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64)화 (66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64화

“후후후후후.”

귓가에 들리는 거슬리는 웃음.

고개를 돌리자 우리 메인 보컬이 몸을 들썩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쟤는 또 왜 저러니.”

“몰라요.”

막내가 말했다.

“뭐 드론 조종했는데 재미있다고 중얼중얼하는데요. 강당에 있는 드론 조종했나 봐요.”

“쟤도 맨날 이상한 거 한다니까.”

흉을 보고 있는 우리 목소리가 들렸는지, 리혁이가 도끼눈을 떴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내가 무슨 자기들 같은 줄 알아.”

“그럼 뭐 했는데.”

“작업하고 싶다고 몰래 숨어들어온 작곡가 분들을 드론으로 내쫓았어요.”

“……아무리 봐도 이상한 것 같은데.”

리혁이가 부들대는 동안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작곡가 명단이었다.

“작곡가 분들도 조금만 참아 주시지. 이삼일 정도 참는 게 그렇게 힘든가.”

“형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여? 병원에서 작곡 생각하고 싶다고 그 난리 부르스를…….”

“어디 보자~ 어떻게 짜야 팀을 잘 구성했다고 소문이 나나~”

처음 3일을 내리 쉰다는 것은 단순히 예능 분량 뽑기나 자선사업의 일환으로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한 계획이었다.

며칠 정도 관광시켜 주면서 작곡가들의 창의력도 끌어 올려 주고. 죄책감도 조금 심어드리고.

“깔깔깔.”

“꺄르륵!”

무엇보다 각자 성향이나 케미를 파악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3일 정도 경과를 관찰하면서 ‘아 저 둘이 붙여 놓으면 싸우겠다’ 싶은 사람들을 분류하고, 붙여 놓으면 작업 효율이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을 한 팀으로 묶어 주고.

지난 3일 간은 그러한 작업을 위한 밑바탕이었다.

겸사겸사 우리 A&R, 프로듀싱팀과 외부 작곡가들이 술 한 잔씩 걸치며 형님동생 하고 다음 날 모른 척할 시간도 주고 말이다.

“완성이다.”

엔터를 탁 치고는 5인 1조로 분류한 명단을 완성했다.

“얘들아. 이거 봐봐. 이 정도면 될 것 같지?”

“음…….”

모니터에 고개를 들이민 동생들이 명단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주가 말했다.

“형, 저기서 유웅 작곡가님이랑 샌드걸 작곡가님은 떨어뜨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

“프로듀싱팀한테 들었는데 전 여친 전 남친이래요.”

“바로 수정할게.”

동생들이 지난 이틀 동안 수집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부분을 고치는 한편.

“송 캠프 팀원 명단도 구성했고,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다음 타이틀곡 주제인데… 그 부분을 확정 짓자.”

이제 저 팀원들에게 ‘이런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라!’ 하고 제시해 줘야 하는데.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었다.

“준비됐어요.”

가족회의 담당 서기인 리혁이가 펜을 들고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타이틀곡에 관한 회의가 시작됐다.

“자, 이제 디지털 싱글로 내게 될 이번 타이틀곡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우선…….”

딩동!

“치킨 왔네.”

배달시켰던 순살치킨을 테이블에 세팅하고는 포크로 찍어 먹으며 회의를 이어 갔다.

비주가 포크로 무를 콕 찍으며 말했다.

“저는 형 의견이 제일 궁금해요. 이번 타이틀을 어떤 식으로 꾸미고 싶어요?”

“음…….”

내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미리 생각해 둔 것도 있긴 한데, 그걸 이야기하면 너희가 무조건 좋다고 동의할 게 뻔해서. 이번에는 너희 의견을 좀 들어 보고 싶은데.”

“…….”

“…….”

정말 아무 생각이 없구나. 이 녀석들.

그런 생각을 하며 혀를 끌끌 차려고 할 때였다.

“저는…….”

막내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금 돌이켜 보는 느낌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는 느낌으로.”

“왜?”

“이번에 형이 미국에서 쓰러지고 나니까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쉼 없이 달려오긴 했는데…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돌아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 항상 노래할 때도 우리가 중심인 건 아니었잖아요.”

“그랬지.”

그동안 우리가 불렀던 타이틀곡의 주제는 온전히 ‘우리’라기보다는 ‘너와 나’를 다루는 데 가까웠다.

불꽃놀이는 ‘너’와의 첫 만남.

마스커레이드부터 시작해서 낙화까지는 너와 만난 내가 서로를 알아가고 마지막에 작별 인사를 하고.

엠파이어, 도깨비, 코인은 그런 너와 나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3부작이었다.

“이제는 우리에 대해 파고들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그런 거.”

다른 동생들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혁이가 말했다.

“나도 동감이에요. 한 번쯤 돌이켜 보는 곡이 있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훨훨 털어 낼 것이 있다면 털어 내고, 좋았던 것은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거기에 더해서 저는 좀 미래지향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중현이가 의견을 개진했다.

“과거를 돌이켜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미래로 향하는 느낌으로요. 이게 우리 정규 2집이랑 정규 3집 사이에 있게 될 곡이잖아요. 그 연결고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나도 같은 의견이었다.

지난 며칠간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서 그런지, 특별히 의견이 충돌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벗어나 우리를 탐구하는 노래를 만들자.

본격적으로 우리 자신을 파고드는 노래라기보다는… 이전 앨범과 다음 앨범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도록.

“음…….”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다.

“그런데 주제가 너무 개인적이라서 작곡가 분들한테 전달하기가 좀 애매하겠는걸.”

“그건 그러네요.”

미국 투어를 돌다가 압박감에 쓰러졌던 기억은 우리끼리만 공유하고 있는 거니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 나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는 주제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비주가 물었다.

“그럼 비슷한 상황을 주는 건 어떨까요? 꼭 그런 경험 말고도,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생각을 하는 장소나 상황이라든가.”

“음… 침대?”

“화장실에서 양치할 때?”

“게임에서 졌을 때?”

다들 적절한 상황이나 제시어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한테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공간.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어때?”

“지하철이요?”

“응. 월말평가 끝나거나, 다른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집에 갈 때 버스나 지하철 타고 그러잖아.”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데 지하철 안 조명은 환하고.

이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묘하게 외로움을 느끼는 공간.

흔들리는 열차 칸에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저절로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들곤 한다.

예전에 수능 끝나고 레몬 엔터로 오디션을 보러 갈 때 그런 생각이 들고 그랬는데.

비주와 중현이, 리혁이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아요.”

“지하철이면… 뭐 뮤비 뽑기도 괜찮을 것 같고, 음악 분위기도 Nine을 계승하는 그런 느낌으로 가도 될 것 같은데요?”

Nine 뮤비 초반부에서 지하철이 나왔던 것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식으로 맏형이 생각이 깊구나! 하면서 칭찬해 주는 동생들 속에서 막내가 으음 하고 말했다.

“저도 그럼 동의.”

“우리 막둥이는 별로 공감이 안 간 모양이구나.”

“넹.”

지호가 헤헷 웃었다.

“저 평소에 지하철이나 버스 잘 안 타고 댕겨서. 근데 무슨 느낌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아요.”

“…….”

“…….”

환하게 웃는 우리 부르주아의 모습에 형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애가 착하게 잘 자랐으니 됐지. 뭐.

*   *   *

마침내 본격적인 송 캠프가 시작하는 4일 차.

이른 아침부터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작곡가들이 집결 시간에 맞춰 강당에 도착했다.

“히야…….”

“이제부터 음악 얘기해도 되는 거지?”

“야씨, 이제야 개운하네. 어머님이 짜장면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가사 언급했다고 벌점 먹고 그랬는데…….”

여기저기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틀어 놓고 둠칫둠칫하는 작곡가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찍한 강당에 파티션이 설치되어 있고.

저마다 가져온 작업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시선을 끌어모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레몬 엔터의 작곡 관련 장비들이었다.

“이야, 저거 완전 최신…….”

“대표님이 음향이랑 곡 관련해서 돈 엄청 쓰신다니 정말인가 보네.”

“우와.”

“저거 우주가 쓰는 신디사이저,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작곡가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최신, 최첨단 장비들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가운데.

덜컹.

강당의 문이 열리고 마침내 주인공이 등장했다.

-주상 전하 납시오.

전동 가마를 타고 오는 우주와 손잡이를 잡은 졸개들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연단 위에 지이잉 올라온 우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다들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나요?

“네!”

-자. 그런 의미를 담아 전방에 3초간 함성 발사…!

“와아아아아아!”

-좋습니다. 송 캠프 참석자 여러분의 힘찬 함성을 들으니 저도 기운이 나는 것 같네요.

우주가 가마에서 몸을 일으키자 리혁이 스크린에 PPT를 띄웠다.

-오늘 여러분이 작업하게 될 곡의 주제와 장르에 대해서 미리 소개를 드리려고 합니다.

전날 뉴블랙이 토론했다는 내용이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쉽게 말해서 지하철을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지하철을 타면 출발역에서 목적지 역까지 가잖아요? 출발역이 저희의 Coin이 담긴 정규 2집, 목적지가 내년에 나오게 될 정규 3집으로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그런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지난 활동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겠다는 게 주제인 모양이다.

작곡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 지향적인 사운드를 쓰는 쪽으로 가야겠네. 퓨처 베이스 쪽으로 틀면 되려나?’

그들의 추측대로 우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운드 디자인은 여러분들의 재량에 맡기겠지만, 권장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퓨처 베이스 쪽이에요. 최근에 또 퓨처 베이스가 북미 쪽에서 인기 장르로 떠오르기도 했고.

퓨처 베이스.

EDM 장르의 일종으로 정확히 이게 무엇이다! 하고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장르는 아니었다.

물론 몇 가지 특징은 있다.

다만 분류가 애매해서 작곡가들 사이에서 ‘음? 이거 사운드가 좀 미래 느낌이 나는 게 퓨처 베이스 쪽이네’ 하고 결론을 내리는 정도.

-그리고 이번 곡은 좀 신나고 파워풀한 곡이었으면 좋겠어요. 주제는 이렇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흥이 나도록. 과거 따위 훨훨 털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 버려… 같은 느낌으로요.

-Nine의 친척 같은 곡이었으면 좋겠어요.

중현의 설명에 작곡가들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Nine.

당시 라이징이었던 뉴블랙을 위로 빵! 쏘아 올린 터닝 포인트. 정신없을 정도로 파워풀한 춤이 인상적인 곡을 언급하는 중현에게 작곡가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비주가 좀 격한 춤을 추고 싶다고 성화를 부려서요. 사실 저희도 요즘에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고.

도깨비와 Coin의 안무가 심심해서 이번에 빡센 춤을 춰 보고 싶다는 너스레에 작곡가들이 미소를 지었다.

‘비교 우위를 살리겠다는 거구나.’

사실, 뉴블랙은 그저 춤을 추고 싶어서 한 말이었지만 작곡가들은 그것을 냉철한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미국 쪽에서 뉴블랙이 이슈가 된 게 안무니까… 이번에 그 강점을 제대로 살리려고 하는 모양이군.’

‘탭 댄스를 출 정도로 빠른 곡을 만들어 주지.’

‘작곡가를 없애 버리고 싶은 고난이도 곡을 만들어 주겠어.’

우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피해 주셨으면 하는 장르를 꼽자면 레트로 느낌을 풍기는 신스팝 계열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희가 이미 블루문으로 80년대 레트로 분위기를 레퍼런스로 삼기도 했고, 이번에 코인도 전자오락을 주제로 한 뉴트로 풍이었거든요.

한 번 했던 분위기나 장르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신스팝.

80년대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전자음을 사용한 장르.

‘댄서블한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는 안 어울리는 장르긴 하지.’

서정성을 강조하기에는 좋지만 타이틀곡으로 내세우기에는 애매한 장르긴 했다.

EDM에 비하면 멜로디가 조금 약하기도 하고.

그런 설명들을 듣던 작곡가들의 머릿속에 멜로디를 비롯해 곡의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벌스는 잔잔하게, 코러스는 빡세게.

미래지향적인 사운드가 담긴 퓨처 베이스 장르로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댄스가 담길…….

-질문 있으신 분?

우주의 질문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 모습에 당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볼까요?

*   *   *

와글와글.

강당이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5인 1조로 분류한 사람들이 저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자, 그럼 우리도 작업을 시작해 볼까요?”

“예이!”

나와 멤버들로 구성된 우리 팀으로 부른 사람들은 A&R팀의 서필근 대리와 프로듀싱팀의 형섭이.

서필근 대리님은 반주를 짜는 데 기가 막힌 능력을 보유한 능력자고, 형섭이는 편곡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며칠간 작업을 쉬어서 그런지 두 사람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두 사람의 뽕을 뽑을 예정이다.

“후흐흐흐흐흐.”

“변태같이 웃지 말고 작업이나 얼른 시작해요.”

리혁이의 말에 바로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시작했다.

장르는 퓨처 베이스로 가기로 결정했으니 적절한 사운드를 준비하는 작업이 먼저다.

장르에 어울리는 짧은 드럼 사운드를 준비하고.

머릿속으로 몇 가지 코드를 떠올리고는 신디사이저 건반을 두드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음…….”

여기서부터는 이제 감의 영역이다.

자격증 공부를 하기 위해 이론 서적을 열심히 읽어도 막상 실무에 들어가면 이론 생각이 하나도 안 나듯. 음악공부를 할 때 배웠던 이론들도 정작 곡을 쓰기 시작하면 저 뒷전으로 밀려난다고 할까.

그 때문에 만들고 나서 ‘이거 어떻게 만들었지?’ 할 때도 많고.

“시작해 봅시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반주 중에 하나를 띄워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며칠 정도 묵혔던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하나. 내가 일전에 만들어 둔 것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작업을 하니 좀 신난다.

“반주에서 드럼은 좀 바꾸고.”

머릿속으로 상황을 하나 그렸다. 쿠궁쿠궁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같이 흔들리는 나와 동생들의 모습.

그런 흔들림을 상상하며 드럼을 발자국처럼 하나씩 찍어 나갔다.

계속해서 달려왔지만 지금은 뒤를 돌아보아야 할 단계. 뒤를 돌아보며 걷는 사람의 발자국은 어떤 리듬일까. 조금씩 걷다가 한 번 뒤를 돌아보고, 얼마나 멀리 나왔는지를 돌아보며 멈칫했다가 다시금 걷고.

엇박이 살짝 들어간 드럼이 완성된다.

그런 식으로 뒤를 돌아보며 걷던 사람의 발걸음이 서서히 가벼워진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무거운 가방을 멀찍이 집어던지고, 훨훨 털어 버린 사람이 제자리에 멈춰서 자유를 만끽한다.

그 자유는 어떤 모습일까.

어두운 지하철이 탁 트인 바깥으로 나오는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그 배경은 환한 햇볕이 가득한 낮은 아니다. 그저 어두운 밤이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이 주인공을 맞이한다. 그 속에서 자유롭게 걷는 인물의 모습을 떠올리며 코러스에 나올 만한 멜로디를 구상했다.

“대충 이렇게…….”

밝은 느낌이 나는 메이저 코드보다는 살짝 슬픈 느낌을 풍기는 마이너 코드가 이런 데 좀 더 어울린다.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나.

하지만 꼭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 본다고 해서 그것이 깨달음이나 해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작일 뿐이다. 나 자신을 본격적으로 돌이켜 보게 되는 시간을 처음 가진 것일 뿐.

약간의 해방감을 주지만 여기에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텐션을 조금 줄 필요가 있다.

“사비는 이런 느낌으로 가고…….”

후렴구 멜로디를 확정하고 난 다음에 벌스를 맞추는 것은 쉽다.

미리 세팅한 드럼에 맞춰 마우스를 클릭하며 여백을 채워 나갔다. 자신을 돌이켜 보기 시작하는 파트이니 조금은 속삭이거나 잔잔하게…….

아니다.

오히려 힘 있게 불러 주는 것도 좋겠다. 특히나 저음의 목소리로 불러 주는 게 곡을 더욱더 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 있게 이어 가던 파트를 사비에서 터뜨려 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쭈우욱 벌스를 당긴 다음에 놓았다가 사비를 팡 터뜨리면 된다. 헤일리는 이걸 suction effect라고 부르던데.

그렇다면 여기에 독백 파트를 넣으면 될 것 같다. 속삭이듯이 말을 하면서 잠잠해졌다가 팡! 하고 터뜨리는 식으로.

“그리고 브릿지에서 코러스를 두 번 정도 업그레이드 하도록 넣어서… 클라이막스를…….”

그런 식으로 곡의 얼개를 짜면서 집중하다가 잠시 물을 마실 때였다.

조용히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동생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

맞다.

“너희는 어때? 의견 있니?”

“…….”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생들의 모습에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고 할 때였다.

웅성웅성.

“……?”

우리가 스튜디오로 쓰고 있는 파티션 울타리에….

작곡가들이 동네 구경하는 시골 강아지들처럼 모여 있었다.

왜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방금 의견 있냐고 물었잖아요. 형.”

막내가 말했다.

“의견은 모르겠고, 형이 천재라는 건 알겠어요.”

“무슨 소리야?”

“형, 지금 1시간 만에 타이틀곡 다 만들어 버린 거 알아요?”

“완성됐다고?”

동생들의 말에 방금 만든 노래를 재생했다.

그리고.

“음?”

조금은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꼈다.

완성본?

아무리 들어도 완성본이 아니었기에 의아함을 담아 되물었다.

“완성본이라고? 이게…?”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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