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8화
“어라?”
우리가 보고 있는 Y앱 화면에서 리혁이가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느아아아아!
그와 함께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창.
-시작부터 리혁이 헌팅
-피라루쿠 Lv.7
-[서리혁은 도망치기를 사용하였다.. 효과는 굉장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빠들 뭐 해요
-so cute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ㄲㅋㄱㅋㄱ
-시작부터 와장창.. 이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
그런 댓글 반응을 보며 동생들과 눈을 깜빡거렸다.
“어……. 이게 아닌데.”
우리가 원했던 반응은 이게 아니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으스스한 드론들이 최신 기술을 뽐내며 리혁이에게 달려들고, 리혁이가 꺼흑! 하면서 감동하는 것이다.
-신기술! 신기술이다…!
물티슈로 로봇 청소기를 고이 닦으면서 눈을 빛내는 아이가 아니던가.
그래서 리본이 달린 드론들이 달려들면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드론들을 안아 들 줄 알았는데.
중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리혁이의 겁을 너무 가볍게 봤나 봐요.”
“로봇 청소기 자기가 작동시켜 놓고 자기 근처에 오면 놀래서 짜증 내잖아요.”
“세수하다가 깜빡하고 거울 보고 화들짝 놀라는 형이에요.”
그제야 그간 냉철한 지성에 어울리지 않았던 빙구 같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계단을 올라 도망치는 리혁이를 보며 뺨을 긁적였다.
“이걸 어떡한다.”
댓글창에서 ‘이거 뭔가요?’와 ‘ㅋㅋㅋㅋ’가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바라보던 우리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리혁이나 잡자.”
“좋아요.”
“젤 먼저 잡는 사람한테 간식 사 주기!”
“내가 저리로 몰 테니까, 네가 저기로 가 봐.”
열심히 리모컨을 조종해 리혁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 * *
결국 리혁이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 건 우리 막내였다.
평소 플스와 엑스박스로 다져진 신들린 조이스틱 조종술 덕분인지, 막내의 드론이 리혁이를 붙잡았다.
“흐하하하! 봤죠, 봤죠? 제가 이거 조종 엄청 잘한다니까요. 형들은 이제 저 위대한 왕지호에게 간식을…….”
“야. 너 이리 와.”
“으아아! 리혁이 형이 저 괴롭혀요!”
리혁이가 막내의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드는 광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보 같은 지호.
훈훈하게 웃는 나에게 비주가 속삭였다.
“저도 이번에 형의 가르침을 따랐어요.”
“잘했다.”
“나머지 4명한테 분노할 것을 한 명에게 몰아 버리는 기술…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원래 우리 모두 혼나게 될 것을 혼자 독박 쓰고 있는 막내를 보며 형들끼리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끝난 후.
“네! 수플레 여러분! 이제 자정이 되었죠? 바로 우리 귀염둥이 메인 보컬 서리혁 군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빰바바바밤빰!
중현이가 BGM을 틀었다.
“콘그레츌레이션~ 콘그레츌레이션~”
“당신의 새앵~일을 축하합니다! 빠밤빠바밤~밤!”
축하 송의 묘미는 마지막 빠밤을 다 같이 불러 주는 것에 있었다.
노래방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BGM에 맞춰 비주가 리혁이의 머리에 고깔을 씌워 주었고 나와 지호가 케이크를 들고 왔다.
“에이, 맨날 요란스럽게…….”
살짝 퉁명하게 말하던 리혁이가 케이크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얼굴에 급격히 떠오르는 홍조.
“허어어어…….”
그렇다.
임금님 곤룡포를 입은 리혁이 미니미가 조형되어서 올라가 있는 수제 케이크였다.
우리가 저번에 300개 케이크를 돌려서 유명해진 베이커리에서 특별하게 보내 준 선물이었다. 어떻게 해 달라고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리혁 씨 취향이죠?’ 하고 시안을 보내왔다.
리혁이가 입가에 손을 올리고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내 케이크예요?”
“넹.”
막내가 칼을 내밀었다.
“이제 형의 머리를 시작으로 반 갈라 주면 돼요. 아얏!”
플라스틱 칼 옆면으로 이마를 찰싹 얻어맞는 막내의 모습에 댓글창과 우리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여간 활력소다. 우리 막내.
작년에는 대취타까지 불러서 진행했던 생일 파티였지만, 스케줄 관계상 올해는 이렇게 간단히 하기로 했다.
대신.
“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뉴블랙 노래방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예아! 웰컴! 웰컴!”
“원하시는 신청곡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댓글창이 반짝였다.
-나인 불러 주세요
-마커
-nak hw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표정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생일인데 일 이야기는 좀…….”
“잔인한 사람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저희 노래 부를 때는 적당히가 안 돼요. 나인 부르다가 조금 미흡하면 오늘 밤 새는 거라서…….”
예전 제주 리얼리티에서 우리 노래 나올 때마다 ‘일 이야기 하지 마세요…’ 했던 우리 모습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수플레들의 장난에 못써~ 하면서 말하자 신청곡이 올라왔다.
“자, 리혁아. 이 중에 골라서 불러라.”
“내 생일인데요? 불러 주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 거 없다.
결국 리혁이가 야밤의 연습실에서 ‘잔인한 여자라~’ 하며 고음을 높이면서 수플레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렇게 밤 12시의 Y앱을 1시간 정도 하고 마친 후.
“생일 축하해. 내 동생~”
“으아, 저리 가요.”
“우리 리혁이 최고다~”
아기 펭귄을 발견한 황제펭귄 떼처럼 리혁이를 품어 주었다.
그리 덥지도 않은데 얼굴이 엄청 벌게져서 미친 듯이 손부채질을 하는 모습에 다 같이 웃었다.
에어컨이 나오는데도 훈훈한 분위기.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서로를 챙기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대로 끝까지 다 같이…….”
어디서 소름 돋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지만 무시해야지.
수플레들과 소통하느라 깨작거렸던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빙 둘러앉았다.
매일같이 METRO의 안무 연습을 하는 시간 외에는 저마다 스케줄로 바빴기에, 자연스럽게 스케줄로 화제가 넘어갔다.
“다들 일들은 잘하고 있니……?”
“그렇게 아련하게 묻지 마요.”
리혁이가 웃었다.
“누가 보면 며칠 동안 안 만난 줄 알겠어. 매일 12시간 넘게 붙어 있다가 5시간 흩어지는 건데…….”
“그래도 길게 흩어지는 날도 있으니까.”
내 말에 비주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크를 먹고는, 간식거리로 시킨 보쌈과 족발을 먹으며 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족발 특유의 달달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있을 때.
“형.”
중현이가 물었다.
“형은 어떻게 됐어요? 스칼렛 누나들 곡 작업 다 끝났어요?”
“응. 다 끝났지.”
회사 선배들의 일이 궁금했는지 막내가 눈을 빛냈다.
“어때요? 퀄리티 잘 뽑혔어요?”
“적당히 잘 된 거 같아.”
“겁나 잘 뽑혔나 보네요. 형이 어지간하면 그런 식으로 잘 됐다고 안 그러는데.”
나름대로 잘 뽑힌 것 같다.
곡도 좋고, 안무도 좋고.
어디 가서 작곡가 때문에 스칼렛이 망했다 하는 소리는 안 들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잘 뽑혔다니까 다행이에요. 안 그래도 이번에 좀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가끔 마주칠 때 보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는데, 요새는 맨날 웃고 다닌다니까요. 그 사람들.”
그런 것 같긴 하다.
매번 꺄르르 웃긴 하는데, 누구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 짓는 특유의 표정들이 보이곤 했다.
요즘에는 확실히 더 표정이 좋아진 편인 것 같고.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좋은 사람들이에요. 다들 너무 착하고.”
“우리 데뷔 무산되고 계속 연습할 때도 그 누나들이 와서 고기 사 주고 그랬거든요. 삼겹살 먹는 것도 눈치 보이던 때였는데, 스칼렛 오는 날이면 소고깃집 가고 그랬어요.”
“고기 진짜 많이 얻어먹었죠. 우리…….”
그때 받았던 최고급 꽃등심의 은혜를 지금 갚는다면서 갸륵해하는 동생들의 표정에 내가 물었다.
“근데 곡을 쓴 건 나인데 왜 너희가 은혜를 갚은 게 돼…?”
“형을 빌려줬으니까요.”
“그대는 우리의 사유재산.”
논리의 비약과 궤변으로 점철된 동생들의 말을 들으며 웃었다.
막내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근데 부럽다. 형은 그럼 이제부터 자유시간 생긴 거네요?”
“응.”
“뭐 해요. 이제?”
안 그래도 생각해 둔 게 있었다.
다음 달에 방영을 앞두고 있는 휴식일기 촬영 때 생각한 것들.
“이번에 <선우주의 휴식일기> 찍으면서 너희가 나를 특별하게 케어해 줬잖아.”
“그렇죠~ 엄청 케어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너희들을 케어해 주려고.”
“…….”
“주선우 실장의 마음으로 너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케어해 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보는 중이야. 미튜브에 올릴 용도로 너희 개인 활동 비하인드를 내가 찍어 주고… 제목으로는 오, 이거 괜찮다.”
왠지 모르게 얼굴에서 생기를 잃은 동생들에게 말했다.
“<우주는 참견쟁이> 어때? 아니면 <친절한 우주씨>?”
너무 좋은 프로젝트가 아닌가.
아무래도 METRO의 제작기가 담겨 있는 만큼, <선우주의 휴식‘일’기>는 앨범 공개를 1주에서 2주 앞두고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화제성 챙기기가 쉬우니까.
그러면 그 사이에 심심한 기간이 생기는데… 이 기간에 동생들의 개인 활동을 따라가면서 내가 홍보도 해 주면 수플레들도 실시간 떡밥이 생겨서 기쁘고, 동생들도 홍보가 되어서 너무 행복하고.
설레어하는 반응을 기대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때?”
“……어느 쪽이든 좀 사양하고 싶은데요.”
리혁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제로 콜라를 들이켰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케어가 아니고,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하겠다는 거잖아요?”
“잔소리가 아니지. 다 너희가 잘 되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지.”
“저는 제목으로 <선우주는 훈수충> 추천이여.”
“중현아.”
막내를 처리하고는 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좀 그런가?”
“저는 형이 저랑 함께 해 준다면 다 좋을 거 같아요.”
“그치. 역시 비주 너…….”
“하지만 아직 위염에서 완벽하게 회복한 것도 아니니까. 남는 기간 동안 푹 쉬는 게 어떨까 싶어요.”
비주가 자상하게 말했다.
“송 캠프 하고 나서부터 하루도 안 쉬었잖아요. 이제 투어 준비하면서 잠시 몸을 추스르는 게 어떨까요?”
영애님 화법으로 번역하자면 ‘나대지 말고 몸 관리나 하셈’ 이었다.
위염 걱정을 해 주는 비주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푹 쉬어요. 형.”
“그래도 마음 놓고 쉬지는 못하겠으니까, 남는 기간 동안 연습이라도 해야겠어. 요즘 부족한 보컬 연습도 좀 하고.”
퐁당.
리혁이가 젓가락으로 집은 족발을 놓치면서 새우젓이 튀었다.
“METRO 안무도 좀 부족한 것 같더라고. 클레이 방문한 김에 안무 좀 몇 가지 물어보고 연습할까.”
달그락.
비주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랩 연습이나 연기 연습도 괜찮겠다. 보컬이랑 댄스는 매일 하니… 아니다. 시간도 많은데 전부 다 할까?”
“…….”
“…….”
“왜들 그래?”
갑자기 동생들이 내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형.”
“응?”
“다시 생각해 보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친절한 우주선>이요.”
“그래?”
끄덕끄덕! 끄덕덕덕덕!
턱이 달그락거릴 만큼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들의 모습에 살짝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럼 이번에 내가 너희를 잘 케어해 줄게.”
감동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동생들.
그리하여 개인 활동 비하인드 <친절한 우주선>의 컨텐츠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미튜브 컨텐츠 「친절한 우주선」 Ep.01
부스럭.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셀프 캠의 카메라가 켜진다. 누구나 ‘헉’ 하고 잠시 숨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미남의 얼굴.
우주 : 너무 가깝나?
눈썹으로 내려온 앞머리를 살짝 쓸어 넘기던 우주가 카메라를 가까이 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웃는다.
우주 : 어때. 너무 가깝나?
리혁 : 몰라요.
우주 : 수플레, 제 콧구멍 보실래요?
리혁 : !
다급하게 셀프캠을 뺏어들고 ‘왜 그래?’, ‘아이, 진짜 채신머리…’ 하면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싸워라! 싸워라!’ 하면서 응원하는 프로듀싱팀 직원들.
소파에 널브러진 셀프캠이 서로에게 쿠션을 들고 팡팡 공격하는 두 초등학생의 모습을 담는다.
(삐- 효과음)
(우주선을 탄 미니미 우주가 휭~ 날아가며 <친절한 우주선>이라 적힌 로고를 띄운다.)
서늘한 이목구비의 메인 보컬과 화려한 미모의 리드 보컬이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는다.
우주 :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 화해했어요.
리혁 : 사이좋아요~!
그러고는 서로가 말할 때마다 뒤에서 흉보는 이들.
눈을 뒤집고 표정을 올롤롤로 하거나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잘생긴 짱구들 같은 모습.
우주 : 네. 오늘은 저희 리혁이 OST 녹음하는 곳에 참… 참관하려고 왔고요.
리혁 : 참견이겠죠.
우주 : 가만히 좀 있어 보세요. 형이 말하고 있잖아요?
리혁 : (입모양으로 ‘권위주의자’)
리혁의 OST가 나오는 드라마에 대해서도 간략히 홍보를 한 후.
우주가 윙크를 하며 카메라를 돌렸다.
우주 : 그럼 OST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 번 같이 보실까요~?
* * *
셀프캠을 세팅하고 촬영을 이어 가는 동안.
리혁이가 녹음을 하게 될 OST의 가사지를 살폈다. 그러곤 카메라를 바라보며 수플레들에게 말을 해 주었다.
“리혁이가 OST를 부르게 될 드라마는 바로 이번 3분기에 방영될 예정인 <나의 곰과 호랑이>인데요.”
유명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올해 한국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탄 오정희 작가님의 작품이었는데, 손만 댔다 하면 시청률 최고치를 찍는 스타 작가였다.
보통 가수들이 드라마 OST를 고를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게 바로 시청률인데, 그런 드라마의 OST.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메인 OST 제안이 리혁이한테 넘어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큰 일이었다.
“음.”
시놉시스를 살폈다.
단군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드라마인데, 마법적인 능력을 지닌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의 후손들이 21세기에서도 서로 대립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다 서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아.”
설명을 까먹었네.
“드라마 제작사 분들이 흔쾌히 홍보를 허락해 주셔서 이렇게 언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거 말 안 해 주면 댓글로 화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제작사에 전화해서 ‘뉴블랙이 너네 드라마 무단으로 홍보했대!’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
가사지를 보면서 후… 하고 있는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안 풀려?”
“보컬은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화자의 심정을 잘 모르겠어서…….”
“어떤 심정?”
“곰과 호랑이가 서로를 미워하는데, 그러면서도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거잖아요.”
“애증이라는 거네.”
“이걸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할지 감이 안 와요.”
예전에 <밤바다>를 녹음할 때, 리혁이가 ‘난 근데 그런 추억이 없어서 모르겠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워낙 노래 부를 때 자기 경험을 중시하는 녀석이라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서로 미워하면서도 좋아하는 관계성이라…….”
“그거네.”
녹음 준비를 하던 형섭이가 말했다.
“배트맨과 조커.”
“형섭이는 저기 문 열고 나가면 돼.”
“쳇.”
프로듀싱팀 막내의 반응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 이야기가 주제.
주변에서 듣고 있던 민기 형이 손을 들었다.
“연애 이야기면 내가 조언해 줄까?”
“민기 형, 형이 가장 오래 했던 연애가……?”
“…….”
“아니,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그래요. 괜찮아요. 뚝, 뚝. 우리 민기 착하다… 착하다.”
프로듀서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애증이라면 저 유부남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거 미튜브에 올라갈 거예요.”
“여보, 사랑해!”
다시 한번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적당한 예시를 떠올리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때, 적당한 예시가 떠올랐다.
주름진 어느 유바바의 얼굴.
“리혁아.”
“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떠올리면서 불러보자.”
집중하는 리혁이에게 내가 설명을 해 주었다.
-옘병.
“평상시 까칠하게 나에게 말을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날 아끼는 그런 사람.”
-오다 주웠다. 처먹든지 말든지.
“항상 나에게 무언가를 주기도 하고, 맨날 툴툴대면서도 그 사람을 떠올리면 미소를 짓게 되는.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보이면 허전하고 그런.”
-나 숙자랑 이번에 여행 간다. 전화 늦게 받는다고 옘병 떨지 말고.
오오 하며 누군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 나만의 김덕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리혁이가 입을 열었다.
“음… 알겠어요.”
“진짜?”
“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 * *
몇 시간 후.
OST 제작사 측에서 나온 작곡가는 숨을 삼켰다.
“참관…이요?”
“네. 말씀 들으셨죠?”
“네…….”
뉴블랙 컨텐츠를 촬영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우주선이 저렇게 웃으며 앉아 있을 줄은 몰랐다.
‘서리혁만 있을 줄 알았지…….’
그도 어디 가서 꿇린다는 말을 듣지 않는 커리어를 가진 작곡가지만 왠지 모르게 좀 부담스럽다.
현 시점 국내의 최고 작곡가가 뒤에서 지켜본다고 하니 뭔가…….
“흠흠흠.”
그리고 우주선의 옆에 3대장처럼 붙어서 팔짱을 끼고 참관하는 작곡가들의 면면도 만만치가 않았다.
“흠흠, 그럼 녹음 시작하겠습니다.”
-네.
녹음을 앞두고 허우워어 하며 목을 푸는 리혁의 목소리가 청량하게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프로답게 디렉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녹음을 시작할 때였다.
“와…….”
첫 소절 시작하자마자 작곡가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테이크를 일부러 몇 개 가져갈 필요도 없이, 그냥 부르는 즉시 바로 음원으로 내도 될 정도였다.
성량은 또 어찌나 좋은지.
‘미쳤네.’
작곡가가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뉴블랙, 뉴블랙 하는구나.’
게다가 감정까지.
신들린 듯한 보컬로 감정을 담아 부르는 리혁의 이목구비가 온화하게 빛나는 느낌이다.
자신이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몰랐던 작곡가에겐 감탄스러운 일이었다.
‘어쩜 감정을 저렇게 잘 담아 부르지?’
손편지를 뿌리고, 술 취해서 사랑해를 외치고 다니던 감성적인 모습이 정말로 본모습인 걸까.
눈을 지그시 감은 서리혁이 부르르 떨며 OST를 부르는 모습에 그가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 * *
서리혁은 부르르 떨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두 개의 메아리.
-아. 왜여. 제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요.
‘평상시 까칠하게 나에게 말을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날 아끼는 그런 사람.’
-형 주려고 이거 로켓 배송으로 샀어요. 고구마 말랭이. 싫어요? 싫으면 먹지 말든가~
‘항상 나에게 무언가를 주기도 하고, 맨날 툴툴대면서도 그 사람을 떠올리면 미소를 짓게 되는.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보이면 허전하고 그런.’
-저 잠깐 친구들 만나고 올게요. 언제 오냐고요? 저 스물인데 제가 그런 것까지 말해야 돼여?
‘그런 나만의 김덕순…….’
눈을 지그시 감은 서리혁이 무의식적으로는 떠오르는 인물에 감정을 잡으면서, 의식적으론 현실을 외면했다.
“대박인데!”
“리혁 씨, 진짜 최고예요.”
“…….”
눈을 지그시 감고 부르르 떠는 서리혁.
그는 프로였다.