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58)화 (65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58화

회사에 경찰이 찾아올 일이 뭐가 있지?

예전에 TJ 엔터에 있을 때, 검찰 조사관들이 파란 박스 들고 와서 TJ 엔터를 압수수색했던 장면을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종완 씨의 표정을 보니 그런 쪽은 아닌 듯했다.

“경찰이 왜 찾아왔대요?”

“그것까지는 이야기를… 다시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아뇨. 괜찮아요.”

들어가서 물어보면 되니까.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호가 흘깃 차량을 돌아보며 말했다.

“희한하네요. 순찰차가 아니네.”

“그러니까 말이야.”

회사에 경찰이 찾아오는 거야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사생들이 난동을 부리거나 회사에 잠입을 시도할 때마다 경찰을 부르곤 했는데, 그런 때 사이렌이 에오오옹 하는 순찰차들이 주로 오곤 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차량은 평범한 일반 차량.

그 말인즉, 순찰하는 경관들이 아니라 수사관이라는 뜻이었다.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일까요?”

“올라가 보면 알겠지. 큰일은 아닐 것 같아.”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다.

프로듀싱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에 있는 수사관과 우리 PD님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우주야!”

프로듀싱 팀장 나상윤 PD님이 반갑다는 듯 다가왔다.

“몸은 괜찮아? 야. 우리가 진짜 네 걱정 많이 했다. 진짜 큰일 나는 건 아닌가 싶어 가지고.”

“괜찮아요. 지금은 많이 회복해서….”

“다행이네.”

나를 요모조모 훑는 나 PD님의 시선이 따스하다.

그동안 다른 프로듀서들이 심각한 얼굴로 수사관과 함께 컴퓨터 앞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집중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수사관과 우리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 예.”

짤막하게 인사를 마친 수사관이 다시금 모니터를 바라보고는 물었다.

“우주 씨, 몸은 괜찮으세요?”

“네.”

“그렇군요. 그러면… 어?”

키보드를 두드리던 수사관이 고개를 들었다.

“어? 뉴블랙? 어어…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하는 수사관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도 TV에서 자주 봐서 무의식적으로 인사하는 모습들을 많이 본 터라 우리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멋쩍게 웃음을 터뜨리는 수사관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나 PD님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이래요?”

“며칠 전부터 컴퓨터가 좀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보안업체 불러서 점검하니까 해킹 시도가 있었다네? 그래서 자체적으로 조사하다가 사이버 수사팀에게 수사를 요청했어.”

“……해킹이요?”

“프로듀싱팀이랑 A&R팀 컴퓨터에 악성코드 같은 게 깔린 거 같아. 이쪽만 집중적으로 노렸더라고.”

우리가 아 하고 웃었다.

보아하니 무슨 상황인지 알 거 같다.

어젯밤에 틴스피릿으로부터 ‘오컬트 컨셉 유행했던디요’ 하는 소식을 들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집게사장의 게살 버거 소스의 비결을 알기 위해 플랑크톤들이 해킹을 시도한 것이다.

화가 난다기보다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이다.

작곡 소스를 훔친다고 해서 그걸로 대박이 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할까.

“음…….”

회사 컴퓨터로 몇 가지를 확인하던 사이버 범죄 수사관이 절차를 마치고 회사를 떠났다.

“아직 속단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이런 범죄가 꽤 많거든요.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점조직처럼 업자들이 있는데… 아마 그런 쪽에서 작업이 들어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요약하자면 누가 의뢰를 했는지 알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다행이라면 특별하게 중요한 정보가 빠져나가거나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나.

수사관이 떠난 후에 프로듀서들과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별일이 다 있네.”

“옛날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점점 선을 넘는다니까. 그거 곡 정보 미리 알아내서 뭐 하겠다고.”

“맞아.”

작곡가 솔트맨이 한숨을 쉬며 우리에게 말했다.

“이번에 그것도 들었니? 너희가 오컬트 컨셉한다는 헛소문이 퍼져 가지고 죄다 그걸로 도배를 했다더라.”

“그, 그렇죠…….”

우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거 헛소문 아니고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반한 소문이긴 한데… 굳이 해명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진짜 잘 돌아왔다. 얘들아. 한국에서 우주 아팠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저희도 현장에서 진짜 식겁했어요. 이 형이 픽 쓰러져서…….”

내가 쓰러졌던 일을 시작으로 빌보드 뮤직 어워드 현장, 미국 투어 등에 대한 소식을 이야기하면서 근황 토크를 나눴다.

“참, 기념품 받으실래요?”

“오오오!”

그러는 동안 작곡가들에게도 근황을 들었다.

우리가 사라져 있는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방금도 봤지? 점점 베끼고 그러는 게 심해지는 것 같다니까. 옛날에는 그래도 눈치라도 보면서 베꼈는데…….”

“베끼려면 잘이라도 베끼든가. 이상하게 베껴.”

“하다 하다 해킹까지.”

표절 시비가 걸리지 않는 선에서 장르나 컨셉을 따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다는 이야기였다.

분개하던 작곡가들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베끼라면 베끼라지.”

“우리도 네가 만든 곡의 구조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지들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표절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해. 거지같이 어려운 곡 구조를 보면서 괴로움을… 흐하하하!”

칭찬인가 욕인가.

내가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바라보자 작곡가들이 먼 곳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비주가 웃으며 물었다.

“저희 영어 곡 내기로 했다는 소식은 들으셨어요?”

“아. 그렇지.”

프로듀서들이 물었다.

“어떤 식으로 작업할지 계획 같은 건 있어?”

“네.”

궁금해하는 프로듀서들에게 내가 계획을 설명했다.

“이번에 송 캠프 방식을 도입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

“오.”

작곡가들이 ‘괜찮은데?’ 하면서 자기들끼리 웅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송 캠프.

말 그대로 주말 캠프 같은 거다.

해외의 유명 작곡가들을 불러서 3박 4일이나 일주일 정도 합숙을 시키면서 매일 1곡씩 뽑아내는 작업 방식이었다.

북유럽,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작곡가들을 한데 모으는 건데.

나라마다 다른 음악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그런지 독특하고 트렌디한 곡을 뽑을 때 쓰는 방식이다.

가끔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음악 중에서 ‘이거 독특한데?’ 하는 분위기의 음악들이 주로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잘나가고 유명한 작곡가를 일주일 가까이 숙박시키는 데 드는 비용도 보통이 아니고.

또 이런 방식에서 탄생한 음악들은 대개 실험적인 분위기가 많기에 돈이 많고 여유 있는 기획사나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주로 TJ, KM, MOP, SNH 같은 대형 기획사들이 가끔 진행하는 이벤트였다.

“송 캠프를 하게 되면 어떤 작곡가들을 부르려고?”

“일단 생각해 둔 사람들이 좀 있기는 한데, 아직 누구를 부를지 확정한 건 아니에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영어 곡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국내 작곡가들보다 해외 작곡가들이 더 뛰어나고 그런 건 잘 모르겠어서…….”

그 말을 하면서 프로듀싱 팀 직원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죠. 여러분?

‘I need you. Nobi-s.’

복수형의 s의 의미를 담아 Nobi 들을 바라보자 그들의 얼굴이 따스한 미소로 화답했다.

‘Go away.’

작곡가들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유, 우리가 한국인들인데 무슨 영어 곡이니. 우주야.”

“그래~”

“영어 곡이면 영어 쓰는 애들이랑 작업을 해야지. 나라마다 정서가 다른데.”

“우리는 이번에 빠져도 돼.”

회피 기동을 하는 이들을 향해 내가 미소를 지었다.

“전원 참석 부탁드릴게요.”

“예…….”

“알겠읍니다…….”

“캡틴 플라워가 까라면 까야지…….”

프로듀서들의 눈이 거무죽죽해져 갔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후에 안색이 차분해진 나상윤 팀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참, 미국 레코드사로부터 추천 리스트를 받긴 했거든. 이번에 함께 작업할 만한 프로듀서들 명단.”

“오.”

“이 중에 미팅 진행해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고르면 될 것 같아.”

우리가 영어 곡을 내 보겠다고 말을 한 이후로 미국 레코드사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동생들과 이마를 맞대고 명단을 살폈다.

“이분은 로건 스미스랑 작업한 사람이래요. 댄스랑 일렉트로닉 장르 전문… 오, 괜찮아 보인다.”

“EDM. 이분은 왠지 잘 안 맞을 것 같아요.”

“월드컵 테마곡 작곡하신 분도 있네요? 우와….”

그런 명단을 같이 바라보던 프로듀서들의 어깨가 슥 내려가는 게 보였다.

“아무리 봐도 우리는 그냥 빠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런 커리어 있는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우리는 좀 부족하지.”

“무슨 소리예요. 하나도 안 부족해요.”

그런 내 말에도 우리 작곡가들은 살짝 기가 죽은 모양새였다.

미국에 내는 영어 곡이라는 것에 자신이 없는 상황인데, 빌보드에도 이름을 올리는 유명한 작곡가들을 보니 자신감이 하락하는 분위기라고 할까.

솔직히 이 리스트에 적혀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안 밀리는 실력인데, 다들 소심하게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왜들 이리 약한 모습 보이고 그래요? 자신감을 가져야죠.”

“우리도 자신감을 가지고 싶은데…….”

“그런데요…?”

“자신감을 가지려고 할 때마다 어떤 애가 와서 ‘그게 맞는 거 같냐?’, ‘음 나라면 그렇게 안 할 건데’ 하면서 슥슥 손을 대더니, 우리가 고민하던 문제를 다 풀어 버리고.”

“맞아. 실력이 좀 늘은 것 같으면 누군가 갑자기 미친 곡을 하나 들고 오고…….”

꼭 누군가를 힐난하는 듯한 말에 내가 모르쇠로 일관했다.

“조 이사님 얘기하시는 거구나.”

“너! 너라고! 너!”

동생들과 다른 작곡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왜 자신감이 없느냐. 너님 때문이다’ 하는 작곡가들의 너스레에 웃고는 미팅 주선을 부탁했다.

“여기에 스티브 개럿이란 분에게 만나고 싶다고 전해 주세요. 이분이 저 명단 중에서 제일 색이 잘 맞을 것 같거든요.”

가장 적합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을 대표로 만나 이번 송 캠프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프로듀서들과 미팅을 마친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리고 얘들아.”

“네?”

“대표님 좀 꼭 뵙고 가. 대표님이 지금 얼굴이 말이 아니셔서…….”

“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우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

“…….”

오랜만에 돌아온 회사는 왠지 모르게 기묘한 분위기였다.

“콜록! 콜록!”

“어으… 속 쓰려. 어으……. 김치찌개 괜히 먹었나.”

“꺼으으으으으.”

복도에서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좀비 같은 몰골이 되어서 슬리퍼를 지르륵 끌고 다니고 있었다.

대체로 반응이 비슷했다.

좀비처럼 걷다가 나를 발견하더니 눈이 막 희번덕해져서.

“우주야……!”

“흐악!”

덥석.

내 손을 잡은 직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건강하니!”

“어… 네…….”

“그래. 건강하다고 내가 말했는데… 아무도… 건강하다고 내가 분명히 사람들한테… 그런데 아무도…….”

중얼중얼.

충혈된 눈으로 히히 웃던 직원들이 다시금 사무실로 향했다. ‘선우주는 건강하다…!’ 그러면서.

지호가 눈을 깜빡였다.

“왜 회사 분위기가 좀비물이 되어 있는 걸까요.”

“이상하네…….”

다행히도 복도에서 TF팀 홍서영 과장님과 만나 찐한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었다.

“너희 미국 가 있는 동안 장난 아니었대. 사람들이 전화해서 왜 애를 혹사시키냐고 항의하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지인마다 우주 괜찮냐고 물어보고…….”

“…….”

그렇게 된 거였구나.

리혁이가 간단히 요약했다.

“당신 때문이라는 거네요.”

“…….”

“애초에 건강관리 잘하라는 우리 말 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여간…….”

쯧쯧하며 잔소리를 하는 소리를 무시하고는 대표실로 올라갔다.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대표님 역시 흐물흐물한 좀비가 되어 있었다.

쪼르륵, 쪼르륵.

먹물을 마시는 문어처럼 쌍화탕을 드시는 대표님이었다.

“오오! 왔구나…!”

“잘 지내셨어요. 대표님?”

“잘 지냈지. 건강해 보여서 정말 다행이구나. 정말로 다행이야…….”

금두꺼비에 금박이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나를 요모조모 살핀 대표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주야. 건강관리는 꼭 잘하렴. 우주뿐만 아니라 너희도 마찬가지야.”

“네, 대표님.”

“특히 리혁이는 조심하고. 우리 리혁이는 조금만 무리해도 쓰러지고 그럴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 사람이 저보다 먼저 쓰러졌어요. 대표님.”

굉장히 의기양양해하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가 고개를 젓고 대표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건강관리 잘하라는 덕담만 30분 들은 것 같다.

“저 때문에 대표님이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다고 해서 가슴이 좀 아팠어요.”

“가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회사가 욕을 먹는 게 당연하지. 그건 당연한 일이야.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먹는 욕이니 그런 건 얼마든 감수할 수 있어.”

대표님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우주야. 다른 건 다 몰라도 소속 가수가 아파서 쓰러지고 그러는 모습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건강관리 잘할게요.”

“이게 참 활동을 시키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다만… 나는 네가 조금은 부담을 내려놓고 활동했으면 좋겠구나. 모든 것을 네가 다 하려고 그럴 필요는 없어.”

일전에 조 이사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날개는 우리가 달아 주고, 너희는 날갯짓만 하면 되는 거야. 날개를 어떤 재질로 고를 것이며 어떤 식으로 달 것인지… 그런 것까지 너무 고민하고 그러면 사람이 탈이 나.”

“명심할게요.”

“그런 걸 신경 쓰면 말이야. 나처럼 머리가 빠지는 거야.”

“반드시 명심할게요.”

걱정과 염려, 애정이 느껴졌다.

우리가 지금의 위치도 아니었던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일관성 있게 따스하게 챙겨 주는 대표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회사 향해서 대중들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 그건 우리가 당연히 먹어야 하는 욕이니까.”

그때 중현이가 손을 슥 들었다.

“저 그런데 대표님.”

“그래. 중현아.”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저 명단은 뭔가요.”

알파벳과 숫자를 비롯해 각종 ID와 닉네임이 쓰여 있는 A4 용지였다.

‘법무팀 통해서 알아볼 것’이라고 적힌 닉네임 명단에 우리가 호기심을 품었다.

“대표님을 욕한 사람들인가요?”

“아니.”

대표님의 눈이 살짝 세모꼴로 변했다.

“너희한테 악플 단 사람들 명단을 적은 거야. 날 욕하는 건 참아도 우리 애들 욕하는 사람들은…….”

내 욕은 참아도 애들 욕은 못 참아, 하면서 눈이 활활 타오르는 대표님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프로듀싱 팀을 통해 의뢰했던 미팅은 곧장 성사됐다.

물론 아직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은 게 아닌 만큼 화상 통화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으어어…….”

대표님으로부터 받은 최고급 홍삼 팩을 쭉 들이켰다.

온몸의 혈관에 홍삼이 도는 듯한 느낌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

“그런데 얘들은 어디 갔어요?”

내 물음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나상윤 팀장이 답했다.

“글쎄다. 아까 스튜디오 쪽이랑 이야기 나누는 것 같던데.”

“스튜디오요?”

스튜디오 LM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조 이사님이 인수한 제작사로 지호의 웹 드라마 <신이>를 비롯해 우리 뉴블랙 TV 컨텐츠를 제작하는 자회사.

요즘에는 다른 드라마나 TV 예능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뭘 하는 거지…….”

잠시 자기들끼리 다녀올 데가 있다면서 따라오려고 하는 나를 물리친 졸개들이었다.

-따라오면 서리혁!

어쩔 수 없었다.

내 뒤에서 무언가를 꾸미는 듯한 분위기가 좀 찝찝하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려 주겠지.

“저희 돌아왔어요.”

무언가 이야기가 잘 됐는지 방긋방긋 웃는 비주와 다른 졸개들이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스튜디오 사람들이랑 무슨 얘기했어?”

“그…….”

“나 피디님이 말해 줬거든. 너희 스튜디오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거 봤다고.”

“그….”

임기응변이 모자란 우리 졸개들이 당황했다. 지호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리혁이의 속삭임을 들었다.

“브… 브렉시트 얘기했어요.”

너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서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할 때쯤, TV 모니터로 작곡가 스티브 개럿이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스티브예요.

-개럿입니다.

스티브+개럿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듀오였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스티브와 스냅백을 쓴 개럿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영어 곡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할 생각이라고요.

「네.」

-쉽지 않을 텐데…….

첫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월드 레코드 주선으로 이렇게 만나기는 했지만, 저희도 곡 작업 일정이 굉장히 바빠서요. 여러분에게 온전히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 부탁드리고 싶군요.

-솔직히 여러분의 위치가 신인이라는 점도 좀 마음에 걸리고요. 우리는 최근 5년 동안 신인이랑 작업해 본 적이 없거든요.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좀 알아줬으면 해요.

그럼에도 너희랑 미팅을 하려고 이렇게 얼굴을 내비쳤다는 것을 어필하는 분위기였다.

살짝 거드름을 피우는 2인조의 모습에 리혁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우 없는 사람만 보면 무는 우리 애가 크르르르 하며 치와와처럼 움직이려고 하는 걸 제지했다.

‘아직 아니야.’

성격은 솔직히 상관없다.

이 바닥에 성격 이상한 사람 한둘도 아니고, 실력만 좋으면 그만 아니던가.

2인조가 노트북을 펼치고 말했다.

-일단 이걸 들려주죠.

곧바로 곡 하나가 재생됐다.

“오…….”

내 감탄사에 스티브와 개럿의 눈매가 살짝 올라갔다. 거봐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디스코와 락을 잘 섞어서 만든 댄스 음악이었다.

베이스와 드럼의 조화가 절묘해서 듣고 있는 사람의 흥취를 자아내고, 곡 구조가 전체적으로 튼튼하고 짜임새가 있었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한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보였다.

곡 짜임새가 너무 튼튼한 나머지 너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주어서 리스너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 있고, 안정적인 사운드를 추가했지만 몇 번 정도 들으면 음… 하고 질릴 수도 있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샘플이 이 정도면 괜찮은데?’

‘무난하네요.’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공개하는 거라면 대충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 주는 샘플 곡일 텐데.

일개 샘플곡이 이 정도라면 저들의 하드 드라이브에 숨겨져 있는 곡들은 얼마나 대단할까.

이래서 유명한 작곡가인 걸까.

세상에는 참 잘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

나 자신을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샘플 곡이 끝나고 나서 스티브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어때요?

미소를 지으며 감상평을 말하려는 나에게 개럿이 말했다.

-대단하죠? 이게 바로 우리가 준비한 최고의 곡입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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