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57화
59장. 저희는 이걸 휴식이라고 불러요
“돌아가는구나.”
길고 길었던 미국에서의 체류였다.
마지막에 내가 픽 쓰러지면서 일주일이나 연장이 됐는데,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얼마나 지루했는지 모른다.
머릿속으로 일 생각을 할 때마다 동생들이 도끼눈을 뜨고 방해하고.
-저저 봐! 일하는 눈깔이다!
-일 눈깔!
-생태 눈깔 하지 말고 얼른 동태 눈깔로 돌아와여! 일하지 말고 쉬란 말이야!
나중에는 미튜브로 뜨개질 하는 법을 보면서 겨우 시간을 때웠을 정도였다.
야속할 만큼 시간이 안 흘러갔는데, 다행스럽게도 이제 일주일을 보내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힘내라는 응원 메시지로 가득한 플래카드를 든 수플레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형 의자는 어때요? 괜찮아요? 불편하면 목 베개 여기 준비해 온 거 있어요.”
“머리는 어때요? 두통 있으면 지금 타이레놀 한 알 먹어요. 두통 심해지고 나서 먹으면 소용없어.”
“젤리 줄까요.”
“오르르르륵! 까꿍!”
갑자기 쓰러지고 나서 생긴 변화가 하나 있다면… 바로 동생들의 지극한 관심이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흐물흐물해진 플라스틱 접시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라고 할까.
조금이라도 잘못 들면 떡볶이가 쏟아지는 그런 접시를 바라보는 시선에 내가 미소를 지었다.
“몸 다 회복했으니까 호들갑 좀 떨지 마….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러면 민망하단 말이야.”
“뭐, 어때요. 일등석이라서 사람도 별로 없는데.”
“괜찮으니까 다들 일 봐.”
손을 휘휘 저으며 훠이훠이 하자 동생들이 저마다 자기 일로 돌아갔다.
내 옆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끼는 비주, 태블릿으로 ‘Woojoo 입원’ 하는 소식을 읽는 리혁이.
간식거리를 우물거리면서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지호와 중현이.
저마다 각자 일로 돌아가기를 10초.
“…….”
“…….”
스르르르륵.
눈동자가 내 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 숨은 골룸이 절대반지를 날름날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괜찮다니까, 진짜로.”
“…….”
“자꾸 쳐다보면 더 힘들어. 진짜.”
그제야 일부러 신경을 끄려고 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퇴원한 다음부터 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석환 형과 매니저 형들, 그리고 우리 신규 매니저들까지.
누가 보면 내가 깨지기 쉬운 유리인 줄 알 거다.
“에이.”
내가 케어해 줘야 하는 애들이 나를 케어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륙 스트레스를 비롯해 예민한 상황에서 역시 웹서핑으로 신경을 분산시키는 게 최고다.
“……시청률 되게 잘 나왔네.”
캡틴 플라워의 등장을 마지막으로 한 <지금부터 우리는>의 2회차는 커다란 반향을 얻고 있었다.
포털 기사 댓글에서도 와글거리고 있다.
-이걸 여기서 끊네
-좋은 말로 할때 hbs는 3회차를 얼른 내어 놓도록 해라;
-감질맛 나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흑역사를 만들던 우주가 마침내 흑여사로 진화했구나
흑여사 누구야.
당신에게 배틀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어제 우주 드레스 입은 거 보고 깜놀했어요 ㅎㅎ 생각보다 어깨 넓고 체격이 튼튼해서 막 감탄하다가 남편이랑 눈 마주쳐서 싸웠습니다.
-전 반대인데.. 남편이 우주랑 비주 얼굴 보고 감탄하다가 저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새끼가
-본격 부부싸움 권장 예능
음. 이건 죄송합니다.
그래도 체격이 좋다는 칭찬들이 보여서 은근히 광대가 빵긋거린다.
그동안 힘겹게 턱걸이하고 푸시업하고 운동했던 것이 좋은 성과로 돌아온 것 같다.
[오늘 유치원 파티가 있었습니다 (뉴블랙 주의보)]
이건 무슨 글일까.
궁금해서 클릭을 하니 비주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들과 지호 시종 옷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가득하다.
유치원에서 코스튬 파티가 있어서 참석했는데.. 우주 드레스를 구하고 싶다는 딸내미의 성화에 동대문에서 비슷한 걸 하나 사 입혔습니다
등원하고 깜짝 놀랐네요
비주 드레스가 절반, 지호 시종 옷이 절반.. 뉴블랙 중세 예능에서 나온 코스튬으로 도배가 됐더군요
유일하게 우주 드레스를 구해 입어 최종 승자인 우리 딸내미님의 의기양양한 미소..
애기들한테도 뉴블랙이 이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나 싶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애기들 사이에서 뉴블랙이 핫하다더니 진짜였네요
-애기들의 셀럽
-애기들 너무 귀여워요ㅠㅠㅠㅠㅠ
-나때는 뽀로로 좋아했는데 요즘엔 뉴블랙인가 보네
뽀 선배님의 아성에 우리가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소식에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그 밖에도 다음 화가 너무 기다려진다는 댓글들도 많고.
깜짝 등장한 태현이의 모습에 태현이의 팬들이 너무 좋아하고 있는 모습들도 보였다.
거의 태현태세문단세를 외치는 분위기였다.
띠링.
“음?”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왔다.
한조 [저기요]
한조 [혼자만 재미있는 거 하셨네]
한때 요술공주가 꿈이었던 친구가 캡틴 플라워가 된 나의 모습을 질투하는 듯한 톡을 보냈다.
생일선물로 요술봉을 사 줘야겠다.
소리 나오는 걸로.
한국에 가서 답장을 해야지, 하고 생각을 하며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어…….”
메시지 중에 두어 개가 눈에 띄었는데 저절로 심장 박동이 치솟기 시작했다.
만약에 병원에서 손가락에 꽂고 있던 그 기계가 있었다면 삑삑삑! 울렸을 거다.
비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형, 왜 그래요?”
“그…….”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
내가 말없이 핸드폰을 돌려서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이번에 <지금부터 우리는>의 공포 특집에 출연하게 된 소속사 선배 걸그룹의 메시지였다.
나윤 [오빠 고마워]
나윤 [우리 열심히 촬영하고 올게!]
아라 [우주야 너무 고맙다 ㅠㅠㅠㅠㅠ]
“문제없는데요?”
“그 바로 아래 거 봐. 마지막 메시지에서 7시간 지난 후.”
“아.”
나윤 [한국 언제 오냐]
아라 [전화 가능하니?]
메시지를 보던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나라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보기 위해 가슴이 덕순덕순했는데.
……갑자기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졌다.
* * *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마침내 도착한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마어마한 수의 환영 인파와 취재진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1층 입국장 입구 근처부터 시작해서, 2층 난간에서도 여행객들이 난간에 몸을 기댄 채 구경하고.
누가 보면 올림픽 메달을 따서 귀국한 듯한 분위기였다.
선글라스를 낀 채로 여기저기서 떠밀리다가 3층 출국장 한가운데 있는 메인 홀로 향했다.
이곳에서 잠시 기자회견을 하고 떠날 예정이었다.
-네. 지금부터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문 사회자의 진행과 함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쉴 틈 없이 플래시가 번쩍거리는 가운데, 이번 어워드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에 헤일리 블루와 함께 콜라보를 했잖습니까? 미국에서 반응이 어마어마했는데 이에 대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본격적으로 미국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예상한 질문들도 있고.
“이번에 콜드 브라운을 비롯해 쟁쟁한 스타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는데요. 할리우드의 유명한 스타들을 눈앞에서 보니 기분이 어떠신가요?!”
“나중에 숙소에서 독립하게 된다면 빌보드 트로피는 누가 가져가나요?”
뭐, 이런 질문이 있나 싶은 것도 있고.
“어워드에서 친구는 많이 사귀고 오셨나요?”
“콜라보 부문 상인데, 솔직히 헤일리 블루와 비교했을 때 본인들의 기여도는 얼마라고 생각하시는지.”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우리의 잇몸 웃음을 자아내는 질문들도 있었다.
다행히 미국에서 이상한 질문들을 꽤 듣다 보니까 우리나라 기자 분들의 질문이 참 포근포근하게 들렸다.
‘귀엽다.’
‘이 정도면 참 언론인이지.’
‘포근하다, 포근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응답을 해 주니, 평소 이상한 질문을 던지던 기자 분들이 오히려 당황했다.
그러는 한편.
“네, 우주 씨의 건강 상태가 괜찮은지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는데… 어떻게 지금은 몸 상태를 많이 회복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아.”
예상한 질문이었다.
“네. 이번에 해외 장기 체류가 처음이라 시차 적응을 비롯해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은 완전히 정상 컨디션으로 회복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 강행을 우려하던데요.”
“전혀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탈이 나기 전부터 오히려 소속사에서 제 건강을 더 많이 걱정을 해 주었어요.”
대표님이 엄청 욕을 먹고 계신다고 해서 살짝 가슴이 아팠다.
그랬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명시를 했다.
질문을 했던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기자에게 마이크가 넘어가는 가운데 목이 타서 물을 홀짝였다.
“콜록.”
목구멍에 먼지가 같이 들어갔는지 사레가 들렸다.
“콜록!”
“형, 괜찮아요?”
“…괜찮아. 커억.”
입가를 타고 살짝 흘러내리는 물을 옷소매로 훔치는 가운데, 갑자기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 * *
같은 시각.
대표실 소파에 앉아서 담요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중년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주야…….”
TV 속에서 [뉴블랙 기자회견 생중계]라는 자막이 나온 가운데, 기자회견을 활기차게 하던 우주가 사레가 들렸다.
-콜록!
창백한 얼굴로 물을 흘리는 모습에 박규호 대표의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감돌았다.
‘우주야…….’
소속사에서 걱정 많이 해 주었고 케어를 해 줬다고 한 다음에 사레가 들리면… 좀 그래 보이지 않겠니…?
마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처럼 보이잖니.
말을 해 준 것은 정말 고맙다만 꼭 그 말을 한 다음에, 저런 거짓말 같은 사레가 들려야겠니….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을 바라보던 박규호 대표가 허허 웃었다.
-[포토] “소속사가 신경을 많이 써 줬어요.. 콜록! 콜록!”
-[N포토] 우주 ‘소속사가 신경을 콜록! 커억! ㅋ…’
-[포토픽] 뉴블랙 우주 “대표님 죄송해요”
곧이어 쏟아지는 댓글.
-규호야..
-우주 마음에도 없는 말하다가 사레들렸누
-소속사 놈들 ㅂㄷㅂㄷ
-규호가 총을 한 발만 쏘는 이유를 아시나요? 두 발이 없기 때문입니다 깔깔깔
-아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애들 컨디션 관리좀 잘 시켜줍시다. 빌보드도 중요한데 몸이 먼저지
-가수는 일류인데 소속사가 삼류다 삼류
박규호 대표의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 * *
“와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집이다!”
집이 최고다. 정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러 간 리혁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소파로 풍덩 뛰어들거나 저마다 침대로 뛰어들었다.
포근포근한 내 침대와 이불 냄새.
해외 투어를 돌면서 좋은 호텔에서 묵었다고 해도 집이 주는 온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후우우우…….”
13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있었는데, 그게 마치 꿈처럼 진짜 있었던 일인가 싶고 그렇다.
뒹굴뒹굴.
할머니한테 잘 도착했다는 안부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는 하루를 꼬박 쉬었다.
하루 종일 잠만 잔 것 같은데, 밤에 음악 방송을 마치고 문안을 온 이웃집 소년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오, 안 죽으셨네요?”
격한 안부 인사에 훈훈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행님. 앞으로도 만수무강하시고 좋은 꼴, 안 좋은 꼴 다 보시고 사셔야죠.”
“부럽습니다. 저희는 아파도 주변이 시발새끼들뿐인데.”
“죽 드세요. 죽. 저는 저번에 아플 때 불닭김치죽 먹고 한 방에 나았습니다.”
보탬이 되지 않는 조언들과 안부 인사들을 어떻게든 지어 내어 하는 모습에 됐다고 했다.
“그냥 가…….”
“그래도 그간의 정이란 게 있는데, 이렇게 가면 저 새끼들 존나게 정 없구나 하는 느낌이지 않나요.”
“괜찮아. 그냥 가.”
“근데 어디가 아파요?”
“그걸 이제 와서 물어보니?”
저리 가라고 손짓하는 나에게 틴스피릿의 리더, 휘연이 검은 봉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행님 쾌차하시라고 집에서 보내 준 고기도 들고 왔는데. 이거 횡성 한우예요.”
“휘연아! 내 동생!”
원래 고기 사 주면 다 내 동생이고 형이고 가족인 거다.
이번에 컴백해서 음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웃집과 찐한 안부 인사를 나누며 고기를 같이 구워 먹었다.
피로 회복에는 소고기가 역시 제일이다.
열심히 먹방을 찍어 주는 동안 요즘 가요계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요번에 깜짝 놀란 게, 음방 활동 하다 보니까 오컬트 컨셉이 존나게 많은 거예요.”
“오컬트?”
“네. 다들 짜고 치고 나온 줄 알았다니까요. 신인 애들이랑 신인 아닌 애들도 다 그런 컨셉이던데.”
뜬금없는 오컬트 컨셉이 유행한다는 소식에 우리가 바퀴 달린 TV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지호가 외쳤다.
“음악 방송 검색!”
-홍합박스 검색합니다.
미튜브에서 홍합박스가 검색되는 모습에 틴스피릿과 우리가 박수를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비웃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음악 방송.”
-흐헝흥홍. 검색합니다.
연후가 웃다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지자 틴스피릿 멤버들이 신이 나서 멤버를 밟기 시작했다.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인식 기능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진짜 흐헝흥홍이 뭐야. 흐헝흥홍.”
-음악 방송. 검색합니다.
메인 보컬이 분개하는 동안 오늘 했던 음악 방송 클립들이 흘러나왔다.
틴스피릿이 말해 준 대로 정말 오컬트를 기반으로 한 듯한 컨셉의 곡이 많았다.
뱀파이어를 상징하듯이 관에서 일어나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는 그룹도 있고,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군무를 추는 그룹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때 아닌 할로윈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저런 게 요즘 인기가 있어?”
아무리 봐도 마이너한데.
안무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던 비주에게 틴스피릿이 설명해 주었다.
“소문 들어 보니까 행님들 때문이라던데요?”
“응?”
“매니저 형 통해서 알아보니까 행님들 얘기하던데요. 행님들 때문에 갑자기 오컬트 컨셉이 유행했대요.”
“……?”
버터 바른 팬에 LA 갈비를 굽고 있던 중현이가 말했다.
“우리 그거 때문 아닐까요? 이번에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블루문 불러서, 다들 할로윈 컨셉으로 노래 낸 걸 수도 있잖아요.”
“아! 그건가…?”
하지만 아니었다.
“근데 중현아.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아? 우리 빌보드 무대 끝난 지 이제 2주인데.”
“아. 그러네요.”
사실 블루문이란 곡도 비주얼 컨셉만 오컬트지, 곡 자체는 80년대의 사운드를 레퍼런스로 한 R&B곡이다.
그랬기에 사운드까지 으스스한 저런 곡들과는 궤가 다르다.
그럼 어찌 된 일일까.
우리가 의문을 품고 있자, 지호의 접시에서 고기를 빼먹고 있던 하현이가 말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니까 어디까지나 이건 소문인데요. 행님들이 오컬트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됐대요.”
“응?”
“아니세요?”
오히려 너희 오컬트 컨셉 하는 거 아니었냐는 이야기에 우리가 반문했다.
“우리 아직 다음 곡 뭐 낼지 고민도 안 했는데.”
“하다가 이 형이 쓰러졌거든.”
“…거, 그런 얘기는 하지 말고. 지호야. 아무튼 우리는 오컬트의 ‘오’ 자도 꺼낸 적이 없는데.”
“그래요? 이상하네…….”
양쪽에서 소고기만 우물우물하는 소리만 울리고 있을 때.
우리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어디 가서 우리가 오컬트 컨셉으로 곡을 낸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친한 지인에게도 업무 관련한 이야기는 절대 비밀로 하고 있는 우리였다.
심지어 김덕순 여사에게도 비밀로 하는 걸.
그렇게 다들 으으음 하고 있을 때, 비주가 ‘아!’ 하며 말했다.
“그때 아닐까요? 우리 음악 방송에서 ‘지금 우리’ 제작진이랑 사전 미팅했던 날 있잖아요. 지난 달에.”
“응?”
“그때 사전 미팅에서 왠지 무서운 거 할 것 같다고 해서… 대기실에서 공포 얘기하고 그랬잖아요.”
“아… 그러긴 했지.”
후배 그룹이나 다른 관계자들이 인사를 하러 올 때, A4 용지에 공포 컨셉을 쓰고 이야기를 나눴던 우리였다.
“에이~”
우리가 손사래를 쳤다.
“설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TV 속에서 하얀 분장을 한 보이그룹 멤버가 나른한 흡혈귀를 연기하고 있었다.
“…….”
“…….”
에이, 아니겠지… 하던 마음에 무언가 의심이 솟는다.
설마 우리가 A4 용지에 끼적이던 것이 소문이 나서 ‘뉴블랙 다음 오컬트인가 봐!’ 하면서 ‘오컬트 메타 선점!’ 이런 사고회로로 가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게 사실이라면 희대의 촌극 아니던가.
“으으음…….”
평소 같으면 ‘자의식 과잉 예방하자’ 하는 캠페인 문구를 외쳤을 텐데, 왠지 모르게 그럴싸하다.
TV 속에서 춤을 추는 아이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물었다.
“그래서 오컬트 컨셉은 성공했어…?”
“아뇨. 다 망했을걸요. 요즘 타이밍에 섹시한 흡혈귀 하고 할로윈 하면 누가 들어요.”
탑급 아이돌들의 냉철한 분석에 우리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몰라…….”
“알아서 하겠지.”
“맞아요.”
그런 우리에게 휘연이 물었다.
“그럼 다음 곡은 오컬트랑 전혀 상관이 없어요?”
“음, 아직 회의를 안 해서 잘 모르겠는데… 글쎄다. 그런 쪽으로는 딱히 관심이 없어서.”
“그러면 괜히 헛소문 듣고 선점한 회사들만 조땐 거네요.”
남이 조땐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면서 틴스피릿이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
고기로 가볍게 아침 식사를 즐긴 후.
회사로 출근한 우리는 레몬 엔터 사옥 앞에 서 있는 낯선 차량을 발견했다.
“이건 누구 차예요?”
전화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 받은 매니저 종완 씨가 답했다.
“확인해 보니까 경찰관이 타고 온 차라고 하네요. 회사에서 경찰을 불렀대요.”
“네?”
이건 또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