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24화
D-2 티저가 나오고 이틀.
마침내 모든 팬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후우우…….”
택시 뒷좌석에 타고 있던 어느 수플레가 유리창 너머로 서울 풍경을 바라보았다.
‘서울은 또 간만이네.’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온 그녀는 지금 뉴블랙의 콘서트가 열리는 고척돔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심장이 콩닥거리면서 잔뜩 부풀어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바늘로 톡 찌르면 팡 터질 것 같은 기분. 그 긴장과 설렘이 느껴졌는지 백미러로 택시기사의 눈매가 휘어졌다.
“시험 보러 가시나 봐요.”
“시험은 아니고 공연 보러 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택시기사의 모습에 그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서울 토박이처럼 말하는 데 성공.’
몇 번 정도 서울에 공연을 보러 와서 그런 걸까.
최애들이 그러하듯이 나긋나긋한 서울 말투로 이야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뿌듯했다.
“아이고, 그런데 멀리서 오셨네요.”
“…….”
부산 수플레가 창밖을 바라보며 촉촉한 눈으로 웃었다.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는 택시 기사와 두런두런 대화를 하는 와중에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기가 고척돔!’
은빛으로 빛나는 돔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직구장을 몇 번 가 봐서 야구장은 익숙하지만 돔으로 되어 있는 야구장은 또 처음이라 신기하다.
부산 수플레의 가슴이 다시금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저 기사님.”
“예?”
“근데 차들이 안 움직이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왜 이러지. 분명히 초록불이 들어와 있는데…….”
신호가 몇 번 정도 바뀌는데도 도로 위에 있는 차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어찌나 혼잡한지 교통경찰들이 단체로 출동해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
-삑삑삑!
-5287 거기 서세요! 5287!
-야야! 저 도망간다!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진 가운데 차들이 굼벵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얼이 빠진 얼굴로 주변 풍경을 바라보던 택시 기사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이게 뭔 일이래. 여기가 이렇게 막히고 그러는 데가 아닌데…….”
“뉴블랙 콘서트 있어요.”
“아……!”
바로 납득했다는 표정이었다.
뉴블랙이라면 이 정도 차가 막히는 게 당연하지, 하면서 오히려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인도에도 사람이 바글거리고 도로에도 차량이 북적북적하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이야 하던 기사가 물었다.
“저기… 손님.”
“네?”
“근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뉴블랙 콘서트 표 사는 거요.”
“인터넷으로 사는 거예요.”
“인터넷…….”
그러면서 허허 웃었다.
“아이고. 나는 뭐 할 수가 없겠네. 안 그래도 저번에 불백 팔 때도 어찌나 경쟁이 치열하던지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요.”
“불백은 저도 못 샀어요.”
“그죠, 어렵죠? 뭐… 노래하는 걸 보고 싶다고 그래도 이게 쉽지가 않겠네요. 사람이 이 정도로 많으면.”
그러면서 자기는 뉴블랙에서 중현이가 제일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 택시 기사의 말에 수플레가 미소를 지었다.
‘매번 바뀌네.’
15년도부터 계속 콘서트에 참여해서 그런 걸까.
택시에 올라탈 때마다 기사들의 멘트도 바뀌는 게 느껴졌다.
-뉴블랙? 어어… 어디서 이름을 들어 본 것 같은데. 그 명곡단에서 노재현 노래 부른 사람들이 맞지요?
핸드볼 경기장 시기에는 명곡단 걔네, 로 이름을 알리던 때였고.
-요새 미스터 프로듀서에 나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 식당에서 밥 먹을 때마다 나오는 내 고향도 얼마나 웃기던지… 중현이 그 친구가 진짜 우리 기사들 사이에 히트예요. 히트.
체조경기장 콘서트 때는 <지금 내 고향은>과 <미스터 프로듀서> 등으로 더 대중적으로 나아가던 시기였다.
이제는 최애가 누구냐는 이야기로 대화도 나누고.
참 별일이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며 웃을 때였다.
“저 손님.”
“네.”
“도로 상황을 보니까 어쩌면 여기서 내려서 가시는 게 빠르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럴게요.”
안 그래도 똑같은 말을 할까 말까 입이 간질거리던 차였다. 택시비를 주고 내리는 그녀에게 기사가 주먹을 쥐어 보이며 껄껄 웃었다.
“뉴블랙 파이팅.”
“파이팅!”
부산 수플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어?”
마법처럼 길이 뚫리며 차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차 안에서 ‘어?’ 하고 당황한 택시 기사와 그녀의 눈이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마주쳤다.
‘손님?’
‘기사님?’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 * *
부산의 수플레가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동안, 고척돔 앞의 인파도 점점 더 숫자를 불려 가기 시작했다.
“오, 그래도 우리 생각보다 한산하다. 그치?”
“개꿀인데?”
구일역에서 내려서 한산하다고 좋아했던 팬들이 자신들이 있는 곳이 후문이라는 걸 알고 정문으로 가서 본 것은.
“…….”
바글바글.
왁자지껄.
쿠쾅쾅쾅.
“한산한 게 아니라 우리가 길을 잘못 찾은 거였네.”
“뭔 해운대도 아니고 사람 숫자 실화냐….”
쇼케이스 때보다 더 많은 인파였다.
여기저기서 굿즈를 팔고 있는 레몬 엔터 직원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고, 이벤트 부스는 줄이 끝이 안 보였다.
“콘서트 시작하기 전에 포토존에서 한 장 찍을 수는 있을까. 줄이 끝이 안 보이는데….”
“노노. 개무리수임. 이제부터 선택과 집중이야, 우리.”
엄청나게 붐비는 포토존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비주가 상큼하게 웃고 있는 사진 앞에서 엎드려서 경배하는 포즈를 취하는 어느 팬의 모습에 수백 명이 웃고 있었다.
두 친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저 인형이라도 노려볼까?”
“인형?”
“응, 저기 춤추는 미니미들.”
미니미 뉴블랙의 인형탈 등을 쓴 인물들이 잔망스럽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귀염둥이 같은데 춤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귀엽다며 폰카를 들고 촬영하는 동안 수플레들이 예리하게 스캔을 했다.
‘우리 애들은 아니겠지?’
상식적으로 공연을 앞둔 아이돌이 공연장 앞에서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하지만 뉴블랙이 뉴블랙이다 보니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
그런 마음으로 인형탈 안에 있는 것이 최애인가, 하는 의심을 품으며 다가갈 때였다.
“저기 인형탈 옷에 뭐라고 종이 붙어 있는데?”
“어?”
인형탈 옷에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저희는 뉴블랙이 아니에요ㅠㅠ]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두 명이 물어본 것이 아닌지, 아예 종이까지 미리 써 붙일 정도였던 모양이다.
역시 사람 생각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는 인형탈들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어도 돼요?”
수줍게 끄덕끄덕하는 인형탈들.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는 표정의 미니미 리혁과 사진을 찍은 수플레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다.’
콘서트 날이라 그런지 모든 게 행복했다.
김포공항이 가까워서인지 낮게 후우우웅-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비행기들도 예쁜 종이비행기처럼 보이고.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 끓여 주는 기계를 체험해 볼 때도 막 웃음이 흘러나왔다.
“시간 많은데 안양천 쪽에 가 볼래? 커버 댄스팀이 버스킹한다더라.”
“진짜?”
“지금 Coin 하는 중이래.”
그러면서 나눔 현장에 슬쩍 참여해서 물건을 받아오기도 하고.
중앙제어가 된다는 달봉이 Ver 3.0을 구매해서 발광력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입장 시작하겠습니다!”
콘서트 티켓을 들고 있는 수플레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계단을 바삐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실내 공기가 느껴지고.
바깥에서 느껴지던 봄과는 또 다른… 그런 계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친! 콘서트장 공기다!’
남들은 퀴퀴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콘서트장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공기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의자에 앉을 때, 아직 아무도 안 앉아서 살짝 차가운 감촉도 마음에 들고.
“우와아아아…….”
완전히 콘서트장으로 꾸며진 무대에서 스크린이 영상 테스트를 하며 반짝반짝이고 있다.
벌써부터 마음속에서 콘서트가 시작하는 느낌.
그렇게 팬들이 설레어 하는 동안.
바깥에서 입장을 이어 가던 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 저 사람들 이제 철수하나 봐.”
“에고. 고생했네.”
고척돔 야외에서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던 미니미 뉴블랙도 스르륵 실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출연자 대기실.
“아아아아아! 오백 원! 오백 원~ 오백 원어어언!”
“아아아아!”
여기저기서 오백 원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대 의상을 입은 동생들과 내가 각자 목을 풀면서 긴장을 푸는 중이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목을 돌리고 있는데 어깨에 날카로운 감촉이 느껴졌다.
“형.”
막내가 내 어깨에 턱을 올린 채 칭얼거렸다.
“저 콘서트 하기 싫어요. 무서워… 피하고 싶어…….”
“왕지호 씨.”
“넹.”
“당신은 성인입니다. 성인답게 행동하십시오.”
“와. 이런 것도 말 못해…!”
막내가 턱을 슥 치우고는 입을 비죽이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말로는 콘서트 하기 무섭네 어쩌네 하지만, 이미 모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리 막내였다.
“으으으으…….”
리혁이가 물을 계속해서 벌컥 들이켜면서 다리 찢기를 하고 있다. 그러고도 긴장이 안 풀렸는지 팔딸팔딱 개구리처럼 뛰고 있었다.
비주도 조용히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고.
목을 뚝뚝 꺾던 중현이는 이어폰을 끼고 마지막으로 가사지를 한 번 훑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콘서트 시작 30분 전이었다.
“후우우우…….”
나도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여태까지 했던 단독 콘서트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커서 그런지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아. 그런데 이렇게 저희가 떨고 있는 것도 찍혀도 되나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 감독님 너머로 유건 감독이 손으로 OK 사인을 그려 주었다.
큐시트를 살피면서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콘서트 앞두고 그러면 항상 너무 떨려요. 특히 이번에는 저희들이 각자 개인 무대를 하기도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팬들에게 저번보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하거든요.”
이번 공연이 저번보다 더 낫지 않다면 팬들에게 우리 공연을 봐야 할 의미가 있을까.
“작년 체조 경기장 콘서트에 와 준 팬들에게는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고, 또 콘서트에는 처음 온 팬분들도 있을 거잖아요? 그동안 잘 편집된 무대 영상으로만 봐 왔을 텐데…….”
우리가 그것보다 더 멋지고 근사한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콘서트를 앞두고 진짜 이런저런 생각이 요동치네요.”
“우주 형이 원래 생각이 많아요.”
중현이가 땅콩을 우물거리며 말하고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래서 제가 평균을 맞추기 위해 이 그룹의 생각 없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무념무상이죠.”
“자랑이다. 김중현. 자랑이야.”
비주가 찰싹찰싹 등짝을 때리면서 중현이가 으으 했다.
비주에게 잘했다며 하이파이브를 해 주고는 같이 오들오들 떨었다.
월말평가를 앞두고 있거나 시험 중에서 중요한 과목을 앞둔 쉬는 시간 같은 느낌이다.
5분 동안 가사지를 마저 보거나 요약집을 봐야 되는데…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그냥 얼른 빨리 시작이나 했으면 하는 그런 마음. 그런데 또 막상 실전은 두려워서 시작 안 했으면 하는 느낌.
OMR을 들고 들어온 선생님이 ‘너네 이제 그 과목이지?’ 하면 학생들이 으아아 하며 단체로 소리를 낼 때의 그 기분이다.
이럴 때면 어디 가서 저희 4년차 가수예요 라고 말을 못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웃을 때.
둥실둥실.
“오!”
대기실 안으로 인형탈들이 둥실거리며 들어왔다.
쭈뼛쭈뼛.
꼬질꼬질해진 인형탈을 쓴 이들이 저마다 손을 들어서 인형탈 머리를 잡더니…….
뽀옥!
뽀옥!
머리를 뽑고 얼굴을 드러냈다.
“흐아!”
우리 회사의 꼬꼬마 연습생들이 잔뜩 땀에 젖은 얼굴로 헤에에엑… 하더니.
“셔, 션배님…!”
“얘들아!”
“저희 어지러워효….”
비실대며 엎어졌다.
복수가 엎어지면서 진후도 엎어지고, 애들이 연쇄적으로 엎어진다.
둥글둥글한 인형탈 때문인지 애들이 드럼통처럼 굴러가면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벌게진 복수가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콘서트 하는데 이렇게 헤에엑… 헥! 쓰러지면 안 되…는데!”
“뭘 쓰러지면 안 돼.”
“저희는 불굴의 연습생이어야 하… 하악! 하는데!”
웃음이 흘러나왔다.
리혁이가 물병을 건네주면서 애들에게 물을 먹이는 동안, 목을 축인 연습생들의 얼굴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중학생 애기들이라서 그런지 발갛게 상기된 뺨이 뽀얗다.
“지호도 한때 저런 적이 있었지.”
“뭐가여.”
“아니야. 아무것도.”
인형탈을 쓴 채로 물병을 양손으로 잡아 벌컥 들이켜던 연습생들에게 우리가 물었다.
“어때? 재미있었어?”
“네! 선배님들 팬분들이랑 막 인사도 하고, 악수도 하고. 막 저희 춤추는 거 보여 주고 그랬어요!”
“휴식은?”
“중간중간에 쉬어서 괜찮습니다! 잠깐잠깐씩 나가서 춤추고 돌아와서 쉬고, 또 잠깐 춤추고 그랬어요.”
하도 긴장을 많이 하는 연습생들이라 회사에서 실전 경험을 쌓아 주겠다고 만든 기획인 듯했다.
직원들이 애들을 제대로 쉬게 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마음을 놓았다.
어느 기획사든 간에 신인개발팀은 외부 간섭이 적을 때, 연습생들 상대로 갑질을 하거나 혹사시키는 분위기로 가기 쉽다.
그나저나 우리 꼬꼬마들 엄청 설레 보이네.
“저희 너무 기대돼요. 선배님들 무대 본다고 생각하니까… 막 콩닥콩닥 하고.”
“아닐걸. 하루 종일 연습실에 갇혀 있다가 나와서 그런 거야.”
우리 감동 브레이커의 말에 연습생들이 엇? 그런가 하는 동안 내가 중현이에게 턱짓을 했다.
‘애들한테 때 묻는다. 치워라.’
‘네.’
불온한 사상을 가진 메인 보컬을 처리하고는 연습생들에게 고생했다며 다독여 주었다.
귀여운 햄스터 구경을 하며 긴장을 풀듯이, 우리 회사 병아리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와.”
연습생 중에 가장 맏이인 진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선배님들 진짜 콘서트 앞두고도 하나도 안 떨려 보이세요. 막 여유 엄청 있으신 것 같고.”
“흐으음.”
“뭐. 여유롭긴 하지.”
비실비실하게 콘서트 무셔무셔 하던 동생들의 어깨가 쭈욱 펴지면서 척추들이 방긋 웃기 시작했다.
지호가 대선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진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엉아들 무대 잘 봐.”
“풉.”
“푸흡… 에켁…… 켁!”
미안하지만 이건 안 웃을 수 없었다.
다른 졸개들과 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동안, 연습생들의 반짝반짝한 눈과 막내의 뚱한 시선에 다시금 근엄함을 되찾았다.
“그래. 오늘 무대를 보면서 많은 걸 느끼길 바라겠다.”
“그럼.”
“이따 보자.”
우와아아 하는 연습생들에게 훗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대기실을 나섰다.
비주가 어깨를 쭉 피고 앞장섰다.
“후후후후후.”
“후후후후.”
씩 웃으며 백스테이지로 향하던 우리를 보안 업체 직원들이 다급하게 불렀다.
“저… 반대쪽입니다!”
“아.”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금 몸을 획 돌렸다.
“후후후후후후.”
“후후후후.”
콘서트 필름과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을 멋지게 장식할 차례였다.
* * *
넷플러스 런칭 다큐멘터리「The New Black : Making Waves」 中
오프닝 씬.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명언이 떠오른다.
Truth is like sun. You can shut it out for a time, but it ain’t goin’ away — Elvis Presley
진실은 태양과 같다. 잠깐은 막을 수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 엘비스 프레슬리
마치 이 다큐멘터리는 진실성을 중시한다는 듯한 글귀였다.
치직, 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Netplus Original Series]이라는 문구가 뜨면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흑백 화면이었다.
후우-
숨소리.
무대 VCR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관객들의 장면이 나오다가 다시 소리 없이 복도를 걷는 5인조의 발이 비춰진다.
널찍한 어깨를 자랑하는 뉴블랙 리더의 뒷모습이 비춰지고.
복도를 걷던 그가 인이어를 끼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하면서, 뒤따르던 멤버들도 하나둘 인이어를 착용했다.
저벅.
저벅.
흑백화면에서 화보처럼 걸어가던 미남들이 아련한 함성소리를 들으며 백스테이지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한편.
와아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는 관객들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나오며 다시 백스테이지로 화면이 넘어왔다.
서늘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멤버들.
그들이 가만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안 무대 밖에서 VCR이 끝나면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무대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이 퍼지면서 흑백 화면이 바뀌기 시작했다.
멤버들을 중심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는 화면.
마치 물결처럼 색채가 파동으로 번져 나가는 광경이었다.
Nine의 전주에 맞춰 춤을 추는 멤버들의 뒷모습과 함께 문이 서서히 닫히면서 오프닝 로고가 떠올랐다.
= The New Black : Making Waves =
해외 시청자들에겐 감탄을, 한국인들에게는 시작부터 사기 친다는 평을 듣게 된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이었다.
* * *
Nine의 무대에 맞춰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는 달봉이들을 바라보며 동생들과 환한 미소를 교환했다.
그래.
바로 이거였다.
-후우…….
오프닝 시퀀스로 이어졌던 무대들이 끝나고 우리는 3만 개의 달봉이들을, 그 너머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수플레!
-우리 보고 싶었어요?
-와아아아아아!
1년 만에 열린 서울의 콘서트는 언제나 그러하듯 반가운 분위기 속에서 그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