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3화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현아!”
“네!”
“비주 잘 챙겨라!”
“네!”
중현이의 품에서 드레스를 입은 비주의 다리가 달랑달랑거렸다.
머릿속이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으아아아! 피디님 미워할 거예여어어어!”
“아씨! 드라큘라가 왜 나와!”
하지만 영주의 방에서 도서관으로 내려온 우리는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통로를 막아선 인물 때문이었다.
「껄껄껄껄껄-!」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노인.
산발이 된 백발 노인이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모형 식칼.
다른 손에는 무언가 내용물이 담긴 듯한 자루를 끌고 다니고 있는데… 안에 있는 게 뭔지 정말 안 궁금했다.
「다섯이라… 자루에 담기에는 너무 많은데…….」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후퇴를 하려고 했지만, 먼 곳에서 드라큘라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의 사랑, 킴 영애. 그대 지금 어디에 있소?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비주가 어머 하다가 아차 하고는 중현이의 품에서 몸을 웅크렸다.
“하씨.”
리혁이가 내게 착 붙으며 말했다.
“형, 이거 어떡해요? 이거 진짜 진퇴양난 같은데.”
어머.
“형이라고 했어?”
“그게 지금 중요하냐고!”
“아차차! 아이… 그… 잠깐만.”
나라고 무슨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뒤에서는 드라큘라가 쫓아오고 앞에서는 식인종 살인마가 막고 있다. 어느 쪽이 더 무섭냐면 당연히 뒤쪽이다.
그래도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는 사람 아니던가.
귀신과 사람의 차이점.
바로 사람은 우리 셋째가 무찌를 수 있다는 거다.
“중현아!”
“네… 네?”
“지금이다! 저 할아버지를 막아!”
백만 볼트 발사! 하듯이 명령했지만 중현몬은 응답이 없었다.
마치 전설의 포켓몬과 싸우기를 거부하는 피카츄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의 중현이에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중현아?”
“네, 네?”
“너 왜 그래? 괜찮아…?”
중현이의 목울대가 꿀꺽하면서 넘어가는데 누가 봐도 긴장한 티가 역력하다.
제주도에서 귀신을 봐도 껄껄 웃으며 넘긴 우리 셋째가 사람을 보고 무서워한다니.
중현이가 비주를 안아 든 채 뒤로 물러섰다.
“형.”
“응?”
“형이 좀…….”
“왜?”
“그… 그게 좀… 저…….”
중현이가 민망하다는 듯 내 귓가에 속삭였다.
“망태 할아버지 같아서 좀 무서워요….”
아.
환장하겄네. 증말.
* * *
「HBS 예능 <지금부터 우리는> - 뉴블랙 편」
우주가 중현의 허리춤에 매어 달려 있는 모형칼을 슥 뽑아 들고.
노인이 혓바닥으로 모형식칼을 날름 핥으면서 긴장감이 감돈다.
영어로 오가는 대화에 자막이 깔린다.
노인 : 야들야들하게 생긴 녀석이로구나.
우주 : 무슨 소리! 우린 뼈밖에 없어요!
졸개들이 한국어로 다급하게 응수했다.
비주 : 맞아! 전부 뼈뿐이야!
지호 : 우리 맛없을걸요! 치킨 목뼈 같아서 맛없음!
리혁 : 나 몸 안 좋을 때마다 항생제 엄청 먹어서, 먹으면 몸에 해로울 걸요! 여기 전부 다 안 좋은 것만 먹고 살아요! 우리 몸에 손 대기만 해 봐요. 삼대가 망하라고 저주할 거예요!
지호 : 잡으려면 이 형부터 잡아가요! 저는 욕 안 했어요! 할아버지!
비주 : 안 돼. 잡히려면 다 같이 잡혀야 돼!
지호 : 이 공주님부터 잡아가 버려요!
갑작스러운 한국어 폭격에 노인 배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 아래 작은 화면.
이어지는 막장 대화에 패널들이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는다.
그동안 비주를 안아 들고 석상처럼 굳은 중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화면에 깔리는 중현의 인터뷰 목소리.
중현 : 제가 진짜 어지간한 것에는 겁을 먹지 않는 편인데. 어렸을 때 들었던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를 좀 무서워하는 편이어서요. (왜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좀 많이 겁을 주셨어요.
서양 버전이긴 했지만 의도치 않게 망태기 할아버지의 실사화처럼 되어 버린 식인종의 모습에 겁을 먹었다는 모양이었다.
그 아래 깔리는 자막.
김중현 (23세, 무적)
약점: 망태 할아버지.
수학여행을 못가게 만든 식중독 닭꼬치와 함께 중현이 무서워하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 *
채앵!
내가 소품용 모형칼을 뽑아 들자 동생들이 환호했다.
“역시 우주 형이야!”
“형! 검술! 검술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야, 무슨 검술이야.”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내 팔이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검무가 흘러나왔다.
공주님 비주가 환호했다.
“광선검 같아!”
“역시 우주 형이에여! 준비가 되어 있었어!”
급해서 그런지 몸이 막 자동으로 움직인다. 유려하게 검을 붕붕붕 휘두르면서 찹 하고 자세를 취할 때.
표정은 켈켈켈 하고 있지만 눈으로는 잔뜩 당황하고 있는 노인 배우와 눈이 마주쳤다.
‘자네 정말 이러긴가?’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살아야죠.’
평소 노인 공경을 하는 나지만 현시점에서 답은 공격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대충 칼로 톡 쳐 드릴 테니 쓰러지는 시늉만 잘… 하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또각또각.
어디선가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
“음?”
그런데 구두 소리가 하나가 아니다.
여러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데, 노인의 뒤편으로 드레스를 입은 여자 3인조가 등장하는 중이었다.
중현이의 품에서 비주가 몸을 일으켰다.
“아, 안 되는데!”
“왜?”
“위험해요! 저분들은 공작님의 누나랑 동생들…….”
북부 대공의 누이들이라는 모양이었다.
그 말에 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근데 공작이 드라큘라니까 저 사람들도 그거 아니에요?”
“어?”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리혁이가 다급하게 손에 들고 있는 책을 펼쳐 보았다.
그동안 식인종 할아버지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 갔다.
「켈켈켈! 새로운 먹잇감이……!」
하지만 노인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여자 삼인방이 이를 드러내면서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송곳니.
리혁이의 말이 귓가에 들렸다.
“원작 소설에 드라큘라의 세 신부가 있는데, 그 세 신부도 드라큘라와 같은 흡혈귀래요.”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어… 이미 먹히고 계시네.”
흡혈귀 셋이 달려들어 노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노인이 발버둥을 치는 순간 우리는 지금이 절호의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았다.
“달려!”
“뛰어!”
식사 중인 흡혈귀들을 지나는 동안, 송곳니를 드러낸 흡혈귀 하나가 크왕! 하며 손을 뻗었다.
날카로운 손톱.
“으아아악!”
다급하게 통로에서 빠져나오고는 다시 도서관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그제야 숨을 돌린 중현이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 저기 봐요.”
“응?”
흡혈귀들의 이상한 움직임이 보였다.
「크르르르르르.」
송곳니를 드러낸 삼인방이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멈춰 있었다.
삼인방이 허공을 매만지면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아아! 급하게 알려 드리는 소식입니다. 문헌을 통해서 저희가 흡혈귀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어요.
무전기 볼륨을 키웠다.
-저 흡혈귀들은 밤이 깊어질수록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활동할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되어 있다고 하네요.
패널들의 말에 우리가 잠시 숨을 돌리고 멈춰 섰다.
동생들과 예능인으로서의 시선을 교환했다.
“저기에 벽이 있나 봐요. 형!”
“내가 한 번 가서 확인할게.”
“형!”
내가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자, 흡혈귀들이 내가 올라오는 방향 쪽으로 우르르 움직였다.
“여기인가.”
내가 마임을 하면서 벽을 만지는 시늉을 했다.
실감 나는 마임에 잠시 크르르르, 하던 여자 배우 셋이 멈칫하고 당황하는 눈빛이 보였다.
‘마임 너무 못하시길래 좀 보태 드리려고.’
‘땡큐.’
쓰는 언어는 달라도 눈빛은 만국 공통이다.
내가 벽에 손대는 움직임에 맞춰 배우들이 실감나게 연기하는 동안, 나를 애타게 부르는 동생들에게 다시 합류했다.
그러자 마침내 북부 대공, 아니 드라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세 신부들보다는 활동 범위가 넓은지 그들보다 몇 걸음 정도 더 내려와 우리 코앞까지 왔다.
「이런.」
드라큘라가 우아하게 인사했다.
「절대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제 말을 무시했군요. 레이디.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이 성의 주인 드라큘라입니다.」
비주가 배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부채를 촤악 펼쳤다.
「저를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거짓이었던 건가요!」
드라큘라 역 배우가 순간 기침을 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은 듯했다.
「흠흠. 그럴 리가 있겠소. 레이디.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 변치 않는다오. 나는 그대가 내 품에 돌아오길 원한다오. 나와 함께 흡혈귀가 되어 영생을 살게 만들어 주겠소.」
「영생…….」
「어떻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말해 보시구려.」
비주가 우리를 가리키며 눈을 빛냈다.
「이 사람들도 같이 영생이 될 수 있는 건가요! 평생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건가요!」
“비주야…….”
“저 꿈 아직도 안 버렸네.”
“저 형 죽기 전까지 우리 안 놔줄 거예요. 아마.”
상황극에 몰입한 둘째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나오면서…….
아.
근데 왜 눈물이 나오려고 하지.
꼭 어디 가시덩굴에 붙잡힌 것만 같고. 뭔가 미래의 자유가 사라진 듯한 예감이 든다.
드라큘라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소. 레이디.」
「그렇다면 협상은 결렬이에요.」
「아쉽군. 하지만 그대들이 무얼 할 수 있겠소?」
우리가 외쳤다.
「드라큘라, 당신의 심장에 말뚝을 박을 거예요!」
「맞아!」
「말뚝을 박아서 없애 버린 다음에 이 성을 차지해 버릴 거예요!」
「성 점령할 거야!」
동생들과 나의 살벌한 협박에 드라큘라 배우가 잠시 멈칫하고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자신만만하군. 그 웃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보겠소.」
꼭 무슨 사건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장내를 감도는 가운데, 드라큘라가 움직일 준비를 할 때였다.
내가 뒷걸음질 치며 동생들에게 말했다.
“야. 저거 우리한테 달려오려는 거 같은데 미리 도망칠 준비하자.”
“네.”
“중현아. 비주 안아.”
“네.”
중현이가 드레스 입은 길치를 옆구리에 끼웠다.
그리고 그 순간.
성에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애애애애앵—
대애애애애앵—
정각을 알리는 시계 종소리였다.
‘저 흡혈귀들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그 말을 떠올리고는 동생들과 함께 달렸다. 도서관에서 나가는 문을 향해서.
“으아아아악!”
“달려!”
그리하여 도서관 문 앞까지 달렸을 때였다.
리혁이가 급하게 열쇠를 찾고 있는 동안 어느 순간 뚜벅뚜벅 걸어오던 드라큘라 백작이 우리의 근처에 또 멈춰 섰다.
활동 제한 범위에 걸린 모양이었다.
「레이디. 반드시 당신은 내 것이 될 것이오.」
「난 누구의 것도 아니에요!」
바로 그때.
타앗- 하면서 조명 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도서관에 붉은 조명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마치 흡혈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 선을 그려 주듯이.
-여러분!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저희가 직접 손을 써서 흡혈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홀로그램을 투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붉은빛이 바로 흡혈귀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반드시… 이 점을 유념해 주십시오.
탈출 게임이 본격적으로 후반부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 * *
드래곤 성의 비밀을 밝혀낸 전반부가 끝나고 이제 신명나게 흡혈귀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우선 지하로 내려왔다.
“우와아아아…….”
“왜?”
“형. 여기 봐봐요.”
“어?”
동생들과 함께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전까지 우리가 창고라고 알고 있었던 공간. 그곳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나니 그 너머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널찍한 약품 조제실 같은 공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인가.”
지호가 가져온 지도를 이용해 지하를 누비기 시작했다.
상황실로부터 전파받은 미션은 바로 흡혈귀 제거와 탈출.
-흡혈귀를 제거하려면 성수가 필요합니다. 지하 빨래터에 있는 우물에서 성수를 길어 와서 그것을 무기로 만들어야 해요.
하나는 바로 흡혈귀를 퇴치할 성수를 개발하는 것.
그것을 위해 약품 조제실에 있는 설명서를 해독하고, 그 안에 담긴 장치들을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성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 방법은 바로 물길을 통한 탈출이에요.
다른 곳은 전부 다 막혀 있다나.
그래서 성의 지하에서 후룸라이드 같은 배에 탑승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중현이가 그러는데 지하 동굴에 후룸라이드 레일 같은 게 깔려 있다는 걸 보니, 아마 놀이동산 용으로 개발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으. 놀이기구 싫은데.”
리혁이가 중얼거렸다.
“나 신밧드의 모험도 못 탄단 말이에요.”
“신밧드도 못 타?”
“진짜? 고소공포증 있는 나도 신밧드는 타는데.”
비주와 리혁이가 그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잠시 약품 조제실에서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모든 시간이 그렇게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대애애애앵-
“레드 존이다!”
“여기 레드 존 됐어요!”
“으아씨!”
레드 존(Red zone)이 펼쳐질 때마다 정말 심장이 콩닥거렸다.
갑자기 우리가 있던 공간에 붉은빛이 촤아아악- 하고 내리쬐는데, 그때마다 흡혈귀들이 우리의 공간에 미끄러지듯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러다 잡힌다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그런 식으로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넘어가는 단서를 찾고, 또 다음 방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했다.
「킴 영애! 어째서 나의 이 마음을 몰라 주는 것이오!」
「집착하는 사람은 사절이에요!」
「집착하지 않겠소.」
「그럼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
중간중간 비주와 드라큘라 백작님의 알콩달콩한 러브스토리도 찍고.
나름대로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추격전을 반복할 때였다. 방송 분량을 충분히 뽑고 이제 최종장으로 들어갈 타이밍.
동시에 ‘H’에 대한 단서도 하나둘 잡히기 시작했다.
“와. 진짜 이분 덕분에 우리가 사네요.”
“그러게.”
‘H’라고 우리보다 먼저 이 로판+드라큘라의 혼종에 들어오게 된 인물.
그가 책에 남긴 메모들과 곳곳에 뿌린 단서 덕분에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탈출을 진행하면서 우리에게 감이 왔다.
“이분… 살아 있을 거 같아요. 확실해요.”
그가 남긴 기록들을 하나씩 주워 가면서 분석한 결과, H는 드라큘라의 정체를 간파하고 이 성에 숨어 있는 중이었다.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성에 숨어 있다는 내용.
이걸 본다면 반드시 자신을 구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 반지도 돌려드려야 해요.”
비주가 있던 방에 반지를 떨어뜨린 인물이 바로 이 H라나. 머리카락이 금발이라고 했다.
드라큘라 공작도 그렇고.
외국 분들이 여기까지 와서 참 고생이 많은 것 같다. 이따 끝나고 나면 이야기를 해 봐야지.
「그대여! 내 사랑을 받아 주시오!」
으악! 집착남이다!
스토커처럼 따라붙는 드라큘라 공작을 피해서 동생들과 함께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우리 브레인인 리혁이의 활약으로 퍼즐을 하나씩 조합해 나가면서 다음 방으로 나갈 준비를 할 때였다.
치이이이익.
은성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전달할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방에서 성의 비밀공간으로 이어지는 배수로가 있는데요.
“네.”
-저희가 스캔을 해 본 결과, 이 배수로 쪽에서 미약하게 생명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미약합니까?”
-네. 그게… 만약 여러분이 말했던 생존자라면 얼른 구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레드 존이 퍼지기 전에요.
“알겠습니다.”
생존자를 구하고 드라큘라를 물리친다.
그리고 다 함께 성을 무사히 나간다.
동생들과 진지한 눈빛을 교환하고는 지하로 내려가는 배수로 입구의 해치를 바라보았다.
곳곳의 단서를 하나로 조합해서 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거의 30분쯤 지났을까.
“이렇게 비스듬히 보면 되지 않을까요?”
“오!”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를 다른 각도로 보았다. 거기에 적혀 있는 일곱 자리 숫자.
그것을 입력한 다음에 전 방에서 획득한 열쇠를 꽂아 돌렸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치이이이이이익!
감압되듯이 하얀 연기를 내뿜은 해치 문이 서서히 열렸고, 그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보였다.
“먼저 내려가. 중현아.”
“네.”
먼저 내려간 중현이가 멤버들을 하나씩 챙기고 내려갈 때.
마지막으로 방에 남기고 간 것은 없는지 확인한 내가 문을 닫고 내려갔다.
그런데.
“어?”
“어!”
동생들이 놀라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나는 동생들이 왜 놀랐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
금발의 머리카락에 꾀죄죄한 몰골로 분장하고 있는 인물.
왠지 어딘가 익숙하다 생각했던 필체.
그리고 이니셜 H까지.
“내가 이걸 왜 몰랐지.”
꼬질꼬질한 몰골을 한 채 수갑을 차고 있는 인물이 나를 보고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나도 모르게 반가운 미소가 나올 때.
수갑을 찬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여러분이 저를 구해 주러 오신 건가요?”
이니셜 H.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TNT의 멤버, 한태현이 능청맞게 웃으며 연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