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61화
번쩍이는 가마를 보면서 눈이 글썽글썽해지는 기분이다.
비주가 눈을 빛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아닙니까?!”
“저희가 특별히 주문 제작 오더를 넣어서, 이렇게 버튼을 누르면…….”
막내가 노트북 엔터를 누르자 화면에 새로운 이펙트가 떴다.
빰빠바밤!
가마에서 발사된 음방 엔딩 꽃가루가 하늘에서 흘러내린다.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왔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저거 아무나 해 주는 거 아니에요.”
리혁이가 으스대며 말했다.
“나도 내 생일 때나 한 번 타 본 귀한 가마니까. 이번에 정말로 감사한 줄 알아요.”
“고마워.”
여전히 PPT 속에서 반짝이는 가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비주 씨.”
“네.”
“제 체중이 가볍다고는 해도 가마 무게가 상당할 텐데, 괜히 그거 들다가 여러분의 손목이 나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곧 칠레와 브라질 콘서트가 있는데 거기서 손목 부상으로 불참하거나 그러면 좀 그렇잖아.
남미의 열정적인 팬들이 우리에게 질문하는 광경이 그려진다.
-세상에! 리혁! 괜찮아? 어쩌다가 손목이 나간 거야?
-우주 가마를 태워 주다가.
-우리 콘서트 앞두고 그런 것들을 했던 거야…?
남미 팬들이 실망해서 탈덕하고 그러는 모습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속옷에 불 붙여서 던지고.
그런 내 우려에 비주가 흐뭇한 미소로 답했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일단 평상시에는 밑에 바퀴가 나오는 전동 가마입니다.”
“…….”
“평지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동할 거고요. 가마를 드는 일은 중현이가 90퍼센트로 힘을 쓰고, 나머지가 10퍼센트로 힘을 쓸 예정이에요.”
성인 남자 10명이 달려들어서 움직이는 콘서트 장치를 혼자 힘으로 움직인 우리 셋째가 떠오른다.
중현이라면 믿을 만하지.
납득이 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비주가 프레젠테이션을 이어 갔다.
“이번 ‘선우주의 휴식일기’에서는 5성급 호텔에 준하는 서비스가 있을 예정이에요. 일단 모닝콜 나와 주세요!”
리혁이가 불퉁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비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혁이가 원하는 노래로 모닝콜을 해 드립니다!”
“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노재현 선생님의 ‘그대 나와 함께 하세요’를 락 버전으로 불러 주세요.”
“싫어요.”
“원하는 노래로 모닝콜 해 준다면서…?”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드렸다시피 ‘리혁이가 원하는’ 노래로 모닝콜을 해 드립니다.”
“그건 서비스가 아니잖아…….”
뒤이어 다양한 서비스가 공개됐다.
“지금 형이 분별없이 족발 같은 음식을 먹고 있지만, 엄연히 위염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 그렇죠.”
“저는 이렇게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과연 위염에 좋은 음식이 무엇일까요? 비타민, 미네랄, 칼슘, 펙틴이 풍부하게 들어가 위염에 좋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비주의 표정을 보니 알겠다.
막내가 키보드 자판을 누르자 빨간 사과가 황금빛 광채를 자랑하며 등장했다.
“바로 사과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사과에는 비타민 A, B, C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위염에 도움이 된다고 블로그에서 그러네요. 소화가 잘 되고 혈관도 강화시켜 주는 만능 과일 사과! 형에게 사과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에요.”
“검색해 보니까 위염에 사과 별로 안 좋다는데.”
“엇, 진짜요?”
사과 서비스는 불발됐다.
그런 식으로 이번에 어떤 식으로 케어를 해 줄 것인지 설명해 주던 동생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번에 형의 입에서 ‘정말 잘 쉬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이번 특집의 목적이에요.”
이상입니다, 하면서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불꽃놀이가 팡팡! 터지는 효과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엉뚱하고 이상한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동생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근데 말이야.”
딱 한 가지 망설여지는 게 있다면.
“나 내 발로는 이동 못해?”
“절대 안 돼요.”
“아니, 밥 먹으러 갈 때도 가마 타고 가는 건 좀…….”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다니까.”
밥 먹으러 갈 때마다 가마를 타고 등장하는 내 모습에 웅성거릴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민망하다.
눈망울을 크게 뜨고 호소하는 나에게 동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형은 동생들만 믿으면 돼요.”
“우리가 알아서 다 해 줄 거니까.”
과연 나는 이번 송 캠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벌써부터 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 *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어엇!”
“이제 시작한다!”
빔 프로젝터를 정리하고 바쁘게 TV를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맞았는지 TV 속에서 ‘15세 미만은 보호자 지참해yo’ 하면서 HBS 로고가 반짝이고 있었다.
[지난주!]
저번 2회차는 미국에서 넷플러스로 감상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본방송 특유의 맛이 있다고 해야 하나.
지난주에 흡혈귀의 정체가 밝혀지고 태현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흐하하하하!”
마침내 레이디가 된 내가 등장하는 모습으로 지난주 요약방송이 끝났다.
이젠 다른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조금 늦게 틀걸.”
그때는 예능 촬영에 미쳐서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드레스를 입고 검과 방패를 들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후회가 된다.
마치 TJ 엔터 연습생 시절에 회사 장기자랑에서 몸개그로 1등 했을 때처럼 분위기에 취해서 룰루랄라 했는데, 곰곰이 돌이켜 보면 마음이 쿠쾅쾅 하는 그런 느낌.
“어으으으으…….”
괴로워하는 내 모습에 동생들의 웃음 톤이 한층 더 높아졌다.
막내가 낄낄 웃었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래요? 저는 저기서 검을 휘두르는 형의 모습이 참 자랑스러워요.”
“어으으… 저걸 봐서 그런가. 속이 좀 쓰리네.”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내가 외쳤다.
“속 쓰리대요!”
“볼륨 얼른 낮춰!”
“형, 괜찮아요?”
으으, 하면서 동생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볼륨 낮추기 성공.
* * *
뉴블랙의 리더가 ‘어후’ 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본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시청자들은 박장대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하하하하하!”
“미치겠다. 진짜. 쟤는 어쩜 애가 저렇게 요망하니? 드레스 입고 저렇게 뜀박질하는 애는 처음 봐.”
“드라큘라를 아주 매타작으로 때려잡네.”
화면 속에서 동생들과 함께 드라큘라를 후드려 찹찹하고 있는 선우주.
처음에 시청자들의 눈동자를 멍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저런 식으로 해도 되나?’
시청자들이 생각한 상식적인 전개는 다음과 같았다.
드라큘라를 없애 버릴 수 있는 성수.
이제 성수를 사용하기 위해 비주와 우주가 미끼가 되고, 나머지 멤버들이 합심해서 반격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은 정반대였다.
드레스를 입은 우주가 턱걸이를 하며 등근육을 뽐내더니 검을 붕붕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바로 군필 레이디의 피지컬
-군필 레이딬ㅋㅋㅋㅋㅋㅋㅋ시밬ㅋㅋ
-하긴 아무리 흡혈귀라고 해도 2년간 병역의무를 마친 튼튼한 레이디 앞에선 소용없지
-집사: 아가씨, 서신이 왔습니다.. 예비군 통지서가 왔어요..!
-우주는 비주랑은 다른 의미로 사교계를 평정해 버렸을 거 같음
-사교계(물리)
-(중현이 칼로 수박을 스악! 하자 도마가 같이 잘림.gif) 호위기사도 개쎔
-세계관 최강자의 호위를 받는 군필 레이디
-아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해 예능에서 본 것중에 젤 웃김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동안.
수플레들은 다른 의미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다들 운동을 열심히 했구나.’
데뷔 초만 해도 엄청 호리호리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들 벌크 업이 되어 있었다.
전에는 마르기만 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탄탄한 체격을 지닌 느낌.
소년에서 청년으로 진화한 듯한 인상이라 왠지 모르게 수플레들의 입가에 싱글벙글 미소가 걸렸다.
-운동을,, 열심히,, 하였구나,, 껄껄껄
-그렇게 웃지마.. 우리 변태같잖아
-내 아이돌의 튼튼한 건강을 레이디 분장으로 확인하는 이 상황.. 역시 평소의 뉴블랙 덕질이다
-짤 저장하고 싶은데 도저히 캡처 버튼이 안 눌려
-얼빡샷 나올 때만 캡처중
-선우주 레이디 전신짤.. 수요 없는 공급
-ㄴㄴ 진짜 수요없는 공급은 규호 마법공주짤 그런 거지
팬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드라큘라의 세 신부들도 다른 멤버들에게 정리당하는 중이었다.
“저거 배우들이 안 되어 보이기는 처음이네.”
“하필이면 한국에 와서 뉴블랙부터 만났네. 한국 사람들이 다 저런 것이 아닐진대…….”
“그런 느낌이기는 하지. 한국인들이 많이 먹는 음식인데 외국인들한테는 소개하기 거시기한.”
부디 배우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기를 바라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드라큘라를 퇴치한 멤버들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탈출하는 나룻배에 탑승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본명을 소개하려는 한태현.
[그리고 드라큘라 공작이 죽으면서 저의 이름이 떠올랐어요! 저의 이름은 한……. (우!)]
갑작스러운 작동에 놀라서 ‘우!’ 하는 소리를 낸 한태현에게 리더와 졸개들이 손을 흔들며 좋아했다.
[기억할게요! 한우 씨!]
[한우 씨!]
한태현의 팬들이 깔깔 웃으면서 우리 애 예능 이미지 생긴다면서 좋아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고맙습니다. 뉴블랙. 우리 애가 쉽게 망가지는 애가 아닌데….’
예능에 나와서도 너무 탑스타처럼 띄워 주기만 해서 좋으면서도 묘한 아쉬움을 느끼던 차였다.
나중에 보은 스밍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흐뭇하게 웃는 한태현의 팬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탈출한 뉴블랙의 앞에 축포가 쏘아 올려지는 한편, 탈출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비하인드가 시작됐다.
“끝났네.”
본편이 끝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이 리모컨을 들었다.
솔직히 비하인드에서 재미있는 게 나와 봐야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으로 채널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샤라라라랑~]
로맨스 판타지에 어울릴 법한 BGM과 함께 호기심이 가는 자막이 깔리기 시작했다.
[본격 호러 특집이 되었던 오늘의 로맨스 판타지 특집]
[하지만 이것은…!]
[제작진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습니다.]
곧바로 검은 화면 위로 ‘얼마 전’이라는 자막이 깔리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 * *
“응? 비하인드가 뭔가 이상한데요?”
“그러게.”
우리가 예상한 비하인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편에서 편집되었지만 웃겼던 장면을 몇 개 풀어 주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로케이션 정보나 신기한 무대 장치에 대한 설명도 해 주고.
그런데 지금 나오는 것은 제작진의 코멘터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이고.]
[엇… 저 그러면 시나리오는 폐기된 건가요?]
[어이쿠! 또 루트에서 이탈했네.]
무전기로 지시를 내리는 패널들과 제작진들의 웅성거림.
마치 무언가 계획대로 안 돌아가서 문제가 생긴 듯한 장면.
“저건 또 뭐야?”
검은 화면 위로 떠오르는 긴장감 가득한 자막.
[과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삐비빅, 하면서 몇 월 며칠 HBS 방송국이라는 자막이 깔리면서 방송국 전경이 담긴다.
회의실에서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제작진.
[여기가 분기점이라고 생각해요. A 루트에서 비주가 레이디 코스를 탄 다음에 우주와 바로 합류를 하게 되는 거죠.]
[성의 계승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배치를 이렇게 해서…….]
[D루트는 솔직히 안 갈 거니까.]
화이트보드에 분기점이 마구 슥슥 그어지고 있었다.
그런 내용을 보고 있던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저런 내용이 있었던가?”
“아뇨.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요.”
“저게 뭐지?”
‘황태자’ 같은 단어가 적혀 있는 화이트보드에 우리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소재가 로맨스 판타지긴 했지만 저런 내용이 전혀 없었는걸.
[방송이 나가고 나서 시청자 게시판에 쏟아지는 문의들]
게시글들 캡처가 나온다.
-로맨스판타지라면서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네
-뉴블랙네 데리고 로판 특집하면 재미있게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호러만 나와서 아쉬었어요ㅠ
-소재 활용을 안 해서 아쉽..
마치 ‘제작진은 너무너무 억울했다!’ 하는 듯한 BGM이 깔리며 제작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패널 중 하나인 케빈의 인터뷰.
“은성 님이다!”
“어휴. 꼴 보기 싫어.”
[흐핫. 아니, 원래 탈출이 그런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 전혀 아닌데… 뉴블랙 선배님들이 진짜 다 부수고 다니는 거예요. 저희도 대본 보고 있다가 당황했다니까요.]
그걸 증명하듯 비하인드컷으로 패널들도 웅성거리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대본을 보고 있다가 ‘어?’ 하면서 우리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대본에 큼지막하게 X자를 쳤다.
그렇게 대체 어떤 이야기인지 호기심이 극에 달할 무렵.
우리를 능수능란하게 조련하던 제작진이 비하인드를 풀었다.
[그렇다면 본래 스토리는 어떠했을까?]
다섯 개로 분할된 컷에서 우리의 얼굴이 나오는 가운데, 하나씩 미니미 캐리커처로 변했다.
이어서 성의 지도 위로 우리의 미니미가 위치하고.
그 미니미들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설명이 이어졌다.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원작 소설 <왕녀님이 제일 쎄>에서는 제국의 황태자라는 서브 남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작진이 설정한 바에 따르면…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
모른 척하며 TV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제작진이 의도했던 전개가 나오기 시작한다.
미니미 우주가 감옥에서 통통 튀더니 머리 위로 왕관을 쓴다.
[…감옥에서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정체가 ‘황태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우주에게 힌트가 주어집니다.]
[이 왕성에는 H 말고도 감금된 인물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말이죠.]
[바로 주인공 세라피아 유스틴입니다.]
초록 머리카락의 주인공 세라피아 유스틴.
…으로 분장한 배우가 성의 외딴 방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어?”
“저분은 처음 보는데.”
그런 우리에게 제작진이 미소를 짓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발을 동동거리는 배우의 본명을 부르는 FD.
[엘레노어 씨?]
[네.]
[퇴근하시면 됩니다.]
[네?]
도장을 쾅 찍듯이 [퇴근!] 하는 자막에 우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청자들은 아마 엄청 웃음을 터뜨렸을 것 같다.
“한 달 동안 다들 연습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 그랬죠.”
“…….”
“…….”
해당 배우가 ‘오, 개꿀…’ 하는 분위기라서 그나마 다행이긴 했다.
혹시 우리에게 비판이 올까 걱정이 됐는지, 어차피 구출되자마자 본색을 드러낸 드라큘라에게 당하는 엑스트라 역할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휴.”
“아니… 진짜 식겁했네.”
“그런데 왜 저런 전개로 안 간 거예요?”
자막이 깔렸다.
[원래 저 전개로 갈 예정이었음]
[하지만…….]
우리 메인 보컬이 종잇장 같은 몸으로 창살을 통과해 열쇠를 얻어 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본래는 탈출이 불가능한 곳]
[뒤에 있는 벽을 뚫고, 그곳에 있는 힌트를 통해서 정체를 깨닫는 장면이 나올 예정이었음]
우리 모두 리혁이를 바라보았다.
“…….”
“뭐요. 웃겼으면 됐지.”
“…그건 그래.”
납득하면서도 리혁이를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차고 있을 때.
제작진의 설명이 쭉 이어졌다.
그리고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쉬운 루트로 갈 수 있는데 일부러 이상한 루트를 개척해 버리는…….
“…….”
“…….”
어우. 진짜 속 쓰리네.
멍한 얼굴로 TV를 바라보는 우리의 앞에서 [로판 루트 실패!] 같은 도장들이 쾅쾅 찍어진다.
막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말이네요. 우리가 나대지 않고, 적당히 기다렸다가 저 루트를 택했으면 훨씬 쉽고 안전하게 끝났던 거네요.”
“그렇지.”
“드라큘라 백작은 마지막 페이즈 같은 거였고.”
본래 드라큘라는 마지막 순간에 등장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드라큘라 백작을 엄청 일찍 깨워 버린 거라고 했다.
로판 루트의 계획이 다 사라지니 남은 것은 호러 파트.
잠시 멍한 기분을 느끼다가 인터넷으로 댓글 반응을 살폈다.
-결론 : 셀프 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바부팅이들
-바보
-아이고ㅋㅋㅋㅋㅋㅋㅋ
-가장 어려운 루트를 개척해서 그걸 쉽게 뚫어 버리는.. 이것은 천재인가 바보인가
-우린 이걸 헛똑똑이라고 불러요
-지금 저 비하인드를 보는 뉴블랙이들의 표정은 과연 어떠할까
-처음에는 서로 힐난하는 시선을 보냈다가 지금쯤 뻘쭘한 얼굴로 먼곳을 바라보고 있을듯
-캬 이분 뉴잘알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
“…….”
비하인드를 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이 먼 산을 향하고, 절로 입에서 허허 웃음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비주가 중얼거렸다.
“뭘까요. 시청률 잘 나오게 녹화를 끝냈는데… 이 패배한 듯한 이상한 느낌은…….”
“…….”
“…….”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우리 스스로 고된 노동을 해 버린 탈출 예능.
절대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이 땡기는 밤이었다.
* * *
다음 날.
송 캠프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결지.
우리는 이곳에서 어젯밤의 예능이 얼마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지를 깨달았다.
“여어!”
우리를 발견한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바보다!”
“멍충이들!”
“깔깔깔!”
A&R팀 직원들까지 합세해서 마치 비둘기 떼처럼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회사 사람들이었다.
다 같이 도망치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아이이이! 저리 가요!”
“혼자 있고 싶으니까 저리 가요!”
송 캠프 날짜를 왜 오늘로 고른 것인지 정말로 후회가 됐다.
계속해서 추격해 오는 이들을 바라보던 내가 가마를 들고 있는 동생들에게 외쳤다.
“졸개들아. 더 달려!”
“네!”
중현이가 가마를 든 채 부스트를 올리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다른 졸개들이 손을 떼고 가마 옆을 나란히 달렸다.
뒤에서 따라붙는 웃음소리.
“바보다! 바보!”
“바보 아니에요!”
대체 어딜 봐서 우리가 바보라고 하는 것인지 너무나 억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