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3)화 (67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3화

솔직히 말해서 나도 가명을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우주선’이라는 작곡가 명은 내가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예명이라서 어지간하면 이걸 쓰고 싶은데.

스칼렛 노래에 우주선 예명을 쓰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여러분! 저 곡! 우주선이 만들었대요~!

-우주선?

-우주선이 만들었어?

사람들이 스칼렛을 보고 우와 하면서 박수 쳐 주고 그래야 하는데, 내 곡이라는 게 알려지는 순간 관심이 내 쪽으로 쏠릴 게 분명하지 않은가.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진짜로 그런 그림이 뻔히 보인다.

스칼렛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뭐야, 좋은 곡 받아서 그런 거네~’ 하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고.

“그런고로 불가피하게 김덕춘이라는 예명을 쓰게 되었다, 이 말이죠.”

리혁이가 손을 들었다.

“네, 리혁 씨.”

“아무리 봐도 불가피한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요? 어쩔 수 없이 쓴다면서 왜 이렇게 히죽히죽 웃고 있는 건가요.”

“웃고 있다고요? 제가요?”

최선을 다해 정색할 때, 중현이가 핸드폰을 셀카 모드로 들어서 내 얼굴을 비춰 주었다.

“…….”

왜 이렇게 내 뺨이 올라가 있지.

헛기침을 하는 내 모습에 동생들과 스칼렛이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아무튼 불가피하다 이 말이죠.”

“저 질문 있습니당!”

데이지가 손을 들었다.

“그래. 나윤아.”

“초상권자의 허락은 받은 건가요!”

“네, 흔쾌히 허락 받았습니다.”

저작권료로 효도해 준다고 하니 수줍게 OK를 날린 우리 김덕순 여사였다. 물론 그냥은 아니고.

조금… 아주 약간의 욕설이 담긴 정도.

허락을 받았다는 말에 우리 졸개들이 아쉬움을 삼켰다.

“아까워라. 할머님한테 일러바칠 수 있었는데.”

“자, 질문은 여기까지 받겠습니다.”

스칼렛의 신곡을 위해 만든 임시 예명에 대한 소개를 마쳤다.

그러곤 행복한 얼굴로 노래를 반복 재생하고 있는 스칼렛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여러분.”

“네!”

“아직 조규환 이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관계로 자세한 스케줄 등은 나중에 확정하기로 하고요.”

이 자리에서 미리 전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곡에 대한 미팅을 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집중한 표정의 걸그룹 멤버들에게 말했다.

“저에게 신곡을 요청한 이유가 바로 컨셉 변화를 하고 싶어서잖아요? 기존과 다른 스타일의 무대를 하기 위해서요.”

“맞아요.”

“그런 이유로 이번 곡의 작사는 여러분들이 직접 담당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희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새로운 컨셉을 시도하고자 했던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건데, 그걸 진솔하게 가사에 담아 줬으면 좋겠어요.”

가수는 무대로 말하는 법 아니던가.

6년차에 접어들면서 스칼렛도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아마 가수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일 것이다.

-나 이대로 쭉 똑같은 것만 해도 괜찮나? 다른 거 해야 되지 않나?

배우들이 작품을 앞두고 하는 고민과 마찬가지로 가수들도 매 앨범마다 압박을 느낀다.

기존의 팬들이 좋아하는 음악 컬러를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보여 줘야 하는가?

그 고민 사이에서 항상 갈등이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비슷한 스타일만 연기하던 배우가 갑자기 다른 배역을 연기하게 될 경우.

연기 대변신으로 연기의 폭을 넓힐 수도 있지만, 성급한 이미지 변신 시도로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중들도 중요한 리스너지만 결국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리스너는 팬들이잖아요. 여러분이 계속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하고 싶은 말들을 노래에 담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진지한 이야기에 다들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동생들은 왜 같이 끄덕끄덕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라가 차분하게 눈을 빛냈다.

“작사는 알겠어. 그밖에 다른 건?”

“음, 들으면 아시겠지만 이게 아직 좀 비어 있는 곡이거든요. 도화지로 비유하면 배경 색칠 없이 나무 한 그루 덜렁 그려 넣은 건데.”

“……완성본이 아니었어?”

“그럼요. 여기에 넣어야 될 게 얼마나 많은데요.”

뭔가 약간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배경을 칠해야 하는데, 그 배경은 여러분이 원하는 컨셉에 맞춰서 넣어 보려고요. 혹시 염두에 둔 컨셉 있으신가요?”

“음…….”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으로 손가락을 꾸물거리는 선배 가수들.

무르팍에 얹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던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옛날부터 해 보고 싶은 게 하나…….”

“응?”

“아니야.”

사람을 자극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뭔데.”

“에이~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 봐. 이상한 컨셉은 아닐 거 아냐.”

“응.”

뭘 하고 싶기에 저렇게 꾸물꾸물하는 걸까.

자상한 목소리로 달래 주면서 묻자 데이지가 눈을 딱 감고 외쳤다.

“사실 그거 하고 싶어요…!”

“어떤 거?

“청순 컨셉!”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 관리가 안 된 모양이었다.

아라가 날 보며 생긋 웃었다.

“우주 지금 정색한 것 같은데?”

“아유~ 아뇨. 정색은요. 그냥 잠깐 생각에 잠긴 거죠.”

그 동안 데이지가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청순… 꼭 하고 싶어요.”

“나윤이가 말 잘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컨셉, 저 컨셉 다 해 봤는데 청순은 한 번도 안 해 봤거든.”

“맞아. 맞아.”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4인조.

청순 요정이 되고 싶다는 선배들의 수줍은 포부에 내가 숨을 삼켰다.

“저, 일단… 이 뭄바톤 장르에 청순이 가능할 것이냐는 건 넘어가고요.”

“네.”

“여러분에게 청순은 무리예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

데이지가 리나의 얼굴을 꼬옥 붙잡고 들이밀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 우리 언니가 얼마나 청순하게 생겼는데…!”

“우웨울….”

“언니가 맞대!”

그러곤 생머리를 슥 흘려넘기는 식으로 청순함을 어필하는 4인조의 모습에 우리 5인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안 될 건 없는데.

스칼렛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했을 때, 청순을 하고 싶다는 건 우리가 섹시 컨셉을 하고 싶다는 거랑 같았다.

“저, 나윤아.”

“응.”

“일단 청순 컨셉이 왜 어려운지에 대한 논의도 넘기고, 너의 예명에 얽힌 비하인드부터 밝혀보자.”

“내 예명?”

“왜 너의 예명 데이지가 Day-Z니.”

“지구가 좀비로 멸망하는 날, 하는 의미로 Day-Z 했어.”

그런데도 청순이 왜 안 되냐고 묻는 것이구나.

나윤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칼렛 멤버들이 ‘아…’ 하면서 왜 안 되는지를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 같은 훈훈한 미소가 그려졌다.

“네. 이건 마치 저희가 섹시 컨셉 하겠다는 거랑 같은 거예요.”

“어우.”

“듣기만 해도 거북하고 그렇죠? 리혁이가 옷을 들어서 복근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중현이가 농염한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비주가 치명적인… 아, 이건 어울리네.”

“엇… 고마워요. 형.”

그러곤 몸서리를 치는 스칼렛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지호가 붉게 칠한 립을 슥 훔치고, 제가 지호랑 등을 맞대고 춤을 추면서 느끼한 윙크를 날리는 거예요.”

눈을 찡긋 하며 윙크를 날리자 스칼렛 멤버들이 오 했다.

“그건 괜춘한 듯.”

“나쁘지 않아. 조금 잘생겨 보였다.”

“간만에 선우주 같다.”

예시가 실패한 듯한 느낌이라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일단 컨셉도 나중에 정하는 걸로 할게요.“

“네.”

청순도 사실 당사자들이 농담 삼아 던진 바람일 뿐, 진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스칼렛의 이미지는 고급지고 우아한 느낌.

강렬한 댄스를 기반으로 하는 카리스마 있는 컨셉이나 여성 솔로 가수들이 사용하는 디바 컨셉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이미지 변신은 기존 이미지에 기반해야 한다.

물론 이 사실은 본인들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체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이들이니까.

금방 결론을 내릴 것이다.

“저기.”

회의를 종료하고 졸개들을 데리고 일어나려고 할 때.

리나가 슬쩍 손을 들었다.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어요. 작곡가님.”

“네.”

“농염하고 끈적한 섹시는 안 될까요?”

“…….”

아라와 봄, 나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허어! 농염 섹시!”

“연예계에 섹시 하면 스칼렛이지.”

그거 좋다며 꺄르륵 웃어대는 이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데자뷰를 느꼈다.

막 자기들끼리 좋다고 그러는데, 지켜보는 사람은 티벳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게 되는.

멍하니 바라보는 우리 어깨에 리혁이가 손을 올렸다.

“이게 바로 거울치료라는 거예요.”

“……!”

4인조의 뒤편에서 정령처럼 투명하게 아른거리는 우리들의 모습.

“우리가 저랬나? 남의 말 하나도 안 듣고 박수 치고….”

“에이~”

“아니죠~”

“설마…….”

“…….”

“…….”

평소의 행실을 잠시 반성하게 되는 하루였다.

*   *   *

스칼렛과의 만남이 끝난 후.

-멤버들한테 이야기 들었어. 굉장한 신곡을 들고 왔다면서. 리나가 그렇게 흥분한 건 처음 봤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고맙다. 우주야.

“고마우시면 고기 어떤가요~?”

-치지직. 칙… 우주야? 뭐라고?

잡음을 입으로 따라 하는 고길동 이사님의 모습에 내가 둘리의 힘을 보여 줬다.

“그렇게 성대 모사하시는 것보다 Zzzzzz… 이런 식으로 하셔야 더 효과적이에요.”

-……그렇구나.

“제가 미튜브 링크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조 이사님과 전화와 메일로 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우리는 호주 시드니의 엔터테인먼트 센터에서 이틀간 2만 4천여 명의 관객과 함께 콘서트를 했다.

겸사겸사 시드니에서 라디오나 TV 토크쇼 스케줄도 소화하고.

[네! 요즘 핫하다는 ‘평창 댄스’의 주인공! 세계적인 슈퍼스타 뉴블랙을 모셔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얼마 전에 시드니의 한 클럽에서 여러분의 팬 600여 명이 파티를 열고 평창 댄스를 췄다더군요. 이 소식 들어 보셨나요?]

[세상에… 감사합니다.]

선진 문물인 원조 평창 댄스를 전파하고, 어그로성 질문들을 차단하며 일정을 소화했다.

빌보드 어워즈 이후로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지 해외에서도 포지션이 잡혀가는 느낌이다.

‘전 세계에서 인기가 많은 보이밴드’라는 느낌으로.

뭐. 방송국 앞에 집합한 수천여 명의 수플레를 본 순간, 좋은 대접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동안 시간도 쭉쭉 지나갔다.

“와. 벌써 7월이에요.”

“시간도 참 빨라. 5개월만 지나면 또 1살 더 먹는구나…….”

“어우, 덥다.”

남반구라서 한창 겨울이었던 호주에서 돌아오니 어느덧 매미가 무애애앰 우는 계절이 와 있었다.

여름.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점 더 얇아지는 것을 보며 계절을 실감하고 있을 때.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나상윤 팀장님이 말했다.

“송 캠프를 차라리 이런 날씨에 갔었어야 했어. 이런 날에 바다에 가서 촤악 몸을 담그는 거지.”

“그러니까 말이에요. 날짜 좀 잘 고르지.”

그런 너스레를 떠는 작곡가들에게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 비서.”

“네.”

“내년 워크숍은 한여름에 바다로 가는 스케줄로 잡아 주세요.”

“오오오!”

“해병대 캠프로요.”

“……!”

프로듀서들이 허리에 힘을 바짝 주고 공손하게 앉았다.

“예, 우주선 작곡가님. 미천한 소인들이 손을 댄 METRO가 마침내 완성이 됐사옵니다.”

“경들이 노고가 많았소. 풍악을 올려 보시구려.”

쿵짝을 맞춰 가며 작곡가들이 완성한 곡을 들었다.

“오…….”

막내의 탄식에 우리 모두 조용히 웃었다.

어렵다.

보컬도 만만치 않은데 여기에 빡센 안무까지 더해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후끈후끈하다.

“저는 너무 행복해요.”

우리의 시선이 뺨에 손을 올리고 좋아하는 메인 댄서에게 돌아갔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안무는 어떻게 할까요? 해외 안무가한테 섭외 보내면 될 것 같은데, 안무도 한 번 송 캠프처럼 해 볼까요? 댄스 캠프를 해 보는 거예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그죠?”

“그런데… 댄서 분들 모을 수 있긴 하니?”

그냥 안무 의뢰만 한다면 모를까.

저런 행사를 개최하려면 사람이 와야 될 텐데, 해외에서는 클레이가 ‘한국에 사람의 정기를 뽑아먹는 괴물들이 있다’ 하는 소문을 퍼뜨렸고.

국내에서는 작년에 비주와 경연 예능을 찍으며 댄서들이 비주 맛(feat. 핵불닭맛)을 보았을 터였다.

“……그러네요.”

얼굴에 그늘이 지는 둘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작곡가들에게 OK 사인을 줬다.

“이대로 진행할게요.”

“다행이다…….”

“누가 보면 제가 맨날 수정하라고 하는 줄 알겠어요~”

눈으로 욕을 하는 프로듀서들에게 생긋 웃어 주었다. 그러곤 며칠 뒤에 바로 녹음 일정을 잡기로 했다.

우리의 첫 영어 싱글 를 내기로 계획한 것은 8월 마지막 주 금요일.

생각보다 일정이 빠듯한 편이어서 녹음하고, 안무 연습하다가 이번 달 말에 뮤비까지 찍으면 딱 될 것 같다.

“아.”

우리를 배웅하던 나상윤 팀장님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거 내가 얘기했던가? 이번에 우리 회사에 신규 작곡가들 대거 들어오기로 한 거 말이야.”

“그래요?”

“응. 송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에서 많이들 지원을 했어. 유웅 작곡가도 들어오기로 했고.”

약간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진짜 들어오신대요?”

“응.”

“……왜요?”

“우리도 그게 미스터리야. 그 사람들한테는 송 캠프가 되게 인상적이었나 봐. 너희한테 호감이 가득하더라고.”

원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 아니겠냐는 어느 프로듀서의 너스레에 우리도 웃었다.

“노…련한 작곡가 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그렇지. 노…동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꺄르르륵!”

“흐하하하하하!”

음험한 미소를 교환하며 프로듀서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   *   *

미주와 유럽 지역 투어가 끝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아시아 투어가 예정되어 있는 이번 여름.

바쁜 시기지만 나름대로 여유로운 날이었다.

예능이나 미튜브 컨텐츠 촬영을 비롯한 굵직한 스케줄이 없어서, 개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기 좋은 시기였다.

“이거 봤어요? 나를 원하는 피처링 의뢰가 이렇게 많아요. OST 제안 들어온 것도 이만큼이나 되고.”

리혁이가 산처럼 쌓인 제안서를 보며 으스댔다.

“봤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잘하란 말이야.”

“형.”

막내가 그런데 말입니다, 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만 형이 뉴블랙이란 타이틀이 없었다면 이렇게 의뢰서를 많이 받을 수 있었을까요?”

“…….”

“우주선의 작곡이 없었다면 뉴블랙이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

“흐하하핫! 내가 리혁이 형을 말빨로 이겼다…! 아악! 왜 때려요? 말로 못 이기니까아악!”

서로에게 솜방망이 펀치를 날려 대는 두 막내를 바라보며 웃고는 저마다 들어온 개인 스케줄을 확인했다.

비주한테는 OST 제안과 각종 TV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출연 요청이 들어왔고.

중현이는 믹스테이프 작업을 비롯해 다른 래퍼들이 피처링 좀 해 달라고 요청한 것들이 있고.

나는 이번에 스칼렛 신곡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개인적으로 걸그룹 곡을 한 번 성공시켜 보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젝트였다.

-우주선은 걸그룹 곡은 못 쓸 거 같음.

…하는 말을 여기저기서 좀 들은 터였다.

아무래도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색채가 좀 다른 편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여태까지 쓴 노래 중에서 썸씽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남자 곡이었으니까.

작년 프로젝트 그룹인 에이텐도 중년 보이그룹, 태현이는 남자 솔로.

나 스스로도 ‘내가 걸그룹 곡도 쓸 수 있으려나?’ 하는 의문이 항상 있었기에 이번에 한 번 제대로 증명해 보고 싶다.

작곡가로서 나름대로 새로운 목표였다.

그리고.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어떤 스케줄을 골라야 현명할지 고민하는 덩어리들 속에서 막내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다.

“저는 정했어요!”

“벌써?”

비주가 살짝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우리랑 이야기는 나눈 다음에 정하지.”

“뭐 정했어. 지호?”

독자적으로 스케줄을 정해 버린 막내에게 우리가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고 있을 때.

막내가 기획안을 들어 보였다.

“신이 시즌 2랑 특별편이요.”

“작년에 찍었던 그 공포 드라마? 탁구공 여신 나오는 거? 아, 여신이래. 귀신.”

하도 자칭 여신을 부르짖는 4인조 때문에 잠시 헛말이 나왔다.

작년도에 온갖 기묘한 이야기를 다룬 미튜브 웹 드라마 ‘신이’를 떠올리는 우리에게 막내가 말했다.

“이게 이번에 다른 곳에서 판권을 사 갔거든요.”

“어디?”

“넷플러스요. 넷플러스 런칭 한국 드라마가 될 거래요.”

상의도 없이 정하냐며 서운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넷플러스면 가야지.”

“인정.”

한국 진출에 관심이 많은 넷플러스 코리아에서 ‘뉴블랙 네임밸류+장르물 <슬립>을 쓴 작가=이건 된다’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막내가 히힛 웃으며 ‘좋죠? 하곤 말했다.

“촬영기간이 조금 빠듯하긴 할 것 같은데, 올해 틈틈이 찍어 둬서 내년 상반기에 런칭할 거래요.”

“잘됐다. 우리 막내. 다시 덩어리로 합류해라.”

담요로 쏙 들어와 한 덩어리가 된 막내를 토닥토닥하며 잘 됐다고 해 주고는 다시금 회의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중현이가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투어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이 여유로운 게 얼마 만인지 몰라요. 다른 때라면 동시에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너무 좋다.”

“정말 느낌이 좋다니까요.”

“…….”

마법의 단어를 내뱉던 중현이가 ‘헙!’ 하고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싸늘한 정적.

비주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괘, 괜찮아요. 아직 3초 안 지났으니까 무르면 돼요. 야, 너 빨리 느낌 안 좋다고 말해 버려!”

“맞아여! 형, 얼른!”

“그래서 되겠어요? 바닥에 떨어진 거 3초 안에 주워 먹는 것도 아니고.”

중현이가 느낌이 안 좋다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똑똑똑.

“…….”

“…….”

불길한 노크 소리.

곧바로 문이 열리고 상기된 얼굴의 우리 TF팀장님이 들어왔다.

“얘들아!”

“…….”

“음? 표정들이 왜 그렇지.”

“아무것도 아니야…….”

“어마어마하게 좋은 소식이 있어서 왔다. 너희 일이 없다고 심심하다고 하는 걸 하늘이 들었는지, 미국에서 연락이 왔어.”

“……?”

석환 형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너희 이번에 미국 VMA 퍼포머로 초청 받았다!”

“…….”

미국 4대 가요 시상식 중 하나이자, 족히 한 달은 준비해야 하는 무대의 등장에 동생들과 내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석환 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야.”

“응?”

“키즈 초이스에 이어서 이번에는 틴 초이스 어워드에서도 참석해 달라고 초청장이 왔어!”

아낌없이 쏟아지는 스케줄에 눈물이 터졌다.

“어흐흐흑!”

“그래! 기쁘지?!”

“어흐흐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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