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7화
오랜만에 만난 클레이는 몹시 반가웠다.
「헤이~ 잘 지냈어요?」
「판타스틱한 시간을 보냈지. 너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농담을 던지며 껄껄 웃는 클레이와 가볍게 포옹을 하고는 조이와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클레이가 말했다.
「한국에서 너희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던데. 회사 근처가 달라진 걸 보고 깜짝 놀랐어. 옛날에는 서부 정착지 같았던 곳이 지금은 거의 LA처럼 변해 버리고….」
「많은 일이 있었죠.」
안무가와 그런 대화를 나누고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스칼렛의 신곡 의 주제와 느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 주는 시간.
주의 깊게 설명을 들은 클레이 타일러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잠시 지켜보다가 나갈 거니까요. 신경 쓰지 않고 안무 코칭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좋아.」
「이따 괜찮으면 식사라도 같이 할래요? 비주가 클레이 만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던데.」
「……조, 좋지.」
이내 프로답게 진지한 표정으로 돌입한 클레이가 스칼렛에게 다가가고.
나를 바라보는 스칼렛에게도 윙크를 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 선배들 화이팅.”
“화이티이잉!”
박수를 치던 스칼렛이 아자아자! 하며 운동선수처럼 기합을 넣는다.
자기들끼리 손뼉을 칠 때마다 ‘파앙!’ 하는 파공성이 공기 중에 울려 퍼지는데, 천둥 같은 소리에 클레이와 조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잠시 후.
의자 위에 올라가서 안무의 전체 구도를 살피려는 클레이 타일러의 앞에서 안무가 펼쳐졌다.
“오…….”
오프닝 대형으로 앉아 있던 4인조 걸그룹이 우아하게 일어나 흩어진다.
인트로 안무.
곧이어 걸그룹 안무 특유의 팔을 치켜드는 동작을 하던 스칼렛의 몸이 힘차게 움직인다.
「확실히 힘이 좋아. 대단한 장점이야.」
옆에서 중얼거리는 조이 타일러의 말에 공감했다.
다른 걸그룹과 차별화되는 우리 고기 덕후들의 장점이 바로 저것이었다. 수상할 정도로 강력한 힘.
안무에 근육이 뭐가 중요하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근육이 있어야 춤을 더 잘 출 수 있고 출 수 있는 동작이 늘어난다. 호리호리해 보이기만 하는 비주도 안에 온갖 세밀한 근육이 단련된 것처럼.
「코어 힘이 진짜 좋은데… 비결이 뭐지?」
「고기야.」
내 대답에 미국인이 눈을 깜빡였다.
저 늘씬한 걸그룹의 육류 소비량이 많아 봐야 미국인인 자기에게 미치겠냐는 느낌의 눈빛이었다.
……곧 알게 되겠지.
어쨌건 힘이 좋다는 특성 때문에 스칼렛의 안무는 진짜 멋있다.
걸그룹, 보이그룹의 구별을 떠나 그냥 ‘무대 진짜 멋있게 한다’ 한다는 느낌.
힘이 좋아 동작의 맺고 끊음이 확실해 춤선이 깔끔하고, 정제된 동작을 할 때와 나긋하게 몸을 흩날릴 때가 어우러져 정말 우아하게 보인다.
“……너무 좋다.”
내가 쓴 곡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안무에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3절에서 메인 댄서인 리나가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총 쏘는 포즈로 마무리를 하면서 박수가 흘러나왔다.
“와아아아아!”
물개 박수를 치는 내 모습에 스칼렛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던 아라가 내게 물었다.
“어때요, 우리 프로듀서님?”
“너무 좋습니다. 진짜 연습 장난 아니게 많이 하셨네요.”
“이 갈고 연습했지. 누가 만들어 준 곡인데.”
은근하게 웃으며 어깨로 내 어깨를 퉁 치는데 날아갈 뻔했다.
진짜 무슨 산삼이라도 먹나.
괜찮냐고 묻는 아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그 너머 다른 3인방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뭔가 되게 좋다.
태현이의 솔로곡 Survivor를 작업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내가 기획하는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행복감이라고 할까.
“진짜 열심히 준비하셨네요.”
내 말에 아라가 물을 들이켜곤 답했다.
“열심히 해야지.”
짤막한 한마디였지만 안에 담긴 많은 것이 느껴진다.
그런 스칼렛의 리더에게 목례를 하고는 연습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사자 무리처럼 클레이에게 다가가서 질문 파티를 벌이는 스칼렛.
“……다행이야.”
에 그야말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연습하는 스칼렛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다.
왜냐하면…….
“으음.”
문을 조용히 닫고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지호 [형 이거 봤어요?]
지호 [이번에 방송된거]
지호 [http://www.metube.com/AtQe..]
지호 [엔간하면 누나들 눈에 띄지 마요]
지호가 보내 준 링크.
바로 얼마 전에 방영한 <지금부터 우리는>의 스칼렛 특집이었다.
의문의 대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치는 그런 내용인데, 심상치 않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꺄악!]
방금 전까지 그들에게 인사를 하던 집사의 목이 뚝 떨어지는 장면.
멀찍이 복도 끝에서 미이라처럼 부패한 시체가 걸어오는 장면.
스칼렛 멤버들이 바라보고 있던 벽에서 갑자기 수십 개의 손이 나와 붙잡아 가려고 하는 장면.
“…….”
다시금 고개를 돌려 클레이를 잡아먹으려고 눈을 빛내는 이들을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곡 만들어 놔서 다행이다.”
수명이 10년은 연장되는 기분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넷플러스 런칭 다큐멘터리 「The New Black : Making Waves」 中
다큐멘터리 제목 ‘Making Waves.’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낸다는 제목처럼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물결을 만들어 내는 멤버들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회의실에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대본 리딩을 하는 지호의 모습.
야구모자를 눌러쓴 채 젤리를 질겅이며 루프 스테이션을 조작하고 있는 중현의 모습.
OST 녹음을 하며 녹음실에서 ‘500원~ 500원~’ 하는 서리혁.
연습실에서 작은 조명만 켠 채 거울을 바라보며, 안무 동작에 따른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메인 댄서.
그렇게 5분할로 나눠진 화면에서 가장 먼저 녹음실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우주의 모습이 잡힌다.
다소 긴장한 얼굴과 함께 인터뷰룸에 앉아 있는 우주의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우주 :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죠. 저희가 아닌 다른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싱을 맡아본 건 처음이거든요. 물론, 한태현 선배님의 곡에 참여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분과는 워낙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고.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우주 : 특히나 녹음에 들어가니까 너무 떨리더라고요. 예컨대 우리 멤버들 같은 경우라면 제가 특징을 다 알고 있어요.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제스처까지. 이 친구들이 무대에서 뭘 할지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니까.
반면에 그 정도로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들의 녹음 디렉팅을 하려니 애매하다는 모양이었다.
인터뷰어가 ‘그럼 에이텐은요?’ 하고 묻는다.
우주 : 아, 그때는 나상윤 팀장님이 옆에서 큰 도움을 주셨죠. Attention은 공동 작곡이었으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상윤 팀장이 인터뷰룸 의자에 앉는다.
[Creative Director]라는 영어 직함과 함께 나상윤 팀장의 영문 이름이 적혀 나온다.
나상윤 : 우주가 이번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걸그룹 곡은 보이그룹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예, 경험자인 제가 우주에게 도움을 줘 보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은근하게 말한다.
나상윤 : 흔치 않은 기회예요. 제가 이렇게 선배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게. 하하하!
그것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나상윤 PD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웃음이었다.
* * *
홍콩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마침내 의 녹음 당일.
“으으…….”
살짝 긴장된 뒷목을 주무르자,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우리 프로듀서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떨려?”
“네.”
“그렇구만.”
나상윤 팀장님이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팔을 둘렀다.
“우주가 다른 가수 녹음 디렉팅하는 건 거의 처음이구나?”
“네.”
스칼렛의 녹음 디렉팅을 앞두고 다시 신인 작곡가로 돌아간 기분이다.
녹음 디렉팅.
어떤 경우에는 작곡가들이 곡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다.
우선은 내 의도를 가수에게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힘들다.
그러니까 머릿속으로 원하는 목소리가 딱 있는데, 가수한테 막연하게 ‘조금 얇게 불러 주세요. 음… 아주 얇게는 아니고 적당하게 볼륨감이 어…’ 하는 식으로 어렵게 설명을 해야 되니까.
같은 가수라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 발라드계의 본좌로 불리는 차우현 선배님이 우리에게 해 준 조언이 하나 떠오른다.
-조금 내 목소리를 날려 보낸다는 느낌으로 불러 봐. 그럼 될 거야.
풀어내자면 ‘너희 성대와 혀의 위치에 관해서 말이야. 일단…’ 하면서 다섯 줄 이상 나오는 조언이었다.
마치 레전드 축구 선수 출신 감독이 선수한테 ‘자, 달려가서 골을 넣으면 돼!’ 하는 것과 같은 느낌.
그리고.
심리적인 압박감도 있다.
녹음 부스 안에서 가수가 ‘디렉팅을 내려만 주시죠’ 하면서 진지하게 눈을 빛내는데 조금 머뭇머뭇한다?
그러면 바로 신뢰감이 실시간으로 하락하는 거다.
물론, 같은 회사 식구들끼리 진행하는 것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냥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신경 쓰이는 부분들이 한두 개 생겼다는 거였다.
“아이고.”
나상윤 팀장님이 깔깔 웃었다.
“우리 우주가 긴장하는 모습도 오랜만에 보네.”
“…저 때문에 시간이 길어질까 봐 그래요.”
서바이벌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가수들에게 내가 미숙하게 디렉팅을 해서 시간을 뺏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내 어깨에 프로듀서들이 손을 얹었다.
“걱정 마. 이 엉아들이 도와줄 테니까.”
“남자 곡, 여자 곡이라고 따로 디렉팅하는 거 없어.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될 거야.”
“어려우면 언제든 SOS 치고. 하하하!”
“…….”
흐하하! 웃는 아저씨들을 얄밉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발칵!
문이 경첩이 뜯어져 나갈 만큼 격하게 열렸다.
“안녕하세요!”
활기찬 웃음소리와 함께 오늘의 가수들이 녹음실에 도착했다.
* * *
‘귀엽다.’
프로듀서들이 중앙에 앉은 우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좀 또래 같다고 할까.
매번 작곡계의 거장처럼 노익장 면모를 뽐내던 미남이 어색어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우주가 지금까지 무수한 명곡을 만들어 냈지만 어디까지나 뉴블랙만의 곡 아니던가.
한태현이야 연예계에서 소문난 절친이니 우주가 그의 보컬적인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미스터 프로듀서의 에이텐(ATEN) 같은 경우는 출연자들 자체가 비전문가라서 일단 기본적인 보컬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난항을 겪었던 프로젝트였다.
노스탤지어의 OST는 본래 본인이 불러서 디렉팅하기 쉬운 곡이었고.
‘다른 아이돌 그룹은 거의 처음인가?’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디딘 우주가 ‘으으으’ 하면서 긴장하는 모습에 선배 작곡가들이 미소를 지었다.
‘쫌 도와주지. 뭐.’
스칼렛과 활기차게 인사를 주고받던 우주가 손짓하면서 멤버들이 차례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첫 파트.
리드 보컬인 아라가 강세를 주어 노래를 부르는 곳.
“오.”
작곡가들이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이 써서 그런지 확실히 가사 해석력이 높아.’
스칼렛 본인들이 작사를 한 만큼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표현력 부분에는 지적할 것이 없었다.
다만 묘하게 3퍼센트 정도 아쉬운 느낌.
가사지를 읽던 나상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조금 과하게 들어갔네. 부드럽게 조금 풀어 달라고 해야 되려나. 그런데 또 너무 부드러우면 안 되는데. 이게 아주 약간…….’
머릿속으로 할 말을 구상하고 있는데, 희고 고운 손가락이 붉은 토크백 버튼을 이미 누르고 있었다.
‘네!’ 하고 밝게 대답하는 아라에게 우주가 입을 열었다.
“누나. 지금 부르신 거 너무 좋고요.”
-네~
“다만 조금 힘이 들어가 있거든요? 이걸 어떤 식으로 불러 주시냐면 ‘Humpty Dumpty’에서 누나 두 번째 파트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하는 가사 기억하시죠?”
-엇… 네. 저희 정규 앨범 수록곡.
“그 파트에서 불렀던 대로 불러 주실게요.”
-네.
아주 간단한 설명.
작곡가들이 눈을 깜빡이며 슬쩍 핸드폰을 꺼내 ‘Humpty Dumpty’라는 곡을 음원 사이트에서 검색했다.
그리고 귀에 기울여 조용히 들었다.
‘딱이네…….’
단단한 보컬이지만 힘이 적당하게 들어간 것이 지금과 딱 어울리는 것 같다.
“…….”
“…….”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윤아. 너 믹스테이프 ‘BallooN’에서처럼 알지? 한번 랩 파트 끝날 때 시원하게 목 긁어 줘. …옳지.”
“리나 씨. 앨범 수록곡 중에 솔로곡 있으시죠? ‘봐’에서 유지했던 톤 기억하고 그대로 한 번 더 불러 주실게요. 여러 번 아니고 딱 한 번 끝낸다는 생각으로 불러 주시면 되겠습니다.”
“봄 씨, 너무 좋네요. 그대로 가겠습니다. 다만…….”
스칼렛의 모든 곡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디렉팅을 하던 우주.
심지어 당사자들도 까먹고 있었던 곡들.
-아. 우리 그런 곡이 있었지…….
게다가 중간중간 프로듀서가 토크백 버튼을 누르고 직접 노래를 불러 주곤 했다.
“멈추지~ 않아~~ 가 아니고 멈추지~~ 않아, 이런 식으로 갈게요.”
감미로운 노랫소리.
우주가 부르는 버전으로 완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가 녹음실에 울려 퍼진다.
한때 TNT 데뷔조의 메인 보컬이자, 현재는 국내 아이돌 중 최고로 꼽히는 리혁 다음으로 리드 보컬을 차지한 가수다웠다.
“…….”
그런 모습에 선배미를 뿜뿜하려고 했던 작곡가들의 동공이 텅 비기 시작했다.
잠시 쉬는 시간.
스칼렛 멤버들이 작곡가에게 진상할 컵 비빔면에 신명나게 고기 토핑을 얹고 있을 때.
“우주야.”
“아, 네.”
가사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우주가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스칼렛 곡을 다 알고 있니?”
“아, 네.”
산뜻하게 웃는 천재 작곡가.
“사실 이번에 보컬 디렉팅이 좀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스칼렛 뮤비랑 무대 다 찾아보고 기억해 두고 있었어요. 말로 설명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빠르게 가려고.”
“…….”
“곡은 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긴 했어요.”
그제야 남들 다 모르는 곡까지 혼자 다 알고 있었던 평소의 모습이 떠오른다.
‘피디님, 이거 모르세요? 피디님 세대에 유행했던 곡인데…’ 하면서 그들을 놀려댔던 장면.
작곡가들의 눈이 축축해졌다.
‘세상에 누가 보컬 디렉팅 어렵다고 가수가 낸 곡을 전부 다 암기하고 오냐.’
그 때문일까.
녹음이 평소보다 엄청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또 퀄리티도 높다는 것 때문인지 작업실 분위기도 좋다.
귀엽다면서 우주를 훈훈하게 바라보던 작곡가들의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총괄 프로듀서님…….”
나이 어린 상사에게 저절로 존경심이 드는 프로듀싱 팀이었다.
* * *
스칼렛과의 녹음을 마친 후.
싱가포르와 태국, 자카르타로 이어지는 투어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간만의 휴식이 주어졌다.
바로 리혁이의 생일 준비였다.
“준비 다 됐어요?”
곧 있으면 밤 11시.
연습실에 [서리혁=사랑해]라는 현수막과 함께 생일파티 준비가 잘 되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비주가 말했다.
“리혁이가 최고로 좋아하는 야식을 준비했어요.”
“잘했다.”
궁중 음식인 신선로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지금 2층에서 OST 관련 녹음 준비를 하고 있을 리혁이를 떠올리며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어떤 식으로 리혁이를 불러내야 할까.”
“할 말 있다고 문자 보내는 건 어떨까요? 뭐라고 용건은 안 적는 거예요.”
“그럼 리혁이 스트레스 엄청 받을걸. 얘 누가 잠깐 통화하자고 그러면 엄청 스트레스 받잖아.”
막내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중현이가 말했다.
“어차피 생일인 거 알지 않을까요?”
“하긴.”
어차피 12시 되면 자기 생일인 거 알아서 이런 서프라이즈 파티에 속을 리가 없었다.
나만 해도 11월 9일이 되어 가는데 애들이 뭔가 스스슷 하면 ‘생일 준비하네’ 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솔직하게 ‘생파하게 내려와라’ 하고 보내기로 했다.
리혁 [무드 없기는]
리혁 [기다려 봐ㅛ]
ㅛ가 오타인지 쌍뻐큐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중현이가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오. 내려오고 있어요.”
“오케이.”
신기술을 좋아하는 우리 리혁이를 위해서 오늘 우리는 아주 특별한 준비를 했다.
저마다 하나씩 리모컨을 들고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준비됐니?”
“네!”
다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Y앱 켜고 출발하자.”
* * *
‘하여간 무드 없는 인간들.’
굳이 생일이라고 꼭 말을 할 필요가 있던가?
그냥 아닌 척하고 부르면 되지.
서리혁이 입을 삐죽하게 내밀었다.
물론, 만약에 용건을 안 밝혔다면 ‘아 뭔데요?’ 하며 멤버들을 수십 번 괴롭혔겠지만 그 생각까지는 안 하고 있는 메인 보컬이었다.
‘그래도 나니까 이렇게 이 사람들이랑 같이 사는 거지. 딴사람이면 어휴~ 힘들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하 연습실로 내려올 때였다.
“오늘따라 으스스하네.”
밤이라 전부 다 불을 꺼 놔서 그런 걸까.
연습실로 향하는 지하 복도가 오늘따라 깜깜하고 으스스하다.
“나 지금 가고 있어요~!”
괜히 어두운 시골 밤길을 걸을 때 ‘저기요~’ 해 보듯이 그런 말을 한 리혁이 발걸음을 뗄 때였다.
지이이잉.
기묘한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기계들이 붉은 눈을 떴다.
“뭐, 뭐야.”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무언가에 서리혁이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쳤다.
“느아아아악!”
-리혁아~!
“으아씨, 뭐야! 이거 뭔데요?!”
-리혁아아아아! 사랑해애애!
* * *
같은 시각.
11시 59분이 되어 [리혁이 생일 축하해!] 하는 문장을 치려고 준비 중이던 수플레들에게 알림이 떴다.
[깜짝 라이브 시작!]
뉴블랙 : 서리혁을 사랑해 주세요
리혁이의 생일 파티 Y앱인 모양이었다.
수플레들이 알림을 누르며 그야말로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올 때.
“음?”
접속한 수플레들은 눈을 깜빡였다.
-느아아아아!
-사랑해요~ 사랑해요~
-으아씨, 뭐야아아!
무언가 시점이 이상하다.
마치 드론이 도망치는 적군을 추적하듯이 날아가는 듯한 시점.
리혁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빨간 투표도장 무늬가 과녁처럼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FPS 게임 컨셉인가…?’
조이스틱으로 투두두두 쏴야 될 것 같은 시점으로 날아가는 드론 캠으로 지켜보는 서리혁의 모습.
눈을 깜빡이던 시청자들이 Y앱 제목을 다시 눌렀다.
‘사랑해 주세요 가 아니고 사냥해 주세요 였나…?’
‘커뮤에 <헌팅 당하는 서리혁.gif>으로 올려야겠다.’
‘리혁이 헌팅 당하네…….’
시작부터 무언가 이상한 생일 Y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