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60화
그리하여 한국의 작곡가들끼리 모여서 영어 곡을 만드는 희대의 송 캠프가 결성되었다.
“와. 대환장 파티네요.”
“꿈과 환상의 송 캠프라고 불러 주면 고맙겠구나. 지호야.”
처음에는 나도 반신반의했는데 될 것 같다.
솔직히 우리가 미팅했던 미국의 작곡가들과 한국 작곡가들 사이에서 유의미한 수준 차이를 못 느꼈다.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수준이라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게 아니라 그냥 미국에서 활동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들이 된 느낌이라고 할까.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인 차우현 선배가 미국에서 활동했으면 세계적인 보컬로 이름을 떨쳤으리란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마치 K팝 가수로 성공하면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알리듯이.
“그런고로 저는 여러분의 실력을 믿습니다.”
“아니야. 믿지 마.”
우리 프로듀싱팀 작곡가들이 흐물거렸다.
“위대하신 우주 님, 미천한 소인들에게는 미국 시장에 먹힐 만한 곡을 만들 능력이 없사옵니다.”
“통촉해라. 우주야.”
“아니… 그냥 이런 건 미국 작곡가 하나 불러서 해결하라니까. 한국인들끼리 미국에 내놓을 곡을 만드는 건 좀.”
그런 작곡가들에게 내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런 말 들어 보신 적 있나요?”
“뭐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그거 여기에 쓰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어설픈 로컬라이징을 하는 것보다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는 미국 시장에 먹힐 만한 곡을 만들어 낼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의 음악 색깔을 유지한 채 가사만 영어로 내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어제 가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안건이었다.
어설프게 미국 진출한답시고 미국 작곡가 불러서 곡 쓰고, 안 어울리는 느낌으로 녹음하는 것보다는 원래 하던 대로 하고 가사만 영어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능력을 누구보다 믿고 있어요. 미국이 별거예요?”
“별거지.”
“터지면 유전이 터지듯이 돈이 콸콸 터지는 데잖어.”
“거긴 복권도 1조 원 주는 동네 아냐?”
눈을 가늘게 뜨자 작곡가들이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어쨌든, 저는 누구보다 우리 A&R팀, 그리고 프로듀싱 팀 식구들의 능력을 믿고 있어요.”
미국 작곡가들이랑 미팅을 하면서 괜스레 어깨를 움츠리는 우리 프로듀서들이 안타까웠다.
이번에 제대로 자신감을 고양시켜 줘야지.
여러분을 믿는다며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쥐는 우리 모습에 프로듀싱팀의 막내이자 내 친구, 형섭이가 손을 들었다.
“저 우주선 작곡가님.”
“예, 형섭 씨.”
“솔직히 다 핑계고, 미국인 작곡가들은 못 굴릴 것 같으니까 한국인들을 고용하는 거 아닙니까?”
“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정곡을 찔렀네.’
‘예리하다, 예리해.’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일각에서 그런 걱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답니다.”
“왜인가요?”
“이번 송 캠프는 아주 독특하게 진행을 할 예정이거든요. 몸이 고될 일은 정말 없을 거예요.”
급성 위염을 겪고 병원에 있으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걸 송 캠프에 적용할 예정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직원들에게 비밀이다.
“자세한 것은 그때 가서 공개하겠지만, 이번 송 캠프는 정말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와아아아아…….”
“무수한 고기와 술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소주!”
“와아아아아아!”
“맥주!”
“와아아아아아!”
드워프 마을 주민들처럼 술 얘기에 환호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워크숍 안내를 끝냈다.
다들 저마다 업무로 복귀하는 동안 나상윤 팀장님이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정말 괜찮을까?”
“뭐가요?”
“우리끼리 영어 곡 만드는 거 말이야.”
“아.”
내가 웃으며 말했다.
“괜히 영어 곡이라고 강조하니까 부담스럽고 그런 거예요. 사실 타이틀곡 하나 더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지.”
“병원에서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되게 황당한 거예요. 곡 하나 만드는 것뿐인데, 괜히 ‘미국 진출’ 그러면서 부담만 가지고.”
그리고 깨달은 것 하나 더.
“무언가를 노리면 오히려 더 목표가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색깔을 유지한 채 작업을 하려고 해요. 미국 신인 보이밴드 뉴블랙이 아니라 기존의 K팝 가수 뉴블랙의 새로운 곡으로.”
“일리 있는 말이네.”
곰곰이 생각하던 나상윤 팀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노리면 오히려 목표에서 더 멀어진다. 진짜 맞는 말이야.”
“그렇죠?”
“마치 내가 퇴사를 노릴수록 멀어지는 것처럼 말이지. 후후후…….”
“피디님? 잠시 저랑 이야기 좀 나누실까요?”
* * *
비슷한 시각.
미국에서 한창 녹음 작업을 하고 있던 스티브와 개럿은 유쾌하지 못한 표정으로 메일함을 바라보았다.
“깠네.”
“우리랑 안 하겠대?”
“완벽하게 거절인데. 협상의 여지도 없이 정중하게 거절을 했어.”
가격 협상을 위해 밀당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레몬 엔터에서 보낸 메일에는 아주 정중한 거절이 담겨 있었다.
스티브가 수염을 매만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걸. 지금 스케줄 여유가 있는 작곡가 중에 우리보다 더 좋은 옵션은 없을 텐데.”
그걸 알았기에 강짜를 부린 거였다.
다른 가수들의 앨범을 작업하느라 시간이 없는 작곡가들을 제외했을 때, 그들은 뉴블랙이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그들 또한 본인들이 뉴블랙과 색깔이 잘 맞을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뉴블랙과의 작업 또한 기대하고 있던 바였다.
-스티브, 이거 봤어? 이번에 빌보드 뮤직 어워드 반응이라고 하는데 관중들 반응이 장난이 아니야.
-이거 잘만 우리가 선점하면 잭팟이겠는데.
-팬덤이 이게… 와…….
그랬기에 화상 미팅에서의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 업계를 잘 모르는 외국 가수들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자신들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우리만 믿으면 너의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다… 였는데.
“분명히 미팅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은데…….”
미팅 내내 웃음이 흘러나오고, 특히나 그들의 곡을 들려주었을 때는 더욱더 웃음이 짙어지고 그랬는데.
개럿이 머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물어볼까? 단가를 조금 낮춰 부른 다음에… 이 정도까지 네고 가능하다고.”
“너무 없어 보이지 않나?”
“이대로 놓치기에는 팬덤이 너무 크니까. 저 정도 가수한테 좋은 곡까지 하나 주어진다고 생각해 봐.”
그 파괴력은 정말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렇게 두 유명 작곡가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찬 며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도착한 메일 하나.
-딩동!
레몬 엔터에서 다시 보낸 것인가 싶어 다급하게 확인한 이들은 수신자 명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TJ 엔터테인먼트? 여긴 어디야?”
메일 내용을 보아하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레코드사인 모양이다.
자기네 보이밴드의 영어 곡을 만들어 줄 생각이 없느냐는 메일 내용에 두 작곡가가 코웃음을 쳤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곡을…….
“음?”
그런데 액수가 보인다.
“시세의 열 배?”
“이건 뭐지…? 신종 사기인가?”
시세의 열 배까지 줄 테니 작업을 할 생각이 없느냐는 이야기에 두 작곡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같은 시각.
“뉴블랙이랑 미팅이 불발되었다고 알려진 작곡가들 말입니다. 스티브 개럿이 긍정적인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잘 됐구먼.”
기획팀장의 보고를 듣던 박태준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채 온 건가?”
“예, 회장님.”
“박규호 대표도 참…….”
미국에 있는 정보통을 통해서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스티브 개럿이라고 미국에서 지금 승승장구하는 작곡가들과 레몬 엔터가 영어 곡을 두고 미팅했는데 불발됐다더라.
아마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서 그렇게 됐다는 소식이 많았다.
‘박규호 대표도 중요한 때 돈을 쓸 줄 모른다니까. 그냥 이런 때는 통 크게 시세 몇 배라도 질러야지.’
한때 TJ의 매니저였던 레몬 엔터 대표를 떠올린 박태준 회장이 끌끌 혀를 차며 차를 호로록 들이켰다.
“앗. 뜨뜨뜨.”
따끔한 입안을 혀로 올롤로 하던 박 회장이 다시금 근엄함을 되찾고 물었다.
“레몬 엔터 소식은?”
“이번에 대대적으로 송 캠프를 연다는 것 같습니다.”
“송 캠프?”
박태준 회장도 송 캠프라면 잘 알고 있었다.
“외국 작곡가들 불러서 진행한다던가?”
“아닙니다. 국내 작곡가들과 자체 프로듀싱팀을 대상으로 송 캠프를 연다는데… 아마도 자체적으로 영어 곡을 만들겠다는 요량인 것 같습니다.”
“희한하구먼. 그런 감 떨어지는 결정을…….”
유명 미국 작곡가를 불러서 진행하는 것도 모자란 마당에 국내 작곡가들을 불러서 곡을 쓴다?
박태준 회장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잠시 탁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던 박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알아보느라 수고 많았어. 트릭스터 영어 곡 관련해서 팔로우할 것 있으면 계속 보고하고.”
“예, 회장님.”
깍듯이 고개를 숙인 기획팀장이 방을 나간 후, 박태준 회장이 창가 바깥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기회로 트릭스터도 미국으로 한 번 진출을 해 봐야 해. 뉴블랙 포지션은 못 가져온다. 하지만 뉴블랙 아래로 2등까지는 잘하면 갈 수 있어.’
아무리 자기 객관화가 안 된다고 해도 뉴블랙의 인기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2등 전략으로 가는 것이다.
미국의 팬들에게 뉴블랙 바로 아래에 얘네가 있다고 어필도 하고, 언더독 서사로 양념도 좀 뿌려 주고. 그런 식으로 엮어서 마케팅하다 보면 어느 정도 파이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만 해도 돈이…….’
빨아들일 수 있는 돈의 액수를 생각해도 아시아 시장 전체에서 벌어들이는 돈과 맞먹을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시기.
그런데 이런 시기에 국내 작곡가들과 삥뽕뽕 놀겠다는 뉴블랙의 모습에 박태준 회장이 혀를 찼다.
‘자신감이 너무 과해.’
한국에서 먹힌 방식이 고스란히 미국에도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젊은 패기가 참…….
그런 생각을 하며 차를 호로록 들이켜던 박 회장이 말없이 앉아 있는 한영준 총괄이사를 바라보았다.
“한 이사,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트릭스터의 미국 진출이란 계획이… 생각만큼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꼭 낙관적으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도전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예…….”
한영준 이사가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 때문인가.’
그날 이후로 박태준 회장의 눈에 뭐가 씐 듯한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춤 때문이기는 했지만 작곡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던 인재를 쉽게 방출했다는 낭패감.
쟤가 우리 회사에 그대로 있었다면 저 성공이 우리 거였는데 하는 생각.
그리고 당시에 ‘방출하면 뭐 어때~ 춤 못 추는데’ 하면서 일조했던 기획팀까지 눈이 돌아가 합류하면서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우린 틀린 게 아니야! 아니라능!’
‘선우주 혼자서 저걸 이뤘겠냐? 우리 회사가 힘만 쓰면 우리도 저거 할 수 있다 이 말이야!’
‘필살기 쓰면 우리가 이김!’
본인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한영준 이사가 창밖을 지그시 바라보는 박 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차를 마셨다.
‘이럴 때는… 뭐 둬야지. 어쩌겠나.’
그때 박태준 회장이 입을 열었다.
“한 이사.”
“예.”
“우리도 이번에 송 캠프 한 번 또 가동해 봐. 진짜 송 캠프가 뭔지 한 번 보여 줘야지.”
“알겠습니다.”
회장의 업무 지시를 수첩에 적으면서 이번 프로젝트의 작업물에 조카 한태현이 연관될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 이사였다.
그렇게 뉴블랙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어느 골동품 애호가의 영어 곡 프로젝트가 개시되는 한편.
“아이고, 저 영감님.”
멀찍이서 그 소식을 들은 KM 엔터의 플랑크… 아니, 허강민 대표는 껄껄 웃었다.
‘늘그막에 미국병 걸리셨네. 내가 저거 걸려서 가산 탕진하고 회사 말아먹을 뻔했는데…….’
부들부들 하고 있는 TJ 엔터 회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KM 엔터의 대표가 플랑크톤 사장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바보 영감님. 뉴블랙 따라가는 게 정답인데.’
오늘도 열심히 뉴블랙 영상을 시청하면서 게살 버거 노하우를 훔치듯, 인기 비결을 탐구하는 허강민 대표였다.
* * *
“왜 이렇게 귀가 간질간질하지. 누가 내 얘기 하나?”
귀를 슥슥 문지르다가 리혁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너, 내 욕했지.”
“나는 아닐 거예요.”
“아니구나.”
“항상 욕하고 있으니까요. 1초에 두 번씩 욕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런 거라면 하루 종일 귀가 가려워야 할 거예요.”
“욕도 못하면서.”
“…….”
입이 험한 척하지만 진짜 욕설은 입에 올리는 걸 힘겨워하는 우리 메인 보컬이었다.
투덜대는 이를 보며 픽 웃고는 TV를 바라보았다.
토요일 밤.
오늘 밤에 시작하는 <지금부터 우리는>의 3회를 보기 위해 잠시 회사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어디 보자…….”
이번 워크숍 겸 송 캠프에 참석하는 작곡가들 명단을 살피고, 준비해 갈 물건들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휙.
재빠른 손이 내 눈앞을 샤삭 스쳐 갔다.
“엇.”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바람처럼 무언가 손이 오가더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서류 대신 과자와 젤리 봉지로 바뀌었다.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들고 있었다.
“일하지 말고 까까 먹어요. 형.”
“맞아요. 일 좀 그만해.”
막내가 일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스트레스성 위염에서 회복했는데도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리 그 자체였다.
“뭐야. 내 서류 돌려내.”
“안 돼요.”
비주마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단념했다.
“의사 선생님 말 기억해요. 형? 2주 동안은 푹 쉬면서 최대한 일 생각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의사 선생님 말에 따르면 나 회복하는 데 일주일이나 걸릴 거라고 했잖아. 3일 만에 회복했는데.”
“……아무튼 안 돼요.”
살짝 시무룩하게 있는 내 모습에 비주가 서류를 돌려줄까 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리혁이가 초를 쳤다.
“저거 연기에 속지 마요. 형 마음 약하게 하려고 연기하는 거야.”
들켰네.
그러라고 가르쳐 준 연기가 아니라면서 막내가 에잉 하고 있는 동안, TV를 바라보는 나에게 비주가 말했다.
“형, 저희 이번에 형한테 이야기할 게 좀 있는데요.”
“뭔데?”
“이번 송 캠프 관련해서 저희도 준비한 게 하나 있거든요.”
“……?”
내가 눈을 깜빡거리자 막내가 라운지의 조명을 끄고, 리혁이가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더니 노트북을 켰다.
깔끔하고 정갈한 PPT 화면이 재생된다.
흠흠, 하고 손가락 봉을 든 비주가 화면 앞에 섰다. 곧이어 상냥한 목소리가 발표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형이 굉장히 궁금해했잖아요. 저희가 스튜디오 LM 제작진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랬지.”
“저희가 며칠 동안 미팅을 진행한 결과를 이제 형에게 알려 주고, 동의를 구하려고 해요.”
두둥!
프레젠테이션 효과음과 함께 [기획 의도]로 넘어갔다.
리혁이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저거 효과음 빼라고 그랬는데…….”
“괜찮은데.”
“지금은 괜찮을 수밖에 없죠. 처음에는 보노보노 화면에 조개 딱딱 소리가 효과음이었으니까.”
리혁이가 대대적으로 수정을 해 준 모양이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우리 모습에 비주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제 목소리가 잘 안 들리나요?”
영애님 화법에서 느껴지는 험한 느낌에 직각으로 허리를 세우고 집중했다.
“네, 이번에 형이 곡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로 입원한 모습을 보면서 저희 모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형한테 일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치, 일은 해야지.”
“그래서 일을 하면서 형의 복지를 챙기는 방법이 뭐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어서 본론으로 넘어갔다.
두둥! 쾅!
거기에는 아름다운 리조트와 침대에 누워서 환히 웃고 있는 신혼부부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형을 위해서 최대한 휴양지 같은 환경을 제공하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케어를 해 줄 거예요.”
“그건 그냥 쉬는 거 아니야?”
“물론 그 과정을 촬영할 거예요.”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쉬는 걸 촬영한다면 쉬는 게 아니라 반쯤 일하는 것 아니던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계획이다.
“미튜브에 올릴지 다른 방송국과 계약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송 캠프에서 형이 쉬면서 작업을 하는 장면을 찍어서 리얼리티처럼 만들 예정이에요.”
“오오오오. 좋아, 좋아.”
“이름하야…….”
두둥!
하면서 동생들이 생각한 프로그램명이 떴다. 보노보노가 달려오면서 든 팻말에 적힌 제목.
[선우주의 휴식‘일’기]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비주가 유능한 회사원처럼 말했다.
“여기에 ‘일’ 자에다가 포인트를 줘서 일도 한다는 의미를 줄 예정이에요.”
“오오오.”
“그리고 이번에 저희가 정말 형을 제대로 케어하는 모습을 보여 줄 건데요. 이동할 때도 이걸로 이동할 거예요.”
[이동수단]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진이 한 장 떴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건…….”
“네, 그렇습니다.”
비주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휴식 기간 동안 저희가 형을 태우고 다닐 이동수단, 바로 임금님이 타던 가마입니다!”
그 말과 함께 사진 속 가마가 번쩍번쩍하며 특수 효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