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2화
식인종 할아버지의 웃음소리에 다급히 창고 안으로 도망쳤다.
‘닫아! 닫아! 닫아!’
‘닫아아!’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조차 안 나온다고 하던가. 입만 뻐끔거리며 서로에게 문을 닫으라고 소리쳤다.
결국 중현이가 문을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후, 후우…….”
잘게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동생들과 함께 벽에 붙었다.
쫄린다.
진짜 쫄린다.
미튜브로 모니터링할 때만 해도 ‘왜 이렇게 다들 겁이 많아’ 했는데, 막상 이 상황이 되어 보니 알겠다.
드르륵. 드르르륵.
지하 바닥에 삽이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혁이가 입을 틀어막고 움찔하는 동안, 동생들과 우리 모두 벽에 붙은 채 숨 쉬는 것도 멈췄다.
‘지나가라. 제발 지나가라!’
‘지나가!’
지호가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도 덕분일까.
덜컹.
덜컹.
문을 몇 번 정도 흔들던 노인과 함께 삽소리가 서서히 멀어진다.
“아니.”
막내가 울상으로 나와 리혁이를 흔들었다.
“모르는 할아버지를 그렇게 풀어 주면 어떡해여? 나 진짜 미치겠네. 아니… 형들 진짜 막 아무나 풀어 주고, 아니…….”
엄청 무서웠는지 칭얼대는 막내를 토닥토닥해 주며 다독였다.
근데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다.
“선량하게 생긴 할아버지였단 말이야.”
“사람 생긴 걸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울 아빠가 그랬어요. 세상에서 제일 착하게 생긴 사람들이 사기꾼이라구.”
“그, 그런가.”
근데 지호네 아버님 세상에서 제일 선량하게 생기시지 않았던가.
물론 그런 말을 카메라 앞에서 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기에 속으로 삼켰다. 이런 예능에서…….
“예능?”
“어?”
“잠깐만. 우리 지금 예능 찍는 중이지?”
“그렇죠?”
관찰 예능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나와서 그런지 예능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제작진이 눈으로 안 보여서 생긴 문제였다.
머릿속으로는 당연히 TV 예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몸으로는 주변의 공포스런 상황에 찰지게 반응하는 상황.
“모여라. 졸개들.”
“흐어엉……!”
머리를 맞대고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기억하자. 이건 예능이다.”
“이건 예능이다.”
“우린 반드시 무사하게 탈출할 것이다.”
“우주 형이 반드시 무사하게 탈출시켜 줄 것이다.”
뭔가 이상하게 변형된 것 같지만 잘게 떨렸던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오들오들 떨던 동생들이 그제야 숨을 돌리며 상황 파악을 하는 듯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궁리할 때.
꼬르르르륵-
중현이의 배에서 힘차게 굳센 함성이 들려왔다.
“일단 밥부터 좀 먹자. 너희 다들 배고플 거 아니야.”
“네.”
동생들이 선반 위에 있는 음식들을 뒤적거리는 동안 비주가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발견한 방이에요?”
“나랑 리혁이가 감옥에서 탈출한 다음에 지하를 누비고 다녔거든. 지상으로 올라가는 건 또 무섭고 해서… 지하를 돌아다니는데 열려 있는 방이 여기 딱 하나밖에 없었어.”
“오.”
“딱 보니까 여기에 들어와야 할 것 같더라고.”
저녁 식사를 못할 우리를 위해서 제작진이 준비한 공간인 듯했다.
중세 유럽 스타일로 유리병에다가 탐스러운 베이컨을 집어넣는다거나 레토르트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놨다든가.
“형. 여기 마법의 상자도 있어요.”
“마법의 상자?”
지호의 말에 마법상자처럼 꾸며진 물건을 바라보았다. 막내가 버튼을 누르자 문이 텅- 열렸다.
“흐하하하하.”
전자레인지였다.
신이 나서 각종 즉석 식품을 돌려 대는 동생들의 모습에 그제야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고소한 음식 냄새가 퍼지면서 동생들과 함께 마법의 주전자로 물을 부은 컵라면을 먹었다.
“김치까지 있으면 딱인데.”
“김치도 있는 것 같긴 해요.”
리혁이가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다섯 자리 비밀번호 자물쇠로 잠겨 있어요.”
“세상에… 이 악독한 사람들. 라면은 주고 김치는 안 주다니.”
“리혁이 형, 우리 면 불기 전에 얼른 풀어 줘요.”
“잠시만.”
리혁이에게 부탁하긴 했지만 다 같이 초집중한 시선으로 냉장고에 붙은 힌트를 바라보았다.
[ WA-BA=JA-LA-JA ]
와바자라자?
라면에 눈에 불을 킨 동생들 중에서 비주가 바로 알아챘다.
“우비중리지… A 빼면 우리 이니셜이에요.”
“12345인가?”
12345가 아니었다.
서서히 통통해지는 라면 면발을 보며 우리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촬영 시작하고 가장 두려운 상황.
중현이의 눈에 힘이 쫙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슈퍼컴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
“연도로 하는 건 어때요? 저랑 김비주 이름 사이에 짝대기가 두 쪽이에요. 93, 95, 95, 97, 98이잖아요.”
“35578.”
35578을 입력하는 순간.
“여, 열렸다!”
“얼른 꺼내라! 얼른!”
냉장고에 있는 김치 통을 허겁지겁 꺼내서 컵라면과 함께 푸짐하게 먹었다.
라면 국물이 살짝 느끼하게 느껴질 때마다 아삭한 김치 한 조각이 별천지 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으허어어어…….”
만찬장에서 가장 식사를 많이 했다던 비주도 배를 문지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식 먹어서 좀 느끼했거든요.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역시 한국인은 한식을 먹어야 돼.”
그런 식으로 포만감을 느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쪼금만… 더 먹을까?”
“그래요.”
밖에 식인종 할아버지가 지나다니고 있지만 일단 눈앞에 있는 밥이 더 중요했다.
하나씩 꺼내먹고 있을 때.
치이이이익-
우리의 무전기가 동시에 진동했다.
즉석 치킨을 먹고 있던 우리가 무전기를 바라보았다.
-아아아. 들리십니까?
예능인 유창현 씨의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덥석 무전기를 쥐고 답했다.
“여기 뉴블랙. 잘 들립니다.”
-어떠신가요. 재미있는 모험을 하고 계신가요?
“……덕분에 즐거운 경험 하고 있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패널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다. 은성이의 꼴 보기 싫은 끼헤헷 하는 웃음소리까지.
동생들이 창고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가 무전기를 쥐고 말했다.
“상황실 분들이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네요. 저희 진짜 너무 오들오들 떨고 있었거든요.”
-그런 것치고는 식사를 맛있게 하시던데요?
“밥은 먹어야 하니까요.”
그런 너스레를 떨면서 예능인들과 이런저런 토크를 주고받았다.
막내가 무전기에다 말했다.
“너무 무서워여…….”
“진짜로… 피디님. 저희 안 무서운 거 하신다고 했잖아요. 진짜 너무너무 실망이에요.”
“덕분에 꿀잼 컨텐츠 감사합니다.”
중현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 하소연을 했다.
무섭다.
진짜 무섭다.
솔직히 근처에서 제작진이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고 하면 촬영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그럴 텐데. 연기자들도 너무 실감나게 연기를 하고, 상황 설정도 무섭다 보니 진짜로 무섭다.
-그렇게 무서우세요?
은성이의 촐싹거리는 목소리에 내가 무전기를 잡았다.
“케빈 씨.”
-네, 선배님!
“부디 제 화를 돋우지 말아주세요. 은성, 아니 케빈 씨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화가 나네요.”
-호오오오.
흥미로워하는 목소리.
-과연 제가 드리는 힌트 없이도 그 방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요?
“다들 듣고 계시나요. 은성 씨를 무전기 앞에서 치워 주시면 저희 뉴블랙TV 토크쇼에 초청해 드리겠습니다.”
권력 동원.
곧바로 은성이가 으아아악! 하고 끌려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잠시 예능인들과 흐뭇한 미소를 교환하면서 유창현 씨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탈출 미션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네. 비주에게 들었어요. 이 드래곤 캐슬을 해가 뜨기 전까지 꼭 나가야 한다고.”
-맞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을 드리자면… 저희가 드래곤 캐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는데요. 이 드래곤 캐슬의 지하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방마다 통로로 이어져 있다고 하네요.
“통로요?”
-네. 그밖에 자세한 정보는 저희도 열람이 불가능해서… 추가로 정보가 들어오게 되면 저희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리혁이가 무전기를 잡았다.
“여기서 어떤 방으로 이어지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희가 알기로는 일단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도서관.
동생들과 시선이 허공에 부딪혔다.
왠지 모르게 도서관에 가면 필요한 정보가 있을 듯한 느낌.
-워낙에 구조가 복잡한 성이라 안에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은 유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화이팅입니다. (뱅장님 화이티이이이잉-!)
마지막에 들린 은성이의 아련한 목소리에 픽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덕분에 식인종 할아버지에게 추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이게 촬영 중이라는 것을 다시금 인지했다.
중현이가 물었다.
“그런데 이걸로 분량이 뭐가 나올 수가 있을까요? 우리 딱히 아직까지 재미있는 게 안 나온 것 같은데.”
“괜찮아. 너희가 없는 사이에 리혁이가 하나 해냈어.”
“오.”
페이퍼맨 종이혁으로 일단 분량은 뽑았다.
그리고….
“비주는 옷이 그거밖에 없니?”
“네…….”
프린세스 비주로 분량을 좀 뽑을 것 같긴 하다. 보석 달린 드레스를 입은 비주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정 안 되면 비주를 제물로 바치지 뭐.
HBS 미튜브 계정에 [퐁듀 먹는 비주 공듀 모음집!] 같은 제목으로 올라올 영상이 상상된다.
“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예능적으로 머리가 굴러가는 걸 보니 거의 다 회복된 것 같다.
“자.”
내가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부터 가족회의 빠르게 들어간다. 일단 목표는 이 드래곤 캐슬이라는 성에서 나가는 거야.”
“네.”
“각자 오늘 획득한 단서들을 정리해 보자고.”
가족회의 서기인 리혁이가 비주가 가져온 책에 깃펜으로 열심히 메모를 했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에 들어옴.
—먼저 들어온 사람 H가 있음. 지호가 얼핏 집사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금발이었다고 함
—드래곤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북부 대공.
—영주가 죄수들을 직접 심문했다고 함.
—영주가 비주에게 반해 있다고 함.
—일단 우리에게 있는 건 책 반쪽뿐. 이제 이 소설의 나머지 반쪽을 찾아서 뒷내용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문구에 우리의 시선이 모였다.
“일단 최우선 목표는 저 책의 반쪽을 찾는 거야. 거기에 우리가 나갈 힌트가 있을지도 몰라.”
“네.”
“도서관에 가서 책의 반쪽을 찾아보자. 그 외 의견 있는 사람?”
“없어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내가 가져온 지도를 살폈다. 우리가 있는 식료품 창고가 도서관이랑 바로 이어져 있다.
다 같이 일어나 벽을 더듬었다.
콩콩콩.
두드려 봤지만 별다른 것이 없었다. 딱딱한 벽돌 감촉만이 손가락뼈에 닿는 느낌이 들 뿐.
“음? 형. 이거 봐요.”
선반의 물건들 뒤에 가려져 있는 벽에 자물쇠처럼 숫자 4자리를 돌려서 입력하는 칸과 [BELL] 버튼이 있었다.
중현이가 버튼을 눌렀다.
딸깍.
딸깍.
딸깍깍.
“안 되는데요.”
“조금 리듬감 있게 눌러 봐여. 형.”
지호와 중현이가 벨을 똥또로로롱 리듬감 있게 두드려 대는 동안 리혁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더니 비밀번호에 [7738]을 입력했다.
“이거 같아요.”
“왜?”
“BELL을 거꾸로 뒤집어 봐요.”
넷이서 단체로 고개를 꺾었다. 진짜로 숫자 7738처럼 보인다.
우리가 눈에 이채를 띠고 입을 모았다.
“이여어얼-.”
“이게 바로 수리영역 고득점자 수리혁인가.”
“와. 서리혁이 아니고 수리혁이었네여.”
종이혁에 이은 수리혁이었다.
모두가 눈을 빛내는 가운데 리혁이가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럼 누를게요.”
“응.”
리혁이가 버튼을 딱 누른 순간.
“어?!”
“우와!”
천장이 지이잉 하고 열리면서 우리가 있던 방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1층. 도서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우리가 감탄했다.
“우와아아아…….”
막내와 내가 이런 거 너무 좋다며 행복하게 손바닥을 마주치는 동안 영애님이 부채를 흔들며 감탄했다.
“대박. 진짜 도서관이에요. 형.”
“그러네.”
“이거 진짜 도서관이네.”
왕궁의 도서관처럼 2층으로 된 공간이었다.
책들이 서가마다 꽂혀 있고, 테이블도 엄청 많다.
아마도 관광객들이 찾아올 때 카페테리아로 쓰이는 공간인 듯했다.
“책도 진짜 책이네?”
“형. 리혁이 표정 봐요.”
비주가 꺄르륵 웃으면서 하는 말에 고개를 돌리니 리혁이가 몽롱한 얼굴로 이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진짜 내 취향… 이거 내가 꿈속에서만 보던 그런 곳이에요.”
“나중에 형이 하나 사 줄게.”
“그건 사양하지 않겠어요.”
생각보다 규모가 큰 도서관에 압도되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여기서 단서를 어떻게 찾죠?”
“그러게.”
컴퓨터로 책 제목을 입력해 볼 수도 없고.
어둡고, 달빛만이 들어오는 도서관에서 등잔 하나를 높이 들어 올린 채 서가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원작 소설 제목이 뭐라고 했지?”
“<왕녀님이 제일 쎄>라고 했어요.”
“왕이니까 ㅇ이네.”
하지만 ㅇ칸에는 관련된 도서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눈에 들어온 것이라고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책뿐이었다.
“이 책 오랜만에 보네.”
“뭐예요?”
“옛날에 본 책.”
TJ 엔터의 창립자인 박태준 회장의 일대기가 담긴 자서전이었다. TJ 엔터에서 독후감 쓰라면서 준 적이 있었다.
-박태준 회장님은 최고십니다. 킹왕짱. 존잘. 아무튼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환생임.
뭐. 이런 식으로 써서 우승했는데.
버텨 보겠다고 별 일을 다 했던 기억이 나면서 잠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책을 서가에 꽂고는 수색 중인 동생들에게 물었다.
“진척은?”
“모르겠어요. ㅇ에는 없는 것 같은데.”
“힌트 없을까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무전기를 눌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여러분의 손에 이미 있습니다’였다.
우리의 손에 있다…….
잠시 고민하고 있던 때에 비주가 들고 있는 양장본 책에 시선이 갔다.
“우리 이거 내용 안 읽어 봤지?”
“저는 읽어 보긴 했는데 별것 없었어요.”
“다시 한번 봐 보자.”
제작진이 소품으로 만든 책이라서 대충 줄거리가 쓰여 있는 책이었다.
왕녀님은 짱 셌다.
왕녀님의 검에 서린 검기가 드래곤들을 찢어 부숴 버렸다!
왕녀님과 마주한 드래곤이 외쳤다. 너무 강해! 죽는다!
왕녀님은 자신과 호각으로 싸운 북부 대공에게 반해 버렸다! 그런데 북부 대공에겐 비밀이 있었다!
그런 책 내용을 10분 가까이 들여다보는 동안 리혁이가 말했다.
“맞춤법 틀린 게 많네요. 데, 대랑 되, 돼 많이 틀리고.”
“리혁이 형. 지금 식인종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인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그래요.”
“아니야. 아냐.”
내가 말했다.
“이거 힌트일 수도 있어. 리혁아, 맞춤법 틀린 것들 다시 한번 훑어볼래. 여기서 틀린 게 어떤 거야?”
“어디 보자. 된다랑 돼다. 그리고…….”
리혁이가 하나씩 찾아보면서 맞춤법 오류를 체크하고 있을 때였다.
쿵!
하고 도서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껄껄껄.
동생들과 침을 꿀꺽 삼킨 채 저마다 서가 뒤편에 숨었다. 비주가 드레스 옷자락으로 등잔을 감싸서 조명을 감췄다.
저벅.
저벅.
잠시 배회하던 노인이 다시 도서관을 나섰다.
“휴우.”
숨을 돌리고는 리혁이에게 물었다.
“찾았어?”
“네.”
“전부 ㄷ이랑 관련된 거 아니야?”
“어… 어? 맞아요.”
얼굴에 화색이 돈 동생들과 함께 ㄷ을 찾아갔다. ㄱㄴㄷ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 ㄷ칸을 헤매다가 마침내 찾았다.
아주 높이 있는 곳에 꽂힌 익숙한 표지의 양장본 책.
리혁이가 눈매를 좁혔다.
“그런데… 너무 높이 있는데요.”
“기다려 봐.”
내가 중현이에게 말했다.
“중현아.”
“네.”
“가자.”
중현이가 손바닥으로 내 발목을 잡고 하늘 높이 들었다. 2단 합체를 한 우리가 성큼성큼 걸어서 책을 꺼냈다.
중현이와 내가 흐뭇한 미소를 교환하고 있는 동안 막내랑 비주가 헥헥거리며 돌아왔다.
“형. 여기 조립식 사다리 찾았…….”
“이거 이제 조립…….”
책을 꺼내 버린 우리의 모습에 둘이 멍하니 있는 동안, 중현이와 내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몸이 좋으면 고생을 안 하지.”
“맞아요. 형.”
그렇게 책의 나머지 반쪽을 찾은 우리는 책을 맞춰 보고는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다!”
“이거네.”
책이 딱 맞게 붙는다.
그런데…….
“이건 영어네?”
“그러게요.”
이건 제작진이 만든 것이 아닌 진짜 책인지 영어로 작은 글자가 막 쓰여 있었다.
등잔을 들어 올려 책을 읽으려고 할 때였다.
책을 조합해서 그런 걸까. 마치 무슨 마법이 발휘된 것처럼 우리의 서가 주변에 있던 벽이 스르르륵 열렸다.
“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오라고 하는 듯한 공간.
계단이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동생들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그동안 리혁이가 등잔을 든 채, 책 내용을 살피면서 뭐라고 중얼중얼하는 게 들렸다.
“일기장 같은 게 쓰여 있네? 아니, 편지인가?”
“리혁아. 얼른 올라가자.”
“잠시만요.”
계단 한가운데 멈춰 선 리혁이를 잠시 두고는 드레스 자락을 들고 올라가는 비주와 함께 올라왔다.
널찍하고 경치가 좋은 방이었다.
마치 영주가 기거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방.
유일하게 거슬리는 게 하나 있다면…….
“어?”
침대 대신에 왜 관이 있지?
주변에 이상한 넝마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거기에 왠지 모르게 뼈 같은 실루엣이 보인다.
“오.”
중현이가 말했다.
“저기 죄수 옷 같이 생겼어요. 우주 형이 입고 있는 거랑 같네요.”
“그러게. 그러고 보니 아까 죄수들이 끌려갔…….”
무언가 쎄하고 이상한 감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한편, 뒤에서 리혁이가 다급하게 올라왔다.
모든 전모를 알아챘다는 모양이었다.
“이거 뭔지 알았어요. 책이 뒷내용이랑 앞내용이랑 아예 다른 책이에요. 두 가지 책이 하나로 합쳐져 있던 건가 봐요! 중현이 형. 아까 창고에서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자? 그런 식으로 봤다고 했죠?”
“응.”
“그리고 비주 형. 여기 영주 가문 이름이 왐피르(Wampyr)라고 했고요.”
“어? 맞아. 에릭 왐피르 님.”
“Wampyr가 Vampire와 관련이 있는 단어거든요. 드래곤에서 유래한 드라큘이라는 명칭도… 와. 내가 이걸 왜 지금 알았지?”
흥분해서 이야기를 쏟아 내는 메인 보컬의 팔을 붙잡았다.
뒷걸음질 치면서.
“저기 리혁아?”
“왜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앞에 봐봐.”
“왜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관이 스르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검은 머리카락의 미남자 에릭 왐피르 대공, 아니 ‘드라큘라’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상황실.
헉! 하고 패널들이 식겁하는 가운데 제작진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림이 산다. 살아.’
리혁이 드라큘라의 어원과 그동안 주어졌던 단서들을 딱 조합하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크!”
조연출이 주먹을 꼭 쥐었다.
“타이밍 완벽하고!”
“대박인데요?”
“이야. 역시 예능 짬밥 장난 없다. 어쩜 저렇게 딱 편집하기 좋게 장면을 연출할까요?”
“새로 데뷔하는 아이돌들이 뉴블랙 보고 예능 연구한다잖아요.”
“영화 한 편 보는 줄.”
스탭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하는 동안 <지금부터 우리는>의 연출인 여호석 피디도 미소를 지었다.
‘역시 뉴블랙이다.’
성능 확실하고.
어쩜 딱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드라큘라가 등장할 수 있도록 상황에 맞게 연출을 해 주다니.
물론 그들이 적절하게 무대 장치를 조종하면서 판을 깔아 주긴 했지만 이렇게 잘 맞춰 줄 줄은 몰랐다.
이래서 예능 PD들이 뉴블랙, 뉴블랙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경스럽습니다. 뉴블랙 여러분.’
나이를 떠나 한 사람의 업계인으로서 존경심이 들었다.
화면 속에서 도망치는 멤버들을 보며 여호석 피디가 진심 어린 경의의 눈빛을 보냈다.
* * *
“흐아아아악!”
“느아아아!”
“야! 서리혀어억! 그걸 지금 말하냐! 쫌 더 빨리 말했어야지-!”
“내가 이럴 줄 알았겠냐고요!”
피디님!
돌아가면 가만 안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