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1)화 (67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1화

“9월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수석 디자이너님께서 별도로 연락을 취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서로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석환 형이 명품 브랜드의 직원을 배웅해 주러 나가자마자, 회의실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우하하하하! 으하하하!”

“어휴. 웃는 거 꼴 보기 싫어.”

“하하하하!”

“진짜 극혐이다…….”

막내 둘이 소곤거리며 흉을 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눈앞에 황금이 둥둥 떠다니는 상황에서 욕 몇 마디 듣는다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세상에…….”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보내 준 옷들이 잔뜩 걸려 있는 행거.

행거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가 냄새도 한 번 스윽 맡고, 옷걸이를 촙촙 넘겨 가며 옷들을 확인했다.

“진짜 이분 나랑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봐. 어쩜 이렇게 내 취향만 골라서 옷을 보내 주셨지?”

“…….”

“안 되겠다. 하나 입어 봐야겠어.”

옷걸이를 집는 내 손에 다른 손이 텁 얹혀졌다.

“…….”

“비주야?”

“안 돼요…….”

비주가 작은 몸으로 행거 위를 덮으며 애처롭게 외쳤다.

“이걸 입도록 내버려 둘 수 없어요…! 형 옷장 정리하느라고 그동안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머지도 쪼르르 내 앞을 막아섰다.

나는 이 결혼 반댈세! 하는 포즈로 막아서는 4인조.

정말이지 이것만은 안 된다고 말하는 듯,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누가 보면 내가 나쁜 짓 하는 사람인 줄.

“아니, 여러분.”

“듣지 마요. 저 말 들으면 우리 분명히 져요.”

“저리 가라! 뱀 혓바닥!”

“뱀이다! 뱀!”

선악과 한 입 드셔보실? 하는 뱀을 경계하는 듯한 아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귀를 열고 형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막아요!”

“사랑하는 동생들아. 저 옷이 너희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어. 하지만 엄연히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님이 보내 주신 선물 아니겠어?”

“……그, 그렇죠?”

“그러면 저쪽에서도 잘 입었다거나 하는 인사를 기대할 텐데. 옷을 만들어 준 디자이너에 대한 가장 좋은 감사 인사가 뭘까?”

무의식적으로 귀를 쫑긋하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바로 이분이 보내 주신 옷을 입고 SNS에 착장샷을 올리는 거야. 당신이 보내 준 옷을 입은 내 모습을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정말 고맙다… 그런 인사를 보내는 거지.”

“일리… 있네요.”

“그럼 뭘 해야겠어?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겠지?”

“…….”

눈을 깜빡이던 동생들이 뭔가 아리달쏭한 얼굴로 비켜섰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근데 그거 진짜 입을 거예요?”

당연하지.

뒤에서 웅성거리는 대화를 흘려 넘기면서, 지미 로빈스 님이 보내 주신 옷들을 살폈다.

여름 옷 중에서 적절한 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마치 뽀얀 아우라에 싸인 것처럼 나를 유혹하고 있는 옷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거다. 이 옷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저를 선택해 주세요, 주인님…!”

중현이가 내레이션을 깔아주는 가운데, 붉은 튤립이 아름다운 플라워 패턴으로 새겨진 티셔츠를 골랐다.

어디선가 환하게 내리쬐는 한 줄기 서광.

“불 하나 더 켰어요, 형들.”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리베라 소년 합창단의 상투스.

“후… 진짜, 이거라도 들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겠어요.”

마치 온 우주에 이 티셔츠와 나만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서로를 붙잡고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미 로빈스 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이다.

-자네… 나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가? 나의 마음이 자네와 공명하는 것이 느껴지는가?

-네. 느껴집니다.

옷을 품에 안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주접 좀 그만 떨고 그냥 입어요.”

“예…….”

기존에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렁 벗어서 갈아입자 동생들이 ‘으!’ 하면서 눈을 돌렸다.

수플레들은 내가 무대 하다가 옷이 휘날리면서 복근이 슬쩍 드러나고 그러면 좋아하던데.

“갈아입었으니까 고개 다시 돌려도 돼.”

“후…….”

졸개들이 다시금 삐걱 하면서 고개를 돌릴 때.

핸드폰을 들어서 셀카 모드로 내 모습을 만족스럽게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

“…….”

조용해진 동생들의 모습에 내가 물었다.

“왜들 그래?”

“……형.”

“응?”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비주가 핸드폰을 들었다.

“잘 어울려요….”

“그래?”

난생처음 들어 보는 소리에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비주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5분 전까지만 해도 절망스러운 기분을 느꼈던 4인방이었다.

‘꽃무늬 겨우 정리했는데… 진짜 초코 우유 먹여가면서 겨우 설득한 건데.’

‘음. 그냥 우주 형을 꽃밭에 던져 버릴까.’

‘아오, 저 프랑스 분은 눈치가 없나?’

‘당분간 셀카 같이 찍자고 하면 피해야지…….’

선우주의 패션에서 꽃을 빼느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솔직히 옷을 못 입는 건 하나도 상관없었다. 연예인이라고 꼭 옷을 잘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옷을 못 입는 사람이 철학까지 확고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의에 달린 꽃이 빨간색이니까 바지도 빨간색 아니야?

-정장에 등산화가 어때서? 실용적이잖아? 흙 묻어 있는 것도 되게 좀 성실해 보이고 그러지 않아?

-집에서 입는 건데 김장 조끼가 뭐 어때서? 그렇게 별로야?

……그 때문에 얼마나 자주 갈등을 빚었던가.

그랬기에 공식 스케줄에서 스타일리스트들이 입혀 주는 옷을 볼 때마다 속이 시원해졌던 졸개들이었다.

문제는 사복.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옷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마저도 괜찮아진 편이었다. 그들이 사 준 옷으로 옷장을 가득 채웠으니까.

-이 형은 상의, 하의 조합을 이상하게 하니까 아예 저희가 상의, 하의 채로 세트로 맞춰놔야 해요.

그래서 옷걸이 하나에 상의, 하의, 액세서리까지 모두 달려 있도록 세팅을 해 버린 멤버들이었다.

기존에 있던 꽃무늬 옷들은 작년에 시트콤 촬영에 들어가면서 처리해 버렸고.

물론 당사자의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년간의 생활을 거쳐 졸개들은 리더를 조종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수플레들이 그 옷 극혐이래요.

-그래…?

팬들이 별로라고 했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버리는 맏형.

그걸 이용해 지금까지 잘 처리해 왔건만…….

웬 프랑스 디자이너가 등장하면서 망해 버렸다.

맏형의 런웨이 데뷔에 대한 기쁨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새로운 근심거리가 그들의 머리에 바글바글거렸다. 수백 명의 선우주가 꽃무늬 옷을 들고 깔깔대며 머릿속을 휘저어 대는 느낌.

“아, 머리야.”

타이레놀이라도 한 알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김중현의 도라에몽 가방에서 약통을 주섬주섬 찾던 리혁이 멈칫했다.

“음?”

다른 멤버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리고.

“어?”

고개를 돌린 리혁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튤립이 새겨진 티셔츠.

인조 보석이 중간중간 박혀 있어서 반짝반짝하는… 어찌 보면 독특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리혁이 눈을 비볐다.

아니.

왜…….

“뭐야. 왜 잘 어울리는 건데요?”

“나 잘 어울려?”

당사자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셀카 모드로 자기 모습을 확인한 리더가 되물었다.

“그냥 평소 다른 옷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이게 더 어울리고 그런가?”

“……어울리는데요.”

인정하기 싫지만 어울렸다.

자칫하면 과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패션인데도 선우주에게는 그림같이 어울렸다.

마치 유명 모델이 입고 다니는 사복처럼 약간 독특하지만 트렌디한 패션 같다.

운동을 해서 널찍한 어깨.

각진 어깨 아래로 이어지는 티셔츠 라인.

수려한 외모에 어울리는 화려한 디자인을 보고 있자니… 진짜 모델 같다.

“와…….”

서리혁이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김비주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대박이다. 꽃무늬인데 잘 어울려!’

막내도 같이 끼어들었다.

“저 이거 찍어서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돼여? 대박이다. 이거 진짜… 와, 형. 저도 저 옷 언젠가 한 번 빌려도 돼요?”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 대는 두 동생의 모습에 리더가 우훗훗 경박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중현이 필름 카메라를 들어 옷의 꽃을 풍경화 연습으로 찍을 때.

‘우리 형, 대박이다.’

흐린 눈에서 벗어나 레인알콜의 자아가 깨어난 비주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어쩜 이렇게 저런 옷도 잘 어울리지? 다른 사람들은 소화하지 못할 패션인데. 저대로 런웨이 올라가도 되겠다.’

백여 장 정도 사진을 찍어댄 비주가 외쳤다.

“형! 다른 옷도 얼른 입어 봐요.”

“그럴까?”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든다는 말이 옳았다.

고라니처럼 총총 뛰어간 리더가 옷을 하나씩 갈아입으면서 멤버들은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대박!”

“오? 그것도 괜찮은데요?”

“형! 저 그 옷도 가을에 빌려도 돼요? 완전 인싸템인데.”

칭찬을 받은 강아지처럼 방방 뛰던 리더가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즐거워했다.

‘고향에 있는 우리 집 백구 같다.’

중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저 한 번 입어 봐도 돼요?”

“음…….”

“그냥 한 번 걸쳐 보기만 할게요. 궁금한 게 있어서.”

혹시라도 옷을 터뜨리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는지 유심히 바라보는 리더의 앞에서 중현이 옷을 입었다.

곧바로 야유가 쏟아졌다.

“어우, 촌시러. 김중현 극혐.”

“형! 벗어요!”

중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벗었다.

사실 궁금증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입으면 별로인 옷은 맞구나.”

처음에는 옷이 진짜 좋은 거여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그냥 리더가 얼굴빨로 소화하는 옷이었다.

꽃무늬가 아니라 다른 패턴이 그려진 일반 옷들도 그랬다.

그나마 우주와 체격이 비슷한 지호 정도만 어울릴 뿐.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옷이라는 걸 깨달은 멤버들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아니, 이런 옷도 패셔너블하게 소화를 하는데…….’

패션 센스가 얼마나 괴악하면 본인의 얼굴을 이겨 내는 옷을 고를 수 있단 말인가.

“음? 왜들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동안 리더가 얼마나 이상한 옷을 골랐던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 4인조였다.

*   *   *

같은 시각.

평소처럼 덕질의 세계를 누비고 있는 수플레들.

“아. 할 거 없다…….”

미튜브에서 평창 댄스 영상을 슥 둘러본 수플레들이 몽실몽실 허공을 부유하듯 인터넷을 바라보았다.

“할 거 진짜 없네.”

뉴블랙이 이번 해외 투어를 다녀오면서 하나씩 풀어 대는 비하인드 컨텐츠들을 구경하고.

공식 SNS에 올려 준 투어 사진을 구경하고.

심심하면 TV를 틀어서 뉴블랙 관련 예능을 바라보던 수플레들이 뉴블랙 TV의 수플레종을 틀어 놓고 있을 때였다.

[대앵-]

[수플레… 수플레…….]

명상용으로 사용되는 수플레종 BGM이었다.

중현의 미니미가 빵 모양의 종을 칠 때마다 멤버들의 화음 섞인 목소리가 [수플레…] 하고 있는 영상.

1시간 반복 영상을 틀어 놓던 수플레들에게 새로운 떡밥이 떨어졌다.

[지금 공식 SNS에 올라온 선우주 꽃무늬 패션 사진 (충격주의)]

수플레들이 이이잉 했다.

‘안 돼…! 또 꽃무늬야!’

요즘 들어 꽃무늬 옷이 안 보여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가.

그런데 우주가 다시 꽃무늬 옷에 맛 들린 모양이었다.

‘소속사 일 안 해?’

규호에게 자라나라 머리머리를 외쳐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꾸욱 클릭했다.

그런데.

“……어라?”

글 내용에 첨부된 SNS 캡처가 뭔가 이상하다.

@thenewblack.official

(플라워 패턴 티셔츠를 그림 같이 입은 선우주의 사진.jpg)

그거 아시나요? 튤립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오늘도 사랑스러운 하루 보내요. 우리.

♡ 좋아요 873,987개

사진을 바라보던 수플레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음?’

어째서?

어째서 꽃무늬 옷을 입었는데 이상하지 않다는 말인가?

-잠시만.. 나 지금 규호 욕하려고 들어왔는데 왜 정상인가요

-선우주 꽃무늬 압수.. 라고 쓰려고 했다가 지금 당황하는 중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아닌데

-ㅇㅁㅇ

-얼굴밖에 안 보여서 당황했당.. 보통 우주 옷 입은 거 보면 얼굴이 아니라 옷부터 시선 먼저 갔거든

-진심 예쁜데??

-저거 근데 아무나 소화못하는 옷인데 저걸 소화하는 우주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여태까지는 뭐였나 싶음

-드디어 패완얼

-우리 애가 이래 봬도 식탁보만 둘러도 패션이 되는 애라구요ㅠㅠㅠㅠ

다른 아이돌 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는 동안 수플레들도 당황해서 거대하게 웅성거리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적응기가 필요했던 거 아닐까?]

사실 우주의 패션센스는 훌륭했던 거임.

지난 4년 동안 우주의 패션센스가 진화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 아닐까?

그런 이론에 수플레들이 ‘맞다, 맞아’ 하면서 동의하고 있을 때였다.

얼마 후에 Y앱 라이브 방송이 올라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방금 y앱 라방 캡처]

(배바지를 만들어서 입은 우주의 등짝을 리혁이 찰싹찰싹 때려서 혼내는 짤.gif)

우주가 티셔츠 넣어서 배 바지 만듦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누가 안선생님짤좀 써 주세요

-그럼 그러ㅎ지

-그냥 옷이 좋았던 걸루..ㅠㅠㅋㅋㅋ

-뉴블랙 다들 옷 잘입기로 유명한데ㅋㅋㅋㅋㅋ 어째서

-(‘인간이 다섯이 모이면 하나는 쓰레기가 있다’ 하는 대사를 날리는 만화 캐릭터.jpg)

-다들 옷 못입는 우주 싫어하는구나??ㅋㅋ 난 좋아하니까 내 남편임

-뭐래ㅗㅗㅗㅗㅗㅗㅗ

-근데 결혼하면 시누이 네 명 따라오고 시댁 식구가 전국민임

우주의 진일보한 줄… 알았던 패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수플레들은 호기심을 느꼈다.

‘근데 무슨 옷이기에 검색이 안 되지?’

보통 뉴블랙이 어떤 옷을 입었다 하면 바로 검색이 되는데,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은 도통 검색이 되지 않았다.

뭔가 명품 같기는 한데… 검색해서 나오는 것은 없고.

‘뭘까?’

무언가 있다는 예감에 눈을 빛내는 팬들이었다.

*   *   *

라디오 광고 중에 사이버 대학을 다니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광고가 있다.

그렇다.

나는 자신감을 얻어 버린 것이다.

“흐하하핫!”

튤립에 반짝이 보석들이 반짝반짝 달린 티셔츠를 입고 나니 자신감이 뿜뿜하는 느낌이다.

수치로 표시한다면 최고치를 뚫었다.

그걸 입은 채로 회사 곳곳을 누볐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옷 자랑하러 왔습니다~!”

홍보팀에 들러서 나의 아름다운 옷을 자랑하니 다들 놀랬다.

“와. SNS 사진 뭘로 보정했나 했는데… 진짜였구나?”

“예쁘다.”

“그런 꽃무늬는 환영이야.”

몹시 행복한 하루였다.

그간 꽃무늬 옷만 입으면 회사 사람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쯧쯧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건 자랑스러운 꽃무늬였다.

파리 방향을 향해 절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A&R팀과 프로듀싱팀 등을 차례대로 방문했다.

“근데 왜 불을 끄고 계셨어요?”

“전기 아끼려고~”

“누가 보면 제 발소리를 듣고…….”

“와아아! 우주 옷 근사하다!”

프로듀서들과 A&R팀 직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막내가 물었다.

“대표님한테도 자랑하러 갈까요?”

“아냐. 거기까지는 좀…….”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바짝 긴장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저 옷 어때요?’ 하며 묻고 다닐 때였다.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내 옷자락을 리혁이와 지호가 쌍으로 붙잡았다.

“저, 저기!”

“응?”

“저기 스칼렛 누나들이 와요!”

“아!”

스칼렛도 있었구나!

맞은편에서 멀찍이 보이는 4인조 걸그룹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옷을 자랑하려고 할 때였다.

“근데 왜 저렇게 험상궂은…….”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제갈량이 조조를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스스스슷!

왜 이렇게 나윤이의 얼굴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걸까.

큰 바위 얼굴처럼 원근법을 무시하고 거리를 좁히는 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보던 그 순간.

“선우주우우!”

“오늘만을 기다렸다. 이놈의 자슥!”

아라의 외침에 무언가 퍼뜩 스쳤다.

지금 새로운 옷에 취해 까먹고 있던 사실 하나.

-이번 방탈출 특집은 굉장히 무섭게 갈 겁니다. 혹시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가요?

-아주 리액션이 뛰어난 4인조가 있습니다.

탈출예능 <지금부터 우리는>의 역대급 공포 특집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된 우리 선배 걸그룹.

“중현아…!”

“네.”

“나 도망칠 시간 벌어 줘!”

“저 오래는 못 버텨요…!”

스칼렛의 파도에 휩쓸려 한 줄기 빛처럼 스러지는 졸개들의 모습을 쓰라리게 바라보고는 도망쳤다.

*   *   *

5분 후.

“후.”

손을 탁탁 털던 4인조 걸그룹이 4등분으로 나눠진 후배들을 바라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막내 데이지가 트윈테일 머리를 휠윈드처럼 휘두르며 물었다.

“이 오빠 어디 갔지?”

“얘들아. 우주는 어디로 도망쳤니?”

메인 보컬 봄의 나긋한 질문에 리혁이 입가를 훔치며 웃었다.

“흥. 절대 못 찾을걸요? 그 사람이 경박스러워 보여도 은신술 하나는 최고라고요. 보호색까지 써서 숨었을걸요.”

“젠장.”

스칼렛 멤버들이 선우주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뉴블랙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노력을 비웃을 때.

“음?”

무심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스칼렛의 메인 댄서, 리나가 길쭉한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저기 화초 뒤에 봐봐.”

“응?”

“화초 뒤에 뭔가가 반짝거려. 옷이 빛나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언니? 옷이 왜 반짝…….”

반짝반짝.

“…….”

“…….”

화초 뒤에서 반짝이고 있는 선우주와 스칼렛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