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46)화 (64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46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떨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맞아.”

“원래 무대 올라가기 전에는 다 떨리는 거죠.”

달그락! 닥닥닥닥닥닥!

어찌나 떨리는지 우리가 이빨을 딱딱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린 채 고개를 젖혔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좀 다잡으려고 하는데 그런 내 품으로 거대한 덩어리들이 들어왔다.

쏘옥! 쏘옥!

“뭐냐. 이 덩어리들아.”

“덩어리라니 말이 너무 심해요. 형.”

비주가 그런 말을 하며 아기 펭귄처럼 몸을 모았다. 갑자기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태가 됐다.

“왜 갑자기 모이는 건데.”

“형이 모이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두 팔 벌리고 있어서 이제 어깨동무 타이밍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긴 한데.”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동생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로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빌보드 무대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엄청 기뻤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했다.

뭐. 어차피 미국의 로컬 시상식 아닌가. 음… 국민 아이돌 뉴블랙은 그런 사대주의에 혹하지 않지! 하면서 멋진 마인드 세팅을 했는데.

진짜 빌보드 어워드 무대를 앞두고 있자니 그런 얄팍한 자기 암시가 싹 다 날아가 버렸다.

“진짜 첫 콘서트 했을 때만큼 떨리네.”

“저도요.”

“뭐. 근데 그만큼 중요한 공연이잖아요. 우리한테.”

다른 아이돌이 일본 시장에 공을 들이듯이 우리도 현재 북미 시장에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시장 규모가 무지막지하게 크기도 하고. 여기서 잘 되면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단위수가 달라지니까.

또한 북미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할 경우에 남미이나 유럽에서도 글로벌 스타로 띄워 주는 경향이 있어서 중요하기도 하다. 미국에서 스타니까 세계적인 스타네! 하는 게 현재 시대의 상식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북미의 시청자들 앞에서 선보이는 첫 데뷔 무대.

“…….”

동생들과 머리를 맞댄 채 잠시 숨을 골랐다.

중심을 잡아야 할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성하면서 동생들에게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연습한 대로만 하자. 솔직히…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우리 연습량으로 무대 망하기가 힘들어.”

“인정이에여.”

“그냥 연습한 대로만 해도 우린 성공이야.”

그런 식으로 동생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중현아.”

“네.”

“간만에 예언서 좀 펴 보자.”

너무 떨릴 때는 미신에 의존하는 것도 좋다.

중현이가 가방에서 책을 가져오면서 스탭들과 우리가 성경을 든 신부님 앞에 모이듯이 경건하게 섰다.

“형.”

중현이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만약에 안 좋은 게 나오면 어떡하죠.”

“그런 액운을 이겨 내고 빌보드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준 뉴블랙이 되면 되는 거지.”

“역시 정신 승리계의 최고봉…….”

“책이나 펴라.”

젤리젤리 마법젤리 하던 중현이가 촤라라락 책을 넘기다가 촙! 하고 점지했다.

『 때로는 한 번쯤 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신규 매니저들이 헉! 하는 동안, 우리 매니저들이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보라고 말했다.

“역방향에 주석이 달려 있어.”

“!”

역방향으로 책을 들어 보자 4포인트 글귀로 문구가 적혀 있다.

『 근데 안 망함 』

동생들과 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책을 덮었다.

누가 보면 굉장히 바보 같은 광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미신에 가끔 의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히 스포츠 스타들이 징크스라고 해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 빨지 않은 속옷을 입는다든가, 테니스 선수가 구장에 들어갈 때 꼭 왼발을 먼저 들인다든가 하는 게 아니다.

일종의 스트레스 관리 비결이다.

똑똑-

노크를 하더니 파란 머리카락의 가수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안 가?」

「갈게요.」

「근데 뭐 하고 있었어. 거기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외국 사람이 본다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광경이라 책을 얼른 덮었다.

나를 호위하듯이 착 달라붙은 동생들과 걸어가는 동안 헤일리가 머리를 털면서 물었다.

「나 어때?」

노란색 드레스에 머리띠를 하고 있는데, 말괄량이 소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의상이었다.

헤일리 뒤편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는 게 느껴졌다.

‘칭찬해 주세요. Korean 여러분. 여기에 걸려 있다. 나의 생계.’

‘당신들의 칭찬이 간절해요.’

한국 연예계 생활 4년차로 다져진 우리의 아부에 헤일리가 흠흠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옷이 스폰지밥 색깔 같다는 말은 삼켰다.

김덕순 여사에게 유바바 드립을 쳤다가 등짝에 공룡발자국처럼 손자국을 남긴 내가 아니던가.

물론 그와 별개로 의상이 진짜 예쁘긴 했다.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의상이어서.

「너희 의상도 나쁘지 않아.」

「그래요?」

「어린이들이 환장할 것 같군.」

우리는 올드스쿨 룩으로 의상을 입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준비한 색감 있는 의상인데 묘하게 예전 느낌을 풍기면서도 최신 옷 같다.

Blue Moon이 80년대풍의 복고풍 분위기의 R&B 노래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제 올라가자고.」

기지개를 켜는 헤일리를 따라 우리가 걷고, 댄서들과 오늘 첫 무대를 앞둔 배우들이 뒤따랐다.

워우! 와우! 하면서 댄서들이 추임새를 넣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가운데.

-다음에는 진짜 끝내주는 가수들이 기다리고 있죠!

프레젠터들이 우리 무대를 소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두 가수의 팬들을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가수들이 아닐까 싶네요.

“끼야아아아아아악!”

어마어마한 환호성.

댄서 중 하나가 ‘ㅇ_ㅇ’ 같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우리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가볍게 발을 구르며 긴장을 풀던 헤일리가 막이 내려져 있는 무대 쪽으로 나가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우산 모형 위에 드러누운 가수 위로 지미집 카메라로 움직이는 가운데, 프레젠터들의 맛깔난 소개에 함성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다음 퍼포먼스는 바로 끝내주는 콜라보레이션입니다! 여러분도 보면 반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크롸라라라라라!”

-개인적으로 이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굉장히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무대는 헤일리 블루!

“와아아아아아!”

-뉴블랙!

“크르르르르르르르!”

-그들의 합동 무대입니다! 박수로 환호해 주세요!

무대를 가리고 있던 막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백스테이지에서 지켜보고 있는 우리가 괜히 떨리고 그런다.

그리고.

헤일리가 무대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잘한다.”

“진짜 잘하는데요.”

이런 대형 무대에서 헤일리가 공연하는 것은 두 눈으로 처음 본다.

환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우산 위에 요정처럼 앉아 있던 헤일리가 내려오면서, 상의를 탈의한 댄서들이 우산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했다.

‘Umbrella’라는 곡이었다.

빗방울을 악성 댓글로, 그걸 막아 주는 가족과 친구들을 우산으로 형상화한 곡이었다. 우산이 촤악! 펼쳐지며 물기를 튕겨 낼 때마다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번져 나간다.

“와…….”

환히 웃는 파란 머리카락의 가수가 무대를 누비면서 관객들의 환호성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앞선 무대의 파격적인 그… 로켓 때문에 임팩트가 약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을 날려도 될 정도였다.

음역대가 원체 넓어서 그런지 노래의 강약을 절묘하게 조절하면서 관객들을 장악하는 헤일리였다.

지호가 감탄했다.

“와. 무대할 때는 진짜 다른 사람 같아요.”

남편이나 딸내미를 볼 때만 간헐적으로 미소가 나오는 뚱한 스타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보는 사람도 같이 즐거워지는.

파란 머리카락을 구불구불 늘어뜨린 새하얀 얼굴이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후우…….”

근처에 있던 진행요원이 손가락으로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동생들과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이팅.’

손가락의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5.

4.

3… 2… 1.

카운트다운이 완료된 순간 멤버들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   *   *

마이크를 높이 들고 후렴을 열창한 헤일리 블루가 뿌연 안개 속에 잠기고.

둥! 둥! 하는 드럼 소리와 함께 조명이 음산한 붉은색으로 바뀌면서 환호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붉은빛에 적셔진 안개가 사방에 퍼진다.

“와아아아아아아!”

현장의 수플레들이 내지르는 함성에 연예인들과 관객들이 화들짝 놀랐다가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깜짝이야.’

중계 카메라가 눈물을 왈칵 쏟는 팬들의 모습을 잡은 후.

드럼 소리와 음산한 BGM이 얽혀 들어가면서 댄서들이 일사불란하게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뒤편의 세트도 회전하면서 배경이 바뀌었다.

화사한 공원에서 음산한 공동묘지로.

“와아아아아!”

순식간에 검은 드레스로 의상을 갈아입은 헤일리 블루가 등장하면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관객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뭐지?’

Umbrella를 조금 음산하게 바꾼 듯한 분위기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잡힐 듯 말 듯.

Umbrella에서 익숙한 분위기의 노래가 들릴락 말락 하고 있었다. 마치 관객과 밀당을 하듯이.

한국의 어느 프로듀싱팀이 혼신을 다해 편곡한 도입부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아! 했다.

‘이거……!’

헤일리 블루의 뒤에서 드러머가 리드미컬한 연주를 하면서 멜로디가 확 바뀌기 시작했다.

짧게 흘러나오는 메인 멜로디.

80년대를 연상시키는 듯한 복고풍의 도입부.

절로 고개를 까딱하게 만드는 멜로디에 관객들이 몸을 흔드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기 시작했다.

“이거 그거네! 블루문!”

“블루문이었구나.”

집에서 TV로 보고 있던 미국의 시청자들도 신이 나서 외쳤다.

‘블루문 무대는 처음 보네.’

한국에 살고 있는 뉴블랙은 그 성공의 정도를 평가절하하고 있었지만, 미국 내에서 어마어마한 히트를 친 싱글이었다.

나온 지 두 달 만에 2016년 빌보드 연말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여전히 Hot 100 내에 차트인을 하고 있어서 올해 연말 차트에도 이름을 올릴 거라는 말이 나오는 노래였다.

바퀴벌레처럼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모습에 각종 음악 잡지나 미국의 평론가들이 어떤 식으로 곡이 구성되어 있는 것인지 분석하는 장문의 기사가 올라오기도 하고.

세계 각국의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북미나 유럽의 뉴블랙 팬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한 곡이었다.

다만…….

‘헤일리 블루 말고 다른 쪽은 처음 보네.’

그냥 스트리밍으로 노래만 듣는 사람이 대다수였던 만큼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얼굴은 처음 본다.

키즈 초이스의 이슈로 인해 뉴블랙에 대해 얼핏 알고 있지만.

그것이 블루문의 원곡자인 뉴블랙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 탓이기도 했다.

워낙에 땅 덩어리가 커서 대통령 정도는 되어야 인지도 90프로를 달성할 수 있는 나라인 만큼, 셀럽에 대해 관심이 많으면서도 적은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본인이 관심 있는 셀럽만 찾아보는 식이었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 순간.

TV 속 조명이 붉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희뿌연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미청년 5인조에 현장이 들썩였다.

‘함성 대박이다.’

쟤네가 대체 누구기에 저런 걸까.

아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무대를 시작하니 막 팬들이 울부짖고 난리가 나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볼륨을 조금씩 더 키웠다.

‘귀엽게 생기긴 했네.’

저마다 스탠딩 마이크를 하나씩 쥔 채 올드스쿨 룩을 입은 소년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헤일리가 첫 소절을 부른 후.

유독 잘생겨서 보기만 해도 입바람이 새어 나오는 미남이 마이크를 잡았다.

캡모자 아래로 단정한 금발이 정돈되어 있는데, 곧은 선을 자랑하는 콧대 아래로 유려한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Sometimes we need a little magic

(가끔씩 마법이 필요할 때가 있지)

Especially, under this blue moon

(특히나 이 푸른 달 아래선)

‘오?’

시청자들의 눈이 커졌다.

‘잘한다.’

숨소리가 살짝 섞여 들어간 가사가 달콤하다.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함께 본능적인 리듬감이 특출한 느낌. 매끄러운 보컬로 R&B 풍의 음악을 잘 살리면서 감탄이 나왔다.

객석에서 로건 스미스를 비롯해 연예인들이 어깨춤을 추거나 박수를 치며 즐기는 모습이 잡힌 후.

‘오?’

다른 멤버의 파트가 이어졌다.

머리를 분홍색으로 물들인 곱상한 미소년이었다.

스탠딩 마이크를 한 손으로 잡은 모습이 너무도 얄쌍해서 왠지 모르게 내가 지켜 줘야 할 것 같은 느낌….

I’ll show you my dance

(춤을 준비했지)

작은 체구에서 나오기 힘든 쩌렁쩌렁한 성량에 시청자들이 미소를 지었다.

‘지켜 줘야 할 건 쟤가 아니라 나였고.’

곱상한 얼굴로 R&B 노래를 파워풀하게 부르는 메인 댄서의 모습이 지나가고, 다른 두 멤버의 파트도 이어졌다.

블루문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고스란히 흘러나온다.

올드 스쿨 패션에 반다나를 한 미남이 생긋 웃으며 표정으로 사로잡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박시한 티를 걸친 듬직한 미남이 저음의 목소리로 싱잉랩을 하는 모습에도 시선이 갔다.

그리고.

“허어어.”

“쟤 뭐야?”

창백한 얼굴의 메인 보컬이 스탠딩 마이크를 두 손으로 붙잡은 채 노래를 부를 때는 감탄이 나왔다.

힘을 들이지 않고 목소리를 키우는데도 볼륨이 혼자만 2에서 3 정도 높은 것 같다.

워낙에 투명한 목소리라서 그런지 헤일리 블루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와 궁합이 찰떡같다.

풍부하고 깨끗한 음색에 TV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서로 바라보며 wow 했다.

“쟤가 제일 인기 많은 애 같지?”

“백퍼.”

“노래 잘하는 애가 인기가 없을 리가 없지.”

그러는 한편.

왜 저리 팬들이 환장하는지 알 것 같은 시청자들이었다.

‘헤일리 블루랑 하는데도 안 밀리네.’

헤일리 블루가 누구던가.

성격으로 까여도 실력으로는 안 까인다는 말이 있는 가수답게 지금도 임팩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드라큘라와 세 신부, 기괴한 노인으로 보이는 이들에 둘러싸여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헤일리 블루.

그런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찡긋 하던 창백한 보컬이 그녀의 후렴에 화음을 더했다.

‘……오호.’

쿠션을 끌어안고 리모컨을 들고 있던 시청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솔직히 보이밴드 중에서 저렇게 라이브를 잘하는 그룹이 누가 있던가.

게다가 보이밴드로서 인기 있을 만한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

외모? 잘생겼다.

보컬? 잘한다.

노래? 좋다.

‘노래를 진짜 기가 막히게 부르네.’

한국에서도 네임드 가수들과 경연을 펼치면서 살아남은 아이돌의 짬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노래 잘하는 것 빼고는 딱히 모르겠네.’

보이밴드로서 압도적인 보컬을 보여 주고 있긴 했지만 그 외에 특기할 만한 점은 잘 모르겠다.

현장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관객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심심해 보이는데.’

지금도 그냥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은 채, 적당히 몸을 둠칫둠칫 흔들며 흥을 돋우는 정도만 하고 있다.

곡은 좋은데 무대 구성이 심심한 느낌.

팬들이 하도 극성으로 난리를 부리는데 정확히 어떤 포인트 때문에 이렇게 막 남다른 가수인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음?”

반전을 주듯이 음악의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바뀌었다.

다섯 스탠딩 마이크에서도 정중앙.

가장 잘생긴 미남이 드럼 소리에 맞춰 발재간을 선보이더니 마이크 옆으로 슥 빠져나왔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

조명이 꺼지면서 어둠에 잠긴 무대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내리쬔다.

무대에서 미끄러지듯이 발을 놀리는 리드보컬.

그가 드럼 소리에 맞춰 손뼉을 치고 춤을 출 때마다 옷자락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쓰고 있는 모자 아래로 음영이 져서 그런 것일까.

방금 전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에 그림자가 지면서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십자 귀걸이가 반짝이며 흔들리는데 그것마저 근사하게 잔상을 남긴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

어지간한 댄서들 옆에 서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실력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음?’

미국 유명 가수의 춤을 오마주하듯이 춤을 추던 리더의 곁으로 뒤에 서 있던 곱상한 미소년이 끼어들었다.

“와…….”

육성으로 그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표현력이라고 해야 되나.

손끝을 미끄러뜨리며 몸을 축으로 삼아 나긋하게 회전하는데… 진짜 보면서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정말 파란 달 아래서 기기묘묘한 존재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기묘한 존재를 찾아 헤매는 그런 느낌.

다른 댄서가 또 합류하면서 무대의 공기가 확 달라졌다.

새하얀 얼굴의 미소년과 미청년이 서로 얽혀드는 춤사위에 시청자들이 눈을 크게 뜰 때였다.

‘다른 애들도?’

처음에는 춤 잘 추는 애들만 추는 줄 알았는데.

나머지 세 멤버도 매끄럽게 합류하면서 TV로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춤을 다 잘 추는데……?”

“신기하다. 춤 잘 추게 생긴 얼굴들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우리 귀엽지? 삥삥뿡! 하면서 애교를 부리며 돈을 벌 것 같은 보이밴드가 댄서들처럼 춤을 추고 있다.

그것도 완벽하게 싱크로나이즈된 느낌으로.

리더를 중심으로 다섯이 그리는 손의 각도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뭐지?”

미국의 관객들에게는 신비로울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각이 어떻게 저리 잡혀 있고.

다섯이 춤은 또 어떻게 다 잘 춘단 말인가.

단체 생활과 혹사 수준의 연습량에서 나오는 동아시아의 신비에 박수를 치며 탄복하는 서양인들이었다.

‘오…….’

그렇게 30초간의 짧은 댄스 브레이크가 끝나고 뉴블랙이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환하게 밝아 오르는 무대.

헤일리 블루와 뉴블랙이 한 자리에 모여서 마이크를 든 채 블루문의 마지막 소절을 열창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걸 바라보는 동안에도 현장의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다.

방금 전에 보여 줬던 다섯의 현란한 군무가 여전히 눈앞에 잔상처럼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TV로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래서 인기가 많구나…….”

완전 납득이었다.

그렇게 무대는 막을 내렸다.

K-음악 방송의 엔딩 포즈로 다져진 거친 숨을 선보이는 보이밴드와 씩 웃는 헤일리 블루의 투 샷.

그렇게 현장에서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동안.

TV로 보던 시청자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기 시작했다.

토토토톡.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들.

[who is the new black?]

세계 최대의 검색 사이트에서 뉴블랙의 검색량이 역대급으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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