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42화
“응?”
미국에서 투어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이상한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게 뭐지?”
“우리 가던 그 베이커리 아니에요?”
“맞네.”
이번에 케이크를 300개 주문했던 동네 베이커리였다.
우리만 알고 있는 숨은 맛집 같은 곳인데, 케이크가 진짜 맛있어서 지인들에게 돌리기로 결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저게 다 사람인가?”
온라인에 뜬 사진에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뉴스도 떴다.
벌써부터 모든 예약이 마감되어서 앞으로 6개월 넘게 남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모두 예약이 찼다나.
“너무 걱정할 건 없어.”
원석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베이커리 사장님이랑 통화했는데, 너희가 주문하는 건 언제든지 최우선으로 해 주겠다더라.”
“그래요?”
“장사가 엄청 잘 되나 봐.”
“잘됐네요….”
우리만 알고 있던 맛집이 잘되어서 좋긴 좋은데…….
“단골집을 못 가게 생겼네.”
“여기 빵 앞으로 먹을 수는 있으려나….”
가끔씩 숙소에 갈 때 들러서 빵을 몇 개씩 사던 곳이었는데, 이제 그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 같았다.
지호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짜 먹는 거에 진심 같아요. 어떻게 빵 먹겠다고 저 새벽부터 줄을 서지?”
“다들 빵 먹겠다고 대전까지 가는데 뭐.”
사실 우리가 할 말은 아니었다.
매번 군산에 놀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동생들이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게 유명 빵집이랑 짬뽕이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군산 3대 명물에는 빵집과 짬뽕, 그리고 선우주…….”
“에이. 또 그 얘기.”
“아니, 군산에 갈 때마다 시에서 현수막 걸어 주고 그런다니까. 진짜로. 시장님이 환영해 주시는….”
“에에에에에~!”
듣기 싫다는 듯 귀를 파파파팟 하는 막내와 중현이를 보고서는 입맛을 다셨다.
고얀 것들.
어쨌거나 미국에서 투어를 돌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단골 빵집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소식에 눈물이 나온다.
그냥 ‘오늘은 좋은 날, 여러분 모두가 저희의 선생님이에요’ 하면서 케이크를 보냈는데, 이게 또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밥이나 먹자.”
“예이~!”
뉴욕의 유명 한식당에서 나오는 물수건을 뜯어 손을 슥슥 닦고는 노곤한 어깨를 주물렀다.
“이제 우리 북미로 넘어온 지 열흘인가?”
“그쯤 됐을 거예요.”
북미에서 체류한 지 이제 열흘 정도.
댈러스에서 시카고로 넘어오고.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넘어와서는 2일간 공연을 했다.
장소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맨해튼에서 자리 잡은 해당 공연장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으로 알려져 있다.
NBA 구단의 홈구장이기도 하고.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와 함께 복싱으로 유명한 경기장이다.
수용 인원은 체조경기장이랑 비슷해서 1회에 만사천여 명 정도.
그렇게 2회 공연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노곤노곤 했지만, 아직 긴장이 풀리거나 그러진 않았다.
“이제 빅 이벤트만 남았네요.”
비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중요한 게 남았지.”
어찌 보면 북미에서의 스케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스케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중현이가 불고기 전골 냄비를 국자로 뒤적이며 말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요. 빌보드에서 무대를 한다니…….”
“으아아아아!”
다 같이 팔을 파닥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라니.
마치 신인 때, 망고 어워드나 KMA에 첫 무대를 섰던 것처럼 심장이 콩닥거리고 그랬다.
동시에 너무 설레서 매일같이 달력을 보며 무대를 하는 날이 언제인지 세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히죽히죽 웃는데 중현이가 말했다.
“형. 빌고기 다 됐어요.”
“그래. 일단 빌고기부터 먹자.”
이번 어워드에서는 엄청 멋진 모습만 보여 줄 거다.
“잠깐.”
리혁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고기 아니에요?”
“…….”
멋진 모습… 이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 * *
뉴욕 콘서트를 마친 우리는 곧바로 LA로 이동했다.
사실 어워드까지 하루 정도만 남은 터라, 시간을 생각하면 바로 어워드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하는 게 옳다.
하지만 연습을 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LA에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LA 국제공항에 내려서 곧장 시 외곽으로 향하자 아주 거대한 창고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와아아…….”
물류 창고가 아닐까 싶을 만큼 거대한 공간이었다.
비주가 말했다.
“여기가 헤일리가 콘서트 연습할 때마다 쓰는 곳이래요. 실제 공연장이랑 똑같이 준비해 놓고 한다고.”
“대박이다.”
“저렇게 하면 실전 가도 안 떨리겠는데?”
연습을 정말 실전처럼 꾸미고 할 수 있다는 재력에 감탄이 나온다.
우리는 무대에서 억을 힘겹게 쓰는데, 여기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억 단위를 물처럼 쓰는 느낌이다.
“진짜 억 소리가 나오네.”
“…….”
“…….”
아무도 웃어 주지 않았다.
민기 형과 원석이 형만 취향저격이었는지 껄껄거리며 웃는데, 왠지 모르게 그게 더 슬프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리자 격납고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안쪽의 풍경이 드러나는 가운데, 파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묶은 미인이 걸어 나왔다.
선글라스를 쓴 채 껌을 우물거리던 헤일리 블루가 풍선껌을 퐁! 하며 말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뚱한 얼굴로 걸어오는 이에게 우리가 ‘헤일리!’ 하면서 뛰어갔다.
「기다리느라 진이 다 빠지는 줄 알았네.」
「길이 막혔어요.」
「LA 교통이 좀 엿 같긴 하지. 내 친구 중 하나는 그래서 헬리콥터로 출퇴근한다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헤일리가 대충 포옹을 해 주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헤일리 블루라면서 놀라는 신규 매니저들의 모습을 보며 웃고는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창고.
창고 특유의 습하고 고여 있는 공기의 냄새와 함께 정말 실제 무대와 똑같이 세워진 세트가 보인다.
“우와아아…….”
영상 통화를 통해 한 차례 확인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클 줄은 몰랐다.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가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Blue Moon’ 하면서 반짝이는 네온사인 조명도 그렇고, 진짜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무대 위에 미리 서 보는 느낌이다.
「어때?」
「좋은데요? 진짜 무대에 선 것 같아요.」
주변에서 상주하고 있는 응급처치 인력도 그렇고.
무언가 선진적인 연습 환경을 배우러 온 워크샵 같다.
무대를 둘러보는 우리에게 헤일리가 자신의 크루들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는 우리 수석 댄서 지미 호프먼. 콘서트나 공연 때마다 퍼포먼스의 중심을 맡고 있지.」
「헤일리는 춤을 더럽게 못 추거든요. 그래서 제가 잘해야 됩니다.」
「지미, 오 지미. 넌 매일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구나.」
페도라를 쓴 쾌활한 인상의 남자가 ‘At your service’ 하면서 궁중 관료처럼 인사를 했다.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웃었다.
특히 리혁이를 보면서 ‘당신이 그 유명한 닥터 피쉬냐’ 하고 묻는데, 무언가 반가움이 가득했다.
리혁이도 상대가 마음에 든 듯했다.
“궁중 인사가 고증에 맞았어요.”
“…….”
뭐. 그런 이유였다.
헤일리가 소개해 주는 사람들과 반갑게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면서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크루와 섞여들어 있는 몇몇 배우들.
소개가 필요 없는 사이였기에 우리가 먼저 가서 인사했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와아아아!」
<지금부터 우리는>에서 식인종 할아버지, 드라큘라와 세 신부를 맡았던 배우들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헤일리 블루가 최고야’ 라고 프린팅된 단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잘 지냈어요?」
「우리야 잘 지냈지. 덕분에 밥도 매일같이 맛있는 것 먹고, 무대에도 이렇게 올라가게 됐다네.」
식인종을 연기한 핸슨 씨가 우리 손을 붙잡고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귀한 무대 경험도 해 보는군.」
뒷배경으로 연기를 하는 역할이라 포커스가 가진 않겠지만, 이들에겐 그런 기회조차 몹시 소중할 터였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감정이 따스한 손끝으로 느껴진다.
다른 이들과 가볍게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지은 후, 슬쩍 자리를 피하려는 루카스 론슨 씨를 붙잡았다.
「우리 북부 대공!」
「북부 대공이다아!」
「그, 그만…….」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인지 우리가 둘러싸면서 와아아 하자 루카스가 울상이 되어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봐도 진짜 잘생기긴 했다.
책 밖으로 걸어 나온 북부 대공처럼 생긴 미남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지냈습니다. 덕분에 좋은 기회도 얻었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하려고요. 뼈가 부서질 각오로.」
「저희의 말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본 크래시!」
「네. 너무 인상적이어서.」
루카스가 헤일리 쪽을 눈짓하며 속삭였다.
「그리고 이 공연이 잘 끝나게 된다면 헤일리가 저에게 배역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어요.」
「진짜요?」
「네. 크리스 카일 씨를 통해서 에이전시도 소개시켜 주시고. 연기 기회를 알아봐 주신다고.」
크리스 카일.
유명한 메디컬 드라마의 주연 중 하나이자 헤일리의 남편이다.
헤일리가 연기 기회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다.
내가 이 사람을 보고 ‘어?’ 하고 느꼈듯이, 헤일리도 지켜보면서 ‘음?’ 하고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돌아오자 헤일리가 말했다.
「저 친구한테 배역 소개시켜 주기로 했다는 얘기 들었어?」
「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잘하지 않아요?」
「뭔가… 보이긴 해. 범상치는 않아. 무언가 반짝이는 느낌.」
「맞아요.」
「그러고 보니 너희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르네.」
헤일리가 아련한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존나게 반짝이고 있었지….」
격한 칭찬에 우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꼭 이웃집 소년들이 떠오르는 듯한, 이 친근한 느낌에 LA가 마치 제2의 숙소 같고 푸근하다.
그렇게 헤일리의 크루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곧장 회의에 들어갔다.
「일단 우리 무대는 총 5분이야.」
5분.
말로만 들으면 그리 안 길어 보일 수가 있다.
우리나 틴스피릿이 KMA 같은 국내 어워드에 나가고 그러면 기본 10분씩은 받고 그러니까.
TNT가 한창 위세를 떨칠 때는 거의 25분간 TNT 스페셜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한국 어워드와 다르게 미국의 음악 시상식은 가수마다 대체로 1곡만 부르면 끝나는 무대였다.
-아니, 로건 스미스가 저것만 부르고 내려가?
-콜드 브라운도 한 곡 하고 끝나는데요?
-콜드 브라운이…?
처음에 다른 가수들의 빌보드 무대 영상을 찾아보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최고의 유명 가수들이 3분짜리 무대 하고 바로 내려가고 끝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쪽 시상식은 우리나라랑 느낌이 좀 다르긴 하다.
국내 시상식이 ‘자! 메인메뉴 뉴블랙 나옵니다!’ 하며 코스 요리가 순차적으로 나오는 느낌이라면, 미국 음악 시상식은 뷔페에 가깝다. 한 접시에 헤일리 블루 한 스푼, 콜드 브라운 한 스푼, 로건 스미스 한 스푼 하는 식으로.
석환 형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이랑은 좀 사정이 다르거든. 음악시장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크기도 하고. 딱히 특정 가수들의 팬덤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요계를 움직이고 그럴 정도가 아니라서 그래.
그래서 골고루 1곡씩 깔끔하게 하고 내려간다는 듯했다.
그런 면에서 헤일리가 2곡, 총 5분이나 할당 받았다는 건 대단한 거였다.
「우선 앞에 2분 동안 내 개인 곡으로 무대를 하고 난 다음에… 그 뒤에 너희가 등장하는 거야.」
테이블 위에 놓인 무대 지도에서 헤일리가 마커펜으로 동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블루문 세트랑 연기자들, 댄서들이 나오고. 거기서 스탠딩 마이크 다섯 대를 세팅한 다음에…….」
전체적으로 이번 무대의 구도는 이랬다.
1. 헤일리 블루가 먼저 2분 동안 단독 무대를 한다.
2. 곡이 바뀌면서 세트 설치까지 10초가량.
3. 등장한 뉴블랙이 헤일리 블루와 함께 블루문의 무대를 한다.
4. 곡 중간에 뉴블랙에겐 30초의 단독 샷이 주어진다.
5. 잘 끝내고 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이 중에서 4번이 우리가 가장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었다.
‘30초.’
‘이게 제일 중요하지.’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무대가 확정되었다는 순간부터 우리가 가장 고민을 했던 부분이었다.
“……30초.”
키즈 초이스로 이름을 좀 알렸다.
그리고 이제 이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 무대를 보여 줘야 한다.
하지만 헤일리와 콜라보로 불렀던 곡이기에 우리의 단독 무대로 무언가를 보여 줄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임팩트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노래 부르는 애들은 누구지?
아마 이 정도 반응.
그러하기에 무언가 강렬한 것을 보여 줘서 TV로 어워드를 보던 사람들이 어멋! 해야 한다.
-이 집 어그로 잘 끄네! 이름이 뭐냐!
이런 느낌이 되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무대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헤일리의 제안으로 단독샷 30초를 얻었고.
우리는 이 30초 동안 강렬한 것을 보여 줘야 한다.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뉴블랙이 누구냐!’ 하고 검색창에 입력하도록.
「회의는 여기까지야. 10분 동안 휴식하고 바로 모이자고.」
「네.」
회의를 끝내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푸는 동안 리혁이가 다리를 찢으며 말했다.
“이번엔 좀 특별한 걸 보여 줘야 해요.”
“그래야지.”
기존 영미권의 보이밴드와 똑같은 컨텐츠로 승부해서는 별다른 임팩트를 남길 수 없다.
블링블링한 얼굴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데 형 정도 얼굴이면 충분히 될 것 같아요.”
“비주야!”
“혀어엉!”
“역시 내 1호 팬이다. 1호 팬이다.”
“……네? 제가 팬… 어? 네?”
“?”
역시 내 팬이라며 칭찬해 줬는데 갑자기 혼자 고장이 난 비주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거나.
그런고로 이번 무대에서 우리가 취한 전략은 바로 ‘반전’이었다.
우리가 보여 줄 수 있는 비교 우위는 바로 춤.
처음에는 기존에 미국 사람들한테 익숙한 보이밴드의 모습을 보여 주다가 중반부의 30초의 댄스 브레이크를 이용해서 반전을 보여 주려는 것이 계획이었다.
“미국인들에게 K-댄스의 맛을 보여 주자. 졸개들아.”
“K-목 풀기.”
“K-윙크.”
저마다 K드립을 치면서 몸을 완전히 푼 후에 바로 리허설 준비에 들어갔다.
실전과 똑같이 반복되는 리허설.
이전에는 헤일리와 댄서들만 했을 리허설에 우리까지 끼어서 최종 리허설을 함께 했다.
그리고 우리가 30초간 준비한 무대의 반응은…….
“Ha, shibal…….”
몹시도 좋았다.
헤일리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들었다.
「내가 호랑이를 키웠군.」
한국 속담을 뻐킹 타이거로 적절하게 인용하는 헤일리의 센스에 우리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화기애애한 웃음이 감돈다.
그렇게 리허설을 하면서부터 대박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잠시 쉬는 시간 동안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면서 우리가 다가갔다.
「루카스?」
루카스 론슨이 심란한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그게…….」
루카스가 핸드폰을 들어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떴어요.」
「어…….」
그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슬슬 다가오는 것 같은데… 이제 어떡하죠?」
「…….」
화면에 뜬 30초짜리 영상을 보는 순간, 우리의 얼굴도 동시에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데, 뭔데?」
참견쟁이처럼 쏙 끼어든 헤일리가 영상을 보고 폭소를 하기 시작했다.
* * *
비슷한 시각.
한국에 있는 수플레들은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허하다. 허해.’
미튜브 컨텐츠가 매일 올라오고, 최애의 콘서트 사진도 매일 올라오고.
이번 타이틀곡 Coin에 대한 좋은 성적들이 매일 들려오고 있는 요즈음이었지만 수플레들의 마음은 허하기 그지없었다.
‘에휴. 뉴블랙이 해외에 있으니 입맛도 안 돌고…….’
먹을 게 없다면서 양손으로 떡밥을 받아 들어 우물우물하고 있는 수플레들의 모습이었다.
구름 위에서 탱자탱자 덕질하는 모습.
지상에 있는 다른 아이돌 팬들이 땅에서 흙오이 같은 떡밥을 억지로 캐내는 동안, 수플레들은 몽글몽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빌보드 어워드인가?’
수플레들의 눈이 반짝했다.
뉴블랙이 빌보드 무대에 선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터였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무대를 보여 줄까.
그리고 해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 줄지 너무 기대가 되고, 레드카펫서부터 들려올 환호성이 짜릿하다.
“으헤헤헤헤!”
그렇게 행복 덕질을 하고 있던 때.
수플레들에게 낯선 것이 하나 굴러들어왔다.
“음? 이건 뭐지?”
미튜브에 떠올라 있는 HBS 방송국의 영상이었다.
30초짜리 예고편.
-[1차 예고] Ep21. “이번 생은 레이디가 되겠습니다” (HBS 지금부터 우리는)
영상을 누르자 샤라랑~ 하는 BGM이 들렸다.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만든 영상이 흘러나온다. 요술공주 역할을 주로 맡는 성우의 내레이션과 함께.
북부 대공과 누이들이 우아하게 테이블에 둘러앉은 장면.
그리고 핑크색 머리카락의 누군가가 만찬장으로 이동하는 뒷모습.
[어느 날 나는 책 속에 들어와 버렸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 <왕녀님이 제일 쎄>에 들어온 나는 이곳의 엑스트라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북부 대공과 왕녀의 로맨스를 그린 이 아름다운 이야기… 어라?]
성우의 능청맞은 내레이션과 함께 화면이 와장창 깨진다.
핑크 머리카락 레이디의 앞모습이 공개되면서 수플레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비주야?’
레이디 비주가 두 손을 곱게 들어 인사한다.
뽀얀 필터가 낀 미소녀의 얼굴.
[아름다운 저녁이에요. 공작님.]
샤라랑~ 하는 BGM과 함께 ‘<지금부터 우리는>에 뉴블랙이 찾아옵니다!’하는 자막으로 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한국의 네티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