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36화
드라큘라 역을 맡은 루카스가 입을 닦으며 물었다.
「빌보드요?」
「네.」
「제가 알고 있는 그 빌보드 뮤직 어워드가 맞는 건가요? 헤일리 블루랑 콜드 브라운 같은 가수들이 나오는?」
「네. 바로 그 빌보드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부대찌개 끓는 소리가 보글보글 울려 퍼지는 동안, 놀이동산의 배우들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비주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좋은 소식 아닌가요?」
이쯤이면 와우! 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면서 캉캉춤도 한 번 추고 그런 타이밍이 아닐까 싶었는데.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미국 사람들이었다.
리혁이가 속삭였다.
“우리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 것 같은데요.”
“그런가?”
“솔직히 나 같아도 누가 대뜸 빌보드 뮤직 어워드 무대에 같이 서 보겠냐고 그러면 식겁할걸요.”
“아.”
아직 본격적인 실전 연기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는 조금 공포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사장님! 저희 물컵 네 잔 좀 새로 주세요!”
“네!”
식인종 할아버지 역을 맡은 핸슨 씨가 달달 떨리는 손으로 새로운 물컵을 받아 들고, 중현이가 정중하게 물을 따라 주었다.
「제, 제안은 몹시 감사하네만 대뜸 빌보드 뮤직 어워드라고 하니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구만.」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나 방금 헛구역질 했어.」
그제야 다른 이들도 어색하게 농담을 하며 침착함을 되찾았다.
핸슨 씨가 물었다.
「전후 사정을 알 수가 없으니 당혹스럽군.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가 있나?」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한테 배경 설명을 안 했구나.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잘 모르는 미국 사람들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막내가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저희 미국 가는 거 아시죠~!”
“빌보드 뭐 간다면서요. 라스베가스.”
그에 반해 이 앞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자세하게 백그라운드 설명을 해 주었다.
작년도 할로윈에 헤일리 블루랑 스페셜 음원 ‘Blue Moon’을 내놨다. 그런데 이게 그만 잭팟을 터뜨려 버렸다.
「어? 그거 같이 불렀어요?」
「네.」
「대박! 어디서 목소리는 들어 본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에게 마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 헤일리랑 Blue Moon의 무대를 빌보드 어워드에서 선보이기로 했다. 여기서 무대를 구성해야 하는데 Blue Moon 무대에 있어서는 우리가 꽤 재량권을 부여받았다.
헤일리가 너희의 어썸한 아이디어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 때에 여러분들의 연기를 보고 영감을 딱 얻었죠!」
우리가 말했다.
「헤일리와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근처에서 드라큘라와 세 신부, 식인종 연기를 해 주는 거죠.」
블루문은 할로윈의 무시무시한 존재들을 다루고 있는 곡이다. 살짝 으스스한 뒷배경으로 이 사람들이 연기를 하고 있으면 딱 어울릴 것 같았다.
그제야 배우들의 표정이 편해진다.
「다행이다. 그럼 뒷배경에서 연기만 좀 하면 되는 거죠? 막 춤추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럼요. 춤은 댄서들이 출 거예요.」
「아. 그런 거면…….」
적당히 가수들의 뒤에서 크와앙! 하며 뱀파이어 흉내를 내면 된다는 이야기에 그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헤일리와 본격적으로 무대를 협의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이쪽은 OK인 것 같다.
리혁이가 말했다.
「물론 성사된다고 보장은 못해요. 합동 무대라서 헤일리 의사도 중요하고.」
뒷말은 생략했지만 이 사람들의 실력도 중요하다.
우리도 최고여야 하고, 헤일리도 최고여야 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댄서들과 코러스도 최고여야 하는 무대다.
미리 스튜디오에서 합을 맞춰 보는데 영 아니라면 바로 탈락시켜야 한다. 그만큼 우리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무대니까.
솔직히 전문 연기자를 따로 섭외해도 될 것 같긴 한데, 굳이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무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근데 북부 대공 역할 하신 분 되게 눈에 띄지 않아요?
-나도 비슷하게 느꼈어.
묘한 반짝임 같은 게 느껴진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 사람들의 팀워크도 좋다.
왠지 우리의 무대를 더 멋지게 만들어 줄 것 같다는 예감이 스치면서….
“허헛. 이거 예감이…….”
“비주야.”
비주가 물수건으로 중현이의 입을 턱 막아 버렸다.
어쨌든 우리의 이야기도 제대로 전달됐는지, 핸슨 씨가 대표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겠네.」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에 내가 미소를 지었다.
「다 끓었네요.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와아아아!」
저마다 부대찌개를 덜어서 가져갔는데 반응들이 좋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그냥 밥에만 올려도 맛있는 게 스팸인데, 스팸을 보글보글 끓인 찌개인 거니까.
안 맵게 해 달라고 했는데 딱 적당한 것 같다.
「여러 설이 있기는 하지만 미군 부대에서 나온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었다는 설이 일반적이긴 해요.」
리혁이의 설명에 핸슨 씨가 오오 하며 이것저것 물어 왔다. 부친이 한국전에 참전해서 한국이랑 인연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시작으로 배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분야가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통하는 게 많았다.
게다가 엔터 업계는 어느 나라든 비슷한 면이 있어서 우리가 몇 가지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이름이 확 눈에 안 들어온다는 말도 들은 적 있어요. 딱 직관적으로 들리지가 않는다고.」
루카스 론슨이 음울한 얼굴로 물었다.
「예명이라도 쓸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죠.」
「뉴블랙이란 이름은 어쩌다 지은 거예요? 정말 딱 어울리게 지은 것 같은데.」
「음… 아주 심사숙고했죠.」
3분 카레 정도 시간이라고 절대 말 못해.
초롱초롱한 얼굴로 바라보는 나이 든 후배의 모습에 우리가 헛기침을 하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지호가 말했다.
「일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걸 써 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면 여기 있는 이 마카로니 같은 거라든가.」
「마카로니… 로니 루카스. 나쁘지 않네요.」
농담조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루카스 씨에게 주목했다.
최근에 연습생들 데뷔 구성안을 생각하던 중이라서 그런지, 이 신인 배우에게 시선이 간다.
일단 잘생겼다.
흑발에 우수에 찬 눈동자로 부대찌개 국물을 홀짝이는데, 가게 사장님이 외국 유명한 배우냐고 물어봤을 정도니까.
그리고 연기력도 좋다.
「음? 왜 이렇게 많이…?」
「부대찌개 많이 먹어요. 많이.」
국자를 크게 떠서 스팸을 잔뜩 건져 주었다.
인재를 발견한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다.
뭐 그렇다고 이 사람과 레몬 엔터가 계약을 맺는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될성부른 떡잎에게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마스크도 좋고 연기력도 좋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건 딱 하나, 바로 ‘좋은 기회’였다. 그러니 헤일리 통해서 주선을 시켜 준 다음에 본전을…….
“하하하하.”
머릿속에 토크쇼 장면이 딱 그려진다.
-당신의 연기 경력은 어떻게 시작되었죠?
-오우.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 뉴블랙의 리더가 저에게 연기를 권유하더군요. 그는 정말 어메이징한 사람이었습니다.
-우주 썬 말이군요.
-그분만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나옵니다.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턱을 괴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그런 의미로 루카스 씨가 하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굉장히 진지한 성격이었는데 주로 커리어에 관한 고민들이었다.
「오디션도 계속 낙방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고…….」
옆에서 듣던 세 신부가 ‘으음, 너무 진지해’ 하면서 부대찌개를 음미하는 동안 우리는 차분하게 고민 상담을 해 주었다.
주로 길게 보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나만 해도 6년 연습하고 박태준 회장이 고개를 한 번 슥 저은 걸로 데뷔가 무산됐고. 다시 우리 동생들을 만날 때까지 군대를 포함해 대략 3년 정도가 걸렸으니까.
나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동생들도 연습기간이 길다.
하지만.
그런 것은 결국 운 좋게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고, 지금 심해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거다.
20대 후반의 배우 지망생에게 위로를 건넸다.
「잘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LA에 온 뒤로…….」
잠깐만.
「루카스?」
「네?」
「실례지만 방금 고등학교를 언제 졸업했다고…?」
「아. 작년이요.」
동생들과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작년 고등학교 졸업이면…….”
“제가 올해 졸업인데요.”
지호의 말에 우리가 나이를 계산했다.
작년 졸업이면 올해 스무 살 정도 아닌가?
그 말인즉 졸업하고 나서 LA를 방황한 지 1년도 안 됐다는 이야기였다.
「루카스? 그럼 지금 나이가 열아홉 살?」
「네. 열아홉이요.」
세상 다 산 것처럼 울적한 이야기를 하던 루카스가 무언가 심상찮은 기색을 알아챘는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미국 나이로 열아홉 살.
「그럼 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건…?」
「아. 고등학교에서 연극 동아리였거든요. 졸업 시즌 돼서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
그럼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1년?
동생들의 뒤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극한의 꼰대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 * *
얼마 후 미국 LA.
항공기가 들어갈 만큼 거대한 창고 내부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원 투! 쓰리! 포!”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똑같이 꾸며진 스테이지.
그곳에서 파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묶은 팝스타가 후드티를 입고 리허설을 하는 중이었다.
숨을 몰아쉬는 댄서들을 바라보던 헤일리 블루가 손을 들었다.
“Okay, guys. Let’s take five!”
매니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물병을 건네주면서 헤일리 블루가 물을 들이켜며 머리를 풀었다.
“기술이 존나 빨리 발전해야 되는데 말이지.”
팝스타가 투덜거렸다.
“그래서 연습할 필요 없이 안무가 들어가 있는 알약 하나만 먹으면 연습이 끝나는 거야. 그럼 문제 해결. 끝.”
“그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 일자리가 먼저 없어지지 않을까요?”
“흐음.”
댄서들이 로봇이 대신 춤출 거라는 말을 하며 응수해 왔다. 헤일리가 미간을 모으며 일리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린 그 로봇들을 부수러 다니자. 레지스탕스를 꾸리는 거야.”
“러다이트 운동 같은 거네요.”
“방금 누가 말한 거야? 지미? 너 되게 한국에 있는 닥터 피쉬처럼 유식하게 말하는구나.”
“칭찬 고마워요~ 헤일리.”
“그 친구를 만나 보면 이게 욕이라는 걸 알 텐데. 쯧쯧.”
어리석은 지미.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팝스타가 댄서들의 컨디션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헤일리.”
매니저가 다가와서 말했다.
“뉴블랙이 말한 사람들이 도착했어요.”
“그래? 들여보내.”
그녀의 어메이징한 무대를 위해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아주 어썸한 사람들을 보낸다고 했다.
블루문의 무대를 하는 동안 뒤에서 드라큘라가 크왕! 하듯이 무대 연기를 해 줄 거라나.
잔뜩 긴장한 노인 하나와 여자 셋,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헤일리 블루 랜드에 온 것을 환영해. 요정 여러분. 이곳에서는 내 말이 법이야.”
“그, 그렇군요.”
“젤리 먹을래?”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젤리 봉지를 털어 주자 다들 어색하게 받아 들었다.
대충 호구조사를 끝낸 헤일리가 곧바로 오디션을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는 이들.
마법의 소라고동님에게 저 연기 어떤가요? 하고 묻는다면 소라고동이 수줍게 ‘됴아’ 하고 대답할 느낌이었다.
“써머!”
딸내미가 도도도 뛰어와 무르팍에 앉았다.
“너의 감상을 말해 보렴.”
“젤리 하나 주면 말해 줄게.”
“엄마는 협상 같은 거 안 한단다. 그래서 네 아빠랑 결혼한 거야.”
“치.”
입을 삐죽이던 딸 써머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딸에게 젤리 봉지를 건네준 헤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댄서들로 퍼포먼스를 꾸리고,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뒤에 세워두면 배경 효과도 좋고.’
턱을 쓰다듬던 팝스타가 고민을 끝낸 후에 두 팔 벌려 신입들을 환영했다.
“블루문 호에 탑승한 걸 환영해.”
“허어어!”
댄서들이 환영한다며 웃는 가운데 연기자들이 감격한 얼굴로 서로를 부여잡고 크윽! 하고 좋아했다.
남들이 좋아하면 초를 치는 사람이 있듯이 삐뚜름한 미소를 짓던 팝스타가 시선을 돌렸다.
‘써니가 주목하라고 한 사람이 저 애송이인가.’
직접 다가가 살펴보기로 했다. 연기 쪽으로 재능이 보인다는 말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이봐.”
“예!”
각 잡힌 신병처럼 우렁차게 대답하는 루카스 론슨의 모습에 헤일리가 흐음 했다.
‘빠릿빠릿하군.’
눈에 힘을 빡! 주고 서 있는 것이 꼭 마치 어딘가에서 정신교육을 어마어마하게 들은 듯한 느낌이었다.
“저는 행복합니다!”
“응? 축하해.”
대뜸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을 마시거나 그럴 때도 ‘나는 물을 마실 수 있어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외칠 듯한 기세였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할까.
‘뭐지.’
의문을 품고 있는 그녀에게 핸슨이라는 노인이 답을 해 줬다.
“허허허. 뉴블랙이랑 이야기를 나누더니 저 친구가 아주 밝게 변했지 뭐요.”
“오호.”
“음울한 분위기를 지닌 친구였는데 성격이 참 쾌활하게 바뀐 것 같소. 허허허허.”
“오.”
정확히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무언가 브레인워싱을 한 게 분명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듯한 저 진심 어린 태도.
“젤리 맛없어. 엄마.”
“…….”
“엄마?”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며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엄마의 모습에 딸내미가 으아앙 하고 도망쳤다.
어워드 무대까지 3주가량 남은 어느 화창한 오후였다.
* * *
미국의 배우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고, 루카스 론슨 씨와는 따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끄어어어어어…….”
“끄억.”
“엄마… 우주 형… 아빠…….”
우리는 숙소에서 거의 좀비처럼 일어났다.
전날 드래곤 캐슬 곳곳을 내달린 덕분인지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2층에서 내려와 1층 소파에서 널브러진 채 굼벵이들처럼 엉켜서 비틀대고 있었다.
“아. 진짜 어떤 미친 사람이 시상식 전날에 예능 촬영을 하자고 하냐….”
중얼거리면서 동생들이 그러니까요 하고 답했다.
왜 녹화 일정이 이런 식으로 잡히게 되었느냐.
그것은 바로…….
-솔직히 유럽 투어 끝나고 나면 피곤하니까 그냥 빨리빨리 처리해 버려요.
-그래. 그러자.
-일단 후딱 끝내 버립시다!
우리 스스로의 잘못이었다.
회사에서 천천히 녹화하자고 했는데 빨리빨리 하고 싶다고 성화를 부렸다.
중요한 예능 같은 걸 앞두고 있으면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이 안 되고 그런…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는데.
막상 다음 날 일어나고 나니 장난이 아니었다.
“끄응.”
“으으으으.”
“중현이는 왜 힘들어 하니. 컨셉이야?”
“꿈에 망태 할아버지가 닭꼬치 들고 따라왔어요…….”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모양이다.
“흐어어.”
“흐어.”
“아. 진짜 죽겠다…….”
그렇게 허우적대던 우리는 얼마 후 찾아온 매니저들의 손에 이끌려 샵으로 이동했다.
중요한 국내 일정 때문이었다.
“네. 구독자 여러분.”
셀프캠을 바라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지금 차를 타고 코엑스로 이동하는 중인데요. 바로 오늘 있을 제53회 한국예술대상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와아아아아!”
“저희가 정말 감사하게도 세 부문에 후보로 올랐어요.”
나 개인으로는 김우주 배역으로 ‘TV 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에 올랐고.
단체 뉴블랙으로서는 남자 예능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우리의 미튜브 컨텐츠인 역사탐험대는 TV 부문 교양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컨텐츠라 케이블 채널 몇몇에 송출한 적이 있는데 그 덕에 TV 부문 후보에 오른 듯했다.
솔직히 수상 가능성은 잘… 모르겠다.
남자 예능상은 확실히 수상할 것 같은데, 나머지 둘은 수상할지 말지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전부 다 수상을 한다면야 정말 좋겠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시상식에 임해 보고자 합니다.”
“화이팅!”
“화이팅!”
그쯤에서 셀프캠을 잠시 끊고 코엑스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대한민국 3대 영화 시상식 중 하나로 불리는 한국예술대상.
TV로 생중계되는 어워드인 만큼 오늘 하루 힘차게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 하루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딩동!
“음?”
톡이 하나 들어와서 확인 버튼을 눌렀다.
HBS에서 보낸 톡이었다.
“HBS에서 보냈는데?”
“그래요?”
HBS 예능국장이라는 분이 어제 촬영은 잘했냐, 우리 잘해 봐요 사랑해요 러뷰 뿅뿅 하는 톡을 보내 주셨다.
그리고.
“으악!”
국장과 차장 명찰을 단 중년 남자들이 발그레한 얼굴로 하트를 그린 사진이 도착했다.
[저희의 사랑입니다♡]라고 되어 있는 문구와 함께.
“아!”
“으!”
막내가 손으로 눈을 덮었다.
“…….”
“…….”
“아 진짜…….”
잘해 주는 게 고맙긴 한데….
좀…….
뭐라고 해야 되지. 이걸.
방송국과 화해를 한 것이 정말로 좋은 선택이었는지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