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5)화 (63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5화

상황실.

패널들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지금 우리가 뭘 보고 있는 거죠.”

“드라큘라가 맞고 있네. 맞아.”

“드라큘라 때려도 돼요?”

여호석 피디가 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원래라면 물리력 무효 판정이긴 한데… 성수를 묻힌 무기를 사용해서 직접 타격이 가능하게 됐어요.”

“그러네. 지금 태현 씨랑 지호 씨도 손에 성수를 묻히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라고 준 성수가 아니었다.

드라큘라에게 추격당해서 궁지에 몰린 척하던 뉴블랙이 성수를 촤악 뿌리고 말뚝을 박는 내용을 기대했는데….

-죽어라! 흡혈귀!

-끼에에엑! 끼엑!

장난감 칼로 푹푹푹 흡혈귀를 찔러 대는 우주의 모습에 패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예능으로서는 지금이 더 좋았다.

‘역시 뉴블랙이다. 저 또… 아니 저 인간들의 머릿속은 알 수가 없어.’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듣는 21세기의 창의적 인재가 예능인이 된다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창의적으로 뱀파이어를 엿 먹이는 모습에 예능인들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이번에 진짜 시청률 대박 날지도 모르겠는데?”

“우주 씨가 저거 입은 순간부터 우린 초대박이 터진 거야. 지금 보고 있는 장면 어디 가서 말해 봐. 아무도 안 믿을 걸?”

“전 믿어요.”

“은성이는 들어가.”

패널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작진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원격으로 카메라를 조종하던 감독이 말했다.

“여 피디. 우리 대박 난 거 같지?”

“잭팟이죠.”

의도한 그림이 이게 아니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선우주가 드레스를 입고 검과 방패로 흡혈귀를 후드려찹찹 한다? 아주 귀한 장면이었다.

물론…….

“이야.”

헤드폰을 벗고 귀를 후비적거리던 오디오 감독이 말했다.

“대사 찰지다. 찰져. 그런데 이거 괜찮을지 모르겠네?”

“문제 될 대사라도 있어요? 그야 편집하면…….”

“아니. 그거 말고 뉴블랙 멤버들. 촬영 끝나고 불 딱 꺼지면 그때 정신이 번쩍 들 거 아냐. 내가 뭔 말을 한 거지 하고.”

“엄청 부끄럽긴 하겠네요.”

끝나고 나서 당사자들이 엄청 부끄러워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지금이야 주어진 상황에 과몰입해서 전혀 눈치채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여호석 피디가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끼, 끼에에엑!

-형! 신부 중에 하나를 잡았어요!

-두 번째 신부님~ 거기 서세요~!

드라큘라의 세 신부를 잡기 위해 중현의 어깨에 목마를 탄 비주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잡혀 주세요. 저희는 비폭력주의랍니다.

-끼에에엑!

-잡혀 주시면 저희가 정화시켜 드릴게요.

기사와 레이디가 변신 로보트처럼 합체해서 쿠쾅쾅쾅 세 흡혈귀를 퇴치하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음.”

그 장면을 지그시 바라보던 여호석 피디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봐도 빌런인데.’

영웅들이 숭고하게 흡혈귀를 무찔러야 하는 장면인데.

모니터에 나오고 있는 건 사악한 악당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습격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켈켈켈켈.”

“흡혈귀의 피 맛은 달콤하구나.”

“흡혈귀도 별거 없네요. 허허허.”

악당들의 대사가 아니다.

바로 간악한 악의 무리들을 무찌른 우리의 대사였다.

“신부들은 다 잡았어?”

“네. 성수로 정화해 주고 왔어요.”

레이디 비주가 호호 웃으며 부채를 흔들었다.

둘로 나뉘어서 각자 흡혈귀들을 사냥했던 팀이 서로의 성과를 확인하고는 다시금 한 자리에 모였다.

“이제 그러면 탈출만 남은 건가.”

중현이가 물었다.

“형, 열쇠는 찾았어요?”

“응.”

드라큘라의 목에서 목걸이를 가져왔다. 거기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열쇠가 바로 지하의 나룻배를 움직일 열쇠였다.

동생들 사이에서 긴 숨이 흘러나왔다.

끝.

이제 진짜 끝이었다.

“자. 이제 천천히 배 타고 이동해 봅시다.”

“고고고!”

다 같이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으며 어깨동무를 한 채 화기애애하게 웃을 때였다.

대애애애앵-

뻐꾹-

대애애애앵!!

둥둥둥둥-

성 안에서 온갖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성 안에 있는 모든 시계가 단번에 종을 울리는 듯했다.

태현이와 동생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이, 이게 뭐야?”

“어어?”

예사롭지 않은 일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뜰 때였다.

무전기가 울렸다.

-아아! 아주 긴급한 소식입니다! 들리십니까?

“네! 들립니다!”

-드라큘라가 사망하면서 비상 장치가 작동한 모양입니다.

“네?!”

-이 성은 드라큘라 공작의 영혼과 연동되어 있는데, 그 연결이 깨지면서 성이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무슨 성에 블루투스라도 장착이 된 것도 아니고.

핸드폰이랑 페어링이 깨졌으니 이어폰이 자폭한다는 듯한 논리라서 순간 당황했다.

-최대한 빨리! 나룻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생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태현이를 붙잡고 빠르게 달려 나가고.

중현이가 비주를 업었다.

미친 듯이 달려 나가면서 막내가 외쳤다.

“으아아아! 근데 왜 이렇게 배까지 먼 거예요!”

“그거야 이 사람이 역습을 했으니까 그렇지!”

“리혁아! 그게 왜 내 탓이냐!”

느아아아아 하면서 내 옆에서 달리던 리혁이가 외쳤다.

“원래대로면 드라큘라한테 쫓기고 쫓겨서 마지막 순간에 성수를 날려서 역습하는 거잖아요!”

“그치!”

“그런데 우리가 앞마당까지 와서 드라큘라를 없애 버렸잖아!”

“……!”

쉽게 말하자면 원래는 드라큘라를 처치하고 나서 무너지는 성에서 바로 탈출하는 건데.

우리가 적군 본진까지 들어와서 적을 없애 버렸다.

“아씨! 그럼 없애지 말고 인질로 잡을걸!”

“이미 늦은 후회예요!”

우리가 문 하나를 통과하자 지이잉- 하면서 문의 셔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문도 셔터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뛰어!”

계속해서 달리고 달려서. 정말 숨이 턱 끝까지 올라올 정도가 돼서야 마침내 나룻배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휴우…….”

다들 숨을 헉헉대면서 벽을 짚거나 주저앉았다.

성글성글 맺힌 땀을 훔치던 태현이와 눈이 마주치면서 잠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후우.”

턱을 젖히고 잠시 땀이 얼굴과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심호흡을 했다.

어질어질했던 느낌이 조금 사라진 후.

내게 손을 뻗는 원조 졸개의 손을 맞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살짝 후들거리려고 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6명이서 다 같이 손을 맞잡고 드라큘라 공작의 열쇠를 꽂자, 후룸라이드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따라란 딴따단~!]

[드래곤 성의 비밀 탈출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놀이공원처럼 환히 들어오는 불빛이 어두운 동굴을 밝히면서 우리 모두 미소를 주고받았다.

이제 진짜로 끝이었다.

“으으. 아, 이거 진짜 이걸로 탈출해야 돼요?”

질색하는 리혁이를 가장 가운데 앉혔다.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꽈아아악 손잡이를 붙잡는 리혁이의 모습에 다들 웃을 때였다.

“음?”

나룻배에 탑승하지 않는 한 명을 바라보며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ㄴ… 아니, H씨?”

“H씨! 얼른 타세요!”

하지만 태현이는 처연한 미소를 짓는 척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탈 수 없습니다.”

“왜요?”

“누군가는 이 배를 조종해야 하거든요.”

“아…….”

분명히 6인승 공간이긴 했다. 하지만 저기서 누군가 레버를 당기고 조작해야 배가 내려갈 수 있었다.

중현이가 말했다.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중현아.”

“네.”

“이상한 일은 하지 말자.”

“드레스 입고 검 휘두른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소심하게 중얼거리던 중현이가 가늘어지는 내 눈동자에 시선을 피했다.

물론 중현이가 기기를 조작한 다음에 푱! 하고 배로 점프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틴스 표현식으로는 쌉가능.

하지만 이건 실제 현실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여기 피디님이 안전 수칙 위반으로 여기저기서 욕 많이 먹으실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드라큘라를 생포했어야 하는 건데… 조종시킨 다음에 마지막에 성수로 퇴치시키면 되잖아.”

“자꾸 그런 이야기 하니까 악당처럼 보여여. 형.”

“저 아저씨도 보통 인성은 아니라니까.”

더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었던 스토리 루트를 생각하면서 아쉬움을 느낄 때였다.

태현이가 처량한 연기를 하며 말했다.

“여러분 덕에 사악한 흡혈귀를 물리쳤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죽을 운명이었거든요.”

“인정.”

“우리가 살렸지.”

“감사하도록 하세요.”

둘리 패밀리처럼 뻔뻔한 태도에 태현이의 얼굴이 잠시 고길동 이사님처럼 변했다.

“그… 이제 여러분과 작별할 시간이네요. 여러분과 함께 한 이 기억들을 절대 잊지 않을 거랍니다.”

“에궁. 같이 나가고 싶었는데.”

“그럼…….”

기기를 작동시킨 태현이와 우리가 손을 흔들 때였다.

태현이가 아! 하며 말했다.

“그리고 드라큘라 공작이 죽으면서 저의 이름이 떠올랐어요! 저의 이름은 한…….”

퉁!

기기가 작동하면서 태현이가 ‘우!’ 하면서 놀랐다.

우리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한우 씨!”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 아닌가.

우리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태현이가 뛰어나왔다.

“아니, 그게 내 이름이 아니고……!”

“잊지 않을게요! 한우 씨!”

“한우 씨!”

“사랑해요! 한우 씨!”

태현이의 입을 봉쇄하면서 우리가 뒤로 손을 흔들었다.

다급하게 달려온 태현이가 ‘내 이름은!’ 했지만 폭포소리에 이름이 묻혀 버리고 말았다.

좋은 예능 장면을 건졌…….

후우웅!

“어?”

후우우우우웅!

“으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물길을 타고 후룸라이드가 빠르게 내려가면서 몸이 확 쏠린다.

우리의 비명이 동굴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동안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가던 후룸라이드가 마지막 구간에 이르렀다.

[내 성에 들어온 침입자가 누구냐!]

놀이기구 어트랙션 용으로 마련된 드래곤이 입을 쩌억- 하고 벌리는데, 그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통로.

“으아아아아악!”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훅! 떨어지더니 물이 사방으로 튄다!

촤아아아아악!

“어허헉!”

“으퉤퉤퉵!”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그러곤 물에 빠쥔 생쥐처럼 변한 동생들과 눈을 마주쳤다.

“흐하하하하!”

자꾸만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무사히 착륙한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중현이가 말했던 이른바 동굴 빨래터가 지나가고.

마침내 바깥으로 통하는 입구가 보였다.

환한 조명과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느껴지면서 동생들과 내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가 동굴의 입구를 통과했을 때.

피유우우우웅!

팡!

제작진이 쏘아 올린 불꽃이 허공에서 팡! 터지기 시작했다.

환한 얼굴로 반겨 주는 패널들과 제작진. 그리고 배우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배에서 내린 우리가 다 같이 얼싸안고 춤을 췄다.

탈출 성공이었다.

*   *   *

엔딩 촬영을 끝내고 스탭들과 악수를 하며 돌아다녔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철수 준비를 하면서 바쁜 와중이었지만 다들 기뻐 보였다.

“덕분에 분량을 정말 많이 건졌거든요. 이 정도만 해도 3주차 편성에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

여호석 피디가 만족도 200퍼센트의 얼굴로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우주 씨의 활약은 잊지 않을 거예요.”

“네…….”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우주 씨는 큰일을 해낸 겁니다.”

“여러모로 큰일이긴 하네요.”

이제 방송 나가면 주변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에 눈가가 잠시 촉촉해졌다.

피디님과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우리 게스트 씨에게 다가갔다.

“진짜 고생 많았다. 태현아.”

“알면 됐다.”

태현이와 안부 인사를 나눴다.

“내가 안 바쁘면 네가 바쁘고, 네가 안 바쁘면 내가 바쁘고. 참 만나기 힘들다.”

“그러게. 이게 얼마 만이지?”

“만난 김에 밥이라도 먹고 갈래? 드라큘라 연기한 배우 분이랑 같이 밥 좀 먹으려고 하거든. 소고기 사 줄까?”

“음…….”

태현이가 핸드폰을 꺼내고는 미간을 좁혔다.

스케줄표를 바라보며 눈을 굴리는 게 보였다. 앞으로 빼고 뒤로 빼고 하는 식으로 중얼거리는 모습에 내가 툭 치고 웃었다.

“그냥 다음번에 먹자.”

“아. 안 되는데. 오늘 아니면 기회 없는데…….”

“오늘만 날이냐.”

“……형 출국 언제라고 했지?”

“나 이번 주 금요일.”

서로 머리를 끙끙대면서 시간을 짜내려고 노력했지만 전혀 시간이 안 맞았다.

태현이가 아오 하며 말했다.

“누가 이렇게 성공해 버리래.”

“오늘 안 돼? 도저히 시간이 안 나냐?”

“아예 탈출을 늦게 했으면 모르겠는데 형이 너무 일찍 탈출을 해 버려서… 나 그러면 녹음 스케줄 있거든.”

“그럼 어쩔 수 없지.”

시무룩한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밥을 못 얻어먹는 게 한인지 아쉬워하는 녀석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매니저와 함께 차를 타러 가면서도 연신 나에게 손을 흔드는 녀석이었다.

비주가 다가와서 물었다.

“안 드신대요?”

“응. 시간이 안 난다더라.”

공짜 밥을 못 얻어먹어 아쉬워하는 원조 졸개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을 때쯤, 은성이가 쏘옥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후. 저 등장.”

“어디 있다 왔어?”

“한 선배님 좀 피해 있다가…….”

간신배처럼 속삭이는 은성이에게 물었다.

“왜?”

“뭔가 좀… 무서운 게 있어요. 위아래 좀 철저해서.”

은성이는 가짜 광기다.

이렇게 간헐적으로 정신이 들곤 하니까.

고생 많았다고 재롱을 부려 대는 군 후임과도 인사를 나눴다.

패널들과 회식을 하러 간다나.

그렇게 긴 촬영의 마무리를 한 우리는 매니저들을 대동하고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바로 오늘 촬영을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배우들이었다.

같이 고생하기도 했고.

「혹시 출출하시진 않나요?」

무엇보다 이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   *   *

화성시의 어느 부대찌개 식당.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곳을 매니저를 통해 찾아냈다.

“바로 이곳입니다. 제가 미리 섭외해 두고 있었죠.”

세상 뿌듯한 얼굴로 소개하는 민수 씨의 어깨가 위풍당당하게 올라가 있었다.

무언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정중한 표정 아래로 입꼬리가 꿈틀꿈틀거린다.

그러곤 뒤따라 온 차량에서 내리는 외국 배우들에게 말했다.

「한국 음식은 좀 드셔 보셨어요?」

「제대로 된 건 안 먹어 봤지. 어제 막 입국해서 숙소에서 주는 밥만 먹었거든.」

식인종을 연기한 할아버지, 핸슨 씨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잠시 움찔했다.

탈출한 지 1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잔상이 남아 있다.

식인종, 드라큘라, 드라큘라의 신부로 분장했던 배우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우리를 따라 식당에 들어왔다.

가게 사장님이 행복한 얼굴로 맞이했다.

「부대찌개라는 음식을 하는 곳이에요. 약칭으로는 부찌.」

「오오오. 부찌.」

부찌- 하면서 따라 하던 세 신부 역할의 배우들이 꺄르르 웃었다.

우리가 밥을 산다는 제안에 마지막까지 함께 한 이 주연 배우들은 사양하지 않고 따라왔다.

핸슨 씨가 종이를 꺼내 들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혹시 모르니까 손녀한테 가져갈 사인이라도 받으려고.」

우리가 슥슥 사인을 하고 배우들과도 브이를 하고 사진을 찍는 동안.

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니까 다들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셨던 거네요.」

「네. 한 1년 됐나?」

세 신부들과 드라큘라가 저마다의 경력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인지는 저마다 시시콜콜한 비하인드를 밝혔는데 큰 틀은 다 비슷했다.

오디션을 보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놀이공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모양이었다.

세 신부 중 헬렌이라는 분은 퍼레이드에서 신데렐라 역할을 맡았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둘은 백설공주와 라푼젤을 했다나.

「핸슨 씨는요?」

「나도 얼마 안 됐지.」

회계사로 은퇴하고 나서 제2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연기에 도전했다는 모양이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 80대까지 일하면 10년차 배우 아니겠나? 건강 관리만 잘하면 돼. 경쟁자들이 금방금방 이승을 떠나니까.」

‘아, 글쎄 버티면 경쟁자가 사라진다니까?’ 하는 지론을 설파하는 어르신의 말에 다들 웃음을 참았다.

배우 지망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유머러스한 느낌이었다.

마침 음식이 나오면서 대화 주제가 옮겨 갔다.

「이게 부대찌개라는 음식인데요. 저희가 무수한 미국 손님들과 식사를 한 결과, 이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오오오.」

「헤일리 블루도 극찬을 한 음식이에요.」

한국에서 한 세 번 먹고 갔던가.

헤일리의 표현에 따르자면 shibal great이니 이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슬 본론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사람들과 밥 한 끼 하고 싶은 마음에 마련한 자리기도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따로 있었으니까.

「참.」

화제를 돌리는 나에게 배우들의 시선이 모였다.

「여러분의 훌륭한 연기를 보면서 저희끼리 했던 생각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일단 확정적으로 하자는 건 아니고, 먼저 의향을 물어보는 단계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기회인가!’ 하며 눈을 반짝이는 배우들에게 내가 말했다.

「혹시 우리랑 무대 한 번 서 볼 생각 있어요?」

곧바로 배우들이 반색했다.

「좋죠!」

「기회는 주어질수록 좋은 법이지. 허허허.」

「우리 뒤에서 연기하고 그러면 되나요?」

부대찌개가 끓기를 기다리면서 물컵을 홀짝이던 미국인들이 설레어할 때였다.

드라큘라를 연기한 루카스가 물었다.

「저기.」

「네.」

「함께 하고 싶은 무대가 어떤 무대를 말하는 건가요? 그것부터 알아 둬야 할 것 같은데….」

「아.」

우리가 답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요.」

「꺽-!」

물컵을 홀짝이던 미국인들이 물을 쪼로록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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