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66화
“아.”
입이 근질근질하다.
사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데,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니.
“똑똑.”
솔트맨 PD와 외부 작곡가들이 일하고 있는 파티션 울타리를 두드리며 환히 웃었다.
“똑똑, 녀브제영.”
“……왜. 우주야.”
“지나가다가 우연히 노래를 듣게 됐는데요. PD님이 작업하고 있는 곡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어서요.”
눈을 초롱초롱 뜨고 짐짓 애교 섞인 표정을 지어 봤지만…….
솔트맨 PD가 미소를 지었다.
“거절합니다.”
“…….”
“워크숍 안내할 때, 우리 우주선 작곡가님이 그러지 않았나요? 간섭 없는 독립적인 작업을 보장한다고.”
그랬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눈을 초롱초롱 뜬 상태로 다니는 거고.
“후우…….”
솔트맨 작곡가로부터 야멸차게 거절당한 내가 다른 작곡가들의 스튜디오에 기웃거릴 때였다.
우리 회사 PD 중 하나가 멀찍이 오는 날 목격하더니 A4용지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환영의 깃발인 줄 알았는데, 그게 파티션 울타리에 착 붙여지면서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작곡요괴 사절합니다]
팔다리가 여섯 개 달린 삼두육비의 괴물이 입에서 불을 뿜는 그림 위로 X자가 그려져 있다.
“리혁아, 저거 너인가 봐.”
“주둥이 한 대만 촙 때려 봐도 돼요?”
“안 돼.”
곁에서 부들부들하는 메인 보컬을 데리고 다른 스튜디오를 찾아갔지만, 모두 다 나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러고는 행복한 얼굴로 꺄르륵 웃었다.
“훈수충이 없는 독립작업…! 이게 바깥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아주 귀한 기회거든요.”
“속이 시원하네.”
“독립적인 작업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이게 자유인가? 이게 행복인가?”
아주 깨가 쏟아진다.
스튜디오마다 외부 작곡가들과 우리 팀 작곡가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행복하게 웃는 소리가 거슬린다.
“무릇 작업실에는 비명과 고통, 함성이 있어야 하거늘…….”
“헛소리하지 말고 돌아가요.”
내 팔을 끌어당기는 리혁이에게 질질 끌려갔다.
“아니, 리혁아. 너는 저 소리가 안 보이니? 저 아름다운 소리가?”
아름답고 예쁜 소리를 볼 때마다 참기가 힘들었다.
마트에서 살고 싶어 하는 어린이처럼 다른 작업실들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리혁이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 입장도 배려해야죠.”
“왜?”
“결국에 작곡도 자기만의 정답을 찾아내어 가는 과정인데… 아저씨가 가서 곡이 이런 것 같다, 저런 것 같다 하면 저분들이 신경이 안 쓰이겠어요? 부처님이 절에 찾아와서 경전의 이 부분 수정하면 좋을 거라고 말하는데.”
“…….”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스스로 해내야 돼요.”
진지하게 자신의 지론을 설파하는 리혁이가 말없이 걷는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왜 그래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쓰레기 같잖아.”
“……내 말을 듣기는 한 거예요?”
우리 스튜디오로 돌아가서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졸개들에게 말했다.
“리혁이가 나보고 쓰레기래.”
“허어…….”
“리혁이 형, 제가 저럴 줄 알았어요. 위염 걸려서 회복하고 있는 사람한테 쓰레기라고 그러고.”
“리혁이, 왜 그랬어?”
이윽고 귀가 벌게진 리혁이로부터 등짝을 찰싹찰싹 얻어맞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동과 날조로 우리 메인 보컬을 놀려먹고 있을 때.
내가 부탁한 대로 곡의 일부분을 만지고 있던 서필근 대리님이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다들 제가 기웃거리기만 해도 싫어하더라고요.”
“음, 그건 그렇지.”
조용히 미소를 짓는 내 모습에 서필근 대리님이 다급히 말을 바꿨다.
“어우…! 나쁜 사람들이네. 정말.”
“그죠?”
그러고는 기지개를 쭉 켜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 탄생한 ‘Metro’는 더 이상 건드릴 수가 없다. 일단 이 상태로 멈춘 뒤 회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TF팀과 조규환 이사님에게도 들려줘서 의견을 구하고.
구체적인 컨셉도 정하고.
엔지니어들과도 상의해서 믹싱과 마스터링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도 회의를 해야 한다.
즉, 초반부에 달성해야 할 목표는 모두 다 이룬 상태였다.
“음…….”
남는 시간 동안 그럼 무엇을 할까.
“지호 작곡이나 가르쳐 볼까? 지호 요즘에 작곡에 관심 있다고 하지 않았니?”
“잉? 제가요? 금시초문인데요?”
“중현이 믹스테이프 요즘 작업 중이라고 했지?”
“죄송해요. 형. 저 USB를 안 들고 왔어요.”
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비주…….”
부아아아아앙!
비주가 가져온 믹서기가 신명나게 사과를 갈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비주에게 말을 걸었다.
“비…….”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비주야!”
뿌아아아아앙!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요?”
삐딱한 얼굴로 묻는 리혁이에게 내가 반색하며 물었다.
“나랑 같이 곡 하나 작업해 볼래?”
“싫은데요.”
“…….”
그러더니 고개를 획 돌리고 들썩이는데, 마치 만화에서 짱구가 히죽히죽 웃는 뒷모습 같은 느낌이다.
비주가 웃으며 사과 주스를 내밀었다.
“간만에 휴양을 온 거잖아요. 작업도 일찍 끝났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조금 쉬는 게 어때요?”
“으으음…….”
“며칠 뒤면 또 해외 투어 하러 가야 되잖아요. 조금 쉬어요. 형.”
중현이와 지호가 달라붙어서 조물조물 팔다리를 마사지해 주고, 리혁이가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러 주었다.
잠시 눈을 감고 꿀 같은 휴식을 즐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동생들 말도 맞는 것 같고.
마침 작곡가들을 생각하며 떠올린 계획도 하나 있었다.
“그러면 좀 쉬면서 가볍게 일할게.”
바로 그거라는 듯 동생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그날 밤.
마침내 리뷰 시간이 됐다.
“후우…….”
“끝났드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작곡가들끼리 서로에게 박수를 쳐 주고는 강당에 빙 둘러앉았다.
가마에 앉아 있던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네,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요. 오늘 작업 어떠셨나요? 재미있으셨나요?”
“네!”
특히나 어떤 작곡요괴에게 시달릴 필요 없이 행복하게 작업한 레몬 엔터 작곡가들의 웃음소리가 컸다.
외부 작곡가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진짜 잘한다. 이 사람들.’
회사 소속 작곡가라는 편견을 가졌던 게 미안할 만큼, 오늘 하루 빼어난 능력을 선보인 레몬 엔터 프로듀서들이었다.
업계 탑으로 꼽히는 자신들과 비등비등한 실력.
그중에서도 팀장인 나상윤 PD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시피 했다. 괜히 우주선의 원픽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레몬 엔터… 생각보다 저력이 있어.’
업계 최고로 꼽히는 KM이나 TJ 내부 작곡가들과도 같이 작업을 해 봤지만, 이 정도로 빼어난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호감이 무럭무럭 솟아난다고 할까.
그러는 한편.
우주선에 대한 경외심도 들었다.
-제가 잘한다고요? 농담도 참…….
-어유, 그런 칭찬은 우주나 애들 있을 때는 하지 마세요. 다들 들으면 놀려요.
-보통 다들 이 정도는 하지 않나요?
도대체 평소에 작곡으로 뭘 하고 다니면, 이런 능력치의 사람들이 자기가 잘한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레몬 엔터 사람들을 눈여겨보는 가운데.
우주가 입을 열었다.
“네, 앞으로 2박 3일간 이렇게 리뷰 시간을 가질 거예요. 매일 한 곡씩 만들어 내고, 그중에서 제일 좋은 곡을 투표하는 시간을 가져서… 상품도 주어지고요.”
“상품은 바로 한우 갈비 세트입니다!”
생글생글 웃던 막내가 한우 갈비 세트를 들고 와서 보여 주면서, 외부 작곡가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대박이다.’
‘저거 가져가면 와이프한테 5분 정도 생색낼 수 있겠어.’
‘엄마, 딸이 한우 타 갈게.’
이윽고 팀별로 제출한 곡을 하나씩 들어 보는 시간.
같은 팀원들끼리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최고와 최고들이 시너지를 발휘해 곡을 만든 만큼, 자신들이 만든 곡에 대해 자부심이 가득했다.
“자, 그럼 무작위로 랜덤 재생을 해서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주세요!”
EDM 장르의 곡이 흘러나오면서 작곡가들이 ‘어?’ 했다.
뉴블랙 멤버들이 고개를 까딱이며 흥겹게 몸을 움직이는 동안, 작곡가들이 멈칫했다.
‘뭐야. 만만치 않은데?’
첫 번째 곡을 만든 팀만 소리 없이 웃을 뿐.
다른 작곡가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쉽지 않네.’
‘다른 팀도 이 갈고 만들었구만.’
하지만 두 번째 곡이 흘러나오면서 첫 번째 곡을 만든 팀원들도 이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최고와 최고가 모인 것은 그들의 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동안 만들어 낸 곡들이 흘러나오면서 곳곳에서 ‘히야’, ‘어우’ 하는 탄성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누가 1등이 될지는 너무나 명확해 보였다.
‘나상윤 팀장네 팀이 1등이겠구만…….’
신스팝의 사운드를 이용해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 나상윤 피디의 팀이 1위가 유력해 보였다.
그러면서 저마다 자신의 순위를 직감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투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계기판으로 사용하는 존재가 있었다.
‘중현이를 보면 되겠다.’
마치 좋은 음악을 들어 주면 꿈틀꿈틀하는 식물처럼, 가만히 화초처럼 앉아 있는 중현의 움직임.
음악이 좋을수록 꿈틀꿈틀의 정도가 커지는 듯했다.
노래가 그냥 보통이면 꼼지락꼼지락하는 정도.
한편, 그렇게 1등이 정해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나상윤 피디는 한껏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감이 차오른다…!’
이번 송 캠프를 통해 자신감을 고취시켜 주겠다는 우주의 말이 기억난다.
국내 최고의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확인하라고 했던 우주의 말.
그리고 그 말은 맞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작곡가들과 미팅을 하면서 괜히 자신감이 하락했던 레몬 엔터의 프로듀서들은 완벽하게 자신감을 회복했다.
‘어쩌면 미국에 먹힐 만한 곡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상윤 피디가 한우 갈비를 수령하려고 할 때였다.
“음?”
“한 곡 더 있나 본데요?”
노트북 앞에 앉아 있던 리혁이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작곡가들의 시선이 모였다.
‘팀별로 낸 곡들은 다 들은 것 같은데? 2개를 낸 팀도 있었나?’
물리적인 시간상 불가능할 뿐이지 곡을 제출할 수 있는 개수는 제한이 없었다.
그랬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떤 팀이 과연 두 곡이나 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감상할 때였다.
“……어?”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입부 뭔데.’
도입부부터 미쳤다는 말이 나오는 곡이었다.
시한폭탄처럼 시계가 짹깍짹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자음이 절묘하게 섞여 들어가 있는 뭄바톤 장르의 곡이 이어졌다. 머릿속으로 절로 군무가 그려지는 느낌.
“와.”
“이거 좋은데요?”
한 가지 단점이라면 보이그룹보다는 걸그룹에 어울리는 컬러나 분위기인데…….
그거야 얼마든 수정할 수 있는 문제 아니던가.
후렴구가 전개될 때까지 듣던 작곡가들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후렴구에서 팡! 터지는 분위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지.’
좋은 곡을 들었을 때 특유의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가만히 화초처럼 앉아 있던 중현도 노래에 맞춰 꿈틀! 꿈꿈틀!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1등은 여기다.’
나상윤 피디도 납득했다.
‘역시 쉽지 않구나. 뛰어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자만심이 될 뻔했던 자신감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도 얻었지만, 동시에 겸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래서 이 곡은 누가 만든 건가요?”
“그 전에…….”
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투표부터 해야 될 것 같아요.”
곧바로 익명 투표로 결과가 정해졌다.
자기 팀을 제외하고 가장 좋았던 곡을 뽑는 투표. 곧바로 투표를 마치고 결과가 공개됐다.
“네, 만장일치는 아니고요.”
작곡가들이 눈을 크게 떴다.
“만장일치가 아니야?”
“네. 나상윤 팀장님이 속한 3팀이 한 표를 받았고요.”
“…….”
작곡가들이 고개를 휙 돌리자 3팀이 손사래를 쳤다.
“저희는 저희 거 투표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아.”
그러네.
“그럼 누구지?”
“1등한 팀이 누구예요?”
작곡가들의 재촉에 우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그 전에 한우 갈비 세트를… 지호야.”
“넹!”
총총 뛰어가서 한우 세트를 품에 끙차 안아 들고 오는 지호.
180 가까이 되는 훤칠한 미남이 휘청거릴 만큼 상자 안에 푸짐한 갈비가 가득 담겨 있다.
과연 저 갈비가 누구에게 갈까 고민할 때.
“음?”
중현이가 촙 갈비를 받아 들었다.
“……?”
멍하니 바라보는 작곡가들에게 우주가 미소를 지었다.
“네, 이 갈비는 이제 제 겁니다.”
“……?”
“인사드리죠. 방금 들었던 뭄바톤 장르의 곡을 만든 작곡가, 우주선이라고 합니다. 하하하하!”
“…….”
갈비를 바라보면서 하하하하 웃는 작곡요괴와 졸개들의 모습에 작곡가들이 눈을 깜빡였다.
‘뭐지.’
분명히 정당하게 얻어 낸 갈비긴 한데…….
‘왜 이렇게 횡령하는 것처럼 보이지.’
회삿돈으로 자기들 먹을 갈비를 사 가는 듯한 광경이다.
얄밉게 깔깔 웃는 우주선에게 다른 작곡가가 물었다.
“그럼 오늘 두 곡을 만든 건가요?”
“네. 여러분들에게 수록곡 만들기를 부탁하고 쉬는 건 도리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열심히 작업을 했어요.”
“…….”
“아무튼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갈비 잘 먹을게요~!”
그러고는 오늘의 송 캠프 일정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뉴블랙 멤버들.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짐 정리를 하고 갈비를 챙기는 모습에 작곡가들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게 뭐지.’
‘얄밉다.’
‘진짜 얄미워…….’
그러는 한편으로는 미묘한 패배감도 들었다.
그들이 하루 내내 힘겹게 일할 동안, 부채를 흔들흔들하며 마우스를 딸깍이던 우주선이 상품을 타 갔다.
‘후우…….’
‘그럴 수 있지. 뭐 법으로 한 곡만 써야 한다고 정해 놓는 것도 아니고.’
‘좋은 곡이니까.’
작곡가들이 인정하면서 심호흡을 할 때.
“갈비! 갈비!”
“흐하하하! 아까 대박 웃겼어요. 이 갈비는 이제 제 겁니다.”
“우리 이거 뉴불백 양념 묻혀서 먹어 볼까요? 얼마 전에 TV에서 고추장 갈비 맛나 보이던데.”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던 작곡가들의 안정이 깨졌다.
그러면서 미묘한 패배감이 분노와 열정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내일은 반드시 1등한다.’
‘우주선의 콧대… 못 누르겠지만 1mm라도 납작하게 만든다.’
뉴블랙 멤버들이 강당을 나서는 동안, 시계를 바라본 작곡가들이 다시금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안 돌아가세요?”
“예, 뭐… 조금 마무리 작업하려고요.”
“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12시부터 풀로 작업해 보려고요. 진짜 억울해서라도 퀄리티 장난 아닌 거 뽑아야겠어요.”
얄미운 우주선에 대한 분노로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작곡가들.
“나 팀장님도 안 가세요?”
“네… 퇴근 따위 없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가 24시간 풀로 일하려고 하는 작곡가들이 이글이글거리는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한편.
“봤지?”
강당 문을 빼꼼 열고 그 모습을 구경하는 졸개들에게 리더가 말했다.
“남을 갈아 버리는 건 하수야. 진정한 고수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갈게 만드는 거지.”
“오오오오오.”
감탄하는 멤버들 속에서 김비주가 열심히 메모를 했다.
그런 이에게 우주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린 갈비를 먹으러 가자!”
“와아아아!”
“먹고 회사 사람들한테 톡으로 갈비 사진 보내자.”
“와아아아아!”
그날 밤.
갈비 사진을 본 작곡가들 모두가 미친 듯이 폭주했다.
* * *
본격 2박 3일간의 송 캠프는 정말이지 꿀잼이었다.
“흐하하핫!”
“…….”
“으하하하하!”
“…….”
우리는 재미있었는데, 작곡가 분들은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다.
퀭한 눈으로 꾸벅꾸벅 조는 작곡가들.
-자!
내가 마이크를 들고 신나게 외쳤다.
-지난 5박 6일 동안 재미있으셨나요?
“예…….”
-그렇군요. 저희도 덕분에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소고기를 타 가는 알찬 시간도 되었고요.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흉흉해졌다.
-흠흠.
바로 화제를 돌렸다.
-네, 이제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리뷰 시간을 가질 텐데요. 이번 송 캠프에 대한 만족도 조사입니다.
-인터넷으로 설문 양식 보내드렸으니 작성해서 제출하시면 돼요. 익명이니까 성함은 안 쓰셔도 되고요.
곧이어 작곡가들이 저마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설문지 양식을 작성하고 제출했다.
그렇게 작성이 끝나고 우리가 결과를 띄웠다.
-오오!
만족도 조사에서 ‘매우 만족’과 ‘만족’이 100퍼센트로 띄워져 있었다.
-다들 만족스러우셨다니 정말 다행인데요.
-대박! 그럼 저희 2회 송캠프도 기대해 봐도 될까요?
곧이어 ‘2회 송캠프가 열린다면 또 참석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떠 있었다.
[참석 : 0%]
[불참 : 100%]
작곡가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우리가 물었다.
-아니, 매우 만족스러웠는데 왜…….
-거기 누르면 상세 이유 나와요.
왜 불참하는지에 대해 의사를 묻는 칸에 참석자들이 쓴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 첫 번째로 보이는 이유.
[두 번은 못해먹겠다.]
강당에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한편, 우리도 웃음을 터뜨렸다.
* * *
「선우주의 휴식‘일’기」 中
떠들썩하게 웃는 사람들 사이로 깔리는 사극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
[그렇다.]
[때는 뉴블랙 4년.]
[모두가 만족했던 전설의 송캠프는 1회로 막을 내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내레이션을 끝으로 <선우주의 휴식‘일’기> 로고가 나오면서 엔딩 크레딧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