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26)화 (62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26화

무전이 시끌벅적해지면서 스탭들이 난리가 났다.

“야야! 조명들 다 확인해 봐! 트러스 접합 부분도 한 번씩 쭉 둘러보고!”

“의상들 확인하겠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을 보며 목을 축이던 중현이가 살짝 어깨를 내려뜨렸다.

“좀 민망하네요. 말 한마디 했다고 스탭들이 다 뛰어다니고 그러니까.”

“혹시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잖아.”

“저는 그저 느낌이 좋다고 말했을 뿐인데…….”

“중현아. 작년에 아이무브 기억하니? 비주 첫 공연한다고 우리가 응원해 주러 가던 날 말이야.”

그날 중현이가 예감이 좋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비주를 놀래키려고 숨은 순간,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면서 식탁 밑에 갇혔지.

-바퀴벌레다아아아아! 으아악!

일명 ‘뉴퀴벌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중현이가 수긍했다.

“저도 좀 궁금하긴 해요. 제가 말을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제가 감이 좋은 건지.”

“감이 좋은 쪽 아닌가?”

“그렇겠죠?”

중현이와 훈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긍정적인 에너지나 충전해 보자. 우리.”

“끝나고 치킨 반반 시켜 먹을래요.”

“받고 족발.”

“보쌈도 추가요. 설마 족발만 먹고 보쌈은 안 먹는 건 아니죠. 형?”

“당연하지.”

먹을거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고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합창단원들에게 다가갔다.

“잘 부탁드려요!”

“네!”

계단식 구조물에 앉아 있는 합창단원들이 꺄르르 웃으며 반겼다. 리허설 때도 몇 번 봤지만, 여전히 우리가 신기한 눈치였다.

유명 시립합창단에서 온 분들.

이따가 중현이와 내가 랩 퍼포먼스를 하면서 하이라이트에 이르렀을 때, 문이 촤악 열리면서 합창단이 코러스를 불러 줄 예정이었다.

“우주야.”

콘서트 감독님이 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일단 체크할 수 있는 데는 다 체크해 봤는데,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안 보이는 것 같다.”

“고생하셨어요. 감독님.”

“중현이 말이면 일단 확인하고 봐야지.”

감독님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고는 백스테이지 아래에서 대기했다.

지진이나 화산이 분화하면 동물들이 미리 도망친다고 하던데, 아마 중현이가 보여 주는 놀라운 예지력도 그런 쪽이 아닐까 싶었다.

가끔 킁킁거리면서 무대가 평소와 다른 것 같다고 하면, 불꽃을 뿜는 장치의 화약량이 다르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하여튼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비범하다.

“형. 그럼 저 먼저 올라갈게요.”

“바로 합류할게.”

중현이가 무대로 올라가자 이번에는 비주가 내려왔다.

잔뜩 땀에 젖은 비주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었다.

“잘했어.”

“고마워요. 형. 쪼금 있다가 봐요!”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달려가는 비주를 보고는 나도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

-Yeah.

중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플레들의 함성이 터졌다.

검은 후드티에 모자를 눌러쓴 우리 래퍼가 중저음으로 랩을 이어 갈수록 함성이 더 커져 간다.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허허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잘한다. 우리 셋째.”

수록곡 중에 이라는 곡이었다.

자칫하면 박자 놓치기 쉬워서 라이브가 꽤 어려운 트랙인데도 능숙하게 소화해 내고 있는 중현이었다.

랩 퍼포먼스가 공이라면, 지금 중현이는 그 공을 늘였다가 줄였다가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움직이며 재미있게 자기 솜씨를 뽐내는 느낌이다.

“우주 씨, 이제 올라가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스탭의 수신호에 맞춰서 리프트에 탔다.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랩 가사에 맞춰서 리듬을 익히는 동안, 딱 절묘한 타이밍에 리프트가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강하게 내리쬐고, 수플레들의 함성이 피부에 닿아 저릿저릿했다.

마이크를 빙글빙글 돌리며 중현이의 랩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은 중현이가 쓴 곡인데, 노킹 온 헤븐스 도어라는 유명곡에서 유래한 제목이었다.

울적한 기분으로 지내는 ‘너’에게 내가 들어갈 문을 열어 달라며 조심스럽게 노크하는 그런 내용. 갈등과 화해를 다루는 3부작 앨범에서 화해를 다룬 이번 앨범에 어울리는 수록곡이었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 유래한 곡이기도 했다.

-중현아.

-네. 형.

-비주 방 앞에서 뭐 하니.

-계속 노크하는데 답이 없는 걸 보니까… 김비주가 저 때문에 화가 나 있나 봐요. 화 풀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비주 집에 없는데?

-어, 진짜요?

-이야. 우리 중현이, 스스로와의 싸움을 하고 있었구나.

열리지 않는 문에 대한 감정을 담아 나와 중현이가 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할 때였다.

‘음……?’

무대 옆쪽에서 스탭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무언가 당황스러운 기색들.

인터컴을 낀 스탭이 손을 미친 듯이 움직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감독님이 정신이 아찔해진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감독님과 내 눈이 마주쳤다.

‘문! 문!’

입 모양으로 ‘문’을 말하면서 문을 가리키는데 아마 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그런 모양인 듯했다.

살짝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동안 중현이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 중현이와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   *   *

수플레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동안 콘서트 스탭들은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이제 슬슬 열려야 되는데……!’

서서히 문이 열리면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합창단이 의 후렴구를 함께 불러 줘야 할 때였다.

그런데 문이 작동을 안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문이 열리려다가 뭔가 걸려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야! 이거 수동으로 못 열어?”

“수동으로 전환이 안 돼요! 잘못 건드렸다가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어요.”

스탭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였다.

‘악몽이야. 이건 완전 악몽이야.’

리허설부터 지금까지 수십 번 넘게 잘 작동하던 문이 왜 갑자기 말썽이란 말인가.

연출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뛰어갈 때였다.

뚜벅뚜벅.

랩 퍼포먼스를 하면서 걸어온 우주와 중현이 문을 살피면서 문 양쪽에 섰다. 열리려다가 말아 버린 문.

“……?”

우주와 중현이 감성적인 느낌의 랩을 주고받았다.

열리지 않는 문

이 문을 내게 열어 준다면

두 멤버가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슬퍼하는 애드립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에 맞춰 감독이 빠르게 합창단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하던 바로 그 순간.

문을 슬쩍 살피던 중현이 퉁, 하면서 문을 살짝 건드렸다.

그리고.

“얼레……?”

문이 양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오.”

“여, 열린다……!”

“열리네.”

바닥 레일에 걸렸던 것이 해결됐는지 문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무전기를 놓칠 뻔한 감독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다른 곳에 있다가 달려온 조연출을 불렀다.

“야. 재준아.”

“네, 감독님! 근데 저거 어떻게 열…….”

“저거 문짝 하나가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했지?”

“글쎄요. 저거 다루는 데 열 명이 달려들었나? 무게가 하도 나가서 엄청 애먹었거든요.”

“중현이가 살짝 밀어 버리니까 열리던데?”

“예?”

“열었어. 중현이가.”

“…….”

“…….”

활짝 열린 문을 보는 연출자와 조연출의 눈동자에 경외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   *   *

팬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퍼포먼스 대박이다…!’

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중현과 우주가 랩을 하는 것도 좋았는데.

동적인 퍼포먼스도 너무나 좋았다.

정말 열리지 않는 문이 갑갑하고 답답한 것처럼, 문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아이돌의 모습이 눈에 콕 박힌다.

‘언제 이렇게 표정 연기들이 또 늘었지?’

원래부터 연기력이 뛰어난 편인 우주는 오늘 유닛 무대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열리지 않는 문 위에 손을 얹은 채 정말로 슬퍼하는 표정.

로맨스 드라마의 남주가 비를 맞으며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그런 장면이 연상됐다.

‘중현이도 대박…….’

비주얼이 비주얼이라 그런 걸까.

여주를 만나러 온 서브남주 본부장이 답답한 마음에 넥타이를 풀면서 문 앞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찌나 답답해 보이는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문을 두드리던 중현이 툭 하고 문을 쳤다.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문이 활짝 열리면서 수십 명의 합창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 코러스를 합창단이 부르면서 무대에 아름다운 색채가 깃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두 멤버의 입가에는 햇살을 쐬는 꽃들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퍼포먼스가 끝나고 유닛 무대를 보여 준 두 아이돌이 내려간 후에도 그 열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늘 진짜 제대로 미쳤구나!’

멤버들의 합동 무대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 무대도 수플레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스물을 맞이해서 정열적이고 도발적인 춤을 보여 준 지호의 무대도 좋았고.

등의 프로그램 출연으로 춤 경험치를 더 쌓은 비주가 자신의 기량을 뽐내던 무대도 너무나 좋았고.

그리고 지금은 더할 나위 없었다.

“와. 대박.”

“미친… 방금 중현이 표정 봤어요? 이거 콘서트만 아니었으면 사진 억만 개 떠다녔을 거 같은데.”

“이건 분명히 규호가 DVD 사라고 부린 술수예요.”

어둠 속에서 달봉이들이 흔들리며 수플레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방금 문 안 열릴 때, 진짜 안 열리고 그러는 줄 알았다니까요. 콘서트 몰입감 대박이다.”

“그니까요.”

보통 덕후 렌즈라고 불리는 필터를 쓰고 있기에 최애들이 무슨 공연을 하든 간에 좋게 보는 것이 아이돌 팬이기 마련이지만.

방금 무대는 어떤 심사위원을 데려와도 극찬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 안에 진실함이 가득했으므로.

‘진짜 뉴블랙의 미래가 밝다.’

처음에는 어워드 등에서 솔로로 서는 것도 어려워했던 멤버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개인 무대를 해내고 있었다.

‘행복해.’

수플레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   *   *

“허억……. 아이고야.”

대기실 소파에 앉아 긴 숨을 내쉬었다.

긴장감 가득했던 분위기가 풀려서 그런지, 콘서트 스탭들과 우리 멤버들 모두 표정이 밝았다.

감독님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확인해 보니까 이물질이 들어가 있었더라고. 그것 때문에 바닥에 레일이 살짝 걸려 있는 상태였나 봐.”

“지금은 괜찮은 거죠?”

“응. 다행스럽게도…….”

책임자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감독님에게 손을 내저었다.

“감독님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잖아요. 이물질이 들어가는 건 우리 통제를 벗어난 일이기도 하고.”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관리 감독에 좀 더 신경을 쓸게.”

“네,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오늘 공연이 끝나고 피드백 회의를 할 때, 다시 안건에 대해 다뤄 보자고 이야기하고는 마무리를 지었다.

딱히 책임 소재를 따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는 태평하게 젤리를 뒤적이는 중현이를 바라보았다.

“중현아.”

“네.”

“너 어떻게 열었어…?”

“바닥에 뭐가 걸린 것 같길래 살짝 쳤어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했는지가 궁금했던 건데, 그냥 느낌으로 알았다는 말과 그저 웃으며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중현이니까.

나중에 천재지변이 벌어지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생기면, 할머니 데리고 중현이네 집으로 피신해야겠다.

“후우… 그래도 무사히 넘어갔다.”

“천만다행이에요.”

중현이가 미리부터 예고해 줘서 그런지 모두 대처가 빨랐다.

물론 문이 안 열린다고 해서 콘서트에 대참사가 벌어지거나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문이 닫힌 상태로 합창단원들이 노래를 불러서, 수플레들이 ‘와 사운드 현장감 대박이야!’ 하고 합창단원 분들이 눈물을 흘리는 정도.

물론 우리도 같이 울고.

그런 일이 없었으니 천만다행이었을 따름이었다.

“에구구구.”

긴장 때문에 욱신거리는 근육을 주무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모니터 속 무대를 보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무대 위에서 리혁이가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잘하네.”

“리혁이도 많이 늘었어요.”

단순히 보컬 실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더 늘고 있지만 리혁이의 보컬은 처음부터 거의 완성 상태에 있었으니까.

지금은 기교와 노하우 부분들이 계속해서 축적되어서 다듬는 그런 정도였다. 연말 무대에서도 차우현, 장소원 같은 라이브 잘하는 선배들과도 무대를 서도 안 밀리는 게 우리 메인 보컬이니까.

굳이 흠을 잡아 단점을 꼽자면…….

분위기 잡는 건 잘하는데, 무대에서 팬들과 환히 웃으면서 소통하는 그런 쪽에 조금 약하다는 점 정도.

그런데 그마저도 이젠 옛말이다.

“예전이랑 분위기가 확 다르지 않아?”

“훨씬 밝아요.”

블링블링한 콘서트 후드티를 입은 리혁이가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며 마이크를 쭉 뻗고 있다.

[다 같이!]

손뼉을 치면서 팬들에게 호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도 하고.

활짝 웃으며 팬들을 바라보는 리혁이의 뺨에 발그레한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몸을 살짝 꺾으며 고음을 올리는 우리 메인 보컬의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팬들이 함성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돌출 스테이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팬들을 검지로 가리키며 웃기도 하고.

“가끔 저런 거 보면 악령이 빙의한 거 같아. 알고 보면 진짜 리혁이는 다른 곳에서 구해 달라고 하고 있고.”

“악령이 아니라 천사 아닐까요. 형.”

“아, 그러네.”

‘천사야! 얼른 리혁이의 몸에서 썩 나가거라!’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만큼 밝게 무대를 누비는 리혁이었다.

“저희 왔어요.”

비주와 지호가 어깨를 조물조물하며 들어왔다.

어깨가 뭉쳐서 트레이너 쌤한테 스포츠 마사지를 받고 왔다고 했는데, 방금 끝나고 돌아온 듯했다.

“리혁이는 무대 잘하고 있어요?”

“응.”

이따가 돌아오면 어떤어떤 포인트가 좋았다고 칭찬해 주라고 몇 가지 지점을 짚어서 말해 주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다녀올게.”

“다녀와요. 형. 조심하고요.”

“응.”

잘하고 오라는 동생들에게 손을 마주 흔들어 주고는 복도를 나섰다.

떨린다.

숨이 잘게 떨려나오면서 꼭 누가 앉아 있는 것처럼 어깨 부근이 묵직한 느낌이 든다.

근육이 뭉쳐서가 아니라 긴장해서였다.

동생들이 홀로 무대 올라갈 때마다 웃고 그랬는데, 막상 올라갈 차례가 되니 나도 떨린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이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아닌데! 스물다섯이면 반오십인데!

-반오십!

-뭐야. 저 사람 반오십이래.

-대충 웅성웅성.

눈앞에서 돌아다니는 듯한 동생의 정령들을 물리치고는 백스테이지를 향해 걸어갔다.

스탭들도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준비는 잘 됐죠?”

“응.”

“리허설에서 했던 그대로 가야 돼요.”

실수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아 강하게 어필하는 나에게 감독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내 개인 무대에는 처음 써 보는 무대 장치를 동원한다.

제대로 사용하면 엄청 멋지지만, 자칫 허술하게 사용하면 위험성이 있는 장치.

“후우…….”

몸을 풀면서 댄서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을 때.

한창 무대를 휘젓고 내려오던 주홍색 머리의 불순분자와 눈이 마주쳤다.

“올라가요?”

“응.”

“잘할 거예요. 그리고….”

살짝 긴장한 나를 보던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뭐 해?”

“올라가기 전에 잠깐 줄 게 있어서요.”

“응?”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리혁이가 손가락 하트를 꺼내 뿅 날려 주었다.

“오다 주웠어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진짜 많이 컸다. 서리혁.

*   *   *

이제 개인 무대의 마지막이었다.

리혁이 달달하고 상큼한 노래로 분위기를 한껏 업 시킨 상태라 그런지 수플레들의 얼굴에 행복이 감돌았다.

‘나 여기서 살래…!’

마트에서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어린이처럼 고척돔 바닥에 드러누워서 바둥바둥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기대감이 한껏 치솟았다.

멤버별 상징 컬러 때문에 지호, 비주, 중현, 리혁 순으로 진행되었던 컬러풀한 무대들.

이제 그 마지막 보라색을 볼 차례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악-!”

자주색과 보랏빛으로 얽혀드는 조명이 비산하는 동안 VCR 속에서 금발을 흩날리는 미남이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헉! 하는 숨소리가 나오면서 작게 공감하는 웃음이 흘렀다.

‘미쳤다.’

‘피그말리온이 남캐를 조각했다면 분명 선우주가 나왔을 것.’

‘내가 저 얼굴이면 개그 안 해.’

보랏빛이 가득한 VCR에서 선우주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먼 곳을 바라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머리카락이 금발이라 그런지 꼭 만화에 나오는 귀공자 같다.

‘극락이다… 극락이야…….’

최후의 만찬처럼 차려진 테이블에 홀로 앉아 식사하는 귀족적인 장면이 흘러나온 후.

Empire가 타이틀이었던 정규 1집의 수록곡 ‘Raven’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흑조를 상징하는 듯한 의상을 걸친 리더가 걸어 나오는 동안, 곁에 서 있는 댄서들이 야성미 넘치는 군무를 펼친다.

‘허어어어…….’

곧이어 무게감 있고 품위 있는 안무가 우주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갈까마귀처럼 춤을 추는 리드 보컬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잠시.

입을 틀어막고 감격하던 수플레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우주의 곁에 댄서들이 달라붙어서 무언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줄?’

로프 같은 것을 보고 눈을 깜빡일 때였다.

‘어?’

후렴구에 맞춰 우주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면서 곳곳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무대 장치에 이끌린 리더가 활공하듯이 날아오르면서 3층과 4층에 있는 관객들이 숨을 삼켰다.

와이어 플라잉.

“……!”

무대 위의 한 점과 같았던 미남이 순식간에 가까워지면서 그 얼굴이 가깝게 들어왔다.

하늘을 걷듯이 움직이는 최애의 모습에 팬들이 숨을 삼켰다.

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미남과 눈이 딱 마주쳤다. 크게 외친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

‘우, 우주야!’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과 당황스러움, 혼란함이 겹친 팬들이 어어어 하고 손을 뻗었다.

‘우주야! 너 진짜 예쁘고 대박이고, 진짜 이거 무대 최…….’

‘어어어!’

‘지나간다! 아씨! 그! 그!’

그래서 나온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그 시발! 아니… 아니! 아!”

이게 아닌데!

다 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스으윽 멀어지는 최애의 모습을 보며 꼭대기층에 있는 팬들이 쪼르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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