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2)화 (67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2화

60장. 우주선이 아닙니다

……망했다.

완벽하게 은신했다고 생각했는데, 옷이 반짝거리는 재질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 바보.”

리혁이가 한숨을 쉬면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

“…….”

그동안에도 스칼렛과 나는 화초를 사이에 두고 묘한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황야의 무법자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두 카우보이가 권총집에 손을 올리고 있는데, 누가 먼저 총을 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

살금살금.

나를 향해 살금살금 걸어오는 4인조의 모습에 나도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쳤다.

누구 한 명이라도 달리는 순간 지옥의 레이스가 펼쳐지는 상황.

“우주야.”

스칼렛의 맏언니인 아라가 평온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네, 누나.”

“우리 어렵게 가지 말고 쉽게쉽게 가자. 누나랑 이야기 좀 해.”

“이야기는 여기서도 나눌 수 있잖아요. 누나.”

“그래도 조금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래.”

그렇군요.

그 마음을 잘 알겠는데.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왜 나윤이는 목을 뚜둑 꺾고 있나요.”

“나윤이가 목이 좀 잘 결려~”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대 트레이닝이야. 오빠. 가수잖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바라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칠 때였다.

턱.

발뒤꿈치가 벽에 걸렸다.

이제 막다른 길.

닫힌 엘리베이터 문 앞을 두고 포획망 안에 들어온 나와 스칼렛이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허리를 슬쩍 움직여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할 무렵.

“지금이다앗!”

4인조가 달려들려고 하던 그 순간.

띵!

문이 열렸다.

“……음?”

그리고 뒤통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웃음소리.

“…….”

우리 대표님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스칼렛이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규호 대표님이 눈을 깜빡였다.

이제 대표님이 ‘무슨 일이니?’ 하고 물어보고, 내가 ‘저 간악한 무리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외쳐야 할 타이밍.

분명 그랬는데…….

“어흠흠…….”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대표님의 동공이 흐려졌다.

멍 때리고 있는 척.

그 상태로 멍하니 ‘현식이… 나쁜 놈이야…’ 하면서 중얼중얼 하는 대표님의 얼굴이 띵! 하고는 다시 닫히는 문 사이로 사라졌다.

“대표님?”

“…….”

“대표님!”

“…….”

스칼렛의 메인 보컬 봄이 켈켈켈 웃었다.

“대표님은 이제 없어.”

“…….”

“지금이다! 저…….”

“잠깐!”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지막 말은 들어 주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는 걸그룹에게 내가 말했다.

“아까부터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이야기하지 못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 오빠?”

“혹시 우주선의 작곡 명단에 웨이팅 올리지 않으셨나요?”

“……!”

무언가 깨달았는지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진 걸그룹을 향해 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저 우주선이 여러분을 위한 곡을 만들었어요!”

*   *   *

5분 후.

나는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흐히히히.”

“아이고, 우리 우주. 그런 거였으면 진즉에 누나한테 이야기하지 그랬어? 하마터면 소중한 동생을 다치게 할 뻔했네.”

“오빠, 시원한 음료 마셔.”

나윤이가 건네준 종이컵을 받아 홀짝이자, 새콤하고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음? 이건 뭐야?”

“이거 냉면 육수.”

뒤에 쪼르르 앉아 있던 졸개들 사이에서 우리 메인 보컬이 물었다.

“……냉면 육수가 냉장고에서 왜 나와요. 누나?”

“아라 언니 부모님이 냉면집 하시잖아.”

호로록 들이켜던 우리 막내가 물었다.

“이거 맛난당. 좀 더 먹어도 돼요?”

“응응.”

냉면 육수 무역이 이뤄지는 동안 주변을 살폈다.

온통 핑크핑크한 스칼렛의 작업실.

우리 작업실과 바로 맞닿아 있지만 막상 올 일이 별로 없는 곳이다. 대체로 같은 회사의 아이돌은 활동기가 안 겹치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예전이랑 똑같네.”

14년도에 나윤이 따라서 잠시 들어왔을 때와 비슷했다. 핑크핑크한 인테리어에 얼룩말 쿠션.

참으로 독특한 디자인 감각이었다.

“근데 그 반짝이 옷은 뭐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던 봄이 물었다.

“꽃무늬인데 되게 예쁘네.”

“아, 이거 이번에 프랑스 디자이너가 보내 준 옷이에요.”

“오. 어디?”

“르블랑이요…!”

나 대신 비주가 대답했다.

우리 동생들이 ‘이 형 런웨이 선다’며 신명나게 자랑을 한 후.

반격이 시작됐다.

“우리 리나 언니도 베르띠에 글로벌 앰버서더인데. 디자이너 분이 언니 보고 막 자기 뮤즈라고 그랬어.”

“그래서 걸그룹 평판 1위 했어. 우리 리나.”

“우리도 명품 브랜드 하나씩 다 모델로 걸치고 있지~”

이게 바로 집단적 독백이 아닐까 싶다.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각자 자기 식구를 자랑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냉면 육수를 홀짝였다.

작업실 벽면에 붙어 있는 다양한 추억 사진들이 스칼렛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었다.

데뷔하고 첫 1위를 하고. 큰 상들도 타고.

막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누나들은 이제 몇 년차예요?”

“너네보다 2년 빨리 했으니까 이제 6년차지.”

“와… 시간 개빨라.”

스칼렛.

우리보다 2년 앞서 2012년에 데뷔한 걸그룹.

데뷔 해부터 좋은 음원 성적, 비주얼, 적절한 마케팅이 삼위일체로 조화되면서 ‘중소의 기적’으로 불린 우리 선배들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뉴블랙이 탄생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었다.

스칼렛이 번 돈으로 우리 데뷔 앨범을 만든 거니까.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서 너희 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후후후후.”

“밥값으로 억을 써도 이제 뭐라고 안 하더라구.”

“고맙다. 우주선과 졸개들아.”

……켈켈켈 웃는 자칭 여신들을 보며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스칼렛은 12년도 이래로 지금까지 쭈욱 잘나가고 있는 걸그룹이다.

특이사항이라면 남녀 팬 성비에서 여성 팬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것 정도?

보이그룹인 우리보다 남성팬 비율이 적다. 스칼렛 팬 미팅에 남팬이 꽤 많이 보이는 날이면 팬들이 웅성웅성한다던데.

걸그룹 판에서 1위는 아니지만, 꾸준하고 좋은 성적과 코어 팬덤의 힘으로 매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걸그룹이다.

음원 강자라 대중성도 있고.

뭐. 여기까지가 내가 이것저것 주변에 찾아보면서 종합한 내용이고.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들어 봐야겠지.

“지금 서바이벌 하고 있지 않아요? TBC에서 하는 걸그룹 서바이벌.”

“맞아.”

내 물음에 아라가 답했다.

“지금도 한창 촬영하는 중이야. 오늘도 그것 때문에 연습하려고 회사에 왔고.”

“할 만 해요?”

작년도에 KM 엔터의 서바이벌 <온 더 스테이지>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지켜보고 왔기에 괜스레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아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서바이벌이 다 그렇지. 그래도 스튜디오 들어가면 분위기 되게 훈훈해. 다 같이 소고기도 먹고.”

“그래요?”

스칼렛이 들어갔다고 했던 서바이벌 <더 스피릿 : 별들의 전쟁>은 지금 한창 방영되는 중이었다.

리혁이가 물었다.

“그거 TV 클립에서는 엄청 살벌하게 나오던데요.”

“편집을 그렇게 해서 그래. 실제로는 우리끼리 분위기 나쁘지 않고, 다들 만나면 웃는데 방송만 나오면 그러더라고.”

다른 출연자들이랑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는데, 방송만 나가면 악마의 편집으로 가득하다는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팬들 싸움이 장난 아니라는 게 단점이라는 말을 들었다.

봄이 말했다.

“솔직히 이 정도는 감수하기로 다들 이야기를 나눴어서… 서바이벌은 매워야 잘 되거든.”

“그건 그렇죠.”

“그래도 훈훈할 때는 훈훈하게 잘 편집해 주더라. 그 비주네 프로그램 맡았던 피디님도 있고.”

“아! 그분 잘 계세요?”

작년에 댄스 경연 예능 를 맡았던 PD님과 다른 매운맛 전문 PD님이 공동 연출이라나.

단짠단짠 연출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기분 좋게 웃었다.

무대 영상만 확인하면서 편곡을 어떻게 하고, 무대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 정도만 참고했던 터라 세부 내용은 몰랐는데.

당사자들이 만족스러워하니 다행이었다.

“라인업이 걸스온탑이랑 가을소녀, NYX, 하이컬러, 라비앙로즈 이렇게죠?”

“응.”

아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처지끼리 나왔지. 계속해서 더 어린 애들이 나오는데, 우리는 이제 연차가 꽉 차서 서서히 내려가는 상황들이니까.”

우리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보이그룹이든 걸그룹이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5년차를 전후로 해서 서서히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살짝 분위기가 침체될 것을 우려했는지 아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서바이벌에 나온 거지. 이걸로 반등을 해서 우리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거야.”

“전성기!”

“…전성기 씨가 누구야?”

딴청을 피우고 있던 중현이가 소곤거리는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쯤에서 조용히 홀로 따스한 차를 홀짝이고 있던 리나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근데 마침 잘 됐다.”

“응?”

“우리 마지막 생방송 경연에 신곡으로 공연하거든.”

워낙에 조용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조곤조곤한 말에 시선이 집중된다.

“아까 말해 준 그 노래를 그때 공연에 써 보면 어떨까 싶어.”

“그거 괜찮네.”

봄이 수긍했다.

“그때 쓰면 딱이겠다.”

“아니, 근데 일단 곡부터 들어 보고 정해야죠.”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봄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뒤에 동생들 반응 보면 그거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

“네?”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신곡 이야기가 나온 순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으쓱하고 있는 졸개들이었다.

막내가 으스댔다.

“대박이죠.”

“우리 형 천재만재니까.”

“오늘 야식은 누나들이 사는 거예요.”

‘내가 우주선을 키웠다!’ 하며 자랑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픽 웃고는 품에서 USB를 꺼냈다.

“일단 한번 들어 보세요.”

*   *   *

원래는 만나는 순간, 부숴 버리겠다고 결심했던 4인조였다.

불과 한 달 전.

-얘들아! 주선우가 우리 예능 픽업해 줬어!

-오! 어디어디?

-<지금부터 우리는>이래! 탈출 예능!

-허어어어!

주선우의 사진을 띄우고 감사 기도를 올렸던 스칼렛 멤버들.

하지만 촬영장에 간 순간, 그 고마움은 박살이 났다.

-우주 씨한테 못 들으셨어요? 오늘 쪼금 무서운 특집인데…….

-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저택.

그곳에서 2미터짜리 사람 머리, 일명 ‘머리 귀신’에게 쫓기는 등의 수난을 겪었던 스칼렛이었다.

-언니! 저기 우물에 예쁜 언니가 있어! 존예야!

-예뻐? 어디?

-으아아아! 저기 거울 안에 사람 들어가 있어!

-뿌셔! 거울 뿌셔!

겁에 질린 그들은 으앙! 하며 주먹을 내질러서 쿠쾅쾅광 세트장을 황폐화시키며 돌아다녔다.

어찌나 무서웠는지 촬영이 끝나고 덜덜 떨고 있는 엑스트라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도 화들짝 놀랐다.

왜 그쪽도 같이 놀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게 다 선우주 때문이다. 선우주 가만 안 둬.’

그런 결심으로 여태까지 만날 날만 고대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선우주가 ‘짜잔! 저는 우주선입니다’ 라고 하는 순간 마음이 갈대처럼 바뀌었다.

‘눈앞에 있는 건 선우주가 아니라 우주선이다. 우주선…….’

스칼렛 멤버들이 미소를 지었다.

“자, 재생할게요.”

“네~!”

즐겁게 웃던 스칼렛 멤버들이 장난기를 거두고 진지한 눈으로 노래를 경청했다.

묵직한 드럼비트에 턱 끝을 까딱까딱하는 동안 뭄바톤 장르 특유의 훅 치고 들어오는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오.”

초장부터 확 들어오는 노래에 그녀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곧이어 가이드 보컬을 맡은 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이 노랠 듣고 있다면

노여움을 풀어 주세요 (풀어 줘~)

가성을 넘나드는 끝내주는 목소리와 그렇지 못한 내용의 가사에 스칼렛 멤버들이 집중했다.

그래도 시청률은 잘 나오셨죠?

그거면 된 거 아닐까요? (아닐까~)

왠지 모르게 추임새처럼 들어가 있는 리혁의 목소리가 얄밉다.

아직 방영이 아니시라고요

가사가 감상을 방해하긴 했지만 스칼렛 멤버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아니. 만족 수준이 아니었다.

‘언니, 이거 대박인데?’

‘진짜 좋아.’

모든 걸 불태우는 듯 화려한 춤을 추는 자신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왜 우주가 자신들을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한 것인지 알 것 같다.

진홍색(Scarlet).

소리에 색깔이 있다면 이 곡은 정열과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빛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한테 필요한 곡이야.’

어느덧 6년차에 접어든 걸그룹으로서 스칼렛 멤버들은 매일 밤 깊은 고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제 우리 어떡하지?

팬들이 빠져나가거나 성적이 안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정체기.

이번 활동이 저번 활동이랑 비슷하고, 저번 활동이 저저번 활동이랑 엇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저번 앨범보다 몇 배는 더 노력했는데도 성과가 비슷한 상황.

왜 그런 것인지 탐구를 거듭하던 스칼렛은 소속사 후배 그룹에게서 힌트를 찾았다.

-얘네가 계속 성장하는 이유는 볼거리가 다양해서 그런 거 아닐까? 한국풍을 했다가 다음번에는 레트로풍의 노래를 하잖아.

매번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이며 성장하는 뉴블랙.

그리고 그 성장의 원인은 바로 새로운 노래였다.

앨범마다 장르 편차가 큰데도 모든 곡들이 ‘뉴블랙의 곡이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위화감이 없고 자연스럽다.

-우리도 저걸 따라 해 볼까?

-근데 저거 아무나 못하잖아. 저건 우주선이니까.

-팬분들 생각하면 좀 그렇지. 팬분들은 우리가 지금의 우리라서 좋아하는 건데.

새로운 음악을 하면서도 기존 컬러를 유지한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청순 컨셉을 밀다가 갑자기 센 컨셉을 하면 망하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겠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기존의 그들을 좋아했던 팬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

지금 우리 팬들은 우리의 지금 음악이 좋은 건데, 함부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도 팬들한테 괜찮을까?

결국 무수한 토의의 결과.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조규환 이사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새로운 작곡가를 구해 보자, 얘들아. 내가 둘리한테 한 번 말해 볼게.’

‘둘리요? 피디님?’

‘아니아니…! 우주 말이야. 우주.’

조 이사님이 선우주에게 그 말을 전했던 것이 1월인가 그랬다.

벌써 6개월 정도 흘러서 ‘엄청 바쁜가 보네’ 하고 다른 작곡가 명단을 물색하고 있을 무렵.

마침내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시간을 낸 작곡가가 그들에게 왔다.

‘우주선…….’

부드럽게 쓸어 넘긴 머리카락 아래로 차분하게 빛나는 눈동자.

코에서 고운 턱선으로 이어지는 선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다.

현재 국내 최고의 천재 작곡가.

평상시 경박하게 웃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녀서 가진 미모를 다 깎아먹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작은 머리 안에 들어 있는 노래들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국내 가요계의 트렌드가 바뀌니까.

그런 면에서…….

‘……이거 나오면 대박이다.’

지금 우주가 들려주고 있는 노래도 걸그룹 판에서 판도를 바꿀 만한 노래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거 백퍼 터진다.’

기존에 없었던 노래인데 듣기 좋다.

독특한 사운드가 낯설기는 하지만, 이걸 파이널 경연에서 공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미안해~

긍게 다 내 잘못이여~

……작사는 꼭 전문가에게 부탁해야겠지만 말이다.

“음. 다 끝났네.”

노트북 자판을 톡 두드리던 미남이 고개를 돌렸다.

본인이 만든 노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생글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래서, 어땠어요?”

“어…….”

이걸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적당히 좋았다면 ‘우와아아!’ 하고 일어나서 헹가래 좀 태워 주고 던져 버렸을 텐데.

너무 좋으니 뭐라고 할 말이 머릿속에서 요동친다.

멤버들이 어… 하고 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리나가 차분하게 답했다.

“고기.”

“응?”

“앞으로 한 달 동안 우리가 고기 먹을 돈 입금해 줄게.”

“……!”

리나의 말에 동갑내기 후배와 졸개들의 눈이 글썽해졌다.

최상의 감사 인사.

서로 ‘알지?’, ‘알죠~’ 하고 눈인사를 주고받던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깔깔 웃던 우주가 졸개를 불렀다.

“서 비서.”

“뭐요.”

“계약서 준비하세요.”

“녹음은 했는데, 뭐 알겠어요.”

구두 계약은 믿을 수 없다며 졸개들이 계약서를 준비하고 열심히 곰돌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모니터를 바라보던 나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빠.”

“응?”

“근데 왜 작곡가 이름이 우주선이 아니고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어?”

“스칼렛에게 포커스가 가야 하는 노래인데, 내가 그 포커스를 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깊은 뜻에 모두가 감동하는 동안, 나윤은 여전히 눈을 깜빡였다.

“이거 근데 예명 어디서 들어 봤는데.”

“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의 이름에서 따 왔어. 우리 김덕순 여사.”

“아. 그분……!”

뉴불백의 위대한 창시자를 고기 덕후가 어찌 모르랴.

찬사를 보내는 스칼렛 멤버들에게 뉴블랙의 리더가 씩 웃었다.

“네, 그런 이유로 이번 곡에서 저는 우주선이 아닌 다른 이름을 쓸 예정입니다.”

“오오오오.”

“김덕순에서 선 하나와 점 하나를 더 추가한…!”

막내가 센스 있게 크게 확대하는 폰트.

세 글자가 두둥! 떠올랐다.

“바로 김덕춘입니다…!”

최애의 이름을 따 왔다고 자랑하는 누군가의 얼굴이 보석 옷과 함께 반짝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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