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1)화 (63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1화

리혁이로부터 왜 감옥 메이트가 된 것인지 상황설명을 대강 들었다.

“일단 너랑 나랑 여기서 탈출하는 게 관건이네.”

“그죠.”

“거기서 가져온 건 없어?”

“아뇨. 아무것도 없어요. 단서 몇 개 주워들은 것 빼고는 완전 빈털터리예요.”

주머니를 탈탈 털던 리혁이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는요? 여기 뭐 특별한 거 없었어요?”

“응.”

잠시 시간 좀 때우고 있었다.

죄수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표정이나 눈치를 살펴보니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

그 외에 내 방 안을 이것저것 뒤지는 시늉을 했지만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죄수들을 데리러 왔다!」

「예, 예. 나으리.」

기사들이 들어오더니 죄수들을 하나씩 데려가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도 같이 나가는 건가 싶어 기대를 했는데, 우리의 감방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죄수들을 호송하는 기사와 간수의 대화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이제 처벌을 받는 겁니까?」

「그래. 영주님이 직접 심문하실 거다.」

「꼴좋군요. 범죄자 놈들. 저 기사 사칭범과 인큐버스 같이 생긴 놈은 어쩔 겁니까?」

「저놈들은 내일이다.」

「늙은이도요?」

「그래.」

곧이어 문이 닫히고 기사들과 죄수들이 사라지면서 정적이 감돌았다.

다시금 간수가 꾸벅 졸기 시작할 때였다.

「이보게. 젊은이.」

우리와 함께 유일하게 남은 옆방 노인이 우리를 불렀다.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듯 손짓하는 노인의 모습에 우리가 다가갔다.

「이 감옥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고 있나?」

「네.」

「마침 잘 됐군. 나한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네.」

멀찍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간수를 가리킨 노인이 속삭였다.

「사람에게 뿌리면 잠에 빠져들게 하는 약물이라네. 트롤도 이거 한 방이면 잠재울 수 있지.」

「오오오.」

「저걸 저 간수에게 써먹을 수 있다면 그동안 감옥에서 탈출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걸세.」

「그렇군요.」

눈앞에서 뾰로로롱! 하면서 퀘스트 창이 뜨는 느낌이었다.

리혁이가 약병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이걸 이제 저기 간수가 있는 데까지 어떻게 가서 약을 뿌리느냐가 문제네요. 주변에 있는 짚단을 이용해 볼까요? 짚단을 뭉친 다음에 여기다 약품을 뿌리고 저기 간수에게 던지는 거예요.”

“오호.”

내가 약병을 받아 들고 리혁이가 짚단을 뭉치기 시작했다.

“리혁아. 이 병 말이야. 깨지는 재질 같아?”

“아뇨.”

“그럼 나한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약병의 마개를 뽕- 하고 뽑은 후에 각도를 슬금 보고는 약병을 든 손을 뒤로 당겼다.

“그건 좋지 않은 생…….”

만류하는 리혁이에게 웃어 보이며 약병을 던졌다.

뽕.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약병이 간수의 품에 떨어지면서 약품이 간수의 상의를 축축하게 적셨다.

으으음… 하던 연기자가 축 늘어지는 시늉을 했다.

「…….」

멍한 얼굴로 어라? 하고 바라보던 노인에게 내가 ‘이게 되네요’ 하고 하핫 웃어 주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탈출하면 되나요?」

「여기 나무 숟가락이 있네. 자네들에게도 하나씩 건네주지.」

진심인가요. 제작진 여러분.

우리가 숟가락으로 으아아아 하면서 바닥의 흙을 퍼내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노인이 이내 나무 숟가락으로 창살 아래 흙을 퍼내기 시작했다.

“우리도 해야 되겠지?”

숟가락으로 흙을 슥슥 퍼내면서 리혁이가 질색했다. 그러고는 내가 숟가락질을 하는 동안 턱을 쓰다듬었다.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나름대로 방탈출이잖아요. 이런 식의 무식한 방법이 아니라 분명 방법이 있어요.”

“도와줄 거 아니면 노동요라도 불러.”

리혁이가 입을 삐죽이더니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Als ich so ging am Waldessaum

작은 목소리로 부드러운 노랫말이 이어졌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독일어네. 그건 무슨 노래야?”

“Zwei Raben, 두 까마귀라고 중세 민요예요. 분위기에 맞춰서 노동요를 골랐어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웹서핑하다가요.”

“하여간 나 보고 맨날 미튜브에서 이상한 거 본다고 말할 게 아니라니까.”

[중세 민요 부르는 아이돌] 하고 또 인터넷에 올라갈 글 제목이 떠오른다.

그러는 동안 옆에서 노인이 낑낑대며 흙을 파는 게 보였다. 우리가 만류하며 말했다.

「어르신. 그냥 저희가 탈출한 다음에 저 열쇠로 열어드릴게요.」

「그럴 텐가? 휴우.」

나이 지긋한 어른이 낑낑대며 일하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았다.

미안한지 노인이 쩝쩝대며 먹던 육포를 내밀었다.

「내가 먹던 거긴 하지만… 이거라도 먹을 텐가?」

「괜찮습니다.」

곧바로 받아 든 숟가락을 들어 흙을 계속해서 퍼내고 있을 때였다.

리혁이가 말했다.

“이번에 PD님이 사전미팅할 때 우리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어쩌면 지금이 그때인지도 몰라요. 항상 머리만 쓰던 내가 몸을 써야 하는 순간이 온 거죠.”

리혁이가 창살 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저거 말이에요.”

“응.”

“나 왠지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   *   *

현장 상황실.

모니터를 통해 지하 감옥을 지켜보고 있던 패널들, 그리고 제작진이 눈을 깜빡였다.

“리혁 씨가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저 창살을 통과한다고?”

그 말에 답하듯 서리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비주 형 생일파티 기억해요? 15년도에 올리브 하우스에서 했던 생일파티요.]

[기억나지.]

[그때 내가 어린이용 의자에 들어갔던 기억나요?]

[아!]

우주가 손뼉을 치며 감탄하는 모습에 패널들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소리지.’

‘대체 패밀리 레스토랑 어린이 의자에는 왜 들어간 건데.’

제작진들이 나중에 인터뷰할 질문 리스트에 질문을 추가하는 동안 케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 이렇게 탈출하는 거 맞나요? 피디님?”

여호석 피디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곳곳에 있는 도구들을 조합해서 탈출을 하는 그런 스토리인데, PD의 예상과 전혀 다른 스토리가 나오고 있었다.

[머리는 들어갈 것 같은데…….]

우주가 그런 말을 하며 창살 틈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쏘옥!

쏘옥!

두 아이돌 멤버가 창살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눈을 땡글땡글 뜨는 모습에 패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우. 근데 나는 못 나가겠다. 몸이 걸리네.]

[나와 봐요. 나는 될 것 같아.]

리혁이 숨을 후우우우 하고 길게 내뱉으면서 온몸을 작게 축소하고는 창살 틈에 옆으로 섰다.

그러곤 게다리 걸음으로 쑥 들어갔다.

[아아아아아아!]

[아파?]

[끼, 낑겼어요. 중간에…….]

[다시 들어오자.]

[아뇨! 할 수 있어요. 느아아아아압!]

[그래! 할 수 있다! 서리혁! 느아압!]

서리혁이 심호흡을 하고는 창살을 쏘오오옥! 하고 빠져나갔다.

패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어?”

“뭐야. 창살이 왜 이렇게 헐거… 아니, 저 틈으로 어떻게 나온 거야?”

“리혁 씨는 유치장 같은 데 갇혀도 금방 나오겠는데?”

“연기자님 표정 봐.”

화면 속에서 노인이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동안 종종걸음으로 간수에게 다가간 리혁이 열쇠를 가져왔다.

[이 프로그램의 큰 뜻을 이제야 이해했어요. 몸을 쓰라고 하는 게 이런 말이었구나.]

[그러니까 말이야. 이런 깊은 뜻이…….]

[하하하!]

[하하하하!]

여호석 피디가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   *   *

서리혁과 선우주가 어느 노인을 데리고 탈출했을 때.

같은 시각.

김비주는 드레스를 입고 만찬장에 나와 있었다.

‘대박…….’

파마산 치즈, 밀빵, 에그 타르트, 닭고기 통구이, 향신료를 깃들인 돼지고기 구이 등이 올라와 있었다.

식전 요리로 나온 차우더(chowder)까지!

‘나 여기서 살까 봐.’

로맨스 판타지 소설 주인공은 잘 먹고 잘 사는 거구나.

행복한 기분으로 손수건으로 손을 슥슥 닦던 김비주가 주변에 숨은 카메라들과 곳곳에 늘어선 시종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공주님이 된 기분이었다.

‘나중에 한조 형 만나면 꼭 얘기해 줘야지.’

어릴 적 장래희망이 요술공주였던 옆 동네 리더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정말 부러워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구두코로 바닥을 콩콩 찍으며 행복한 기분을 드러내고 있을 때였다.

덜컹-

만찬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더니 4명이 들어왔다.

김비주의 눈이 반짝였다.

‘저 사람이 바로 나와 사랑에 빠졌다는 북부 대공…!’

털로 된 목도리를 걸친 미청년이었다.

배우가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미남을 섭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우수에 젖은 검은 눈동자!

하지만 찬바람을 싸늘하게 풍기는 북부 대공의 표정은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주변 시종들이 두려움에 떨 만큼.

‘아. 인사해야지.’

김비주가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꾸벅 인사했다. 하녀에게 배웠던 예법 그대로.

「아름다운 저녁이에요. 공작님.」

「오.」

바로 그때 냉철하기 그지없던 북부 대공의 눈동자가 살짝 풀렸다.

하지만 말투는 딱딱했다.

「몸은 좀 어떻소?」

「배려해 주신 덕분에 몹시 좋답니다.」

「다행이군.」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성품인 느낌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북부 대공을 뒤따라온 세 명이 호호호 웃었다.

「말은 이리 하셔도 공작님이 어제부터 정말 걱정을 많이 하셨답니다. 킴 영애를 많이 걱정했어요. 호호호!」

「쓸데없는 소리.」

이 셋은 누구일까.

비주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내 경쟁자인가? 악역 영애들?’

하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 소개가 금세 떠오르면서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남주와 여주 사이에서 가교가 되었던 공작의 누이들!

‘나의 예비 시댁인가!’

그는 여주가 아니긴 했지만 운명은 쟁취하는 것 아니던가. 어쩌면 여주인공이 나타나기 전에 이 성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호호호. 공작님의 누이 분들이시군요. 처음 뵈어요.」

「어머머머.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할 필요까진 없어요.」

수다가 길어지면서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식탁 위의 종을 흔들었다.

딸랑딸랑.

곧바로 집사를 필두로 시종들이 더 많은 음식을 날랐다. 김비주가 마음속으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내가 여주를 해야겠어.’

와인잔을 홀짝이던 미남 공작이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그래. 머리는 좀 어떻소. 기억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본래 가문이 어디인지 떠오르지 않는 건가?」

「네, 안타깝게도…….」

「아쉽군. 어쩔 수 없지만 내 성에 더 묵어야겠소.」

김비주가 설정을 떠올렸다.

책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의 엑스트라가 된 상황. 설정상으로 여주와 남주가 만나기 한참 전 시기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김비주가 오기 이전에 이미 책으로 들어온 선배가 있었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저, 공작님.」

「무슨 일이요? 레이디.」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전에 제 방을 쓰던 인물이 있는 듯하여…….」

「아. 잠시 머물다 간 레이디가 있었소. 그대와 마찬가지로 숲속에서 기억을 잃은 채 발견됐지만… 안타깝게도 어느 날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소. 지금도 기사단이 수색 중이지.」

그런 말을 하던 공작이 되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요?」

「공작님께서 그 여인에게 반했다는 항간의 소문이 들리는 듯하여…….」

스스로의 애드립에 만족한 김비주가 아련한 표정을 짓는 동안, 공작의 누이들이 어머어머 했다.

공작도 헛기침을 하며 와인을 들이켰다.

「우스운 소리. 북부의 대공, 나 에릭 왐피르는 그리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오.」

김비주가 호호호 하면서 웃음을 머금고 있을 때였다.

「참, 레이디에게 주의사항을 몇 가지 알려 주겠소.」

「네.」

「곧 해가 질 텐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성 안을 돌아다니지 마시구려.」

공작이 말했다.

「저번의 레이디가 실종된 것도 그렇고. 요즘 들어서 이 드래곤 성 근방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소. 특히나 악령들이 출몰하면서 이 성 안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지하는 말할 것도 없고.」

해석하자면 밤이 되었을 때 돌아다녀 주고, 특히나 지하실을 중점적으로 살펴봐 달라는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공작님.」

「그대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은 아니오. 그대가 잘못될 경우에 내 책임이 되는 것이니, 흠흠…….」

그 말을 하던 공작이 손뼉을 짝짝 쳤다.

문이 덜컹- 열리면서 김비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기사 중현과 시종 지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무언가 쌓인 사연이 많은지 눈가가 촉촉한 막내, 그리고 평소처럼 푸근하게 웃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비주 혀어어엉!’

‘지호야아아!’

‘형. 저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여. 갑자기 대뜸 접시 닦기부터 하라고 막 소리 치고. 순 나쁜…….’

하지만 눈빛으로 오구구, 흐어엉 하는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북부 대공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레이디를 도와 줄 인물들이오. 저기는 이번에 견습기사로 들어와 놀라운 실력을 보여 준 신예 기사. 중현.」

「중현이라고 합니다. 레이디 비주.」

「비주?」

공작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비주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비주가 눈빛으로 욕을 하면서 인상을 쓰자 중현이 하하 웃었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아… 아름…다운 레이디를 보면 비주라고 합니다.」

「흥미롭군. 그럼 미남은 뭐라고 부르나?」

「우주라고 부릅니다.」

근본 없는 애드립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긴 중현이었다.

그런 중현을 바라보던 북부 대공이 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는 새로 들어온 시종이오. 레이디의 수발을 들어 줄 인물이지.」

「지호라고 합니다. 레, 레…레이디.」

드레스와 가발을 쓴 비주를 보며 어떻게든 웃음을 참기 위해 애쓰는 두 멤버들이었다.

그렇게 웃음 참기 파티가 이어지는 동안.

근처에 있던 집사가 다가와 공작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내일 심문하실 죄수가 셋 있습니다. 공작님.」

「아아. 기사 사칭범 말인가?」

그 말에 중현이 움찔하고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김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왜 리혁이가 기사가 아니고 얘가 기사지? 지하 빨래방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이어진 뒷말이 귀에 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흡혈귀로 추정되는 작자 역시 잡아들였습니다.」

「으음, 바로 그자인가?」

「예. 근방 마을의 여자란 여자는 몽땅 홀려 버렸다는 미모를 지닌 흡혈귀입니다.」

「그 정도인가?」

「예.」

셋이 동시에 느낌표를 띄웠다.

‘우주 형이구나!’

‘우주 형!’

‘대체 누구지!’

해가 진 후.

그들이 가야 하는 첫 행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는 누구지?’

심문할 죄수가 셋이라고 하는데 둘만 알고 있다.

리혁과 우주.

김비주가 나머지 하나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을 때,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주 늙은 노인입니다. 얼마 전에…….」

이어지는 죄수의 소개에 멤버들이 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절대 풀어 주지 말란 뜻이구나!’

*   *   *

해질녘.

성의 모든 것이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사단! 기사단은 본부로 들어간다!」

「나리.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고! 하하하!」

낮에는 성에서 일하다가 밤에는 저마다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설정인 듯했다.

최소한의 경비병력 외에는 영주 가족과 손님들만 묵는 느낌.

방 안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김비주 일행은 무언가 본격적으로 모험이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접시를 닦으라고 하더니 잘 닦는다면서 시종으로 승격시켜 주는 거 있죠? 그때부터 계속 허리 펴고 다니라고 막 리혁이 형처럼 잔소리하고… 허어엉… 리혁이 형 보고 싶다아아…….”

“그러게. 리혁이 감방에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어휴. 어쩌다가 감방에 들어가게 돼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비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 안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있었다.

오직 빛이 나고 있는 것이라고는 타닥타닥 타고 있는 벽난로와 들고 다니는 등잔뿐.

“일단 우주 형이랑 리혁이부터 찾아야 해.”

“넹.”

“네.”

“그럼 계획을 짜자.”

“…….”

“…….”

정적이 감돌았다.

세 사람이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통 이때 자, 들어 봐 하면서 말할 리더가 없었다.

새삼스럽게 빈자리를 느끼며 김비주가 말했다.

“우리 우주 형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지?”

“그러게.”

“되게 햇빛 같은 형이에요. 항상 있어서 없어지기 전까지 모르는 느낌.”

결국 서로를 바라보던 세 멤버가 저마다 획득한 것들을 꺼냈다.

무전기, 간식거리, 그리고 지도.

“지도?”

“집사님 테이블에서 훔쳐 왔어여.”

“잘했어.”

성의 지도를 바라본 그들이 지하 감옥의 위치를 찾아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린 김중현이 어디인지 알겠다는 말을 하면서 그들은 바로 이동했다.

끼이이이익.

“일단 주변부터 확인.”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 삼인조가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는 등잔을 들고 내려갔다.

마치 투명망토를 쓴 채 호그와트를 누비는 느낌.

정말 아무도 없다.

고요하고 어두운 드래곤 성의 복도를 걷던 이들이 지하 감옥으로 가는 통로로 들어갔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어디선가 유령이 껄껄 웃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지하 복도.

두 멤버가 중현의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계단을 내려간 이들이 감옥의 문 앞에 섰다.

그런데…….

“어라?”

문이 잠겨 있었다.

세 멤버가 까치발을 들어서 문 위쪽에 있는 창살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없는데?”

“진짜네.”

감방마다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고개를 돌리려고 할…….

덥석.

“으아아아아아악!”

“엄마아아아!”

“야! 조용히 해!”

눈을 질끈 감고 사람 살려! 하고 있던 비주와 지호가 눈을 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등잔을 들고 있는 우주와 리혁이 손가락을 입에 올린 채 쉬이- 하고 있었다.

“얼른 이리로 와.”

이미 탈옥에 성공한 맏형이 졸개들에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멤버들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

‘역시 우주 형이야. 내가 호강을 누리고 있는 동안 쇼생크 탈출을 하고 있었어.’

‘탈옥도 하는구나.’

‘우주 형이 착한 일에 능력을 써서 다행이야.’

그런 시선에 리혁이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내 덕이에요. 내가 몸을 좀 썼거든요.”

“그렇구나~”

상냥하게 웃는 세 멤버들의 모습에 리혁이 방송 꼭 보라는 말을 하는 동안 그들이 은신처에 도착했다.

지하 2층인 감옥에서 한 층 올라온 지하 1층.

그곳의 한 창고였다.

“다들 밥 못 먹었지?”

“네…….”

입가에 기름이 번들번들한 김비주가 슥슥 입을 닦는 동안, 눈물이 맺힌 동생들에게 리더가 말했다.

“식량 창고가 있더라고. 여기서 끼니 해결하고 가자.”

“대박. 저 저녁 못 먹었거든요.”

“저도.”

그런 그들이 식량창고로 이동하려고 할 때였다.

어떻게 탈옥을 하게 된 것인지 그 연유를 물어보려고 할 때, 김비주의 머릿속에 헉 하고 떠오른 게 있었다.

“맞다. 형. 형!”

“응?”

“그 감옥에 죄수가 형 말고 한 사람 더 있지 않았어요?”

“아. 할아버지?”

“네.”

“어, 어디로 갔어요?”

“우리랑 같이 탈옥했지. 아마 지금쯤 성 안에서 숨어 계시거나 나가지 않았을까?”

“…….”

그 순간 아까 만찬장에서 관련 이야기를 들었던 세 멤버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리더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형… 그 할아버지요.”

“응.”

“아까 집사랑 공작이 이야기하는 것 들었는데, 주변 마을을 공포에 몰아넣은 식인종이라던데요.”

“……응?”

싸늘하게 흐르는 정적.

그리고 그 순간.

-하하하하하하하.

껄껄 웃는 소리가 동굴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탁타타타탁!

누군가 지하 계단을 신나게 달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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