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4화
삽시간에 와르르르 쏟아지는 스케줄.
“하하하하하!”
행복하게 웃는 우리 모습에 석환 형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어때, 기쁘지?”
“응. 너무 기쁘네.”
자꾸만 눈물이 고이고 있지만 아마 행복의 눈물이겠지.
간만에 좀 여유롭게 각자 스케줄을 보낼 수 있나 싶었는데, ‘어림도 없지’ 하며 스케줄을 부어 버린 하늘의 뜻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서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던 우리가 눈가를 훔쳤다.
“형들, 근데 VMA가 뭐예요?”
막내에게 리혁이가 답해 주었다.
“넌 미국 진출한다면서 그것도 모르냐. 거기서 핫한 가요 시상식인데.”
“그래요?”
그런 시상식인데 왜 이렇게 반응이 덜하냐는 막내의 물음에 웃어 보였다.
“실감이 안 나서 그래.”
사실 너무 어마어마한 소식이라 실감이 안 나는 것에 가까웠다.
VMA.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약자를 딴 VMA는 미국에서 화제성이 높은 시상식이다. 2000년대 초반에 유명 댄스 가수가 뱀을 어깨에 두르고 나와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주었던 무대가 바로 이 VMA였다.
물론 그래미 어워드만큼 위상이 높은 시상식은 아니지만 매해 가장 높은 화제성을 보여 주는 시상식이다.
그만큼 화제성을 중시하는데, 우리를 이번에 퍼포머로 초청했다는 말인즉.
“너희 화제성이 그만큼 높다는 거지.”
석환 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계속 시청률 떨어져서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는 있는데, 그거야 10년째 똑같은 말이고. 여전히 화제성 높은 시상식이야.”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영어 싱글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 반응에 석환 형이 물었다.
“근데 생각보다 안 기뻐하네.”
“뭐, 블루문이 그만큼 인기가 있긴 했잖아.”
“블루문?”
어리둥절해하는 TF팀장님의 반응에 도리어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헤일리랑 합동 무대하는 거잖아.”
“응?”
우리 TF팀장님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한다.
“단독인데?”
“……?”
“내가 얘기 안 했구나. 이거 너희랑 헤일리 합동 무대가 아니라 단독 무대야.”
너무나 당연하게 블루문 무대를 하는 거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우리 단독 무대라고?”
“응.”
중현이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재차 물었다.
“팀장님. 그러니까 헤일리랑 합동 무대가 아니라 저희 단독 무대를 하는 건가요? Coin 같은 곡으로?”
“응. 그쪽에서 Coin을 요청했어.”
“……!”
“어쩐지, 왜 반응이 그런가 했네. 얘들아. 이거 너희 단독 무대야.”
“……!”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단독…….”
“무대……?”
우리들의 노래로 무대를 선다는 이야기 아닌가.
“……!”
“……!”
방금 전까지 스케줄에 허덕이며 흐물거리던 동생들의 어깨에 힘이 서서히 들어가고.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불길 같은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에 우리 TF팀장이 멈칫하고 있을 때.
“형.”
눈이 뒤로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 VMA가 언제라고?”
* * *
“음흠흠~”
VMA 소식을 들은 뒤로 가슴이 덕순덕순하다.
비디오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날은 다음 달 8월 28일.
7월 초인 지금으로부터 두 달 동안 연습할 시간이 있다는 것도 기분이 좋고, Coin으로 미국 시상식 무대에 선다는 것도 행복하다.
특히나 우리 노래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행복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
“네, 너무 행복하네요.”
내 대답에 조규환 이사님이 빙긋 웃었다.
“어워드 때문에?”
“네.”
“축하한다. 너무 잘됐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축하 인사를 건네는 조 이사님에게 나도 마주 웃었다.
그러고는 즐겁게 떠들며 회의실로 들어오는 4인조 걸그룹을 맞이했다.
“덕춘 작곡가님~!”
“덕춘~”
환히 웃으며 ‘덕춘 씨~’ 하는데 뭔가 어감이 은근 별로다.
내 최애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부르는 듯한 느낌.
오직 나만 그렇게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예명을 잘못 골랐나.”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들 지냈어요?”
“네~!”
활기차게 대답하는 4인조.
하지만 그런 대답과는 달리 눈가에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그런 내 눈길을 눈치챘는지 메인 보컬 봄이 너스레를 떨었다.
“서바이벌이 진짜 사람 피 말린다. 말려.”
“국내에서 무대 제일 잘하는 애들이 일주일마다 이 갈고 와서 무대를 하는데, 어후, 기 빨려.”
“하이컬러랑 맞붙었는데 걔네는 어려서 그런지 체력도 좋더라~”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내가 물었다.
“결과는 잘 나왔어요?”
“부쉈지.”
“1등 하고 왔어.”
고개를 끄덕이는 스칼렛 멤버들에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짜악!
“아으…….”
“엇, 미안!”
“덕춘 작곡가님 괜찮으세요? 손이 리혁이 귀 색깔이 됐어.”
“괘, 괜찮습니다.”
이 사람들이랑 앞으로 하이파이브는 안 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우리 덕춘 작곡가님 아프면 안 된다고, 차가운 음료 캔을 쥐어 주고 목 베개까지 세팅해 주는 선배 걸그룹.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회의를 시작했다.
“자.”
손뼉을 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디 한번 생각해 온 컨셉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네.”
리더인 아라가 가방에서 두꺼운 파일철을 꺼냈다. 학창 시절에 유인물 받으면 하나씩 비닐에 넣는 그런 파일철.
거기에 다양한 의상과 이미지들이 가득했다.
“우리가 이번에 생각하는 이미지는 화려한 팝스타 스타일이야. 가죽 재킷이나 힙한 소재를 이용한 무대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거지.”
“오호.”
“배경은 근미래 같은 풍경을 생각하고 있어. 그런 느낌 알지? 네온사인 가득한 대도시인데, 스크린마다 팝스타인 우리의 무대가 흘러나오는 거야. 약간 독재자 방송처럼.”
“1984 같은 거네요.”
“응?”
“아니에요.”
리혁이랑 놀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책 제목이 튀어나왔다.
봄이 아라에게 책 제목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스칼렛의 설명이 쭈르륵 이어졌다.
“강렬한 댄스가 있기도 하고, 우리가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곡인 만큼 ‘팝스타’라는 이미지를 골랐어.”
“진짜 괜찮은데요?”
내가 보기에 의상이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형. 제가 좋은 거 하나 알려 줄게여. 만약에 뭔가 의상이 마음에 안 들어 보인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안 하면 돼요. 그럼 중간은 가.
패셔니스타인 우리 막내의 가르침을 떠올리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어지는 스칼렛의 설명을 듣고는 컨셉과 노래가 어울리는지 머릿속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준비한 것은 강렬한 댄스로 가득한 뭄바톤 장르의 곡.
하우스와 레게톤이 융합된 뭄바톤은 특유의 극적인 진행 때문에 강렬한 이미지가 어울린다. 스칼렛이 보여 준 스타일리쉬한 팝스타 의상과 배경 등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곡을 수정해야 할지 감도 오고.”
시선을 돌려 조 이사님을 바라보았다.
“이사님은 어떠세요?”
“작곡가가 좋다면 나도 좋지.”
이번 프로젝트에 있어서는 너희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듯 조 이사님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렛 전담 프로듀서의 승낙에 회의를 이어 갔다.
곡의 주제와 컨셉 등에 신이 나서 의견을 제시하는 스칼렛 멤버들의 의견을 들으며 멤버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곡을 쓰려고 하면 부르는 가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사람들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으니까.
예컨대 평소 나긋나긋해 보이지만 무대 때만 되면 순간순간 폭발적으로 움직이는 우리 비주.
그러하기에 곡의 텐션이 폭발하는 파트에 비주를 넣는 것처럼.
“일단은 여기 코러스 파트에서 언니가 빵 터뜨리면 더 멋질 거 같아.”
찹쌀떡같이 몽실몽실한 외모에 활기찬 성격의 김나윤 씨.
귀여운 외모로 알려져 있지만 랩할 때는 누구보다 파워풀하게 무대를 장악하는 멤버다.
가장 의견을 활발히 내는 멤버기도 하고.
“음, 근데 거기는 조금 약하게 가도 되지 않을까?”
리더인 아라는 자상하게 동생들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
나윤이가 핀트가 어긋난 의견을 제시하면, 자상하게 다독이면서 더 나은 의견으로 바꾼다.
뉴블랙에서 포지션을 비교하자면 보컬과 댄스 두루두루 다 하는 나와 비슷했다. 연기도 가능하다는 면도 비슷하고.
“난 다 좋은 거 같아.”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리나.
스칼렛의 비주얼 멤버로도 유명할 만큼 섬세하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춤 실력이다.
비주와 투 샷을 붙여놔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빼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스칼렛 퍼포먼스의 중심이다.
조용히 말이 없다가 가끔씩 한마디 하면 시선이 확 집중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성격대로 무대에서도 조용히 안무를 하다가 팡! 터질 때 포커스를 흡수하는 류였다.
“음…….”
머릿속으로 파트 분배를 하면서 메인 보컬인 봄을 바라보았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있다가 중간중간 부드럽게 웃으며 자기 아이디어를 슥 흘린다.
그러면 그게 바로 채택이 되곤 했는데.
“역시 나는 너무 아이디어가 많은 거 같아.”
지금 나윤이처럼 자기가 그걸 떠올렸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얼핏 존재감이 약해 보이지만 스칼렛의 실세였다.
무대에서도 튀려고 하지 않고 멤버들과 부드럽게 조화되어 노래하려는 스타일인데, 왠지 메인 보컬이 튀는 파트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흐으음…….”
분명히 최고의 비주얼을 자랑하는 걸그룹과 미팅을 하고 있는데.
왜 자꾸 다른 게 눈에 보이는 걸까.
“껄껄껄. 언니, 이거 과자 너무 맛난다. 아. 우리 회의 중이었지. 다시 집중하겠습니다~”
트윈테일을 수염처럼 흔들며 껄껄 웃는 장비.
“천천히 먹어.”
그런 장비를 자상하게 다독이는 인덕이 넘치는 유비.
“…….”
말없이 차를 홀짝이는 관우.
“근데 방금 전에 나온 의견. 나윤이가 말한 거 너무 좋았잖아~”
“그래?”
“B 파트에서 군무 가자고 했던 거.”
“어? 내가 그랬나?”
“응. 너무 좋더라.”
“역시 내 의견이……!”
그리고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다가 은은하게 술수를 부리는 제갈량까지.
어디선가 도원결의하는 소리가 막 들리면서, 어릴 적에 동네 삼촌이 보여 준 비디오 노래가 떠오른다.
-유비, 관우, 장비~ 천하의 무적일세~♬
자꾸만 스칼렛 뒤로 넘실거리는 이상한 그림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 이사님이 내게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니?”
“아뇨. 자꾸 스칼렛 뒤에서 뭐가 보이는 것만 같아서…….”
“아.”
조 이사님이 공감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감이 가는구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
이사님?
그런데 왜 그렇게 아련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건가요?
* * *
“고생하셨습니다.”
“또 만나요. 김덕춘 작곡가님~”
스칼렛 멤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며 고개도 흔들었다.
유비, 관우, 장비는 잊자.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던 미남과 눈이 마주쳤다.
“음?”
내가 물었다.
“이사님은 어디 가세요?”
“이제 회의 끝났으니 잠시 쉬러 가야지. 내일 넷플러스 코리아 측이랑 미팅도 준비해야 하고.”
요즘 들어 굉장히 바쁜 우리 이사님이었다.
회사 A&R이나 프로듀싱은 내가 돌아가는 일을 다 파악하고 있지만, 그 윗선의 레벨에서는 뭔가 일이 엄청 벌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조 이사님이 큰 그림을 그리며 회사 규모를 키우고 있었다.
최근에 지호의 웹 드라마가 넷플러스로 진출한 것도 아마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결과물인 것 같다.
“요즘 많이 바쁘시겠네요.”
“바쁘긴 하지만… 행복하지. 일이 많다는 게.”
이사님이 씩 웃으며 커피잔을 챙겼다.
“그리고 너희한테도 고맙고.”
“……?”
“돈이 많이 생겨서 그걸로 열심히 투자하는 중인데, 애초에 너희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까.”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조 이사님이 한 가지 더 있다는 듯 말했다.
“정말 고마운 것투성이네. 우리 애들 일도 너무 고맙고.”
“스칼렛이요?”
“나한테는 조카 같은 친구들이거든. 같이 아무 기반 없을 때 연습시키고 데뷔하고… 진짜 별별 일이 다 있었지.”
추억을 회상하는 듯 먼 곳을 바라보던 이사님이 말했다.
“너희는 아마도 잘 모르고 있었겠지만, 요즘 스칼렛이 조금 울적하게 지내고 있었거든. 그나마 고기로 버텼지. 내 생각에 여기서 조금 더 진행이 되면 슬럼프 위기까지 갈 수 있었는데…….”
뒷말은 생략했지만 다 들리는 느낌이다.
내가 가져온 신곡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고맙다는 인사를 선선히 하면서 방을 나서려고 하는 이사님에게 내가 미소를 지었다.
“이사님.”
“그래. 우주야.”
“그런데 어디 가시나요?”
“……응?”
내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늘 일정은 없으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그렇지.”
“그리고 스칼렛에 대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 바로 이사님이고요.”
“그것도 그렇지….”
“그렇다면 저의 곡 작업을 보완해 줄 만한 적격자로 이사님만한 분은 없다는 뜻 아닐까요? 이사님, 오늘 스케줄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2인 송 캠프를…….”
조규환 이사님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이사님.”
푸근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중현이와 다른 졸개들의 모습에 이사님의 동공이 흔들렸다.
조 이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신곡은 아무래도 기존 작곡가인 나의 색깔이 빠져야…….”
“완전히 빠질 수는 없죠. 기존 색이 들어가야 새로운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온고지신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대표님과 식사를…….”
“대표님이 방금 문자 보내 주셨어요. 괜찮다고.”
뒤에서 우리 동생들이 서서히 이사님에게 다가가는 가운데, 나도 미소를 지으며 이사님에게 다가갔다.
“밥은 저희랑 먹어요. 이사님.”
“저희랑 먹어요~!”
“…….”
이사님이 행복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 * *
비슷한 시각.
레몬 엔터의 프로듀싱 팀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아이고, 우리 유웅 작곡가님. 어서 와요~!”
“다들 너무 잘 오셨어요!”
오랫동안 후임병 없는 생활을 해 오다 신병을 맞이한 군인들처럼, 레몬 엔터 작곡가들이 잇몸 미소를 지었다.
“다시 뵙네요. 오늘부터 레몬 엔터의 신규 작곡가로 합류하게 된 유웅이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반갑습니다.”
유웅 작곡가를 대표로 여러 작곡가들의 자기소개와 인사에 레몬 엔터 사람들이 새로운 식구를 환영했다.
“자자.”
나상윤 팀장이 근엄한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 신규 작곡가 분들한테 회사 안내도 해 주고 그래야지.”
“그거 맞다.”
“그럼 따라오실까요?”
신규 작곡가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몇 번 정도 방문해 보긴 했지만, 이제 회사 식구가 됐다고 생각하니 낯이 간질간질한 느낌.
“예전에는 방문하시는 분들이 쓰는 곳만 보셨죠? 오늘은 회사 직원들이 내부적으로 쓰는 곳들을 보여 드릴게요.”
“팀장님!”
“응?”
“그 전에 먼저 정찰을 좀…….”
“아.”
작업실이 모인 회사 2층.
직원 하나가 작곡 요괴의 레어에 다가가 기웃거린다. 그러고는 ‘비었어요!’ 하고 소곤거렸다.
고개를 갸웃하는 신입들에게 작곡가들이 껌을 질겅이며 베테랑 용사처럼 말했다.
“잡혀가요.”
“…….”
“그동안 저 좁은 ‘죽음의 협곡’을 지나가다 많은 사람들이 작곡에 열정을 잃었죠.”
“아…….”
“요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게 필수예요.”
신규 작곡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하나하나 방을 소개하던 나상윤 팀장이 깊숙한 곳에 들어온 [On Air] 전등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사님이 작업하시나 보네요.”
“이사님이요?”
“다들 조규환 이사님 아시죠?”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초에 우주선이 있기 전에 조규환이 있지 않았던가. 우주선 등장 전까지 ‘레몬’하면 ‘조규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또 다른 천재 작곡가의 작업 풍경을 지켜볼 수 있다는 기쁨에 들뜬 신입들에게 기존 직원들이 손짓했다.
“자, 저기 안을 보세요.”
과연 어떤 가수 곡을 작업하고 있을까?
유명 발라드 가수 윤찬혁? 아니면 스칼렛?
그런 기대를 품고 문에 난 유리창에 고개를 들이밀 때였다. 지난 송 캠프 이후로 며칠간 악몽을 꾸게 만든 목소리가 들렸다.
“저, 팀장님.”
“네.”
“우주 씨 목소리가 들리는데요?”
“네?”
그 말에 당황한 레몬 엔터 작곡가들이 유리창을 바라보고는 기겁했다.
‘이게 아닌데.’
첫날이니 회사의 좋은 모습만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최악의 장면이 등장하고 있었다.
기존 작곡가들이 전전긍긍하는 동안 안쪽의 대화가 미세하게 들린다.
-이사님.
-응.
-자. 다시 들려 드릴 테니까 이 중에서 더 나은 게 어떤 것인지 한번 말씀을 해 주세요.
-…지금 99번쯤 들려주지 않았니?
-물은 99도가 아니라 100도에 끓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100번째에는 다를지도 몰라요.
능숙하게 노비를 부리는 누군가의 명언.
그리고.
꺄르륵 웃어 대면서 화이팅~! 하고 조 이사의 곁에 붙어 있는 졸개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작곡가 하나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조규환 이사님이면 회사에서 높으신 분이죠?”
“…대표님 다음으로 2인자시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외부 작곡가들의 머릿속에 권력 서열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레몬 엔터의 권력 서열이 어찌 되는가.
바로 선우주가 1위, 우주선이 2위, 주선우가 3위…….
“네.”
나상윤 팀장이 체념했다는 얼굴로 웃었다.
“저희 이런 회사입니다.”
“아…….”
드디어 레몬 엔터의 구조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신입 작곡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