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63화
내가 가마를 타고 강당의 연단 위로 올라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기침과 웃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비주야.”
“네.”
비주가 버튼을 누르자 가마에서 꽃가루가 풍퐝퐝 쏘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켁!”
“컥… 콜록!”
연이어 속출하는 탈락자들.
-네.
마이크를 들고 가마에서 잠시 내려왔다.
-지금 웃으신 분들은 잠시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탈락이에요.
웃으면 안 되는 내기이기에 나도 굉장히 정숙하고 촉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외부 작곡가들 전원이 뒤로 물러났다.
남은 것은 우리 식구들.
-역시 우리 레몬 엔터 식구 분들이에요.
“그런 개그 따위에 웃기에는 너희를 너무 오래 봤지.”
자신만만하게 정색하는 나상윤 팀장님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방금 보셨다시피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더 웃음이 나오고 그러죠? 전문 용어로는 청개구리 심보라고. 음, 졸개들아. 조금 더 부채를 시원하게…….
졸개들이 비파 모양의 부채를 흔들면서 형섭이가 허공을 바라보며 웃음을 꾹 참았다.
뒤에 선 외부 작곡가들이 꿀잼이라는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마를 타고 등장해서 많이들 놀라셨을 텐데 ‘선우주의 휴식일기’ 촬영을 겸해서 그렇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요. 본격적으로 송캠프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노트북을 연결한 리혁이가 PPT를 재생했다.
-아. 일단 그 전에 호위병 분들을 보내드려야겠네요. 문경 사극 세트장에서 잠시 출장 나와 주신 분들입니다. 열렬하고 뜨거운 박수 부탁드릴게요.
“와아아아아아-!”
-웃으시면 탈락입니다.
“와아아아아…….”
박수에 고개를 끄덕이던 호위 무사들.
호위대장이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무사들에게 외쳤다.
“여봐라!”
“예-.”
“퇴근하자.”
“예-!”
웃으면 안 된다는 제약 때문에 웃음 장벽이 낮아진 건지, 우리 회사 A&R팀 식구 몇이 탈락했다.
형섭이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깃발을 들고 퇴장하는 호위 병력과 함께 울려 퍼지는 궁중 음악에 몇몇이 또 흐느끼다 탈락했다.
내가 호위 병력에게 손을 흔들었다.
-경들이 노고가 많았네.
“우주 전하 만세…!”
또 탈락자들이 나왔다.
탈락자들이 키득거리고 웃는 동안 살아남은 소수 인원이 꿋꿋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자리에 앉았다.
역시 강적들이다.
-네, 그럼 이번 송 캠프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가야겠죠. 들으셨다시피 3일 동안 노래나 작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페널티가 주어지고요.
“질문 있습니다.”
-네, 나상윤 팀장님.
“우주 씨와 졸개 분들도 포함인 건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그런 규정에서 예외입니다. 여러분은 곡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저희는 할 수 있어요.
“왜죠?”
-대표님에게서 저희가 예산을 타 왔기 때문이죠.
“납득했습니다.”
그냥 평범한 대화인데, 형섭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눈가에 손을 올렸다. 웃음 참는 데 면역이 없는 모양이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감자 비서?
“고구마입니다. 까먹었습니다.”
-무능하군요. 해고입니다.
“감사합니다.”
남은 작곡가 몇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리혁이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 다시 듣고는 설명을 이어 갔다.
-네…….
목소리가 살짝 잠겨 나온다.
차분하게 ‘네…’ 한마디 한 것인데 갑자기 웃음보가 터진 작곡가들 몇이 탈락했다.
형섭이가 울면서 퇴장했다.
남은 것은 4명.
-네. 보통 송 캠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다른 기획사들의 사례를 참조했는데요. 보통 작업할 만한 반주 리스트를 듣고,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작업한다고 하더라고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반주를 고르는 데 있어서도 독특한 방식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일 이야기라서 그런지 작곡가들의 눈에 호기심이 깃든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내가 손짓하자 막내가 리코더를 불기 시작했다. 타이타닉 OST가 쀠뤽쀠뤽 흘러나온다.
불협화음 가득한 리코더.
나상윤 피디님이 눈을 감고 입을 오므렸다.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그런 게 떠오르더라고요. 가만히 누워 있다 보니까 입원하기 전에 작업했던 멜로디 몇 개가 떠오르는 거예요. 희한하게 다른 멜로디들은 기억이 안 나는데, 몇 개는 굉장히 선명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며칠 지나고 나서도 떠올랐던 저 멜로디들. 그 아이들이 진짜 잘 만들어진 멜로디구나 하고.
결국 작곡가의 최종 목표는 기억에 남는 노래를 만드는 것 아니던가.
-그런고로 오늘 작업할 반주 목록을 쭉 들려 드릴 예정이고요. 편하게 듣고 잊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3일 뒤에도 떠오른 반주가 있다면 해당 반주로 작업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리혁이가 파일들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저와 프로듀싱팀, A&R팀, 그리고 다른 작곡가 여러분들이 제출하신 반주가 모두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대략 30개가량의 반주가 짤막하게 흘러나오면서 작곡가들의 눈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감상을 마쳤을 때.
마지막까지 웃음 내기를 이겨 내고 남은 4명의 프로듀싱팀 직원들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계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고요. 혹시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뭔가요.”
-왕이 넘어지면 뭘까요?”
“…….”
-킹콩.
“……?”
-킹. 콩.
동생들과 젊은 작곡가들이 ‘뭐래…’ 하는 동안 취향저격이었는지, 남은 4명의 아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치사한 수법을 쓰긴 했지만 이로써 전원 탈락이었다.
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내기가 끝났고요. 모두 편하게 웃어 주시면 됩니다.
“후우…….”
안면근육을 움직이면서 다들 후하후하 하는 가운데, 싱글벙글 웃고 있는 우리에게 작곡가들이 물었다.
“저 질문 하나 더 있습니다!”
“네!”
“웃음내기에서 상품이 뭔가요?”
“상품 같은 건 없었어요.”
꺄르륵 웃어 대는 우리의 모습에 작곡가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 * *
「선우주의 휴식‘일’기」 中
본격적으로 휴식 여행을 떠나는 뉴블랙과 작곡가들.
구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해군의 유명 식당에 방문해 멸치쌈밥과 회 백반을 먹는 장면들이 흘러나온다.
식당 주인 :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아들들!
뉴블랙 : 안녕하세요~!
식당 주인 : 우주 몸은 괜찮나?
우주 : 아유. 괜찮아요. 이제 다 회복했습니다.
식당 주인 : 그래. 건강이 우선이다. 근데… 가마는 왜 탔나?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자기 친손주나 조카처럼 우주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팡팡 두드려 주며 가족처럼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정에 우주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걸 시작으로 가마를 타고 여행지를 누비는 뉴블랙의 모습이 흘러나오는 한편.
숙소 앞마당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는 작곡가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작곡가1 : 어우… 고맙긴 한데. 진짜 이래도 괜찮나?
작곡가2 : 그러니까 말이야. 이거 밥이 꿀떡꿀떡 넘어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좀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작곡가3 : 진짜 일을 안 시키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작곡가들이 미소를 짓는다.
작곡가1 : 쉬면 좋지.
작곡가2 : 맞아. 이게 휴식을 해야 더 좋은 곡이 나오는 거니까.
하지만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근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뉴블랙이 고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주 : 그러니까 이번 곡 컨셉은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해. 지금까지처럼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거지.
비주 : 우리에 대한 이야기. 괜찮은 것 같아요.
지호 : 이번 정규 앨범이랑 다음 정규 앨범 사이의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해도 좋을 거 같아요.
그러면서 이번 타이틀을 어떤 식으로 만들지 음악적으로 토론하는 이야기에 작곡가들의 귀가 쫑긋거린다.
입이 간질간질하지만 꾹 참는 듯한 표정.
애써 외면하며 작곡가들이 고기를 뜯었다.
작곡가1 : 일단 3일은 푹 쉬자고.
작곡가3 : 그럽시다.
하하 웃는 작곡가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첫날이 저물어 간다.
* * *
휴식 3일 차.
“으으으으음…….”
작곡가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끄으으으응.”
“왜 이렇게 좀이 쑤시지.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네.”
“몸 상태 다들 괜찮아요? 저는 컨디션은 엄청 좋은데…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갑갑한 느낌?”
이틀 정도 정말 푹 쉬었지만 미묘한 느낌을 받고 있는 작곡가들이었다.
쉬는데 쉬는 것 같지 않은 느낌.
분명히 몸은 엄청나게 편한데… 정신적으로 갑갑한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는…….
‘뭐라도 하고 싶다.’
지난 이틀 동안 작곡이나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금지였다.
노래를 듣는 행위 또한 금지.
처음에는 ‘노래에서 해방된 진짜배기 휴식이다!’ 이러면서 좋아했는데, 이틀을 넘기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여행을 떠나요~”
심심풀이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덤불 속에서 중현이 불쑥 튀어나와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노래 부르기 금지. 벌점 1점이 주어집니다.”
“교관… 아니, 중현 씨. 이런 노래 흥얼거리는 것도 안 되나요?”
“우주 형이 안 된대요.”
“…….”
노래 부르기까지 전면 금지.
상황이 이 정도까지 이르고 나니 작곡가들은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에 나온 주인공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예술이나 음악이 금지된 사회. 그곳에서 몰래 노래를 훔쳐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
그 모습에 자신들의 현재 상황이 겹쳐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괴로운 건.
“라틴팝 계열을 좀 참조해 볼까요, 형? 빌보드 보면 1월부터 라틴팝이 지금 대세로 자리 잡은 것 같더라고요.”
“힘들 것 같은데. 라틴팝은 섹시 계열이라 우린 힘들어.”
“저 성인이라 이제 가능해요.”
“아니, 그런 걸 한다고 사람들이 우릴 섹시하게 보겠냐구.”
“앗…….”
빌보드 차트의 음악 트렌드나 국내 가요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도 입 한 번 뻥긋할 수 없었다.
특히나 4번에 1번 꼴로 가짜 뉴스를 쏟아 내는 막내의 말을 들을 때면 입이 근질근질했다.
“아! 그! 요즘에 그 노래 유행이잖아여. 에스페란토.”
‘데스파지토겠지….’
“제 생각에는 이제 후크송보다는 발라드 계열이 더 뜰 것 같더라구요. 근데 우리 여름에 발매할 거 생각하면 토라방코 하우스 같은 장르로.”
‘트로피컬 하우스라고. 지호야.’
참다못한 작곡가 하나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듯, 옷으로 입을 감싸고는 ‘트로피컬 하우스’하고 읍읍 외쳤다.
삐빅!
곧바로 중현이 호루라기를 들고 말했다.
“벌점 1점 부여합니다.”
“으아아아아아!”
작곡가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호소했다.
“그냥 작업하면 안 되나요?”
“우주 씨…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냥 작업하게 해 주세요. 이거 갑갑해서 도저히 못 견디겠어.”
“휴식하면서 일하면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런 요청에 음료를 홀짝이던 우주가 고개를 돌린다.
“음…….”
꽃가마에서 뒹굴거리던 미남이 고개를 저었다.
맏형의 완벽한 휴식을 위해 목소리 대리인을 맡은 비주가 단아한 미소를 지었다.
“안 된다고 하시네요.”
“우주 씨, 저희 선물 세트 안 받아도 되니까… 일 좀 하게 해 주세요. 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우주가 ‘으으음’ 하자 비주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고민 중이시라네요.”
“우주 씨…!”
이내 고민을 하던 우주가 끄응 했다.
“자꾸 외치면 심기가 불편하시다네요.”
“…….”
“기다려 달라 하시네요.”
하지만 고민을 하던 우주는 이내 고개를 슥슥 저어 보였다.
“안 된다고 하시네요.”
“으아아아아아아!”
“그래도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비주의 말에 작곡가들이 내심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
리혁이 일정표를 들고 나섰다.
“오후 일정에 작곡가 여러분의 멋진 휴식을 위한 스케줄을 가득 넣었어요. 리조트 내 스파에서 전신 마사지 1회 사용권을 하나씩 드릴 예정이고요. 저녁에는 남해의 명물 음식을 먹으러 갈 예정입니다.”
“…….”
작곡가들이 쪼로록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매번 뉴블랙에게 시달렸던 레몬 엔터의 A&R팀과 프로듀싱팀도 비슷한 상태였다.
“아, 이거 진짜 도저히 못 견디겠네.”
“저도 너무 힘들어요…….”
마치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들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와서 ‘오늘부터 공부는 절대 금지야! 공부의 ‘공’ 자도 이야기하면 안 되고 무조건 놀아!’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 꿀이다!’ 하면서 좋아하는데…….
사람 심보라는 게 참 청개구리였다.
절대 하면 안 되고, 하면 벌점도 주어진다니까 문제집도 한 번 들여다보고 싶고. 이거 금지 풀어 주면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고. 재밌게 보던 TV만화가 갑자기 재미없어지고.
작곡가들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며칠 쉬라고 하면 바로 땡큐를 외칠 테지만, 그들은 예술 업종에 종사하는 음악인들이었다. 음악이 좋아서 남들 다 말리는 이 외길을 걸어온 사람들.
음악 얘기로도 밤새 토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환경은 마치 창살이 달린 천국과 같았다.
“안 되겠어요.”
결국 그날 밤.
남해 최고의 맛집에서 식사를 마친 작곡가들이 비밀리에 모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그냥 몰래 조금 일해 봅시다. 솔직히 어차피 내일부터 일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계속 마음 불편한 것보다 그냥 조금씩 미리 손도 대 보고.”
마치 영화 속 프랑스 대혁명을 모의하는 장면처럼 작곡가들이 목소리를 낮췄다.
“일단 아무 음악이라도 좀 들어 볼까요?”
“좋죠.”
곧이어 재생되는 뉴블랙의 Coin.
“음? 왜 이거 틀었어요?”
“망고 차트 100 재생 눌렀는데 이게 1위 곡이라서…….”
“일단 들읍시다. 이거라도 어디예요.”
작곡가들이 ‘햐…’ 하면서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Coin을 들으며 참 잘 만들었다는 감탄사를 자아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똑똑.
“음?”
인터폰으로 방문자의 얼굴을 확인한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주, 중현이에요.”
“어떻게 알았지?”
“청력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중현이 보니까 4층에서 1층 고기 굽는 소리까지 듣는다면서요.”
“그… 그나저나 일단 어떻게 할까요? 버틸까요?”
“그냥 문 열고 잡아뗍시다.”
작곡가들이 긴장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김중현이 푸근한 얼굴로 벌점 카드를 내밀었다.
“벌점입니다.”
“아니…….”
“노래 감상 및 작곡 시도가 감지되어서 이렇게 왔어요. 하하.”
“……어떻게 알았어요?”
발각당했다는 공포보다 오히려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궁금하다.
김중현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아시나요.”
“네?”
“여러분들 사이에서는 저희가 심어 놓은 마니또가 있다는 것을…….”
“…….”
“좋은 밤 되세요.”
꾸벅 인사한 김중현이 휘적휘적 사라지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작곡가들 사이에서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었군요.”
“후우… 그냥 고스톱이나 칩시다.”
“마니또 하면 뭐 주나? 한우 세트 더 나오려나요?”
작곡가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불신.
결국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 채 작곡 모임이 고스톱 모임으로 변질되는 가운데.
복도에서 젤리를 우물거리고 있던 김중현이 밤하늘에 뜬 환한 달을 보며 으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중현아. 만약에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작곡가 분들 사이에 우리 마니또가 숨어 있다고 말해 줘.
꺄르륵 웃는 우주 형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돈다.
김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연히 지나가다 들은 거였는데, 그 말을 하고 나니 작곡가들이 이이잉 하면서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그는 다시금 결심했다.
‘우주 형이랑 적이 되는 일은 없어야지.’
무사히 바른 사람으로 자라나서 정말 다행인 우리 맏형이었다.
* * *
작곡가들의 작업 의욕이 점점 최고치를 향해 다가가고 있을 무렵.
“남해에서 촬영분 도착했습니다.”
“그래?”
레몬 엔터에서 가장 바쁘고 보수가 높기로 유명한 뉴블랙 TV 담당 제작진.
그들은 ‘선우주의 휴식일기’ 2일 차 촬영분을 받았다.
“어디 보자.”
“어유, 2일 차쯤 되니까 다들 작업을 하고 싶어 하나 봐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엄청 갑갑해하네.”
“중현이 쟤는 왜 덤불 속에 숨어 있는 거야?”
“중현이 어디 있는데요? 어머….”
“더 놀라운 거 알려 줄까? 그 옆에 우주 있다.”
“허어어!”
“보호색 쓰는 거 봐. 카멜레온인 줄.”
녹색 티셔츠를 이용해 보호색까지 쓰는 뉴블랙 맏이의 모습에 제작진이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힐링 같은 거… 안 될 줄 알았어.’
‘또 예능 찍어.’
그래도 힐링으로 넣을 만한 장면들이 많았다.
주민들의 따스한 정에 감동하는 우주라든가.
김덕순 여사에게 영상 통화로 남해 풍경을 보여 주며 단체로 사랑한다고 외치는 리더와 동생들이라든가.
평소 고생해서 팍 삭았던 프로듀싱팀 직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거나.
“나쁘지 않은데요?”
“괜찮아. 이 정도면 그래도 중간중간 예쁘게 포장할 수 있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음? 이건 작곡가들이 강당에 몰래 침입하는 장면인가 봐요.”
작곡가들이 강당에 있는 본인들의 작업기기에 접근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도둑들 같은 모양새라 BGM 넣기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음?”
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어둑어둑한 물체들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로봇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부우우우우웅-]
가만히 잠들어 있던 조그마한 드론 세 대가 부우웅 하면서 비행을 하더니 작곡가들에게 다가왔다.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으아악! 이건 뭐야!]
[아아! 여러분은 지금 제한구역에 접근했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여러분은 제한구역에 접근했습니다.]
[으아아아! 살려 주세요!]
드론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리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제작진이 물개 박수를 치며 웃었다.
곧이어 으아아! 하면서 드론에 쫓기는 작곡가들.
그런 예능적인 장면을 바라보던 PD가 다른 직원들에게 말했다.
“재밌다.”
“이 정도면 지상파에 팔아먹어도 되겠는데?”
“K넷 정도는 일단 확정이에요.”
그러고는 방금 장면을 다시 재생했다.
눈썰미 좋게 장면의 구성을 파악하던 제작진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이 장면에 어울릴 만한 BGM과 레퍼런스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을 추격하는 기계들.
“BGM은 터미네이터 관련으로 넣을까요?”
“그거 좋지.”
제작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편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본격 작곡 겸 힐링 리얼리티였던 ‘선우주의 휴식일기’에 호러라는 장르가 새롭게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