜 뉴블랙이야.」

나를 향해 환호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얼떨떨했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 많은 팬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어린이 팬들이 떼로 나타나 환호하는 건 처음이다.

솔직히 이쯤 돼서 미국 코미디언이 나타나 ‘짜잔! 깜짝 카메라였습니다!’ 라고 해도 이해해 줄 용의가 있었다.

“휴우.”

어린이들로 가득한 레드… 아니, 오렌지 카펫을 간신히 지나쳤다.

막내가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뭐야, 왜 오렌지 카펫이라고 그러지 했는데 진짜 오렌지였네요. 완전 찐한 오렌지 색깔.”

행사 일정에 ‘오렌지 카펫 행사’라고 적혀 있어서 뭔가 했는데 진짜 카펫이 오렌지 색깔이었다. 키즈 초이스만의 특징이라나.

포토월로 가기 전에 석환 형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휴우. 다들 길은 안 잃었지? 확인 좀 하자.”

“우!”

“중!”

“리!”

“호!”

하나씩 이름을 외치고 있는데 우, 다음에 바로 나와야 하는 ‘비’가 빠져 있었다.

“…….”

“…….”

설마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사라질 줄은 몰랐다.

리혁이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내가 이래서 한 명이 마크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랬는데 다들 뭐라고 했어요? 이 작은 곳에서 절대 길을 잃을 수가 없다고….”

“설마 여기서까지 그럴 줄은 몰랐지.”

“영화관에서 간식 사러 갔다가 다른 관으로 들어가는 형이에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비주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물결치고 있는 곳을 금세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플레들이 인(人)의 장막을 펼치고 있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꾸물꾸물 애벌레처럼 움직이더니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아악-

주변 카메라의 조명들 때문인지 환한 빛을 배경으로 누군가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주야!”

“비주 형!”

익숙한 실루엣에 안도의 숨을 내쉬려고 할 때였다.

빛에 눈이 적응하면서, 수플레들 틈바귀에 있던 비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

웬 산더미가 걸어 다니네.

양손을 큼지막하게 안아 든 비주의 품에 온갖 선물들이 모여 있었다.

꽃다발, 초콜릿, 편지, 자그마한 상자 등등.

자기 키만 한 물건들을 들고 있는 둘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살짝 수줍은 미소가 보였다.

“거절할 수가 없어서…….”

“…….”

주변에서 반짝반짝 터지기 시작하는 플래시.

기우뚱 하면서도 물건들을 용케 품에 안고 있는 비주와 우리의 모습이 사진에 담기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한국의 아이돌 커뮤니티.

[실시간 키즈 초이스 어워드 레드카펫]

(드라마의 남주와 여주가 운명적으로 만나듯 물건을 산더미처럼 든 비주와 4블랙이 눈을 마주치는 사진.jp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간 수목드라마 로코 재질

-아 별것도 아닌ㄴ데 왜일케 웃곀ㅋㅋㅋㅋㅋㅋ

-저게 무슨 상황일까

-이거면 너희와의 우정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 더 가져오세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주는 왜 선물 꾸러미 들고 있는 건데

-주변 팬들 박수 왜 쳐줌ㅋㅋㅋㅋㅋ

-저기 비주 옆에 어린이팬 귀엽다ㅋㅋㅋ 되게 뿌듯해하고 있어

-뉴블랙맛 좀봐라 양놈들ㅋㅋㅋ 이제부턴 웃지 않을 수가 없을 것

레드 카펫 행사부터 한결같이 웃음을 주고 있는 최애의 모습에 몹시 흡족했다.

수플레들이 라이브 스트리밍 주소를 찾아서 이동하거나 SNS 등에서 올라오는 실시간 사진 등을 확인할 때.

‘허… 뭐야. 귀여워.’

오늘 계를 탔다는 한 어린이 팬의 사진도 올라왔다.

엄마 아빠와 함께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뉴블랙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진이었다.

-애기 귀여워ㅠㅠㅠ

-저거 영상 버전으로 보면 더 귀여워ㅋㅋㅋㅋ 오늘! 제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이러면서 막 좋아서 혼절하고

-근데 왜 같이 사진 찍은 거야?

-비주가 길을 잃었는데 길안내 해 줬대ㅋㅋㅋ 긴장해서 울었다고 함

-나도 계타고 싶다.. 근데 내가 저렇게 울면 애들이 이모 울지마 그러겠지

-할미들도 잘 울수 있는데ㅠㅠㅠ

-조르륵.. 조르륵..

-ㅋㅋㅋㅋㅋㅋㅋㅋ애기 행복해하는 거 보니까 내가 다 기분 좋다

-이제 저 애기는 평생 뉴블랙 덕질 못 놓음

동시에 비주와 어린이 팬의 일화에 대한 소식도 올라왔다.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을 때, 비주가 가슴 포켓에 꽂고 있는 꽃이 바로 해당 팬이 떨어뜨린 꽃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걸 시샘하는 리더의 표정까지.

-그 와중에 우주 표정 보소ㅋㅋㅋㅋㅋㅋ

-우리 애가 다 좋은데 꽃만 보면 눈이 돌아가

-동생 꽃 질투하는 옹졸한 우주선..

-참 희한하지 취향만 보면 93세인데 93년생이래

그러는 한편.

포토월에서 찍은 사진들이 하나둘 올라오면서 수플레들은 왠지 모르게 희한한 기분을 느꼈다.

‘대체 뭐지……?’

미국에 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야 알고 있었다.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실시간으로 페스티벌을 열 만큼 많이 모인 장면을 보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어린이다.

‘어린이면 머글 중의 머글 아닌가?’

그나마 K팝에 관심이 높을 연령대인 1020도 아니고 0010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하다.

미국 관련된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이러다 진짜로 미국에 진출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어린이들 손으로 이뤄질 줄은 몰랐다.

-어린이들의 희망 뉴블랙..

-세계의 미래가 어둡다

-어두움(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진짜.. 왜 미국 초딩들이 우리 애들을 저렇게 좋아하는 건데

-인기 포인트를 뭔가 알 것 같긴함.. 근데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래

-우주 인터뷰)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비결? 아무래도 어린이들과 같은 수준이라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기관총 물총으로 서로에게 사격을 하는 뉴블랙.gif)

-애기들한테 인기 많은 거면 끝난거 아닌가? 애기들이 얼굴이랑 이것저것 제일 많이 따짐ㅋㅋㅋ 애기들한테 먹힌다? 그럼 성인들한테도 다 먹히는 거

-인정ㅇㅇ 전직 애기로서 동감하는 바

어쨌거나 최애를 미국으로 호출해 준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진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고는 스트리밍 중인 키즈 초이스 오렌지 카펫 행사를 관람했다.

때마침 그곳에서 뉴블랙이 나오고 있었다.

*   *   *

수백 명의 꼬꼬마들에게 둘러싸이는 이 기분.

“으헤헤헤!”

“으히히히히!”

나쁘지 않다.

몹시 좋아.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슈퍼스타가 되는 이 기분은.

“뭔진 모르겠지만 즐기자.”

“동의하는 바예요.”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해석을 해 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파악이 안 되네요. 일단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르겠고.”

이건 마치 조용한 숲속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백 명의 요정들이 뿅 하고 화살을 들고 나타난 듯한 기분이었다.

습격인가! 하면서 긴장하는데 요정들이 하트 화살을 뿅뿅 날리는 느낌.

지금도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어린이 군단의 시선이 따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포토월도 수월했다.

「이쪽! 이쪽 봐 주세요!」

「한 장! 한 장만 더!」

「거기 잘생긴 남자 분. 진지하게 좀 웃어 주세요. 아, 다른 분이요.」

리혁이는 오늘도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어쨌거나 포토월 행사에서도 꼬마 수플레들의 응원 덕분에 몹시 만족스럽게 촬영할 수 있었다.

한국 연예인들이 외국에서 활동할 때 주로 이런 행사에서 설움을 느낀다고 들었는데.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낮거나 하면 한 장 찍고 끝, 하는 느낌으로 내쫓는다는데 우리에겐 그런 일이 없었다.

「자 찍었습니다. 이제 이동…….」

「뿌우우우우우!」

꼬마 수플레들의 아우성에 사진 기자들이 긴장했다.

사진 촬영을 더 이어 가자 그제야 쀼? 하며 좋아하는 우리 꼬마 팬들. 사진 기자들이 긴장한 얼굴로 셔터를 눌렀다.

역시 어린이는 어느 나라든 강했다.

「저기!」

우리가 포토월을 통과해서 본격적인 행사장에 들어서자, TV를 대동한 어린이 리포터들이 뛰어왔다.

「뉴블랙! 인터뷰 가능할까요?」

「네. 물론이죠.」

남녀 어린이 리포터인데 이름이 녹스와 케이티라고 했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우리와 마주한 어린이 리포터들이 우리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먼저 키즈 초이스에 온 걸 환영해요! 우주, 비주, 중현, 리혁, 지호!」

「오.」

해외에서 이렇게 나이순으로 언급해 주는 건 처음인데.

세심한 배려에 감동하려고 할 때, 두 어린이가 말했다.

「저희 수플레예요!」

「예?」

「저랑 케이티랑 수플레예요! 블루문 때부터 입덕했어요.」

‘Ip-Deok’이라니.

한국의 수플레들이 대체 뭘 가르쳐 준 거지.

「정말 저희 팬이라고요?」

중현이의 말에 두 어린이가 방방 뛰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완전 팬!」

곧이어 미국에 온 소감이 어떠냐에 대해서 짧은 인터뷰를 진행한 후.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우리한테 어린이 팬이 많나요?」

「네!」

「우리를 어디서……?」

「주로 미튜브요. 뉴블랙은 지금 어린이들 사이에서 제일 핫한 미튜브 스타예요!」

블루문 이후로 뉴블랙 TV의 조회수가 전체적으로 급상승했다 싶었는데 그게 다 어린이들이었던 모양이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올망졸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이들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내 말에 지호가 생수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저두요. 이거 그냥 작은 상 하나 받으러 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뭔가 큰 것 같기도 하구.”

“확실히… 작은 시상식은 아냐.”

취재진의 숫자만 봐도 관심도가 적은 시상식이 아니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작년도 시상식 viewership이 3.3밀리언이라는데요. 시청자만 삼백만 명이 넘나 봐요.”

“삼백만 명…….”

“그러니까 오늘은 좀 무난하게 하고 가요. 우리가 여태까지 참여한 미국 프로모션 중에 제일 크잖아요.”

미국의 일반 대중들에게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그런 큰 기회인 만큼 시작을 잘하자는 이야기인 듯했다.

“멋진 이미지로 가자는 거지?”

“네.”

“근데 비주가 방금 짐 들고 그러는 거 다 찍혔는데.”

“…….”

비주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이번에 미국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한테도 우리 얼굴을 알리는 기회니까. 최대한 긍정적이고 선한 느낌으로 하고 가요.”

“선하면 나 선우주지.”

“선 넘지 마요.”

방금 드립 좋았다며 내가 칭찬해 주자 리혁이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투덜거렸다.

이윽고 스탭의 안내에 따라 ‘The New Black’이라고 적힌 대기실에 도착했다.

다른 대기실들에 비하면 좁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일행 모두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크다.

“어쨌거나 우리 멋진 이미지로 시작해 봐요.”

“그래. 멋지게 한 번 가 보자.”

“맞아요. 우리 이제 미국에서는 초 멋진 인기 아이돌로 인생 2막을 펼치는 거예요.”

다 같이 주먹을 꼭 쥐고 할 수 있다! 하고 힘을 북돋고, 신규 매니저들을 포함한 모두가 안 믿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똑똑.

노크와 함께 행사 주최 측으로 보이는 인물이 들어왔다.

정수리가 휑하니 비어 있는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걸어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네.」

「어린이들의 영웅! 뉴블랙을 만나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쩌렁쩌렁하게 외치던 남자 분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깜빡깜빡하며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

상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라고 말하라고 딸이 그러더군요.」

「앗.」

「베일리. 봤니?」

곧이어 남자가 들고 있는 핸드폰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잘했어. 아빠.

아빠를 조종하며 후후훗 웃던 소녀가 우리를 보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뉴블랙을 직접 이렇게 볼 수 있다니… 권력 좋아. 너무 좋아. 울 아빠가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나요?

「전혀요.」

처음에는 얼떨떨했는데 점점 어린이들이 팬이라는 사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팬이어서 좋은 점.

그건 바로 어린이들은 어디에나 숨어 있고, 바로 그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지배한다는 거였다.

한참 동안 딸에게 훈계를 듣던 주최 측 임원이 우리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어린이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던데요. 이번에 투표 집계를 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놀랐습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키즈 초이스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귀중한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선물이요?」

우리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임원이 ‘잠시 귀 좀’ 하고 우리를 부르고는 작게 소곤거리듯 말했다.

「우리 어워드에서 매년 유명인들에게 슬라임을 퍼붓는 거 아시죠?」

「네.」

「축하드립니다! 당신들은 오늘 슬라임을 맞을 인물로 정해졌어요.」

「…….」

멋진 시작이라.

역시 우리에겐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   *   *

LA 게일런 센터.

삼백만 명이 시청하는 어린이 어워드가 마침내 개막을 알렸다.

「어린이드으으으을!」

10대 소년 그룹인 오션 파이브의 공연이 첫 시작이었다. 어린이들이 좋아서 흥분하는 가운데 지호가 입을 가리고 소곤거렸다.

“10대라고 그랬어요?”

“응.”

“아무리 봐도 10대가 아닌데. 형이 더 어려 보여요.”

“꺄르륵.”

그러는 동안 주변의 배우, 가수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어린이들한테 엄청 인기 좋던데요.」

「반가워요.」

헤일리는 우리랑 먼 쪽에, 제일 좋은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뚱한 얼굴로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움찔.

주변 연예인들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왜들 그러지?”

우리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헤일리의 모습에 옆자리에 앉은 스타가 물었다.

「헤일리 블루와 사이가 안 좋아요?」

「아뇨. 좋은데요.」

「인상 쓰면서 인사하길래…….」

「그래요? 오늘 기분 좋아 보이는데.」

「…….」

우리가 보았을 때는 기분이 좋아서 웃는 표정인데, 이쪽 사람들이 보기에는 느낌이 다른 모양이다.

하기사 옆옆옆 자리만 해도 헤일리와 디스 배틀을 펼쳤던 래퍼가 있고.

이쪽 연예계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을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라.

“형. 저기 봐요. 저번에 봤던 알렉 웨스트예요.”

“오, 그러네.”

저번에 전용기를 타고 LA쪽 공항에서 마주친 유명 배우도 있고.

평소에 TV 등으로만 접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다.

“저 사람 저번에 뉴블랙 TV 촬영 같이 한 사람들 아닌가?”

“맞을걸요.”

“여기서 또 보네.”

한국에 영화 프로모션 등을 하러 온 배우들도 많이 보였는데, 우리를 보고 어? 하는 분위기였다.

놀랄 만도 하다.

나 같아도 일본에서 나를 인터뷰했던 MC가 망고 차트 어워드 가수석에 앉아 있으면 당황스러울 것 같으니까.

그들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모두가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우릴 바라보는 분위기였다.

-으아아아아아아!

전광판에 우리 얼굴이 비춰질 때마다 방방 뛰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어리둥절해하기도 하고.

은근히 시샘하는 눈길도 있고.

뭔가 설명은 할 수 없지만 기분 나쁘게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짓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거 알아요?”

리혁이가 내게 속삭였다.

“예전에 그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바꿀 수 없는 미래를 보는 것이 왜 슬픈 일인가.”

“…….”

“그런데 지금은 알겠네요. 바꿀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온다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지금 우리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하나였다.

-여러분은 어워드 도중에 슬라임을 맞게 될 겁니다. 하하하! 총 4명밖에 누릴 수 없는 행운이죠!

-언제 맞느냐고요? 그건 알려 줄 수 없습니다.

-생생한 반응이 필요하거든요. 하하하!

시상식을 하기 전에 미리 슬라임을 맞는다고 알려 주는데 왜 연예인들이 놀란 척을 하나 했더니.

언제 맞는지 몰라서 그런 거였다.

막내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 명언이 있잖아요. 두려움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 두려움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서 무서운 거라고.”

“리혁이가 지금 내 고향에서 했던 말이네. 소가 무서운 게 아니고 소가 언제 핥을지 몰라서 무서운 거라고…….”

“아. 뭐야. 리혁이 형이 한 명언이었어여? 그럼 명언 아니고 망언으로 할래여.”

미국에서도 신나게 서로의 신발을 즈려밟는 막내들을 보고는 다른 동생들과 함께 주도면밀히 주변을 살폈다.

대체 슬라임이 어디서 나올지.

대충 나올 만한 구석이 몇몇 보이긴 했다. 어워드를 진행하면서 이미 한 명이 맞기도 했고.

“일단 저 연단 쪽은 안전해 보여요. 형.”

“그래?”

중현이의 말에 따라 연단 쪽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었다.

-푸화아아아아악!

연단에서 물대포처럼 솟아나온 슬라임이 히어로 영화의 배우의 얼굴에 그대로 직격했다.

“와. 얼굴이 사라져요…….”

그림판에 띄운 사진에 녹색 브러시를 수천 개 문질러 댄 느낌.

해당 배우가 퓨퓨퓨~ 하면서 얼굴의 슬라임을 닦고, 어린이들이 거의 행복해서 기절하려고 했다.

내가 고개를 획 돌렸다.

“연단이 안전해 보인다며, 중현아.”

“아닐 수도 있고요.”

“그럼 안전한 지점을 하나 더 찍어 보렴.”

“저기요.”

중현이가 시상식 주변의 모형을 하나 가리켰다.

그쪽에서 행사 멘트를 하고 있던 호스트의 얼굴 위로 슬라임이 촤르르르륵! 쏟아지기 시작했다.

캐리비안 베이의 해골물 같다.

“어우. 강하게 맞았어요.”

“제일 안전한 데라고 하지 않았나.”

“중현이 형 몸이 강한 이유가 다 있어여. 이 정도 불운에 대응하려면 그 정도 몸은 되어야 하는 거니까.”

“…….”

그렇게 훈훈하게 웃는 한편.

언제 슬라임을 맞을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해하고 있을 때.

-다음 시상 부문은 ‘글로벌 뮤직 스타’ 부문입니다.

마침내 수상의 시간이 다가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