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16)화 (61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16화

고척돔.

올림픽 주경기장이나 상암 종합운동장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공연장이다.

수용 인원만 2만 명 이상.

그리고 그 공연장이 지금은…….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온통 달봉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달봉이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미소와 환호, 행복한 얼굴들.

그걸 보는 우리도 행복했다.

-자. 이제 그러면 이번 정규 2집 의 앨범 제작기를 감상하실 텐데요. 준비되셨나요?

-네에에에에!

공연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긴 했지만, 평소 하던 쇼케이스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팬들을 위해 준비한 VCR이나 비하인드 영상을 재생하고.

지금처럼 이번 앨범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 주는 영상들이 나왔다.

[2017. 01.]

-나오고 있어요? 내 얼굴 나오고 있어?

-응.

-뻥치지 마요. 지금 셀카 모드죠?

-들켰네.

김덕순 하우스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나와 리혁이의 모습이 잠시 흘러나왔다.

곧바로 나오는 인터뷰룸 장면.

내가 검은 배경 앞에 앉아서 ‘Coin’의 제작 일화를 말하고 있다.

-코인이라는 곡의 영감이 떠오른 건 이번 설 명절 휴가에서였어요. 집에 옛날 오락기가 있었거든요. 그걸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있는데, 마침 딱 영감이 떠오른 거예요.

왜 코인이라는 제목이 정해졌는지 강조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화면 속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여러분. Coin이라는 제목은 제가 호주에서 금화를 가져오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현장에서 ‘에이이이이!’ 하는 수플레들의 외침에 슬픈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말했다.

“진짠데. 이거 완전 진짠데…….”

“업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원체 저지른 게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팬분들도 오해할 만하지.”

“솔직히 저라도 의심하긴 했을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Coin의 제작 비화가 나올수록 팬들의 의심이 많이들 불식이 되는 분위기였다.

호주에 가기 전에 찍은 자료 영상에도 Coin이라는 곡 제목이 담겨 있는 노트북 화면 등이 나왔으니까.

이어서 멤버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Coin은 좀 행복한 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업했어요.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만드는 과정이 행복하진 않았지만…….

팬들의 폭소와 함께 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넘어갔다.

후드를 푹 눌러쓴 막내가 중현이의 젤리 봉지를 뒤적거리며 셀프캠을 찍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을 슥슥 정돈하던 미남이 소파에 널브러진 동생들과 이사님을 찍으며 소곤거렸다.

-안녕하세요. 지금 이곳은 작곡요괴 선우주의 소굴입니다. 제가 왜 소곤거리냐고요? 바로 그 작곡요괴가 살짝 잠들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정말 흔치 않은 순간입니다.

부스럭거리며 카메라 앵글이 움직이더니 노트북에 얼굴을 박은 채 자고 있는 내 모습이 흘러나왔다.

수플레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민망하다.

-잘 때는 정말 천사 같아요. 이대로 쭉 아침까지 자면 좋을 텐데… 분명 5분 뒤에 깨어나겠죠?

모두가 잠든 틈을 틈타서 혼자 눈을 반짝이며 작업실을 누비는 막내였다.

작업실 유리창으로 녹음 부스 쪽을 바라보며 리혁이 표정을 흉내 내며 ‘음정 제대로 잡아볼게요. 마임하지 말고’ 이러기도 하고.

이건 중현이 형이라며 근엄하게 딴청 피우며 젤리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비주 형.

행복한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며 뺨에 양손을 올리는 누군가를 흉내 내며 혼자 깔깔 웃는다.

졸개들이 막내의 멱살을 짤짤짤 흔들었다.

“야, 너…….”

“으아아아아…….”

“가만 안 둬. 왕지호.”

비주까지 화사하게 웃으며 옆구리를 콕콕 찔러 대고, 내가 동생들을 만류하며 웃을 때였다.

-아. 심심하다. 뭐 하지? 아! 지금 자고 있는 우주 형에게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해 보겠습니당.

저건 또 뭐지.

내가 고개를 슥 돌리자 막내가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화면 속에 있는 지호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더니 내 코앞에서 젤리를 들고 슥슥 흔들었다.

뒤척거리던 내가 5분 정도 후에 벌건 눈으로 일어났다.

막내가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잘 잤어요?

-응. 어우… 지호야.

화면 속에서 기지개를 켜던 내가 큰일이 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나 젤리 나오는 꿈 꿨다.

-젤리 꿈이요?

-응. 꿈속에서 막 젤리가 도망치더라고. 진짜 끝내주는 악보를 들고 튀어서 내가 막 추격하려고…….

곧이어 카메라를 향해 엄지를 치켜드는 막내의 밑으로 [실험 성공!] 하는 귀여운 폰트의 자막이 깔렸다.

어둠 속에서 내가 막내의 멱살을 짤짤짤 흔들었다.

“으아아아아아…….”

동생들이 만류하며 웃었다.

확실히 우리 팬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앨범 제작기 속에 나오는 소소한 모습에도 환호를 하며 좋아했다.

“좋구만…….”

“늙은이 같은 감탄사 내지 마요.”

“고얀 것…….”

컴백을 하면서 가장 기다렸던 게 바로 이거였다. 팬들이랑 모여서 이야기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는 이 시간.

석 달 동안 앨범 준비를 했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네! 앨범 제작기 재미있게 감상하셨나요?

그렇게 앨범 제작기 영상을 시작으로 정규 앨범 수록곡 무대가 미니 콘서트처럼 이어졌다.

슬슬 지칠 때가 됐는데도 함성이 식을 줄을 몰랐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여러분의 막차 시간만 아니라면 새벽까지도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함성 좋아. 너무 좋아.

-이 분위기가 어찌나 그리웠는지…….

내일이 되면 끄어어어 하고 근육통에 몸부림칠 게 분명했지만, 온몸에 도는 흥분이 가시지를 않았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은 어쩔 수 없었다.

Q&A 파트가 끝나고 쇼케이스 후반부가 되면서 다음 코너로 넘어가야 했다.

-자.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었다.

-이제 그 시간이 됐네요. 저희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시상식을 진행할 시간이 됐어요.

지호가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슥 내밀고 물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콩닥콩닥?

-콩닥콩닥!

수플레들이 이구동성으로 합창하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VIP 석에서 거만히 앉아 있던 가면무도회 수플레들도 부채를 흔들면서 웃음에 열기를 더했다.

리혁이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상식을 진행하기 전에 아주 짧은 영상 하나 감상하시겠습니다.

우리가 백스테이지로 내려가면서 스크린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   *   *

웅장한 BGM.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고척돔의 전경과 함께 [고척돔 생중계]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진짜 시상식 같은 분위기에 수플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하!”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눈앞에 뉴블랙의 활동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뉴블랙과 함께 해 온 지난 3년! 많이들 행복하셨습니까?

유명 동물 TV쇼에서 내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성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화려하게 시작을 수놓은 불꽃놀이부터 지금의 Coin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은 뉴블랙과 늘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웃을 때도 함께 웃었고.

온갖 사건을 몰고 다니는 멤버들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눈물을 흘릴 때도 함께 흘렸습니다.

망고 차트 어워드에서 첫 대상을 탔을 때 멤버들이 동시에 일어나 서로를 부둥켜안는 장면.

시상식 자료화면에서 눈물을 머금고 입을 가린 채 달봉이를 흔들고 있는 팬들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VCR이 이어질 때마다 환호하고 감상에 빠지기를 반복하는 한편.

연말 시상식 분위기로 멘트를 이어 가던 성우가 유쾌한 목소리로 마무리를 지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1회 수플레 어워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수플레들이 환호하면서 박수를 칠 때.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시상식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에 다들 큰 웃음을 터뜨렸다.

두구두구두구…!

오케스트라의 팀파니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빠르게 돌아가던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딱 멈춰 섰다.

무대로 올라오는 입구가 치익- 열리더니 5인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하하하하하!”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맨 시상자 차림의 최애들이 우아하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꽃바구니를 든 어린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나머지 멤버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스탠딩 마이크로 다가간 중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래퍼 스윗 포테이토입니다.

애쉬그레이 톤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래퍼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달콤한 감자수프처럼 흘러들어온다.

-음악으로 우리 수플레와 뉴블랙은 하나가 됩니다.

어워드에서 배우들이나 모델들이 하는 단골 멘트가 흘러나오면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 가던 중현이 봉투를 건네받아서 개봉했다.

-네, 첫 번째 시상 부문은 바로 노력상입니다. 게임에서 선우주 씨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하신 분에게 주어지는 상인데요. 시상은 원조 겜알못인 저희 맏형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탠딩 마이크를 향해 늠름하게 걸어온 겜알못이 미소를 지었다.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었던 분이었어요. 세상에, 저보다 더 게임을 못하는 분이 있다니.

팬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우주가 봉투를 열고 말했다.

-저보다 낮은 기록을 보유한 유일무이한 분입니다. 게임 닉네임 선우주 겜알못 님!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와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외칩니다. 선우주 겜알못 님!

함성과 함께 오락기 모양의 가면을 쓴 수플레가 쭈뼛쭈뼛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윽고 멤버들에게 트로피를 받은 팬이 마이크 앞에 서서 달달 떨었다.

-이게 도움이 될 거예요!

막내가 조그마한 분홍색 풍선을 내밀었다.

의아해하는 팬에게 뉴블랙 멤버들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마법의 가스입니다! 이거 하나면 mbti가 I에서 E로 변한다죠?

-네. 뼛속까지 내향인 저 서리혁이 보증하는 바입니다.

-1인 1풍선입니다. 자신감 있게 슈우웁 해 주세여~!

쭈뼛하던 ‘선우주 겜알못’이 슈우우우웁 하더니 스탠딩 마이크에다 긴 숨을 토했다.

-꺄아아……. 엄머?

헬륨으로 인해 가늘게 변한 목소리에 가면 수플레가 손을 입가에 올렸다.

뒤에 서 있던 뉴블랙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소심이에서 갑자기 극 외향인으로 변해 버린 선우주 겜알못이 마이크 앞에 섰다.

-먼저 이 기쁨을 원조 겜알못이신 선우주 선생님에게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꺄꺄꺄꺄! 저도 못하지만 솔직히 오빠도 게임 완전 못해요!

우주가 뒷목을 잡는 시늉을 하는 동안 다들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익명이라 너무 좋다! 우선 멤버들 제가 너무~너무~~ 사랑하고요! 그리고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어 주신 저의 창조주! 엄빠! 사랑해요오오!

그렇게 멤버 사랑을 전파하던 ‘선우주 겜알못’이 마지막 말에 이르렀을 때.

-정말 우리 뉴블… 어?

마법이 풀리고 본 목소리가 나온 수플레.

하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풍선 속 헬륨 가스는 겨우 한 모금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뒤에 서 있던 멤버들이 흐뭇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네. 보시다시피 이렇게 헬륨가스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후후후후후! 신중히 말을 골라 주셔야 되거든요.

잠시 고민하던 선우주 겜알못이 풍선을 슈우웁 하고는 외쳤다.

-꺄꺄꺄꺄! 수플레 포에버!

명언을 남기며 사라지는 팬의 모습에 다른 팬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상식에서 수플레들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상금으로 고기 사 먹을 거예요! 끼끼끼!

-닉네임은 신중히 선택을 해야 돼요. 저도 제가 시상대에 오를 줄 알았으면 신밧드의 보험은 안 했을 거예요.

-올라와 보니까 알겠어요. 아. 이래서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거구나. 관심이 너무나 좋구나~ 여기 서 있으니까 2만 개의 왕봉이와 달봉이가 저를 향해 흔들리고 있는 거예요~!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우리 관종들 천지였지…….’

부끄부끄하던 기색은 다 어디로 갔는지 무대에 올라와서는 배우들 뺨치는 수상소감을 마치고 내려가는 이들이었다.

진짜 우리 팬덤에 웃긴 사람들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팬이 둘 있었으니… 하나는 바로.

-안녕하세요. ‘반딧불이’ 상을 수상하게 된 ID 등대지기입니다아…. 넘나 자연스럽게 다들 저를 반딧불이라고 부르는데 등대지기는 억울해!

바로 반딧불이 가면을 쓴 팬이 또르르… 하는 의성어를 내면서 멤버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지호가 ‘미안해요!’ 하고 마이크 없이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네. 응원봉 최다 구매 고객이라고 상을 받았는데… 사실 제가 다 쓴 게 아니고 마을 사람들 대신해서 구매한 거거든요. 어르신들이 뉴블랙 응원봉을 막 쓰겠다고! 근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상식적으로 응원봉이 물에 들어가면 어케 돼요?

-녹아 버리나…?

-아니, 그게 아니고… 왕봉이가 물에 들어가도 멀쩡하더라고요! 왕봉이의 위대한 방수 기능을 찬양하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레몬 엔터 사업설명회 같은 분위기에 멤버들이 흡족한 얼굴로 박수를 칠 때.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왕봉이 덕에 제가 저희 섬에서 제일 예쁨을 받아요. 감사합니다. 꺄꺄꺄.

-저희 섬…?

무의식적으로 나온 키워드.

멤버들의 눈이 예리해지면서 무언가 가늠하려고 할 때.

등대지기가 다급하게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수플레 포에버!

등대지기가 꽃다발과 트로피를 챙겨들고 드레스를 휘날리며 사라질 때였다.

-잠깐.

탐정 만화의 한 장면처럼 리혁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등대지기님?

삐걱…….

고개가 불안하게 돌아가는데 희한하게 가면 속 표정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다.

-저희 만난 적이 있나요?

도리도리.

그러고는 다급하게 도망치는 등대지기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으으음.

-굳이 이름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왠지 익숙한데요. 저 전체적인 느낌이…….

-저희도 수상자 분들 인적사항은 모르거든요.

수플레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알 듯 말 듯한 미스터리로 수상자의 정체가 저 너머로 사라질 무렵.

오늘의 하이라이트에 이르렀다.

바로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수상자였다.

-이 분은 저희가 직접 이름을 불러드려야겠네요. 뉴블랙 팬카페가 생기고 나서 첫 번째로 가입을 해 주신 분입니다.

“어머?”

“허어…….”

“세상에… 살아계셔!”

대상 수상이라는 게 절로 납득이 가는 사유였다.

14년도부터 덕질을 해 온 시조새라는 말 아니던가. 골품으로 따지면 성골 중의 성골, 아니 수플레 종묘에서 시조로 모셔야 할 분이었다.

제사를 지낸다면 ‘저분이 고조 할머니인데 살아계신단다’라고 해야 할 위계.

이윽고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촤악! 비춰지면서 팬들이 감탄했다.

“허어어어어!”

검정고무신 할머니 가면을 쓴 수플레가 한복을 입고 정정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부, 부축해 드려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야. 젊다!’

마치 원로 배우가 등장한 것처럼 근엄하고 웅장해지는 분위기.

뚜벅뚜벅 걸어온 수플레가 꽃 세례와 무수한 악수 세례를 받으며 대상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헬륨 풍선을 후우웁 하면서 들썩이는 몸.

-아아… 어쩜 좋아…….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자리에 있는 수플레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대선배님…….’

14년도 초면 거의 허허벌판 수준 아니었던가.

뉴블랙의 데뷔곡인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이천 축제, 주세한 등을 팬으로서 함께 했다는 이야기였다.

15년도에 바람꽃을 통해 상승세를 타면서 사재기 논란을 만드는 안티들과 싸우고, 첫 대상을 받을 때까지 고군분투하면서 싸워 온 팬덤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게임 닉네임 ‘무빙 개쩌는 할매’입니다…….

과연 성골 중의 성골다웠다.

범상치 않은 닉네임에 팬들이 단체로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그저 팬카페 가입이 조금 더 빨랐을 뿐이라 이렇게 무대 위에 올라와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던 검정고무신 할머니가 소감을 이어 갔다.

다른 이들보다 하나 더 주어진 헬륨 풍선.

수플레 어워드라는 이벤트에서 상을 받아서 기쁘다는 말을 하던 이가 발언 마무리쯤에 시선을 돌렸다.

-…사실 이 자리에서 우리 가수들에게 그런 말을 해 주고 싶어요. 뉴블랙을 알게 된 이후로 제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멤버들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런 의미로 뉴블랙 때문에 정말 행복해하는 팬들이 많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그런 헬륨 소감이 끝났을 때.

‘또 운다.’

‘아이고, 저 코찔찔이들…….’

새하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뉴블랙이 대상 트로피를 수여했다.

오히려 1호 가입자가 토닥토닥 해 주며 쿨하게 내려가는 모습에 팬들이 키득거렸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Coin 공연만이 남았을 때였다.

띵!

전광판에 알림이 떴다.

[백스테이지 상황 알림.]

[가수들의 예기치 못한 눈물로 인해 ‘Coin’의 무대가 5분 정도 지연될 예정입니다.]

[너른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팬들이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   *   *

5분 후.

장내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수플레들의 환호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코인이다! 코인!’

‘세상에…….’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2만 명이 모여서 내지르는 비명과 환호에 공연장이 뒤흔들리고, 응원봉이 진동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앗-!

중앙제어를 통해 온통 황금빛으로 물결치기 시작하는 객석에 환호성이 끝을 모르고 커질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무대가 서서히 밝아졌다.

VCR과 함께 커다란 무대장치가 하나 나타나면서 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인형 뽑기?’

거대한 인형 뽑기 머신이었다.

인형 뽑기 머신의 갈고리가 스르르륵 움직이더니 인형들 더미에서 무언가를 쏙 뽑아냈다.

뾰옹!

2D 도트 캐릭터였다.

전자오락 특유의 소리와 함께 뽑혀져 나온 미니미 지호의 모습에 팬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그렇게 미니미 지호가 쏘옥 하고 내려오자.

그 앞에 있던 다섯 칸의 상자에서 첫 번째 칸의 가림막이 스르륵 내려갔다.

‘지호야아아아아!’

빨간 휘장이 스르륵 내려가면서 뉴블랙의 서브보컬이 포즈를 취하며 웃는 모습이 드러났다.

오른쪽 뺨에 본인 상징색인 붉은색이 물감자국처럼 옅게 칠해져 있다.

“구와아아아아악!”

그걸 시작으로 미니미들이 쏘옥!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빛으로 염색한 비주가 살짝 수줍은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고.

반다나를 쓴 회색 머리카락의 중현이 슥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주홍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리혁이 눈을 크게 뜨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귀여움을 어필했다.

그리고.

금빛 머리카락을 빛내고 있는 리더가 뿅! 하고 나타나 객석을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환호성이 커지던 것도 잠시.

“와아아아아아……?”

돌출 스테이지까지 발랄하게 걸어 나온 멤버들이 동작을 정지한 것처럼 멈춰 섰다.

우뚝.

마네킹처럼 정지한 멤버들의 모습에 팬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였다.

스크린에 전자 오락풍의 글자가 떠올랐다.

[ INSERT COIN . . . ]

깜빡.

깜빡.

3초 정도 깜빡이던 문구.

곧이어 달그락- 하며 동전이 굴러 들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대가 더욱 환하게 밝아 올랐다.

정규 2집 타이틀곡 의 무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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