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0)화 (63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0화

김비주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제가 이걸 입어야 하나요?」

「그럼요! 아가씨!」

하녀들이 건네준 드레스를 본 김비주의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 이거 진짜 입어야 되나?

벌써부터 TV에 방영되어서 민준이가 ‘형 드레스짤 보기 싫어!’ 하면서 문자를 보낼 것이 걱정됐다.

아니.

당장 멤버들이 배를 잡고 웃을 것이 분명했다.

“후우.”

하녀들이 나가고 홀로 남은 방에서 김비주가 창가에 다가가 심란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비련의 주인공 같은 표정.

이내 김비주가 고개를 저었다.

“불평하면 안 돼.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지.”

멋진 것을 하지 못해서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금세 수긍하는 타입이었다.

김비주가 드레스에 박힌 보석들을 매만지며 미소를 지을 때였다.

“음?”

창밖에서 통해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린다.

칼들이 챙챙 부딪치는 소리.

커튼을 슥 젖히고 바깥을 바라보자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구석에 있는 익숙한 사람도 있다.

막대기를 쭉쭉 휘두르면서 땀을 흘리는 메인 보컬이었다.

“리혁이?”

슬픈 얼굴로 검을 휘두르는 동생의 모습에 비주가 어머 하고 손을 올렸다.

“나 정도면 진짜 선녀인 거였구나.”

갑자기 손에 들린 옷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그럴 때, 연무장에 있던 기사단장이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하하하하하! 레이디! 좋은 아침입니다!」

비주는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연무장 쪽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고는 곧바로 역할 놀이에 들어갔다.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기.

그러자 배우들이 찰진 리액션을 해 줬다.

「세상에! 레이디가 나를 향해 윙크해 주셨어!」

「아니야! 나를 보신 거야!」

「이 녀석들! 레이디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냐! 얼른 수련으로 돌아가지 못해?!」

“호호호.”

그렇게 웃던 비주가 스스로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동안, 연무장에서 뚱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

김비주는 시선을 피했다.

*   *   *

“음. 옷은 다 갈아입었는데…….”

김비주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나가는 문을 잡았다.

“어라?”

문이 안 열린다.

밖에서만 열도록 되어 있는 듯한 느낌.

왠지 단서를 찾으라고 판을 깔아 주는 듯한 느낌에 김비주가 주변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단서를 찾으라는 거겠지? 그래. 단서를 찾아보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서랍장부터.

“특별한 건 없네.”

평범한 거울과 서랍장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도 옷이나 장신구들이었다.

무대 소품들이 분명했지만 희한하게도 그에게 딱 맞는 사이즈였다. 반지도 사이즈가 딱 맞고.

그런 식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침대 아래쪽을 살펴볼 때였다.

“어?”

단서가 하나 있었다.

에메랄드가 박힌 보석 반지였다.

그런데…….

“이건 왜 내 손가락에 안 맞지?”

누군가 떨어뜨린 반지일까.

왜 침대 아래에 이게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머리카락도 하나 떨어져 있다.

“금발이네.”

김비주의 시선이 멀찍이 걸려 있는 가발로 향했다. 그와 똑같은 핑크색으로 되어 있는 가발이라 당연히 색이 다르다.

“이건 어디서 나온 머리카락이지?”

그 말인즉, 이 방의 주인이 원래 따로 있는 건가?

“으으으음.”

턱을 쓰다듬은 비주가 고민했다.

“으으으으음.”

그의 추리로는 여기까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김중현이 먹고 있던 초코바나 잔뜩 먹을 걸. 당이 떨어져서 머리가 안 굴러가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추리를 하던 김비주가 중얼거렸다.

“리혁이라면 여기서 뭘 했을까?”

상황 판단 능력이나 두뇌 쓰는 능력은 리더가 월등하지만, 이런 식으로 퍼즐 맞추기는 메인 보컬의 장기였다.

“아! 그래서 내가 공주님이 된 건가? 리혁이가 공주님 하면 이미 단서 다 찾아서 탈출하고 그랬을 테니까.”

하녀들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대한 단서를 찾아야 한다.

머릿속으로 메인 보컬과 가상의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을 하며 김비주가 정신을 집중했다.

“리혁아.”

-왜요. 나 바쁜데.

텅! 하고 머릿속의 방문이 닫혔다.

“엇. 거부당했다.”

이게 아닌데.

김비주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예쁘다. 우리 서리혁.”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제가 비주 형이니까 부탁 들어주는 거예요.

“그래.”

-말해 봐요.

“나 탈출해야 되는데 도와줘. 단서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음. 그건 말이죠.

머릿속 리혁이가 갑자기 가면을 벗었다.

-사실 난 김중현이었음.

“야!”

머릿속 김중현을 팍팍팍 등짝을 때린 김비주가 눈을 떴다.

“아… 리혁이를 떠올렸는데 김중현이 나와서 실패했어요. 여러분.”

본래 두뇌가 이런 추리와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김비주가 상상한 서리혁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숨은 그림 찾기라고 생각해요. 같은 것 중에 다른 게 하나 있으면 그게 단서가 될 거예요.

리혁이로부터 아침에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무언가 감이 온 김비주가 서랍장으로 다가가서 서랍을 살폈다.

서랍장 모두가 같은 길이로 들어가 있는 가운데, 유독 살짝 튀어나와 있는 서랍이 있었다.

“이거구나!”

그 말인즉 서랍 뒤편에 무언가 있어서 서랍이 끝까지 안 들어간다는 이야기였다.

김비주가 서랍을 쭈욱 잡아당겨서 그 뒷부분을 더듬었다. 두툼한 가죽 감촉.

“책이다!”

책과 무전기가 스카치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다.

무전기를 드레스 품에 집어넣은 비주가 책을 촤라락 펼쳤다. 영어면 어쩌나 당황했는데 거기에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H’라는 이니셜이 책 위쪽에 네임펜으로 쓰여 있고.

양장본으로 된 책 <왕녀님이 제일 쎄>라고 되어 있는 책 첫 장에 이런저런 메모들이 적혀 있었다.

—눈을 뜨고 보니 책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마도 로맨스판타지 소설 <왕녀님이 제일 쎄>에 나왔던 남자주인공의 성에 온 것 같다.

—북부 대공 에릭 왐피르와 왕녀 세라피아 유스틴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로맨스 소설.

—성의 주인인 공작을 만났다. 그는 내 생각보다 더 잘생긴 인물이었다. 세라피아가 사랑에 빠질만했다.

그 뒤로 이런저런 내용이 있었지만 배경설정은 전체적으로 알아들었다.

로맨스 소설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모양인데 그러다가 일이 틀어진 모양이었다.

—반드시 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 이 성을 탈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김비주가 책을 휘리릭 둘러보았다.

소품으로 된 책인지 큼직한 글씨체로 간략한 초반부 스토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책이 중반부부터 찢겨져 없었다.

“반쪽밖에 없네. 나머지 반쪽은 찾으라는 거겠지?”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일단 배경설정은 파악했다.

이따가 멤버들을 만나면 이에 대해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드레스 포켓에 책을 넣었다.

그러고는 무전기를 한 번 켜 보았다.

치이이익.

‘말을 하면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김비주가 음흠흠~ 하며 Coin의 테마를 허밍하듯이 흥얼거렸다.

바로 그때.

[뭐야. 김비주냐?]

비주가 눈을 크게 떴다.

김중현으로부터 들려온 답신이었다.

*   *   *

김중현은 안대를 오픈했을 때, 지하에 있는 아주 거대한 빨래방에 있었다.

“와.”

박쥐 수트를 입은 히어로가 살 법한 동굴이었다.

동굴에서 따끈한 폭포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여기서 고용인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외국 분들이시네.’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 다가왔다.

「이봐! 뭘 꾸물대고 있는 거야? 새로 온 일꾼이면 일꾼답게 일을 하란 말이야!」

「뭘 하면 되나요?」

「저 빨래들을 옮기도록 해.」

「네.」

엄청나게 많은 빨래들이 보였다.

아마도 제작진이 여기서 잠시 일을 하면서 단서들을 파악하라고 주는 듯했다.

‘일단 일부터 해야지.’

행복한 고구마처럼 웃은 중현이 빨래 바구니로 다가갔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도 열 번 정도는 왕복해야 될 만큼 많은 양이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대화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번에 정신을 잃고 숲에서 발견했다는 아가씨 말이야. 얼굴 본 적 있어?」

「아니.」

「공작님이 아주 홀딱 반하셨다나 봐.」

「공작님이? 그럴 리 없을 텐데, 이 험난한 북부에서도 냉철하기로 소문난 우리 공작님이?」

중현의 머릿속에서 단서들이 들어왔다.

“음. 북부 공작이 숲에서 주워 왔다. 아가씨. 공작님은 쉽게 반하지 않지. 그런데 반했지.”

대충 랩처럼 흥얼거리며 단서를 외웠다.

「그런데 저번에 우리 성을 방문했던 아가씨는 어떻게 됐어? 왜 저번에 그 영애님 말이야.」

「글쎄. 자기 영지로 돌아갔다는 것 같은데.」

김중현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바구니를 들어 보았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냥 한 번에 옮길까.”

김중현이 바구니를 차곡차곡 쌓는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 그렇게 피사의 사탑이 쌓였을 때.

“끙차.”

김중현이 한 번에 빨래를 들었다.

빨래터에 감도는 정적.

감독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급하게 다가왔다.

「이, 이봐! 한 개씩 해야지.」

「괜찮습니다.」

그리고 김중현이 걸음을 떼는 순간, 연기자들의 목소리가 미친 듯이 속사포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글쎄. 이번에 말이야. 새로 들어온 기사 수련생 봤어? 허약해서 검도 못 들게 생겼더만.」

「숲에서 그 아가씨를 발견했다며?」

「이번에 새로 시동으로 들어온 녀석이 아주 접시를 기깔나게 닦는다는구만…!」

중현은 발걸음을 성큼성큼 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안 돼!’

‘제발 천천히 가. 천천히.’

‘대사 많이 남았다고!’

연기자들의 애절한 눈빛이 읽혔다.

중현이 한 발짝 뗐다.

‘이게 아니야?’

여전히 애절한 눈빛.

‘그럼 이렇게?’

중현이 보폭을 줄여서 촙촙 걸었다.

그제야 연기자들이 속이 다 시원하다는 얼굴로 편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중현이 단서를 들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대충 우리 멤버들 모두 위장취업을 한 거고, 아가씨가 있는데 그 아가씨를 구출해야 하는 거네.”

일을 빠르게 끝마친 중현은 그 이후로도 단서를 들으면서 시키는 일을 누구보다 빠르게 척척 해냈다.

잠시 쉬는 시간을 받은 중현이 동굴에 흘러내리는 폭포 쪽을 바라보았다.

물속에 기찻길이 있다.

‘뭐지. 레일도 설치되어 있는 것 같고.’

저 폭포수 속에서 후룸라이드가 떨어져 나오는 건가?

주의 깊게 살폈지만 이 자리에서 저 폭포 안으로 들어가 탐사할 방법이 없긴 했다.

아니.

저 벽을 기어오르는 것이야 쉽게 가능하긴 한데… 그렇게 해서 주목을 끌면 안 될 것 같았다.

“흐으음.”

중현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이봐!」

「네. 나으리.」

감독관이 그에게 무언가 끼적인 종이를 건네주었다.

「심부름이 하나 있다.」

「네, 맡겨만 주십쇼. 나으리.」

「이 종이를 가지고 3층에 올라가면 집사 나리가 계실 거다. 집사님께 이 종이를 건네드려라.」

「네.」

「그리고 오는 김에 1층에 있는 기사단에 가서 신규 수련생 킴중현에게 이 옷을 건네줘라.」

「네?」

중현은 난데.

또 다른 중현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의문스러운 구석이 있긴 했지만 상대 배우로부터 ‘더 이상 묻지 마… 묻지 마’ 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네.」

중현이 푸근한 얼굴로 종이를 받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성 내부를 살피면서 오오오오 하던 중현은 시키는 대로 집사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나이 지긋한 집사가 집무실에 앉아 그가 건네주는 편지를 받아 들었다.

「수고했다. 나가 봐라.」

「예. 나으리.」

꾸벅 인사한 중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다시금 1층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끼이이이익-

음산한 소리와 함께 집사 집무실 옆방의 문이 열렸다.

마치 ‘꼭 들어와 주세요’ 라고 하는 듯한 느낌에 중현이 곧바로 그 방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조명 없이 컴컴한 방이었다.

마치 고급스러운 창고 같은 공간.

오래된 갑옷과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고, 흑룡이 그려진 태피스트리도 벽에 길게 걸려 있었다.

“전부 다 용이네.”

방패나 갑옷마다 드래곤이 새겨져 있었다.

태피스트리에 쓰여 있는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용의 피를 물려받은? 뭐 그런 건가. 서양도 비슷하구나.”

한국에서만 알에서 태어나고, 환웅의 자손이고 그런 줄 알았는데 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서양판 박혁거세인 모양이다.

“리혁이랑 우주 형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박물관 같은 보물 보관실을 돌아다니던 중현의 시선이 구석에 멈췄다. 비교적 새 것으로 보이는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 걸려 있는 자물쇠 하나.

비밀 번호가 네 자리로 되어 있다.

주변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카메라들이 느껴졌다.

“뜯으면… 안 되겠죠? 뜯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해야 되겠죠…? 뜯으면 재미있겠지만 뜯으면 안 되겠죠?”

대답은 없었지만 제작진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김중현이 상자를 바라보았다.

왠지 세게 힘을 주면 뜯길 법한 자물쇠.

마치 책상에 지우개로 선을 만들어 넘어오지 말라는 것처럼, 이 자물쇠도 뜯으려면 뜯을 수 있지만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 쓰는 건 사절인데…….”

비밀번호 네 자리가 뭘까.

“0718… 아니네. 0619도 아니고. 1109? 우주 형 생일도 아니고.”

멤버들과 연관된 것을 생각하던 김중현이 아 하며 상자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자 떨어진 양피지 하나가 보였다.

한글로 쓰인 글자.

[쭈꾸미. 한치. 낙지.]

중현이 한참을 고민했다.

“……맛있다?”

그런 말을 하며 카메라를 바라보았지만 ‘맛있는 게 답이겠니?’ 하는 답이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중현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기를 10분.

“나한테 이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 거야. 내 특기를 활용하라는 건데…….”

한참을 고민하던 중현이 무언가를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왜 3개지? 비밀 번호는 4자리인데…….”

무언가 잡힐 듯 말 듯했다.

“아.”

그거였다.

다리 숫자.

“쭈꾸미는 다리가 8개. 한치는 다리가 10개. 낙지 다리 8개…….”

그러므로 비밀번호는 8108.

중현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누르자 딸깍 하고 상자가 열렸다.

“토막상식이에요. 여러분. 문어 계열은 대체로 다리가 8개이고, 오징어 계열은 다리가 10개랍니다. 쭈꾸미는 문어같이 생겼으니까 8개 이렇게 기억하시면 돼요.”

카메라를 향해 푸근하게 웃던 중현이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오.”

무전기가 들어 있었다.

김중현이 무전기를 들어서 요모조모 살피고 있을 때였다.

치이이이익.

무전기가 울리더니 누군가의 허밍이 울려 퍼졌다. 김중현의 눈이 반가움에 크게 뜨였다.

“뭐야. 김비주냐?”

[야!]

“너 어디야? 괜찮냐?”

[나 괜찮아. 너는?]

“나도 괜춘.”

모르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부대껴서 그런지, 김비주의 목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고 따스웠다.

왠지 모르게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끼며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 아가씨 구하는 게 목표인가 봐. 공주님이 갇힌 탑 찾아야 나갈 수 있는 건가?”

[야. 그게 있잖아…….]

“어?”

[아가씨가 나야.]

“…….”

휘잉- 하고 찬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탑에 갇힌 비련의 공주님을 상상했던 중현은 짜게 식어 버린 기분을 느꼈다.

“네가 왜 아가씨야?”

[몰라. 여기 사람들이 아가씨래. 나 보고.]

“아. 맞다. 아까 빨래터에서 들었는데 너를 숲에서 주운 공작님이 너한테 반했대.”

[왜?]

“모르지. 네가 취향인가.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사람이네.”

[근데 나 지금 되게 예뻐.]

“…….”

[분장하고 나서 거울 보니까 진짜 아가씨 된 거 같아. 수련회 때 하는 그런 여장이랑은 또 달라. 진짜 대박임.]

김중현이 으 하며 몸서리를 쳤다.

절친이 여장한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정보가 있으니 곧 만나서 이야기 나누자는 이야기를 할 때.

[맞다. 리혁이는 지금 운동장에서 막대기 휘두르던데.]

“그래?”

[응응.]

“리혁이가 거기 왜… 아. 맞다. 나 심부름 있는데 가야 되네. 이따 또 연락할게.”

[응.]

그런 말을 하며 무전기 전원을 끄려고 할 때,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김중현 씨.]

“네. 김비주 씨.”

[사랑합니다. 브라더~]

“예. 저도 사랑합니다~ 브로~”

훈훈하게 무전을 종료하고는 아마 이곳 세상과 불화설을 일으키고 있을 서리혁에게 가기로 했다.

‘리혁아! 형이 구하러 갈게!’

지금쯤 리혁이는 위기에 처해 있을지도 몰랐다.

시대상을 파악하겠다면서 중세 영어를 쓰면서 귀찮게 굴어서 감옥에 갇히게 될 수도 있고.

그건 내가 아는 중세검술이 아니라며 행패를 부릴 수도 있었다.

김중현이 파파파파팟! 계단을 뛰어 내려가 연무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오. 햇빛.”

환한 아침 햇살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잠시.

기사단원들 사이에서 불퉁한 얼굴로 입을 삐죽 내민 채 검을 휘두르는 리혁의 모습이 보였다.

김중현의 눈가에 웃음기가 맺혔다.

‘다행이야. 불화를 안 일으키고 살아 있었어!’

중현과 눈이 마주친 리혁이 눈빛으로 반가움을 전하는 게 보였다.

얼른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였다.

덩치 큰 기사단장이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래. 무슨 용건이지?」

「수련생 중현을 위한 옷을 가져왔습니다.」

「그렇군.」

리혁이 입기에는 좀 커다란 옷을 건네고 있을 때였다.

기사단장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못 보던 심부름꾼인데 몸이 좋군. 자네 이름이 뭔가?」

「네! 김중현입니다!」

*   *   *

덜컹.

“음?”

지하 감옥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새로운 사람이 하나 더 들어왔다.

뭐지.

“야.”

눈가가 촉촉한 얼굴로 들어오는 리혁이에게 내가 물었다.

“너 여기 왜 왔어?”

“……어떤 바보 때문에 들어왔어요.”

“바보? 우리팀 바보가 한둘이니.”

“큰 바보요.”

중현이구나.

무슨 곡절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적한 눈으로 ‘이제 좀 뭘 하려고 했는데!’ 하는 리혁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감옥도 나쁘지 않아. 여기 온돌이야.”

“꺼흐흐흑!”

서리혁 죄수2 확정.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