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25화
수만 개의 별빛과 함께 하는 콘서트의 오프닝.
-우와아아…….
쇼케이스 때보다 더 많은 인파에 우리가 시선을 좌우로 길게 돌렸다.
스탠딩석에서 상기된 얼굴로 방방 뛰는 팬들, 그 너머 2층과 3층의 좌석까지.
-사실 무대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콘서트라는 게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마이크를 들고 손을 흔들었다.
-우리 1층! 잘 보이나요?
-네에에에에에!
-2층! 저희 잘 보이나요?
-네에에에!
-그리고 3층…….
3층에 있는 팬들이 슬픈 함성을 내지르는 소리에 다들 빵 터졌다.
어느 공연장이든 마찬가지지만 3층쯤 가게 되면 가수가 면봉처럼 보이게 된다.
비주가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어제 최종 리허설 하면서 저희가 객석을 다 돌아다녀 봤거든요. 객석별로 시야가 어떤가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3층에서 정말 저희가 엄청 작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우주 형 무대 구경하는데 면봉인 줄 알았어요. 잘생긴 면봉.
막내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때 리혁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망원경으로 봐야 잘 보일 것 같더라고요. 그런 의미로 저희도 한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스탭들이 분주히 올라와 우리에게 미니 망원경을 하나씩 건네줬다.
우리가 망원경을 척 들고 외쳤다.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는 말이 있죠.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니체 님이 준비한 말이 아닐까 싶네요.
-여러분이 뉴블랙을 들여다본다면 저희 뉴블랙도 여러분을 들여다보겠습니다.
-3층 쪽 조명 살짝 켜 주세요!
수플레들이 키득거리는 동안 망원경으로 3층 팬들을 보았다.
“와아아아아아아!”
응원봉을 흔들며 웃는 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뉴블랙 존나 사랑해] 하는 플래카드를 흔드는 분의 모습에 우리도 미소를 지으며 하트를 보냈다.
다시 망원경을 내리자 조명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네.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까 너무 좋네요. 여러분도 좋으신가요?
중현이의 말에 팬들이 함성으로 답했다.
내가 멘트를 이어받았다.
-왜 갑자기 망원경을 들었나 궁금해하실 텐데, 공연장이 커져서 그렇습니다. 고척돔 진짜 크죠?
“네에에에에-!”
-공연장을 한 번 쭉 둘러봐 주세요.
팬들의 시선이 공연장을 쭉 훑었다.
잠시 텀을 두고 기다린 후, 우리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거 여러분이 만들어 주신 거예요.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함성이 되돌아왔다.
예상보다 격한 반응에 살짝 당황해서 마이크를 놓칠 뻔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멘트를 이어 갔다.
-239명과 함께한 작은 공연장부터 핸드볼경기장, 체조경기장, 그리고 여기 고척돔까지… 저희끼리 매년 그런 이야기를 해요. 야. 큰일 났다. 우리 이번에 공연장 저번보다 더 크다! 하고.
-공연장이 커질수록 행복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걱정이 드는 것 같아요. 뭔가… 행복한 책임감? 이런 행복한 걱정을 하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중현이의 말에 팬들이 미소를 지으며 환호로 답했다.
사실 방금 전에 했던 망원경 퍼포먼스도 그런 의미로 준비한 기획이었다.
공연장은 더 커졌지만 이전과 변함없이 당신이 어디에 있든, 우리가 당신을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막내가 씩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그런 의미로 공연장이 훠얼씬~ 커진 만큼 더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어야겠죠?
-맞습니다.
내가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번 투어에는 이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무대들이 나올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 드릴게요! 공연장이 커진 만큼 보여 줄 수 있는 것도 더 많거든요.
-그리고 저희의 개인 무대도 있습니다!
우리의 퍼포먼스가 이전보다 더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준비한 계획 중 하나였다.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개개인의 무대를 보여 주는 것 아니겠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지금 돌아오는 반응을 보니 팬들도 좋아할 것 같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네! 바로 다음 곡 가겠습니다! 저희가 첫 대상을 타게 된 곡인데…….
-다 함께 제목을 외쳐 볼까요?
바람꽃 대형으로 모이는 우리에게 수만 개의 별빛이 답을 해 주었다.
* * *
콘서트 초반부가 끝난 후.
인터미션 VCR이 흘러나오는 동안 백스테이지에서 왕지호는 고개를 젖히고 물을 들이켰다.
“후우…….”
전신 거울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혹적인 검은색과 붉은색이 돋보이는 의상이었다. 춤을 출 때마다 의상에 달린 술들이 흩날리는 그런 의상.
-와아아아아아.
무대 밖에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물을 들이켠 왕지호가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으아아아아아! 떨려 죽겠네.’
콘서트장이라서 정신을 똑띠 차린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며 멍 때렸을 것이다.
‘나는 막내일 뿐인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멘트할 때도 항상 형들 뒤에서 쏘옥 숨어서 재치 있게 몇 마디 남기고, 무대 할 때도 형들이랑 합을 맞추면 됐는데.
이제는 그가 혼자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었다.
팬들의 시선을 홀로 받아야 하고, 댄서들을 리드해야 하고.
지금부터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의 책임이었다.
‘우주 형, 진짜 빡세게 살고 있었구나.’
평소 이런 일을 도맡은 리더가 떠올랐다.
단순 퍼포먼스라면 비주가 팀 내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무대에서 벌어지는 돌발 상황은 모두 리더가 처리하곤 했다.
신인 때, 행사장에서 누군가 던진 물병에 꼬일 뻔한 동선을 슥 풀어낸다거나.
오디오 상태가 안 좋을 때, 센스 있게 멘트를 던져 분위기를 유쾌하게 풀어내서 더 분위기가 업 된다든가.
무대에서 눈빛 하나만 주고받아도 대충 어떻게 할지 서로 교감이 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눈빛을 교환할 사람이 없다.
“후우우우우우.”
왕지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미쳤지. 아주.’
개인 무대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반겼던 게 자신이었다.
16년도 연말무대에서 다른 아이돌과 합동 무대를 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거랑 비슷하겠지 생각했는데.
거의 3만에 달하는 팬들 앞에서 단독 무대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에이. 뭐 그냥 해 버려야지. 어쩌겠어.’
다행히 걱정이 짧은 타입이라 방긋방긋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슬슬 올라갈 타이밍을 기다리며 기지개를 쭉쭉 켜는데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빡세지?”
고개를 획 돌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홀딱 땀에 젖은 채 목에 인이어를 두르고 있는 맏형이 서 있었다.
“혼자 올라갈 거라고 하도 유세를 부려서 안 오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상태는 봐야겠어서.”
“에이, 뭐 하러 왔어여. 하나도 안 떨리는데.”
“여?”
“요. 요! 요!”
“악! 악! 악! 야!”
땀에 젖은 등짝을 찰싹 찰싹 때리는 막내의 매콤한 손맛에 맏형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떨리지?”
“아녀? 하나도 안 떨리는데?”
“에이. 솔직히 말해 봐. 너 엄청 떨리지?”
“…….”
“안 떨리면 그냥 간다.”
“아아아! 가지 마요!”
저도 모르게 나와 버린 그의 본심에 우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왕지호가 투덜댔다.
“꼭 그걸 제 입으로 들어야겠어요?”
“응.”
리더가 그를 툭 치며 은근하게 웃었다.
“기분이 어때?”
“이게 혼자 하는 무대라고 생각하니까 진짜 떨려 죽겠어요. 팬들 시선 받는 게 너무 무섭고.”
“너 원래 무대 공포증 없잖아. 무대 나댐증이라면 모를까.”
“3만 명이면 누구든 없는 공포증도 생겨여. 형.”
그 말에 상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호야.”
“넹.”
“내가 이번에 왜 개인 무대를 밀어붙였을 것 같아?”
“나 없이 한 번 엿 돼봐라…?”
“…….”
“…….”
슬쩍 눈치를 살핀 막내와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맏형이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꺄르르 웃었다.
우주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이 화상아.”
“진지한 분위기에는 내성이 없단 말이에요.”
“그래. 뭐… 아무튼 왜 개인 무대 하자고 했겠냐. 다들 혼자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추진한 거지.”
“그런가…….”
“지호야.”
“네.”
“너 잘해. 진짜로.”
뒷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무대 위로 올라가라는 뜻이 느껴졌다.
굳은 신뢰가 느껴지는 눈빛.
잠시 뭉클하던 왕지호가 미소를 지었다.
“근데 형.”
“응?”
“형이 이렇게 막 막내라고 어화둥둥 조언하고 그러면… 꼭 제가 프로 같지 않게 느껴지잖아요.”
“…….”
막내가 투덜투덜댔다.
“에이. 원래 혼자서 책임지는 멋진 가수로 영화처럼 올라가려고 했는데, 형이 등장하는 바람에 제가 막내가 되어 버렸어요. 에잉. 잘해도 이러면 형 조언 덕분에 잘한 게 되잖아요.”
“지호야.”
“네.”
리더가 생긋 웃었다.
“무대 콱 망해 버려라.”
“에베베베베~!”
“에베벱!”
꼴도 보기 싫다는 얼굴로 서로 에베베 하던 맏형과 막내가 멀어졌다.
곁눈질로 에휴 하면서 돌아가는 맏형을 슬쩍 바라보던 왕지호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역시나 오글거리는 감사 인사는 체질에 안 맞았다.
“후우…….”
VCR이 끝날 무렵이 되면서 의상을 갈아입은 댄서들도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들, 준비 다 됐어요?”
“네. 지호 씨.”
“리허설에서 한 것처럼 그대로 갈게요. 셋에서 둘 하는 순간 제가 먼저 들어갈 거예요.”
댄서들과 눈빛을 주고받은 왕지호가 리프트 위에 몸을 숙이고 앉았다.
입술 앞에 고정된 마이크 상태를 확인하고.
개인 무대 음악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타이밍을 재던 왕지호가 스탭에게 올려 달라는 손짓을 했다.
어두운 무대.
캄캄한 허공에 별들만이 반짝이는 곳에 리프트가 높이 올라갔다.
“후우우…….”
길게 심호흡을 한 지호가 고개를 슥 들면서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됐다.
* * *
스탭들 모니터로 현장 상황을 구경하던 우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으아아아아아!”
“으으으. 왜 내가 떨려. 짜증나게.”
“아이고오…….”
학예회를 구경하는 부모님들처럼 석환 형, 민기 형, 원석이 형을 비롯한 스탭들도 두 손을 모았다.
연약한 꼬마를 사자가 득실거리는 콜로세움에 내보내는 느낌이었다.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안고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강하게 키웠어야 됐는데.”
“그러니까요…. 야채도 많이 먹으라고 하고. 장난 칠 때도 좀 엄하게 키웠어야 했는데….”
“지호는 나보다도 연약해….”
리허설 때 잘하는 모습을 봤는데도 자꾸만 떨린다.
괜히 호들갑만 떨어 대면서 다들 모니터에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댈 때였다.
“오오오오……!”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의상을 입은 우리 서브보컬이 하늘 높이 솟은 리프트에 서 있었다.
리드미컬한 인트로에 조명이 교차되고.
머리를 살짝 털던 지호가 웨이브를 타면서 수플레들의 함성이 공연장을 뒤덮었다.
다시금 서서히 내려오는 리프트.
-Souffle-! 같이 놀 준비됐어요?
붉은 옷을 입은 십수 명의 댄서들이 합을 맞춰 주는 동안 돌출 스테이지로 걸어 나온 지호가 라이브를 시작했다.
춤사위가 제법 격한데도 음정에 흔들림이 없다.
중간중간 숨소리가 그 강도를 보여 줄 뿐.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활짝 웃는 지호의 모습에 팬들이 환호하고 우리도 안도했다.
차분하게 지켜보던 중현이가 나한테 말했다.
“지호 혼자서 저걸 다 부르는 게 되긴 되네요.”
“그러게.”
단체곡을 혼자 부르는데도 척척 해내는 막내의 모습에 우리가 손뼉을 마주쳤다.
“내가 키웠다.”
“솔직히 키운 시간으로 따지면 내가 더 길죠. 나는 쟤 더 어렸을 때부터 봤어요. 노래도 내가 다 가르쳐 준 거고.”
“나는 밥 해 줬는데…….”
“지호랑 자주 놀아줬지.”
서로의 지분을 강조하며 흐뭇하게 웃는 동안 우리도 다음 무대를 하기 위해서 의상을 갈아입고 이동했다.
백스테이지로 가까이 다가가자 함성이 더 잘 들린다.
정열적인 분위기로 넘어간 곡의 후렴구에 맞춰 지호가 의상의 붉은 술들을 흩날리는 동안 무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방방 뛰는 수플레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다.
“잘하네요.”
비주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잘한다니까.”
“이제는 혼자 무대에 세워도 되겠어요.”
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댄서들과 함께 무대에서 내려온 막내를 보고는 감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곡의 아우라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어른스러운 선이 도드라지는 미모였다.
짙은 눈썹 아래로 도드라진 눈이 우리를 향하면서 나와 졸개들이 미소를 머금었다.
“어때?”
슥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지호가 말했다.
“형들.”
“응.”
“저 절대 솔로 안 나갈 거예요!”
와장창.
“아, 개떨려! 앞으로는 그냥 솔로 무대 없이 그룹 무대만 하면 안 돼요? 으아니, 진짜 나… 어으으!”
촐싹대면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뭐.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 * *
몇 개의 무대가 끝나고 이번에는 비주의 개인무대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흠흠.”
왕지호가 짐짓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디 한번 평가해 볼까요. 우리 비주 형이 무대를 얼마나 잘할지……?”
“어휴. 건방이 하늘을 찌르네.”
“음~? 우리 미스터 서리혁? 저의 무대를 못 봤습니까?”
한숨을 내쉬는 리혁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왕지호가 으스댔다.
“저도 이제 프로다 이 말이에요. 으히히히!”
“넌 비주 형 못 이겨.”
“이길 순 없겠지만 이제 슬슬 비슷한… 그런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요? 후후후후! 비주 형과 저의 차이도 한 끗이다 이 말이에요.”
요만큼 하고 손짓하는 막내의 모습에 우주와 중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때면 쟤가 막내라는 게 실감이 난다니까.”
“내가 다 이겨도 김비주 무대는 못 이기는데.”
“…….”
편을 안 들어 주는 형들의 모습에 샐쭉하게 눈을 흘긴 왕지호가 시선을 옮겼다.
물론 알고는 있다. 그냥 진담을 살짝 섞어서 농담한 건데, 잔뜩 비웃기만 하는 형들이었다.
흥 하면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시작한다.”
보라색과 진홍색 조명이 촤악- 퍼져 나가면서 무대가 밝아 올랐다.
박수 치듯이 리듬감 있는 드럼 소리.
무대 소도구로 마련된 봉을 살포시 붙잡은 비주가 쩌렁쩌렁한 고음으로 도입부를 시작했다.
어지간한 보컬로는 엄두도 안 나는 고음이었다.
“…….”
실시간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막내의 모습에 형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퍼포먼스의 신이 빙의한 것처럼 춤을 추던 비주가 봉을 슥 뽑아 들자, 무대용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은은하게 빛나는 가운데, 지팡이를 든 비주가 어깨를 튕기며 걸어 나온다.
한쪽 눈까지 잔망스럽게 감는데 절로 박수를 치면서 ‘이거지!’ 할 뻔했다.
“어때?”
맏형의 약 오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허설에서 보던 거랑 또 다르지?”
“아니… 저 형은 보컬이 또 왜 저렇게…….”
춤은 또 왜 저렇고 늘었고.
고조되는 음악에 맞춰 댄서들이 지팡이를 들고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동안 비주가 고음으로 후렴을 불렀다.
수플레들이 신이 나서 방방 뛰는 모습이 다른 모니터로 보인다.
“저 형은 밥 먹고 춤만 추는 사람이라니까.”
“그러게여…….”
무대를 그야말로 찢고 있는 메인 댄서였다.
자신은 힘겹게 하드보드지를 찢듯이 끙차! 끙차! 했는데, 저 형은 무슨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이 무대를 찢고 있었다.
숙소 돌아가면 마저 연습이나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다음은 내 차례인가.”
“중현이 형 올라가요?”
“응.”
자리에서 일어난 중현에게 두 막내가 주먹을 내밀었다.
“잘하고 와요.”
“응. 고마워.”
두 손을 내밀어 살짝씩 맞잡아 준 중현이 우주와 함께 일어났다.
“형, 이제 가요.”
“나도 간다~”
“댕겨 와요~”
중현이 메인으로 랩 퍼포먼스를 하는 가운데, 우주가 중간에 들어가서 도와주는 무대였다.
“오늘 느낌 좋네요.”
“그러게. 느낌 좋다. 중현아.”
“최고의 무대가 나올 각이에요.”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라지는 형들의 목소리를 듣던 두 막내가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다가.
“어……?”
“어……?”
고개를 획 들어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방금 형도 들었어요?”
“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두 막내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는 다급하게 대기실을 뛰어 나갔다.
이미 갔는지 안 보이는 멤버들.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들의 모습에 신규 매니저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매니저 도원석이 침착하게 무전기를 건넸다.
“이걸로 말하면 들릴 거야.”
“아! 네!”
리혁이 무전기를 쥐고는 외쳤다.
“내 말 들려요? 지금 선우주 씨와 가까이 있는 분들은 이 무전기를 건네주세요!”
치이이익.
곧이어 선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선우주. 무슨 일이야?
“중현이 형이 방금 느낌이 좋다고 했어요.”
-뭐?
-치이이이익.
그와 함께 무전이 미친 듯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중현 씨가 느낌이 좋다고 했어? 어떤 느낌?
-오디오 장비 체크하겠습니다!
-지금 각자 원 위치에서 장비 체크할게요!
뉴블랙과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연출팀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신규 매니저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갸웃거렸다.
‘……예감이 드립이 아니고 진짜였어?’
느낌이 좋다 한마디에 모든 스탭이 심각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넷플러스 런칭 다큐멘터리 「The New Black : Making Waves」 中
콘서트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우주가 휴- 하며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미소를 지었다.
우주 : 저희와 처음 일하는 스탭 분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저희와 일할 때 다른 건 다 상관없지만 이거 하나는 꼭 믿어 달라. 그게 바로 중현이의 예감이거든요.
곧바로 화면이 콘서트장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